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up of Poem ~~흑천 봄길/차용국

(사진: 차용국 시인)

두루미 봄빛 물고 날아온 흑천에는
갈대숲 사잇길로 흐르는 어수물*이
추흡산 허리 휘감고 춤을 추며 흐른다

갯버들 포동포동 양 볼에 생기 돋고
제비꽃 민들레꽃 고개를 치켜드니
보시게 눈이 즐겁고 가슴 아니 맑은가

*조선 세종, 세조, 성종이 영월 월정사 행사중 양평 흑천변 마을 우물에서 마셨다는 물

이 시조는 연시조이다. 3434,3434, 3543 의 형식을 띤 정형적인 연시조를 참 오랫만에 싣는다.

흑천은 가보지 않았지만 이 시를 읽으면 이미 그곳에 간 듯한 느낌이 드니 이 시를 통해 흑천에 “두루미”가  물고 온 “봄빛”을 흠뻑 마시며 봄에 취함도 좋을 듯한 어느새 가버린 시절, 봄을 떠나보내며, “흑천” 물에 나를 비추어 보며 나르시즘에 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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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up of Poem ~~ 고년들/전숙

사진: 코리킴

그 년, 이 년, 저 년, 잘난 년, 못난 년
웃는 년, 찡그린 년, 복 터진 년, 지지리 궁상인 년
모두모두 똑같이 노을빛 사금 든 년들

눈꼬리 처진 것 보기 싫다며 사진도 안 박는 년
탱탱한 시간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하느님께 뒷돈 바치는 년
아직도 백마 탄 눈먼 나비 꿈꾸는 년
묵은 정 든 동무들과 죽고 못 살다가도
돌아서면 가슴이 서늘한 년

자식들에게 잘 가라고 손 흔들다가
고개 외로 꼬고 눈물 찔끔거리는 년
뷔페에서 뱃살 자랑하면서도
서너 번은 들락거려야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년
거지사위 챙겨 먹이는 월매의 밥상 같은 오지랍 넓은 년
차가운 세월에 흠씬 두들겨 맞은 한 떨기 들국화 같은 년

천지창조의 한 옥타브 올라간 꼬리말
시들지 않는 입담을 피워 올리는 꽃 아줌마, 고년들.

(시더나무 그늘 2012년 창간호: 전남여중고 총동창문인회 중에서)

*** 친구들과 목젖이 다 보이도록 깔깔거리며 웃다가 교련 선생님이 지나가거나 학생과장 선생님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소곳하며 얌전하고 새침떼기 처럼 조신하게 “미라보 덜컹거리던 나무 다리”를 걸어 가던 기억들이 솔솔 생각나는 나이가 되었다. 배우 윤정희 선배가 교정에 방문했을때 감자바위 앞에서 서로 다투어 사진을 찍으려고 했었던 때는 사진 찍는 것도 참 귀한 때였다. 이 시집을 몇 년전 모교인 전남 여고에서 “양쯔강의 눈물” 에 대한 안내 강연이 있었을 때 교장 선생님이 선물로 주신 책을 읽으며 진한 공감이 느껴졌다. 다름아닌 “꽃 아줌마, 고년들” 중의 한 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라일락 향기가 은은하게 봄 하늘을 밝힐 때면, 영산홍 붉은 꽃이 내 눈에 들어와 시간을 멈추게 할 때 정말 “탱탱한 시간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하느님께 뒷돈 바치고”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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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쑥부쟁이/홍성재

사진: 이응원 작가

쑥부쟁이

愚靑

보랏빛
혼을 살라
향기를 드리우니

그린 임
아니 오고
벌 나비 수시 오네

달 아래
흘린 눈물만
윤슬 바다 이루네.

홍성재
***시조, 쑥부쟁이를 읽으며  외로움 가득 밀려오는 쑥부쟁이의 삶을 봅니다.
잊혀진 들판의 길 모퉁이에서 흔하게 만나는 보랏빛 쑥 부쟁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가냘픈 육신을 가끔 보며 참 안타까운 마음도 들곤 했어요. 항상 목을 쭉 빼고 길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이유가 있었군요. 그리던 임을 그리워하며 기다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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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ilding a Truthful Nation: “Calling a Deer a Deer” (이선훈 박사의 일본에서 한국을 말하다)

<Japan : Prof. Lee, Sunhoon>

필자는 오늘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알고 계시는 지록위마 (指鹿爲馬) 라는 4자성어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Daum 팁의 지록위마의 뜻과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진 (秦) 나라 시황제를 섬기던 환관에 조고 (趙高) 란 악당이 있었습니다. 조고는 시황제가 죽자 유조 (遺詔: 황제의 유언) 를 위조하여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데다가 어리석은 호해 (胡亥) 를 내세워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조고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해가 황제에 등극하자 조고의 예상대로 호해는 온갖 환락 속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게 되었고, 황제를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자 교묘한 술책으로 승상 이사 (李斯) 를 비롯한 원로 중신들을 처치하고 자기가 승상이 되어 조정을 완전히 한 손에 틀어쥐었습니다.
승상에 오른 조고는 자신의 권력기반을 더욱 강력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의견을 발설하지는않고 있지만 내심으로 자신에게 반대하고 있는 세력을 완전히 축출해내기 위해서 지록위마의 술책을 펼쳤던 것입니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황제인 호해에게 말했습니다.
“폐하, 저것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폐하를 위해 구했습니다.”
“승상은 농담도 심하시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 (指鹿爲馬), 이것이 무슨 해괴한 말씀이시오”
라고 호해는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조고는 다시 한번
“아닙니다. 말이 틀림없습니다.”
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였습니다. 조고의 이런 해괴한 억지주장에 대해서 어전에 모여있는 중신들을 둘러보며
“제공들이 보기에는 저것이 무엇으로 보이시오? 말이오, 아니면 사슴이오?”
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조고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대부분의 중신들은 ‘말입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눈치가 없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몇몇은 ‘사슴입니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고는 ‘사슴입니다’ 라고 답변한 중신들은 모두 자신에게 반하는 세력으로 간주하여, 온갖 술수를 사용하여 죄를 씌워 처형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조고에게 맹종하며 아부하는 중신들만이 남게 되었으나, 이로 인해서 전국에서 반란이 발생하고, 유방의 군대가 수도인 함양으로 밀려오는 가운데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자신이 죽였던 태자 부소의 아들인 자영 (子嬰) 을 진나라의 3대 황제로 옹립하였으나, 자영은 등극하자 마자 조고를 처형해 버렸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9년간은 ‘지록위마’ 그 자체의 기간이었으며, 2016년 5월 9일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약5개월 동안에도 이명박근혜 정권을 호위하며 비호해왔던 세력에 의한 ‘지록위마’의 상황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들은 국민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지록위마’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내부에서도 ‘지록위마’의 방법으로 결속하고, 지지자들을 재규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판단됩니다.
2016년 5월 9일 정권이 교체된 후에, 이명박근혜의 9년 동안 국민을 기만하며 은폐해왔던 부정불법행위들이 하나씩 발각되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국정을 운영했다기 보다는 정치보복과 실정을 포함한 모든 부정불법행위를 은폐하는 것에만 전념해 왔다는 것은 이제 명확한 사실입니다.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공금을 유용하고 전용하며, 민간인을 고용하고 동원하며 여론을 왜곡호도하며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 개입하였고,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당시의 야당 정치인은 물론이고 연예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찰을 해왔으며, 심지어는 여당의 정치인에 대해서도 사찰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견지하며 국가안보를 가장 중요한 표면에 내세운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기무사와 사이버부대마저도 여기에 동원했다는 사실은 국민을 경악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면, 현재 발견되고 있는 증거들은 거의 모두 당시의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는 내용들을 확인시켜 주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잔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현재의 상황을 문재인정부에 의한 정치보복이라고 말하며, 또 다시 ‘지록위마’의 저급한 술책으로 국민을 기만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9년간의 부정불법행위 그 자체가 바로 ‘정치보복’이라는 것은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고 있는 적폐척결은 민생을 외면하고, 국가안보에 전념해야만 하는 군과 국가정보원을 동원하여 민간인과 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자행해왔던 정치보복과 부정비리를 청산하여 국민의 안전과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기틀을 만들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노력인 것입니다.
문재인정부가 2016년 5월 9일 취임식을 마친 후에, 가장 먼저 행한 일은 고용안정을 위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었으며, 최저임금의 인상이 있었고, 추경예산을 통하여 인력부족이 심각한 경찰, 소방 공무원 등의 국민안전과 고용확대를 추진했습니다. 10월의 정기국회가 시작되기 이전에 시급한 민생경제에 관한 정책을 우선적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서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민생경제를 위한 적폐청산의 중단’이라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적폐청산을 ‘지록위마’의 억지주장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을 중단하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동참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이명박근혜 9년간, 국민들은 사슴을 말이라고 부르도록 강요 받았습니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부르는 국민이 있다면 가차없이 중상모략과 사찰이 가해졌습니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을 구실로 행해졌던 모든 정책은 정책의 이름으로 가장은 부정비리 그 자체였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보듯이 모든 정부부처는 박근혜의 실정과 부정부패를 은폐하는 것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당시의 국민들이 모두 의심하고 있던 바와 같이, 박근혜에 대한 보고시간이 9시 30분에서 10시로 조작변경되었고, 국민안전에 관한 컨트롤타워를 명시한 대통령의 훈령도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상태에서 붉은 펜으로 조작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헌법재판소와 국회의 질의에서 정권의 책임회피와 국민의 기만을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이명박과 그 측근들 그리고 새누리당의 잔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진나라의 악질환관 조고이며, 대한민국의 기강을 송두리째 흔들려는 반국가적인 ‘지록위마’의 사악한 정치적인 술수입니다.

정직한 민주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이명박근혜의 9년간의 정치보복행위와 부정불법행위를 발본색원하고 엄중한 처벌을 내리는 적폐척결은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그리고 적폐척결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국민의 강경하고 단호한 단절의 결단이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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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Sa Ik : 3-Star Korean General in Imperial Japanese Army was still Anti-Patriotic

<Japan : Prof. Lee, Sunhoon>

일제식민시대의 한반도 출신 일본군 육군중장 홍사익

홍사익(洪思翊)은 일제식민지 시대에 한반도출신의 일본육군군인으로서 조선의 왕족이었던 이은(李垠)과 함께 일본의 황족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한반도출신으로서 가장 높은 계급인 중장에 오른 인물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에, 전범으로서 필리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1889년 조선시대의 경기도 안성의 양반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남양홍씨입니다. 일본에 의한 한반도지배가 사실상 시작된 1905년의 을사조약 체결 후, 대한제국의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으며, 1909년에 육군무관학교가 폐지됨에 따라서 일본의 중앙유년학교에 국비유학했고,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 곧바로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는 대한제국으로부터 파견유학생이 몇 명 재적하고 있었습니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일본에 합병되자, 그 충격으로 항일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홍사익은 “지금 궐기하는 것은 조선의 독립을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력을 쌓은 후에 투쟁에 나서야만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1914년 25세에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742명중 31등(26기)으로 졸업하고, 육군보병 소위로 임관하여 동경에 본부를 둔 제1사단 제1연대에 배속되었습니다. 34세인 1923년에는 육군대학교(35기)를 졸업하였습니다. 일제식민시대에 육군대학교에 입학한 조선출신은 이은, 이건(李鍵), 이우(李鍝)의 3인과 홍사익을 합한 4인이 전부이며, 홍사익 이외의 3인은 모두 일본의 황족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던 조선의 왕족들이었습니다. 36세인 1925년에는 육군참모본부에 배속되어 전사편찬에 임했으며, 40세인 1929년에는 육군 소좌(한국의 소령에 해당)가 되었고, 42세인 1931년 8월에는 육군보병학교 교관을 재직하였으며, 44세인 1933년 4월에는 관동군 사령부에 배속되어 만주국군에 고문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때에, 봉천군관학교(奉天軍官學校: 만주국 육군사관학교에 해당함)를 지도한 이외에, 군관학교의 모집대상에 만주국에 살고 있는 조선인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이전까지 만주국군 장교의 자격으로는 일본인, 만주인, 연안계조선인에 제한되어있었지만, 처음으로 조선인 이민자에게도 개방되었습니다. 45세인 1934년에는 육군보병 중좌(한국의 중령에 해당)가 되었고, 47세인 1936년까지 관동군사령부 참모부에서 근무했습니다.

홍사익은 대한제국군과 일본육군사관학교 시절부터 동료이던 한국광복군 사령관 지청천(池靑天)으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조선의 독립에는 아직 시기상조이며 지금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지청천의 권유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청천을 포함한 대한제국군 출신의 항일독립운동가들과 비밀스럽게 우정을 유지하였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가족을 자비로 지원하였으며, 창씨개명이 단행되었을 때에도 최후까지 개명하지 않았다고 하며,  홍사익은 일제식민지 상태에 있는 조선인의 입장을 ‘영국에 있어서의 아일랜드인과 같은 상태’로 자신의 아들에게 설명하였고, 고종황제가 하사한 대한제국의 군령을 생을 다할 때까지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지고도 있습니다.

1936년에 육군보병학교의 교관으로 전근하고, 38세인 1937년에는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12월에 중국에 파견되었고, 1938년 3월에는 대좌(한국의 대령에 해당)로 승진하여 흥아원조사관이 되었고, 상해의 화중연락부에 배속되어 정보수집과 정치공작에 종사했습니다. 흥아원조사관이란 원래 문관에 해당되지만, 당시의 군의 권한확대에 의해서 군인이 배속되게 되었습니다.

41세인 1940년 8월에는 제1사단 사령부에 배속되었고, 42세인 1941년에는 소장으로 진급해서 화북의 하북성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제 108 부대의 여단장이 되어, 화북의 팔로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팔로군 산하에는 조선의용군의 화북지대가 있었지만, 같은 해 12월에 후지아주앙(胡家庄)의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공격을 받아 주요한 대원들이 전사하고 포로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43세인 1942년 4월부터 1944년 3월까지는 육군공주령학교의 간사(부교장에 해당)로 재직했습니다.

45세인 1944년 3월에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으로 부임했고, 같은 해 10월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12월에는 필리핀 제14방면군 병참감이 되어 일본의 항복으로 종전을 맞이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홍사익이 평생 고대하던 조선해방의 순간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고향인 한반도에서 교사로서 조용히 살기를 갈망하였지만, 결국 홍사익은 해방된 조국의 땅을 밟을 수는 없었습니다.

연합국으로부터, 포로수용소장 시절에 식량부족 때문에 포로에게 충분한 급식을 하지 않은 책임을 추궁 당하자, 군인으로서 자신의 죄상에 대해서는 일체의 변명과 증언을 하지 않은 반면에, 다른 전범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변호를 펼친 것으로 재판기록에 남겨져 있습니다. 당시 한국국내에서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의 동기생들을 중심으로 언론에서 구명운동을 펼쳤지만, 끝내, 마닐라군사법정에서 전범자로서 1946년 4월 18일에 사형판결을 받아, 같은 해 9월 2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처형되었습니다.

1966년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인부문에 포함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의 명단에도 포함되었습니다. 홍사익의 묘는 유품을 담은 빈 관과 함께 부인 조씨의 묘 옆에 조성되었고, 비석은 1947년 4월에 세워졌습니다.

첫 번째 부인 조숙원은 오랜기간 병상에 누웠다가 1943년에 병사했으며, 첫째 아들인 홍국선은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해방 후 한국은행에 근무하다가 1984년에 고향인 경기도 안성에서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둘째 부인 이청영은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이청영에게서 태어난 둘째 아들 홍현선은 해방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거주했지만, 한국전쟁후에 친일파 가족이라는 주변의 압박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로스엔젤레스에서 유학을 하였으며, 1978년에 교통사고로 로스엔젤레스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언론인 송건호는 홍사익에 대한 비판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송건호의 홍사익에 대한 평가에 의하면 ‘일본의 한국민족에 대한 식민통치는 한국민족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정책으로 일관되어 있었으며 한국인을 한국민족이라 부르지 않고 ‘반도인’이라고 했으며 일본을 ‘내지’라고 추켜세우는 판이었으므로 한국인으로서는 같은 동족이 중장까지 승진한 것에 대해서 오히려 민족적 긍지를 높혀주는 구실을 했으며 홍장군을 친일파로 욕하고 싶은 심정은 아니었다. 따라서 일제시대의 홍장군을 보는 눈과 해방 후에 홍장군을 평하는 가치판단은 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송건호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홍사익이 일제식민지 상황에서 중장까지 진급한 것은 순수하게 홍사익의 능력이 일본인에 비해서 월등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며 민족적인 긍지로서까지 해석하는 것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제식민시대에 일본이 한국민족을 철저하게 비하하고 노예와 같이 혹독하게 다루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홍사익은 오히려 일본인들이 일제식민시대를 미화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이용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추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본에 의한 한반도 식민지배의 미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사익이 자신의 출세를 자신의 월등한 능력에 의한 결과인 것으로만 생각했다면, 여러 번의 독립운동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살았던 친일 기회주의자의 전형이라고 보아도 그렇게 혹독한 평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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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눈길/ 이강화 교수

사진은 해당 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눈길

고향에 가려면 생시나 꿈속이나
항상 눈길을 걸어야한다
추억이라는 것이 이상해서 항시
고향은 눈속에서만 나를 기다리고있다

지치고 허무하기에 살아갈 일도
잊어버린 하루 세월의 겨울날
그늘진 도시의 귀퉁이에서 열심히
바둥대지만 손에 남겨지는 것은
비겁함과 자괴의 흔적들뿐

가끔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할때면 무슨 고향이 눈 속에만 있느냐고
핀잔이나 준다
지금이라도 고향엘 가면
우리가 겨울보다 먼저 도착할거라고
우기지만 현명한 아내는 우리보다
겨울이 먼저 와 있음을 알고있다

고향에 가려면 생시나 꿈속이나
눈길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빈곤한 마음과 영혼이 부끄러운 우리는
오늘도 떠나지 못한 채 도시의 한켠에서
고향의 눈을 조용히 이야기 할 뿐이다

 

*** 여름에 대한 시를 써 주십사 했더니 겨울을 올려 놓으셨다.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도 일본도 절기에 맞게 곡식의 낱알을 더 여물게 하느라고, 과일의 단 내를 더 깊이 담느라고, 뜨겁게 더 뜨겁게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덥다! 이 여름 겨울의 시를 읽으며 잠시나마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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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낮달맞이/홍성재

낮달맞이

홍성재

보고픈
가슴 두고
미소만 짓는 것은

상사는
내 몫이요
눈물도 내 몫이라

차라리
달맞이 되어
밤에 피면 좋겠네.

사진 : 분홍낮달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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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ing And Questioning of Historical Consciousness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14<은우근 교수>

<Gwangju : Prof. Woogeun Eun>

역사는 “단지 돌아보고, 회상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바라보며, 미래에 어떤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가를 질문 속에서 역사를 재해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계(Limit)는 곧 경계 (boundary)다. 우리가 너와 나를 구별해서 인식하는 것은 경계 때문이다. 우리는 구별하는 인식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경계는 나와 너, 나와 우리 그리고 나와 신 사이를 구분짓는다. 따라서 나와 나의 타자가 서로 만나기 위해 경계는 우리가 넘어야 할 한계이기도 하다. 죽음의 공포, 이기심, 게으름, 등 무엇이 경계를 구성하든 지 간에 그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경계에 갇혀 있는 것이다.

80년 5월 27일 해방광주의 마지막 새벽, 5월민중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 사람들, 그들은 대부분 노동자 계급에 속했다. 이 도시에서 난 한 번도 주인으로 행세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주인으로서 마지막 의무를 다 한 셈이다. 5월민중항쟁 초기인 5월 18일 이후 며칠동안, 5월민중은 공수부대의 압도적 폭력이 유발한 죽음의 공포라는 절대적 한계를 넘어서 생명 공동체를 이룩했다. 그러나 5월 27일 새벽, 어둠속에 울리는 마지막 가두방송을 들으면서도 집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한 5월민중은 공포라는 한계안에 갇힌 자신을 다시금 발견했던 것이다.

5월민중의 자부심은 바로 이 한계를 한 때나마 넘어서 이룩한 신비로운 생명공동체에 대한 긍지였으며, 동시에 그들의 부끄러움은 이 한계를 온전히 넘지 못함으로서 동지의 긴급한 연대의 호소를 외면한, 경계 앞에 선 자신에 대한 반성의식이었다.

누가 이름없이 죽어간 전사들의 죽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겠는가? 그들이 속한 계급은 여전히 이 도시에서 배제되고 있지 않은가? 우람한 규모의 기념탑이 망월동 국립묘지에 우뚝 서 있는 지금 이 도시의 진정한 누구인가? 5.18당시 우리가 넘지 못한 경계는 무엇인가? 역사의 진보가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는 실천’을 통해 이룩된다면, 지금 우리가 넘어야 할 경계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노력 속에서 5.18의 영성화의 실마리도 잡히지 않을까.

지난 14회동안 광주대학교 은우근 교수님의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을 통해 지난 37년전의 광주로 시간과 공간 이동을 했다. 5.18광주민주화항쟁에서 필자를 비롯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2000년 전, 새벽에 닭이 세번 울었을 때 고뇌하고 번민하는 베드로의 죄책감이 함께  떠 오르기 때문이다. 믿었으나 함께 하지 못했던 죄책감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가슴속에 화인된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스피커로 들려오던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할 것을 외치던 시위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뿌리친 결과는  수 많은 사상자를 내고 계엄군에 의해 자유에 대한 의지와 권리를 한 동안 찾을 수 없게 된 결과를 초래했다.  연합하였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이불을 덮어쓰고 구석진 방에서 숨어 있었던 것이다.

*** 은우근 교수님, 비록 행복한 여정은 아니었지만 지난 37년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여행이었습니다.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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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yzing the Negative Press Reactions on Pres. Moon’s Foreign Policy Announcement <이선훈 박사, 일본에서 한국을 말하다>

<Japan : Prof. Lee, Sunhoon>

6월 21일,

문정인 외교특보의 발언에 대한 부정반응의 평가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정인 특보의 발언에 대한 한국의 일부 언론, 새누리당의 잔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이들의 패악을 이용하여 문재인 정부과 더민주에게 권력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국민의당은 격렬한 비난을 표시하며 국민을 선동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한미외교를 미국에 대한 복종으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친미사대주의에 몰입한 나머지 진정한 한미외교가 어떻게 행해져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며, 한미방위조약을 포함한 한미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갖고 있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행위를 당연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명박근혜 정권 9년간에 대북관계뿐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협상과 결정에서 미국, 중국, 북한, 일본, 러시아에 의존해 왔습니다.

한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있어서 최대의 위험을 느끼고 있으며,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주도적으로 신속하게 대처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 종속되어 이명박 정권에서는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개성공단을 폐쇄와 더불어 북한과의 모든 대화통로를 차단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한.미.일 군사정보 교환협정의 체결을 기화로 한일간에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던 일본군 종군 위안부문제인, ‘소녀상’의 철거를 주장해오던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여, 한일 위안부 협상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압력을 통해서 이루어 내었습니다. 2011년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소녀상’은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를 한국의 허위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의 군국주의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해오던 일본의 아베정권에 대해  일본군국주의의 전쟁범죄와 여성인권문제의 참상이 세계적인 화두로 등장시킨 한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외교할동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며, 일본의 아베정권과 한일 위안부 협상에 합의하여 최대의 외교실정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에 따라서 일본의 아베정권는 군국주의와 식민지배의 전쟁범죄에 대한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침략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어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가속화시켰고, 박근혜 정권은 ‘소녀상’의 철거를 주요내용으로 한 한일 위안부 협상으로 이러한 일본 아베정권의 야욕을 실현하는 것에 가장 강력한 도움을 주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전시작전권의 환수를 무기한 연기하며, 한미군사훈련을 확대해왔고, 미국의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비용의 일부를 일본에게 부담시키기 위해서 한일 위안부 협상의 강요하며 한미일 군사정보 교환협정을 성사시켜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허용해주는 상황을 형성하였습니다.

박근혜의 탄핵으로 정권교체가 예견되던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사드를 조기배치하여 미국본토방위를 위한 미사일방위체계인 MD system을 완성시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MD system은 강력한 X-Band 레이더와 요격미사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격미사일은 그 성능이 아직 정확히 입증되지 않는 상황에 있으며, 2017년 5월 30일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공격에 대비한 요격 훈련에 성공했다고 미 국방부가 밝혔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요격미사일은 한국에 배치된 요격미사일과는 다른 신형무기로서 한국에 배치된 요격미사일 보다 성능이 훨씬 향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사드 레이더기지가 2006년에 일본 북부지역의 아오모리껜 샤리키와 2014년에 일본 중부지역의 쿄오토오후 교가미 사키에 설치되었으며,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X-Band 레이더만을 설치하고 요격미사일은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요격미사일이 없는 사드레이더의 설치를 보면, 미국은 미국본토방위를 위해서 요격미사일 보다는 X-Band 레이더를 동북아시아 지역에 설치하는 것이 목적이며, 일본의 입장에서도 아직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요격미사일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페트리어트 등의 요격미사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서 명확해진 사실은 미국은 X-Band 레이더를 설치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며, 요격미사일의 설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에 반해서 한국의 경우에는 X-Band 레이더와 함께 요격미사일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방어시스템인 것으로 강조하며, X-Band 레이더의 설치에 극력 반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극심한 반발에 대응하고, 한국에서 격렬하게 일고 있는 사드배치에 관한 찬반논쟁에서 찬성세력에게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요격미사일이 배치는 현재와 같은 한반도의 전쟁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쳐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사드배치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일본국민에게 한국이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서 사드배치를 조기에 결정할 정도로 극단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일본국민에게 강력하게 인식시켜, 일본의 아베정권이 평화헌법의 개정으로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순조롭게 진행하려는 의도와 함께, 미국과 함께 중국의 태평양진출을 차단하여,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마저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의 성장속도를 지연시키고, 그에 따른 군사력의 확장을 막는 것이 주요한 목적입니다. 즉,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북한, 중국, 러시아의 3국과 한국, 미국, 일본의 3국이 편을 갈라서 대립관계를 이루는 ‘신냉전체제’의 최전선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 한국의 사드조기배치를 이용하는 것이었으며, 한국의 제19대 대선에서 사드배치에 찬성하지 않는 문재인 정권으로의 정권교체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미국의 이런 의도에 편승해서 대선에서 한일 위안부 협상의 폐기 또는 재협상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문재인 정부의 대선승리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내었으며, ‘신냉전체제’로 남북대치상황을 고착화하여 일본이 1998년 이후에 일본의 새로운 경제성장동력으로 간주하고 있는 시베리아 공동개발을 한국에게 선점당하지 않기 위한 술책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를 고려해볼 때,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한반도의 고조되고 있는 전쟁위기를 완화시켜, 한반도의 평화상태를 유도해내는 것은 군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필수적인 것이며, 이를 위해서 남북회담을 이끌어내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정인 외교특보는 미국을 방문하여 강연회에서, “북한인 핵과 미사일실험을 중단한다면, 미국과의 협의 하에서 전술핵무기의 배치와 한미합동훈련을 축소 조정할 수도 있다”고 발언을 하였습니다. 문정인 특보의 발언은 한미정상회담에 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철폐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남북대화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서 위와 같은 조건을 예시함으로 미국의 의향을 타진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문정인 외교특보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서 일부 언론,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한미군사동맹을 파괴하는 발언이며, 미국을 격노하게 하여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더욱 고조될 수 있는 반국가적인 발언’이라고까지 혹독한 매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전혀 터무니 없는 억지주장이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이미 미국은 비공식적인 채널로 북한과 협상에 임한 바가 있으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이 핵무기의 실험을 중지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북한의 현체제를 위협할 의사는 없으며, 성실하게 회담에 임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도발이 중지되고 대화에 나서는 경우에 북한의 핵무기 실험에 대해서 강화해왔던 대북위협수단들을 축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문정인 외교특보의 발언은 미국을 격노하게 할 문제도 아니며,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킬 내용도 아닌 당연한 발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정인 외교특보의 발언에 대해서 격렬히 매도하고 있는 일부 언론,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화의 필요성제기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이며, 남북대치상황을 고착화하여,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저하시켜, 이를 국내정치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이런 격렬한 반발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외교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친미사대주의의 발현이며,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주도권을 강화시켜주는 친일적인 발상에 기본을 두고 있는 반국가적 행위로 단정해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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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5<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에서 골짜기 곡(谷) 형상과 현(玄)덕(德) 그리고 적(赤)자(子)와 박(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赤子’는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갓난아이로서 인간이 회복해야 할 마음바탕이다. “노자”에서 갓난아이는 자연의 원기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순수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갓난아이와 같이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과 반대되는 강(强)강(剛)은 자연에 역행하며 생존에 유익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오래가지 못한다. 노자는 덕을 온전히 갖춘 사람은 樸과 영아와 같은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물 공생의 자연의 이치 즉, 상(常), 화(和), 명(明)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 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상(常)무(無)욕(欲), 이(以)관(觀)기(其)묘(妙) 로서 도의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복귀의 지향점은 만물에 적용해보면 허정, 영아, 무극, 박, 무명 등의 자연스런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도는 만물을 가리지 않고 안에 도가 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타고난 만물의 내재된 성품은 도(道)의 常,和,明, 柔弱 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만물은 본연의 상태를 벗어나면서 점차 탐욕과 지모로 强剛 해지면서 도의 성질과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인간의 자연성회복을 위해서 인간의 욕망과 분별지 그리고 인위성의 문제를 도의 특성을 나타내는 무욕, 무지, 무위, 무심등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인간은 명예와 재물, 그리고 권력 등 다양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다. 한정된 명예, 재물, 권력은 이것을 소유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일으킨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지(智)모(謀)와 사람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현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고 사회의 혼란과 불안감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우선 감각기관으로부터 외물을 보고 탐하게 되는 탐욕으로 부터 비롯된다. 탐욕은 집착으로 이어지고, 집착은 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분별지가 작용함으로 더욱 가중된다. 분별지는 좋은 것,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 자만심을 채울 수 있는 것 등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 지모, 작위를 작동시켜 실행에 옮긴다. 통치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온갖 예법을 만들어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이용한다. 그러므로 인간 마음의 고통을 유발하는 욕심, 분별지, 예법은 순환 고리로 연결되어 상호 간에 영향을 주며 작용한다. 즉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지모를 꾀하고 유(有)위(爲)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탐욕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라고 노자는 보았다. “죄는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며 허물은 욕심내어 얻으려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고 말하며 욕심의 위험성을 표현했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罪莫大於可欲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常足矣. (노자 46장)

춘추 말기에 통치자들은 권력과 재물을 탐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백성들을 지배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노자는 당시의 문란한 사회상과 道에서 완전히 벗어나 욕망에 사로잡힌 통치자와 관리들의 도리에 어긋난 현상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대도심이, 이민호경,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과, 非道也哉.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야재.
나에게 약간의 지혜가 있다면 무위의 큰길을 거닐며 오직 사도에 잘 못 빠질까 두려워 할 것이다.
대도는 평탄한데 사람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깨끗한데 농촌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리엔 날카로운 칼을 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싫도록 먹고 재물은 남아돈다.
이러한 것을 도둑의 사치라 한다. 어찌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노자 53장)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으로 마음이 담백해야 하는데, 욕심이 많아질수록 마음에는 더욱 많은 것을 가지려는 강한 의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강한 기운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과 다툼을 일삼아 도와 덕으로 부터 점점 멀어져 망하거나 죽게 된다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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