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Politics

Trump goes to Arizona… Again

8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리조나로 떠났다. 그는 지난번에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가 많이 불안할 때, 대통령 지지율 하락할 때, 마치 선거 운동 하는 것처럼 타 주로 떠나 그곳의 공화당 주민들의 박수 세례를 받은 것을 크게 언론에 부각시키곤 했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말썽도 많았다.

예를들면, 테네시 보이스카웃 세계 잼보리 대회에서도 보이스카웃 전 미국 디렉터가 대통령을 찬사하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한 것처럼 자신의 트위터에 실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버지니아 주 샬롯스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들, 나찌주의자들, KKK 단들의 시위와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와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 대해 양쪽다 책임이 있음을 공언하므로서 미국 국민들에게 반감을 사고 있다. 그후, 스티브 배논이 대통령 정책 수석 자리에서 지난 주에 해직되기도 했다.

존 메케인을 비롯한 아리조나 주 상.하원 의원들은 아리조나 주 수도인 피닉스에서 이곳 동부 시간 기준 10시에 피닉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트럼프 연설에 참석치 않겠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 2015년 자신의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서 멕시코에서 온 미서류 이민자들을 향해 “마약,범죄자들, 또는 강간범” 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으며, 이번 방문도 멕시코 장벽과 관련하여 방문한 것으로 보고 있어 이민관련 단체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물론 트럼프는 지난 주 백악관에서 마리코파 카운티 보안관이었던 Joe Arpaio(판사의 명령을 어긴 채, 미서류 이민자들을 감금또는 단지 미 서류 이민자일 것으로 의심 받은 자들을 강제 구인 구금했던 보안관으로서, 지난 번 선거에서 져서 보안관 자리를 놓쳤다. 이 일로 오는 10월 5일 형 선고 예정)를 사면할 것을 언뜻 내 비친 적이 있어서 아리조나 주민들 중 이민자들은 불안함과 함께 이는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게 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트럼프가 가는 곳마다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번 트럼프 피닉스 연설로 인해 피닉스 시는 가게와 백화점등이 일찍 문을 닫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컨벤션센터 안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고, 반 트럼프 지지자들은 컨벤션센터에 출입을 금지시킨 채, 밖에서 시위를 하는 것으로 트럼프 선거캠프가 결정했다고 한다.

아리조나는 8월 22일 기준 밖의 온도가 F 106 도다. C 41.1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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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Moon invite The Families of Sewol Ferry Victims at the Blu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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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oul: Prof. Kim, Kwangsik>
8월 16일,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유족 및 생존자 가족들을 청와대 영빈관에 초대해서 만났다. 문대통령은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정부는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를 늘 기억하고 있었고, 목포신항에서 선체 수색이 많이 진행됐는데도 아직 다섯 분의 소식이 없어 정부도 애가 탄다”며 “미수습자 수습이 끝나면 세월호 가족을 청와대로 모시려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수색작업 중 모시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 수습이 미흡했던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난 것인지, 정부는 사고 후 대응이 왜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것인지, 그 많은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청와대는 뭘 하고 있었는지, 너무나 당연한 진상 규명을 왜 그렇게 회피하고 외면한 것인지, 인양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지 국민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유가족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지도 못했고, 오히려 국민 편 가르기를 하면서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겼다”며 “정부는 당연한 책무인 진실규명마저 가로막고 회피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체 침몰을 눈앞에서 뻔히 지켜보면서도 선체 안 승객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대응에서도 무능하고 무책임했다”고 했다고 지적하였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는 “진상 규명과 관련해 강력한 법적 권한을 갖는 2기 특별조사위원회가 정부보다 효율적일 것”이라며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믿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에는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 피해 사건 등 사회적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전담할 특조위 구성을 골자로 하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계류 중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미수습자 5명의 수습이 끝날 때까지 수색 △세월호 선체 보전 및 교육관 활용 △세월호피해자지원특별법 개정안 조속 처리 △4·16 재단 설립 및 추모공원 건립 등을 요청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세월호 가족 대표로 단상에 선 전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3년 넘도록 함께 한 국민이 있어 이 자리가 가능할 수 있었기에 국민 여러분께 가장 큰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가 불법적으로 부당하게 자행한 수사 방해와 은폐 조작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강력한 법적 조사기구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며 “바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2기 재건이다. 최근 정부 차원의 조사기구를 논의하며 노력해온 취지와 힘을 온전히 2기 특조위에 집중시켜 독립적이고 강력한 법적 권한을 가진 국가 차원의 조사기구로서 2기 특조위가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을 대표한 박혜영 씨와 정부자 씨는 문 대통령에게 세월호 약전(略傳)과 액자·보석함을 선물했다. 그 위에는 “세월호 아이들이 대통령 내외분을 만납니다. 무지개 나비에 평화와 약속을 노래하는 아이들의 조화로움을 담았습니다. 잊지 않고 늘 기억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엄마 아빠-”라고 적힌 엽서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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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One Crazy Ride : Bannon F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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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트럼프는 그의 전략 수석으로 지난해 부터 트럼프의 선거를 도와 승리로 이끈 Stephen Bannon 전략수석을  해임했다.  금요일 오후에 있었던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세라 허커비 샌더스가 백악관 수석 보좌관인 John F. Kelly (전 해병대 4성장군 출신)와 Stephen Bannon이 오늘 상의한 결과 오늘이 그의 백악관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데 동의했다고 세라 대변인이 밝혔다.

스티브 배넌은 Breitbart News(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의 대표를 맡고 있었으나 백악관의 전략 수석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이제 다시 일반인의 신분으로 되 돌아간 배논은 백악관 밖에서 트럼프를 위해 일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스티브 배넌이 백악관에서 물러남으로서 배논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26세의 Julia Hahn 을 비롯한 그와 관련된 직원들도 모두 직업을 잃게되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버지니아주 샬롯스빌 시티에서 있었던 사건 이후, 미국민들이 트럼프의 양쪽 다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한 것에 대해 분개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상공인 자문회의 단: ( 거대 기업주들이 대통령의 상공인 자문위원을 하고 있음) 에서 탈퇴하고 또 예술분과 자문위원단에서도 위원들이 탈퇴의사를 밝힌 후 트럼프 곁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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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ing News)Possible Terrorists in Van Plow Through Tourists in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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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오전 11시경,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다운타운 지역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지역으로 알려진 Tallers Street, Las Ramblas 지역에 하얀색 밴이 인도로 돌진해서 적어도 13명이 사망하고, 수 십명이 중경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Catalan 응급 대책본부는 사람들이 Placa Catalunya 주위로 접근을 하지 말것을 경고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밝혔다.

경찰은 이 사건을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단정짓고 현재 사건수습과 사건 진상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2명의 무장한 용의자가 지금 현재 근처 식당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ABC 뉴스는 밝혔다. 그 차량을 운전했던 운전사는 차를 버리고 도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경찰은 그 지역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스페인 주재 미국 대사관은 현재 스페인에 있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특히 바르셀로나 지역에 있는 미국인들에게 가족이나 친구, 친척, 또는 SNS 에 본인들의 안전을 알려달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2016년 이후, 유럽 각 나라(니스, 베를린, 런던, 스톡홀름) 에서 자동차를 무기로 사용하여 선량한 시민들과 여행객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팍스 뉴스는 덧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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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and White Supremacists <전종준 워싱턴 로펌 대표 칼럼>

트럼프와 백인 우월주의

미국의 남북 전쟁은 아직도 휴전상태인가? 지난 주 UVA 대학 근처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대규모 폭력시위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여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버지니아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건의 발단은 남북 전쟁 당시 남부의 장군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를 막고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대해서는 아픈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산교육의 증거로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인종 차별적 상처를 자극하는 상징물인지 여부를 판단해서 결정하여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구호와 ‘네오 나치’의 ‘피와 영토’라는 나치 슬로건도 외치며 남부 연합기와 나치기를 함께 흔들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남부의 연합기를 높이 든 것은 노예 해방을 아직도 반대하며 인종차별을 찬성하는 깃발을 든 것이며, 나치기를 함께 든 것은 미국 성조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알트 라이트 (Alt-Right)” 즉 ‘대체 보수’로 자칭하였다. 배려와 나눔이 없는 ‘대체 보수’의 탄생은 ‘집단 이기’의 탄생을 뜻한다. 따라서 나는 이들을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부르기 보다는 ‘집단 이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인 즉, 집단 이기주의자들은 백인이나 흑인 혹은 동양인등의 인종을 이용하는 ‘이기주의’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대체 보수를 옹호하는 흑인 대변인이 있는 것을 보면 인종보다는 ‘자기 이기’ 그리고 ‘집단 이기’가 더 적절한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대체 보수의 탄생은 ‘미 합중국 (United States)’ 이전으로 후퇴시켜 ‘미국판 38선’으로 갈라진 ‘분단의 미국(Divided States)’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묻건대, 대체 보수의 탄생은 과연 미국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일부 집단 이기주의자를 위한 것인가? 이제 우리는 지도자의 능력을 실험해 볼 수 있으며 과연 트럼프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백인 우월주의자’의 폭력 시위에 대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비난을 피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반응적 묵인’이 또 다른 인종 갈등의 원인 제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에서 ‘모든 미국인 우선’이란 표현을 썻다. 그러면, 과연 “모든 미국인에는 흑인, 동양인, 그리고 한국인도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말은 그럴 듯 한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이민 정책만 보더라도 모든 미국인 보다는 백인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음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취업이민에서 영어실력을 반영하여 백인인 영국과 호주인들이 유리해 질 것이다. 더우기 FTA 협상 후 호주에게는 10,500개의 E-3 비자를 주었으나,한국과 FTA 체결 후에는 아무런 비자 혜택도 없었다. 이번 트럼프와 재협상시 한국인 전용비자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인종 차별적 대우임을 제기하여야 마땅하다.

동과 서, 너무도 먼 미국과 한국은 문화와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역사를 나누고 있다. 미국은 4년간의 동족간의 전쟁인 남북 전쟁을 치렀고, 90년 뒤에 한국은 3년 간의 동족간 남과 북이 싸우는 6.25전쟁을 치룬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는 ‘제 2의 6.25전쟁’을 걱정하는 이 시점에, 미국에서도 ‘제 2의 남북전쟁’에 대한 마지막의 시작을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가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와 분리되지 않는 한 트럼프의 몰락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면 미국의 건국 아버지가 설립한 미국의 헌법 정신과 가치는 집단 이기주의와 싸운 역사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을 믿는다. 그리고 말없는 대다수의 미국민을 믿는다.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는 법치주의와 이타주의가 승리한 미국을 말이다. 가치있는 판단이 민중을 설득하여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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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etive Graffiti on the Lincoln Memorial

8월 16일, 워싱턴에 있는 링컨 메모리얼 기념관이 또 수난을 당했다.  WUSA 에 따르면, 링컨메모리얼 기념관의 기둥에 빨간 색으로 F*** Law 라고 욕설이 쓰여져 있었다고 국립 공원 관리서비스의 대변인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 링컨 메모리얼은 적어도 100년은 된 기념관이며, 이는 아브라함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역사적인 장소이며, 미국인에게, 노예 해방을 선언한 대통령으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링컨 메모리얼 기념관 뿐만 아니라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글씨가 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NBC는 말했다.

지난 2월에도 링컨 메모리얼 기념관과 제 2차 대전 기념비, 워싱턴 마뉴멘트도 검정색으로 낙서를 해 놓아서 그때도 국립 공원 관리 서비스가 깨끗하게 지운 적이 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링컨 메모리얼 기념관이 수난을 받는 것은 아직도 미국이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최근 버지니아주 샬롯스빌 시에서 발생한 백인 우월주의자, 나찌주의자, KKK 들의 로버트 리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시위대와 이와 뜻을 달리하는 자유, 평등, 평화를 외치는 시위대들 간에 생긴 1 사람이 사망하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을 유추해본다.

표면위로 올라온 지난 200여년 동안에 쌓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어쩌면 그들이 설 곳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껴 그들의 힘을 내 세워, 다시 그들끼리 연합하여 세를 불리려는 의도가 보인다. 예를 들면, 지금 그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지원하는 지지 세력이 되어 미국을 다시한번 흔들어 볼려고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본다.

이번 트럼프의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며 SNS 의 네티즌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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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h in Charlottesville : One Dead and 19 Injured over Statue of Robert E. Lee

 
Photo credit to AP/USA Today
 
8월 12일, 토요일 오전 버지니아 주립대학교가 위치한 샬롯스빌에서 지난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백인 우월주의자들( 나찌주의자, 반 유대주의자, KKK)이 남북전쟁에서 남부군의 장군이었던 Lee 장군 동상 철거에 대항하여 전국으로 부터 이 시위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Emancipation Park 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에 반해 샬롯스빌 주민들과 극으로 치닫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에 반대하는 일반 시민들이 같이 맞대응 시위를 벌였다.
시위 중에 자동차 한 대가 시위 대열에 합류하여 반 백인 우월주의자 시위대 사람들을 자동차로 치고 달아났다가 사고 현장으로 부터 1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잡혔다. 이 사고로 32세 여성,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5명은 생명이 위험하다고 한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이들 시위를 보호하기 위해 공중에서 헬기로 지원하던중 헬기가 추락하여 두 명의 주 경찰이 사망했다.
매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버지니아 주 긴급상황” 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 샬롯스빌에 온 모든 백인 우월주의자들, 나찌주의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 버지니아 주는 너희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즉각적인 반응으로 트윗을 날리던 보통때와는 달리 오늘 오전은 침묵하다가 결국 오후 1시가 지나서야  트윗으로 멘트를 날렸다. “우리 모두 서로 단합해서 적대감을 해소해야 한다. 혐오감으로 인한 어떤 폭력도 미국 땅에 있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라고만 트윗을 날리자 SNS 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란 분명한 명시조항이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자의 한 사람인 KKK 대표는 “당신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모두 백인들이 당신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 점을 명심하라!” 고 트럼프의 댓글에 답글을 달기도 했다.
승용차로 시위자들을 공격한 범인은 James Alex Fields 로 오하이오주에서 온 20세 백인 청년으로 알려졌으며, 체포된 후 보석금 없는 구금에 처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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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1<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정치가 엄격하면 백성들이 교활해진다” 고 하여 엄격한 정치체제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예법의 금(禁)령(令)이나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금령이나 제도를 어기거나 교활하게 속여서 피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즉 지배 계층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교활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이용했고, 사람들은 지배계층의 수법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계책을 마련하였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노자 58장)

이와같이 지배계층이나 피지배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인위적인 조작’이 횡행하였다. 이러한 조작은 거짓을 낳고, 거짓은 사람들의 본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국가는 사람들의 교활한 방법을 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단속하기 위해 형벌과 명분을 내세워 상과 벌을 밝혀서 간사한 것과 거짓된 것을 검속하는데 세밀하고 자세하여 백성들의 마음속에 다투는 마음이 생기며 이러한 현상을 ‘백성들이 잗달다’라고 했다.

통치자의 임무는 도를 본받아 지배욕과 탐욕을 없애고 백성들을 보호하여,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노자34장)

그런데 통치자가 도를 본받지 않고 탐욕에 휩싸일 때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어 내게 된다. 사회제도가 인위적으로 세분화될 수록 도에서 멀어지고,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은 본연의 순박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부터 점점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부드럽고 유연한 본래의 마음이 가혹한 정치체제와 사회구조에 적응해 가면서 경직되어 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기적인 아집과 집착으로 채워지면서 경직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나 사태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없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나라 초기 예법의 본래 목적은 백성들의 행동을 규제하여 좋은 성품을 키우고, 법령을 정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본래의 바람직한 효용성에서 벗어난 예법은 자율적인 행위 원칙이 아니라 강요로 주어진 강압적인 구속력을 강조하여 오히려 정치가 불안정해지고, 백성들의 도덕성도 상실되어 갔다. 주나라 말기에 세분화된 예와 법은 겉보기에 공익을 위하는 듯 거창한 구호를 내세워 강행했지만 실상은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강화하는 폭정의 수단이었다. 부당한 예법으로 인해 사회의 총체적 위기 현상의 폐단에 대해 노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예(禮)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날로 엷어지는 (줄어드는 ) 것으로 혼란의 원인이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노자38장)

예(禮)는사람을 구속하는 인위적이고 번거로운 것으로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의 이용물이 되므로 허위로 가득 찬 사람들은 늘어나고, 충신은 점점 줄어들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노자는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통치자가 인위적(유위)이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 고 했다. 백성들에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인위적인 통치 방식은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통치에 효력이 없고, 어려움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인위를 지양하고 무위함으로서 백성들이 자생, 자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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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Lee-Sang’s World of Music: View, Smell, and Sound of the Korean Peninsula Composed into Music – Thoughts

<Japan : Prof. Lee,Sunhoon>

윤이상 (尹伊桑, Isang Yun, 1917년 9월 17일 – 1995년 11월 3일) 은 일제 식민시대에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군 충무면에서 짧은 유년기를 보낸 후, 통영면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현대음악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기타리스트, 첼리스트로서 서독과 통일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본관은 칠원이며, 동백림사건 이후에는 서독에 귀화하여, 한국 땅을 밟지 못하였지만, 북한은 여러 번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살부터 3년간은 한학을 배우기 위해 서당에 다녔고, 8살에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3살에 바이올린을 배우고 직접 선율을 작곡하기도 했으며, 마을 영화관에서 자작의 선율이 연주되는 것을 들으며 작곡가가 되기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한 윤이상 작곡가의 아버지로 인해, 통영협성상업학교에 진학했지만, 2년후에 경성에서 군악대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화성법을 배웠으며, 도서관의 악보를 보고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상업학교에 진학하기는 했지만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워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1935년에 일본 오오사카시의 상업학교에 입학하는 한편, 오오사카음악학원에서 첼로, 작곡, 음악원리를 배웠습니다. 1937년에 통영으로 돌아와 화양학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최초의 동요집 ‘목동의 노래’를 썼습니다. 1939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동경의 이께우치 도모지로에게서 대위법과 작곡을 배웠고, 1941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한반도로 돌아와 있다가, 1944년에 항일독립운동으로 2개월간 투옥되었고, 결핵으로 쓰러져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중에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가 유치환, 김춘수, 정윤주 등 통영의 예술인들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고 윤이상 본인은 음악부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통영고등학교를 비롯한 거의 모든 학교의 교가를 작곡했으며, 고려대학교의 교가도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음악활동 이외에도, 일본에서 부산으로 몰려드는 전쟁고아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부산시립고아원의 소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1948년에 통영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다가 부산사범학교로 옮겨 음악을 가르치며 작곡을 했습니다. 이듬해 1950년 1월 30일에 같은 학교에 국어교사를 하고 있던 이수자와 결혼했고, 같은 해 8월에 첫딸 정이 태어났습니다. 6.25전쟁 중에는 부산의 전시작곡가협회에서 활동하고 부산고등학교에서 일하다가 1953년 휴전되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대학교 예술학부와 덕성여대 등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치고 작품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했습니다. 1954년 ‘전시작곡가협회’가 서울에서 ‘한국작곡가협회’로 새로 결성되며 사무국장으로 활동했습니다. 같은 해에 [악계구상의 제 문제]를 저술했고, 1956년 4월 [현악4중주1번]과 [피아노 트리오]로 ‘제5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당시 대한민국에서 습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20세기 작곡기법과 음악이론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1956년에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유학하던 중에, 20세기 전반으로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현대음악계를 견인했던 작곡가인 올리비에 메시앙 (Olivier-Eugène-Prosper-Charles Messiaen)을 만나게 되어, “프랑스는 현대음악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서독 쪽의 환경이 좋은 편이니, 다름슈타트 강습회에 참가하면 좋을 것이다” 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서독으로 옮겨 1957년에 베를린예술대학에 입학하였고 당시에 윤이상의 나이는 이미 40세에 달해 있었습니다.

서독에서 그의 스승으로는 라인하르트 슈바르츠쉴링, 보리스 블라허, 요세프 루퍼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음악학자인 요세프 루퍼로부터 십이음기법을 엄격히 전수받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작품목록으로부터 위에서 소개한 동요집과 같은 종류의 작품들을 모두 삭제하고, 대학입학 후의 작품만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윤이상의 유럽 데뷔작으로는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 ‘현악4중주곡 제3번’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은 프란시스 트래비스(Francis Travis)의 지휘로 레코드로서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프란시스 트래비스는 이후에도 윤이상의 음악활동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윤이상은 동아시아 음악의 요소를 서양 음악에 접목시킨 것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에는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 서베를린에 정착하였고, 1965년에 초연한 불교주제에 의한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 (1964)’와 1966년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초연한 관현악곡 ‘예약’은 그를 국제적인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4년 4월 처음으로 오랜 친우인 최상학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였고, 김일성과도 친교를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한 민족의 이상을 동물 형상으로 표현한 사신도를 통한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수차례 방북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윤이상의 방북행적을 포착하여 내사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동백림사건입니다.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중앙정보부를 이용하여 행해진 대표적인 간첩조작사건으로 발전되었습니다.

1967년 6월 17일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는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서울로 끌려와서, 당시의 유럽에 있던 유학생들과 함께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간첩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 후에 이골 스트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주도한 한국정부에 대한 윤이상의 청원운동에는 루이지 다라피코라, 한스 베르나 헨쩨, 하인쯔 호리가, 마우리시오 가겔, 요세프 카일베르트, 오토 크렌페라, 리게티 제르쥬, 아르네 메르네스, 페아 노아고, 칼하이즈 슈토크하우젠 등 약 200명의 예술가가 서명했습니다. 1967년 12월 13일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재심에서 감형되었고 1969년 2월 25일 대통령특사로 석방되었습니다.

구속기간 중이던 1969년 자살을 시도했었고, 이를 계기로 음악작업이 허용되어, 오페라 ‘나비의 꿈’을 썼으며, 완성된 작품은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난 부인을 통해서 서독에 전달되어 1969년 2월 23일 뉘른베르크에서 ‘나비의 미망인’ 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며 31회의 커튼콜을 받는 등의 커다란 호평을 받았습니다. 옥중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도 ‘율’과 ‘영상’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에 서독으로 추방되었으며, 한국국내에서는 윤이상의 음악은 연주가 금지되었습니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는 하노버음악대학에서 재직하였고, 1971년에 서독에 귀화했습니다. 이 후에, 조국통일범민주연합의 유럽본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다음 해인 1981년에 교향곡 ‘광주여 영원히!’를 발표했습니다. 작품활동을 계속하며, 틈틈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1982년부터는 매년 북한에서 윤이상음악제가 개최되었고, 1988년 일본에서 남북 합동 음악회를 열 것을 남북 정부에 건의하였고, 이것이 이루어져 1990년 10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대표 17명이 평양에 초청받아 범민족 통일음악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윤이상의 음악세계는 ‘’상처받은 용’ 등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의 민속음악에 기초하였고, 클러스터 기법 등 당대의 최첨단 작곡기법을 응용하여 서양 악기와 음악체계로 동양적인 음색과 미학을 표현할 수 있게 고안한 주요음 (Hauptton) 기법과 주요음향 (Hauptklang) 기법이라는 작곡기법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윤이상이 고안하여 도입한 주요음 기법과 주요음향 기법은 12개의 음의 어디엔가에 중력을 주어서, 하나의 선율선에 개성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윤이상의 음악은 1970년대에 전위예술이 정체기에 접어들며, 선율의 회복이 강렬하게 요구되면서, 당대의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예술대학교수로서 재직하였고, 작곡과 교수로서 호소까와 도시오 (細川俊夫), 시마쯔 타께히또 (嶋津武仁), 후루카와 키요시 (古河聖), 미와 마사히로 (三輪眞弘), 타데우유 뷔에레쯔키, 베른프리트 G 쁘레붸 등의 제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아시안인의 작곡교수로서 유럽에서 제자가 있었던 것은 독일전체에서는 윤이상이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인 제자로서는 강석희가 알려져 있습니다.
말년에는, 쁘폰짜임, 슈트트가르트, 브레멘 등에서 작곡강습회를 열었고, 제자들의 요청으로 제자들의 제자의 육성에도 열의를 다했습니다. 쁘폰짜임 강습회에서는 이규본이 참가했으며, 이규본은 수년후에 일본의 최고권위의 작곡상인 이리노 상 (入野賞)를 수상하기도 합니다.

1994년 동경에서 모든 정치적 활동의 중단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에 서울, 부산, 광주 등에서 윤이상음악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윤이상은 참가하려 하였으나 건강의 악화로 입원하게 되었고, 당시에 그의 소지품에는 안숙선의 남도민요 레코드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에는 최후의 오케스트라작품 ‘화염에 휩싸인 천사(1994)’가 동경에서 연주되었지만, 이미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연주회에는 참가하지 못했고, 1995년 11월 3일 4시 20분 독일 베를린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서거하였습니다.

출판작품은 모든 곡이 Bote & Bock로부터 발매되었고, 독일에 체류했던 기간의 모든 윤이상의 작품은 출판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에, Bote & Bock가 파산하여 Boosey & Hawkes에 흡수합병되었고, 이와 동시에 저작권사용료 등도 급등했다는 것이 음악계의 소식입니다. 일본에서는 생전에 비해서는 최근의 북한문제와 혐한분위기의 영향으로 2010년 이후에는 윤이상의 오케스트라 작품이 정기연주회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대폭 줄어든 실정입니다. 필자가 현재 살고 있는 나고야의 아이찌 에술문화센터에는, 윤이상의 출판악보의 상당수가 소장되어 있으며, 전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인도 열람은 가능한 상태입니다.

필자는 음악전문가도 아니며, 삶에 있어서도 위대하고도 처절했던 윤이상을 평가하거나 추론할 수 있는 자격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40세에 이르러 독일 땅을 밟고, 그 이후에 40여년을 이국땅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고국 땅에서 느꼈었던 모습, 냄새, 소리를 모두 음악에 담아 스스로를 찾고, 또 그것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려 했던 윤이상의 모든 일들은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인 동시에 소중한 자산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한국인들이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에서 만들어졌던 모든 사상적인 갈등을 초월하여 윤이상의 음악세계로 표현된 한반도의 도도한 기상과 아울러 어제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이를 기본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자부심과 희망을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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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vious: Cheon Doo-Hwan’s Autobiography Banned from Sale

사진: 윤태호 기자

8월 4일, 광주 시민 대 학살 사건(1980년 5월 18일- 5월 27일)으로 불리우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이 주동했다고 당당하게 자신의 자서전에 쓴 ‘전두환회고록'(지난 4월3일 출간, 전두환의 아들인 전재국이 대표로 있는 자작나무 숲에서 출판, 발행)이 광주 지방법원 민사 21부 (부장판사 박길성)에서 “광주 민주화운동 등 역사를  왜곡했다”며 5.18기념재단과 5월 단체( 민주유공자유족회, 구속부상자회, 부상자회)와 유가족이 제기한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하여 인용 결정에 따라 판매 금지가 내려졌다.

5.18일 그때, 편집인은 광주에 있었다. 직접 공수부대원들의 불심검문에 걸려 학생증 대신 학원증을 보여주며 학원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하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었다. 결국 30분이면 집에 올 수 있는 거리를 골목을 돌고 돌아 공수부대를 피해 2시간이란 길고 긴 시간을 친구와 함께 숨고 숨어서 집에 돌아와야만 했던 그 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유도 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물론 총상을 당해 불구의 몸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광주 시민이라는 이유였다. 최근 5.18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그 많은 시민들에 대해서 발포명령을 내린 전두환 전 대통령, 그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신군부의 막강 실세로 등장했던 그는 5.17일 비상계엄령을 내린후, 군사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광주 시민들과 전남도민들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퇴진과 당장 계엄령을 철폐하고 민주정부 수립을 조속히 추진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 혹은 광주민중항쟁(光州民衆抗爭)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대한민국 내 언론 통제로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 참상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렸다.”(위키 피디 참조)

이렇듯 신군부 세력은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소위 집권해서 권력의 최고 정상인 대통령이 되기위해 5.17비상 계엄령으로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시민들은 목소리를 더 높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도청앞으로 행군하여 나아갔다. 그후, 집을 떠난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때까지 희생자 가족들은 지난 정부에서 푸대접과 함께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직장을 잡지 못하고 실업자로, 또는 심한 정신적 고문으로 인한 정신 이상자로, 또는 목발에 의지하며 어두운   골목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젊은 청년들이 광주의 혼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1997년 ‘5.18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1997년부터 정부 주관 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해왔다. 그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을 금지곡으로 지정하며 광주의 혼을 지우기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기도 했다.

“2011년 5월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정식으로 등재되었다.”(위키 피디 참조)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폭동이요, 반란이었으며, 심지어는 북한군 개입이라는 망발과 함께 계엄군이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허위로 거짓말을했다. 물론 헬기 사격도 하지 않았다고 부정을 했다. 그는 혼돈의 시대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줄곧 ‘광주 사태’ 또는 ‘5.18 사태’로 표현하며 민주화운동의 개념과 의의를 삭제하고 마치 사상적으로 불손한 사람들이 일으킨 사건처럼, ‘폭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국민의 몸부림의 의미를 훼손했다.

총 2000쪽 분량의 거짓선전같은 책을 펴낸 전두환은 수 많은 무고한 광주 시민을 학살한 주범이었다. 그런데도 반성을 하기는 커녕, “광주는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고 주장해 오기도 했으며, 그의 부인 이순자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우리는 5.18의 피해자” 라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쓰기도 했다.

<Seoul: Prof.Kim, Kwangsik 님의 기사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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