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석남중학교, 진정한 혁신학교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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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는 공개 수업을 지향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공개 수업을  지양한 결과를 초래했다)

10월 14일(현지 시간)  국회의원회관에서 있을 “양쯔강의 눈물” 저자 간담회를 하루 앞두고,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고보선 인천 석남중학교장과 사전에 약속한 “학생들과의 대담”  시간에 맞추기 위해 종로에서 인천행 열차를 두 번  갈아  타고 기자와 기자의 딸은  고  교장이 알려준  인천 석남중학교를 찾아  갔다.

초행이고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터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물어 그리고 더듬 더듬 학교를 찾아  도착하니 교문앞에서 교장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한 후,  교장실에 당도하여 학교장과 인터뷰를 통해 “혁신 학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들었다.

첫째,  혁신학교란  기존 주입식 교육제도를 개선하여,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끼,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 중심제도다.

둘째,  진보적인 교육으로,  사회,  정치,  역사 교육에 대해서 정부에서 억압하는 것에 반해 학생 개개인의 자기의사와 표현을 존중하는  교육제도다.

셋째,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하여,  참 교육을 이루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좋은  취지의 혁신 교육을 무슨 이유에선지 반대했던 새누리당의 모 국회의원은 이미 혁신학교  체제로 전환한 청라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고  교장을  강등시켜 현재 석남중학교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기자가 왜 석남 중학교 학생들과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 지에  설명하자면,  혁신 학교라는 특별한 슬로건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며,  그런 연고로 고보선 교장과 소통한 후,  이러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학교에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던 기자의 기대와 달리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방문 당일까지  박봉숙 석남 중학교 교감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이 전무하지는 않았다. 박교감은 우리 일행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반대의사를 밝히기전에 고 교장과 대화를 한 후,  일단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나중을 도모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조처를 하지않고 일방적으로 교장에게서 들은것이 없다로 일관함으로서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를 콘트롤 할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대신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마치 세월 호 사건에 대해 정부가 대처한 상황을 한 번 더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교장실에 도착해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교감이 학부모 한 분을 모시고 교장실로 들어  왔다.  학부모의 얼굴은 몹시 경직되어 있었고,  행복해 보이지 않았는데 과연 이 학교가 학부모,  학생,  교사가 삼위일체가 되어 참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위의 혁신학교 제도에 대해 반문을 제기한다.

1.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  그들의 끼를 살릴 수 있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코리일보가 그 학교를 방문한 것은 최근 코리일보 편집장인 김서경이 쓴 “양쯔강의 눈물”  이라는 역사 소설을  안내,  설명하며,   학생들이 한국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지,  또 어떻게 알고 있는 지에 대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학교에 도착한 후,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서,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또 학생 대표들로만 할 것인지,  아니면 일반 학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상의를 하고 있는데 박봉숙 교감이 한 학부모를 동행해서 들어왔고,  그후,  이야기를 채 끝내기도 전에 교장은 교감 더러 우리  일행을 2층 교무실로 안내하라고 했다.  교무실  계단을 오르면서,  대뜸 교감이 한다는 말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했다.  난 교장에게 했던 말을 교감에게 했다.  교감은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런 행사를 반대한다”  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김서경의 딸이  미국에서 변호사를 한다고 하자,  “법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만,  학부모의 동의 없이 외부인과 대화의 자리를 만들 수 없다.  여러분이 외부인임에는 분명한 거잖아요. ” 라고  거듭 강조 했다.  그렇게 말한 후,  교무주임에게 우리를 떠 맡기곤 다시 교장실로 가야 한다며 교무실을 나갔다.  교무 주임은 우리 일행의 건너편에 앉으며,  수사관 같은 눈으로  우리 일행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신 용건이 무엇이지요?”  기자는 또 한번 설명을 했다. 그 교무주임 역시 “바로 오늘 아침까지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들은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교무 주임이 마치 우리를 심문하듯 우리를 바라보며 조사를 하고 있을때,  고보선 교장 선생님이 들어 왔다.  기자는 한 마디로  “저 안할랍니다.  그냥 가겠습니다.  저 한가한 사람아닙니다.  교감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이 행사를 반대한답니다.”  라고 말하자,  고보선 교장은,  우물거리며,  “내가 허락한 것인데 왜 교감이 그러지요?”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을때 교감이 들어와 기자 맞은 편에 앉았다. 기자는 교감을 바라보며,  “난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에서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시간은 아주 중요합니다.   안하겠습니다.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교감의 눈빛에서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교장은 오후에라도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지만 우리 일행은 단호하게 그냥 가겠다고 말하며 교무실을 나왔다.  고보선 교장이 미안한 듯 우리를 따라 나왔다.  점심이라도 대접한다고 말했다.  난 점심을 먹으러 그곳까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장은 많이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  과연 이런 교육 환경과 기존의 주입식교육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창의적인 사고?  다양성 존중?  이것이 가능할까?

많이 보고 들으며,  많이 접할 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이 된다.   학생들안에 잠재되어 있던,  나도 한번 해 볼까?  하는 시도, 의욕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또는 후천적인  끼들을 밖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대부분 그러한 것들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학생들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지난 시간 나의 경험으로 볼때,  미국 대학교에서 학생회 부회장,  클럽 회장등을 역임하면서 내가 체득한 경험은 학생들 스스로 끌어내지 못하는 끼는 누군가가 그것을 끌어 내주어 빛을 보게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교감 박봉숙은 마치 학교 위에 군림한 듯 교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직장에서의 위계질서를 파괴한 채,  자신의 뜻만 고집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를 갖지못했다.  한국에서 교감의 지위가 교장의 지위보다 더 높은 것을 그때 보고 느꼈다.  물론 다른 학교에서는 예외일 것이다.  오직 석남 중학교에서만 그것이 통한다는 것을 보고 혹시,  교감이란 자리가 학생,  학교를 비롯한 모든 교직원들을 감시하는 직업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2.  진보적인 교육으로,  사회,  정치,  역사 교육에 대해서 정부에서 억압하는 것에 반해 학생 개개인의 의사와 표현을 존중하는  교육제도라구요?

기자는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캐치할 수 있었다.  학교안에서 학교장과 학생,  학교장과 교직원,  교직원과 외부인,  교직원과 학생과의 관계를 읽을 수 있었다.

만약에 학교가 진정으로 위의 가치를 실현하는 학교라면,  열린 학교로서 미리 학생들에게 “미국 코리일보가 여러분을 취재하러 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가”  에 대한 의견 수렴이 미리 있어야 했다.   “역사 인식”  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과 생각을  묻는 자리,  그것도 교장이 허락한 안건에 대해 정작 교감이 직접적으로 교장앞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우리 방문객에게 했다는 사실은 교감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권위주의적인 발상으로 우리들에게 겁박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교감이 자기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교장에게 표현하지 못하는데,   어찌 학생이 선생에게,학생이 교감과 교장에게 그리고 대외적으로 그들의 자유 의사를 개진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소위 앞에서는 아무말 못하고 뒤에서 뒷말  해대는 전형적인 뒷담화의 한 예를 보게된것이다.  그런 뒷담화가 성행한다면 학생과 학교는 소통이 아닌 불통으로 이어질 것이며,  학교의 교직원들은 권위주의에 입각해서 학생들을 “다루는”  소위 전  근대적인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  개개인이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자기 의사를 존중 받았던 학교 분위기라면,  당연히 학교장은 교감이 반대를 할 지라도 교장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학생들에게 촛점을 맞추었어야 했다.  아니 적어도 고 교장은 정말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그런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은 한 것 같은 생각도 없지 않아 들었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다면  거기에 합당한 결과치가 있었어야 한다.  즉,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물어본 결과,  기자님이 듣기를 원하는 학생들의 진정어린 목소리인 “역사 인식”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여론 조사 나타났습니다.  라고 말을 했다면  기자는 무리한 일정을 잡지 않았을 뿐더러 기자는 그 학생들이 혁신 교육제도 하에서 스스로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표출해 내는것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견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3.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하여,  참 교육을 이루는 것이 목표?

위의 반증과 예를 들어 설명했던 것과 동일한 원리로 생각해 보면,  교육을 하는 교육자가 학생에게 촛점두는 것이 아니라,   “외부인”  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면 학교에서 내부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학생,  학부모,  교직원,  교감,  교장인가?  교육부나 교육부 장관은 외부인인가?  내부인인가?  엄밀하게 따지고 본다면,  기자도 학교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교육관련 기자로 내부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  교감에 따르면  그 “외부인”이 학교에 책을 팔려고 간것도 아니고,  오히려 책을 나누어 주며,  1930년대의 한국과 주변 국의 정세,  정치,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에 대해 알게 하기 위해서 도움을 주러 갔다는 것에 있다. 최근 국사가 아예 학과목에서 폐지되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왜 검정 교과서가 아닌 국정 교과서로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좀 더 한국 역사를 알고,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박근혜 정부가 피해 당사자간의 합의 없이 합의를 했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왜 국민은 이에 분노하는 가?  등등,   역사는 인간으로 본다면 우리의 척추나 다름없다는 것, 인간으로서 직립보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중추적인 역활을 담당하는 뼈대인것이다.  역사를 도외시하거나 역사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퇴보하게 될 것이다. 근본을 모르는데 어찌 앞서 나갈 수 있겠는가?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여 참 교육을 이룬다고 하였는데,  학생이 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제공되지 않은 학교 풍토,  교감의 월권행위,  아침부터 온 학부모의 얼룩진 얼굴  에서 과연 참교육이 이루어질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2016년은 “알렉산더 해밀턴”  열풍이었다.  린 매뉴얼 미란다의 6년동안의 연구와 고심끝에 내 놓은 뮤지컬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인 미국이란 나라를 세우는  과정과 역사적인 사건과 내용을 가사화해서 노래하였다.  금년도는 물론이고 내년도 좌석까지 매진이 될 정도로 $1,000불이 호가하는 좌석은 암시장까지 등장하는등 2016년을 하나의 phenomenon으로 일컬을 만큼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물론 미국 대선과 아울러 미국인들은 미국의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한 것도 이 뮤지컬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뮤지컬은 미국민들이 지난 200년이 넘은 역사를 알기쉽게,  이해하기 쉽게 노래한 작품으로 작가 미란다는 토니상을 휩쓸었다.

역사를 알기 쉽게,  기억하기 쉽게,  힙합 형식으로 곡을 붙이고,역사적인 사실을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끌어내어 관객이 함께 호응하며,  즐기는 대중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란다의 천재성을 온 마음으로 칭찬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어쩌면 다음에는 더 멋진 역사관련 영화나 연극,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역사의 중요성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꼭 학과목에 넣어서 우리의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후세대로서 미래를 계획하는데 과거의 힘들었던 역사를 되짚어 봄으로서,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점과,  부정적인 과거를 인식하고 그것을 뛰어 넘어 긍정적이며 창의적인 사고와 역사관을 확립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결론,  혁신학교는 없다.  중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의 사고력이 더 첨예하게 발전할 수 있는데 학교가 그것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혁신학교” 운운하는 석남 중학교에는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혁신이 필요한 학교”  를 혁신학교라고 지칭하는 지도 모르겠다.

혁신 학교로서,  학생 개개인의 끼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는데 과연 그러한 제도가 가능한 것인지,  진보적인 교육으로 정부가 억압하고 있는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학생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했는데, 동기가 부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 또한 가능하겠는가?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하나되어 참교육을 실현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했다면 아침부터 학부모가 얼굴이 일그러져 교장실을 찾았겠는가?  혹시 말만 혁신학교이지 사실 혁신이 필요한 학교는 아닌가?  물론 박봉숙 교감 부터 말이다.  엄격하게 따지면 교장이 집안의 가장이고 아버지이면,  교감은 가정의 어머니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머니는 일단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행하고,  사건이나 상황의 추이를 살펴본 후,  어머니가 아버지와 담판을 내도 늦지 않다. 그런데 무조건  그녀가 말한대로 “외부인”  인 우리 일행에게 치부를 드러내고 만것은 그만큼 그 가정이나 조직이 튼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때가 얼마나 중요한 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등 교육을 받기 위해 들어온 새로운 교육 문화 시스템에서 단단히 기초를 다지는 중학교 학생으로,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인 중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절대적으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고보선 인천 석남중학교장은 그의 페이스 북에 “우리 학교가 달라졌어요”  라고 했지만 달라진 정도가 이 정도라면,  그 전에는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석남 중학교에서의 있었던 일을 계기로 다른 일반 중학교는 정말 누구나 참여하고 누구나 토론하는 자유로운 배움의 터전이 되기를 바라면서  석남 중학교는 최근 한국의 갈팡질팡한 정치,  경제,  사회의 단면을 보는 하나의 샘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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