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문화의 현상

문화의 속성

  1. 공유성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어느 사람도 꼭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 개개인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취향 또는 버릇이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구체적인 행위에 있어서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행동양식에서 다른 집단의 그것과 구별할 만한 공통적인 경향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 개개인의 독톡한 취향이나 버릇이 아닐 수 있는 이런 공통적인 경향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각자의 개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우리가 실제로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우리가 소속하고 있는 집단의 행동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는 집단 구성원들에 의해서 공유된(shared)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의 이런 속성은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사회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한 공동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 우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을 통해서 특정의 상황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의 여러 문화 요소가 지닌 이러한 상관적 관련에 어떤 모순이 생기고 이것이 확대되면, 공유성이 무너지면서 변화하게 되며 다른 통합 형태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사회의식과 민족성 혹은 국민성도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는 변모한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는 근대의 추동력이 점점 가속화되고 급진화되고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급진화된 근대성은 근대 초기에 형성되고 있던 많은 공동체들을 더욱 해체시켰다. 이리하여 근대 초기의 공유성은 노동시장의 개인화와, 시공간의 압축을 통한 사회적 공간의 개인화를 통해서 더욱 소멸되어간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그냥 폐쇄된 공간 속에서의 소외된 개인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공통적인 사회의식이나 국민적 정서 따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이 개인에게 어떤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의 확보를 위해서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혹은 문화의 공유성을 획득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이처럼 사회구성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사회적 혹은 문화적 공유성을 찾아 나서지만 문화의 담당자나 수용자에게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변하기 쉽게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라고 볼수 있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여러 문화 요소간에 변화의 차가 있을 때, 그 변화가 늦어지는 경우를 문화적 지체(cultural lag)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전파설은 이러한 문화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이론적 근거가 된다. 전파설의 입장에서 문화간의 교차결합(cross-links)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현대 문화의 특징이다. 사실 세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을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에서 볼 수 있고, 낯선 사상과 입장은 벽과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지구촌’이라는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좁고도 넓은’ 이 지구촌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을 가지게도 한다.

첫째, 세계는 점점 하나의 세계가 되고 있지만 문화에는 다양성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 도덕 규범, 건축 양식, 요리 방식은 여전히 다채롭고도 다양하다.

둘째, 교육과 정치, 경영 등에 문화적 차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무엇을 배우기만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고, 권력을 추구하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듯이 경제적 이윤 추구만이 기업 경영의 목적이 아니다. 이것은 특히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촌이라는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개방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종교적 신념, 도덕적 가치, 사회적 요구, 미래에 대한 결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 각각의 문화적 이질성에 대한 인정과 고유성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토대 위에서 비로소 문화의 생산적 활용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당위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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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인류학에서의 상징이론

문화에서의 부호와 상징의 의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인류학자들은 에반스-프리차드, 에드먼드 리치, 메리 더글라스, 그리고 빅토르 터너 등이 있다. 이들은 사회제도나 인간의 행위가 갖는 사회적 기능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것이 주는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고자하였다. 이들은 인간을 도구를 만들기도 하지만 의미도 만드는 존재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상징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체계를 상징 인류학자들은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인간의 중요한 표상으로서 이러한 상징의 이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인류학의 연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론이 되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개념이나 이념을 통해서 거론된 인간 삶의 표현이나 양식들이 특정한 형식의 문화라는 범주 속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다른 요소들과 구별되는 특징, 다시 말해서 문화라 칭할 수 있는 어떤 규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규범이란 문화의 어떤 속성으로서 인간이 제작한 표현 혹은 양식 속에서 체계, 상징, 기호 혹은 의미로 존재하는 관념적 질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빅토르 터너,Victor Witter Turner (May 28, 1920 – December 18, 1983)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실체로서의 상징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간다고 믿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상징들의 작용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이유는 이 상징들을 사회의 유지를 위한 메커니즘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징체계가 사회적 행위의 지침이 될 때는 항상 그 사회의 문화적 맥락의 범위 내에서 특정한 의미로서 기능하게 되며, 이것은 달리 말해서 이러한 상황이 어떤 상징이나 부호에 특정한 의미를 갖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상징이나 부호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지만, 다른 맥락에서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아버지(父 father)는 친족 구조 내에서는 ‘아버지’의 의미를 갖지만, 카톨릭 교회의 맥락에서는 ‘성부(聖父)’ 혹은 신부(神父)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편 매리 더글라스와 같은 인류학자들은 종교에 표현된 오염과 위생학에 관한 신념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징주의의 보편적 양식을 분석하려고 했다. 그녀는 청결과 오염에 대한 상징주의의 보편적 양식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러한 것은 인간의 신체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기초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청결과 오염에 관한 이와같이 공유된 상징은 종교적 관념으로 승화되면서 사회적 질서에 관한 신념을 상징화한다고 주장한다.

레슬리 화이트 역시 동물계에서 인간의 행위를 다른 동물부터 구별시켜주는 요소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인간은 상징(symboling)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임을 유의하면서 이것을 문화의 기초로 파악하였다. 화이트에 의하면 인간만이 의미들을 포착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화이트는 종교에서의 성수(聖水)를 그 예로 들고있다. 성수는 보통의 물과 구별될 만한 아무런 화학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수는 보통의 물이 아니다. 여기에 인위적으로 부여된 의미는 감각으로 포착될 수가 없지만, 그 가치를 믿는 수많은 교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고 강력한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 고유의 상징행위에 기초한 사물 및 사건들을 화이트는 상징물(symbolate)이라고 부르고, 이것이 곧 문화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는 이런 사물 및 사건들 자체가 바로 문화가 아니라 이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고려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화이트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한편 구드이나프에 따르면 문화란 사람의 행위나 구체적인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모델이요, 그 구체적인 현상으로부터 추출된 하나의 추상이다.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꼭 같이 행동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 각자가 외계의 사물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느끼고 어떠한 태도로 임하는지 또한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회마다 그 성원들의 행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기준 또는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구드이나프는 이처럼 한 사회의 성원들의 생활양식이 기초하고 있는 관념체계 또는 개념체계를 문화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구체적으로 관찰된 행동의 양식(patterns of behavior)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행위를 위한 또는 그런 행위를 규제하는 규칙의 체계(patterns for behavior)가 곧 문화이며 이것이 사람들을 이 규칙에 따라서 행동하게한다. 다시 말해서 문화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도구, 행동, 제도 등이 아니고, 특정 행동에로 사람을 이끌어 가는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준, 표준, 또는 규칙이다. 예컨대 한국사람들의 조상제사 및 조선자기는 그 자체가 문화가 아니고 그것을 가능케 한 관념체계 및 개념체계가 곧 한국문화라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상징론은 사람들이 그들의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과 이 같은 세계가 어떻게 문화적 상정들로 표현되어지는가에 관심을 갖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문화라고 불리는 어떤 상징과 의미의 체계를 공유한다고 하는 관점에 기초한다. 상징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체계가 사람들이 살고있는 실재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특정한 자료의 수집을 통하여 인간의 이해에 대한 보편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들이 상징 인류학자들에게 문화의 이해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 것은 확실하지만, 이들이 알고있는 지식의 대부분이 특정한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상상적인 내면의 세계를 통하여 습득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로 인해서 체계, 상징 기호, 의미로서의 규범이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자연물과 존재론적으로 대치한다는 점에서 상징론은 자연히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게 되고 이러한 관념론적 성격으로 인해서 상징론이 아직도 문화의 이해를 위한 확고한 이론적 기초[가] 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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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상징

1) 문화에서 상징의 의미

문화 상징론은 문화의 이념적 측면에 연구의 중심을 두는 문화이론이다. 따라서 인간을 일차적으로 생산적 종(種)으로 보는 문화유물론과 비교할 때 문화상징론은 인간을 상징화된 종(種)으로 간주함으로써 문화관념론적 견해를 보여준다. 이때 상징에 대한 정의는“문화는 의미의 과학이다”라는 명제가 잘 말해주듯이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의 체계로 볼 수 있다. 즉 상징은 여러 가지의 기록, 사건, 형태, 물체, 언어, 음성 등에 인간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예술, 의례, 종교, 친족관계, 의류, 행동, 공간 배치 등에 의해서 상징이나 부호를 교환한다. 그러므로 상징인류학자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자연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인간에 의해 수신된 부호나 메시지의 체계를 연구한다.
인간에 의해서 표현되는 가장 일차적인 상징 형태는 언어이다. 인간의 지식, 사상, 감정, 지각 등은 상징체계인 언어로 변환되어 단어로 표출되며, 표출된 단어들은 의미나 이름을 전달하고 물체와 사고를 분류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세상에 대한 지각이 언어를 통하여 개념화되고 상징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지식과 의사전달이 특정한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맥락의 범위 내에서 의미를 갖는 상징의 공유된 체계인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언어로서의 단어들은 사회의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적절한 상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의 연구나 언어의 발전과정에 관한 연구는 문화의 상징적 관점을 파악하는데 있어 그 기초적 단서를 제공한다. 언어학은 상징론 학자들에게 인간의 경험, 행동, 동기 그리고 신념 등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그러한 언어를 통하여 형식화하는 방법으로서의 언어나 그 언어체계를 제공해왔고 이같이 복합성을 가진 어떤 암호를 풀어내는 연구방법론상의 테크닉을 제공해왔다. 따라서 언어학은 문화상징론의 선구적 분야라고 할 수 있다.

2) 카시러의 상징이론

이들 인류학자들과 더불어 문화에 있어서 상징의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인 철학자로는 카시러, Ernst Alfred Cassirer(July 28, 1874 – April 13, 1945)가 있다. 신칸트학파에 속했던 카시러는 언어, 예술, 종교 등의 각 문화영역들을 ‘상징형식’으로 본다. 인간이 문화적 동물이라는 규정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인간이 상징(Symbol)을 사용하고, 이 상징을 통해 문화를 건설해왔다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자연적 세계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세계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또 타자와 의사 소통한다. 이러한 ‘상징적 형식’에는 언어 외에도 예술, 종교 학문 등이 있으며 이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정서, 원망 등을 밖으로 표현한다. 바로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영역들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상징적 형식들은 나름대로의 역사적, 심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게 마련인데, 문화학은 바로 이러한 각 문화 영역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고 체계화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카시러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 자연적으로 문화를 이해하고 살지만 자연적 문화 이해는 삶의 실천과 거리를 두지 않기에 대체로 비반성적이다. 가령 우리는 언어학과 문법을 모르고도 언어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이는 역시 객관성과 본성에 대한 통찰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인 문화 이해는 삶 자체로부터 거리를 둔 객관성이라는 입장에서 문화의 통일적 구조를 이해하고 그 항상적 인간 본성을 통찰하려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카시러는 문화에 관한 여러 학문들의 공통적 연구방법론을 수립하려고 시도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각 문화대상들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개별 학문들을 방법적으로 관통할 수 있는 통일적 원리를 찾아내는 것을 의미하며 그 통일적 원리가 카시러에게는 바로 ‘상징적 형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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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문화유물론

계몽주의와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서구에서는 문화에 대한 전통적 의미가 많이 변화 되었는데, 이것은 문화의 기원과 양태를 전통적 관점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하는 인류학, 특히 문화 인류학의 발전에서 기인한다. 문화 인류학에서는 미개와 문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이 문화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문화란 생물학적 유전 에서 보다는 주로 학습에 의해서 소속하고 있는 사회 혹은 집단으로부터 습득되고 전달받는 생활방식을 총칭한다. 타일러가 문화를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 내린 바 있는데 이것이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관점을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들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의, 식, 주로부터 종교, 예술, 철학, 과학, 등의 신념체계나 지식, 정치, 경제, 사회, 법과 관습, 그들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산물이 문화에 포함 됨으로써 이제 문화는 인간의 지성적, 실천적, 그리고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산물과 그 양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특히 인류학에서 광범위하게 수행된 민속학적 방법은 각자의 개별적인 문화들이 독자성과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각 민족들이 보여주는 다양하고도 독창적인 문화를 관찰하고 그 산물들을 분석함으로써 인류학자들은 그때까지 주장되어온 문화에 대한 보편적 개념들이 서구 일변도의 매우 관념적이고도 편협한 관점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대중문화는 문화가 물질적인가, 정신적인가 혹은 제작적인가, 행위적인가하는 구분 그리고 문화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의 근거나 그 타당성 마저 회의하게 하였다. 이런 새로운 상황을 배경으로 문화상대주의와 더불어 제기된 대표적인 문화이론이 문화유물론이다.

문화관념론이란 앞에서도 보았듯이 문화를 인간정신의 뛰어난 활동 및 그 산물로 보는 가장 전통적인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문화는 힘들고 천박한 물질적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수준 높은 엘리트들이 창조해낸 것이며, 이러한 문화 산물을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는 것도 선천적인 재능을 부여받은 소수의 엘리트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전통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근대 이후에도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관점의 일정한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오로지 관념론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문화와 문화 현상을 전체적으로 접근하기에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문화라는 것은 애초부터 인간 사회가 만든 역사적 소산으로서 역사상에 나타난 경제적, 사회적 구성체에 의해서 규정되는 생산물들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고대 노예제사회나 중세봉건사회에 있어서의 문화는 사회적 신분계층들간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반영한다. 이들 사회에서 지배층은 피지배층의 노동의 산물을 수탈하여 축적한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자기들만의 특수한 ‘고급문화’를 형성하여 즐길 수 있었는데 반해서, 피지배 대중들은 그들로부터 격리된 채 그들 나름대로의 공동체적인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문화를 인간 정신 활동의 산물로 보면서도 이 산물이 근원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다시 말해서 원초적인 물질적 조건이라는 자연 자체를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통해서 변형한 것에 불과하기에, 문화적 활동이나 산물을 사회적, 역사적 혹은 물질적 조건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문화유물론이다. 문화유물론은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August 18, 1927 – October 25, 2001)에 의해서 이론화된 이후 인류학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해리스는 한 사회 내에서 인간의 행위나 신념을 결정하는 데 ‘하부구조’라고 불리우는 생산과 재생산의 경제양식이 일차적 역할을 한다고 보고있다. 여기에서 문화유물론이 사회의 물질적 조건이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그 이론적 기초로 하고있음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해리스는 그의 이론을 마르크스의 이론과 여러 면에서 차별화시켰다. 예를 들어 사회구조를 토대와 상부구조로 단순히 구분한 마르크스와는 달리 해리스는 사회를 생산양식과 같은 인간의 경제적 재생산의 기초를 ‘하부구조’로. 사회제도와 같은 중간범주를 ‘구조’로, 그리고 종교나 이념과 같은 정신적인 측면을 ‘상부구조’로 나누어 설명한다. 나아가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인류역사의 모든 문화적 과정을 계급적 모순으로 인한 계급투쟁의 결과로 파악한데 비해서 해리스는 인류진화의 대부분은 비록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가치있고 유용한 문화적 요소들이 축적되어온 과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물질적 조건의 충족여부에 따라 인간의 의식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문화유물론의 주된 목적 중의 하나는 인간 집단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행위와 사고의 유사성과 상이성에 대한 인과론적 설명을 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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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상대주의와 윤리적 상대주의

이러한 문화상대주의가 윤리적 상대주의로 옮겨갈 때는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예를 들어 한 문화 내에서 자행되는 극심한 인종차별이나 남녀차별과 같은 비인간적인 관행이나 풍습에 대해서 외부인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적 상대주의를 일관되게 주장한다면, 타인에 대한 존경과 인정보다는 오히려 제3자적 관점에서 방관과 무관심을 초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 문화와 문화 사이의 교류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런 식의 극단적인 형태의 문화상대주의와 윤리상대주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다른 문화에 대한 인정과 존경 그리고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인정과 존경은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서 자신의 문화가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화 상대주의는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몇 가지의 장점을 제공해 준다.

첫째, 우리가 선호하고 우리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는 문화의 절대적 기준 그 자체를 회의하게 함으로써 열린 마음으로 다른 문화들을 볼 수 있게 한다.

둘째,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시대나 다른 사회의 문화양식이 우리 자신의 시대나 사회의 그것보다 더 열등하거나 더 우수하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다른 규범과 도덕적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존하고 합의하는 일, 다시 말하면 서로 관용을 베푸는 것이 문화 상대주의의 장점인 것이다.

어느 편도 결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자신의 견해를 상대방에게 억지로 강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간의 충돌이나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지배했을 때의 문화는 절대주의 문화관, 혹은 세계 시민적 보편적 문화관, 자기 민족 중심주의에 바탕하고 있었다.

개별문화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인정하고, 문화의 충돌이 아닌 문화공존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의 문화에 대한 가치 인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상대주의의 근본적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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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허스코비츠,Melville Jean Herskovits (September 10, 1895 – February 25, 1963)는 누구나 문화에 의해 매어 있다는 보아스,Franz Uri Boas (July 9, 1858 – December 21, 1942)의 이른바 ‘문화구속성’으로부터 ‘문화상대주의’를 이끌어 낸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은 각각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고, 경험은 각 개인이 성장과정을 통해서 받은 교육에 의해 해석”된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우리 자신의 경험은 우리가 그 속에서 자란 문화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판단은 문화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경우, 어느 누구도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간에 다른 문화에 대해서 판단할 자격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자신이 속한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에 대해서 어떠한 가치평가를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문화상대주의’의 이념적 토대이다.

이처럼 ‘자문화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좀더 적극적으로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과 평화를 주장하기 위해서 베네딕트나 특히 허스코비츠가 이런 견해들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문화에 대한 어떠한 객관적인 판단이나 분석을 거부하한다는 점에서 문화상대주의는 인류학 자체의 존립을 스스로 부정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문화 상대주의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문화는 그 개념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현상적 차원에서도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때와 장소 혹은 집단에 따라서 문화는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흔히 문화로 규정되는 한 집단 내에서의 신념체계, 예절, 규범, 관습 등이 다른 집단에서는 부재하거나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오직 자신들의 문화에 보편성을 부여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객관적인 잣대로 삼아 다른 문화 즉 비유럽적인 문화를 판단하고 비판하였다. 물론 유럽인들의 타문화와 문명에 대한 이러한 판단은 문화 제국주의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우월주의가 흔들리게 된 것은 문화 상대주의의 등장에 의해서이다.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반부터 인류학자들이 문화 상대주의 제창함으로써 각 민족의 문화적 규범 체계는 그 자체 타당성과 가치를 갖고 있음이 인정되었고 이로 인해 서구인들의 자문화 중심주의는 거부되었다. 이때부터 모든 가치, 지식, 진리는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문화적 배경 또는 체계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었다. 이처럼 문화 상대주의적 입장은 문화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특정 인간의 특수한 존재 양태이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일 수 없음을 전제한다. 개개의 문화는 각자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문화 이념 역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문화 현상에 있어 특정 문화의 우월성을 결정하는 보편적 잣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문화들 사이에 우열을 따질 수 없다. 오직 한 문화의 가치와 의미는 그 문화의 독특한 맥락 안에서만 평가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화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를 형성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의 창의성과 자유 대신 문화가 주는 무게를 크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화상대주의는 ‘문화결정론’을 함축한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자신이 속한 문화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의 문화를 초월할 수 있는 이념성을 가질 수 없다면 학으로서의 문화인류학 자체는 불가능하다. 보아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인간은 필연적으로 특정 문화에 종속되고 문화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인류학자들 역시 이미 특정 문화에 매여 있고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가 불가능하다면, 그가 바라보고 연구하는 문화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문화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될 것이고, 따라서 이것은 다른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를 다른 문화를 통해 기술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허스코버츠는 하나의 사회과학으로서 인류학이 특정 문화에 종속되지 않고 가치 중립적일 수 있다는 신념을 표명하고 있지만, 문화상대주의라는 논리 자체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보편적으로 타당한 판단이 있을 수 없고, 문화에 따라 상대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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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인류학에서의 문화개념

1) 진화론적 문화개념

문화에 관한 연구가 이미 예전부터 역사학자, 철학자, 선교사, 탐험가들을 통해 시작되었지만, 문화 자체에 대한 과학적이고 본격적인 연구는 19세기 중반부터 인류학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이후 문화인류학에서는 다양한 문화이론이 전개되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타일러의 문화진화주의와 보아스학파의 문화전파주의를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타일러 (Sir Edward Burnett Tylor : Oct.2,1832-Jan.2,1917)는 자신의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 (1871) 에서 ‘문화학’ 혹은 ‘문화과학(science of culture)’의 과제를 두 가지로 설정한다.

첫째, 동일한 원인에 의해 동일한 행동이 유발될 수 있는 법칙을 발견해 내는 일이고,

둘째,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인류문화의 ’발전 또는 진화의 단계(stages of development and evolution)’로 구성하는 일이다.

인간 문화 속에 내재하는 법칙을 사소한 그리고 가장 원시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찾아내어야 하는 이유는 현재의 문화를 이해하고 미래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원시’문화에 관한 연구는 과거의 야만상태의 삶과 현재의 시민사회의 ‘문명화된 삶’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타일러의 이러한 생각에는 세 가지의 가설이 깔려있다.

첫째, 인류는 심리적으로, 문화적으로 하나라는 생각이다. 흔히 ‘심리적 통일성’으로 불리우는 이 견해에 의하면 인류의 본성과 삶의 조건은 거의 비슷하고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전적 조건과 다양성과 같은 특수한 경우는 제거하고, 인류를 ‘본성상 동질적’으로 취급해야 하고, 차이는 단지 진화단계와 이에 따른 정도의 차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 인류학자가 연구할 수 있는 원시문화는 선사시대의 문화와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서구의 ‘높은 문화’를 중세와 고대 그리스 그리고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중간 문화’를 통해 연구할 수 있듯이, 지금의 원시문화를 연구함으로써 현재의 높은 문화의 원시단계인 ‘낮은 문화’를 재구성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높은 문화’ 속에서도 낮은 문화의 ‘잔존물(survivals)’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도로 합리화된 서구사회에서도 민속이나 점성술, 마술, 미신 등이 여전히 ‘관습의 힘에 의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화현상을 잘 밝힐 수 있다면 현재의 ‘높은 문화’와 애초의 ‘낮은 문화’ 사이의 중간고리를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민족의 풍속과 관습에 관한 연구는 현재의 문화적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고도로 발달된 문화 속에 낮은 단계의 문화에서 유래한 비합리적인 유산이 여전히 살아 남아있다는 것은 현재의 문화가 완벽하게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므로 ‘생존물’을 확인하는 일은 삶의 합리화 혹은 합리적인 문화를 위해 필요한 과제가 된다.

타일러의 이러한 문화개념은 그 뒤 여러 차례 수정이 가해졌으나 모건을 비롯한 여러 후계자들에 의해서 오늘도 여전히 고전적인 정의로 통한다. 하지만 이후의 인류학자들의 문화 개념과 비교해 볼 때 문화진화론자로서 타일러에게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타일러는 계몽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시민사회가 이룬 문화적 성취의 전 단계로서 과거 또는 현존하는 원시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문화는 낮은 문화에서 높은 문화로 진화, 발전하는 것으로 보되, 이 진화, 발전을 인류 전체의 보편적 역사과정에서 일어나는 단일한 과정으로 보았다. 물론 타일러는 비서구문화의 가치에 대해서도 인정하였지만, 이것이 곧 문화의 복수성을 인정하였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화는 향상 단수로 쓰일 뿐 복수로 쓰이지 않았다. 따라서 타일러의 진화론적 관점은 필연적으로 유럽중심주의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문화는 이성을 통한 계몽, 합리화를 뜻하기 때문에 민간인의 풍습과 미신으로부터의 해방, 삶의 전 영역의 합리화를 겨냥한 근대 서구사회의 이념이 문화를 진화론적으로 보는 그의 관점에 내재해 있다. 이것은 타일러의 문화이론에 콩트의 실증주의 철학이 하나의 모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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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문명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시민이 되다’ 혹은 ‘세련시키다’ 등의 뜻으로 쓰인 동사 civiliser 가 동명사로 바뀐 문명civilisation이라는 개념에는 근대 서구 국가가 이룩한 문화적 성취, 즉 과학과 기술을 통한 생활 조건의 변화, 민주주의적 정치제도와 법체제, 예술과 학문 등에 대한 우월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인간 이성을 통한 역사 진보에 대해 희망을 걸었던 계몽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헤르더를 위시한 대부분의 근대 지식인들도 거의 한결같이 서양문화의 우월성을 이 문명이라는 개념에서 찾았는데, 칸트도 이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헤겔 역시 식민지를 경영한 영국인들을 일컬어 이른바 ‘문명의 선교사(die Missionarien der Zivilisation)라고 부르면서 세계 전역에 서양의 사고와 생활 양식을 확장하는 일을 인류률 위한 커다란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문화철학자 반 퍼어슨의 지적처럼 이제 “문화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예술, 과학, 종교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만남, 죽음과 삶, 성적 사랑, 재화 획득, 상품의 제조 등 모든 것이 문화를 구성하게 되었다. 문화를 이처럼 넓은 의미로 인간들의 삶을 위한 모든 생산 활동 혹은 그 결과물이라고 할 때, 이때의 생산이라는 것은 고도의 지적인 활동과 그 산물이 아닌 모든 노동의 결과물, 즉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의 모든 산물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환경세계에 대해 어떤 일정한 규정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규정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환경세계를 개선하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화는 환경세계를 개선시키려는 인간들의 의지, 그 의지가 반영되어 나타난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로서의 모든 생산물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반 퍼어슨은 문화를 명사가 아닌 동사로 본다. 왜냐하면 문화는 항상 변화에 관한 이야기요, 기존 문화 패턴의 변형에 관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문화유산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다양한 행동 양식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의 변화 과정 자체로 파악된다. 문화는 예술 작품이나 책, 생활 도구 등 문화유산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며, 또 박물관과 대학 건물, 회의장이나 공공서류등을 그냥 모아 놓은 것도 아니다. 문화는 이제 도구와 무기 제작, 춤과 서약송(誓約頌) 의식, 육아법과 정신 질환자 치료법, 성애와 사냥, 의회 소집과 칵테일 파티 등 다양한 행동 양식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으로 이해된다. 이제 문화 개념은 이제 훨씬 더 넓어졌고 역동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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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개념의 변화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었던 문화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경제활동이나 신체적 노동을 통한 생산행위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시민사회의 도래 이후였다. 근대 시민사회는 ‘욕구의 체계’라는 헤겔의 규정이 잘 말해주듯이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사회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전통적인 종교적 이념이나 윤리적 가치체계로부터 독립해서 그 자체로 자율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제 경제적, 물질적 욕구는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제만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인간의 삶을 더욱 활기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경제적인 요소의 독립은 도시상인과 시민계급이 시민사회의 주된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함으로서 가능하였다. 시민사회는 인간의 노동과 능동적인 활동을 강조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의식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 즉 자연, 사회를 더 이상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개발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적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시민사회의 출현과 함께 문화 개념도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문화와 더불어 문명 개념이 등장이 잘 보여준다. 볼테르와 튀르고 그리고 콩도르세 등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그들의 여러 저서에서 인류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완성’, ‘완벽화’를 향해 나아간다고 보면서 문화를 인류의 완성을 향해 진보해 나아가는 역사적 과정의 산물로 이해하였다. 인간 정신의 산물로서의 문화에 대한 이러한 의식은 독일의 계몽주의자인 헤르더에게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헤르더도 문화를 일차적으로는 정신의 도야, 정신의 형성(Bildung)으로 보았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인류의 ‘인간화’, ‘문명화’, ‘개화’, ‘계몽’의 일정한 단계로 보았다. 

동시대인인 칸트 역시 비슷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칸트는 문화 개념 자체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조야한 것으로부터 좀더 세련된 것으로의 이행하는 문화과정을 자연에서 자유로의 이행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문화 개념의 발전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칸트에게 있어서 문화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 이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노동을 통해 획득되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는 문화적 행위와 그 산물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선이 아니라 악이라는 칸트의 주장은 문화 발전이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기 보존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인간은 노동의 고통을 감수하며 지식을 추구하고, 법을 만들어 내며 시민사회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문화화된(kultiviert)’상황이란 바로 ’문명화된(ziviliziert)’ 상황을 의미하고 이 것은 바로 학문과 예술, 법질서와 도덕화된 체계를 갖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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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파이데이아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에 두 가지 측면

하나는 문화 비판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적 측면이다. 이 두 측면은 그의 대표작인 <국가>에서 시인의 위치에 대한 비판과 소피스트의 활동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난다. 플라톤이 보기에 문화를 생산, 보급하고 시민을 교육하는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시인과 철학자가 서로 경쟁적인 위치에 있었다. 플라톤이 보기에 시인과 철학자의 차이는, 단지 시인이 모방과 상상력에 의존하는 반면 철학자가 추상적 개념에 의한 직관적 인식에 의존한다는 사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되 지향하는 현실이 다른 데 있다. 그들은 다같이 ‘모방자(mimetes)’이지만 철학자는 참된 현실(이데아의 세계)을, 시인은 단지 겉으로 나타난 현실을 모방한다. 그러므로 참된 교육을 위해 의존해야 할 지식은 시인이나 예술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현실, 참된 존재 질서를 파악하는 철학자에게서 얻을 수 있다. 철학만이 유일하게 참된 현실에 이를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일원을 교육하는 파이데이아는 철학적 파이데이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철학적 파이데이아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생성에서 존재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불변의 세계로 정신적 눈이 향하도록 조정하는 활동이다. 달리 말해서 지식에서의 최고의 기준, 척도 중의 척도, 선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불변하는 영원한 질서에 대한 관조이며, 영원한 질서에 대한 관조는 인간의 영혼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형성시킨다. 영원한 질서를 관조하고 그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그 질서를 ‘모방’하고 그것에 따라 자신을 ‘형성’하고 ‘동화’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원한 질서, 즉 영원한 퓌시스의 질서에 따라 산다면 영혼의 건강과 균형은 보장될 수 있다. 플라톤의 파이데이아에 관한 생각은 로마를 거쳐 르네상스 그리고 근대 시민사회의 문화 개념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문화 개념을 주도하는 사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적 차원의 의미를 가진 이러한 문화 개념은 계몽주의가 시작된 17, 18세기에 이르러 또 다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의 지배자로서 적합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인간 자신의 문화적 노력을 통해서 이 자연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문화라는 말은 종교, 예술, 과학, 국가운영의 기술과 같은 인간의 고도의 지적, 정신적 활동의 다양한 표현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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