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문화주의

1) 문화주의의 기원

문화주의는 1950년대 말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대중문화 연구 전통이다. 문화주의의 특징은 문화에 대한 추상적인 혹은 이론적인 작업을 피하고 또 사회 관계의 구조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반면, 문화의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에 주목한다는 데 있다. 문화주의라는 용어는 현대문화연구센터의 전 소장이었던 리처드 존슨이 이 운동을 대표하는 세 이론가, 즉 윌리엄즈, 호가트, 톰슨의 공통되는 연구관점을 지칭하면서 붙인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의 주요한 양상을 깨고 있다. 호가트와 윌리엄즈가 리비스주의의 비판으로부터 그들의 작업을 시작하는데 비해서 톰슨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그의 기계적인 경제 결정주의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앞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문명주의는 영국에서 대중문화 연구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이 전통의 특징은 문학적 텍스트의 구조와 도덕적․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들 문화주의자들은 리비스주의의 가정들에 대해서 대부분 반론을 펴지만 일부분은 수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문화의 수동적 소비보다는 능동적 생산, 즉 인간의 작용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문화의 역동성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윌리엄즈가 문화주의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는 반면에, 호가트는 노동자 문화에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호가트는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서 리비스주의자들과는 달리, 1930년대의 노동자계급 문화가 매우 건강하였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대중문화가 도덕적 의미에서 많은 문제들을 보여주었지만 노동자들은 이것을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지각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중요한 결론 중의 하나는 자본주의의 상부구조에서 부르조아 문화는 결코 완벽한 승리를 구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 계급이나 대중이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지배계급의 문화에 무조건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리비스주의 혹은 비판이론과 구별되는 문화주의 결론 중의 하나로서 이러한 결론은 대중문화가 단순히 반동적인 쾌락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역동성이나 변화의 가능성의 실마리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서 더 잘 알려져 있는 톰슨은 그의 여러 저작들을 통해서 위로부터의 역사라 볼 수 있는 정치제도나 사회구조 대신에, 아래로부터의 역사인 민중의 역동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사회적 주역으로 등장한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톰슨은 리비스적 전통의 보호를 받던 편협한 ‘문화’개념을 수정한다. 물론 톰슨 자신도 인정하였듯이 산업화 초기의 노동자들의 삶과 문화양식에 집착하는 자신의 작업이 지나치게 회고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노동자계급의 경험을 역사과정에 다시 소개하였다는 점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계급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것을 밝혀준 것”은 실로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함께 묶는 것은 한 사회의 문화 ― 즉 문화의 텍스트적 형태나 기록된 행위들 ― 를 분석함으로써, 그 사회의 문화적 작품과 실천 행위들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행동과 사상의 유형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세 사람 외에 스튜어트 홀과 패디 화넬 역시 대중문화에 대한 친화적인 좌파 리비스주의적 입장으로 인해서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의 모태가 된 기관은 버밍엄 대학에 있는 현대문화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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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리비스 (Frank Raymond “F. R.” Leavis CH (14 July 1895 – 14 April 1978)주의

아놀드의 이론과는 달리 리비스의 이론이 리비스주의라 불리우는 이유는 40여년에 걸쳐 이루어진 그의 문화연구가 단순히 F. R. 리비스 한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이론에 공감하는 Q. D. 리비스와 D. 톰슨 등에 의해서 공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리비스에게 끼친 아놀드의 영향은 자명하다. 리비스는 아놀드의 문화정치학을 도입하여1930년대의 소위 ‘문화적 위기’에 적용하였다. 리비스와 리비스주의자들에게 있어서 20세기는 점차 뚜렷해지는 문화적 쇠퇴의 시기로 규정될 수 있다. 19세기에 아놀드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 20세기에 계속되고 누적된 것이다. 이는 ‘평준화와 하양화’의 문화였고 “시민은 이를 추방하고 저항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리비스의 연구는 40여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관점은 1930년대의 세 저서, 즉 자신의 독자적인 저서인 <대량문명과 소수문화>와 Q. D. 리비스와 공저한 <소설과 독자> 그리고 데니 톰슨과 공저한 <문화와 환경>의 출간과 함께 형성되었다. 리비스주의 역시 ‘문화는 항상 소수의 유지자들에 의해 지켜졌다’는 논거에서 출발하고 있다. “소수만이 과거에 있었던 최선의 인간 경험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바로 이들이 전통의 가장 미묘하고 연약한 부분들을 살려서 유지한다. 그들에게 한 시대를 사는 훌륭한 생활의 질서를 세우는 무언의 기준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변화한 것은 이 소수의 위상이다. 문화적 권위가 도전받지 않거나 문화적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Q. D. 리비스는 이 상황을”여태껏 아무런 심각한 도전을 받지 않고 취향의 기준을 정했던 소수계층이 ‘권위의 붕괴‘를 경험했다“고 묘사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보급이었다. 더구나 이러한 ”민주주의 정서가 널리 퍼질 때부터 오랫동안 예기해왔던 위험은 문학 취향의 전통에 대한 것으로, 문학의 규범이 대중투표의 결과에 따라 역전되는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독자의 대부분을 이루어온, 교육받지 못한 또는 반쯤 교육받은 군중들은 비록 자신들이 고전을 감상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고전들의 전통적 우월성을 인정하는 데 만족하였다.

그러나 리비스가 보기에 ”최근에 특히 미국에서 우리의 위대한 문학가들에 대한 대중의 반역이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을 목격하였는데, 이처럼 문학이 국민투표로 평가받게 되고 평민들 또한 그 힘을 인정하게 된다면 그들은 점차 자신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않고 이해 할 수도 없는 작품에 대한 명성을 지지하려 들지 않게 될 것이고, 이것은 고급문화가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량문명과 대량문화는 전복적인 모습을 띠면서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혼란으로 이끌”것처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에 대해 리비스주의는 “대량(대중)문화에 대항하는 것을 학교에서 훈련시키도록” 선언하고 또 학교 밖에서는 “의식적이고도 직접적인 노력이 진작되어서 잘 무장되고 활동적인 소수가 저항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화적, 정치적 문제에 있어 민주주의의 위협은 리비스주의자들에게는 끔찍한 것이었다. Q. D. 리비스는 “권력을 쥔 자들은 더 이상 지적 권위와 문화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놀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전통적 권위의 붕괴가 대중민주주의의 발홍과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이 두 현상은 문화화된 소수를 압박하고 동시에 ‘무정부’가 설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었다.

F. R. 리비스는 19세기 이전에는, 확실히 17세기에는 영국에 활발한 일반문화가 존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 이후에 일반문화는 두 개의 문화로 조각났다. 즉 한편으로 소수의 고급 문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대량의 저급한 문명으로 구분되었다. 소수문화는 이제는 문학적 전통으로만 축소된 ‘사고와 표현의 정수’의 가치와 기준으로 형성되었고, 이것은 교육받은 소수의 문화였다. 이에 반대되는 것으로 대량문명은 ‘교육받지 않은’ 다수에 의해 소비되는 대량문화. 상업분화로 구성되었다. <대량문명과 소수문화>와 <문화와 환경>에서 F. R. 리비스는 대량문화의 몇 가지 핵심적 일면들을 분리하여 상세히 논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중소설은 ‘보상’과 ‘오락’의 중독적인 형태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보상의 형태는 현실에 대한 직면을 습관적으로 거부하고 아예 연약한 도피를 하게 조장함으로써, 독자에게 삶의 집착을 강화시키고 새롭게 하기보다는 더욱 부적절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독서를 ‘소설 약물중독’이라고 하였다.

한편, 대중소설에 빠지지 않은 이들에게는 영화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의 치솟는 인기는 이를 매우 위험한 오락수단으로 만들고 있으며 “영화는 최면술적 수용상태에서 가장 값싼 감정적 호소에 빠지게 한다. 그것도 무서울 정도로 실생활에 가까운 사실적인 환상으로 호소한다는 점에서 더욱 교활하다.” Q. D. 리비스는 헐리우드 영화나 대중용 신문은 “대중들의 마음에 가장 강력하게 침투하는 비교육적 매체”이며 라디오는 비판적 생각 자체를 말살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F. R. 리비스가 가장 격렬하게 비난한 것은 광고로, 이는 그 끈질기고도 침투성이 강한 속임수 때문이다. 광고는 리비스주의에서 문화질병의 가장 중요한 증후로 꼽힌다.

노동의 질 역시 유기적 공동체의 상실에 따라 저하되었다. 리비스는 이러한 상실의 신호로 여가의 필요성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과거에는 노동자가 그들의 노동 속에서 살았으나 현재의 그들은 노동에서 벗어난 삶을 누리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노동의 질이 너무나 저하되어 노동자들이 사실상 “노동 때문에 무능하게”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이제 여가는 ‘재창조’(recreation)가 아니라 ‘비창조’(decreation)만 가져다 줄 따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상과 수동적 위안을 위해 대중문화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마약과 같은 대중문화에의 몰두가 악화되어 마침내 대리인생에 탐닉하는 상습 복용자들이 되는 것이다.

F. R. 리비스는 이러한 상황을 치유하기 위해 문화적 선교단, 즉 문학적 지성인들의 소수정예부대를 급파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이들이 대학에서 문화적, 특히 문학적 전통을 수호하고 그것의 ‘지속적이고 협조적인 쇄신‘을 격려하는 문화의 첨병으로서 그리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대량문화와 대량문명의 일반적 야만성에 대한 전쟁을 치루어 내도록 무장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윌리엄즈가 언급하듯, F. R. 리비스는 “빈궁함과 옹졸한 폭정, 질병과 사망률, 무지와 좌절된 지식 등도 역시 그 중에 있는 요소들이었음“을 언급하는 것은 잊었다. 리비스가 제시한 것은 역사적인 설명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상실했다고 여기는 것들의 본질을 깨우쳐주는 문학적 신화로, 단지 과거 질서에 대한 기억은 새로운 것에 대한 주된 자극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리비스적 시각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토니 베네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리비스주의 만이 대중문화의 연구가 가능할 만큼 지적으로 발달한 토양을 제공하였다. 더구나 ‘진지한’ 작품들만을 위해 사용되었던 문학 분석의 기술을 대중적 형태에 적용한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리비스주의자들의 연구는 리처드 호가트와 에드워드 톰슨 그리고 레이먼드 윌리엄즈의 이른바 문화주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선구적 작업이라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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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and South Korea’s Unified Path to Peace as Observed by the BBC, CNN

(사진: 지난 6월 북. 미 정상회담)

BBC Laura Bicker 기자가 바라본 남. 북한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빌어, “북한은 변하고 있다. … 그러나 보편적인 인권에 대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가난한 나라를 발전 시키려는 분명한 비젼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로서 연장자를 대접하는 겸손한 마음” 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비커 기자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위원장으로 받은 천연기념물인 특별한 개 선물에 대해 말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보편적인 인권문제는 국제사회가 압박해서 당장 해결될 일이 아니라 남.북한이 상호 협조하고 또 국제 사회의 도움으로 북한이 개방의 문을 열고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 길이 북한의 인권 문제가 개선되는 첩경이라고 말했다.

CNN은 지난 9월 19일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관련된 기사에서 두 나라가 종전을 선언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두 나라간의 협약을 밝히며,

The two countries also pledged to:
  • Submit a joint bid to host the 2032 Summer Olympics.
  • Create rail and road links between North and South within the next year.
  • Stop military drills aimed at each other along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which divides the two countries, by November 1.
  • Remove 11 guard posts in the demilitarized zone by the end of the year.
  • Normalize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and Kumgang tourism project as soon as the conditions allow.
“이제 볼은 워싱턴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두 나라가 서로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를 선언하는 협정에 사인을 하는 일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라고 말했다.

“experts agree that there is nothing to stop the two Koreas declaring an end to the war themselves, or signing a bilateral peace trea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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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ricane Michael Creates Panic in Florida as it approaches Land

(Photo from Google Images)

카테고리 1급 허리케인 마이클이 쿠바에 도착해서 많은 비를 뿌리고 있으며, 멕시코 동부 해안 익셀 비치에 강풍과 폭우로 막바지 피서철의 관광객을 위협하고 있다.  원래는 3급 허리케인 이었으나 쿠바에 착륙한 후 다소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오는 수요일 쯤 플로리다 서쪽과 앨라바마 경계 해안선에 도착할 것으로 허리케인 센터는 예상하고 있다.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는 “마이클” 에 대비하기 위해 내셔널가드 500여명을 긴급 파견하고 허리케인으로 인한 폭우, 지원, 수색과 구조를 대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주지사 대변인은 밝혔다. “마이클”은 현재 아주 위험한 상태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 미국 골프 코스트 연안에 도착할 즈음인 수요일을 대비하여 배나 요트, 군함등을 비롯한 비행기도 다른 지역으로 대피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Saffir Simpson Hurricane Wind Scaleto ” 의 허리케인 등급을 보면, 마이클은 3급에서 1급으로 다소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멕시코 만의 더운 해류를 만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 지 알 수 없다.

Category 1: Winds 74 to 95 mph (Minor damage)

Category 2: Winds 96 to 110 mph (Extensive damage — Can uproot trees and break windows)

Category 3: Winds 111 to 129 mph (Devastating — Can break windows and doors)

Category 4: Winds 130 to 156 mph (Catastrophic damage — Can tear off roofs)

Category 5: Winds 157 mph or higher (The absolute worst and can level houses and destroy buildings)

문제는 만약에 마이클이 지금 보는대로 위의 지도처럼 진행한다면 아직 지난 달 허리케인, 플로렌스로 거의 초토화가 된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 캐롤라이나가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질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오, 폐수로 수질 오염으로 가장 기본적인 주민들의 평범한 생활을 앗아간 허리케인이  또 한번 그들을 스치고 간다면 당장  다가오는 이 겨울이 그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것 같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  해변은 죽은 물고기로 인해 심각한 오염으로 바다를 보기가 무섭다고 여겨진다고 한다. 어업에 종사했던 사람들도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대부분의 그들은 지금 갈 곳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마리아” 로 초토화 된 푸에르 토리코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더 심각하면 더 심각할 수 있다. 결론, 미국령이지만 국회의원 투표권이 없었던 관계로 자체적으로 그들을 대표할 수 없었던 관계로 그들을 돌 봐줄 주 정부의 힘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FEMA의 재정을 삭감했었고,  FEMA 의 재난 구조, 방지, 지원 시스템이 유명무실한 상태에서 발생한 자연 재해에서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다가올 중간 선거를 염두에 둔 채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푸에르토리칸의 인구가 플로리다, 펜실베니아,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과 메사추세츠 등으로 재난 상태를 피해 이주했던 것이다. 이들의 표심이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 대해 중간 선거를 비롯한 2020년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플로리다 주 같은 경우는 주 지사는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대부분 공화당에서 장악했고 상. 하원 의원들은 민주당과 같이 공유한 상태이지만 결국은 이번 “마이클” 을 어떻게 주 정부 차원에서 잘 막아 주느냐에 따라 중간 선거에서 민심이 표심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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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제 3장 문화의 이론

1, 문명주의

1) 문명주의의 시대적 배경

다수의 대중문화는 항상 소수 권력층의 관심 거리였다. 정치권력을 쥔 자들은 항상 권력이 없는 자들의 문화를 정치적 불안의 징조로 보고, 보호와 간섭을 통해 끊임없이 조정하고 규제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이같은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산업혁명이후의 서구사회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중요한 시기에 피 지배층의 문화를 조절하는 수단을 상실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바로 산업화와 도시화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변화들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문화적 관계들과 단절의 계기도 가져왔다.

이제 도시는 계급에 의한 주거분리의 명확한 경계를 유발시켰고, 이러한 주거분리는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노동관계를 반영하였다. 그리고 생활과 노동 관계의 변화라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났다. 달리 말하자면, 노동 계급에게는 지배계급의 직접적인 간섭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를 개발할 공간이 주어졌던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서 권력층 문화와 함께 공유 되었던 일반문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와 산업 중심지에 피 지배 층만이 갖는 분리된 문화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분리된 문화에는 두 가지 주된 근원이 있었다.

첫째 새로운 문화기업들이 영리를 위해 제공하는 문화 였[다.]

둘째는 급진적인 예술가들과 새로운 도시노동계급, 중산층 개혁론자들이 정치선동을 위해 그리고 이러한 정치선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화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일어난 발전은 문화적 융합과 사회 안정의 전통적 개념을 위협하였다. 이는 우선 문화적 융합을 상업적으로 해체하여 권위를 약화시켰으며, 모든 형태의 정치적, 문화적 권위에 직접적인 도전을 가하였다.

문명주의란 명칭은 흔히 ‘문화와 문명주의’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전통적인 문화이론에 대한 필자의 임의적인 표현이다. ‘문화와 문명주의’라는 명칭에서 ‘문화’를 생략하고 ‘문명주의’라 약칭한 이유는 보수적인 이 이론을 2차 대전 이후 새롭게 전개된 진보적인 ‘문화주의’와 대비하기 위해서다.

2) 매튜 아놀드 Matthew Arnold (24 December 1822 – 15 April 1888)

근대의 대중문화 연구가 흔히 매튜 아놀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중문화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따라서 아놀드의 중요성은 그가 어떠한 전통 즉, 대중문화를 보는 특정 관점과 일반적인 문화의 영역 내에서 이률 자리 매김하는 특정 방법을 시작한 데 있다. 그리고 그의 중요성은 어떤 경험주의적 연구의 업적에 있다기보다는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일반적 관점의 지속적인 영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이 영향력은 흔히 ‘문화와 문명’의 전통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아놀드에게 문화는 네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문화는 지식체계이다. 아놀드에 따르면 문화란 ‘인간사고와 표현의 정수’를 말한다.

둘째, 문화는 “이성과 신의 의지가 널리 퍼지도록”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셋째, “문화는 완벽에 대한 연구이며 이 완벽은 어떤 것을 가진다는 의미보다는 어떤 것이 되어 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일련의 외적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문화는 최선을 알기 위한 노력이며 또한 모든 인류를 위해 그런 지식이 널리 알려 지도록 하는 노력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이제 인간사고와 표현의 정수를 알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지식체계이며 그 지식을 ’정신과 영혼의 내적 상태‘에 적용시킨 것이다.

네 번째 측면이 있는데, 문화는 “우리 시대의 (병든) 영혼을 보살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가 “어떤 특정한 악을 제거하기 위한 실제의 수술로서 보다는 우리 친구나 동료들이 문화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데”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놀드에게 문화는

첫째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자체이고,

둘째로 최선 그 자체이며,

셋째 최선의 것에 대한 정신적, 영혼적 적용이며,

네째 그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문화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아놀드에 의하면 “읽고, 관찰하고, 생각함으로써” 그리고 “알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알고자하는 열망으로 그리고 활발하게 읽고, 객관적으로 사색하고, 관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그의 글에서 대중문화는 정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놀드의 글을 읽으면 ‘무정부상태’가 부분적으로 대중문화와 동의어로 쓰인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무정부/대중문화는 노동계급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의 분열적, 파괴적 형태이며 이것은 분명히 1867년 도시 남성 노동계급이 정식으로 정치에 진입하면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정치적 위험을 말한다. 그리고 무정부상태를 초래하는 노동계급의 문화는 극히 정치적 개념이란 것이다. 문화의 사회적 기능은 이러한 파괴적, 분열적 존재, 즉 ‘거칠고 세련되지 않은 대중’ ‘거칠고 가공되지 않은 대중들’, 이 엄청나게 많고, 비참하고 다루기 힘든 천민들의 군중’을 계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계급이 누리는 문화란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약간 주장하며, 가고 싶은 데 가고, 어디서나 모이며, 아무 데서나 소리지르는 거친 것들의 문화” 다시 말해서 “영국인의 천부인권을 주장하며 원하는 곳에 행진하고, 집결하고, 소리지르고, 부수며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 시작하는 문화“라는 데 있다. 여기에서 아놀드는 자신의 논의의 계급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문화는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귀족층과 중산층을 이런 부정적 상황에서 이끌어내야 하고, 둘째로 앞서 말한 서민의 인간성을 갖고 있는 노동계급에게 “우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정부의 경향과는 반대되는 권위의 원칙”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아놀드의 이러한 논의의 시대적 배경은 1866-7년에 일어난 노동자들의 참정권에 있다. 아놀드는 이 참정권이 아직 권력에 대해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바람에 종속과 복종이라는 강한 봉건적 습관을 잃은 노동계급이 매우 위험하게 되었고, 따라서 무정부적으로 변한 이 계급에게 종속과 복종의 감각을 되살려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왜냐하면 “교육이야말로 이러한 종속과 복종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문화를 향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더 이상 하이드파크에서 데모가 일어나지 않게 되며, 지배 문화의 ‘아름다운 빛’을 노동자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교육이란 노동계급에게 노동조합, 정치선동, 노동계급문화의 유혹 등을 물리칠 수 있을 ’문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더 짧게 말하면 ’문화‘는 대중문화를 제거하는 것이다.

아놀드는 이러한 다양한 제안을 ”법적 절차를 밟은 혁명“이라 불렀다. 물론 아놀드가 더 나은 사회, 즉 덜 지저분하고, 덜 가난하고, 덜 무지한 사회를 지향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는 더 나은 사회란 자기가 속한 부르주아사회밖에는 상상이 안되었을 뿐이다. 결국 아놀드에게는 문화가 연구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 문화적 복종과 종속을 통해 획득된 사회질서와 권위가 주 관심사이다. 아놀드에 의하면 역사는 항상 ‘기반이 약한 대다수의 도덕적 실패“로 인해 사회가 파괴되었기에 노동계급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쇠퇴와 무질서의 충분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사고와 표현의 정수, 즉 수준높은 고급 문화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 즉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가진 사람이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있을 리 없다. 그에게 노동계급은 “맥주와 진(gin)과 쾌락”에서 허우적거리도록 운명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놀드는 정치를 기존 권위에 맹목적으로 내맡길 만큼 현실정치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거부하는 것은 항의의 정치, 즉 반대의 정치뿐이다. 이는 지배질서에 대한 매우 완고한 방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이것 때문에 아놀드적 관점은 영국을 중심으로 50년대 말까지 지배계급의 대중문화와 문화정치에 대한 인식을 지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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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Salmonella Breakout, this time from JBS Tolleson Inc in Arizona

(Photo from CDC)

JBS Tolleson, Inc., of Tolleson, Arizona, recalled “approximately 6.5 million pounds of beef products, including ground beef, which may be contaminated with Salmonella Newport.” according to CDC (Center for Decease Control and Prevention).

Between Aug 5 to Sep 6, 57 people in 16 states are affected by this salmonella Newport according to CNN.

소고기와 갈은 소고기 (패키지 기간 7/26-9/7/18)에 살모넬라 균이 발견되었다고 질병 예방 관리 센터에서 밝혔다. 16개 주에서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사람들은 지금 현재 57명에 이르고있다.

The recalled beef products were packaged from July 26, 2018, to September 7, 2018 and distributed to retailers nationwide.

  • Products are labeled with the establishment number “EST. 267” inside the USDA mark of inspection.
  • Restaurants and retailers should not serve or sell recalled beef products and should check food storage and freezers for them.

If possible, retailers who received recalled beef products should contact their customers to alert them of the recall.

  • Consumers who have ground beef in their homes labeled with the establishment number “EST. 267” should contact the store where it was purchased to find out if it was recalled. Do not eat recalled ground beef. Return it to the store or throw it away.
  • Consumers with questions about the recall can call the JBS USA Consumer Hotline at (800) 727-2333.
  • Contact a healthcare provider if you think you get sick from eating recalled ground beef.
  • In general, consumers and restaurants should always handle and cook ground beef safely to avoid foodborne illness. It is important to handle and prepare all ground beef products carefully.

Symptoms of salmonella infection

  • Most people infected with Salmonella develop diarrhea, fever, and stomach cramps 12 to 72 hours after being exposed to the bacteria.
  • The illness usually lasts 4 to 7 days, and most people recover without treatment.
  • In some people, the diarrhea may be so severe that the patient needs to be hospitalized. Salmonella infection may spread from the intestines to the bloodstream and then to other places in the body.
  • Children younger than 5 years, adults older than 65 years, and people with weakened immune systems are more likely to have a severe illness.

CDC announced that its investigation is ongoing and will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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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문화와 예술

그러나 예술은 아름다움의 창작 만은 아니다. 예술은 때로는 미적 즐거움을 방해하는 반미적 인 것, 즉 추한 것을 창작하고 표현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예술적 미의 기준이란 질서, 비례, 균형, 조화, 도덕성 등 이었지만, 고전주의 이후 근대의 낭만주의에 이르러 반역, 모순, 불균형, 무질서 등이, 그리고 현대의 초현실주의에 이르러 광기, 무의미함, 부도덕, 불안, 부조리 등이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 등장한다. 침묵이 때로는 하나의 위대한 발언이 되듯이, 추함이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표현 적 서술이 될 수 있다. 마치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 이듯이 현상의 총체 성을 그려내기 위한 예술 속에도 긍정적인 미와 부정적인 추가 동시에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추가 미적 즐거움을 증가시키고 삶 전체의 생명 감을 고양시킨다 면 이제 더 이상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추가 아니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미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다. 현대예술의 감상에서 이러한 변증법적인 사고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데스와르, 우티츠 등에 의해서 예술학 (일반 예술학)의 주장이 제기된 이래로 예술과 미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문제시되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미적’이라는 개념은 예술의 본질규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창조적인 그리고 형식적인 면에 주목하여 좁은 의미의 ‘미적’ 대신 다소 포괄적인 의미의 ‘예술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데스와르에 의하면 미적 관조가 안정된 조화적인 즐거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반면에, 예술은 정신적,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즐거움 외에 지식이나 의지가 포함되어있다. 우티츠 역시 미적 관조와 예술활동을 구별하여 전자는 대상이 주는 인상이 감정에 귀의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이에 반해 감정 체험의 순수한 형식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이 미적 가치 외에 종교적, 정치적, 지적 여러 가치를 실현한다는 사실이 중요한데 이것이 예술이 문화 현상과 연결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상의 논의를 근거로 해서 문화와 예술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유사성 으로 첫째, 문화와 예술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특유한 영역이며 소산이다. 즉 둘 다 인간 정신의 고유한 표현방식이다.

둘째, 문화와 예술은 다 같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서 파악될 수 있으며, 그러한 경우 그것은 곧 산업개념과 연결되어 문화산업이나 예술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

셋째, 문화와 예술은 다같이 개선하고 변형 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인간의 활동이다.

넷째, 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문화와 예술 속에 던져지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문화와 예술은 다같이 인간의 삶의 터전이 된다.

차이성 으로 첫째, 모든 예술은 문화에 포함될 수 있지만, 모든 문화가 예술인 것은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넓은 의미의 문화에 포함되는 신념체계와 지식체계, 기술적 도구와 그 생산물,여러 가지 규범 등은 예술이 아니다.

둘째, 모든 예술은 미적 즐거움을 목표로 하고 그것은 향수자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분량이 변화되지 않지만 문화는 반드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셋째, 문화는 인간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문화를 따라오도록 요구하는 강제력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은 인간에게 어떠한 강제도 하지 않는다.

넷째, 문화가 일정한 시대와 지역에 속하는 집단 구성원의 언어라고 한다면, 예술은 시, 공간을 초월하는 만국공통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일반적으로 문화현상에 대한 이해나 수용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가능하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그것이 예술에 대한 안목이 있는 자에게만 적용된다. 이렇게 볼 때 예술이 문화의 가장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표현이며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문화의 하위개념으로 문화의 한 영역에 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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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Hacked: 50 Million Accounts at Risk

(Photo from Corih Kim)

Facebook announced at least 50 million users have attacked by unknown hackers on Friday.

Mark Zuckerberg, The Chief Executive described the incident as a “really serious security issue” in a conference call with reporters.

“This is another sobering indicator that Congress needs to step up and take action to protect the privacy and security of social media users,” Democratic U.S. Senator Mark Warner (Vice Chair of the Senate Democratic Caucus and the Vice Chair of the Senate Intelligence Committee) said in a statement.

If there were something at the user’s profile changed without the user knowing, or if users want to log into their accounts some how it won’t let them do it then it must be hacked was what Facebook said earlier today.

Facebook notified this issue to U.S.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and to Congressional aides to investigate and the Data Protection Commission in Ireland, where the company has European headquarters.

Facebook said the problems were fixed by the firm in Ireland, but the firm said, “Facebook was unable to clarify the nature of the breach and risk to users,” In 2008, 80 million Facebook user’s DOB were hacked, and in 2013, user’s email address and phone numbers were stolen by unknown hackers.

Last year, “view as” option led to unknown hackers accessing 40 million user’s information and this year, 50 million user’s accounts are at risk, especially before “Midterm Election”. Hackers gained access to Facebook’s system through a new “view as” feature on the website that allows people to view their profile as another user according to WSJ.

As of today,  Facebook stock falling 3.0% by afternoon at the Wall Street stock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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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g of Fire Shakes : 28 Earthquakes in a single Day

(Photo from USGS)

19일  하루 동안 Ring of fire 라고 불리우는 환태평양 지역에서 적어도 28개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다. 아시아에서는  남 북한 3차 정상 회담으로 그동안 서로 다른 외세의 힘으로 굳게  닫혀 있었던 문을 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멕시코에서는 마약과 갱의 무법천지로 인해 발생한 수 많은 인명 피해로 인한 시체 처리 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은 플로렌스의 영향으로 캐롤라이나 주가 아직도 물에 잠긴 채 태양의 힘을 빌리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알래스카에서, 캐나다에서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의 환상의 말리부 해안에서, 오클라호마 주에서 푸에르토 리코에서 하와이에서, 그리고 캄챠카 반도에서, 2.5 부터  5.0의 지진이 일어난 칠레, 4.3의 인도네시아 반다르에서, 니카라구아, 소말리아, 인도양에서 적어도 30여 차례나 지반을 흔들었다.

지구가 너무 극심한 피로에 휩싸인채 한 순간도 쉴 시간을 주지 못한 인간에게 이젠 좀 쉬고 싶다고 외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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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2. 문화의 양상

1) 문화와 자연

문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대비되는 것, 문화와 유사한 것, 문화와 연관된 것 등을 찾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은 접근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문화’를 손쉽게 이해하는 일차적인 방법은 ‘자연’에 대비시켜보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인 데 반해 문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서구에서는 매우 오래 된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질서(logos)에 따르는 절대적 가치로서의 규범, 즉 자연도 가치와 무관하지 않고 이에 따라 문화도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질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데 반하여, 자연(physis)과 규범(nomos)을 구분하면서 법칙적이고 절대적인 자연에 대해서 인위적이고 상대적인 규범을 주장한 소피스트들은 모든 문화적인 것은 철저하게 인간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본다. 가령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물질적인 필요 때문에 자신의 힘과 신의 도움으로 고안해 낸 것이 문화라고 함으로써 문화는 ‘자연적인 것에 대한 인간적인 보충’이라는 사상을 전개하였다.

사실 인간은 환경에 의존하는 자연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치를 창조하는 문화적 존재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인간이 신체적 생명을 갖는 한 인간은 자연적 존재를 벗어날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문화적 세계에 필연적으로 속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 특정한 문화에 의해 양육되는 동시에 다시 그 문화를 창조해 갈 운명을 지닌다. 인간은 동물적인 삶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인간적인 것으로 고양시켜 왔다. 특히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인간과 대립해 있는 외적 자연의 직접적 지배로부터 탈피하여 오히려 자연을 변화시키고 관리하려고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신체적으로 약하고 결핍된 동물이기에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으로는 생존해 나갈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내야만 하며,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문화를 건설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역사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는 과정이며, 비자연적인 것, 즉 문화를 건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문화화(문명화)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연 상태, 동물과 야만의 상태로부터 탈피해 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자연 자체는 늘 인간에게 문화를 강요하기에 문화 창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자연(nature)의 개념이 일차적으로는 외적, 물질적 자연을 뜻하지만, 이차적으로는 인간 자신의 내적 자연, 즉 자신의 동물적 자연(본성)을 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도 일차적으로는 본능, 욕구, 습성 등 동물적인 특정을 갖는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문화화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도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야만적 동물성을 극복하여 인간다운 인간으로 고양하는 내적 도야의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순서상으로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생존적 차원에서의 ‘제작 행위’(techne)를 통해 이룩되는 물질적 문화가 일차적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정신적 표현 행위로서의 ‘제작 행위’(poiesis)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신적 문화, 즉 예술, 종교, 학문 등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실천 행위’(praxis)를 통해 만들어지는 규범적 문화, 즉 제도나 도덕, 관습 등이 더욱 중요한 문화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지만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의 필요와 욕구로부터 출발한 것이고, 인간이 자신을 양육, 단련시키고 ,마침내는 인간다운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기본 사상은 ‘도구를 제작하는 문화’를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고유한 작품으로서의 문화는 자연성을 탈피한 인간만의 정신적 문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국가, 도덕, 종교, 예술, 학문 등의 문화를 참된 문화로 여기는 ‘정신주의’ 전통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근세 이후의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삶의 개선에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고,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었던 문화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경제활동이나 신체적 노동을 통한 생산행위로 이해됨으로써 문화 속에는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이념이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물질적 욕구는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제만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인간의 삶을 더욱 활기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식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인간다운 삶은 물질을 근거로 한 문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며, ‘제작하는 인간’이 인간의 본성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문화의 발달은 모든 문화 혹은 문명에 대해서 적대적인 사상도 낳게 된다.

문화 비판은 흔히 물질적 과학기술 문명의 비판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루소가 잘 보여주듯이 인간 실천에 의해 제도화된 모든 문화가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화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특징짓는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동시에 문화는 인간성의 억압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도 ‘문명’에 대해 비판을 가하였지만, 루소는 이것을 넘어 근대 시민 문화 자체를 자연의 이름으로 비판한다. 그에게서 ‘문화’ 혹은 문화적 상태(etat civil)는 오히려 자연상태(etat naturel)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한다. 인간의 ‘자연성’은 문화화 과정에서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성’을 전개시키는데 불가결한 요소이면서 또 문화화 과정의 시금석이다. 루소는 인간의 문화가 무한히 진보하리라는 낙관주의적 계몽주의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루소에게 있어서 인간의 역사는 초기의 이상적인 자연상태로부터 타락해 가는 ‘원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주의는 일종의 원초적,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는 것이며, 이것이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 혹은 문화와 문명을 구분하는 독일의 사회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오늘날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분화되고 각각 상대적 독립성을 얻음으로써 문화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 만들었으면서도 문화를 변화시키거나 제어할 수도 없고 문화에 대해서 저항할 수도 없고 더구나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삶의 양식에서 나온 바로 그 문화가 다시 인간 삶의 양식을 바꾸는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문화를 본능의 해방이 아닌 억압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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