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 김병규
흩어진 얼굴이 그리워서
부지런한 고향은 아침 일찍
저마다 편지 하나씩 들고 있다
섣달 그믐밤 불을 밝히시던 할머니
마을 어귀 느티나무만큼 목을 높이고
기다리던 마음 끝 자락에
색동저고리 손녀가 웃는다
설은 즐거운 만남이 있다
아파트에 고향이 없다는 손녀
알바로 늙어버린 딸
온돌 아랫목에 둘러앉아
웃음꽃 하나씩 흔들고 있다.
** 한국 설날이다. 미국은 섯달 그믐이다. 고향을 떠나 사는 우리 실향민은 명절이 가장 마음이 쓸쓸한 날이기도 하다. 김병규 시인의 “설날” 을 실으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이 시를 통해 들여다 본다.
할머니의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과 할아버지의 손녀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기다리던 마음의 끝 에 맛보는 환희다. 성냥갑처럼 네모난 아파트를 가진 우리 세대와 우리의 차세대에겐 실종된 고향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설날엔 웃을 수 있는 것은 지치고 곤한 마음이 비로소 온돌 아랫목에 앉아 넉넉해지는 풍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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