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ical trip to Sukgulam and Hyeryongsa

차용국(“한양문인회” 회원, “내일로 가는 시인들의 나라” 멤버)

* 회룡역~석굴암~회룡사~보루길~망월사역

장마가 그치고 땡볕이 심통을 부리며 발길을 햇빛을 피하는 곳으로 잡아끄는 한여름이다. 석굴암 가는 길은 까마득한 오르막길이며 숲을 따라 햇빛 만은 피할 줄 알았던 산행은 오히려 따가운 햇빛만 기세등등 달려드는 한적한 산길이다. 거친 숨소리가 목에 꽉 찰 무렵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막아선다. 두 개의 바위 사이로 문이 있다. 석굴암 이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사바세상을 떠나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같다. 문앞에 서니 시원하다. 바람도 이 문을 통해서만 석굴암에 들어가는가 보다.

자연 암굴에 모신 부처는 말이 없고, 기도하는 수도승도 보살도 없는 정적 뿐이다. ‘석굴암이란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백범 김구의 글씨를 받아 새겼다 한다. 백범 김구가 상해로 망명하기 전에 이 굴에서 피신해 있었다 한다. 글씨는  역사적인 귀중한 증거이기도 하다.

석굴암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흰 구름 몇 점만 떠 있는 파란 공간이다. 비우고 또 비워서 단순해진 여백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삶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늘 허둥지둥 스쳐가는 발끝에 허물과 티끌만 쌓여간다.

석굴암 아래에 회룡사가 있다.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1(681)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한다. 회룡사라 부르게 된 것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일화에서 연유한다. 그는 아들 태종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을 겪자 왕위를 버리고 함흥으로 돌아가 버렸다. 태종은 끈질기게 함흥차사를 보내 귀경할 것을 고하여 결국 돌아와 왕사 무학대사를 찾았다. 이때 무학이 이를 기뻐하여 회룡사라 불렀다고 한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세월의 흔적처럼 검은빛이 흐르는 오층석탑이 서있는데, 1층부터 3층까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별개의 석재이고, 4층 이상은 동일석인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15세기 석탑 양식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회룡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힘차다. 그동안 장마로 힘에 부치다가 최근 연일 내린 비로 인해 물이 많아지자 계곡도 다시 힘이 솟나 보다. 힘찬 물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내 발길도 덩달아 물소리를 탄다. 늘 그렇듯이 산을 내려오는 발길은 가볍다. 오늘은 또 산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어 왔는지….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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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6<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의양만물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만물귀언이불위주, 가명위대. 이기종불자위대, 고능성기대.(노자 34장)

노자는 ‘자애로움으로 싸우면 이긴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공감적 응답, 즉 자애로움으로 대해주면 사람들은 그 자애로움에 감화를 받고 온전히 자애로움에 자신의 존재를 내어맡긴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자애롭지 않고 용감하다는 것은 냉혹한 폭력일 뿐이다. 자애롭다는 것은 분별심이 없는 무차별적인 사랑이다. 애증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 그 자체이다. 노자는 ‘아끼기 때문에 크고 넓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소유의 욕심을 버리고 절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늘날 재산이 많다고 고액의 물건을 사들이며 호화스럽게 사는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내용이 된다. 노자는 ‘천하 사람들 앞에 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겸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겸손한 사람은 “공이 이루어져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지 않고, 바로 그가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공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자는 ‘자애로움’, ‘검소(아낌)’, ‘앞서려고 하지 않음’을 바로 도와 덕의 성품으로써 우리 인간이 본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노자는 이 세 가지를 본받지 않으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했고, 자애로움이 우리를 참다운 삶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였다.

무위와 청소년 문제 치유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포之木, 生於毫末,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합포지목, 생어호말,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구층지대, 기어누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 무위고무패.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則無敗事.
무집고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칙무패사.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시이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노자 64장)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 우울증, 비행청소년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노자의 무위사상은 마음치유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위는 부드럽고 유연한 도이다. 무위의 덕으로 마음을 보듬어주면, 난폭하고 왜곡된 사람도 감화되어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들 마음에 굳혀진 부정적인 생각에 무위의 덕이 스며들어가면서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우리사회는 물질, 명예, 지식, 인맥 등과 같은 든든한 배경을 지닌 사람을 우대하는 풍조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풍조는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와 가정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노자가 도의 성품을 지닌 사람은 “만물의 자연스러운 성품을 돕지만 감히 작위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부모는 자식의 본연의 성품을 헤아려서 자식의 존재의 고유성을 잘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어떤 부모는 자신의 욕심으로 자식을 키운다. 즉 사회적으로 출세할 수 있도록 공부를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식을 내세워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무위로서 자연스럽게 자식을 키우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욕심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자식은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식은 자존감의 상실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감을 피어내지 못하고 억지로 부모에게 맞추려다 보니 자기다움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학교와 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비행청소년 문제는 심각하다. 그들 가운데는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이어서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불만과 폭력성을 치유해줄 문제가 시급한 사회적인 현안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비행청소년 문제는 그들의 심적 불만과 외적 폭력성의 원인을 세심하게 검토하여 다각도로 해결해야 한다. 노자는 “하늘이 누구를 구하려고 하면, 곧 자애로움으로 그를 보호한다”고 했다. 청소년 문제는 강한 체벌이나 격리 수용소에 가두어 놓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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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5<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천하개위아도대, 사불초, 부유대, 고사불초, 약초구의, 기세야부,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아유삼보, 지이보지,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 고능성기장,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금사자차용, 사검차광, 사후차선, 사의,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부자이전즉승, 이수즉고, 천장구지, 이자위지.(노자 67장)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지키고 보존하고 있다.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아낌이고, 셋째는 감히 천하에 다른 사람의 앞에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떳떳함)할 수 있고 아끼기 때문에 크고 넓어질 수 있고, 천하 사람들의 앞에 있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만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지금 자애로움을 버리고 용감함을 구하거나, 아낌을 버리고 넓어짐을 구하거나, 물러나 양보함을 버리고 앞서려고 하는 것은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다. 자애로움이란 그것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고, 그것으로 지키면 공고해질 수 있다. 하늘이 누구를 구하려고 하면, 곧 자애로움으로 그를 보호한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 27장)

인생의 행복은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이해와 공감은 곧 자애로움이다.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상공은 자애로움에 대해 “백성을 갓난아이처럼 아껴주는 것이다”고 말했듯이, 자애로움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느껴주는 것’이다. ‘느껴주는 것’은 상대방을 ‘아껴주며’,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이다. 노자는 “성인은 언제나 사람들을 잘 구원해주고,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자연(도)에 순응하여 모든 사람을 포용해주는 자애로움이다. 자연은 좋은 것, 좋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좋은 것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노자의 자연의 도는 곧 무위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리는 것이다. 자연의 특성은 좋지 않은 것을 품고 정화시키는 작용을 하듯이, 자애로움은 인간의 좋지 않은 품성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은근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늘 상대해야 할 가족이나 직장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정서적으로 맞지 않거나 성격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노자의 검소함은 ‘嗇’과 비슷한 의미이다. 물질이 많다고 자랑하고 사치스럽게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재산이 많다고 물질로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이다. 인품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많은 재물로 인해 정신적인 손상을 입지 않는다. 재물로 위세를 과시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재물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재물로 위세를 과시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노자는 도와 덕의 성품을 지닌 “가장 선한 사람은 마치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였다. 즉 겸손하게 남들을 돕지만 앞으로 나서서 자랑하지 않는 허심의 성품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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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up of Poem~~콩 심기/강병원

(Photo from Bing Images)

콩을 심고
망을 씌웠다

촉새에게
모이 안 주려고

닷새 후에
살펴보니

콩 심은데
콩이 났다

 

* 이 시를 읽으면 농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콩을 심고 콩을 거두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때로는 콩을 심은 곳에 팥이 나올 수도 있음이라. 콩을 심고, 그것을 지키느라고 망을 씌우고, 그리고 지켜보는 것, 비로소 콩이 나오는 것을 확인한 농부, 어쩌면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간단하면서도 왠지 즐거운 느낌이 들어서 실어보았다. 시가 가지고 있는 함축되고 농축된 언어의 묘미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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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4<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이조복,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조복, 위지중적덕, 중적덕, 즉무불극,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무불극, 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저, 長生久視之道.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노자 59장)

노자는 몸과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정신과 기력을 아껴() 덕을 쌓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嗇’은 ‘아끼다’, ‘소중히 여기다’, ‘쌓다’, ‘거두다’, ‘적은 듯하다’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아낌)의 대상은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역량 모두 속한다. 특히 노자는 정신(마음)에 더욱 비중을 두었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 52장)

『노자』제52장에는 몸과 마음을 잘 보존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욕망의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면, 평생토록 수고롭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兌’은 밖에서 외적 사물에 대한 욕망의 유혹(흐름)이 들어오는 구멍이고, ‘門’은 내면의 자연성의 생명력이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의미한다. 우선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적인 유혹을 다스려야 한다. 노자는 “화려한 색깔은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난잡한 음조는 사람의 청각을 둔하게 한다”고 말했다. 외적인 강한 자극이 우리의 마음을 자꾸만 외적인 것으로 향하게 하여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정신이 분산되면 내적인 생명력도 허술하게 된다.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희언자연, 고표풍불종조, 취우불종일.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失亦樂得之.信不足焉, 有不信焉.
실역락득지.신부족언, 유불신언.(노자 23장)

이와 같이 노자의 嗇은 마음을 소중히 지켜 본성을 맑게 하여 본연의 자연성의 밝은 지혜를 보아야 하며 유연한 몸과 정신을 보존하여 튼실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强’은 ‘튼튼하다’는 뜻으로『노자』에서 ‘柔’(유연함)와 반대되는 ‘强’(강함)과는 다른 의미이다. 마음을 튼실하게 한다는 것은 외적인 것에 흔들림 없이 겸허하게 덕을 쌓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본연의 자연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정신과 기력을 세속적인 욕망으로 소진되는 것을 막고, 정신적인 역량을 배양하여 내면을 튼실하게 하는데 힘쓰는 것이다.

오늘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과 몸이 편안한 날이 없을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음에는 온갖 좋지 않은 감정들로 꽉 채워져 있을 때 노자의 嗇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면 마음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본연의 자연성에는 도와 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가 되면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선한 마음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애로움’을 느꼈을 때이다. 그때 사람들은 마음 깊이에서 고마움을 느끼며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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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여기에서 문명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시민이 되다’ 혹은 ‘세련시키다’ 등의 뜻으로 쓰인 동사 civiliser 가 동명사로 바뀐 문명civilisation이라는 개념에는 근대 서구 국가가 이룩한 문화적 성취, 즉 과학과 기술을 통한 생활 조건의 변화, 민주주의적 정치제도와 법체제, 예술과 학문 등에 대한 우월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인간 이성을 통한 역사 진보에 대해 희망을 걸었던 계몽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헤르더를 위시한 대부분의 근대 지식인들도 거의 한결같이 서양문화의 우월성을 이 문명이라는 개념에서 찾았는데, 칸트도 이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헤겔 역시 식민지를 경영한 영국인들을 일컬어 이른바 ‘문명의 선교사(die Missionarien der Zivilisation)라고 부르면서 세계 전역에 서양의 사고와 생활 양식을 확장하는 일을 인류률 위한 커다란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문화철학자 반 퍼어슨의 지적처럼 이제 “문화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예술, 과학, 종교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만남, 죽음과 삶, 성적 사랑, 재화 획득, 상품의 제조 등 모든 것이 문화를 구성하게 되었다. 문화를 이처럼 넓은 의미로 인간들의 삶을 위한 모든 생산 활동 혹은 그 결과물이라고 할 때, 이때의 생산이라는 것은 고도의 지적인 활동과 그 산물이 아닌 모든 노동의 결과물, 즉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의 모든 산물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환경세계에 대해 어떤 일정한 규정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규정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환경세계를 개선하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화는 환경세계를 개선시키려는 인간들의 의지, 그 의지가 반영되어 나타난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로서의 모든 생산물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반 퍼어슨은 문화를 명사가 아닌 동사로 본다. 왜냐하면 문화는 항상 변화에 관한 이야기요, 기존 문화 패턴의 변형에 관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문화유산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다양한 행동 양식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의 변화 과정 자체로 파악된다. 문화는 예술 작품이나 책, 생활 도구 등 문화유산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며, 또 박물관과 대학 건물, 회의장이나 공공서류등을 그냥 모아 놓은 것도 아니다. 문화는 이제 도구와 무기 제작, 춤과 서약송(誓約頌) 의식, 육아법과 정신 질환자 치료법, 성애와 사냥, 의회 소집과 칵테일 파티 등 다양한 행동 양식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으로 이해된다. 이제 문화 개념은 이제 훨씬 더 넓어졌고 역동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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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문화개념의 변화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었던 문화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경제활동이나 신체적 노동을 통한 생산행위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시민사회의 도래 이후였다. 근대 시민사회는 ‘욕구의 체계’라는 헤겔의 규정이 잘 말해주듯이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사회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전통적인 종교적 이념이나 윤리적 가치체계로부터 독립해서 그 자체로 자율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제 경제적, 물질적 욕구는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제만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인간의 삶을 더욱 활기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경제적인 요소의 독립은 도시상인과 시민계급이 시민사회의 주된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함으로서 가능하였다. 시민사회는 인간의 노동과 능동적인 활동을 강조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의식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 즉 자연, 사회를 더 이상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개발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적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시민사회의 출현과 함께 문화 개념도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문화와 더불어 문명 개념이 등장이 잘 보여준다. 볼테르와 튀르고 그리고 콩도르세 등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그들의 여러 저서에서 인류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완성’, ‘완벽화’를 향해 나아간다고 보면서 문화를 인류의 완성을 향해 진보해 나아가는 역사적 과정의 산물로 이해하였다. 인간 정신의 산물로서의 문화에 대한 이러한 의식은 독일의 계몽주의자인 헤르더에게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헤르더도 문화를 일차적으로는 정신의 도야, 정신의 형성(Bildung)으로 보았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인류의 ‘인간화’, ‘문명화’, ‘개화’, ‘계몽’의 일정한 단계로 보았다. 

동시대인인 칸트 역시 비슷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칸트는 문화 개념 자체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조야한 것으로부터 좀더 세련된 것으로의 이행하는 문화과정을 자연에서 자유로의 이행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문화 개념의 발전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칸트에게 있어서 문화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 이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노동을 통해 획득되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는 문화적 행위와 그 산물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선이 아니라 악이라는 칸트의 주장은 문화 발전이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기 보존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인간은 노동의 고통을 감수하며 지식을 추구하고, 법을 만들어 내며 시민사회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문화화된(kultiviert)’상황이란 바로 ’문명화된(ziviliziert)’ 상황을 의미하고 이 것은 바로 학문과 예술, 법질서와 도덕화된 체계를 갖는 것을 뜻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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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ry of Reflection and New beginning : Meet Past,Present and Future in One Space 우탁 오태식 교수 개인전

(오태식 교수 그림)

사유思惟의 풍경風景, 탄생
풍경에서 산수山水, 새로운 문인화 

오태식 교수 개인전이 오는 6월 13일 부터 19일까지 동덕아트 초대전으로 열린다. 

[ Oh Tae-Sik 10th Solo Exhibition 2018 ]

– 전시기간 : 2018년 6월 13일(수)~6월 19일(화)
– 전시장소 : 동덕아트갤러리 C홀
– 오프닝 : 2018년 6월 13일(수), 오후 5시~6시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68 동덕빌딩 지하 1층
– 전화 : 02-732-6458
– Site : www.gallerydongduk.com

제목에서처럼 그림 앞에서 눈 길을 돌릴 수 없는 묘한 끌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하얀 여백과 저 멀리로 보이는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산길이 시절을 따라 피고 졌던 기억이 아른하게 떠 오르기 때문이다. 세월들 안에 담겨 있었을 풍경과 추억을 잠시 되 새겨보는 시간, 그 안에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해 주는 그림, 동양적인 담묵화적인 기법으로 표현된 흑.백의 시공간의 과거와 현재, 하얀 여백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은 깊은 배려, 그것은 분명 또 하나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원복(李源福, 부산박물관장, 미술사) 추천서에서 “장우성(張遇聖,1912-2005) 화백은 1955년 ‘동양문화의 현대성’에서 문인화를 “티 하나 없는 천진天眞의 발로여야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고 귀에 들리지 않는 형이상의 아름다움, 즉 함축과 여운의 미”라 정의했습니다. 옛 그림 아닌 오태식 작품에서도 이를 공감합니다.” 라고 썼다.

이원복 부산 박물관장은 “작가는 ‘제가 그린 풍경은 우연에서 찾는 필연으로 실존하지 않는 풍경’이라 힘주어 말합니다. 이는 이상화된 자연경인 관념산수와 직결됩니다. 아울러 표현방식에서도 캔버스 위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후 물감이 자연스레 번지게 해 했고, 거친 결은 생명력의 호흡을 표현하기 위해 기성 붓이 아닌 수수 빗자루 붓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이런 시도는 그가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전통 붓을 잡았고, 서예를, 캘리그라피를 시도한 점이 그의 작품에 끼친 영향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에게서 관념 산수와 통하는 새로운 문인화의 모습을 읽습니다. 자신감 넘친 푸른색은 ‘조선의 화상畫聖’ 정선鄭敾(1676-1759)에 이어지며, 분방한 필치는 취화사 장승업張承業(1843-1897)의 여운을 보입니다. 문학적 자질에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특별한 제한 없이 주관대로 관념의 세계를 자유롭게 양식에 구애됨 없이 화면에 전개한 일련의 오태식 작품에서 우리 그림, 한국화의 현주소와 미래를 봅니다. ” 라고 오태식 교수의 개인전을 소개했다.

오태식(아호: 우탁) 교수의 순수 미술에 대한 열정과 그의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는 미술이란 장르로 오랜 숙성의 시간을 걸쳐 우리곁에 온 어쩌면 우리 어머니들의 깊은 장맛 처럼 은근하고 깊은 맛을 내는 동양적인 서양화 또는 동양과 서양이  잘 어우러진 조화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는 시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 펜이 붓이되고, 노트가 캔버스가 되어 색깔을 섞거나 배열하여 형용사적인 문구를 더 하는 것이 시와 그림의 합일성이라고 본다.  주어와 목적어가 될  나와 당신의 사유의 풍경은 무슨 색깔을 띠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지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 시를 쓰는 시인은 물론이며,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가 지망생, 또는 화가들도 오태식 교수의 이번 개인전에서 많은 영감과 감동을 받길 바라는 바이다.

오태식 교수는 현재 두원공과 대학교에서 재직중인 건축디자인과 교수다.

사유思惟의 풍경風景, 탄생 은 우리 내면속에 잠재되어 있는 시간과 그 시간속에  축적된  생각의 DNA를 따라가는 여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끝엔 분명 밝은 미래와 희망이 ‘탄생’이란 이름으로 파란 새싹으로 어둠을 박차고 뛰쳐 나올 것이다.

Oh, Tae-sik P r o f I l e -2018 |

오 태 식(吳 泰 植)
199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 졸업
1996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산업디자인과 졸업

| 수 상 |
2004_ 제 2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디자인 부문 特選
2005_ 커뮤니케이션 아트 어워드 優秀賞
2006_ 제 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디자인 부문 特選
2011_ 유나이티드문화재단 우수작가상
2013_ 월간 문학저널 신인문학상 수상

| 전시 |
개인전 10회 및 국내외 단체전 250여회

| 경 력(심사 및 운영위원) |
(사)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일러스트레이션분과 이사 역임
(사)경기디자인협회 사무총장 및 부회장 역임
사)한국미술협회 경기도지회 디자인분과 분과위원장 역임
(사)한국미술협회 수원지회 이사역임
대한민국미술대전 디자인부문 심사위원 역임 외 다수

| 현 재 |

_ 두원공과대학교 건축디자인과 교수
_ 사)한국미술협회원, 수원미술협회원
_ 홍익시각디자이너협회원
_ 경기미술대전 디자인 부문 초대작가
_ 대한민국미술대전 디자인부문 초대작가
_ 담코아트 전속작가
_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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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up of Poem~~무수골에 가면/차용국

(사진: 차용국 시인)

근심없는 세상이 어디 있겠소만
무수골에 가면 세파를 잊고 마네

쌓은 근심 훌렁 벗고
시간을 묶어두고

새소리 바람 소리 일렁이는 계곡물에
한 순배 술잔을 돌리고 나면

세상사 잡스러운 고민쯤이야
물소리에 떠밀려 멀리멀리 사라지네

** 미국은 메모리얼 위캔이라고 동네가 텅텅 빈듯한 느낌과 길가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조차도 뜸한 토요일 오후이다. 모두 그들의 “무수골”을 찾아 떠난 것이리라.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숨을 고르게 하는 것도 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시는 총 8라인이지만 제목이 주는 무수골에 대한 느낌처럼 세상사를 벗어던진 일상 탈출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다시 돌아갈 세상에 대해 어느정도의 미련을 남겨두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여서 인간적이며 시 속에 그림이 보이는 그런 시다. 어느덧 지나간 봄은 이제 머리가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 바로 오늘부터 시작된다는 메모리얼 위캔, 마음으로나마 멀리 떠나본다. 나의 또 다른 “무수골”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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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up of Poem ~~흑천 봄길/차용국

(사진: 차용국 시인)

두루미 봄빛 물고 날아온 흑천에는
갈대숲 사잇길로 흐르는 어수물*이
추흡산 허리 휘감고 춤을 추며 흐른다

갯버들 포동포동 양 볼에 생기 돋고
제비꽃 민들레꽃 고개를 치켜드니
보시게 눈이 즐겁고 가슴 아니 맑은가

*조선 세종, 세조, 성종이 영월 월정사 행사중 양평 흑천변 마을 우물에서 마셨다는 물

이 시조는 연시조이다. 3434,3434, 3543 의 형식을 띤 정형적인 연시조를 참 오랫만에 싣는다.

흑천은 가보지 않았지만 이 시를 읽으면 이미 그곳에 간 듯한 느낌이 드니 이 시를 통해 흑천에 “두루미”가  물고 온 “봄빛”을 흠뻑 마시며 봄에 취함도 좋을 듯한 어느새 가버린 시절, 봄을 떠나보내며, “흑천” 물에 나를 비추어 보며 나르시즘에 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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