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2. 문화의 양상

1) 문화와 자연

문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대비되는 것, 문화와 유사한 것, 문화와 연관된 것 등을 찾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은 접근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문화’를 손쉽게 이해하는 일차적인 방법은 ‘자연’에 대비시켜보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인 데 반해 문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서구에서는 매우 오래 된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질서(logos)에 따르는 절대적 가치로서의 규범, 즉 자연도 가치와 무관하지 않고 이에 따라 문화도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질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데 반하여, 자연(physis)과 규범(nomos)을 구분하면서 법칙적이고 절대적인 자연에 대해서 인위적이고 상대적인 규범을 주장한 소피스트들은 모든 문화적인 것은 철저하게 인간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본다. 가령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물질적인 필요 때문에 자신의 힘과 신의 도움으로 고안해 낸 것이 문화라고 함으로써 문화는 ‘자연적인 것에 대한 인간적인 보충’이라는 사상을 전개하였다.

사실 인간은 환경에 의존하는 자연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치를 창조하는 문화적 존재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인간이 신체적 생명을 갖는 한 인간은 자연적 존재를 벗어날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문화적 세계에 필연적으로 속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 특정한 문화에 의해 양육되는 동시에 다시 그 문화를 창조해 갈 운명을 지닌다. 인간은 동물적인 삶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인간적인 것으로 고양시켜 왔다. 특히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인간과 대립해 있는 외적 자연의 직접적 지배로부터 탈피하여 오히려 자연을 변화시키고 관리하려고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신체적으로 약하고 결핍된 동물이기에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으로는 생존해 나갈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내야만 하며,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문화를 건설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역사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는 과정이며, 비자연적인 것, 즉 문화를 건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문화화(문명화)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연 상태, 동물과 야만의 상태로부터 탈피해 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자연 자체는 늘 인간에게 문화를 강요하기에 문화 창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자연(nature)의 개념이 일차적으로는 외적, 물질적 자연을 뜻하지만, 이차적으로는 인간 자신의 내적 자연, 즉 자신의 동물적 자연(본성)을 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도 일차적으로는 본능, 욕구, 습성 등 동물적인 특정을 갖는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문화화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도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야만적 동물성을 극복하여 인간다운 인간으로 고양하는 내적 도야의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순서상으로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생존적 차원에서의 ‘제작 행위’(techne)를 통해 이룩되는 물질적 문화가 일차적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정신적 표현 행위로서의 ‘제작 행위’(poiesis)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신적 문화, 즉 예술, 종교, 학문 등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실천 행위’(praxis)를 통해 만들어지는 규범적 문화, 즉 제도나 도덕, 관습 등이 더욱 중요한 문화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지만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의 필요와 욕구로부터 출발한 것이고, 인간이 자신을 양육, 단련시키고 ,마침내는 인간다운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기본 사상은 ‘도구를 제작하는 문화’를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고유한 작품으로서의 문화는 자연성을 탈피한 인간만의 정신적 문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국가, 도덕, 종교, 예술, 학문 등의 문화를 참된 문화로 여기는 ‘정신주의’ 전통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근세 이후의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삶의 개선에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고,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었던 문화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경제활동이나 신체적 노동을 통한 생산행위로 이해됨으로써 문화 속에는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이념이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물질적 욕구는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제만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인간의 삶을 더욱 활기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식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인간다운 삶은 물질을 근거로 한 문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며, ‘제작하는 인간’이 인간의 본성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문화의 발달은 모든 문화 혹은 문명에 대해서 적대적인 사상도 낳게 된다.

문화 비판은 흔히 물질적 과학기술 문명의 비판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루소가 잘 보여주듯이 인간 실천에 의해 제도화된 모든 문화가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화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특징짓는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동시에 문화는 인간성의 억압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도 ‘문명’에 대해 비판을 가하였지만, 루소는 이것을 넘어 근대 시민 문화 자체를 자연의 이름으로 비판한다. 그에게서 ‘문화’ 혹은 문화적 상태(etat civil)는 오히려 자연상태(etat naturel)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한다. 인간의 ‘자연성’은 문화화 과정에서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성’을 전개시키는데 불가결한 요소이면서 또 문화화 과정의 시금석이다. 루소는 인간의 문화가 무한히 진보하리라는 낙관주의적 계몽주의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루소에게 있어서 인간의 역사는 초기의 이상적인 자연상태로부터 타락해 가는 ‘원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주의는 일종의 원초적,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는 것이며, 이것이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 혹은 문화와 문명을 구분하는 독일의 사회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오늘날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분화되고 각각 상대적 독립성을 얻음으로써 문화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 만들었으면서도 문화를 변화시키거나 제어할 수도 없고 문화에 대해서 저항할 수도 없고 더구나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삶의 양식에서 나온 바로 그 문화가 다시 인간 삶의 양식을 바꾸는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문화를 본능의 해방이 아닌 억압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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