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it for? LEGO land in JungDo, Chooncheon threatens Historic Ruins: 유적지를 보존하는 것은 후손의 의무이자 임무이다.

 

(사진: 이양행님 페이스북)

춘천 중도 선사 유적지 보존 국민운동본부(황문식 상임대표)는 오는 11월 14일 춘천 중도 선사유적지 보존을 염원하는 천신제를 지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어떤 종교적인 행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옛 선인들이 해 오던 풍습을 따라 국가의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천신제를 지냈던 것을 상기하고자 하는 의식임을 밝혔다.

춘천 중도 레고랜드 개발로 발견된 문화재 발굴, 선사 시대 유물을 비롯 청동기 시대의 유물의 발굴은 세계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강원도(최문순 도지사,자유한국당)와 래고랜드사의 하청 개발 사인 엘엘사는 그곳에 고층 아파트를 짓고, 레고랜드를 유치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한다.

레고사와 강원도는 자금 부족과 땅 매각 문제에 걸려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관심은 그곳의 개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관심을 가지며 향후 정부의 움직임에 주시하고 있다.  즉, 개발을 하는 지자체가 유적지 발굴에 대한 유적지 보존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고, 유적을 이전하는 방안으로 개발을 추진하였다고 하는것이 문제다. 유적지에서 유적이 이전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최동용 춘천시장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춘천시 중도 레고랜드 사업에 대해 ‘춘천중도선사유적지보존 국민운동본부(이하 중도유적지보존본부)’는 11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시행사 엘엘개발의 유적지 훼손과 강원도의회의 고층 아파트건설 이야기를 비판했다.

레고랜드 시행사인 엘엘개발은 중도 유적지 내 청동기시대 4-2번 무덤 위로 공사차량을 운행시켜 훼손시켰다는 사실이 문화재청 공문서(‘17. 11. 08. 발굴제도과-12882)에 의해 드러났다.

중도유적지보존본부가 밝힌 엘엘개발의 유적지 훼손은 이외에도 복토공사중인 H구역에 대량의 쓰레기를 투기한 혐의와 문화재청의 복토지침을 위반한 혐의 등 다수다.”(더뉴스 기사 참조, 12/12/2017)

“이들은 “중도가 관광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레고랜드가 추진된 지 벌써 11년이 되어가고 있다”며 “수천 년 조상 무덤이 파헤쳐지고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유적이 개발의 명분 앞에 폄훼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3년 10월 강원도 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던 레고랜드는 이미 2천억원의 대출이 발생하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강원도 몫이 되었다”며 “2014년 이후 4년간 4번의 착공 약속과 수억원의 착공비용은 도민 기만의 수단이었음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기차 참조, 10/24/2018)

“당초 대출금액 중 본공사비 반영을 놓고 논란이 됐던 공사비용 지급은 도가 800억원을 투자,자산을 취득한 뒤 레고랜드에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도는 도의회에서 동의안이 통과될 경우 곧바로 멀린사측과 서명식을 갖고 설계변경 등 후속일정에 착수,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본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강원도민일보 기사 참조, 11/13/2018)

결과적으로 한국은 강원도의 자연경관을 훼손하면서 외국 기업인 레고랜드를 유치해서 지방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명목이 있지만 과연 도민들이 가져갈 수 있는 혜택은 얼마나 될 것인가? 발견된 선사 유적지를 보존하면서 유적지를 지키고 보호하는 국립 역사 박물관의 건립은 차라리 타당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예로 그리스의 델피의 아폴로 신전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첩첩산중인 델피가 국제적으로 더 알려지고 아폴로 신전과 그리스의 역사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델피는 아폴로의 신전을 넘어선 의미의 신화가 역사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적지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파트라시에서 꾸불꾸불 대관령같은 산길을 달려 5시간만에 도달한 델피에서 신과 자연, 역사와 신화, 그리고 현재를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연인들이, 부부가 나란히 역사의 현장을 되돌아보는 것 만큼 귀한 배움과 가르침이 또 있을까…

델피로 인도했던 친구의 남편이자 남편의 친구인 페노씨는 그리스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유적지, 아크로 폴리스를 비롯한 수 많은 유적지의 보존에 힘썼던 선조들의 노력과 세계 1.2차 대전에서, 독일이 그리스의 유적지를 파괴시키려고 던졌던 수많은 폭탄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서 우리는 그의 그리스인의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후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역사적인 가치와 보존에 대해 고개가 숙여졌다. 역사 유적지는 경제 부흥이라는 또는 지역경제를 위해 훼손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지켜져서 우리 후손들도 후일 선조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는가를 알게 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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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4) 에드워드 P 톰슨

톰슨,Edward Palmer Thompson(February 3, 1924-August 28, 1993)은 사실 우리에게 문화이론가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역사관은 항상 아래로부터의 역사, 즉 민중의 능동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위로부터의 역사라할 수 있는 제도나 구조에 관한 역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제도나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역사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그의 대표작인 <영국 노동계급의 형>은 호가트와 윌리엄즈의 저작들보다 시기적으로 약간 늦었지만 톰슨의 이러한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저서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톰슨은 역사는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특정 주체에 의해서 끊임없이 전개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역사적 특수성에 경험적으로 기초하면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역사적 행위의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계급형성에 문화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정리하고 있다. 계급은 딱딱한 범주가 아니라 대립되는 이해 관계에 대한 감정과 대립이 나타날 때 비로서 생기는 역사적 현상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문화에 해당하는 집단적 상호주관성 collective inter – subjectivity 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계급의식이란 문화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계급 경험이기에 역사에 대한 톰슨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문화적 전통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계급의식과 문화가 형성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톰슨은 ‘경험’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에 따르면 경험이란 “서로 연관된 여러 사건이나 여러 번 되풀이되는 같은 종류의 사건에 대해서 개인이나 사회 집단이 보여주는 정신적, 정서적 반응”이다. 따라서 경험이야말로 인간의 창조적 가능성의 터전이며 현실에 대한 이해를 획득하고 각성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정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적 의식을 단순히 사회적 존재의 반영으로 파악한데 반해서 톰슨은 존재와 의식 사이에 경험이라는 매개체를 끼워 넣는다. 사회적 존재조건, 즉 구조가 인간에 그대로 압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구조와 대화하는 형식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주어진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자율적일 수 없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새롭게 닥치는 경험에 대응해 나가는 방식에서 배우고 깨달으며 다시 주어진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계급도 이와 같이 사람들이 생산관계를 경험해 나가면서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조건들을 경험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문화인 것이다. 따라서 톰슨이 보기에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자연과학의 법칙과 역사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톰슨의 이러한 문화와 계급에 대한 관점은 당연히 구조주의자들의 역사 유물론과 대립하게 된다. 그가 보기에 구조주의자들의 사회이론은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기계론적이어서 여전히 토대/상부 구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는 문화를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간의 변증법에 위치시키면서 윌리엄즈의 <장구한 혁명>에서 보인 진화적 접근법을 반대했다. 대신에 톰슨은 문화와 계급문화 계급형성 계급투쟁에 대한 연계 사이의 투쟁 긴장 및 갈등을, 다시 말해서 삶의 어떤 한 방식의 진화가 아니라 삶의 여러 방식들 사이의 투쟁을 강조했다. 윌리엄즈와 달리 톰슨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내에서 문화 이론을 전개하였고, 윌리엄즈가 문화를 ‘총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정의한 데 반해 톰슨은 문화를 삶의 방식간의 갈등으로 개념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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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Ends Jeff Sessions’ Session in the White House

(Photo from Google Images)

지난 1년동안 트럼프의 강압적인 비난을 받아오면서도 법무부 장관의 자리를 지켜왔던 Jeff Sessions (71)씨가 11월 7일, 중간 선거가 끝난 다음날, 하원의 패배를 인정한 다음 날 트럼프의 대문을 나섰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윗에  제프 세션 장관의 후임으로 현재 법무부 차관으로 있는  Matthew Whitaker 씨를 임명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생각한 것은 세션 전 장관의 역할은 여기까지 였던 것이다. 11월 6일 중간 선거는 트럼프에게 참패였는데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지워 자신에게 어떤 면죄부를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는 지도 모른다.  2016년 러시아의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설을 누군가가 나서서 미국민이 볼때에 가시적이나마 명명 백백 가려 주는 사람으로 트럼프가 선정한 사람은 세션이었다.

그런데 세션은 자신을 뽑아준 사람의 비밀을 가리기에는 자신이 법조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로, 그는 계속적인 뮬러 특검의 트럼프 측근 조사에 대해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지킬려고 노력했던 것이 트럼프의 눈에는 가시였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계속적인 심리적, 공개적인 압박으로 세션을 몰아 부쳤고, 11월 7일 단상에서 내려왔다. 후임인 Matthew Whittaker (Acting Attorney General)은 뮬러특검에 대해 계속적으로 비평을 해 왔었다.

백악관 대변인 세라 허커비는 오늘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오전 세션장관의 사직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뮬러 특검은 계속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나 이제는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될 지 관심을 모으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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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새만금에 태양광 왠말인가? : SK Government Plans to Build Solar Plants on the Saemangeum Seawall: Fishermen and Farmers Protest

(Photo from Wikipedia)

부안 새만금에 태양광 발전 왠 말인가? 

전라북도 지방에 새만금(만경 평야와 김제 평야를 합친 다는 뜻)이라는 방조제(지난 1991년 사업 시작, 2010년 4월 27일 준공)는 군산, 김제, 부안에 이르는 33.9km 의 방조제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등재되어 있다. 애시당초 새만금 간척 사업은 갯벌과 바다를 막아 농지를 확보하여 식량 자급을 위한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 간척사업은 전북 지역의 곡창지대인 이리 지역과 아울러 곡창지대로 불리울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고 그 당시 신문에서는 대대적으로 광고와 홍보를 했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 SNS 는 새만금 방조제에 콩크리트를 치고 그 위에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한다고 해서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지역 주민들이 발끈하고 일어났다.

(사진: 서동진 박사 페이스 북에서)

서동진 박사는 그의 페이스 북에 새만금호를 살리는 일에 우리 모두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었다.

“새만금호 바닥이 완전히 썩어서 해수유통 알았습니다.  뜬금없는 태양광이라뇨. 30년동안 속았으면 됐지 무슨 미련이 남았습니까. 유종근 도지사는 새만금 인근 팔아 먹다 커미션 먹고 감옥에 갔습니다. 김완주 지사는 8 임기 내내 MOU 맺었다고 99% 공수표 날리며 거짓말만 하다가 끝났습니다. 송하진 지사는 태양광 절대로 못한다.  그런 계획 없다고 하다가 입에 침도 마르기전에 태양광만이 길이다 외치고 있습니다. 설마 일자리 10만명 믿고 있는건 아니겠지요.  단연코 부안이 길은 새만금 갯벌 살리는 길뿐입니다. 내년 넘어가면 인구 5만도 어려울 같습니다. 갯벌 살아나면 6만을 회복할 있습니다.  태양광이냐 황금 갯벌이냐.  지역주민들이 뭉치면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

먼저 새만금 방조제가 생긴 이후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 수 백 종의 수산 어종과 철새와 수산 생물들의 보금자리를 잃었고 그 결과 갯벌에서 조개를 채취하고 낙지를 잡고 굴을 땄던 어부들은 하루 아침에 직업을 잃고 다른 도시 지역으로 떠날수 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방조제 건설같은 임시적인 일 자리 창출을 위해 수 백년간 바다를 업으로 삼고 살아온 어부, 농부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지난 10년 전에는 MB 정부가 4 대강 개발 사업으로 국민 일자리 창출과 물부족 해결,홍수피해 해결,수질의 향상,다양한 생태하천 구역을 조성,국민 여가문화 수준 및 삶의 질 향상,녹색뉴딜 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견인,첨단IT기술을 동원한 체계적인 관리,물 관리 글로벌리더로서 국가위상 제고.녹색교통 수단인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강 정비 사업을 한 답시고 국민의 목숨줄인 강을 생물이 살 수 없는 녹조라테로 만들었고, 국민 일자리 창출을 만든다고 광고를 했는데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는것이 사실로 드러났었다. 그 십년동안의 정부의 부패와 국민의 삶을 도륙한 결과로 국민들의 촛불은 횟불로 바뀌어 두 전 대통령이 법의 심판 과정에 있다.

촛불 국민이 선택한 문재인 정부가 다시 지역 주민이 원하지 않는 사업을 벌이며 빈축을 사고 있다.

해양광 발전과 태양광 발전이 전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 글로벌 워밍으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있는 속도가 빨라졌다. 물론 Fossil fuel 이 공범 중의 공법이다. 그래서 전기 자동차의 수요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도 연근해 바다에 해양 간만을 이용한 발전소를 건설하여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발전소를 건설한 이후, 해양 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고, 결국 해양 어종이 살지 않은 죽음의 바다로 변해가고 있다.

태양광 발전을 하므로서 물론 화석 연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어 자원이 없는 한국 같은 나라는 정말 권장할 만하다. 그런데 꼭 새만금인가? 꼭 새만금이어야 하는가? 차라리 방조제를 헐어 다시 갯벌을 살려서 집을 나간 어부를 다시 돌아오게 하고,  갯벌 가까이 있는 농지에 마늘을 심고 양파를 심는 농부를 통해 농.어촌을 살리는 것이 더 실속있는 정책은 아닌가?

막무가내로 정책을 추진하는 지방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부안에서 주민들이 성명서를 냈다.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은 지역 주민을 먼저 구하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될 것 같다.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 아닌 수 천 년 이어온 가문을 잇고 가업을 잇는 사업이 곧 진정한 일자리 창출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백두대간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끝닿은 서해안에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갯벌이 있다. 육상생태계와 해양생태계가 만나는 갯벌은 바다생물의 70% 알을 낳으며 성장기를 보내는 생명의 모태가 되고 있다. 갯벌은 육지에서 쏟아져내린 유기물을 걸러 정화시키는 인체의 콩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바다와 육지의 거대한 순환고리이다.

갯벌은 대대로 수탈당한 민초들의 생명을 이어준 삶의 터전이었다. 하구가 막히지 않은 동진강과 만경강이 만나는 새만금갯벌은, 수많은 생물종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서해 황금어장은 어민들의 목숨이자 식량의 보고이다. 이러한 천혜의 자원인 갯벌을 지난 40 동안개발이름을 내세우며 파괴해왔다.

새만금갯벌의 비극이 결국 위도 어민들의 고통을 낳고, 위도의 고통은 부안의 피눈물을 불러왔건만, 아직도 우리는 새만금갯벌이 죽는 재앙의 고리들이 몰아닥칠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야 알았다. 바지락·동죽·백합이 사라져가고, 방조제 밖에서조차 전어와 쭈꾸미, 모든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소수 재벌건설업체들이 정치권과 야합하여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고 있음을 뒤 늦게야 깨달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음을 알았다. 자손만대 우리의 삶터에, 아이들의 미래에 재앙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았다. 죽임의 굿판을 벌이며 폭력의 광기를 휘두르는 무리들의 무지와 오만을 알았다.

지금 순간에도 저들은 아름다운 고군산군도를 허물고 조상들의 혼이 담긴 문화유적지마저 허물어 바다에 쓸어넣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밑빠진 독에 물붓듯 쏟아붓고 있는 새만금간척사업은, 지난 13 동안 17천억원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오르는 공사비가 들어간 공사비보다 많은 해괴한 사업이 되었다. 공사비를 얼마나 퍼부어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극단과 반목의 대립을 넘어 상생과 화해의 장을 마련하려 한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온세상 뭇생명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섬기면서 생명가치를 찾아가고자 한다. 살생과 폭력을 넘어서서, 뭇생명들의 저마다 타고난 고유한 품성들을 섬기고 모시려 한다. 부안사회에 살림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면서 지속가능한 부안공동체를 꿈꾸려 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어 있는 생명과 평화의 길을 기꺼이 것임을 엄숙히 다짐하는 바이다. 우리의 길은 흔들림 없는 믿음 속에서 희망의 미래를 열게 것임을 확신한다.

이에 외로운 투쟁을 계속해온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새만금갯벌을 지키려는 모든 사람들의 뜻을 모아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으로 거듭 남으로써 기필코 새만금 갯벌을 되살려 후세에 물려줄 것임을 선언한다.”

2004 5 9

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

여러분 잊으면 안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역사 입니다. 역사를 잊으면 그 아픈 역사는 다시 재발됩니다. 제주 강정마을도, 성주 사드설치도, MB사대강도, 모두 따지고 보면 역사의 아픈 기억들입니다. 새만금 간척지를 다시 원래로 돌려 놓는 일이 지역 주민이 살고 국민이 건강하게 사는 일입니다. 발전이라는 이름아래에서 획책 되어온 수 많은 훼손으로 재벌은 더 강한 갑의 성을 쌓았고 대다수 국민의 삶과 권리는 을이라는 단어로 하락되면서 또 얼마나 많은 인권이 유린된 채 살아야 할까요. 자연 환경보전이 그 답입니다.

코리일보는 자연 환경 보호에 앞장서서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대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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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리차드 호가트, Richard Hoggart (September 24, 1918-April 10, 2014)

호가트는 1946년부터 59년까지 헐 대학에서 성인 교육 담당 강사로 문학을 가르칠 당시 성인 교육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교재인 <문자의 이용>을 저술했는데, 이 저서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서전적 방식으로 노동 계급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다. 바나 노동자들의 선술집, 그들이 즐겨보는 신문이나 잡지, 그들의 가정에서의 위치, 남녀 관계, 언어 형태 등이 소상하게 묘사되는데, 이를 통해서 대중적 오락이나 이웃간의 사회적 유대, 그리고 가족 관계 등을 연결시키는 작자의 개인적 경험이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특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가 2부, 즉 호가트의 어린 시절인 1930년대 당시의 노동계층문화를 묘사한 ‘과거의 질서’와 1950년대 새로운 형태로 대량생산된 오락의 위협에 처한 전통적 노동계급문화를 묘사한 ‘새 것에 대한 양보’로 구성되어있다

이 책에서 호가트는 전쟁 전의 노동자의 풍요로운 계급 문화와 전후 새로이 등장하는 대중문화의 대비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30년대의 노동자 계급 문화는 풍부하고 풍요로운 생활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이는 민중 스스로 공동체적으로 만들어 낸 문화이다. 반면에 50년대 당시의 대량 생산된 미디어 문화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면서, 이 새로운 형식의 대중오락은 무책임하고 대리적인 것으로 노동자 계급의 전통적 미학을 잠식하고 건강하던 노동자 계급 문화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호가트에 의하면 노동자 계급은 전통적으로, 혹은 최소한 지난 몇 세대동안 다양한 예술을 즐길 수 있었으나 이제는 이러한 예술 양식들을 일상생활과는 무관한 하나의 도피로 여기게 되었고, 진짜 생활은 다른 곳에서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 문화에 의해 50년대 노동자 계급의 문화는 30년대와 같은 풍요로움을 잃고 황폐화 되어간다고 보고 있다. 특히 문화적 쇠락의 중요한 예로 대중소설을 꼽으면서 이러한 쇠락의 원인이 대중문화의 소비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들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런 점에서는 그의 문화분석이 리비스가 행했던 분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문화적 자산 (cultural capital)에 대한 강조 혹은 교육을 통한 도덕적 변별력으로 노동계급 문화를 해치는 대중문화를 선별적으로 즐기라는 권유하는 부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호가트의 비판 작업의 결과는 대중문화의 형태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그 구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호가트와 공유학파의 가장 큰 차이는 1930년대 노동계급 문화에 대한 호가트의 애정이다. 아놀드나 리비스학파들이 1930년대 노동계급 문화 전반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표했는데 반해서 호가트는 이 시대의 노동계급문화를 건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1950년대 노동계급의 문화에 대한 호가트의 진정한 관심은 노동계급의 도덕적 몰락이 아니라, 노동계급에게 전해지는 문화의 내용이 점차 도덕적 신중성을 결여해 간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호가트는 노동계급이 반드시 이러한 대중문화의 조작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서 호가트는 노동계급의 미학, 혹은 대중 미학(popular aesthetics)을 일상생활에의 주된 관심 혹은 이미 알려진 것들에 대한 관심 혹은 탐색하기보다는 보여주는 것에 대한 선호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대중미학은 이러한 문화생활을 통한 일상생활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강화, 즉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이 즐겁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호가트의 주된 관심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형성한 특징적인 태도와 관계에 있었다. 노동자 계급 문화의 양식과 제도에 구현된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 마치 그것들이 어떤 특정한 텍스트인 것처럼 노동자 계급 문화를 읽으려 했다. 이를 위해서 고급 문화/저급 문화의 구분에 관한 그때까지의 문화 논쟁의 입장을 거부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호가트는 문학 연구의 분석적인 방법들을 보다 범위를 넓혀 문화의 생산물들인 음악, 신문, 잡지, 그리고 대중 영화 등에 성공적으로 적용시켰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은 1930년대를 다루는 시각으로 1950년대의 대중문화를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젊은 날의 경험에 바탕을 둔 문화에 대해서는 그 구조나 복잡성을 잘 설명하고 있지만, 현대 노동 계급의 ‘청소년 문화의 풍부함’에 대해서는 그 복잡성이나 기능, 그리고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이처럼 호가트의 입장이 문화적 쇠락의 원인을 대중문화에서 찾는다는 점과 그 대안을 교육에서 찾고 있는 면에서는 리비스주의와 공통점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된 관심이 노동자 계급의 문화에 지향되어 있다는 것과 궁극적으로는 리비스주의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저서를 통해서 호가트는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학자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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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up of Poem ~~ 시인래고향/김서경

시인래고향
아이빈충만,
추풍유열조,
아심정강무,
월광화피안.

시인이 고향에 드니
내 귀가 빛의 소리로 가득차고
가을 바람 불어오니 새들도 기뻐하네
아늑한 내 마음의 뜰에 내리는 저 춤사위
달빛아래 그대의 얼굴 꽃으로 피네

Un poeta se encuentra en su ciudad natal.
Mis oídos están llenos del sonido de la luz.
El viento del otoño sopló, así que los pájaros están felices.
Esa danza que cae en el patio de mi corazón.
Florece en tu cara bajo la luz de la luna
(In Spanish)

A poet is in his hometown.

My ears are filled with the sound of light.

The autumn wind blew, so the birds are happy.

The dancing falls as in the courtyard of my heart,

Blooming in your face as flower under the moonlight.

(In English) written by Corih

*** 오랫만에 한 시를 써 보았습니다. 이 시는 지난 주에 서형삼 시인께서 올려 놓으신 한 시, “추향” 에 대한 답시 입니다. 서형삼 시인의 한 시를 음미할 수 있게, 그래서 답시를 쓸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음에 대해 서형삼 시인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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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oral Reef will Die in 12 Years with 1.5 Degrees Celsius Increase in Temperature

(Photo from Google Images: Coral reefs are dying)

해마다 지구 이곳 저곳에서 발생하는 기상 이변으로 인해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UN report 에 의하면, 섭씨 1.5도가 상승하게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상황들을 열거하고 있다. 지금 상태로 가다보면 바로 12년 후에는 전 세계인은 급격한 식량난에 전쟁을 불사하게 될 지도 모른다.

기상이변이 왜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심각한 지는 19세기의 과학자들도 이미 예견했지만 그 당시는 지금처럼 SNS 기능이 활발하지 않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 같다.

대기 가스의 심각성은 온실 효과를 불러오며, 지구 온난화 현상을 초래한다. 기상 이변은 세계 각지가 예기치 않은 홍수나 가뭄, 그리고 산불로 인해 농지를 잃게 되고, 해수면의 온도 상승은 결국 바닷속의 산호초를 모두 죽게 만들어 해양 생태계를 말살시킨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는 것 또한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하와이의 오하우 섬의 북동쪽의 섬 하나를 지도상에서 지우고, 일본의 섬 하나를 지워서 일본이 러시아와 영토 전쟁에서 불리하게 되었다는 뉴스도 접했다. 우리 스스로 지구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는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우리는 입을 모은다.

잡힌 생선의 배 속에서 플라스틱이 가득 들어 있었다는 뉴스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Live Science 에 따르면 대기중에 있는 방사선을 흡수하는 것을 “온실가스”(greenhouse gases, GHG) 라고 한다. 이 온실 가스 효과는 지구 온난화를 초래한다. EPA에 따르면,  온실가스는 수증기, 즉 물((H2O), 이산화탄소(CO2), 메탄가스(CH4), 질산(N2O),등이 있는데  산소(O2)가 대기상에 두 번째로 많은 가스임에도 불구하고 산소자체가 열적외선을 흡수하지 못한다고 Lasell College 교수인 Michael Daley가 말했다 고 한다.

자외선은 유리창을 통해 식물과 단단한 물체에 스며들고 또 쉽게 빠져 나가지만 약한 적외선은 안에 들어왔지만 나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안에 갇히게 되어 결국은 온도를 높이고 그것이 소위 온실 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산호초가 사라지면 플랑크톤이 만들어 질 공간이 형성 되지 않고, 물고기의 서식처가 사라지므로 인해 인간의 먹이 사슬이 깨지는 것은 물론 최근 플로리다 주 해변가에 고기떼가 썩어서 그 썩은 냄새가 다시는 해변을 찾고 싶지 않게 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자연과 환경 보호가 우선되어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할 길도 가능하면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또는 가까운 거리는 도보를 하면서 건강을 챙긴다면 이것 또한 쉽게 행동으로 자연을 보호 할 수 있는 지름길 이라 할 것이다.

(Photo from Google Images )

한국의 경우, 전북 부안 새만금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을 위해 다른 나라는 갯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한국은 태양광 발전을 위해 갯벌을 훼손시킨다는 것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좀 더 심사숙고 해서 결정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현지 주민들의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예로 싱가포르 정부는 생태계 보존을 위해 갯벌을 보호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에너지가 먼저인가? 아니면 인간의 생존이 먼저 인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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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2) 문화주의의 전개

문화주의는 이처럼 자국의 문화가 전후 영국의 특수한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자본주의적 산업 생산 양식의 부활, 복지 정책의 수립, 그리고 러시아 공산주의에 대항한 서구 세력의 결집 등으로 인해 새로운 영국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과거의 계급이 사라짐으로써 전쟁 전의 영국과는 단절된 것처럼 보였고, 미국화된 대중문화가 새로운 미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영국의 문화 연구는 이러한 상황 변화 속에서 그들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이해하고 재평가하려는 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이와 같은 변화와 아울러 나타난 영국 노동계급의 ‘부르조아적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이나 이데올로기가 중류계급의 그것과 차별성이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도시 노동계급의 생활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도시 노동계급의 가치 구조와 사회 구조가 어떻게 존속되고 있는지에 대해 탐구했다.

현대문화연구센터는 1964년에 호가트가 버밍엄 대학에 설립한 문화연구소였다. 이 연구소는 본래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연구로부터 영향을 입었지만 이후 미국적․경험적 사회과학에 대해 결별하고,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에 대한 분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한 분석에서 미디어는 ‘중요한 문화적․이데올로기적 세력, 사회 관계와 정치 문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수용자들에게 대중적 이데올로기를 형성, 변형시키는 데 지배적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로 정의되었다.
그 결과 미디어의 행위적 ‘효과’보다는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성’에 더욱 주목하여 힘의 구조와 미디어의 ‘정치학’ 탐구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연구소의 연구는 곧 프랑스의 구조주의의 수입과 함께 문화주의를 복합적이고 때로 갈등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주었고, 따라서 연구소의 연구 업적이 감소되면서 영향력도 축소될 위기에 놓여 있다.
그래엄 터너 저, 김연종 역, <문화 연구 입문>, (서울: 한나래, 1995), 94 – 96면 참조.)

따라서 문화주의는 영국 피지배계급의 특이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전후 미국의 상업문화는 전세계에 범람하였는데, 같은 언어권인 영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물론 공유학파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일방적인 비난으로 일관하겠지만, 새로운 세대들은 자신들도 속해 있는 노동계급이 변혁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왜 미국의 대중문화를 즐기는가를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 의무를 느끼게 되었다.

문화주의에 속하는 대표적인 세 명의 학자들이 모두 명문대를 졸업한 노동자 계급의 출신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에서의 대학 진학률은 아주 저조했으며, 더구나 노동자 계급에게 옥스포드나 캠브리지와 같은 명문대학의 입학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전후 영국의 교육풍토가 많이 변화되었고 특히 당국의 노력에 의해서 장학금의 수혜가 확대되면서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에게 명문대학 입학의 기회가 훨씬 많이 부여되었다. 덕분에 조그마한 소도시의 빵집 딸이었던 대처여사도 옥스포드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이들은 대중문화의 주체인 대중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한다. 대중을 수동적이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대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익명적이고 원자화된 mass라는 개념 대신, 피지배집단의 유기적 결합체를 의미하는 popular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한다. 동시에 노동자를 포함하는 피지배계급의 문화를 단순히 계급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문화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므로 그 폭을 넓히려고 한다.

문화주의의 핵심적 특정은 문화의 수동적 소비보다 능동적 생산 즉 인간의 실천을 강조한다는 점에 있다. 문화주의는 문화를 교양의 개념으로 보았던 리비스나 아놀드 식의 다분히 엘리트주의 적인 관점을 비판하면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피지배계급의 이른바 ‘살아 있는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물질적 토대가 문화적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하며 문화라는 영역이 물질적 토대에서 상대적인 자율성을 누리며 적극적으로 물질적 토대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주의의 이론적 입장은 구조주의와 대립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조주의가 인간의 문화적 실천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주로 구조에 의해 모든 문화의 의미가 결정된다는 입장을 취하는데 대해 문화주의는 명백히 반대의 입장을 보여준다. 문화주의는 구조보다는 인간에,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의 경험에, 지배계급의 전략보다는 피지배 계급의 전술에 관심을 갖는다. 문화주의는 대중이 문화적 실천을 통해 자신들의 계급적 영역을 구축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찾으려 시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문화란 단지 미학적 차원에서 질이 낮은 문화가 아니라 대중의 사상과 행위를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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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mors shake Earth, Residents Fear Death

(Photo from National Hurricane Center)

화요일 오후 세시(현지 시간), Hurricane Willa, 3rd grade storm 이 멕시코의 리조트 비치 타운, 마자틀란에 도착했다. 국립 허리케인 센터는 “윌라가 멕시코 해안에 당도하면 상당히 위험한 허리케인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된 이번 허리케인은 멕시코 서남단의 해안도시 마자틀란을 치고 다시 고개를 돌려 텍사스를 바라보며 질주하고 있다.

윌라는 서부 할리스코, 서부 나야릿, 남부 시나로아, 남부 두랑고 지역에 적어도 6인치에서 12인치의 폭우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번 마이클의 피해로 아직도 심각한 상태에 있는 동 남부 주를 비롯한  플로리다 주는 다시 잔뜩 긴장하고 있다.

(Photo from USGS)

지진도 이에 질세라, 23일 하루 총 22개의 지진이 환 태평양 지진라인을 따라 일어났다.

예멘,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피지, 뉴 칼레도니아, 하와이, 알래스카, 오레곤 주등에서 발생했으며, 요나쿠니 일본에서는 5,7의 지진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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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문화주의

1) 문화주의의 기원

문화주의는 1950년대 말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대중문화 연구 전통이다. 문화주의의 특징은 문화에 대한 추상적인 혹은 이론적인 작업을 피하고 또 사회 관계의 구조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반면, 문화의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에 주목한다는 데 있다. 문화주의라는 용어는 현대문화연구센터의 전 소장이었던 리처드 존슨이 이 운동을 대표하는 세 이론가, 즉 윌리엄즈, 호가트, 톰슨의 공통되는 연구관점을 지칭하면서 붙인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의 주요한 양상을 깨고 있다. 호가트와 윌리엄즈가 리비스주의의 비판으로부터 그들의 작업을 시작하는데 비해서 톰슨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그의 기계적인 경제 결정주의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앞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문명주의는 영국에서 대중문화 연구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이 전통의 특징은 문학적 텍스트의 구조와 도덕적․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들 문화주의자들은 리비스주의의 가정들에 대해서 대부분 반론을 펴지만 일부분은 수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문화의 수동적 소비보다는 능동적 생산, 즉 인간의 작용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문화의 역동성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윌리엄즈가 문화주의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는 반면에, 호가트는 노동자 문화에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호가트는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서 리비스주의자들과는 달리, 1930년대의 노동자계급 문화가 매우 건강하였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대중문화가 도덕적 의미에서 많은 문제들을 보여주었지만 노동자들은 이것을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지각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중요한 결론 중의 하나는 자본주의의 상부구조에서 부르조아 문화는 결코 완벽한 승리를 구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 계급이나 대중이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지배계급의 문화에 무조건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리비스주의 혹은 비판이론과 구별되는 문화주의 결론 중의 하나로서 이러한 결론은 대중문화가 단순히 반동적인 쾌락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역동성이나 변화의 가능성의 실마리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서 더 잘 알려져 있는 톰슨은 그의 여러 저작들을 통해서 위로부터의 역사라 볼 수 있는 정치제도나 사회구조 대신에, 아래로부터의 역사인 민중의 역동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사회적 주역으로 등장한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톰슨은 리비스적 전통의 보호를 받던 편협한 ‘문화’개념을 수정한다. 물론 톰슨 자신도 인정하였듯이 산업화 초기의 노동자들의 삶과 문화양식에 집착하는 자신의 작업이 지나치게 회고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노동자계급의 경험을 역사과정에 다시 소개하였다는 점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계급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것을 밝혀준 것”은 실로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함께 묶는 것은 한 사회의 문화 ― 즉 문화의 텍스트적 형태나 기록된 행위들 ― 를 분석함으로써, 그 사회의 문화적 작품과 실천 행위들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행동과 사상의 유형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세 사람 외에 스튜어트 홀과 패디 화넬 역시 대중문화에 대한 친화적인 좌파 리비스주의적 입장으로 인해서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의 모태가 된 기관은 버밍엄 대학에 있는 현대문화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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