<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현대적 멜로드라마
한편, 60,70년대 근대화가 진행되던 이 시대는 미혼 여성노동자들이 대거 서울로 이주하던 시기였다. 서울로 이주한 이들 농촌 여성들은 도시사회에서 가장 착취당하는 집단으러 전락하게 된다. 이른바 여공으로 값싼 노동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식모라는 호칭으로 가사보조로 일했다.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의 어머니 이상으로 공적 영역에서의 생산자 역할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는데, 이들 영화는 자본주의 장치와 맞물린 국가권력이 여성 노동력의 통제와 밀접한 관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별들의 고향>에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일상적인 공간들이 아니라, 술집과 카바레, 여관과 창녀촌 같은 퇴폐적이고 에로틱한 곳이다. 경아를 둘러싸고 있는 술과 과도한 욕망의 이러한 이미지는 압축적 근대화로 인한 도시의 혼돈과 여성화를 상징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여성화는 군사정권의 초남성적 전략 속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이 여성화되는 현상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초남성화된 국가 앞에서 복종과 규율을 내면화해야 하는 남성 주체들의 심리적 상황은 문호를 통해 잘 드러난다. 문호는 고등교육을 받은 화가지만, 그에게서 남성적 권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문호의 유아적이고 바보스러운 행동은 남성성이 유아화되거나 거세될 위협에 처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거리의 여자’ 경아는 국가 주도의 억압적 근대화에 의해 동요하는 남성 주체의 모순을 설명하는 일종의 알레고리이다. 그러나 그녀는 국가의 초남성적 전략에 의해 여성화된 남성 주체들의 내적 분열과 모순을 표현하는 기호로 그려질 뿐, 여성 주체로서의 갈등과 모순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질서에 필요한 지배력을 상실한 남성들의 무기력한 정체성은 여성의 주체성 증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리하여 서울이라는 도시는 여성들의 새로운 욕망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 되며,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여성의 성애적 이미지는 억압되었던 그들의 주체들이 재구성되는 통로가 됨으로써 전통적인 성별위계를 어지럽히고, 남성적 주체성을 위협하는 전복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처럼 경아가 보여주는 유동적 여성성, 확대하자면 서울이 가진 유동적인 여성성이 남성성을 파괴하는 위험한 것이 될 수 있기에 남성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남성적 권위라는 무기로 이것을 억압해야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남성의 권위는 경아의 현존 자체를 죄악시하고 처벌의 대상으로 만든다. 표면적인 원인은 그녀의 과잉된, 위험한 섹슈얼리티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남자들에게 버림받고, ‘타락한 여성’이라는 사회적 낙인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다. 물론 경아는 흰 눈 위에서의 죽음으로 자신의 ‘순결’을 회복하려 하지만 경아의 이러한 소망이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남성 위주의 사회적 질서가 여성의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 억압해 왔는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_pbS1FzSE
한편,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영자는 식모에서 공장노동자로, 다시 버스차장으로 마침내 창녀로 변해가는데 이 위치들은 모두 60,70년대 하층 여성의 사회적 위치다. 식모는 농어촌에서 갓 올라온 십대 소녀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곧 광범위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출 지향적인 제조업으로 흡수된다. 영자도 이 대열에 합류하지만 결국 팔 하나를 잃게 되고 더 이상 노동현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된 영자는 이제 생계를 위한 매춘으로 내몰리게 된다. 애초부터 영자가 소망한 것은 ‘기술을 익혀서 평생 혼자 살고자 하는’ 혹은 좀더 잘 되면 여성 택시 운전사 정도가 그녀가 가진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영자의 이런 꿈은 팔 하나를 잃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이것은 월남전에서 돌아온 창수가 ‘기술을 배워 양복점을 차리는’ 꿈을 실현하는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영자와 창수의 이러한 대비는 근대화 프로젝트라는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정체성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이것은 결국 여성이 민족주의적 근대화 프로젝트의 가장 큰 희생자이자 부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영자가 의수를 달고 중앙청 앞을 혼자서 걸어가는 장면은 근대화의 부산물인 상실된 여성 주체인 영자가 바로 그 근대화 전략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징후적으로 나마 드러낸다. 물론 영화는 영자라는 여성 주체가 가진 잠재적인 위협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그녀를 단란한 가족 구성원에 포함시킴으로써 이런 위험성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김씨 아저씨로 대변되는 남성 주체는 영자가 단란한 가족을 꾸리기에는 ‘순결하지’ 못한 창녀였음을 끊임없이 각인시킴으로써 그녀를 또 다시 도덕적으로 타락한 길로 내몰릴 뿐이다.
이상 이 세 작품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국 근대사에서 여성의 정체성이 남성위주의 외형적 규범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주의의 논리와 배반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말기와 한국전쟁 기간동안 여성들은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고 또한 사회적 노동도 그들의 몫이 된다. 그러나 여성들을 다시 전통적 자리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서 국가는 다양한 이데올로기 장치를 동원해 여성의 규범을 재정립하게된다. 이러한 과정을 그려내는 멜로 드라마는 다른 어떠한 장르보다도 한국적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텍스트로 가능하며, 이러한 주제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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