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마시는 한 잔의 시~~ John K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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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ght star, would I were stedfast as thou art–
Not in lone splendour hung aloft the night
And watching, with eternal lids apart,
Like nature’s patient, sleepless Eremite,
The moving waters at their priestlike task
Of pure ablution round earth’s human shores,
Or gazing on the new soft-fallen mask
Of snow upon the mountains and the moors–
No–yet still stedfast, still unchangeable,
Pillow’d upon my fair love’s ripening breast,
To feel for ever its soft fall and swell,
Awake for ever in a sweet unrest,
Still, still to hear her tender-taken breath,
And so live ever–or else swoon to death.

John Keats (31 October 1795 – 23 February 1821 / London, England)
존 킷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영국에서 소위 낭만파 시인으로, 로드 바이런, 퍼시 베시 쉴리와 더불어  제 2기 낭만파 시인이라 일컫는다.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는 대부분의 낭만파 시인들이 그 당시 소넷의 형식을 취했던 것처럼 그 역시도 소넷 형식으로 시를 썼다. 14줄의 시 , 각운을 맞추면서 정형화된 형식과 함께 위의 시, “빛나는 별”에서도 그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세상을 비추며,  마치 성직자의 직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묵묵히 세상의 곳곳을 비추어주는 별에 대한 찬사를 이 시에서 엿볼 수 있다.
존 킷은 불행하다고해야 할 지 아님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는 마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차지하더라도, 그는 13살이 될 때까지 반항아 기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학구열에 불타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작문과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수술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어느날 졸업을 앞두고 그가 생각을 바꾼다. 8살때 아버지가 말에서 낙마해서 돌아가시고, 14살 되던해 엄마마저 결핵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할머니에게 동생들과 맡겨져 살게된다.  자신은 시인이 되겠다고 선언을 한다. 그 당시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시인이 된다는 것은 쉽게 말해 밥벌이를 하기 힘들다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살아 생전에 수많은 시를 썼지만 그다지 관심을 갖지못했다.그런데 그가 죽기전 4년전에 낭만파 시인으로 인정이된다.
그의 시는 그가 죽은 후, 더 인정을 받고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그의 시풍을 이어받고 그에 대해 연구하면서 그의 시의 세계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인 Jorge Luis Borges 는 그의 삶에서 존 킷을 만난것이 가장 획기적인 문학세계의 경험이었다고 그를 극찬했다.
그의 나이 26살에 결핵에 걸린 동생을 간호하다 결국은 그의 허약한 몸이 결핵에 감염되어 그는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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