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곁에서
청곡 김호천
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두터운 코트를 입고, 장갑을 끼고
벤치에 앉아 잎 진 나무를 본다.
이제 곧 찬 바람이 불어올 텐데
두꺼운 껍질의 소나무 곁에
봄을 꿈꾸며
맨 살로 서있는 배롱나무
내가 미안하다.
노인들이 나무 아래 둘러 앉아
정담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린다.
지나는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한 자리 끼어들어
정담을 받아준다.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면
아쉬운 듯 해를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
잦아드는 어스름 돌아갈 시간
노을에 물든 나는 내일의 해를 바라며
지팡이를 앞세운다.
2019. 12. 26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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