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그 가치는 과연 존재 하는가

제97호 10면 2009년 5월 11일자
진보적 가치를 재소환하라
[시론]
이나영
촛불은 꺼지고 용산참사는 잊혀졌다. 아무리 찬미로 가득 찬 노스탤지어에 소구하려 애써도 현실은 신공안정국이며 인식론은 신/재식민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거나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고, ‘자기 자리’에 돌아가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경제 살리기’와 ‘녹색 성장’은 서민들의 공간과 삶을 붕괴시키는 트랙터 소리 위에서 숨쉬고, 생태계를 깔아뭉갠 콘크리트 위 실개천에서 꽃핀다. 어떤 열매가 열려 누가 수혜자가 될지 명약관화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촛불에 열광하던 우리 모두가 냉소주의자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진보도 보수도, 한나라당에도 민주당, 민노당에도 다 그저 그렇게 시큰둥한 시선만이 던져질 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물론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의 시종, 비굴한 식민주의, 무책임한 가부장, 모순적 자민족 중심주의의 갑옷을 입은 현 정권의 암묵적 위협과 협박 속에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1차적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필자는 지금까지 ‘동지’라 여겨졌던, 혹은 여겨야만 했던 소위 ‘진보’라 일컫는 집단에 성찰을 먼저 요구하고 싶다.

현재 진보 진영의 무의식과 실천행위를 분석해 보면 과거의 행태에서 별반 달라진 바 없을 뿐만 아니라, ‘보수’라 치부되는 진영과도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북미관계, 남북관계 등 거대 안보 논리에서 보이는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경제, 성, 인종, 환경, 소수자 등의 문제 등에서 어느 것 하나 뚜렷한 변별력을 보이지 못했으며 따라서 연관된 의제 선점에 성공하지 못했다. 문제는 지도력의 상실이 아니라 총체적인 의식 결여 상태다.

이는 진보라는 집단 스스로 얽혀 있는 수많은 과거‘사’의 그물망 속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스스로 증거함이다. 여전히 조직과 개별 의식 속에 남아있는 위계적 군사문화의 잔재, 여성주의 의식은 없고 여성표의 중요성만 있는 마초문화의 행태, 식상한 방식의 대안 없는 비판, 권력이 형성되고 재생산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성찰 없는 권력유지욕이 빚어낸 필연이다. 그들은 정치, 경제, 문화의 거대 블럭을 이루고 있는 현재 (중)상류집단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통해 자기반성과 재구성을 유도해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해체해야 할 주적인 계파와 학연, 지연에 얽힌 배제의 정치학을 무비판적으로 실천해 왔다.

정치판이든, 문화계든, 학계든, 그들은 여전히 계보관리, 인맥관리에 아전투구이며 ‘자기 사람’은 늘 그 지겨운 학맥과 지연으로 판명된다.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양식 또한 대한민국을 넘어서는 순간, 보수주의의 경제제일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는 국부론이나 자민족중심주의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한 모순이 구체화되어 나타날 때마다 대중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좌절하며 냉소적이 된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이나 고 장 모 씨의 자살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사건은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사건의 처리 과정이며 이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의 문제이다. 선명한 처리보다는 서둘러 봉합하려는 비겁함, 성적 착취와 인권 침해라는 문제의 본질보다는 ‘리스트’에만 관심을 가지는 정치적 의도는 치졸함을 넘어 집단적 무지함을 스스로 드러냈다.(보수는 언급의 대상조차 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그들은 사적/공적 영역의 섹슈얼리티가 연결되어 있지만, 성적 사생활과 약자에 대한 성적 착취와 폭력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진보가 지키고 발전시킬 부분은 투쟁의 현장에서 권력에 대항하여 싸워 획득한 정치의식이며 버려야 할 것은 가부장, 이성애, 한국-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체화한 각종 ‘이즘’들의 무비판적 실천양상이다.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정치적 헤게모니에 대한 투쟁을 통해 습득한 의식을 보다 진보적인 자기 성찰의 거점으로 설정하는 것이지만, 잊어야 할 부분은 과거의 부분적 ‘승리’에 대한 도취와 극복 대상에 대한 자기 망각이다. 이는 복지, 인권, 생태, 환경 등 보수가 위선적으로 포장하고 선점한 기표들에 대한 재전유를 넘어, 미래의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가치의 진보적 재구성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진보는 ‘리버럴’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과정에 몸을 던져야 하며 다면적이면서 동시에 일관된 의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불평등의 문제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인종, 학벌, 계급과 교차하면서 다층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는 다양한 불평등의 축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나는 ‘그녀들’과 보다 작은 ‘그들’과의 ‘만남’과 진심으로 만날 때이다.

*** 이 기사는 “시민 사회신문” 에 실린 내용을 모셔왔습니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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