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Editorials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5<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탐욕에는 분별지와 지모 그리고 작위가 내포되어 있고, 무욕에는 무위가 내포되어 있다. 도의 ‘질박함'(樸), ‘욕심내지 않음'(不欲), ‘고요함'(靜)은 자연 무위의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 통치자가 이기적인 탐욕으로 백성들을  수단으로  이용할 때 백성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교활한 꾀를 부리느라 통치자와 백성들은 상호 불신하게 되고 사회는 불안정하게 된다. 노자는 통치자가 이기적인 탐욕을 부리지 않고 순박하고 고요한 자연무위의 통치(無爲之治)를 행할 때 모두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보았다. 

道常無爲而無不爲.
도상무위이무불위.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무명지박, 부역장무욕,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노자 37장)

노자는 통치자의 無爲之治의 덕이 백성에게 온전히 혜택을 주기 때문에 통치자의 무욕, 무위의 중요성을 부각 시켰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오하이지기연재, 이차,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민다리기, 국가자혼,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인다기교, 기물자기, 법령자창, 도적다유,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노자 57장)

자연의 도를 인간이 깨달으면 인간 본연의 자연성은 스스로 자화할 수 있다. 자연의 도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인 제도와 예법 같은 외적인 강요와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연의 자연성이 내재한 내면의 세계를 돌이킬 때 가능하다.

노자는 통치자들이 탐욕을 줄이고 소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견소포박’을 제시했다.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차삼자 이위문불족. 고령유소속. 견소포박, 소사과욕. (노자 19장)

정치하는 사람이 총명재지와 말 재주를 버리면 백성의 행복과 이익은 백 배가 되고 정치하는 사람이 인과 의를 버리면 백성은 본래의 사랑과 효도로 돌아가게 된다. 정치하는 사람이 제도와 도구를 버리면 세상에 도둑과 범죄는 생기는 일이 없다. 위의 세 얘기로도 무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더 말을 붙이자면, 본 바탕을 나타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 사사로운 정을 억누르고 나를 위한 욕심을 적게하라.

노자는 聖智,仁義는 형식적인 文識일 뿐 실질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럴싸하게 꾸며진 문자화된 도덕규범이나 외적인 강제성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맑은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 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성 회복을 위하여 무욕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무욕의 방법으로 견소포박과 소사과욕의 소박한 생활태도를 습관화 해야 한다. 

견소포박(見素抱樸)이란 인위에 물들지 않은 소박하고 깨끗한 본연의 자연성으로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잘 다듬고 보유해야 할 마음의 모습이다. 탐욕은 마음에 근심과 불안으로 얼룩지게 하여 맑은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하는데 장애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소사과욕( 少私寡欲) 즉 외물에 대한 사사로운 욕심을 줄일때 ‘見素抱樸’ 즉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음이 사욕에 빠져있으면 마음 본 바탕은 탐욕의 그늘에 가려져서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낭비하고 사치하는 생활 습관은 끊임없이 욕심을 낳게 하여 순수한 자연성을 잃게 한다. 욕심은 검소한 생활 속에서 절제하면서 점차 줄어들게 된다. 탐욕의 끈질긴 사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맑은 본연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에 순응할 수 있다. 즉, 견소포박으로 본연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지켜 나갈 때 자연과 하나가 된 참된 마음의 회복, 즉 자연성을 회복하게 된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 ,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노자 28장)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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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and White Supremacists <전종준 워싱턴 로펌 대표 칼럼>

트럼프와 백인 우월주의

미국의 남북 전쟁은 아직도 휴전상태인가? 지난 주 UVA 대학 근처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대규모 폭력시위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여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버지니아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건의 발단은 남북 전쟁 당시 남부의 장군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를 막고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대해서는 아픈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산교육의 증거로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인종 차별적 상처를 자극하는 상징물인지 여부를 판단해서 결정하여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구호와 ‘네오 나치’의 ‘피와 영토’라는 나치 슬로건도 외치며 남부 연합기와 나치기를 함께 흔들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남부의 연합기를 높이 든 것은 노예 해방을 아직도 반대하며 인종차별을 찬성하는 깃발을 든 것이며, 나치기를 함께 든 것은 미국 성조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알트 라이트 (Alt-Right)” 즉 ‘대체 보수’로 자칭하였다. 배려와 나눔이 없는 ‘대체 보수’의 탄생은 ‘집단 이기’의 탄생을 뜻한다. 따라서 나는 이들을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부르기 보다는 ‘집단 이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인 즉, 집단 이기주의자들은 백인이나 흑인 혹은 동양인등의 인종을 이용하는 ‘이기주의’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대체 보수를 옹호하는 흑인 대변인이 있는 것을 보면 인종보다는 ‘자기 이기’ 그리고 ‘집단 이기’가 더 적절한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대체 보수의 탄생은 ‘미 합중국 (United States)’ 이전으로 후퇴시켜 ‘미국판 38선’으로 갈라진 ‘분단의 미국(Divided States)’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묻건대, 대체 보수의 탄생은 과연 미국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일부 집단 이기주의자를 위한 것인가? 이제 우리는 지도자의 능력을 실험해 볼 수 있으며 과연 트럼프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백인 우월주의자’의 폭력 시위에 대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비난을 피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반응적 묵인’이 또 다른 인종 갈등의 원인 제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에서 ‘모든 미국인 우선’이란 표현을 썻다. 그러면, 과연 “모든 미국인에는 흑인, 동양인, 그리고 한국인도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말은 그럴 듯 한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이민 정책만 보더라도 모든 미국인 보다는 백인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음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취업이민에서 영어실력을 반영하여 백인인 영국과 호주인들이 유리해 질 것이다. 더우기 FTA 협상 후 호주에게는 10,500개의 E-3 비자를 주었으나,한국과 FTA 체결 후에는 아무런 비자 혜택도 없었다. 이번 트럼프와 재협상시 한국인 전용비자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인종 차별적 대우임을 제기하여야 마땅하다.

동과 서, 너무도 먼 미국과 한국은 문화와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역사를 나누고 있다. 미국은 4년간의 동족간의 전쟁인 남북 전쟁을 치렀고, 90년 뒤에 한국은 3년 간의 동족간 남과 북이 싸우는 6.25전쟁을 치룬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는 ‘제 2의 6.25전쟁’을 걱정하는 이 시점에, 미국에서도 ‘제 2의 남북전쟁’에 대한 마지막의 시작을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가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와 분리되지 않는 한 트럼프의 몰락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면 미국의 건국 아버지가 설립한 미국의 헌법 정신과 가치는 집단 이기주의와 싸운 역사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을 믿는다. 그리고 말없는 대다수의 미국민을 믿는다.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는 법치주의와 이타주의가 승리한 미국을 말이다. 가치있는 판단이 민중을 설득하여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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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2<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당시에 강요되던 가혹한 예법의 역기능을 도가 상실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현상과 맞물린다고 지적했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정의 여러 예법 제도들이 복합적으로 관계를 맺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들이 아니라 강요되어진 왜곡된 것들이다. 순수한 예법제도가 아닌 통치자의 욕망에 부합되게 세분화된 것에 대해 노자는 다음의 비유를 들었다. “박이 흩어지면 형상이 있는 그릇이 되지만 , 성인이 그에따라 관장을 세운다. 그러므로 가장 잘 관리하는 사람은 분할하는 일이 없다.”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노자 28장)

성인은 박을 쪼개 그릇을 만들지만 박의 근본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욕망에 빠진 통치자는 박을 도외시하고 그릇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노자에 의하면 제후와 천자가 무명의 질박한 도를 지켜 무위정치를 한다면 사회와 인간의 마음을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해 줄 수 있다.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天地相合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천지상합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시제유명.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노자 32장)

노자는 사회에 만연한 인위와 조작 그리고 주례의 형식적인 허례의식을 부정하고 정치 현실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무위자연의 상도 ‘常道’ 를 제시했다. 모종삼은 “주나라 문화의 허위성에 비통함을 느껴 구제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라고 보았다. 당시의 군주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 시키기 위해 온갖 부조리와 전쟁을 일삼았으며, 빈번한 전쟁은 군주들의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강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노자는 당시의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사회 상황을 야기시킨  책임은 통치자에게 있다고 보았다. 노자가 당시의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그의 철학을 집약 시키고 전개시킨 이유는 통치자의 마음가짐과 행위에 따라 사람들과 사회상태의 안정성 여부가 결정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자 39장은 제후의 직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하고 있다. 즉 “제후와 천자는 ‘一’을 얻어서  천하의 수령이 된다. 

노자는 통치자의 직책을 ‘道’를 얻었다고 할 정도로 고귀한 것으로 보았다. 고귀한 직책을 청정하게 잘 수행하지 않으면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후는 귀한 직책을 맑고 겸손한 덕으로 지켜야 한다.  즉 제후는 내적인 수양을 통해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도와 덕의 겸손한 품성을 구현하여 마음을 조절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유위, 유사를 일삼는 후왕에게 도를 체득하여 무위유치(無爲而治)로 나아갈 수 있기를 권고했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녕, 신득일이령,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곡득일이영,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
其致之一也. 天無以淸, 將恐裂.
기치지일야. 천무이청, 장공렬.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곡무이영, 장공갈, 만물무이생, 장공멸.
侯王無以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是以後王, 自謂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시이후왕, 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사, 비호.
故致數譽無譽. 不欲록록如玉, 珞珞如石.
고치수예무예. 불욕록록여옥, 낙락여석. (노자 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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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House : Military and Civil Investigation of Sergeant Park to Restart 2<청와대: 박중사 사건 재조사 하라!>

최근, 국민인수 위원회는 박중사 자살조작 살인미수 사건을 검찰에 이관, 검찰은 다시 국방부에 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위해 민관 합동 조사를 착수하겠다던 약속은 이제 어떻게 된 것일까?

 

코리일보는 이 사건의 재조사를 위한 과정중 얼마만큼 진전이 있는 것인지, 계속적으로 살피고 있다.
다음은 박준호(박준기 중사 형)씨와 일문 일답을 통해 이 사건이 해결되고 있는 지, 아니면 오리무중인지, 아니면 누군가 여전히 은폐를 위해 꼼수를 부리는 지 살펴보기로 했다.

 

지난 6월 말 박준호씨와의 대담 내용이다.

 

기자:
지금 박중사 사건 재조사가  어느정도 진전이 있습니까?
박준호씨:
6월 27일,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저에게 알려온 소식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귀하께서 제출해 주신 서류는 소관 기관에서 처리함이 타당할 것으로 보여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소관기관에서 답변을 드릴예정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는 제출하신 민원이 세심하고 철저하게 답변될 수 있도록 직접 관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자는 발신전용입니다.” 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 사건이 왜 국방부 감사실에서 검찰로 이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사건이 군인의 신분일때 발생한 사건인데 말이다. 문제는 국방부 감사실에서 재조사를 해야 하는게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사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겉으로는 일을 하는 것 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이 사건을 유야무야 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 박준호씨에게 물었다.
“국방부감사실에서 지금 민.군합동재조사를 해야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할수없는 곳에 이관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감사실에서 육본으로 이 사건을 이관했습니다. 그런데 육본에서는  “이사건 우리가 할일이 아니다”라고해서 감사실에 돌려보내니, 감사실은 이 사건을 또 검찰로 이관했습니다. 이는 지금 한민구가 민.군합동재조사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감사실에서 하는게 맞고 또 이전에도 권익위원회에서 재조사하라고 감사실로 보낸것인데 이를 회피하며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것같습니다.
인수위도 보건부.행자부와함께 한다고 약속하고는 한달이 다 되 가도록 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두번 울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해를 돕기위해 그동안 있었던 진성준 의원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의 일문 일답을 박준호씨의 도움으로 게재했다.
아래는 이 사건, 박중사 자살조작 살인미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국회 인권위원회 진성준 위원이 국방부장관 한민구에게 묻는 질의 응답이다.

진성준 위원

진성준 의원입니다.
저는 오늘 무려 21년 전 군 내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국방부장관께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사전에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제가 실무자를 통해서 장관께 보고드리도록 했는데 보고를 받아 보셨습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예, 제가 이것에 대해서 위원님 관심사항을 듣고 관련 보고도 다시 한 번 받고 그렇게 했습니다.

진성준 위원

박준기 중사인데요.
이 박준기 중사가 94년 12월 17일에 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람은 운전사고를 냈는데 운전사고 때문에 병원에 옮겨졌다가 나중에는 다리를 절단하는 일까지 벌어졌어야 했어요.
(자료를 들어 보이며) 이게 지난 토요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인데 지금 다리 무릎 아래 부분을 다 절단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군의 수사 결과는 이 사람이 교통사고를 범해서 죄책감을 못 이겨서 당시 이송되었던 춘천에 있는 성심병원 10층 성당으로 돼 있는 방에서 3층 높이의 옥상으로 자살하기 위해서 떨어졌다, 뛰어내렸다, 그래서 다리를 아주 심하게 다쳤고 그래서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는 게 군의 수사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처음에는 의식을 잃어서 기억을 상실했으나 나중에 기억을 회복해 가요.
그러면서 자신이 아주 경미한 사고였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죄책감을 느껴서 떨어져서 자살을 할 만큼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영상자료를 보며) 실제로 당시의 수사 기록을 제가 죽 살펴보니까 94년 12월 19일 군의 수사 기록은 이 문제의 박준기 중사가 뛰어내렸다고 하는 10층 높이의, 저 성당이라고 하는 맨 위의 방입니다.
이 방이 위의 상부 유리창은 폐쇄형으로 고정되어 있고 아래가 반쯤 열리는 창이었는데 그 반쯤 열리는 창을 열고 뛰어내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반쯤 열리는 이 창의 너비가 얼마나 열리는가? 21㎝ 열린다고 수사 기록에 돼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의 체격이 175㎝에 70㎏, 가슴둘레가 123㎝입니다.
실험을 해 보니까 머리가 안 빠져 나가요, 21㎝ 열리는 창 폭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 문제 제기를 하지만 군에서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러니까 2007년도에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소를 해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이것 다 조사를 합니다.
그래서 국방부에 권고를 해요.
다른 많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박준기 중사가 뛰어내렸다고 하는 이 창틀 21㎝로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가 없다, 다시 조사해라.
그러니까 국방부가 다시 조사를 해서 진술을 한 사람 받아내 가지고 당시에 약 30㎝ 열린다, 사고 당시에는 더 많이 열렸다고 그런다, 그러니까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다 이렇게 하고 조사를 끝내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보니까 조사 때마다 창문 폭이 달라요.

2002년도 8월 29일자 민원회신문, 1군사령부 헌병대의 조사 기록에 의하면 성심병원의 총무과장 최 아무개라고 하는 사람이 진술하기를 투신사고가 발생한 후에, 박준기가 뛰어내린 뒤에 사람이 드나들 수 없도록 재발방지 차원에서 병원의 창문 폭을 축소 조정했다, 열었을 때 24㎝였다가 14㎝로 조정했다 이렇게 답변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24㎝ 열렸다는 거예요.

그러면 2008년도에 국방부 검찰단이 재조사했을 때 30㎝ 열렸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 아닙니까? 진술이 일관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21㎝ 열린다, 나중에 2002년도 조사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24㎝ 열렸다, 그다음에 2008년도 조사에서는 30㎝로 그보다 더 많이 열렸다, 이렇게 자꾸 진술이 엇갈리는 겁니다, 동일인의 진술인데…
그러니까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도대체 군의 수사를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저 위의 10층 방에서부터 박준기 중사가 떨어져 내렸다고 하는 3층 옥상 사이의 높이가 얼마나 되느냐 하면 실측하면 22m입니다.

그런데 군 수사 기록에는 15m로 되어 있어요.
이 15m를 바꾸지를 않습니다.
실제로 재어 보면 22m 나오는 것을 15m라고 막 우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22m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그런 정도로 상해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의료 기록에 의하면 머리나 이런 데는 거의 다친 적이 없어요.
그냥 찰과상 정도만 입었다는 거예요.
22m에서 뛰어내리면 그런 정도 상처가 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죽었으면 죽었지.
이게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진술입니다.
그러니까 군의 수사 기록이 초동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를 가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하물며 이렇게 민원인이 문제를 제기하면, 이것도 수 년에 걸쳐서 문제를 제기하면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서 민원인을 설득하려면 납득할 수 있는 제3의 민간 전문가라든지 중립적인 누구라든지를 불러 가지고 함께 수사를 해서 믿을 수 있게 해 줘야 되는데 아주 형식적인 수사만을 하고 그냥 덮어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우리 군을 믿을 수 없다고 트위터며 저 다리 잘린 사진을 계속 실어 가지고 우리 군을 성토하고 있어요.
장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저도 그 신문기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읽었고 보고도 받았는데 여러 차례 조사를 해서 결과가 박준기 씨의 주장과는 다른 이쪽 우리 군의 주장은 지속되고 있는데 국민권익위에서도 해서 여러 가지, 또 국방부 검찰단에서도 확인을 한 바가 있고 해서…… 저 문제는 지금 벌써 20년 이상이 돼서 여러 가지 시효는 다 경과한 일인데 저 문제에 대해서 한번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군의 조사를 못 믿으면 다른 민간과 함께 다시 한 번 확인한다든지 하는 그런 작업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진성준 위원

사건 초기에 정확하게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지고 수사 기록이 개판입니다.
만약에 거기서 뛰어내렸다면 방충망이 달려 있었는데 이 방충망이 찢어져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뛰어내렸다라고 하는 그 위치에는 방충망이 찢어져 있지 않습니다.
수사 기록에 그렇게 돼 있어요.
찢어지지 않고 어떻게 바깥으로 뛰어내립니까?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대로 21㎝밖에 안 열리고 또 높이도 다르고 말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박준기가 짚었다고 하는 지문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지문을 실제로 채취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그것이 박준기가 짚은 지문인지 어떤지가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또 옥상 바닥에 남아 있다는 혈흔도 채취해서 DNA 검사 같은 것을 안 한 겁니다.
그래서 그 혈흔이 박준기의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몰라요.
군의 초동수사가 개판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재수사를 해야 진실이 드러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진실이 드러날 수 없다면 물론 민원인의 주장도 100%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진상불명으로라도 보상을 해야 되지요.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그런데 이 사람을 내버려 두고 있는 겁니다, 자살했다고 해 가지고.
이렇게 억울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군의 수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민원인의 주장을 탄핵할 수가 있겠지요.
이런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다, 당신의 주장이 무리하다, 과도하다.
그런데 지금은 진상을 밝힐 수가 없는 거예요, 군의 초동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가지고.
그렇다면 이것은 군의 책임이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그 문제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가 조사를 여러 차례 했는데도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이 확보가 안 된 상황이라고 저도 지금까지 이해를 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군이 어떤 식으로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조치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다시 한 번 저희들이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진성준 위원

사건의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저는 군에서 이것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임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방부장관 한민구

잘 확인하고 검토하겠습니다.

***

아래의 내용은 부산 동래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 박사의 감정 결과 입니다.
동래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 감정결과입니다.

 

다) 의료감정 결과 신청인이 위 진료기록에 대해 2007년 11월 13일 부산 소재 동래봉생병원(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으로부터 받은 감정결과는 아래와 같다.

 

(1) 10층(22m 높이)에서 3층 콘크리트 옥상 바닥으로 추락 시 상해정도에 대해, “i)머리가 먼저 지면에 접촉 시 즉사,

 

ii)양측 하지로 지면에 착지 시 족관절, 슬관절 및 대퇴관절에 다발성골절 및 하지의 근육, 인대와 연골파열, 척추 및 골반 골절, 체간의 손상과 내부 장기의 치명적인 손상 혹은 사망,

 

iii)체간이 먼저 지면에 착지 시 죽사하거나 갈비뼈 골절을 동반한 치명적인 심폐질환 손상 및 간, 비장, 신장, 방관의 파열과 좌상 등과 다발성 골절 및 두부손상 등이 일어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2) 한편, 위 사고가 추락에 의한 상해인지 여부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22m 높이에서 추락 시 거의 사망하거나 신청인의 상해정도보다도 더 심각한 상해를 입을 것 같으나, 정확한 판단을 위해 이 부분의 전문의 소견이나 법의학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3) 신청인이 본 사건은 은폐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진술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우리 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신청인은 “현재 장애상태(전역이후 1997년 왼쪽무릎 밑 다리 절단수술 후 의족 사용, 지체장애 2급 등록)는 2.3m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입은 상해로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본인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후 의식을 잃기 전에, 본인이 사망하거나 기억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추정) 헌병수사관 김하용이 홍○일에게 자신의 폭행사실을 인정하면서, 사고수습을 위해 홍○일에게 원내에서 당직수위 근무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는 등 협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자, 홍○일이 과거 병원에서 환자들의 투신자살 사례를 언급하며 본인이 투신한 것으로 사고를 위장하기로 감화용과 담합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의식을 잃은 이후 본인에게 현 장애상태에 해당하는 별도의 추가 가해사실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한편, 신청인은 추가 상해경위에 대한 군 수사시록에 대해, “헌병수사관 김○용의 가해사실에 따른 책임과 수위 홍○일의 당직근무자로서 사고에 대한 책임 회피 등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술하였다. 라. 이 외에도, ‘인지보고서’에는 당직의사 정○석의 연령(30)이 실제연령(25)과 다르게 기재된 점, 병원 10층에서 3층 옥상까지의 높이(15m)가 춘천성심병원에서 측정된 높이(22m)와 다르게 기재된 점 등 객관적인 사실내용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기록들이 발견된다.
4. 판 단

 

가) ‘전공사상처리규정'[국방부훈령 제392호(1989년 9월 7일)] 제3조 제2항 및 같은 규정 별표1에 의하면, 공무수행 중 또는 공무와 관련된 사고 및 재해로 발생한 상이자의 경우 이는 ‘공상’에 해당하거나,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끊었거나 그로 인한 결과로 사망 또는 상이자는 ‘비전공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신청인이 추가 상해를 입게 된 이유가 자살을 목적으로 한 투신인 경우에는 비전공상에 해당하나, 헌병 수사관의 가해로 인해 발생한 상해인 경우에는 공상에 해당될 수 있다.

 

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결과, 신청인의 추가 상해에 대한 군 헌병대의 초동수사과정 및 수사기록에서 발견되는 수사 미진사항들은 아래와 같다.
1) 수사기록관련

 

가) 신청인이 투신한 장소로 추정된 성당 창문의 경우, 그 개장 폭(21cm)이 신청인의 신체(신장 175cm, 체중 70kg, 가슴둘레 132cm)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아니며(우리 위원회의 모의실험 결과, 머리의 통과가 불가능하였음), 반개방형 창문은 방충망이 훼손되지 않은 채 그 위쪽의 폐쇄창문의 방충망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점(개방된 창문을 통한 통과 자체가 불가능), 현장에서 발견된 손가락 자국과 혈흔에 대한 지문감식 및 혈액감정이 실시되지 않은 점 등을 통해 볼 때, 신청인이 투신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객관적인 정황증거 수집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홍○일 및 박준호가 신청인이 투신한 장소라고 추정한 현장에서 상태에 대해, “방충망이 훼손되지 않았다.”라고 일치하게 진술한 것은 ‘목격자 진술조서’와 이를 기초로 작성된 ‘인지보고서’가 조작되었을 개연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 신청인의 발견위치(후송위치)가 수사기록과는 다르게 ‘1층 현관 직상지점’이라는 후송의사 정○석의 진술과 ‘원내 급수펌프 지점’으로 확인하였다는 신청인 및 신수철의 진술이 상호 유사한 지점인 점, 수위가 신청인을 발견하고 응급실로 후송하는데 소요된시간이 7분이라고 하나 후송의사 정○석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한 점과 우리 위원회의 측정결과 최소 20분 이상 걸린 점 등을 볼 때, ‘인지보고서’의 후송시간 및 장소에 대한 기록이 부정확하거나 비현실적이라고 판단된다.
2) 상해 관련

 

가) “신청인의 상해정도는 10층(22m 높이)에서 떨어진 경우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상해정도(즉사 또는 더 심각한 상해)로 볼 수 없다.”라는 의료감정 결과 및 이와 유사한 소견을 제시한 정○석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신청인의 상해정도는 10층 성당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나) 특히, 진료기록에서 “무언가에 짓눌려서 해당부위의 연골, 근육 등 내부조직이 파열된 상해”인 ‘양측족부(발목) 압궤상’으로 진단된 점, 안면부에 대한 상해정도가 교통사고와 낙상에 의한 상해가 ‘경미하게 긁힌 정도’로 유사한 점은 위의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 한편, 최초 전화통화 시 정○석이 “후송된 그 환자가 아마도 사망하지 않았느냐?”며 되물은 사실과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홍○일이 신청인에게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서 올 줄은 몰랐다. 박 중사에게 도와주고 싶지만 못 도와줘 미안하다.”(신청인 및 신수철에 의하면, 홍○일은 1999년 9월경 병원 방문 시에도 동일한 취지로 말함)라고 하면서 경계하듯이 말한 것으로 보아, 당시 신청인은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신청인의 주장 관련

 

가) “현재의 장애상태로 보아 2.3m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입은 상해가 아니라, 김○용과 홍○일의 사고위장 담합에 의한 추가 가해로 인해 입게된 상해이다.”라는 신청인의 주장은 앞서 언급된 수사 미진사항 등을 고려할 때,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

 

나) 한편, 위와 같이 하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된 군 수사기록과 달리, 신빙성 있는 신청인의 진술이 발견되고 있음을 볼 때, “신청인의 진술내용이 신빙성이 없으므로 최초 헌병의 수사기록에는 하자가 없다.” 라는 취지로 답변한 기존 육군본부의 민원처리결과 회신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 요약컨대, 김○용 등 헌병수사관은 ‘신청인이 창문에서 투신하였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 자가 없는 상황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신청인을 최초 발견하였다는 홍○일의 추정적 진술에만 의존해 과학적이지 못한 수사를 진행한 결과, 객관적인 정황증거 없이 ‘죄책감으로 인한 자살시도’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고 판단된다.

 

계속되는 군대 내.외 문제,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며 하룻 밤도 편하게 잘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며칠전에는 DMZ 지역에서 중사 한 명이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새로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광화문 1번지에서 박준기 중사는 두 다리에 의족을 한 채 몇 시간동안 자신이 지나온 삶을 반추했다. 결단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 한민구 국방장관 입으로 분명히 군관민 합동 조사를 실시한다고 해 놓고선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불투명하다. 얼마만큼 조사가 진행되었는 지, 조사를 진행했으면, 왜 당사자인 박준기 중사에게 알려주지 않는지, 과연 조사는 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때는 군인이었던 그는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지휘권자인 국방부 장관의 말을 기억하고 있으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국방부 감사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성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진실에는 공소 시효가 없다!” 고 하는 박준기 중사의 말처럼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서 그와 그 가족의 억울한 지난 24년을 되 돌려 받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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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1<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정치가 엄격하면 백성들이 교활해진다” 고 하여 엄격한 정치체제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예법의 금(禁)령(令)이나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금령이나 제도를 어기거나 교활하게 속여서 피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즉 지배 계층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교활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이용했고, 사람들은 지배계층의 수법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계책을 마련하였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노자 58장)

이와같이 지배계층이나 피지배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인위적인 조작’이 횡행하였다. 이러한 조작은 거짓을 낳고, 거짓은 사람들의 본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국가는 사람들의 교활한 방법을 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단속하기 위해 형벌과 명분을 내세워 상과 벌을 밝혀서 간사한 것과 거짓된 것을 검속하는데 세밀하고 자세하여 백성들의 마음속에 다투는 마음이 생기며 이러한 현상을 ‘백성들이 잗달다’라고 했다.

통치자의 임무는 도를 본받아 지배욕과 탐욕을 없애고 백성들을 보호하여,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노자34장)

그런데 통치자가 도를 본받지 않고 탐욕에 휩싸일 때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어 내게 된다. 사회제도가 인위적으로 세분화될 수록 도에서 멀어지고,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은 본연의 순박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부터 점점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부드럽고 유연한 본래의 마음이 가혹한 정치체제와 사회구조에 적응해 가면서 경직되어 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기적인 아집과 집착으로 채워지면서 경직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나 사태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없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나라 초기 예법의 본래 목적은 백성들의 행동을 규제하여 좋은 성품을 키우고, 법령을 정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본래의 바람직한 효용성에서 벗어난 예법은 자율적인 행위 원칙이 아니라 강요로 주어진 강압적인 구속력을 강조하여 오히려 정치가 불안정해지고, 백성들의 도덕성도 상실되어 갔다. 주나라 말기에 세분화된 예와 법은 겉보기에 공익을 위하는 듯 거창한 구호를 내세워 강행했지만 실상은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강화하는 폭정의 수단이었다. 부당한 예법으로 인해 사회의 총체적 위기 현상의 폐단에 대해 노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예(禮)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날로 엷어지는 (줄어드는 ) 것으로 혼란의 원인이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노자38장)

예(禮)는사람을 구속하는 인위적이고 번거로운 것으로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의 이용물이 되므로 허위로 가득 찬 사람들은 늘어나고, 충신은 점점 줄어들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노자는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통치자가 인위적(유위)이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 고 했다. 백성들에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인위적인 통치 방식은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통치에 효력이 없고, 어려움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인위를 지양하고 무위함으로서 백성들이 자생, 자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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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Lee-Sang’s World of Music: View, Smell, and Sound of the Korean Peninsula Composed into Music – Thoughts

<Japan : Prof. Lee,Sunhoon>

윤이상 (尹伊桑, Isang Yun, 1917년 9월 17일 – 1995년 11월 3일) 은 일제 식민시대에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군 충무면에서 짧은 유년기를 보낸 후, 통영면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현대음악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기타리스트, 첼리스트로서 서독과 통일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본관은 칠원이며, 동백림사건 이후에는 서독에 귀화하여, 한국 땅을 밟지 못하였지만, 북한은 여러 번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살부터 3년간은 한학을 배우기 위해 서당에 다녔고, 8살에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3살에 바이올린을 배우고 직접 선율을 작곡하기도 했으며, 마을 영화관에서 자작의 선율이 연주되는 것을 들으며 작곡가가 되기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한 윤이상 작곡가의 아버지로 인해, 통영협성상업학교에 진학했지만, 2년후에 경성에서 군악대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화성법을 배웠으며, 도서관의 악보를 보고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상업학교에 진학하기는 했지만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워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1935년에 일본 오오사카시의 상업학교에 입학하는 한편, 오오사카음악학원에서 첼로, 작곡, 음악원리를 배웠습니다. 1937년에 통영으로 돌아와 화양학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최초의 동요집 ‘목동의 노래’를 썼습니다. 1939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동경의 이께우치 도모지로에게서 대위법과 작곡을 배웠고, 1941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한반도로 돌아와 있다가, 1944년에 항일독립운동으로 2개월간 투옥되었고, 결핵으로 쓰러져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중에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가 유치환, 김춘수, 정윤주 등 통영의 예술인들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고 윤이상 본인은 음악부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통영고등학교를 비롯한 거의 모든 학교의 교가를 작곡했으며, 고려대학교의 교가도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음악활동 이외에도, 일본에서 부산으로 몰려드는 전쟁고아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부산시립고아원의 소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1948년에 통영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다가 부산사범학교로 옮겨 음악을 가르치며 작곡을 했습니다. 이듬해 1950년 1월 30일에 같은 학교에 국어교사를 하고 있던 이수자와 결혼했고, 같은 해 8월에 첫딸 정이 태어났습니다. 6.25전쟁 중에는 부산의 전시작곡가협회에서 활동하고 부산고등학교에서 일하다가 1953년 휴전되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대학교 예술학부와 덕성여대 등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치고 작품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했습니다. 1954년 ‘전시작곡가협회’가 서울에서 ‘한국작곡가협회’로 새로 결성되며 사무국장으로 활동했습니다. 같은 해에 [악계구상의 제 문제]를 저술했고, 1956년 4월 [현악4중주1번]과 [피아노 트리오]로 ‘제5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당시 대한민국에서 습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20세기 작곡기법과 음악이론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1956년에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유학하던 중에, 20세기 전반으로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현대음악계를 견인했던 작곡가인 올리비에 메시앙 (Olivier-Eugène-Prosper-Charles Messiaen)을 만나게 되어, “프랑스는 현대음악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서독 쪽의 환경이 좋은 편이니, 다름슈타트 강습회에 참가하면 좋을 것이다” 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서독으로 옮겨 1957년에 베를린예술대학에 입학하였고 당시에 윤이상의 나이는 이미 40세에 달해 있었습니다.

서독에서 그의 스승으로는 라인하르트 슈바르츠쉴링, 보리스 블라허, 요세프 루퍼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음악학자인 요세프 루퍼로부터 십이음기법을 엄격히 전수받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작품목록으로부터 위에서 소개한 동요집과 같은 종류의 작품들을 모두 삭제하고, 대학입학 후의 작품만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윤이상의 유럽 데뷔작으로는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 ‘현악4중주곡 제3번’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은 프란시스 트래비스(Francis Travis)의 지휘로 레코드로서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프란시스 트래비스는 이후에도 윤이상의 음악활동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윤이상은 동아시아 음악의 요소를 서양 음악에 접목시킨 것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에는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 서베를린에 정착하였고, 1965년에 초연한 불교주제에 의한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 (1964)’와 1966년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초연한 관현악곡 ‘예약’은 그를 국제적인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4년 4월 처음으로 오랜 친우인 최상학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였고, 김일성과도 친교를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한 민족의 이상을 동물 형상으로 표현한 사신도를 통한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수차례 방북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윤이상의 방북행적을 포착하여 내사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동백림사건입니다.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중앙정보부를 이용하여 행해진 대표적인 간첩조작사건으로 발전되었습니다.

1967년 6월 17일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는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서울로 끌려와서, 당시의 유럽에 있던 유학생들과 함께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간첩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 후에 이골 스트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주도한 한국정부에 대한 윤이상의 청원운동에는 루이지 다라피코라, 한스 베르나 헨쩨, 하인쯔 호리가, 마우리시오 가겔, 요세프 카일베르트, 오토 크렌페라, 리게티 제르쥬, 아르네 메르네스, 페아 노아고, 칼하이즈 슈토크하우젠 등 약 200명의 예술가가 서명했습니다. 1967년 12월 13일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재심에서 감형되었고 1969년 2월 25일 대통령특사로 석방되었습니다.

구속기간 중이던 1969년 자살을 시도했었고, 이를 계기로 음악작업이 허용되어, 오페라 ‘나비의 꿈’을 썼으며, 완성된 작품은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난 부인을 통해서 서독에 전달되어 1969년 2월 23일 뉘른베르크에서 ‘나비의 미망인’ 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며 31회의 커튼콜을 받는 등의 커다란 호평을 받았습니다. 옥중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도 ‘율’과 ‘영상’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에 서독으로 추방되었으며, 한국국내에서는 윤이상의 음악은 연주가 금지되었습니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는 하노버음악대학에서 재직하였고, 1971년에 서독에 귀화했습니다. 이 후에, 조국통일범민주연합의 유럽본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다음 해인 1981년에 교향곡 ‘광주여 영원히!’를 발표했습니다. 작품활동을 계속하며, 틈틈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1982년부터는 매년 북한에서 윤이상음악제가 개최되었고, 1988년 일본에서 남북 합동 음악회를 열 것을 남북 정부에 건의하였고, 이것이 이루어져 1990년 10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대표 17명이 평양에 초청받아 범민족 통일음악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윤이상의 음악세계는 ‘’상처받은 용’ 등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의 민속음악에 기초하였고, 클러스터 기법 등 당대의 최첨단 작곡기법을 응용하여 서양 악기와 음악체계로 동양적인 음색과 미학을 표현할 수 있게 고안한 주요음 (Hauptton) 기법과 주요음향 (Hauptklang) 기법이라는 작곡기법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윤이상이 고안하여 도입한 주요음 기법과 주요음향 기법은 12개의 음의 어디엔가에 중력을 주어서, 하나의 선율선에 개성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윤이상의 음악은 1970년대에 전위예술이 정체기에 접어들며, 선율의 회복이 강렬하게 요구되면서, 당대의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예술대학교수로서 재직하였고, 작곡과 교수로서 호소까와 도시오 (細川俊夫), 시마쯔 타께히또 (嶋津武仁), 후루카와 키요시 (古河聖), 미와 마사히로 (三輪眞弘), 타데우유 뷔에레쯔키, 베른프리트 G 쁘레붸 등의 제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아시안인의 작곡교수로서 유럽에서 제자가 있었던 것은 독일전체에서는 윤이상이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인 제자로서는 강석희가 알려져 있습니다.
말년에는, 쁘폰짜임, 슈트트가르트, 브레멘 등에서 작곡강습회를 열었고, 제자들의 요청으로 제자들의 제자의 육성에도 열의를 다했습니다. 쁘폰짜임 강습회에서는 이규본이 참가했으며, 이규본은 수년후에 일본의 최고권위의 작곡상인 이리노 상 (入野賞)를 수상하기도 합니다.

1994년 동경에서 모든 정치적 활동의 중단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에 서울, 부산, 광주 등에서 윤이상음악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윤이상은 참가하려 하였으나 건강의 악화로 입원하게 되었고, 당시에 그의 소지품에는 안숙선의 남도민요 레코드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에는 최후의 오케스트라작품 ‘화염에 휩싸인 천사(1994)’가 동경에서 연주되었지만, 이미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연주회에는 참가하지 못했고, 1995년 11월 3일 4시 20분 독일 베를린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서거하였습니다.

출판작품은 모든 곡이 Bote & Bock로부터 발매되었고, 독일에 체류했던 기간의 모든 윤이상의 작품은 출판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에, Bote & Bock가 파산하여 Boosey & Hawkes에 흡수합병되었고, 이와 동시에 저작권사용료 등도 급등했다는 것이 음악계의 소식입니다. 일본에서는 생전에 비해서는 최근의 북한문제와 혐한분위기의 영향으로 2010년 이후에는 윤이상의 오케스트라 작품이 정기연주회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대폭 줄어든 실정입니다. 필자가 현재 살고 있는 나고야의 아이찌 에술문화센터에는, 윤이상의 출판악보의 상당수가 소장되어 있으며, 전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인도 열람은 가능한 상태입니다.

필자는 음악전문가도 아니며, 삶에 있어서도 위대하고도 처절했던 윤이상을 평가하거나 추론할 수 있는 자격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40세에 이르러 독일 땅을 밟고, 그 이후에 40여년을 이국땅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고국 땅에서 느꼈었던 모습, 냄새, 소리를 모두 음악에 담아 스스로를 찾고, 또 그것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려 했던 윤이상의 모든 일들은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인 동시에 소중한 자산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한국인들이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에서 만들어졌던 모든 사상적인 갈등을 초월하여 윤이상의 음악세계로 표현된 한반도의 도도한 기상과 아울러 어제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이를 기본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자부심과 희망을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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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lelight Protest Was Non-Partisan <이선훈 박사: 일본에서 한국을 말하다>

<Japan : Prof. Lee, Sunhoon>

촛불혁명의 정신은 일부 정치적 세력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최근에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블랙리스트에 관한 재판에서 조윤선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김기춘이 3년형을 받은 상황에 직면해서 국민의 불만에 편승해서 현 정부에 대해 극렬한 불만을 토로하는 일부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척결의 의지가 없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은 이미 예상되었던 상황이었다고 말하며 악의에 가득 찬 선전선동과 함께 문재인 정부도 타도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다시 광화문에 모여서 문재인 정부를 타도하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7월 27일 북한의 대륙간탄도 미사일의 실험발사에 관해서도 동일한 악질적인 선동행위가 전개되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5%내외에서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관해서 설명하기 위해 블랙리스트의 재판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북한의 대륙간탄도 미사일실험과 관련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정상적인 환경영향평가를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임시적인 방편으로  사드를 성주에 배치한다는 내용에 관한 정밀한 분석을 하고자 합니다. 이들의 주장이 신속하고 엄중한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사드배치를 반대했던 촛불시민의 요구를 정직하게 따르고 있는 것인가? 에 관해서 정밀한 분석을 함으로서 이들의 정체가 단순히 지난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던 세력이 대선이 끝난 후에 75-85%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하락시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력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풀어 보고자 합니다.

이를 논하기 이전에 우선, 이들은 ‘일자리 추경예산’ 에 대해서 특별한 지지의사를 표명하지도 않았으며, 최근의 최상위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세율인상에 대해서도 지지는 커녕 분명한 언급조차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분명히 촛불혁명의 중심적인 주장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자리 추경예산’은 이름 그대로 최악의 청년실업상태에 대한 긴급한 조치인 동시에 그 동안 절대수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왔던 소방, 경찰, 사회서비스 등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증원하여 국민의 안전을 증진하고자 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촛불혁명의 요구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최상위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세율인상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촛불혁명의 요구 그 자체인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더라도, 이들의 주장이 촛불국민의 요구를 문재인 정부가 충실히 이행하려 하는가 또는 이행하고 있는가를 감시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블랙리스트에 관한 1심재판의 결과를 보면, 김기춘은 7년의 구형에 대해서 3년의 실형이 선고되었고, 조윤선은 6년이 구형되었으나,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실행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고, 국회청문회에서 거짓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이 재판의 대상도 아니었던 박근혜에 관해서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문제에서 무죄에 상당하는 재판부의 의견이 발표되는 이례적이고 논리적인 모순에 가득 찬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이 재판에서 재판부는 보수를 표방하며  당선된 대통령이 정권에 반대하는 진보세력에 대해서 정부의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당연한 정치적 행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재판부는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문화인에 대한 블랙리스트의 작성으로 박해를 가하고,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을 정당화해버린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의 논리는 모순의 극치입니다.  문화인의 활동을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정치적인 집단의 활동과 동일시하며 모든 문화적인 활동을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고 있다는 점이며,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정치적인 견해를 달리 하는 경우에는 차별하고 박해를 가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반헌법적인 재판부의 의견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러한 재판부의 의견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마치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시절로 회귀시켜 퇴보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사법부가 선동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내용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입니다.

이런 반헌법적인 의견을 제시한 재판부는 마치, 김기춘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시행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피고인에 대해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최종책임자로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나 고령을 이유로 3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번 재판부의 선고는 마치 술취한 사람의 궤변으로 평가될 수 있을 만큼 논리의 심각한 모순성을 재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러한  재판부가 이번 국정 농단 사건을 올바르게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듭니다.

박근혜가 문화인을 정치적인 입장에서 차별하고 박해한 것이 정당화된다면,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기춘이 대통령의 지시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시행한 것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춘의 블랙리스트의 최고책임자로서 고령을 이유로 비교적 가벼운 형벌을 가한 것은 재판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의식한 행동으로 재판부가 블랙리스트 사건자체를 재판부의 정치적 행위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 매우 악질적인 결과로 평가해야만 할 것입니다.

더욱이 조윤선의 집행유예 선고에 있어서는 더욱 심각한 것이,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시행되는 시기에 청와대의 담당자인 민정수석에 있었으며, 민정비서관 등의 직속부하들이 직접 관여하였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문화체육부 장관으로서 블랙리스트의 실행에 책임을 지고 있었던 조윤선이 블랙리스트와 직접적인 관여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을 넘어서서 재판부와 조윤선의 측과의 개인적인 부정비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블랙리스트에 관한 1심판결은 그 간에 의심되어오던 양승태 대법원장과 관련된 사법부의 정권유착과 부정부패에 대해서 의혹의 초점이 집중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며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의 의도는 매우 비정상적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 미사일실험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적인 환경영향평가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임시적으로 사드를 성주에 배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드배치를 반대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환경영향평가로 1년이상이 경과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위기상황이 완화되고, 활발한 남북교류가 이루어지게 되어 사드배치가 철회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계시던 분들은 실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의 대륙간탄도 미사일실험이라는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사드의 임시적인 배치를 지시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개발중지에 대한 카드로서 사드배치를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으로 이해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의 임시배치에 관해서 그간 사드배치를 강력히 주장해왔던 야3당이 환경영향평가를 즉각 중지하고 최종적인 사드배치를 결정할 것을 다시 한번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배치를 철회할 가능성이 아직도 상당히 높다는 것을 대변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정상적인 촛불시민이라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서 강력히 규탄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서 한국의 방어에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며, 미국과 일본의 방어를 위해서 사드의 조기배치를 강요하는 미국을 강력히 규탄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서, 이런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도 사드배치를 정략적인 도구로 활용하려는 새누리당의 잔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이들과 합세하여 사드배치를 넘어서서 북한과 대화마저도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의당에게 혹독한 비판이 가해져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촛불혁명을 주도한 국민의 진정한 요구라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국민이 이런 입장을 취한다면, 미국은 물론이고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의 주변국가는 한국인과 한국인이 선출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대화와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블랙리스트 판결문제와 사드의 임시배치를 구실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촛불의 요구이던 최상위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세율인상과 일자리 추경예산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는 사람들은 광화문에 모여서 문재인 정부를 성토하자고 선동하고 있으나, 이들은 전정한 촛불시민이 아니며, 촛불혁명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인 대중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조종하는 권력을 획득하려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촛불혁명을 통해서 이러한 기회주의적인 인간들의 야욕도 적폐세력과 함께 철저히 배제하며,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 가기 위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는 사실을 이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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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Time to Make North Korean Nuclear Plans Kaput<이선훈 박사: 일본에서 한국을 말하다>

<Japan: Prof. Lee, Sunhoon>

지금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7월29일 새벽 1시15분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신속히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은 왜관의 미군기지에 보관되어 있는 사드를 성주에 배치하기로 하면서, 사드배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긴급한 조치로서 임시적인 것이며, 환경영향평가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필자는 이런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서, 대통령은 사드배치를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협상카드로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이 처해 있는 입장을 객관적으로 돌아 보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에게 김정은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며, 남북경협을 통해서 경제발전으로 상생할 것을 제안하고 있으나, 실제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을 위협하는 것은 미국이며, 북한도 이런 이유로 미국과의 협상을 제의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서 제시한 전제조건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이에 합당한 예우를 해달라는 것이며, 이는 북한의 존재를 위협하는 어떠한 미국의 개입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즉, 북한은 한국의 전시작전권을 손에 쥐고 있는 미국을 대상으로 북한의 체제를 보장 받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에 대해서 미국은 북한의 핵을 인정하게 된다면 핵확산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북한의 이런 요구를 받아 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핵보유국은 공식적으로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의 UN 상임이사국 5개국과 함께, 실질적인 보유국으로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3개국이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이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된다면, 미국의 주장대로, 한국과 일본의 핵개발을 저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며, 여기에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아시안 국가들도 가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핵개발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파급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미국이 염려하는 하는 것은 핵확산 보다는 미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분쟁 또는 분쟁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국가들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지금과 같이 UN, 미국을 포함한 상임이사국 5개국이 비핵 국가와 정권의 생사여탈권마저 좌우할 수 있는 영향력의 행사는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2001년 9.11사태의 보복으로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감행했으며, 이들 두 개의 국가는 아직도 내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당시의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은 국제적인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국가로서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격렬히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침공의 이유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후세인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독재자에 의해서 발생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과 영국의 이러한 주장들은 거짓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이라크의 침공이 감행된 것은 이라크가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성립했으며, 이로 인해서, 미국에게 악의 축으로 지목된 이란과 북한이 핵무기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국가와 정권의 생존을 위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릅니다.

이란은 2015년 4월 2일 미국 등 주요 6개국과 서방국가들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대가로 이란이 최소 10년 이상 핵개발 활동을 사실상 중단하는 내용의 포괄적인 합의안을 마련하며, 핵개발을 사실상 포기하였으나, 트럼프 정권에서는 이란과의 협상을 부적절한 것이라는 비난과 함께 다시 미국과 이란 간에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란이 경제제재에 굴복하여 핵개발을 포기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란이 이슬람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빨리 서방의 자본주의가 도입되어 정착되어 가던 국가로서 서방국가의 경제제재에 따른 경제적인 궁핍이 한계에 달한 것이었으며, 여기에 오바마 정권의  호전성이 상대적으로 완화된 것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경우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수 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발사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북한이 이란의 경우와는 달리, 경제제재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로는, 북한을 미국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중국의 지원과 더불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경험이 없는 봉쇄된 국가체제를 갖고 있어 이란과 같은 상대적인 빈곤에 대한 사고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북한의 상황은 근대사적으로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직전의 일본의 경우와 매우 유사합니다. 당시의 일본은 1866년 이후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적인 국가체제를 도입해 왔으나, 군국주의 체제하에서 귀족과 독과점의 재벌자본가의 독점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로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이어지는 서방국가의 경제제재에 대해서 심각한 상대적 빈곤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이며, 오히려 경제제재에 의한 경제파탄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상황에 있던 주변국가에 대한 침략전쟁의 본격화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필자는 북한이 경제제제에 대한 타결책으로 전쟁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상황에서 김씨왕조의 세습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며, 중국과 같은 형태의 경제발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북한에게 핵무기와 미사일을 폐기하게 하고 협상테이블로 불러 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며, 현 상태에서 더 이상의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로 판단해야만 할 것입니다.

북한이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조지 W. 부시 이후의 미국의 방치에 가까운 무책임한 경제제재조치와 이에 편승하여 북한문제를 정권찬탈과 유지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해 남북경제교류를 축소시켜 오다가 2016년에는 개성공단마저 일방적으로 폐쇄시킨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공단의 입주가 시작된 2005년부터 개성공단의 확장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철도의 연결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현재와 같이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발사를 계기로 거의 유일한 협상의 카드로서 사트배치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환경영향평가를 계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임시적으로 상주에 사드배치를 명령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과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9년간 지속해왔던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포기만을 고집한다면 그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던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완화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여, 미국중심의 북한 핵과 미사일의 포기를 전제로 하는 처리방법에만 매달리고 있는 무력한 상태에서 탈피하여,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반도의 전쟁방지를 위한 최선의 방책을 만들어 가야만 합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분명히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의 안전에 매우 중대한 위험요소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보유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면 현재와 같은 위험의 수위는 상당히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로서, 북한에 대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개발중지를 전제조건으로, 사드배치의 철수와 더불어서, 개성공단의 재개와 확대 그리고 이산가족상봉의 상시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다음단계로 순차적으로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을 자유화하고, 경의선과 경원선의 연결을 진행하며, 한국, 북한, 러시아 3국의 시베리아 공동개발에 착수하여, 가스관의 건설이 가능해진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보유는 하더라도 우발적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남북간의 활발한 경제교류와 인적교류에 의해서 북한주민의 경제적 상황이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간다면, 최종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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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 Scouts Jamboree : Did Trump Get the Call?

(photo from Google Images)

지난 주 월요일에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있었던 보이스카웃 전국 대회에서 보이스카웃 대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멋진 연설을 해서 감명을 받았다는 전화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월스트릿 저널기자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문제로 지금 트럼프는 거짓말 쟁이로 또 한번 도마위에 올랐다.

이 문제가 화근이 되는 이유는 보이스카웃의 대장인 Dan Rather 씨는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중에서 최근 상원에서 건강보험법의 개정이 불발된 것과 자신의 정적인 힐러리 클린턴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 일렉토랄 칼리지의 복잡성, 뉴욕의 상류층 언급,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기간동안 참석치 않은 잼보리 대회등에 대해 보이스카웃은 정치와 관련이 없는 조직이라고 말하며, 트럼프의 연설에서 보이스카웃과 관계 없는 정치적인 발언이 나온 것은 자신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레더씨는 트럼프대통령이 보이스카웃에서의 연설은 한마디로 역겨웠다. 라고 말했다.

오늘 트럼프의 대변인으로 있는 세라 허커비 샌더스씨는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분명히 밝혀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샌더스씨는 “연설 자리에서 많은 보이스카웃  멤버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아마도 그 말이 그곳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자, 기자는 “분명히 트럼프 대통령은 보이스카웃 대장이 전화를 했다고 했다.” 라고 말하자, 샌더스씨는 직접적으로 말을 한 것이지 전화는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자는 “그러면 트럼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한거군요? 전화를 받지 않았군요?” 라고 말하자, 샌더스씨는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참 대단히 강한 어조로군요.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전화를 하지 않았고, 직접 대화를 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했다.

Rather 씨는 “With a former Marine Corps general as the new Chief of Staff, this is the last chance to bring any order to the White House. But the real problem has not been the aides or the leaks. It has been a president who can’t control his speeches… or tweets, who doesn’t understand policy, or care to, and who thinks that senators can be bullied like a subcontractor in one of his hotels. There is so much dysfunctional in the West Wing that soap opera writers would blush at the sheer improbability of the storyline. ” 이라고 자신의 페북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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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0<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3. 예법과 제도

노자에 의하면 사회의 예법이나 규범 그리고 통치자의 강압적 통솔 등 외적인 조건은 마음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춘추 전국시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여러 측면에서 큰 변혁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특히 농업 생산량의 증대와 토지 소유제의 변동은 경제와 사회구조 그리고 신분 계급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정전제가 붕괴되면서 제후들은 많은 사(私)전(田)을 소유하면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 시기에 제후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데 있어 기반이 되는 것은 토지와 그곳에 거주하는 백성들이었다. 제후들의 토지 쟁탈전과 국가 간의 전쟁 등으로 인해 사회현상은 극도로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부당한 수법을 저지르고 전쟁을 일삼았다. 백성들의 삶은 과도한 세금과 노역 그리고 병역으로 비참한 상황이었다. “노자” 에는 당시의 혼란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내용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대가 지나간 곳마다 가시넝쿨이 가득 자란다. 큰 전쟁을 치른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들것이다.”

大軍之後, 必有凶年(노자30장)

“천하에 도가 있으면 싸움터를 달리는 말을 물리쳐 농사를 짓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군마가 국경에서 태어난다. ”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노자 46장)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그의 윗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위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다스리기 때문이다. 백성이 죽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윗사람들이 더욱 넉넉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노자 75장)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떻게 죽음으로 두렵게 하겠는가?”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노자74장)
지도자들은 부당한 수법으로 부를 축적하여 화려한 생활을 하였고, 국가 간의 전쟁으로 소모된 경제력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가하였다. 과중한 세금과 노역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는 백성들은 삶을 포기하는 생명경시 현상까지 나타났다.
노자는 이러한 시대 상황을 자연 (도)의 현상과 대비되는 것으로 보았다.자연 (도)의 현상은 여유 있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균형과 조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는 권력이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약자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부를 더욱 축적한다.
그러므로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빈부는 대를 물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공자는 주나라 초기의 주(周)례(禮)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공자는 주례와 봉건제도의 회복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이루려고 했다. 반면에 노자는 자연에 역행하는 주나라 말기의 사회현상과 봉건제와 종법제 그리고 예법 제도에 대해 강렬히 비판을 가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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