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Myung University>

2) 자크 라캉(Jacques Marie Émile Lacan)의 언어적 정신분석학

라캉,Jacques Marie Émile Lacan :13 April 1901 – 9 September 1981)의 구조주의는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근원적으로 욕망의 존재임을 전제한다. 라캉은 소쉬르의 기호학을 바탕으로 프로이트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고 그의 저작을 통해 정신분석학을 보다 일반화시켰다. 주체 발달과 무의식에 관련된 언어학적 구조에 대한 그의 연구는 문화 연구, 특히 대중영화의 분석에 영향을 미쳤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발달 구조를 후기구조주의 심리분석으로 만들기 위해서 구조주의의 비판적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라캉은 인간이 결핍되고 상실감에 젖은 존재로서 그 상실의 대체물을 찾아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본다. 인간에게서 완전한 순간이란 어머니와의 결합 상태에 있었으며 그 후 완전함의 순간을 찾기 위해 끝없이 추구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라캉은 인간의 발달이 세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첫째는 ‘거울단계’이며, 둘째는 ‘실당기기 fort-da’ 게임이고, 셋째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이다.

우선 첫 번째 거울단계는 거울을 보며 인간이 자아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 가는 시기를 말한다. 라캉에 의하면 대부분 어린아이는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기와 동일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아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자아의 이미지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잘못된 인식이지만, 어린아이는 이를 토대로 하여 실제적인 육체적 분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통일된 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를 달리 설명한다면, 최초 자궁 속에서의 어머니와의 결합은 완벽하며 아무런 결핍도 없는 완전한 순간으로 주객분리 이전의 단계이다. 그러나 곧 어머니와의 신체적 분리가 이루어지며 이후에는 자궁 속에서의 지속적인 만족 대신 어머니의 젖가슴의 간헐적인 만족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이러한 신체적 분리의 경험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처럼)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자아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거울단계이다. 이처럼 라캉에게 있어서 인간의 최초의 자아란 이 세상에서 자기와 동일시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서 허구적 인식을 고양시키는 나르시스적 존재에 불과하다. 이것이 소위 ‘상상계’이다.

두 번째 ‘실 당기기’ 단계란 인간이 언어와의 결합을 통해서 주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이제 ‘상징계’로 나아간다. 자아에 대한 주체성 확립은 언어 없이는 불가능하며 무의식조차 언어와의 만남을 통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체계이며, 이제 언어가 주체성을 구성하며 인간은 그 언어의 구조적 과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 그리고 상징 속으로 들어가면서 완전함에 대한 욕구와 언어를 통한 기대와 좌절 사이에는 거대한 틈이 생겨나며 이 틈 속에서 욕망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것이 소위 ‘상징계’이다. 바로 아버지라 불리는 질서의 출현이 이 단계를 특징짓는다.

‘실당기기’란 프로이트가 자신의 손자가 실타래를 멀리 던졌다가 거기에 붙어있는 실을 다시 끌어당기는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보았으며 이때 실타래는 어머니를 상징하고 아이는 이를 지배하려는 것이다. 라캉은 이를 다시 해석하여 어린아이가 언어와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해하였다.

세 번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이는 성적 차이를 깨닫는 것이다. 고전적 구조주의의 방식으로 라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언어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무의식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구성된다. 라캉이 구조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언어를 통하여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전화하는 행동은 어린이가 기표에서 기표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욕망 자체는 고정된 기의를 찾고자 하지만 기의는 영원히 다른 기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욕망이란 것은 충족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추구가 된다. 어린아이는 이제 어머니라는 접근이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욕망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러한 포기는 아이로 하여금 아버지로 표상되는 질서에 순응하도록 강요됨을 의미한다. 어린아이는 충만한 상상계로부터 추방되어서 상징계라 불리는 공허한 언어의 세계로 나오게 되고, 거울의 은유적 세계는 언어의 환유적 세계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본질적인 자아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란 우리가 의지하여 살아가는 허구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언어가 주체성을 구성할 뿐 아니라, 우리는 또 그 언어의 구조적 과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라캉은 무의식과 주체 발달을 언어와의 조우 속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늘 변화 속에서 욕망의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 확정되고 고정된 순간을 거부하는 것으로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서 라캉 역시 초기 구조주의의 텍스트 내의 분석보다는 주체와 욕망이라는 심리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초기구조주의와는 다소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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