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7<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하와이에서)

<Korea: Prof. Yoon, Geum Ja>

무위는 자애롭고 부드러운 도이다. 가정이나 기관에서 비행청소년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강압적으로 고치려고 체벌이나 훈계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아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우선 교사나 부모는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게 하여 그들의 마음에 문제점을 관찰하고, 그들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배려하여 공감적 응답으로 다가가야 한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차별하지 않는 자애로움이 있어야 한다. 차별하지 않는 자애로움이 곧 무위이다. 노자가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는가?”라고 물었듯이, 도의 자애로움은 사람들을 누구나 품어주고 아껴준다는 것을 함의한다.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도자, 만물지오,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美言可以市尊, 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미언가이시존, 행가이가인, 인지불선, 하기지유,
故立天下,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고립천하, 치삼공,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왈이구득, 유죄이면사, 고위천하귀.(노자 62장)

마음치유는 이론적‧ 분석적 일반학설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할 때 치유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즉 사람들마다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마음의 병을 일반화시켜서 치유할 수 없다. 마음치유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과정에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뚫고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은 도의 자애로움으로 폭력적인 사람의 마음에 감화를 주어, 그들이 자신의 자연성을 차츰 되찾을 수 있게 해주는 자애로움의 힘이다. 노자는 “도를 지닌 사람(성인)은 언제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어서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고 하였다. 無常心이란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마음이다. 청소년 문제는 너의 자식, 남의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식, 나의 자식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청소년들을 품어주고 공감해주는 정성어린 관계 속에서 감동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흡흡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노자 49장)

무위와 甲乙관계 치유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는 갑을관계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갑을관계의 말 속에서는 갑의 횡포와 부당한 처세 그리고 을의 고통과 설움이 함축되어 있다. 갑과 을의 상하관계는 인간을 인간 그 자체의 인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지위 그리고 권력 구조 속에서 인간을 평가하고 대우하는 물질만능주의, 권력 만능주의가 빚어낸 산물이다.

성인이 말했다. “내가 무위하면, 백성들은 자연이(저절로) 잘되며, 내가 고요한 것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자연이 바르게 되며, 내가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연히 풍족해지며, 내가 탐욕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순박해진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오하이지기연재, 이차,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민다리기, 국가자혼,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인다기교, 기물자기, 법령자창, 도적다유,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 (노자 57장)

위의 문장은 자기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甲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각성시킬 수 있는 무위자연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 내용이다. 甲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乙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교만과 허세를 부리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은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고 분노와 적개심을 품게 된다. 갑의 위치에서 소위 ‘갑질’하는 사람은 물질과 지위를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고 한다. 그에게 존재의 가치는 곧 물질과 지위이다. 물질과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은 갑의 위치에서 볼 때 존재의 가치조차 없기에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자의 무위사상으로 볼 때 이러한 갑질하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할 인품의 빈곤함만을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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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6<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의양만물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만물귀언이불위주, 가명위대. 이기종불자위대, 고능성기대.(노자 34장)

노자는 ‘자애로움으로 싸우면 이긴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공감적 응답, 즉 자애로움으로 대해주면 사람들은 그 자애로움에 감화를 받고 온전히 자애로움에 자신의 존재를 내어맡긴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자애롭지 않고 용감하다는 것은 냉혹한 폭력일 뿐이다. 자애롭다는 것은 분별심이 없는 무차별적인 사랑이다. 애증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 그 자체이다. 노자는 ‘아끼기 때문에 크고 넓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소유의 욕심을 버리고 절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늘날 재산이 많다고 고액의 물건을 사들이며 호화스럽게 사는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내용이 된다. 노자는 ‘천하 사람들 앞에 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겸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겸손한 사람은 “공이 이루어져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지 않고, 바로 그가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공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자는 ‘자애로움’, ‘검소(아낌)’, ‘앞서려고 하지 않음’을 바로 도와 덕의 성품으로써 우리 인간이 본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노자는 이 세 가지를 본받지 않으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했고, 자애로움이 우리를 참다운 삶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였다.

무위와 청소년 문제 치유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포之木, 生於毫末,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합포지목, 생어호말,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구층지대, 기어누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 무위고무패.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則無敗事.
무집고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칙무패사.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시이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노자 64장)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 우울증, 비행청소년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노자의 무위사상은 마음치유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위는 부드럽고 유연한 도이다. 무위의 덕으로 마음을 보듬어주면, 난폭하고 왜곡된 사람도 감화되어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들 마음에 굳혀진 부정적인 생각에 무위의 덕이 스며들어가면서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우리사회는 물질, 명예, 지식, 인맥 등과 같은 든든한 배경을 지닌 사람을 우대하는 풍조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풍조는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와 가정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노자가 도의 성품을 지닌 사람은 “만물의 자연스러운 성품을 돕지만 감히 작위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부모는 자식의 본연의 성품을 헤아려서 자식의 존재의 고유성을 잘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어떤 부모는 자신의 욕심으로 자식을 키운다. 즉 사회적으로 출세할 수 있도록 공부를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식을 내세워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무위로서 자연스럽게 자식을 키우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욕심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자식은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식은 자존감의 상실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감을 피어내지 못하고 억지로 부모에게 맞추려다 보니 자기다움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학교와 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비행청소년 문제는 심각하다. 그들 가운데는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이어서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불만과 폭력성을 치유해줄 문제가 시급한 사회적인 현안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비행청소년 문제는 그들의 심적 불만과 외적 폭력성의 원인을 세심하게 검토하여 다각도로 해결해야 한다. 노자는 “하늘이 누구를 구하려고 하면, 곧 자애로움으로 그를 보호한다”고 했다. 청소년 문제는 강한 체벌이나 격리 수용소에 가두어 놓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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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5<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천하개위아도대, 사불초, 부유대, 고사불초, 약초구의, 기세야부,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아유삼보, 지이보지,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 고능성기장,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금사자차용, 사검차광, 사후차선, 사의,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부자이전즉승, 이수즉고, 천장구지, 이자위지.(노자 67장)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지키고 보존하고 있다.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아낌이고, 셋째는 감히 천하에 다른 사람의 앞에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떳떳함)할 수 있고 아끼기 때문에 크고 넓어질 수 있고, 천하 사람들의 앞에 있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만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지금 자애로움을 버리고 용감함을 구하거나, 아낌을 버리고 넓어짐을 구하거나, 물러나 양보함을 버리고 앞서려고 하는 것은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다. 자애로움이란 그것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고, 그것으로 지키면 공고해질 수 있다. 하늘이 누구를 구하려고 하면, 곧 자애로움으로 그를 보호한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 27장)

인생의 행복은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이해와 공감은 곧 자애로움이다.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상공은 자애로움에 대해 “백성을 갓난아이처럼 아껴주는 것이다”고 말했듯이, 자애로움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느껴주는 것’이다. ‘느껴주는 것’은 상대방을 ‘아껴주며’,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이다. 노자는 “성인은 언제나 사람들을 잘 구원해주고,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자연(도)에 순응하여 모든 사람을 포용해주는 자애로움이다. 자연은 좋은 것, 좋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좋은 것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노자의 자연의 도는 곧 무위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리는 것이다. 자연의 특성은 좋지 않은 것을 품고 정화시키는 작용을 하듯이, 자애로움은 인간의 좋지 않은 품성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은근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늘 상대해야 할 가족이나 직장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정서적으로 맞지 않거나 성격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노자의 검소함은 ‘嗇’과 비슷한 의미이다. 물질이 많다고 자랑하고 사치스럽게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재산이 많다고 물질로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이다. 인품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많은 재물로 인해 정신적인 손상을 입지 않는다. 재물로 위세를 과시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재물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재물로 위세를 과시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노자는 도와 덕의 성품을 지닌 “가장 선한 사람은 마치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였다. 즉 겸손하게 남들을 돕지만 앞으로 나서서 자랑하지 않는 허심의 성품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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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4<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이조복,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조복, 위지중적덕, 중적덕, 즉무불극,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무불극, 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저, 長生久視之道.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노자 59장)

노자는 몸과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정신과 기력을 아껴() 덕을 쌓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嗇’은 ‘아끼다’, ‘소중히 여기다’, ‘쌓다’, ‘거두다’, ‘적은 듯하다’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아낌)의 대상은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역량 모두 속한다. 특히 노자는 정신(마음)에 더욱 비중을 두었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 52장)

『노자』제52장에는 몸과 마음을 잘 보존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욕망의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면, 평생토록 수고롭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兌’은 밖에서 외적 사물에 대한 욕망의 유혹(흐름)이 들어오는 구멍이고, ‘門’은 내면의 자연성의 생명력이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의미한다. 우선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적인 유혹을 다스려야 한다. 노자는 “화려한 색깔은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난잡한 음조는 사람의 청각을 둔하게 한다”고 말했다. 외적인 강한 자극이 우리의 마음을 자꾸만 외적인 것으로 향하게 하여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정신이 분산되면 내적인 생명력도 허술하게 된다.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희언자연, 고표풍불종조, 취우불종일.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失亦樂得之.信不足焉, 有不信焉.
실역락득지.신부족언, 유불신언.(노자 23장)

이와 같이 노자의 嗇은 마음을 소중히 지켜 본성을 맑게 하여 본연의 자연성의 밝은 지혜를 보아야 하며 유연한 몸과 정신을 보존하여 튼실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强’은 ‘튼튼하다’는 뜻으로『노자』에서 ‘柔’(유연함)와 반대되는 ‘强’(강함)과는 다른 의미이다. 마음을 튼실하게 한다는 것은 외적인 것에 흔들림 없이 겸허하게 덕을 쌓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본연의 자연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정신과 기력을 세속적인 욕망으로 소진되는 것을 막고, 정신적인 역량을 배양하여 내면을 튼실하게 하는데 힘쓰는 것이다.

오늘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과 몸이 편안한 날이 없을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음에는 온갖 좋지 않은 감정들로 꽉 채워져 있을 때 노자의 嗇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면 마음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본연의 자연성에는 도와 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가 되면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선한 마음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애로움’을 느꼈을 때이다. 그때 사람들은 마음 깊이에서 고마움을 느끼며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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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3<강원대, 윤금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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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Prof. Yoon, Geum Ja>

겸손‧아낌(嗇)‧자애로움(慈)

노자는 겸손과 관련하여 여러 장에서 다루었다. 특히 노자는 물을 예로 들어 겸손과 유약의 미덕을 나타내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물이 낮은 곳으로 겸손히 흐르지만 모든 것에 스미듯이 진᛫선᛫미를 갖춘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인품(빛)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와 그 고결한 인품(빛)을 사람과 사물에게 부드럽게 내비친다. 겸손한 인품을 갖춘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지 않고 모든 사람과 조화롭게 상생한다는 것이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노자 8장)

노자는 강과 바다의 비유를 통해 사람들이 아래에 처할 줄 아는 겸손의 미덕을 깨닫기를 원했고, 또한 강과 바다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 갖기를 권고했다. 노자의 겸손의 의미에는 柔弱(부드럽고 유연함)이 내재되어 있다.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는 곧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抱一의 의미를 내포한다. 강과 바다는 흘러가는 길에 모든 강한 돌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을 조심스럽게 피해서 가는 양보심과 모든 생명체에게 생수를 공급해주는 자애심을 갖고 있다. 물의 이러한 양보심과 자애심 그리고 여유로움은 물의 있는 그대로의 본성일 뿐이다. 노자는 물의 본성을 통해 조작하고 왜곡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물과 같은 자연성을 회복할 것을 권고했다. 노자는 道를 물에 비유하고, 도를 지닌 선한 사람을 물에 비유하기도 했다. 물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남들이 기피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고요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는다.

물과 같은 겸손한 사람은 도(무위)의 마음을 지녔다. 자연의 도는 겸손한 사람의 마음과 동일하다. 그는 마음을 허정하게 비우고 무위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든다.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드는 이유는 그의 강한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부드럽고 유약함에 의한 것이다. 노자의 道가 사람들을 엄청난 무서운 힘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노자는 도를 소박(樸)하고, 작고(小), 욕심이 없고(無欲), 은밀하여 볼 수 없는 것(道隱無名)으로 묘사했다. 인간이 무위 자연한 도의 소박한 성질을 자연스럽게 따를 때 만물과 서로 교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 만물은 무위할 때 서로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외부의 자극에 예리하게 반응한다. 부드러움을 느끼면 존재는 활짝 드러내고, 날카롭고 거친 것을 느끼면 존재는 움츠려들면서도 날카로운 것들로부터 피하여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는 애씀은 존재를 견고하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들이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는 “날카로움을 꺾으며”(挫其銳) 겸손해야 한다. 노자는 “교만하면 허물을 남긴다”고 했는데, 교만은 자연의 도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持而盈之,不如其已,揣而銳之
지이영지,불여기이,췌이예지

金玉滿堂 莫之能守,富貴而驕,
금옥만당,막지능수,부귀이교,

自遺其咎,功成名,遂身退,天之道
자유기구,공성명,수신퇴,천지도 (노자 9장)

노자에 의하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무위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 통치자가 백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건드리지 않고 자연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겸손의 미덕이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 규범이 자연의 도리에 순응할 때 천하를 이상적으로 잘 다스리게 된다. 물이 자연본성에 순응하듯이 통치자도 백성도 모두 자기 본성에 충실할 때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우리도 낮은 자세로 살아갈 때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이득을 보고 득세를 하며, 그와 반면에 목소리 작고 자기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손해를 보는 추세이다. 그러나 강한 사람의 득세는 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사게 되고 사람들과 좋은 교류를 할 수 없게 되어 그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겸손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에 소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굳이 목소리를 높여 자기를 알아달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아봐주고 존중해준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 고능위백곡왕,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시이욕상민, 필이언하지, 욕선민, 필이신후지,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시이성인처상이민부중, 처전이민불해,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시이천하낙추이불염, 이기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노자 6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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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3<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A. Kim)

<Korea: Prof. Yoon, Geum Ja>

자연스러움은 안전함과 편안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통한다. 우리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진실하게 살다보면,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고 충만해지는 복원력이 자연스럽게 생기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억지로 채우려고 하면 넘치고 이지러질 수 있다. 억지로 새로워지려고 하면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우리들은 겉으로 보이는 온전한 것(全), 펴진 것(直), 채워진 것(盈), 새로운 것(新)에 연연해하면서, 굽은 것(曲), 구부러진 것(枉), 옴폭한 것(窪), 낡은 것(蔽)을 피하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겉모습은 외모뿐만 아니라 물질과 지위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외모가 예쁘고 잘생긴 것에 호감을 갖고, 잘 보이려고 하고, 외모가 추하고 볼품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람들은 물질과 지위가 높으면 곧 온전한 것, 펴진 것, 채워진 것, 새로워진 것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잘 사는 것’ 정도를 평가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으면 굽은 것, 구부러진 것, 옴폭한 것, 낡은 것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못 사는 것’ 정도를 평가한다. 잘살고 못사는 것을 물질과 지위로 평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물질적인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숭고한 것이 많다. 비록 눈앞에 외적으로 드러나는 실용성이나 생산성에 있어서는 낮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언정 질적으로 숭고한 인생의 가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노자는 도의 특성을 “도는 숨어있어서 이름이 없다”(道隱無名)고 말했다.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한 도의 겸손하고 소박하고 진실한 것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느끼면서 알게 된다. 도를 깨닫고 느끼면서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되고, 자기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노자에게 있어 밝음과 어두움, 평탄함과 울퉁불퉁함[등], [이]것처럼 이중적인 상관관계는 대립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보여주는 도의 포용성이다.

인간은 겉으로 밝고 좋은 면을 드러내어 자랑하려는 경박함이 있지만 도는 있는 모습 그대로 물처럼 그냥 주어진 곳에 적응하고 순환하면서 정직하게 중후함을 견지한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 나름의 참되고 충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생명체는 자신의 존재를 존재답게 키우기 위해 내면에 잠재된 모든 것을 다 활용한다. 부드러운 흙이 없으면 식물과 꽃이 자랄 수 없다. 흙은 그 자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생명을 키워낸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근본적으로 내실에 채워져 있는 진실한 것, 가능한 것, 충만한 것은 때가 되면 은근하게 배어나오게 마련이다. 각자의 내면의 진실한 것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자산이다. 인간의 가치는 타고난 자연성에 내재한 각자의 존재다움을 충만히 키워내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외적으로 잘 보이기 위해 꾸미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또한 외적으로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고 초연하게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상사문도, 근이행지, 중사문도, 약존약망, 하사문도,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대소지, 불소, 부족이위도, 고건언유지, 명도약매,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진도약퇴, 이도약뢰, 상덕약곡, 태백약욕, 광덕약부족,
建德若偸, 質眞若,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건덕약투, 질진약,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善貸且成.
대상무형, 도은무명, 부유도선대차성. (노자 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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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1<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윤금자 교수, 소양호와 춘천시가지)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의 無爲를 마음에 비유하면 맑고 고요한 마음(淸靜心)이다. 맑은 마음은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누구나 일을 하면서 승진을 염두에 둔다. 그러나 승진이 남들보다 뒤진다고 그것에 얽매여 불만을 갖고 일을 등한시 하거나 원망을 표출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터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물질과 승진 등 좋은 성과가 주어질 것이다. 주어진 일을 사업체의 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마치 사업체의 사장인 것처럼 자신의 일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작은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이조복,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조복, 위지중적덕, 중적덕, 즉무불극,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무불극, 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저, 長生久視之道.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노자 59장)

노자는 마음의 사욕을 비우고 허심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일의 성과도 중간에 실패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우리의 의도가 과도한 욕심이나 아집 그리고 작위적인 것에 편중되어 있다면 일을 그르칠 수 있고, 그에 따라 마음의 상처도 병행하게 된다. 노자는 모든 일에 자연의 도(무위)를 따른다면 일도 성사되고, 마음도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순박한(愚) 마음‧소박한(樸) 마음 갖기

오늘날 우리사회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대받고 승진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고 가식적인 언행으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더욱 우대받고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성실성과 진실성이 외면당할 때 자신의 삶의 자세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오늘날의 세태에서 노자의 행복관 즉 ‘순박함(愚)’은 마음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옛날에 도를 잘 행한 사람은 백성을 정교하게 만들지 않고, 백성을 순박하게 했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바로 그들이 너무 많은 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꾀를 써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災禍이고, 꾀를 쓰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행복이다.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지다,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고이지치국, 국지적, 불이지치국, 국지복,
知此兩者亦稽式, 常知稽式, 是謂元德,
지차양자역계식, 상지계식, 시위원덕,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원덕심의원의, 여물반의, 연후내지대순 (노자 65장)

위의 문장에서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두 가지 방법과 그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행간에는 순박함(愚)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는 간교하고 속이고 불성실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게 되고, 성실하고 진실하고 순박하면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은 삶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품자체의 자연스러움을 본다. 즉 자신의 이익을 따져서 사람들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의 통찰력의 핵심은 세속적인 관심을 초월한다. 우리가 사람을 구분하고 사물을 범주화하는 것은 어떤 일이나 문제에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게 구분하고 범주화하는 것은 삶의 본질과 다양한 가치를 놓치기 쉽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한 단면에 불과하고 그 너머에 엄청난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눈앞의 이익만을 챙기며 삶의 좁은 경계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장 눈앞의 이익과 승진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분개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익과 승진을 놓친 것은 삶의 일부를 잃은 것이지, 전체를 잃은 것은 아니다. 노자의 자연(도)은 경계가 없다. 도는 삶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등 모든 것에 내재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기쁨, 행복, 성공으로 만족감을 느낄 때도, 삶의 슬픔, 불행, 실패로 좌절감을 느낄 때도 초연한 자세로 흔들림 없이 평상심을 유지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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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0<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Bing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자신에게 알맞은 능력과 재능을 제대로 알고 발휘하면서 자신을 고유하게 잘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가 진실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구한다면 자연스러움 속에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즉 無爲無不爲할 수 있고, 마음은 불안증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위는 억지로 꾸미거나 의도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나 인간관계를 맺을 때 목적을 위한 수단적인 의도가 내재되어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높은 德을 갖춘 사람은 무위에 따르고 아무런 의도함이 없이 한다”고 했듯이, 무위가 행위의 규범으로서 작용할 때 우리의 자연성은 맑고 순박하여 일과 사람을 조작하고 조종하지 않는다. 사회적 제도나 禮와 같은 당위는 무위가 아니다. 이러한 당위적인 것으로 인간이나 사회의 질서를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당위에는 강요와 의무가 따른다. 외적인 당위의 강요에 마지못해 따를 때 조작하는 마음이 발동한다. 세상의 제도나 규범은 자연성을 구속하는 장애물로서 오히려 사회적인 혼란과 다툼을 유발한다. 노자는 유가의 仁᛫義᛫禮와 같은 덕을 하덕으로 보았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상덕무위이무이위, 하덕위지이유이위,
上仁爲之而有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禮爲之而莫之應,
상인위지이유이위, 상의위지이유이위, 상례위지이막지응,
則攘臂而잉之.
칙양비이잉지.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부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是以大丈夫, 處其厚, 不居其薄.
시이대장부, 처기후, 불거기박.
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
처기실, 불거기화, 고거피취차.(노자 38장)

노자는 특히 禮를 가장 낮은 덕(하덕)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의도된 제도나 예법과 같은 것들은 인간 내면의 자연성을 맑게 밝혀줄 수 없다. 모든 인위적인 외적인 제도와 예법은 단지 인간의 의식표층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지켜지지 않으면 바뀔 수밖에 없는 임시방편적인 구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본연의 참모습인 자연성을 자각할수록 외부의 형식적인 제도, 禮를 따지는 사람들의 겉만 그럴듯한 위선적인 허세의 가벼움을 알 수 있게 된다. 노자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외적인 제도나 예법이 아니라 바로 마음 안에 있다고 했다.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진실에 맞닿은 생각과 행위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공감을 갖게 해준다. 노자는 맑고 고요한 마음(虛靜心)을 간직하라고 했다. 높은 덕(上德)이란 허정한 마음, 본연의 자연성에서 무욕, 무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무위는 곧 허정심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마음에서 욕심과 아집을 비우고 허정심(마음이 맑고 고요한)상태를 유지할 때 건강한 정신으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과도한 일과 인간관계 속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치유는 외적인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지치고 힘든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마음을 잘 헤아리면 분명 마음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노자는 “무위로써 일을 하고 요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을 하며, 명예나 이익을 탐내지 않는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맛을 삼는다”고 말했다. 일을 처리할 때 無爲, 無事, 無味는 허심과 무욕의 마음가짐으로 행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어떠한 개인적인 욕심을 갖고 일을 하거나 마지못해 일을 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일 외적인 것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일한 자신은 승진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승진했을 때,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상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받거나 동료들 사이에 갈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정신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보원이덕.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도난어기이, 위대어기세.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
是以聖人, 終不爲大, 故能成其大.
시이성인, 종불위대, 고능성기대.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부경낙필과신, 다이필다난. 시이성인유난지. 고종무난의.(노자 6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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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9<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우리는 그저 무심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저 주어졌기에 살아갈 뿐이라는 마음가짐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늘 삶의 의미를 세세히 살피고, 캐묻거나, 존재의 의미를 묻고 따지다 보면 모든 것이 다 스트레스다.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을 자연스럽게 하여 우리가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을 굴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이 우리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을 압박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관계맺음을 삶의 과정에서 부득이한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이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노자 63장)

사람들과 관계맺음의 과정은 상생하기 위하여 서로의 감정을 조절하여 성품의 기운을 조화롭게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환경과 사람과의 만남은 번거롭고 부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체험 속에서 얻는 경이로움은 우리의 삶을 탄력 있고 생동감 넘치는 풍요로움을 줄 수 있다.

聖人無常心,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不善者吾亦善之
德善
信者吾信之,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歙歙焉,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노자 49장)

무위와 마음치유

1) 虛心‧無欲으로 마음지킴

마음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마음에 불안한 감정의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태가 오래가면 생활에 곤란을 겪게 된다. 우선 마음의 불안한 원인을 찾아내고 스스로 원인을 자각해야 불안정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대부분 불안한 감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마음의 느낌과 정서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우리의 능력이상의 과도한 물질이나 명예를 추구했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랑을 구하다가 실패했을 때,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불안증에 시달릴 수 있다. 이러한 불안증의 원인은 모두 억지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탐심이나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우리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순응하며 무위 자연적 삶을 살아가도록 권유했다.

古之善爲士者,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容,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孰能濁以 靜之徐淸
孰能安以久 動之徐生,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 蔽不新成 (노자 15장)

노자는 살아가면서 마음이 탐욕의 유혹에 이끌릴 때 도의 순박함(無名之樸)으로 無爲, 無念하여 탐욕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마음의 안정(靜)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마음의 옳지 않는 망상, 즉 노력 없이 쉽게 무언가를 얻으려는 작위적인 생각을 끊고 무위, 무념으로 본연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눌은 마음을 살피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바깥 경계를 취하지 않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추어 본다. 우선 고요함(寂寂)으로 반연하는 사려를 다스리고, 그 다음에는 또랑또랑함(惺惺)으로써 몽롱한 마음의 상태(昏沈)를 다스린다.” (지눌,『勸修定滋結社文』『한국불교전서』, 권4, 701중,) “不取外上, 攝心內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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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7<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우리는 우리의 모습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보이면서 탄탄하고 진솔한 삶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남들의 눈치보고 그들에게 마음을 맞추는 일들을 거듭하다 보면 지치고 힘겨워 자신의 본연의 삶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본연의 자기다움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삶의 고통에서 심한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고, 자신의 존재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이란 곧 자기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키워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현재 좋지 않은 곳에서 좋지 않은 감정에 사로잡혀있어도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의 싹이 돋는 순간 경직된 부정적인 마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매일 똑같이 나 자신의 관점에만 맞추어져 이어지는 친숙한 존재방식에 갇혀있다면, 삶에 연관된 더 넓은 의미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수용과 배려의 의미를 생각으로만 이해할 뿐 실제적으로 체험하지 못한다. 풍요로운 삶이란 우리가 마음에 맞는 사람이든 맞지 않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적응하면서 깊이 있는 여러 차원의 새로운 삶과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공덕지용, 유도시종. 도지위물, 유황유홀. 홀혜황혜, 기중유상.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황혜홀혜, 기중유물. 요혜명혜, 기중유정. 기정심진, 기중유신.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자고급금, 기명불거, 이열중보. 오하이지중보지상재, 이차.(노자 21장)

우리는 도의 작용을 통해 보다 순조롭게 인간에게 적응해가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도의 작용은 만물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준다. 자연(도)은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며 얽힌 것을 풀며 빛을 누그러뜨리며 티끌과 함께한다”고 했듯이 우리의 까다롭고 예리한 성품을 누그러뜨리고, 다른 사람을 옹졸하게 오해하는 왜곡되어진 마음을 풀고, 우리의 才智와 총명을 으스대지 말아야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 하늘의 도(자연의 규율)는 “올라오는 것을 누르고, 낮은 것을 올리며, 여유 있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해준다”고 했듯이, 우리 주위의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성과 진심을 다해 필요한 부분을 채워준다면 그들과 자연스럽게 삶을 공유할 수 있다. 자연의 규율이 균형과 조화의 원칙을 유지하듯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정신적 능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그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삶은 우리 모두를 평온하게 해줄 것이다. 나눔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감을 충만하게 해준다. 나눔은 결코 우리의 것에 손해를 가져오지 않는다. 도의 작용은 만물의 부족함(티끌)과 함께하지만 ‘公正無事’한 도의 위대함(빛)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有餘者損之,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인지도칙불연, 손부족이봉유여, 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노자 77장)

『노자』제56장에서 성인(지혜로운 사람)이 세상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성인(知者)은 이해타산적인 세속의 편협한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며, 개인적인 편견과 독단적인 고집을 버리고 모든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玄同’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려는 데 뜻을 둔다. 성인은 ‘현동’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매사에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원망을 사거나 질투를 유발시켜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묵묵히 겸손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은 주변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지자불언, 언자부지, 색기태, 폐기문, 좌기예, 해기분,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疎,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고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불가득이리, 불가득이해,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불가득이귀, 불가득이천, 고위천하귀.(노자 56장)

노자에게 있어 ‘현동’은 편협한 인간관계를 벗어나 모두와 함께하는 최상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특정이념에 사로잡힌 좁은 경계에서 벗어나 지평을 넓혀 제한되지 않은 풍요의 道를 닮아가야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갇혀있다. 도에 조율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사고양식과 행동 그리고 삶의 좁은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생명을 향한 더 넓고 깊은 도의 원천과 능력에 의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향한 수용, 이해, 배려가 확장되는 것이다. 진심어린 수용, 이해, 배려를 통해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영감을 얻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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