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1<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윤금자 교수, 소양호와 춘천시가지)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의 無爲를 마음에 비유하면 맑고 고요한 마음(淸靜心)이다. 맑은 마음은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누구나 일을 하면서 승진을 염두에 둔다. 그러나 승진이 남들보다 뒤진다고 그것에 얽매여 불만을 갖고 일을 등한시 하거나 원망을 표출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터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물질과 승진 등 좋은 성과가 주어질 것이다. 주어진 일을 사업체의 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마치 사업체의 사장인 것처럼 자신의 일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작은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이조복,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조복, 위지중적덕, 중적덕, 즉무불극,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무불극, 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저, 長生久視之道.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노자 59장)

노자는 마음의 사욕을 비우고 허심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일의 성과도 중간에 실패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우리의 의도가 과도한 욕심이나 아집 그리고 작위적인 것에 편중되어 있다면 일을 그르칠 수 있고, 그에 따라 마음의 상처도 병행하게 된다. 노자는 모든 일에 자연의 도(무위)를 따른다면 일도 성사되고, 마음도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순박한(愚) 마음‧소박한(樸) 마음 갖기

오늘날 우리사회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대받고 승진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고 가식적인 언행으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더욱 우대받고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성실성과 진실성이 외면당할 때 자신의 삶의 자세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오늘날의 세태에서 노자의 행복관 즉 ‘순박함(愚)’은 마음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옛날에 도를 잘 행한 사람은 백성을 정교하게 만들지 않고, 백성을 순박하게 했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바로 그들이 너무 많은 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꾀를 써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災禍이고, 꾀를 쓰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행복이다.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지다,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고이지치국, 국지적, 불이지치국, 국지복,
知此兩者亦稽式, 常知稽式, 是謂元德,
지차양자역계식, 상지계식, 시위원덕,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원덕심의원의, 여물반의, 연후내지대순 (노자 65장)

위의 문장에서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두 가지 방법과 그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행간에는 순박함(愚)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는 간교하고 속이고 불성실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게 되고, 성실하고 진실하고 순박하면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은 삶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품자체의 자연스러움을 본다. 즉 자신의 이익을 따져서 사람들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의 통찰력의 핵심은 세속적인 관심을 초월한다. 우리가 사람을 구분하고 사물을 범주화하는 것은 어떤 일이나 문제에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게 구분하고 범주화하는 것은 삶의 본질과 다양한 가치를 놓치기 쉽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한 단면에 불과하고 그 너머에 엄청난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눈앞의 이익만을 챙기며 삶의 좁은 경계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장 눈앞의 이익과 승진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분개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익과 승진을 놓친 것은 삶의 일부를 잃은 것이지, 전체를 잃은 것은 아니다. 노자의 자연(도)은 경계가 없다. 도는 삶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등 모든 것에 내재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기쁨, 행복, 성공으로 만족감을 느낄 때도, 삶의 슬픔, 불행, 실패로 좌절감을 느낄 때도 초연한 자세로 흔들림 없이 평상심을 유지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0<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Bing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자신에게 알맞은 능력과 재능을 제대로 알고 발휘하면서 자신을 고유하게 잘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가 진실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구한다면 자연스러움 속에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즉 無爲無不爲할 수 있고, 마음은 불안증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위는 억지로 꾸미거나 의도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나 인간관계를 맺을 때 목적을 위한 수단적인 의도가 내재되어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높은 德을 갖춘 사람은 무위에 따르고 아무런 의도함이 없이 한다”고 했듯이, 무위가 행위의 규범으로서 작용할 때 우리의 자연성은 맑고 순박하여 일과 사람을 조작하고 조종하지 않는다. 사회적 제도나 禮와 같은 당위는 무위가 아니다. 이러한 당위적인 것으로 인간이나 사회의 질서를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당위에는 강요와 의무가 따른다. 외적인 당위의 강요에 마지못해 따를 때 조작하는 마음이 발동한다. 세상의 제도나 규범은 자연성을 구속하는 장애물로서 오히려 사회적인 혼란과 다툼을 유발한다. 노자는 유가의 仁᛫義᛫禮와 같은 덕을 하덕으로 보았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상덕무위이무이위, 하덕위지이유이위,
上仁爲之而有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禮爲之而莫之應,
상인위지이유이위, 상의위지이유이위, 상례위지이막지응,
則攘臂而잉之.
칙양비이잉지.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부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是以大丈夫, 處其厚, 不居其薄.
시이대장부, 처기후, 불거기박.
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
처기실, 불거기화, 고거피취차.(노자 38장)

노자는 특히 禮를 가장 낮은 덕(하덕)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의도된 제도나 예법과 같은 것들은 인간 내면의 자연성을 맑게 밝혀줄 수 없다. 모든 인위적인 외적인 제도와 예법은 단지 인간의 의식표층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지켜지지 않으면 바뀔 수밖에 없는 임시방편적인 구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본연의 참모습인 자연성을 자각할수록 외부의 형식적인 제도, 禮를 따지는 사람들의 겉만 그럴듯한 위선적인 허세의 가벼움을 알 수 있게 된다. 노자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외적인 제도나 예법이 아니라 바로 마음 안에 있다고 했다.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진실에 맞닿은 생각과 행위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공감을 갖게 해준다. 노자는 맑고 고요한 마음(虛靜心)을 간직하라고 했다. 높은 덕(上德)이란 허정한 마음, 본연의 자연성에서 무욕, 무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무위는 곧 허정심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마음에서 욕심과 아집을 비우고 허정심(마음이 맑고 고요한)상태를 유지할 때 건강한 정신으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과도한 일과 인간관계 속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치유는 외적인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지치고 힘든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마음을 잘 헤아리면 분명 마음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노자는 “무위로써 일을 하고 요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을 하며, 명예나 이익을 탐내지 않는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맛을 삼는다”고 말했다. 일을 처리할 때 無爲, 無事, 無味는 허심과 무욕의 마음가짐으로 행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어떠한 개인적인 욕심을 갖고 일을 하거나 마지못해 일을 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일 외적인 것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일한 자신은 승진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승진했을 때,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상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받거나 동료들 사이에 갈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정신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보원이덕.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도난어기이, 위대어기세.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
是以聖人, 終不爲大, 故能成其大.
시이성인, 종불위대, 고능성기대.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부경낙필과신, 다이필다난. 시이성인유난지. 고종무난의.(노자 63장)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9<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우리는 그저 무심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저 주어졌기에 살아갈 뿐이라는 마음가짐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늘 삶의 의미를 세세히 살피고, 캐묻거나, 존재의 의미를 묻고 따지다 보면 모든 것이 다 스트레스다.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을 자연스럽게 하여 우리가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을 굴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이 우리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을 압박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관계맺음을 삶의 과정에서 부득이한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이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노자 63장)

사람들과 관계맺음의 과정은 상생하기 위하여 서로의 감정을 조절하여 성품의 기운을 조화롭게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환경과 사람과의 만남은 번거롭고 부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체험 속에서 얻는 경이로움은 우리의 삶을 탄력 있고 생동감 넘치는 풍요로움을 줄 수 있다.

聖人無常心,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不善者吾亦善之
德善
信者吾信之,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歙歙焉,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노자 49장)

무위와 마음치유

1) 虛心‧無欲으로 마음지킴

마음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마음에 불안한 감정의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태가 오래가면 생활에 곤란을 겪게 된다. 우선 마음의 불안한 원인을 찾아내고 스스로 원인을 자각해야 불안정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대부분 불안한 감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마음의 느낌과 정서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우리의 능력이상의 과도한 물질이나 명예를 추구했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랑을 구하다가 실패했을 때,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불안증에 시달릴 수 있다. 이러한 불안증의 원인은 모두 억지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탐심이나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우리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순응하며 무위 자연적 삶을 살아가도록 권유했다.

古之善爲士者,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容,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孰能濁以 靜之徐淸
孰能安以久 動之徐生,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 蔽不新成 (노자 15장)

노자는 살아가면서 마음이 탐욕의 유혹에 이끌릴 때 도의 순박함(無名之樸)으로 無爲, 無念하여 탐욕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마음의 안정(靜)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마음의 옳지 않는 망상, 즉 노력 없이 쉽게 무언가를 얻으려는 작위적인 생각을 끊고 무위, 무념으로 본연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눌은 마음을 살피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바깥 경계를 취하지 않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추어 본다. 우선 고요함(寂寂)으로 반연하는 사려를 다스리고, 그 다음에는 또랑또랑함(惺惺)으로써 몽롱한 마음의 상태(昏沈)를 다스린다.” (지눌,『勸修定滋結社文』『한국불교전서』, 권4, 701중,) “不取外上, 攝心內照,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7<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우리는 우리의 모습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보이면서 탄탄하고 진솔한 삶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남들의 눈치보고 그들에게 마음을 맞추는 일들을 거듭하다 보면 지치고 힘겨워 자신의 본연의 삶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본연의 자기다움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삶의 고통에서 심한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고, 자신의 존재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이란 곧 자기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키워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현재 좋지 않은 곳에서 좋지 않은 감정에 사로잡혀있어도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의 싹이 돋는 순간 경직된 부정적인 마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매일 똑같이 나 자신의 관점에만 맞추어져 이어지는 친숙한 존재방식에 갇혀있다면, 삶에 연관된 더 넓은 의미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수용과 배려의 의미를 생각으로만 이해할 뿐 실제적으로 체험하지 못한다. 풍요로운 삶이란 우리가 마음에 맞는 사람이든 맞지 않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적응하면서 깊이 있는 여러 차원의 새로운 삶과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공덕지용, 유도시종. 도지위물, 유황유홀. 홀혜황혜, 기중유상.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황혜홀혜, 기중유물. 요혜명혜, 기중유정. 기정심진, 기중유신.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자고급금, 기명불거, 이열중보. 오하이지중보지상재, 이차.(노자 21장)

우리는 도의 작용을 통해 보다 순조롭게 인간에게 적응해가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도의 작용은 만물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준다. 자연(도)은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며 얽힌 것을 풀며 빛을 누그러뜨리며 티끌과 함께한다”고 했듯이 우리의 까다롭고 예리한 성품을 누그러뜨리고, 다른 사람을 옹졸하게 오해하는 왜곡되어진 마음을 풀고, 우리의 才智와 총명을 으스대지 말아야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 하늘의 도(자연의 규율)는 “올라오는 것을 누르고, 낮은 것을 올리며, 여유 있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해준다”고 했듯이, 우리 주위의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성과 진심을 다해 필요한 부분을 채워준다면 그들과 자연스럽게 삶을 공유할 수 있다. 자연의 규율이 균형과 조화의 원칙을 유지하듯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정신적 능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그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삶은 우리 모두를 평온하게 해줄 것이다. 나눔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감을 충만하게 해준다. 나눔은 결코 우리의 것에 손해를 가져오지 않는다. 도의 작용은 만물의 부족함(티끌)과 함께하지만 ‘公正無事’한 도의 위대함(빛)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有餘者損之,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인지도칙불연, 손부족이봉유여, 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노자 77장)

『노자』제56장에서 성인(지혜로운 사람)이 세상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성인(知者)은 이해타산적인 세속의 편협한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며, 개인적인 편견과 독단적인 고집을 버리고 모든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玄同’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려는 데 뜻을 둔다. 성인은 ‘현동’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매사에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원망을 사거나 질투를 유발시켜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묵묵히 겸손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은 주변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지자불언, 언자부지, 색기태, 폐기문, 좌기예, 해기분,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疎,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고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불가득이리, 불가득이해,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불가득이귀, 불가득이천, 고위천하귀.(노자 56장)

노자에게 있어 ‘현동’은 편협한 인간관계를 벗어나 모두와 함께하는 최상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특정이념에 사로잡힌 좁은 경계에서 벗어나 지평을 넓혀 제한되지 않은 풍요의 道를 닮아가야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갇혀있다. 도에 조율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사고양식과 행동 그리고 삶의 좁은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생명을 향한 더 넓고 깊은 도의 원천과 능력에 의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향한 수용, 이해, 배려가 확장되는 것이다. 진심어린 수용, 이해, 배려를 통해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영감을 얻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6<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장자는 우리들의 마음에 고착된 주관적인 편견이나 독선을 비워내야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오직 다른 사람들과 소통의 길은 마음을 비워내는 데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장자는 마음을 비우고 氣로 사람들을 대하라고 했다. 氣란 주관적인 마음이 맑게 비워진 자연성의 상태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같은 것이다. 즉 순수한 마음의 느낌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곧 우리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으로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심재란 모든 삶의 보편적인 기준을 성심으로 삼아 평가하는 이기적인 자아의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성심은 누구에게나 의식 속에 내재되어있다. 그런데 그 성심을 마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만능으로 생각할 때 문제가 된다. 여기서 비움은 그 자체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의 生氣가 피어나는 공간으로써 작용한다.

『장자』「인간세」, “唯道集虛, 虛者.”

『장자』「인간세」,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장자』「인간세 12」, “瞻彼闋者,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적응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맞추려는 마음이다. 이 세상의 대다수의 존재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적응하기 위하여 우리자신에 가면을 씌우고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때가 있다. 우리를 내세우면 여러 가지로 부작용이 따르고 힘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우리의 존재를 진실하게 내보이면서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적응하는 것이 무조건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조화를 맞추면서 그들의 삶을 잘 성찰하면 다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우리의삶의 틀에 집어놓고 판단하여 선호도를 따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의 존재방식의 고유한 틀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방식으로 이끌려고 한다. 이렇게 강제로 이끈다고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자신의 고유한 자연성이 있듯이 상대도 고유한 자연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진솔하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폐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시이성인,
抱一爲天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포일위천하식, 불자견고명, 불자시고창, 불자벌고유공,
不自矜故長, 夫惟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불자긍고장,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고지소위곡즉전자, 기허언재. 성전이귀지. (노자 22장)

노자는 도를 잘 체득한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과 적응하기 위하여 신중하고 순진하며 소박한 모습으로 주변사람과 환경을 세심히 살핀다고 하였다. 자연 생태계가 도(자연)의 섭리에 의해 끊임없이 생명을 부여받고 조화를 이루듯이 우리 인간도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생기를 얻고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내팽개치거나 다른 존재에 의해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본연의 존재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평가하고 우리들의
삶의 방식으로 강제로 이끌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나름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강제성에 큰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古之善爲士者,微妙玄通 深不可識
고지선위사자,미묘현통 심불가식
夫唯不可識,故强爲之容
부유불가식,고강위지용
豫焉若冬涉川,猶兮若畏四隣
예언약동섭천,유혜약외사린
儼兮其若容,渙兮若氷之將釋
엄혜기약용,환혜약빙지장석
敦兮其若樸,曠兮其若谷
돈혜기약박,광혜기약곡
混兮其若濁,孰能濁以 靜之徐淸
혼혜기약탁,숙능탁이 정지서청
孰能安以久 動之徐生,保此道者 不欲盈
숙능안이구 동지서생,보차도자 불욕영
夫唯不盈 故能 蔽不新成
부유불영 고능 폐불신성 (노자 15장)

장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불일치가 가져오는 불행한 결과를 ‘새’를 통해서 설명하였다. 노나라 임금은 새의 고유한 특성을 살피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새에게 적용했기 때문에 새는 죽어버렸다. 자신의 방식으로 본다는 것은 사물을 대상으로 이분법화 시킨 것이다. 새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적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해의 적정선은 자연스럽게 다가가 이해하고 도움이 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이해의 한도를 벗어나 그들의 삶에 깊이 간섭할 정도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늘과 땅은 편애함이 없으며 만물의 자연스러운 생장에 맡긴다” 고 하여 모든 것에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생장을 자연의 도에 맡기고 따르듯이, 우리도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간섭해서는 안 되며,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나치게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하여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 그 자체가 힘겨운 일이며, 힘겨운 일에서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장자』「지락」, “且女獨不聞邪?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臠,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5<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진실은 사람들을 다가오게 하는 힘이다. 우리는 주변에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고 삶의 질서를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려야 한다. 우리의 삶의 양상을 흔들림 없이 진실하게 밀고 나간다면 누구도 우리의 삶의 질서를 흔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를 수용하는 것이 마음건강을 위해 중요하다. 노자는 복귀, 즉 인간이 어느 계기가 되면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는 누군가로부터 진심어린 관심을 받을 때이다. 인간의 감정은 거의 유사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주고 포용해주면 마음을 진실하게 열게 되고 진실하게 열려진 마음에서 느껴지는 공감은 서로를 이어주며 보다 넓은 인간이해로 연결된다.

칼 로저스의 ‘인간의 경향성’은 노자의 ‘복귀 지향성성’과 유사한 이론이다. “나의 경험상,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경향성(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치료 과정에서 사람들과 깊이 접촉하면서, 심지어 고통이 가장 심하고, 행동이 가장 반사회적이고 감정 상태가 비정상적일지라도 그것이(경향성)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민감하게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을 올바른 사람으로서 수용해 줄 때,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내가 믿기에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은 ‘긍정적’, ‘건설적’, ‘자아실현을 위해 움직이는’, ‘성숙을 향해 성장하는’, ‘사회화를 향해 성장하는’ 등의 단어이다.” (칼 로저스 지음, 주은선 옮김,『진정한 사람되기』, 서울 : 학지사, 2014, 40쪽.)

공감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마음이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의 마음은 믿음과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 담을 수도, 품을 수도 없다. 또한 우리가 마음으로 품지 않은 사람의 마음 안에 우리의 마음은 담길 수 없고, 그의 마음자리 언저리에 겉돌 뿐이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과 깊이 느껴지는 공유할 마음자리가 있을 때 서로의 마음끼리는 자연스럽게 품고 담기며 평온하게 함께할 수 있다.

상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만물을 포용하고, 포용하면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다. 포용하면 공평해지고, 공평해야 두루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흡흡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 (노자 49장)

상도는 비어있는 마음(무심, 허심)을 비유한 것이다. 마음이 비어있어야 사물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포용하게 된다. 포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기 위해서는 이성적이며 지적인 것으로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른 의미이다. 노자에 의하면 지혜롭게 살기위해서는 우리가 지적으로 터득한 관념이나 개념들을 비울 때 더 넓고 깊게 사람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노자』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자연의 규율’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지혜롭다는 것’은 삶을 더 넓은 방식으로 이해하며 인간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진심은 마음을 통하게 한다. 노자는 “하늘의 道는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답하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온다”고 하듯이 사람들은 접촉하는 사람들의 마음끼리 잘 통하면 말하지 않아도 더욱 깊고 넓게 서로의 마음자리에 의미 있는 존재로 담겨진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관점의 경계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각을 많은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더욱 넓고 깊은 차원으로 다듬고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생각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을 주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노자』제49장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성인은 언제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어서 사람들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왜 그가 우리를 괴롭히는지 그의 마음을 살피다보면 그의 내면에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어렸을 때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심하게 받아 강박증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인간적인 안타까움으로 그를 동정하게 될 것이고 그를 향한 적개심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늘 마음을 비우고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도는 만물의 그윽함이니 선한 자의 보배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보존되는 것이다. 멋진 언사는 가치가 있고, 존귀한 행실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버려질 수 있겠는가?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도의 자비, 연민, 긍휼을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도의 자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겉보기에 거칠어 보이고 비정상적인 격한 감정을 내뿜는 사람(不善人)도 그의 밑바닥에 서려있는 아픈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이해해주고, 공감적으로 응답해주면, 그는 왜곡되고 잘못된 감정을 정제하고 승화시켜가면서, 자신의 자연성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도자, 만물지오,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美言可以市尊, 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미언가이시존, 행가이가인, 인지불선, 하기지유,
故立天下,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고립천하, 치삼공,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왈이구득, 유죄이면사, 고위천하귀.(노자 62장)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4<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현실적인 치유 방법은 그들의 비호감적인 성품을 탓하지 말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인품, 시간, 정신을 지킬 수 있다. 이해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원함, 처해진 상황, 난제 등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나고 괴팍한 성품뿐만 아니라 우리자신의 성품도 둥글고 자연스러운 성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성인은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정성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 성인은 겉보기에 불량해 보이고 부족함이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분명 본연의 맑고 선한 자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품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그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연성과 좋은 재능을 잘 가꿀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선하지 못한 사람의 품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가를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으로 삼을 수 있게 한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 27장)

수용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우리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점차 이해하게 되면서 그 사람을 마음으로 수용하게 된다. 수용이란 형식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정성이 깃든 인간관계이다. 우리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던 사람은 생각 만해도 불쾌한 감정이 치솟아 견디기 힘들어 그를 마음에서 밀어내기에 급급한데, 어떻게 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정신(혼)과 육체(백)가 하나로 합해져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정기를 모아 유순해지는데, 어린아이의 상태처럼 될 수 있는가? 잡념을 깨끗이 씻어내고 깊이 관조하는데 흠이 없을 수 있는가?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위자연으로 할 수 있는가? 감각기관과 외부세계가 접촉하는데, 고요함을 지킬 수 있는가? 모든 방면에 통달하면서 계략을 쓰지 않을 수 있는가?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재영백포일  능무이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위호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지호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생지축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불재  시위현덕 (노자 10장)
이 문장은 개인의 수양과 인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포일’은 수양을 통해 나 자신의 혼과 백의 합일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분별하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합일하는데 장애가 되는 대립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자는 어린아이처럼 지모와 탐욕이 없고 깨끗한 현람의 상태에서 주변의 사람이나 생명체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 주위에 분명 호감이 가지 않고 볼수록 싫은 사람이 있다. 사람이 보기 싫을 때는 이유가 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의 특유의 단점이 있을 때 그를 마음으로 수용할 수 없다. 로저스의 말처럼 “수용은 이해와 관련되지 않으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싫어할 때는 그 사람의 특유한 단점만이 싫어하는 이유가 되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분명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 우리들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식이나 환경에서 익숙해진 습관 등은 우리들의 고집과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잣대로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 ,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노자 28장)
노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과 같이 대립적인 이분법으로 나누는 그릇됨을 지적했고, 있음(有)과 없음(無)이 서로 생겨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포함하고,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듯이 모든 것은 서로 상관적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이치, 자연의 이치는 대립이 아니라 상호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배타적으로 대할 때 나와 너는 모두 소외될 수밖에 없다.『노자』제4장의 ‘和光同塵’은 서로 상생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빛과 먼지, 즉 인품이 좋은 사람이나 인품이 천박한 사람이나 알고 보면 본연의 자연성은 다 같기 때문에 서로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포일’은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3<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의 고요함(靜)은 그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고요함 그 상태가 아니다. 변화(動)속에서의 고요함이다. 고요함(정)은 마음을 비우고 본연의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일상의 비본질적인 잡다한 일에 욕심내어 시달리고 지치면 ‘자기다움’의 자연스러움이 이지러져 불안증에 시달리게 된다. 고요함속에서 마음은 불안증을 유발하는 사욕, 미움, 질투, 분별심 등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삶을 새롭게 살리는 生氣를 얻을 수 있다. 삶의 핵심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경험으로 내안의 가능성을 발휘하면서 견고한 의미로 채워가며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데 있다. 生意는 고요함 속에서 자기 성찰에 따른 새로운 삶의 희망으로 작용하여 더 이상 불안으로 동요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는 길목으로 향하게 된다.
본연의 자연성은 도를 품수 받은 마음의 뿌리이다. 노자는 지혜의 빛으로 맑은 본연의 자연성을 돌이키면 자연 닮은 삶을 살게 되어 자신에게 어두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즉 본연의 자연성을 따를 때 불안과 염려는 사라진다. 노자는 마음에 불안감이 전혀 없는 덕을 깊게 머금은 사람을 和氣 넘치는 嬰兒에 비유했다.

含德之厚, 比於赤子,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함덕지후, 비어적자, 봉채훼사불석, 맹수불거, 확조불박.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골약근유이악고. 미지빈모지합이전작, 정지지야.
終日號而不사,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 지화왈상, 지상왈명.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물장즉노. 위지부도. 부도조이(노자 55장)

노자는 우리의 자연성을 회복하여 화기 넘치는 삶을 살라고 했다. 화기 넘치는 삶이란 안정된 마음에서 비롯되며, 안정된 마음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온한 상태를 말해준다. 평온한 상태는 마음 본래 자연성을 회복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상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능히 일체를 포용하고, 포용하면 편안하게 공평해 질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면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은 모든 존재자가 근원에 있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비롯된다.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집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낙여이, 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노자 35장)

우리는 일생생활에서 끊임없이 압박하는 삶의 장애물로 수시로 불안증에 시달리지만, 그때마다 도의 품성이 내재된 본연의 자연성으로 회심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자연과 부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과 부합된 삶 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도와 같아진 사람은 도 역시 그를 즐거이 얻는다”고 했고, “대상을 지키면 천하 사람들이 그에게로 돌아온다”고 했으며, “귀신이 자연에 따르는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심리적인 불안증을 치유하여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모든 것을 이해, 수용, 공감, 적응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리적 불안증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해하는 마음’, ‘수용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적응하는 마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마음’을 살펴본다.

첫째, 이해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마음이다.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 깊이에 있는 무의식 상태까지도 세심하게 이해한다면 감정을 잘못 건드려 고통을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란 쉽지 않지만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처럼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열어 놓았을 때 가능하다. 마음을 ‘느끼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나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미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 때, 상대방이 기뻐하면 우리도 환희의 감정을 느끼고, 상대방이 슬퍼하면 우리도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삶을 형성해 나간다. 인간의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가정, 직장,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喜怒哀樂을 모두 경험한다. 인간관계속에서 체험하는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은 우리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들만 만난다면 좋겠지만 우리들의 성향과 너무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고, 그들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면 우리는 미연에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개인적인 고유한 성품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성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신뢰하며 그 생각대로 행동하며 살고 있다. 주관적인 생각과 행동은 가정환경이나 자신의 관심분야의 지식을 추구하면서 다져진 사고의 결집체에서 우러나온 것일 뿐이다. 그것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보편적인 척도 혹은 기준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념이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은근히 배타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옳고 상대방의 생각은 그르다고 보는 이분법적인 편협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다양한 삶의 형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삶의 형태에 맞추려고 하는 독단적 행태이다.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보듯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故物, 或行或隨, 或허或吹, 或强或羸, 或挫或휴,
고물, 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좌혹휴,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시이성인거심, 거사, 거태.(노자 29장)

노자에 의하면 현명한 통치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이해하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본연의 순박한 상태로 회심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반드시 상대방의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자신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성격적인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늘 만날 수밖에 없는 가족, 직장동료, 친구, 선후배들이 우리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없다. 우리가 그들 때문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갈 것이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흡흡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노자 49장)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2<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2) 심리적 불안증 치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과도한 업무와 직장 상사나 동료 간의 불화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심리적 불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기도 한다. 심리적 불안증의 치유목적은 마음의 평정을 구하는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구하기 위해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취미활동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안증은 해소되지 않고 마음의 평정도 구하지 못한다. 리처드 칼슨에 의하면 기분 좋은 감정은 우리 마음속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경험한다. 즉 뚜렷한 이유 없이 존재하는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평온이며, 이것이 곧 평정심이다. 누구나 삶의 불안증을 경험하지만 빨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평정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바로 우리 자신의 책임이며 고통을 해결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자신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가? 고통은 삶의 과정에서 늘 따르게 마련이고, 고통을 총체적으로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통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삶의 지혜이다.

노자사사로운 집착과 인간적인 갈등 속에서 늘 강박증에 시달려 자신의 본연의 마음바탕과는 다르게 분열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靜)하다”(歸根曰靜)고 권고했다. 뿌리는 우리의 본연의 마음바탕이다. 불안한 상태에서 표층으로 분열된 마음을 내면으로 모아 내적 고요함(靜)을 찾으라는 것이다. 불안은 자기의 내면을 살피는 계기가 된다. 불안과 관련하여 하이데거도 노자와 유사한 관점을 갖고 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노자 16장)

하이데거에 의하면 불안은 현존재를 일상성에서 벗어나 본질적으로 자신을 그의 가장 고유한 “세계-내-존재”로 개별화시킨다. 즉 불안의 근원적인 기분은 현존재를 세인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여 “유일한 자기다움”을 살필 수 있게 한다. 불안에 직면해서 마음을 안으로 모으고 내밀하게 자신을 반성하여 자신의 불안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통찰하는 과정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다. 불안의 원인은 외적인 요인보다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내적인 요인에 있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 52장)

우리는 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남들보다 우월하고 명예롭고 물질도 많은 존재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주위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즉 문제의 요인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여 대립시키는 데 있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1<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1. 건강한 마음

인간의 삶에 있어서 고통은 마음의 불안정한 상태를 유발한다. 인간은 남들로부터 무시당했을 때, 낮선 환경 속에서 적응하기 어려울 때, 자신감을 잃었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과 관계맺음이 원활하지 않을 때, 소외감을 느낄 때 고통을 받는다. 고통은 견디기 힘겨운 것이지만, 사람들은 고통을 통해서 그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살피게 되고 구체적으로 절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고정 불변한 상태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삶은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혹은 나쁜 방향으로 바꾸어진다. 사람들은 마음의 병이 어려운 가정환경, 부당한 직장환경, 부조리한 사회 환경 등 외적인 요소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외적인 요소는 마음의 병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더욱 근원적인 마음의 병의 요인은 우리 자신의 내적인 마음에서 온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리처드 칼슨(Richard Carlson)은 스트레스를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한다. 그는 스트레스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똑같은 악조건적인 환경 속에서도 어려움을 잘 극복하며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환경을 탓하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듯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처하면 어려움도 삶의 지혜로 받아들일 수 있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에 불평하게 되고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그러므로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늘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노자』에서 도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켜 성인이라고 칭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음이 정화되어있어 인간이나 사물을 있는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즉 그들의 마음이 맑아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아 왜곡된 인지를 하지 않는 虛心, 無心의 상태에 있게 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자연의 도가 마음에 내재해 있다.『노자』에서 건강한 마음(정신)은 마음을 비워 無欲, 知足, 知止할 수 있는 허정심의 상태를 일컫는다. 탐욕이나 지모에 얽혀 있는 마음은 자연의 道로부터 벗어난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의 소유자는 자신의 고유한 삶을 자기답게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려고 한다.

노자는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총명(智)하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明)하다”고 했듯이, 건강한 마음은 자기존중, 자기수용, 자기이해 등으로 자기의 본성을 스스로 알아가는 마음이다.

“知人者智, 自知者明.”(노자 33장)

자신의 모습을 자각할수록 외적인 고통에 상처를 덜 받게 되고, 자신의 약점 때문에 열등의식으로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연민으로 받아들이면서 약점을 보완할 새로운 의욕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를 보고, 자신의 가치를 느끼며, 자신을 존중한다.

자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맑은 거울처럼 마음을 비출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내면에 욕망이나 지모에 얽힌 불안정한 흔적이 있는지 살펴 본연의 자연성을 가릴 수 있는 장애요소를 덜어내야 한다. 건강한 마음은 자연의 도와 일치하는 마음이다. 마음속에 탐욕이나 분별하는 왜곡된 주관의식 등이 얼룩으로 끼어있다면 제대로 마음을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건강한 마음은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는 무심, 허심의 맑은 경지의 상태이다. 분별하는 자의식 없는 마음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虛心᛫ 無心이다. 虛心᛫ 無心상태에서 마음의 고요와 맑음을 지켜나갈 수 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노자 16장)

노자는 본연의 고요하고 맑은 자연성으로 외적사물의 이치를 살필 수 있다고 했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是以聖人, 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시이성인, 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노자 47장)

노자가 “지혜의 빛을 적용하여 내재된 밝은 본성을 돌이키면 자신에게 재앙이 따르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비워있으면 세상과 본연의 자연성을 지혜의 빛으로 살필 수 있다. 노자는 건강한 마음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직관을 통해 자연성을 성찰하는 것을 중시했다. 자연성을 성찰하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세속의 욕망을 정화시키는 수양상태에서 가능하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 52장)

사람들은 대부분 늘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주객을 나누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 편중해서 행동하기 마련이다. 노자에 의하면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잘 닦아 자연의 이치에 따라 행동하면,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자신을 보듯이 볼 수 있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자손이제사불철,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수지어신, 기덕내진, 수지어가, 기덕내여, 수지어향, 기덕내장,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수지어국, 기덕내풍,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오하이지천하연재, 이차.(노자 54장)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을 보듯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하며 수용하고 포용하며 함께할 수 있다.그러므로 노자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성인)은 자신의 반듯하고 청렴하고 정직한 성품을 사람들과 구별하여 돋보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좋은 인품(빛)으로 주위사람들에게 은근하게 혜택을 준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노자 58장)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