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Europe

UN Shuts Down Trump’s Decision to Mark Jerusalem as Israel’s Capital by 128-9

 

12/21 일 유엔의회는 트럼프의 이스라엘 수도 명명안에 대해 유엔 참가국의 투표를 실시했다.
이 결과 128-9로 트럼프 안을 반대한다는 국가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나왔다.

유엔참가국의 오늘 투표에 앞서 트럼프는 자신의 트윗에 누가 자신의 결정에 반대하는지 똑똑히 지켜 보겠다고 말하며, 자신에 반하는 국가에 대해 지원을 끊겠다고 말했다.

유엔은 이번 결의안으로 인해 어느 나라도 예루살렘에 어떤 외교활동이나 외교 라인도 설정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에서 트럼프에 반대하는 투표를 던진 나라들 중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나라들은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요르단,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에디오피아, 탄자니아, 사우스아프리카 등이다.

투표 불참국은 케냐,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으로 미국의 절대적인 원조를 받는 국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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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Fans the fire in Between Israel and Palestine; What’s Next?

(Photo from Google Images)

Trump 대통령은 오늘  백악관 접견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명명한다고 밝혔다. 오늘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수도는 텔아비브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다 인정하고 있는데 갑작스런 그의 발표로 중동 지역, 아랍권 국가들을 비롯하여 유럽등 전세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2016년 유대인으로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의 거부인 Sheldon Adelson 의 요청과 유대교 부흥사들에게 선거 공약으로 발표한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화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을 실천한 셈이다.

프란세스코 교황과 중국 측도 예상치 못한 트럼프의 발언에 사뭇 긴장하고 있는 듯하다. 전 오바마 행정부의 CIA 디렉터였던 John O.Brennan 씨도 트럼프의 무절제한 힘의 남용에 대해 중동에서 미국이 그동안 유지해 왔던 중립적인 자세를 흔들어 놓았다고 말하며, 아랍권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미국 대외 외교가 힘들어 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자신의 사위인 Jared Kushner에게  너무나 많은 파워를 실어주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해야 할 일을 월권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루살렘 서쪽은 이슬람교도의 성지로 알려져 있고 반대편은 유대교의 성지로 알려진 예루살렘의 수도 명명은 이제 이슬람 교도들의 분노를 이끌어 내고 있다.

세계에 상주해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에게 미국 정부는 학교에 보내지 말고 집에서 공부를 시키며, 당분간  특별히 가족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의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의 공동 수도가 과연 평화적으로 존재하게 될 것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의 세계인들의 의식속에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수도였는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으로 명명하므로서 분쟁지역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트럼프는” 물론 분쟁과 다툼이 있을 것이란 사실은 아는데 서로 협동하여 서로간에 이해를 통한 평화” 를 주장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그러한 것을 돕겠다” 고 말했다.

다음은 그가 또 어느 지역에 또 어떻게 그의 힘을 쓰게 될 지, 한마디로 공이 어디로 튈 지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로 인해 세계인들이 트럼프에게 집중된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그는 또 무엇인가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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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going Blood-Feud between France and Germany: Will it ever end?

<전상훈(이지스 커뮤니케이션 대표)의 역사평설>

독일과 프랑스의 복수혈전… 2승2패

축구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근대 이후 벌인 전쟁과 그 결과에 따른 복수극을 정리한 것이다. 2승 2패로 끝난 상태다. 히틀러가 1940년 파리를 점령했을 때, 파리의 완전파괴라는 광기를 부리는 것으로 양국 간의 복수극이 끝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양국의 전쟁과 복수가 시작되는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시대로 역사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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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전 1806년> 나폴레옹, 베를린 개선행진

1806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군대는 오스트리아를 쳐부순 후 북독일 지방의 프로이센까지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낸다. 나폴레옹 군대는 1806년 10월 27일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서 개선행진을 하고 무기고까지 접수한다. 프로이센 국민들이 큰 모멸감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패해 도망쳐오자,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3세는 영국 등과 힘을 합쳐 프랑스에 복수전을 벌여 나폴레옹을 지중해 엘바섬으로 유배시킨다. 1814년이다. 나폴레옹은 엘바섬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부활을 시도했지만, 워털루 전쟁에서의 패배로 그 시대가 막을 내린다. 그러나 프로이센 국민들의 프랑스에 대한 증오심은 강렬해 이 정도의 복수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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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 1871년> 비스마르크, 파리 개선행진

약소국 프로이센이 최강국 프랑스에게 진 빚을 갚는데는 무려 65년이 걸렸다. 1862년 프로이센의 수상으로 취임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7주전쟁(1866)에서 승리한 후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22개 소국들과 ‘북독일연방’을 창설하여 독일제국의 기초를 세운다. 유럽의 제왕을 자처하던 프랑스는 프로이센을 견제한다. 급기야 1870년 7월19일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하며 ‘보불전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에 프로이센의 일방적 승리로 전쟁이 끝난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남독일의 소국들까지 합쳐 ‘독일제국’을 창설한다. 비스마르크는 65년 전 프랑스에 짓밟힌 원한을 풀고자 한다. 독일제국 빌헬름 1세 황제의 대관식을 프랑스의 자랑인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기로 한 것이다. 1871년 1월18일 프랑스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 1세 대관식이 열린다. 나폴레옹의 베를린 개선행진(1806년 10월)에 앙갚음이라도 하듯, 독일제국 병사들은 1871년 3월 파리 개선문과 샹제리제 거리를 시가행진하며 프랑스 국민들에게 치욕을 안긴다. 알퐁소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프랑스 알사스-로렌 지방의 독일 할양, 50억프랑의 천문학적 전쟁배상금, 배상금 완납시점까지 독일군의 파리 주둔이라는 유례없는 치욕에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은 유례없이 무너졌다. 다시 프랑스는 복수의 칼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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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전 1918년> 프랑스, 콩피에뉴 열차와 베르사유궁에서 독일의 무릎을 꿇리다

프랑스가 독일에 복수하기까지 47년이 걸렸다. 프랑스는 20세기 초까지도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독일은 무서운 속도로 경제발전과 정치안정을 이루고 해외 식민지 확장에도 속도를 낸다. 알자스-로렌에서는 독일 노래가 울려퍼지고, 좀처럼 실지 회복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러나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프랑스에게 복수의 기회를 선물했다. 1차 대전의 주 전장은 프랑스였다.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겪었지만 마지노선에서 완강히 버티며 독일을 물리쳤다. 4년 간의 세계대전의 승자 중 하나는 프랑스였고 패자는 독일이었다.

프랑스는 독일의 자존심을 완전히 꺾을 방안에 골몰한다. 1918년 11월 11일 11시, 프랑스 북부지역에 있는 연합국 총사령관 프랑스 포슈 원수 소유의 ‘콩피에뉴의 열차’ 안에서 독일군은 제1차 세계대전 항복문서에 서명한다. 독일군 대표단이 ‘관용과 자비’를 요청하자, 포슈 원수는 1871년 당시 비스마르크가 프랑스 대표단이 요청한 ‘관용과 자비’에 대해 “전쟁은 전쟁이다”라고 쏴붙이며 거절한 전례를 거론하며 독일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명령’한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하는 강화조약도 베르사유 궁전에서 1919년 6월 열었다. 프랑스의 간절한 복수심이 잘 드러난다. 자국 황제의 대관식을 열어 프랑스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독일은 47년만에 승전국 앞에 무릎꿇고 1871년 프랑스가 당한 것보다 더 굴욕적인 강화조약에 서명을 한다. 알자스-로렌은 프랑스에 반환되었고, 벨기에·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에게도 독일영토 일부가 할양되어 독일인구의 15%와 유럽에서의 영토의 10%를 잃었다. 그뿐인가. 해외식민지도 모두 승전국에 빼앗겼다. 황제는 폐위되었고 공화정만이 허용되어 독일제국은 사라졌다. 1320억 마르크의 천문학적 전쟁배상금은 독일의 무너진 자존심에 비해서는 단지 부록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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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전 1940년> 히틀러, 파리를 관광하다

독일이 프랑스에게 재복수하는데는 불과 22년만이 소요됐다. 히틀러의 독일이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제1차 세계대전 때와 똑같이 베네룩스 3국을 침입한 후 마지노선의 북단을 가로질러 영국 해협으로까지 진출하여 영·프군을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북부에 고립된 영·프군 30만은 됭케르크에서 영국 본토로 기적적으로 철수하였다. 마지노선을 우회돌파한 독일군은 불과 한 달 만인 6월14일 파리를 점령하였다. 6월16일 프랑스는 페탱 원수가 수상이 되어 독일에 항복을 요청했고, 6월22일 1차대전에서 독일이 항복한 바로 그 콩피에뉴의 열차 안에서 휴전(항복)협정이 조인되었다. 히틀러는 항복협정 3일 후 콩피에뉴 터를 무참하게 박살냈고, 그 열차는 독일로 실어갔다. 1차대전 당시 참전했다가 패전한 히틀러의 복수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히틀러는 휴전협정 후 3일 뒤 비스마르크처럼 파리에서 개선행진을 벌였다. 물론 저격의 위험성을 고려해 비밀리에 파리를 방문해 불과 3시간 동안 파리를 둘러보고 떠났는데, 그때의 기록영상은 지금도 프랑스인들의 굴욕감을 더해준다. 이때 히틀러를 수행한 슈페어의 기록을 보면 히틀러는 “파리를 보는 것은 내 일생의 꿈이었어. 지금 그것을 이루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였다는 소감을 말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새벽6시 르 부르제 공항에서 내려 오페라하우스, 샹제리제 거리, 에펠탑, 앵발리드, 팡테옹, 리볼리 거리, 몽마르뜨 언덕과 사르레 쾨르 성당을 차례로 3시간 여에 걸쳐 ‘관광’한 후 독일로 돌아갔다. 그때 히틀러가 아름다운 도시 파리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독일군 주둔사령관이 거부해서 파리가 파괴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슈페어의 기록에는 히틀러가 “베를린을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면 파리는 베를린의 그림자가 될거야”라고 되어 있다. 어쨋든 파리는 지켜졌다. 아마 히틀러가 파리를 파괴했다면 독일과 프랑스의 복수극은 정말 최악의 결말로 치달았을 것이다.

국가 간 전쟁에서도 이렇듯 동네싸움 수준의 자존심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개인도 국가도 자존심이 얼마나 중요한가. 복수가 더 큰 복수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는 일을 서슴지 않는 비극은 6.25 전쟁사에서도 수많이 발견된다. 누가 점령군이냐에 따라 죄없는 백성들이 부역자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우매한 비극의 역사 말이다. 물론 우리의 생활에서도 누누이 벌어지는 비극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의 본질은 제국주의 패권전쟁이었다. 다시는 이런 제국주의 전쟁이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우리땅 한반도에서 제2의 6.25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족> 내년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결승전에서 만날 확률이 꽤 높다.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양국간 2승2패 비극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나는 프랑스의 승리를 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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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ce Travel 7: From Mountains to the Sea and From Delphi to Santorini

After we left from the Altana (most comfortable and luxurious hotel in Santorini), we headed down to the port of the Thera. I checked the ferry tickets for departure time.

Turns out, the ferry was set to leave tomorrow, not today. We rushed to the ticketing office titled “Blue Jet,” and explained how we’d purchased the tickets to leave “today, not tomorrow.” The man providing service explained that since this was the second time we were changing the ticket dates, we’d have to pay extra. He was condescending and rude, claiming that I lied when I’d asked for Sunday and not Monday, raising his voice. I would have gone all out with him, but my husband decided that leaving the island was more important than winning the argument; we paid the extra fee and rushed for the ferry, which was the last to leave the Island that day.

Funnily enough, when my husband rushed over, the man who argued with me that entire time disappeared or rushed away, and we had to deal with another man, who had no idea what was going on. I wouldn’t recommend ferry service from “Blue Jet” as a result; they should have other ferry services, so try other ones instead; maybe they’ll provide better service than the one we received; which was the only sour experience in Santorini.

The ferry itself was nice. Because this was Greece, and there are many islands in Greece, the ferry stopped by Naxos, the largest island in Cyclades state. Known as the island that sheltered Zeus from god-eating father Cronus, Naxos is also the home to Dionysus, whose legend is well-known to most studying Greek mythology. The land is rich and fertile with perfect pH for wine grapes to grow; as a result, Naxos became associated with Dionysus, the god of wine and theatre all due to the exceptional soil and products in ancient world; that reputation continues to this day.

If Santorini is the Hawaii of Greece, Naxos is like a mix of DC and New York hidden in time, with marble structures, temple of Dionysus and other prehistorical ruins around, showing what was once a great marketplace and place of civilization. Yet if one were to visit it now, they’d only see a glimpse of what was once a great sea marketplace and a place of theatre, coveted by the great ancient powers, Macedonia, Roman Empire, or even the Ottoman. Anyone interested in time traveling should give it a go, even for a day.

After 5 hours on sea, the deck was wet and windy. Yet the people refused to go inside until we arrived at the Piraus Port in Athens. There will be lots of taxis in line for tourists; do not go with the first guy that approaches you; let them haggle for you. For example, we originally was following one taxi driver, who promised to take us to Athens for 70 euro, thinking it to be reasonable. However, another taxi driver entered the foray, and we were able to go to 50 euro because they were fighting. Needless to say, we did get to Athens. But feeling rather sorry (the route was surprisingly long), we gave a decent tip, and he left a happy taxi driver.

The taxi driver, if willing, will give you the current state of affairs in Greece; after all, we all know about the economic crisis that Greece faced recently. It may be a jolt of awakening bringing you back to today instead of the glorious days of Alexander the Great or Homer’s Odyssey, but it is simply continuation of life and time; it didn’t take away from the experience. Greece has existed for a long time, and will have to continuously develop and face forward.

By the time we arrived at the hotel, it was dark, and when we got to our room after checking in, we could see the lights bouncing off of the water.

The hotel we stayed at was rather old; however, the staff was exceedingly friendly and courteous, and sought to help in any shape or form they could. We ate at the dinner buffet set up by the hotel, and they were delicious, authentic and kind, just like the people at the hotel.

Next morning, we woke up early and saw the sunrise by the beach in Athens. The sunrise on the Aegean sea is a sight to behold, and one that I feel blessed to have experienced. One can’t help but wonder about the heroes of Greek myths standing by the beach and looking out to the very same Sun that I also got to see, although they knew it as Apollo’s cha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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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xit and the Decreasing Housing Prices i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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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유로에서 탈퇴한 지난 2016년 6월 기준, 한 해를 되돌아보면 특히 부동산 분야에서 런던으로 집중되어 있었던 부동산 투자가 적어도 8%-10% 감소되었다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감소된 부동산 투자는 이제 런던 근교의 부동산 시세까지 같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 이후 3배로 오른 런던의 주택가격으로 재미를 보았던 사람은 이제는 재빠르게 런던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런던에 부동산 투자를 한 사람들은 유럽에 살고 있으면서 런던에 자녀가 학교에 다니거나 아니면 천정부지의 런던 렌트 비용의 증가를 이용한 임대형 부동산 투자였다. 그러나 이젠 런던이 아닌 Woolwich (20% 증가) or Manchester  등 외곽지역의 학교와 학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런던의 부동산 시세가 상대적으로 다른 소도시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싼 이유도 있지만, 런던이 유로에서 탈퇴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다른 유럽권의 나라에 투자자들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런던의 평균 주택가격은 18million 유로에서 16.7 million 유로로 전년대비 8-10%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유럽인이나 영국인들의 런던 주택 투자는 이제 런던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비교적 교통이 좋고 학군이 좋은 지역을 선호하여 투자를 하고 있다.

유로 탈퇴와 사회가 불안하다는 이유, 특히 최근에 발생한 테러등으로 런던이 안전에 많이 취약하다는 것이 알려진 뒤로 가급적 조용한 지역으로 투자자들의 눈길이 돌려지고 있다. 이들 조용한 지역에 있는 은퇴자들을 위한 주택이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간에서는 유로의 탈퇴로 인한 인구 감소와 노동력 감소는 주택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동안 턱없이 오른 주택가격의 거품이 제거되고 있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맨체스터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로얄뱅크 스코틀랜드가 맨체스터로 이전하고 있으며, 티켓메스터도 런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맨체스터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으며, 고급 아파트가 속속히 들어서고 있다.  이로써 맨체스터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소위 “뜨고 있는 지역” 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지역은 대학의 유명세로 인해 꾸준히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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