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ng of Fire Shakes : 28 Earthquakes in a single Day

(Photo from USGS)

19일  하루 동안 Ring of fire 라고 불리우는 환태평양 지역에서 적어도 28개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다. 아시아에서는  남 북한 3차 정상 회담으로 그동안 서로 다른 외세의 힘으로 굳게  닫혀 있었던 문을 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멕시코에서는 마약과 갱의 무법천지로 인해 발생한 수 많은 인명 피해로 인한 시체 처리 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은 플로렌스의 영향으로 캐롤라이나 주가 아직도 물에 잠긴 채 태양의 힘을 빌리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알래스카에서, 캐나다에서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의 환상의 말리부 해안에서, 오클라호마 주에서 푸에르토 리코에서 하와이에서, 그리고 캄챠카 반도에서, 2.5 부터  5.0의 지진이 일어난 칠레, 4.3의 인도네시아 반다르에서, 니카라구아, 소말리아, 인도양에서 적어도 30여 차례나 지반을 흔들었다.

지구가 너무 극심한 피로에 휩싸인채 한 순간도 쉴 시간을 주지 못한 인간에게 이젠 좀 쉬고 싶다고 외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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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2. 문화의 양상

1) 문화와 자연

문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대비되는 것, 문화와 유사한 것, 문화와 연관된 것 등을 찾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은 접근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문화’를 손쉽게 이해하는 일차적인 방법은 ‘자연’에 대비시켜보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인 데 반해 문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서구에서는 매우 오래 된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질서(logos)에 따르는 절대적 가치로서의 규범, 즉 자연도 가치와 무관하지 않고 이에 따라 문화도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질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데 반하여, 자연(physis)과 규범(nomos)을 구분하면서 법칙적이고 절대적인 자연에 대해서 인위적이고 상대적인 규범을 주장한 소피스트들은 모든 문화적인 것은 철저하게 인간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본다. 가령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물질적인 필요 때문에 자신의 힘과 신의 도움으로 고안해 낸 것이 문화라고 함으로써 문화는 ‘자연적인 것에 대한 인간적인 보충’이라는 사상을 전개하였다.

사실 인간은 환경에 의존하는 자연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치를 창조하는 문화적 존재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인간이 신체적 생명을 갖는 한 인간은 자연적 존재를 벗어날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문화적 세계에 필연적으로 속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 특정한 문화에 의해 양육되는 동시에 다시 그 문화를 창조해 갈 운명을 지닌다. 인간은 동물적인 삶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인간적인 것으로 고양시켜 왔다. 특히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인간과 대립해 있는 외적 자연의 직접적 지배로부터 탈피하여 오히려 자연을 변화시키고 관리하려고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신체적으로 약하고 결핍된 동물이기에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으로는 생존해 나갈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내야만 하며,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문화를 건설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역사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는 과정이며, 비자연적인 것, 즉 문화를 건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문화화(문명화)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연 상태, 동물과 야만의 상태로부터 탈피해 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자연 자체는 늘 인간에게 문화를 강요하기에 문화 창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자연(nature)의 개념이 일차적으로는 외적, 물질적 자연을 뜻하지만, 이차적으로는 인간 자신의 내적 자연, 즉 자신의 동물적 자연(본성)을 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도 일차적으로는 본능, 욕구, 습성 등 동물적인 특정을 갖는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문화화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도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야만적 동물성을 극복하여 인간다운 인간으로 고양하는 내적 도야의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순서상으로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생존적 차원에서의 ‘제작 행위’(techne)를 통해 이룩되는 물질적 문화가 일차적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정신적 표현 행위로서의 ‘제작 행위’(poiesis)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신적 문화, 즉 예술, 종교, 학문 등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실천 행위’(praxis)를 통해 만들어지는 규범적 문화, 즉 제도나 도덕, 관습 등이 더욱 중요한 문화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지만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의 필요와 욕구로부터 출발한 것이고, 인간이 자신을 양육, 단련시키고 ,마침내는 인간다운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기본 사상은 ‘도구를 제작하는 문화’를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고유한 작품으로서의 문화는 자연성을 탈피한 인간만의 정신적 문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국가, 도덕, 종교, 예술, 학문 등의 문화를 참된 문화로 여기는 ‘정신주의’ 전통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근세 이후의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삶의 개선에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고,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었던 문화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경제활동이나 신체적 노동을 통한 생산행위로 이해됨으로써 문화 속에는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이념이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물질적 욕구는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제만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인간의 삶을 더욱 활기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식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인간다운 삶은 물질을 근거로 한 문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며, ‘제작하는 인간’이 인간의 본성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문화의 발달은 모든 문화 혹은 문명에 대해서 적대적인 사상도 낳게 된다.

문화 비판은 흔히 물질적 과학기술 문명의 비판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루소가 잘 보여주듯이 인간 실천에 의해 제도화된 모든 문화가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화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특징짓는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동시에 문화는 인간성의 억압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도 ‘문명’에 대해 비판을 가하였지만, 루소는 이것을 넘어 근대 시민 문화 자체를 자연의 이름으로 비판한다. 그에게서 ‘문화’ 혹은 문화적 상태(etat civil)는 오히려 자연상태(etat naturel)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한다. 인간의 ‘자연성’은 문화화 과정에서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성’을 전개시키는데 불가결한 요소이면서 또 문화화 과정의 시금석이다. 루소는 인간의 문화가 무한히 진보하리라는 낙관주의적 계몽주의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루소에게 있어서 인간의 역사는 초기의 이상적인 자연상태로부터 타락해 가는 ‘원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주의는 일종의 원초적,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는 것이며, 이것이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 혹은 문화와 문명을 구분하는 독일의 사회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오늘날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분화되고 각각 상대적 독립성을 얻음으로써 문화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 만들었으면서도 문화를 변화시키거나 제어할 수도 없고 문화에 대해서 저항할 수도 없고 더구나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삶의 양식에서 나온 바로 그 문화가 다시 인간 삶의 양식을 바꾸는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문화를 본능의 해방이 아닌 억압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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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체성

한 사회집단의 문화는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등 수많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문화를 구성하는 이런 부분들은 무작위로 또는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전체 또는 체계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엔진은 수많은 부속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속들은 서로 간에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체로서의 엔진을 작동시킨다. 엔진의 부품 중 하나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엔진은 결국 멈추게 된다. 이처럼 한 사회의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도 상호간에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그 어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거나 변동이 일어나면 연쇄적으로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루어진 급속한 발전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변모를 수반하였다. 우리 나라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발전된 과학 기술적인 지식은 도시의 공업분야에 응용되었고, 공업생산부분에는 더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한편 농촌의 유휴 노동력은 생계수단 또는 더 좋은 생존기회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어 도시의 인구 과밀현상을 빚어냈다. 인구의 도시 집중현상으로 농촌은 영농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는 심각한 인력부족현상에 직면하게 되였다. 농촌은 이의 해결방안을 적은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업의 기계화’ 및 ’과학적인 영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전통적인 신앙체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질병의 원인들이 하나씩 둘씩 밝혀지면서 주술적인 방식에 의해 질병을 치료하려고 애써 왔던 사람들이 이제 현대의학의 지식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이것은 질병의 원인을 악마와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탓으로 돌리거나, 질병으로부터 구해 줄 수 있는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에 호소함으로써 생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신앙체계로부터의 근본적인 변화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물론 현대의학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초자연적인 신앙에 호소할 것이다.

이와 같이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코 하나의 고립적인 현상이 아니라, 문화의 거의 모든 영역에 부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한 사회의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한 영역에서의 변화는 그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의 변화를 수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의 거의 모든 부분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이 무수한 상호관계들을 풀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우리가 그것들을 연구해 내기까지에는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자적인 기능과 작용을 가지면서 내부적으로는 서로 보족, 관련할 뿐 아니라, 구조적, 기능적으로 통합적인 전체를 이룬다. 또 사회관계(결혼, 친족관계, 지연적 연결 등)는 기술이나 가치와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도 독자적인 법칙을 가지고 있다. 언어 역시 다른 요소들에 의한 영향을 가장 받기가 어렵다는 성질을 가지면서도 상징화 작용에 의해 문화의 학습과 문화의 전달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결코 이 요소는 따로따로 있는 것을 자의적으로 끌어 모은 것이 아니다. 각 요소가 유기적(有機的)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며, 그 전체가 개성을 지니기에 따라서 문화는 결코 죽어 있는 무기물(無機物)이 아니다.

문화에 대한 이러한 개념규정은 문화는 ‘일상적인 것’이며, ‘삶의 전체방식’이라는 윌리엄즈의 문화이론과도 상통한다. 결국 문화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것도 아니고, 성취된 문명의 정상이나 완벽함의 이상도 아니다. 문화는 단지 “인간의 생각과 경험이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양하게 기록된 지적, 상상적 작업의 유기적 조직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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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습성

인간은 특정의 문화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학습할 능력만을 갖고 태어난다. 그가 이런 능력으로 어떠한 문화를 학습할 것인지는 성장과정에서 그가 접한 문화적인 환경에 의하여 좌우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한국사람은 한국어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후천적으로 한국어를 배워 익힌다. 간혹 고국을 방문한 해외교포 2세들이 한국어를 전혀 모르거나 극히 서투른 바람에 의사소통에 불편을 느끼는 경우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어 또는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고 한국어를 배울 기회는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게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