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Asian-American News

Trump goes to Arizona… Again

8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리조나로 떠났다. 그는 지난번에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가 많이 불안할 때, 대통령 지지율 하락할 때, 마치 선거 운동 하는 것처럼 타 주로 떠나 그곳의 공화당 주민들의 박수 세례를 받은 것을 크게 언론에 부각시키곤 했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말썽도 많았다.

예를들면, 테네시 보이스카웃 세계 잼보리 대회에서도 보이스카웃 전 미국 디렉터가 대통령을 찬사하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한 것처럼 자신의 트위터에 실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버지니아 주 샬롯스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들, 나찌주의자들, KKK 단들의 시위와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와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 대해 양쪽다 책임이 있음을 공언하므로서 미국 국민들에게 반감을 사고 있다. 그후, 스티브 배논이 대통령 정책 수석 자리에서 지난 주에 해직되기도 했다.

존 메케인을 비롯한 아리조나 주 상.하원 의원들은 아리조나 주 수도인 피닉스에서 이곳 동부 시간 기준 10시에 피닉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트럼프 연설에 참석치 않겠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 2015년 자신의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서 멕시코에서 온 미서류 이민자들을 향해 “마약,범죄자들, 또는 강간범” 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으며, 이번 방문도 멕시코 장벽과 관련하여 방문한 것으로 보고 있어 이민관련 단체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물론 트럼프는 지난 주 백악관에서 마리코파 카운티 보안관이었던 Joe Arpaio(판사의 명령을 어긴 채, 미서류 이민자들을 감금또는 단지 미 서류 이민자일 것으로 의심 받은 자들을 강제 구인 구금했던 보안관으로서, 지난 번 선거에서 져서 보안관 자리를 놓쳤다. 이 일로 오는 10월 5일 형 선고 예정)를 사면할 것을 언뜻 내 비친 적이 있어서 아리조나 주민들 중 이민자들은 불안함과 함께 이는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게 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트럼프가 가는 곳마다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번 트럼프 피닉스 연설로 인해 피닉스 시는 가게와 백화점등이 일찍 문을 닫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컨벤션센터 안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고, 반 트럼프 지지자들은 컨벤션센터에 출입을 금지시킨 채, 밖에서 시위를 하는 것으로 트럼프 선거캠프가 결정했다고 한다.

아리조나는 8월 22일 기준 밖의 온도가 F 106 도다. C 41.1 도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3<강원대, 윤금자 교수>

(Total Solar Eclipse on Aug.21,2017: Photo from Google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V. 위도(爲道) : 허정(虛靜)한 마음 회복

I. 위도의 길 :무욕(無欲),무지(無知)

노자는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분별지의 문제를 무욕, 무지, 무위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노자의 수양론은  물질적인 탐욕과 감각적인 쾌락에 탐닉하여 본연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에게 참다운 삶을 찾게 해 주는 것이다. 참다운 삶을 위한 노자의 수양론은 ‘무위’의 실천으로 탐욕적, 쾌락적, 인위적으로 점철된 삶을 극복하고 인간의 내재적 ‘자연’ 본성을 회복하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道는 만물의 근원으로서 만물을 낳게 해주었지만 만물을 향해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간섭, 지배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수용하고 포용하면서 만물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고 보호해주는 ‘무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도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스스로 그러한’ 즉 자연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하였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노자25장)

도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본받아야 할 표준이다. 인간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궁극적 표준인 도가 항상 무위하다면, 인간이 행위규범도 무위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자”에서 ‘爲道’를 통해 무위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爲道’의 활동이란 곧 ‘욕불욕’, ‘학불학’, ‘위무위’ 를 말한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포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則無敗事.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노자 64장)

그러므로 무위는 무욕과 무지를 바탕으로 하여 도달하게 된다. 노자는 무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無知와 無欲을 제시하였다.

사람들에게 교활한 지식도 없게 하고 (無知) 탐욕도 없게 하여 (無欲), 교활하고 약삭 빠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헛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노자 3장 중에서)

여기서 ‘교활함과 약삭빠름’은 작위이다. ‘헛된 행위’는 인위, 작위적 행위를 뜻하며, 지식과 탐욕이 인간에게 작위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무지’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계략을 짜내는 것과 같은 행위, 즉 지모가 없는 ‘순수한 본연의 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본연의 맑은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지’하고 ‘무욕’할 것을 권고했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Time and Space are Inextricable- 6(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영화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프레임이라는 4각의 틀은 영상 구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한 2차원적 평면이 심리적 3차원 혹은 4차원으로 변형되는 이 마술적 공간의 존재에 영화감독들은 대단한 매력을 느꼈다. 이것은 마치 화가에게 있어서 캔버스와 같이 많은 감독들이 화면 구성의 균형과 표현성에 역점을 두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아무리 짧은 시간 동안 영상을 본다 할 지라도 스크린에 비치는 평면의 영상을 관객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실제공간과 유사한 3차원적 공간으로 오해하고 반응한다.  여러가지 한계들, 즉 프레임의 존재, 3차원적 공간의 부재, 색체의 부재나 인공적인 성격 등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현실과의 유사성은 아주 강렬하게 인식되어 특히 움직임의 환영이나 심도의 환영에서 보여지는 영화 특유의 현실감을 발생시킨다.

이외에도 미학적 장치로서 프레임은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하나의 쇼트 내에 담긴 사물들을 통일하는 기능을 보여준다. 예술은 여기서 혼동상태의 현실 세계로부터 질서를 만들어 낸다. 또한 프레임은 강조의 기교로도 쓰이는데, 감독은 프레임으로 광범위한 맥락에서는 간과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사물에 특별한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게된다. 특히 클로즈업의 프레임은 가장 미세한 디테일을 정확히 잡아 낼 수가 있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은유와 상징은 영화 매체 자체의 물리적인 특성에서 비롯된다. 프레임안의 어떤 부분은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프레임 안에서의 배치는 형식이 어떻게 실질적으로 내용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된다.

그러나 영화적 공간은 단순한 프레임이라는 틀이 아니다. 또 이미지들은 단순히 2차원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공간이란 영화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영화에서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영화에서 공간과 시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이론가들은 ‘시공간 연속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추상적 개념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에게서 빌려온 것이지만 영화에서 그 구체적 현실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에서의 공간 즉 프레임은 가장 최초의 단위인 쇼트로부터 씬, 시퀀스 등으로 연결되며 여기에는 카메라 각도인 앵글이 추가된다.

쇼트(Shot)는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이며, 감독이 레디 액션해서 컷 사인이 날 때까지 즉 한 번의 지속적인 카메라 작동으로 촬영된 필름 단편이 쇼트이다. 동시에 쇼트는 사물과 피사체의 거리, 혹은 하나의 네모난 구도안에 잡는 움직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쇼트는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에 의해 꼭 정의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렌즈에 의해 거리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다양한 쇼트는 화면의 틀 안에 담긴 선택된 소재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쇼트에 대한 정의는 매우 가변적이기 때문에 영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쇼트가 있다.

Scene 은 무대라는 말의 어원인 그리스 고대극의 의상실 (Skne) 에서 온 말이다. 희곡에서는 막중 드라마 진행의 최소 단위로 장 또는 경이라는 역어에 해당한다.영화, 텔레비젼에서는 삽화로 어느정도 정립된 부분이다. 시퀀스 중 한 장면으로 일반적으로 시간, 장소가 변할 때마다 씬이 변한다. 쇼트(커트)로 분할되는 경우가 많으나 한 쇼트가 한 씬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일련의 쇼트들을 결합하면 한 번에 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통일된 행위인 씬이 된다. 따라서 씬은 한 시퀀스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장면을 의미한다. 시퀀스(Sequence)는 영화의 단락이며 영화의 가장 큰 기본단위이다. 영화의 연속된 화면을 의미한다. 또한 Seane 이 여러 개가 모여 Sequence가 된다. 시퀀스는 영화가 진행됨에 있어 하나의 문단을 뜻한다. 연극의 막에 해당하는 극적 국면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여러 개의 Sequence 가 모여 영화가 완성된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Pres.Moon invite The Families of Sewol Ferry Victims at the Blue House

Photo from Google Images
< Seoul: Prof. Kim, Kwangsik>
8월 16일,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유족 및 생존자 가족들을 청와대 영빈관에 초대해서 만났다. 문대통령은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정부는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를 늘 기억하고 있었고, 목포신항에서 선체 수색이 많이 진행됐는데도 아직 다섯 분의 소식이 없어 정부도 애가 탄다”며 “미수습자 수습이 끝나면 세월호 가족을 청와대로 모시려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수색작업 중 모시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 수습이 미흡했던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난 것인지, 정부는 사고 후 대응이 왜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것인지, 그 많은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청와대는 뭘 하고 있었는지, 너무나 당연한 진상 규명을 왜 그렇게 회피하고 외면한 것인지, 인양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지 국민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유가족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지도 못했고, 오히려 국민 편 가르기를 하면서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겼다”며 “정부는 당연한 책무인 진실규명마저 가로막고 회피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체 침몰을 눈앞에서 뻔히 지켜보면서도 선체 안 승객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대응에서도 무능하고 무책임했다”고 했다고 지적하였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는 “진상 규명과 관련해 강력한 법적 권한을 갖는 2기 특별조사위원회가 정부보다 효율적일 것”이라며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믿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에는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 피해 사건 등 사회적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전담할 특조위 구성을 골자로 하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계류 중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미수습자 5명의 수습이 끝날 때까지 수색 △세월호 선체 보전 및 교육관 활용 △세월호피해자지원특별법 개정안 조속 처리 △4·16 재단 설립 및 추모공원 건립 등을 요청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세월호 가족 대표로 단상에 선 전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3년 넘도록 함께 한 국민이 있어 이 자리가 가능할 수 있었기에 국민 여러분께 가장 큰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가 불법적으로 부당하게 자행한 수사 방해와 은폐 조작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강력한 법적 조사기구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며 “바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2기 재건이다. 최근 정부 차원의 조사기구를 논의하며 노력해온 취지와 힘을 온전히 2기 특조위에 집중시켜 독립적이고 강력한 법적 권한을 가진 국가 차원의 조사기구로서 2기 특조위가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을 대표한 박혜영 씨와 정부자 씨는 문 대통령에게 세월호 약전(略傳)과 액자·보석함을 선물했다. 그 위에는 “세월호 아이들이 대통령 내외분을 만납니다. 무지개 나비에 평화와 약속을 노래하는 아이들의 조화로움을 담았습니다. 잊지 않고 늘 기억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엄마 아빠-”라고 적힌 엽서가 붙어 있었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Dr. Son, Ki-Sung and “Director of Georgia Christian University-Virginia Campus

아틀랜타에 메인 캠퍼스가 있는 GCU(Georgia Christian University) 는 버지니아 사이트 캠퍼스를 오픈하며, 현 처치 클리닉 대표로 있는 손기성 박사를 버지니아 디렉터로 임명하였다.

임명식을 8월 15일 본교 캠퍼스인 조지아주에서 ATS(The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인준,  KAPC(Korean Association of Presbyterian Churchs)  인준 신학교 감사 예배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버지니아 캠퍼스의 강의 일정에 참석치 못하고 김의원(GCU 명예 총장)으로부터 대신 전달 받았다.

GCU 는 ATS 와 TRACS(Transnational Association of Christian Colleges and Schools) 로 부터 인정을 받은 교육기관으로 버지니아 주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아 본교와 같은 과정과 학위를 수여한다.

현재 버지니아 캠퍼스에서는 Ph. D 과정이 진행중이며, B.A 과정과 Master 프로그램이 있다. MACE(Master of Arts in Christian Education), MDiv, MRE 과정을 준비중에 있다.

학사 일정에 관한 문의는  571-762-3131 이나 웹사이트 gcuniv.edu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Trump and White Supremacists <전종준 워싱턴 로펌 대표 칼럼>

트럼프와 백인 우월주의

미국의 남북 전쟁은 아직도 휴전상태인가? 지난 주 UVA 대학 근처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대규모 폭력시위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여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버지니아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건의 발단은 남북 전쟁 당시 남부의 장군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를 막고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대해서는 아픈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산교육의 증거로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인종 차별적 상처를 자극하는 상징물인지 여부를 판단해서 결정하여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구호와 ‘네오 나치’의 ‘피와 영토’라는 나치 슬로건도 외치며 남부 연합기와 나치기를 함께 흔들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남부의 연합기를 높이 든 것은 노예 해방을 아직도 반대하며 인종차별을 찬성하는 깃발을 든 것이며, 나치기를 함께 든 것은 미국 성조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알트 라이트 (Alt-Right)” 즉 ‘대체 보수’로 자칭하였다. 배려와 나눔이 없는 ‘대체 보수’의 탄생은 ‘집단 이기’의 탄생을 뜻한다. 따라서 나는 이들을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부르기 보다는 ‘집단 이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인 즉, 집단 이기주의자들은 백인이나 흑인 혹은 동양인등의 인종을 이용하는 ‘이기주의’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대체 보수를 옹호하는 흑인 대변인이 있는 것을 보면 인종보다는 ‘자기 이기’ 그리고 ‘집단 이기’가 더 적절한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대체 보수의 탄생은 ‘미 합중국 (United States)’ 이전으로 후퇴시켜 ‘미국판 38선’으로 갈라진 ‘분단의 미국(Divided States)’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묻건대, 대체 보수의 탄생은 과연 미국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일부 집단 이기주의자를 위한 것인가? 이제 우리는 지도자의 능력을 실험해 볼 수 있으며 과연 트럼프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백인 우월주의자’의 폭력 시위에 대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비난을 피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반응적 묵인’이 또 다른 인종 갈등의 원인 제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에서 ‘모든 미국인 우선’이란 표현을 썻다. 그러면, 과연 “모든 미국인에는 흑인, 동양인, 그리고 한국인도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말은 그럴 듯 한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이민 정책만 보더라도 모든 미국인 보다는 백인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음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취업이민에서 영어실력을 반영하여 백인인 영국과 호주인들이 유리해 질 것이다. 더우기 FTA 협상 후 호주에게는 10,500개의 E-3 비자를 주었으나,한국과 FTA 체결 후에는 아무런 비자 혜택도 없었다. 이번 트럼프와 재협상시 한국인 전용비자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인종 차별적 대우임을 제기하여야 마땅하다.

동과 서, 너무도 먼 미국과 한국은 문화와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역사를 나누고 있다. 미국은 4년간의 동족간의 전쟁인 남북 전쟁을 치렀고, 90년 뒤에 한국은 3년 간의 동족간 남과 북이 싸우는 6.25전쟁을 치룬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는 ‘제 2의 6.25전쟁’을 걱정하는 이 시점에, 미국에서도 ‘제 2의 남북전쟁’에 대한 마지막의 시작을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가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와 분리되지 않는 한 트럼프의 몰락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면 미국의 건국 아버지가 설립한 미국의 헌법 정신과 가치는 집단 이기주의와 싸운 역사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을 믿는다. 그리고 말없는 대다수의 미국민을 믿는다.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는 법치주의와 이타주의가 승리한 미국을 말이다. 가치있는 판단이 민중을 설득하여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 가기를 기대한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Perilla Leaf Steamed Rice Cake : 들깻잎 떡으로 지친 여름을 달래보자

들깻잎으로 떡을 쪄서 녹차나 홍차를 곁들이면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데 도움이 된다. 들깻잎떡을 찌는데 집 안 가득 고소한 깻잎에서 퍼지는 천연 허브 향이 마음과 세포마다마다  문신을 새기듯  깊게 베어들었다. 행복한 느낌은 때론 소박한 삶의 향기와 더불어 은은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이 드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특별한 요리를 하면서 느낀다.

항상 그렇듯, 좋은 것은 서로 나누고 함께 할 수록 더 오래동안 좋은 느낌, 행복한 마음이 지속되는 것이기에 요리법을 소개한다.

들깻잎 떡 요리법:

들깻잎 30장 (손바닥 사이즈), 현미쌀가루 10컵, 다시마 한장 또는 다시마 가루, 치아 씨앗(두 테이블스푼)바닷 소금 1티스푼, 끓인 물 세 컵

들깻잎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 놓는다.

뜨거운 물을 약간 식힌후,현미쌀 가루를 익반죽한다. 쌀가루에 다시마 가루와 바닷소금, 치아 씨앗을 같이 넣고 반죽을 한다. 송편을 빚는 것 처럼 동그랗게 빚은 후 들깻잎위에 놓고 넓게 바르듯 펴 놓는다. 그 후, 들깻잎을 위에 얹는다.

찜기에 넣고 찐다. 약 25분 정도 센 불에 찐다. 찐 후, 식으면 참 기름을 펴 바른다.

들깻잎의 효능:

동의보감에 의하면 “들깨는 몸을 덥게 하고 독이없고 기를 내리게 하며 기침과 갈증을 그치게 하고 간을 윤택하게 해 속을 보하고 정수, 즉 골수를 메워준다”고 한다.

비타민 A 와 C 의 칼슘, 철분, 인, 마그네슘 함량도가 높다. 철분도 시금치에 비해 2배 이상 높다고 알려져 있다. 위암예방, 식중독 예방, 스트레스 해소, 상처치료, 성인병 예방, 뇌신경 보호로 치매 예방에 좋은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기억력 감퇴에도 도움이 되며, 신경 안정과 관련이 있는 가바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바 성분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뇌, 척추에 존재하며 신경 억제성 전달 물질로 뇌혈류 및 산소공급량을 촉진시켜 뇌세포대사기능을 촉진해 학습능력 향상 및 기억력 감퇴를 예방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는 성분이다. 들깻잎에는 알콜중독 치료, 불안감해소, 고혈압강화, 당뇨병 치료,인슐린 효과의 증대, 식욕부진,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항암, 항균, 항산화작용, 항돌연변이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Blue House : Military and Civil Investigation of Sergeant Park to Restart 2<청와대: 박중사 사건 재조사 하라!>

최근, 국민인수 위원회는 박중사 자살조작 살인미수 사건을 검찰에 이관, 검찰은 다시 국방부에 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위해 민관 합동 조사를 착수하겠다던 약속은 이제 어떻게 된 것일까?

 

코리일보는 이 사건의 재조사를 위한 과정중 얼마만큼 진전이 있는 것인지, 계속적으로 살피고 있다.
다음은 박준호(박준기 중사 형)씨와 일문 일답을 통해 이 사건이 해결되고 있는 지, 아니면 오리무중인지, 아니면 누군가 여전히 은폐를 위해 꼼수를 부리는 지 살펴보기로 했다.

 

지난 6월 말 박준호씨와의 대담 내용이다.

 

기자:
지금 박중사 사건 재조사가  어느정도 진전이 있습니까?
박준호씨:
6월 27일,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저에게 알려온 소식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귀하께서 제출해 주신 서류는 소관 기관에서 처리함이 타당할 것으로 보여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소관기관에서 답변을 드릴예정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는 제출하신 민원이 세심하고 철저하게 답변될 수 있도록 직접 관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자는 발신전용입니다.” 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 사건이 왜 국방부 감사실에서 검찰로 이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사건이 군인의 신분일때 발생한 사건인데 말이다. 문제는 국방부 감사실에서 재조사를 해야 하는게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사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겉으로는 일을 하는 것 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이 사건을 유야무야 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 박준호씨에게 물었다.
“국방부감사실에서 지금 민.군합동재조사를 해야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할수없는 곳에 이관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감사실에서 육본으로 이 사건을 이관했습니다. 그런데 육본에서는  “이사건 우리가 할일이 아니다”라고해서 감사실에 돌려보내니, 감사실은 이 사건을 또 검찰로 이관했습니다. 이는 지금 한민구가 민.군합동재조사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감사실에서 하는게 맞고 또 이전에도 권익위원회에서 재조사하라고 감사실로 보낸것인데 이를 회피하며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것같습니다.
인수위도 보건부.행자부와함께 한다고 약속하고는 한달이 다 되 가도록 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두번 울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해를 돕기위해 그동안 있었던 진성준 의원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의 일문 일답을 박준호씨의 도움으로 게재했다.
아래는 이 사건, 박중사 자살조작 살인미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국회 인권위원회 진성준 위원이 국방부장관 한민구에게 묻는 질의 응답이다.

진성준 위원

진성준 의원입니다.
저는 오늘 무려 21년 전 군 내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국방부장관께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사전에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제가 실무자를 통해서 장관께 보고드리도록 했는데 보고를 받아 보셨습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예, 제가 이것에 대해서 위원님 관심사항을 듣고 관련 보고도 다시 한 번 받고 그렇게 했습니다.

진성준 위원

박준기 중사인데요.
이 박준기 중사가 94년 12월 17일에 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람은 운전사고를 냈는데 운전사고 때문에 병원에 옮겨졌다가 나중에는 다리를 절단하는 일까지 벌어졌어야 했어요.
(자료를 들어 보이며) 이게 지난 토요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인데 지금 다리 무릎 아래 부분을 다 절단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군의 수사 결과는 이 사람이 교통사고를 범해서 죄책감을 못 이겨서 당시 이송되었던 춘천에 있는 성심병원 10층 성당으로 돼 있는 방에서 3층 높이의 옥상으로 자살하기 위해서 떨어졌다, 뛰어내렸다, 그래서 다리를 아주 심하게 다쳤고 그래서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는 게 군의 수사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처음에는 의식을 잃어서 기억을 상실했으나 나중에 기억을 회복해 가요.
그러면서 자신이 아주 경미한 사고였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죄책감을 느껴서 떨어져서 자살을 할 만큼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영상자료를 보며) 실제로 당시의 수사 기록을 제가 죽 살펴보니까 94년 12월 19일 군의 수사 기록은 이 문제의 박준기 중사가 뛰어내렸다고 하는 10층 높이의, 저 성당이라고 하는 맨 위의 방입니다.
이 방이 위의 상부 유리창은 폐쇄형으로 고정되어 있고 아래가 반쯤 열리는 창이었는데 그 반쯤 열리는 창을 열고 뛰어내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반쯤 열리는 이 창의 너비가 얼마나 열리는가? 21㎝ 열린다고 수사 기록에 돼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의 체격이 175㎝에 70㎏, 가슴둘레가 123㎝입니다.
실험을 해 보니까 머리가 안 빠져 나가요, 21㎝ 열리는 창 폭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 문제 제기를 하지만 군에서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러니까 2007년도에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소를 해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이것 다 조사를 합니다.
그래서 국방부에 권고를 해요.
다른 많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박준기 중사가 뛰어내렸다고 하는 이 창틀 21㎝로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가 없다, 다시 조사해라.
그러니까 국방부가 다시 조사를 해서 진술을 한 사람 받아내 가지고 당시에 약 30㎝ 열린다, 사고 당시에는 더 많이 열렸다고 그런다, 그러니까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다 이렇게 하고 조사를 끝내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보니까 조사 때마다 창문 폭이 달라요.

2002년도 8월 29일자 민원회신문, 1군사령부 헌병대의 조사 기록에 의하면 성심병원의 총무과장 최 아무개라고 하는 사람이 진술하기를 투신사고가 발생한 후에, 박준기가 뛰어내린 뒤에 사람이 드나들 수 없도록 재발방지 차원에서 병원의 창문 폭을 축소 조정했다, 열었을 때 24㎝였다가 14㎝로 조정했다 이렇게 답변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24㎝ 열렸다는 거예요.

그러면 2008년도에 국방부 검찰단이 재조사했을 때 30㎝ 열렸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 아닙니까? 진술이 일관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21㎝ 열린다, 나중에 2002년도 조사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24㎝ 열렸다, 그다음에 2008년도 조사에서는 30㎝로 그보다 더 많이 열렸다, 이렇게 자꾸 진술이 엇갈리는 겁니다, 동일인의 진술인데…
그러니까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도대체 군의 수사를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저 위의 10층 방에서부터 박준기 중사가 떨어져 내렸다고 하는 3층 옥상 사이의 높이가 얼마나 되느냐 하면 실측하면 22m입니다.

그런데 군 수사 기록에는 15m로 되어 있어요.
이 15m를 바꾸지를 않습니다.
실제로 재어 보면 22m 나오는 것을 15m라고 막 우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22m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그런 정도로 상해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의료 기록에 의하면 머리나 이런 데는 거의 다친 적이 없어요.
그냥 찰과상 정도만 입었다는 거예요.
22m에서 뛰어내리면 그런 정도 상처가 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죽었으면 죽었지.
이게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진술입니다.
그러니까 군의 수사 기록이 초동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를 가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하물며 이렇게 민원인이 문제를 제기하면, 이것도 수 년에 걸쳐서 문제를 제기하면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서 민원인을 설득하려면 납득할 수 있는 제3의 민간 전문가라든지 중립적인 누구라든지를 불러 가지고 함께 수사를 해서 믿을 수 있게 해 줘야 되는데 아주 형식적인 수사만을 하고 그냥 덮어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우리 군을 믿을 수 없다고 트위터며 저 다리 잘린 사진을 계속 실어 가지고 우리 군을 성토하고 있어요.
장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저도 그 신문기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읽었고 보고도 받았는데 여러 차례 조사를 해서 결과가 박준기 씨의 주장과는 다른 이쪽 우리 군의 주장은 지속되고 있는데 국민권익위에서도 해서 여러 가지, 또 국방부 검찰단에서도 확인을 한 바가 있고 해서…… 저 문제는 지금 벌써 20년 이상이 돼서 여러 가지 시효는 다 경과한 일인데 저 문제에 대해서 한번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군의 조사를 못 믿으면 다른 민간과 함께 다시 한 번 확인한다든지 하는 그런 작업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진성준 위원

사건 초기에 정확하게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지고 수사 기록이 개판입니다.
만약에 거기서 뛰어내렸다면 방충망이 달려 있었는데 이 방충망이 찢어져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뛰어내렸다라고 하는 그 위치에는 방충망이 찢어져 있지 않습니다.
수사 기록에 그렇게 돼 있어요.
찢어지지 않고 어떻게 바깥으로 뛰어내립니까?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대로 21㎝밖에 안 열리고 또 높이도 다르고 말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박준기가 짚었다고 하는 지문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지문을 실제로 채취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그것이 박준기가 짚은 지문인지 어떤지가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또 옥상 바닥에 남아 있다는 혈흔도 채취해서 DNA 검사 같은 것을 안 한 겁니다.
그래서 그 혈흔이 박준기의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몰라요.
군의 초동수사가 개판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재수사를 해야 진실이 드러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진실이 드러날 수 없다면 물론 민원인의 주장도 100%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진상불명으로라도 보상을 해야 되지요.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그런데 이 사람을 내버려 두고 있는 겁니다, 자살했다고 해 가지고.
이렇게 억울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군의 수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민원인의 주장을 탄핵할 수가 있겠지요.
이런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다, 당신의 주장이 무리하다, 과도하다.
그런데 지금은 진상을 밝힐 수가 없는 거예요, 군의 초동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가지고.
그렇다면 이것은 군의 책임이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그 문제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가 조사를 여러 차례 했는데도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이 확보가 안 된 상황이라고 저도 지금까지 이해를 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군이 어떤 식으로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조치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다시 한 번 저희들이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진성준 위원

사건의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저는 군에서 이것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임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방부장관 한민구

잘 확인하고 검토하겠습니다.

***

아래의 내용은 부산 동래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 박사의 감정 결과 입니다.
동래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 감정결과입니다.

 

다) 의료감정 결과 신청인이 위 진료기록에 대해 2007년 11월 13일 부산 소재 동래봉생병원(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으로부터 받은 감정결과는 아래와 같다.

 

(1) 10층(22m 높이)에서 3층 콘크리트 옥상 바닥으로 추락 시 상해정도에 대해, “i)머리가 먼저 지면에 접촉 시 즉사,

 

ii)양측 하지로 지면에 착지 시 족관절, 슬관절 및 대퇴관절에 다발성골절 및 하지의 근육, 인대와 연골파열, 척추 및 골반 골절, 체간의 손상과 내부 장기의 치명적인 손상 혹은 사망,

 

iii)체간이 먼저 지면에 착지 시 죽사하거나 갈비뼈 골절을 동반한 치명적인 심폐질환 손상 및 간, 비장, 신장, 방관의 파열과 좌상 등과 다발성 골절 및 두부손상 등이 일어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2) 한편, 위 사고가 추락에 의한 상해인지 여부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22m 높이에서 추락 시 거의 사망하거나 신청인의 상해정도보다도 더 심각한 상해를 입을 것 같으나, 정확한 판단을 위해 이 부분의 전문의 소견이나 법의학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3) 신청인이 본 사건은 은폐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진술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우리 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신청인은 “현재 장애상태(전역이후 1997년 왼쪽무릎 밑 다리 절단수술 후 의족 사용, 지체장애 2급 등록)는 2.3m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입은 상해로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본인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후 의식을 잃기 전에, 본인이 사망하거나 기억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추정) 헌병수사관 김하용이 홍○일에게 자신의 폭행사실을 인정하면서, 사고수습을 위해 홍○일에게 원내에서 당직수위 근무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는 등 협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자, 홍○일이 과거 병원에서 환자들의 투신자살 사례를 언급하며 본인이 투신한 것으로 사고를 위장하기로 감화용과 담합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의식을 잃은 이후 본인에게 현 장애상태에 해당하는 별도의 추가 가해사실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한편, 신청인은 추가 상해경위에 대한 군 수사시록에 대해, “헌병수사관 김○용의 가해사실에 따른 책임과 수위 홍○일의 당직근무자로서 사고에 대한 책임 회피 등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술하였다. 라. 이 외에도, ‘인지보고서’에는 당직의사 정○석의 연령(30)이 실제연령(25)과 다르게 기재된 점, 병원 10층에서 3층 옥상까지의 높이(15m)가 춘천성심병원에서 측정된 높이(22m)와 다르게 기재된 점 등 객관적인 사실내용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기록들이 발견된다.
4. 판 단

 

가) ‘전공사상처리규정'[국방부훈령 제392호(1989년 9월 7일)] 제3조 제2항 및 같은 규정 별표1에 의하면, 공무수행 중 또는 공무와 관련된 사고 및 재해로 발생한 상이자의 경우 이는 ‘공상’에 해당하거나,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끊었거나 그로 인한 결과로 사망 또는 상이자는 ‘비전공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신청인이 추가 상해를 입게 된 이유가 자살을 목적으로 한 투신인 경우에는 비전공상에 해당하나, 헌병 수사관의 가해로 인해 발생한 상해인 경우에는 공상에 해당될 수 있다.

 

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결과, 신청인의 추가 상해에 대한 군 헌병대의 초동수사과정 및 수사기록에서 발견되는 수사 미진사항들은 아래와 같다.
1) 수사기록관련

 

가) 신청인이 투신한 장소로 추정된 성당 창문의 경우, 그 개장 폭(21cm)이 신청인의 신체(신장 175cm, 체중 70kg, 가슴둘레 132cm)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아니며(우리 위원회의 모의실험 결과, 머리의 통과가 불가능하였음), 반개방형 창문은 방충망이 훼손되지 않은 채 그 위쪽의 폐쇄창문의 방충망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점(개방된 창문을 통한 통과 자체가 불가능), 현장에서 발견된 손가락 자국과 혈흔에 대한 지문감식 및 혈액감정이 실시되지 않은 점 등을 통해 볼 때, 신청인이 투신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객관적인 정황증거 수집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홍○일 및 박준호가 신청인이 투신한 장소라고 추정한 현장에서 상태에 대해, “방충망이 훼손되지 않았다.”라고 일치하게 진술한 것은 ‘목격자 진술조서’와 이를 기초로 작성된 ‘인지보고서’가 조작되었을 개연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 신청인의 발견위치(후송위치)가 수사기록과는 다르게 ‘1층 현관 직상지점’이라는 후송의사 정○석의 진술과 ‘원내 급수펌프 지점’으로 확인하였다는 신청인 및 신수철의 진술이 상호 유사한 지점인 점, 수위가 신청인을 발견하고 응급실로 후송하는데 소요된시간이 7분이라고 하나 후송의사 정○석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한 점과 우리 위원회의 측정결과 최소 20분 이상 걸린 점 등을 볼 때, ‘인지보고서’의 후송시간 및 장소에 대한 기록이 부정확하거나 비현실적이라고 판단된다.
2) 상해 관련

 

가) “신청인의 상해정도는 10층(22m 높이)에서 떨어진 경우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상해정도(즉사 또는 더 심각한 상해)로 볼 수 없다.”라는 의료감정 결과 및 이와 유사한 소견을 제시한 정○석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신청인의 상해정도는 10층 성당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나) 특히, 진료기록에서 “무언가에 짓눌려서 해당부위의 연골, 근육 등 내부조직이 파열된 상해”인 ‘양측족부(발목) 압궤상’으로 진단된 점, 안면부에 대한 상해정도가 교통사고와 낙상에 의한 상해가 ‘경미하게 긁힌 정도’로 유사한 점은 위의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 한편, 최초 전화통화 시 정○석이 “후송된 그 환자가 아마도 사망하지 않았느냐?”며 되물은 사실과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홍○일이 신청인에게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서 올 줄은 몰랐다. 박 중사에게 도와주고 싶지만 못 도와줘 미안하다.”(신청인 및 신수철에 의하면, 홍○일은 1999년 9월경 병원 방문 시에도 동일한 취지로 말함)라고 하면서 경계하듯이 말한 것으로 보아, 당시 신청인은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신청인의 주장 관련

 

가) “현재의 장애상태로 보아 2.3m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입은 상해가 아니라, 김○용과 홍○일의 사고위장 담합에 의한 추가 가해로 인해 입게된 상해이다.”라는 신청인의 주장은 앞서 언급된 수사 미진사항 등을 고려할 때,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

 

나) 한편, 위와 같이 하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된 군 수사기록과 달리, 신빙성 있는 신청인의 진술이 발견되고 있음을 볼 때, “신청인의 진술내용이 신빙성이 없으므로 최초 헌병의 수사기록에는 하자가 없다.” 라는 취지로 답변한 기존 육군본부의 민원처리결과 회신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 요약컨대, 김○용 등 헌병수사관은 ‘신청인이 창문에서 투신하였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 자가 없는 상황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신청인을 최초 발견하였다는 홍○일의 추정적 진술에만 의존해 과학적이지 못한 수사를 진행한 결과, 객관적인 정황증거 없이 ‘죄책감으로 인한 자살시도’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고 판단된다.

 

계속되는 군대 내.외 문제,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며 하룻 밤도 편하게 잘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며칠전에는 DMZ 지역에서 중사 한 명이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새로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광화문 1번지에서 박준기 중사는 두 다리에 의족을 한 채 몇 시간동안 자신이 지나온 삶을 반추했다. 결단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 한민구 국방장관 입으로 분명히 군관민 합동 조사를 실시한다고 해 놓고선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불투명하다. 얼마만큼 조사가 진행되었는 지, 조사를 진행했으면, 왜 당사자인 박준기 중사에게 알려주지 않는지, 과연 조사는 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때는 군인이었던 그는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지휘권자인 국방부 장관의 말을 기억하고 있으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국방부 감사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성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진실에는 공소 시효가 없다!” 고 하는 박준기 중사의 말처럼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서 그와 그 가족의 억울한 지난 24년을 되 돌려 받게 되기를 바란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Church Clinic and Washington Seminary School Establish Cooperative Relationship through MOU

(사진:좌로부터 세번째, 손기성 처치 클리닉 대표, 우로부터 세번째, 김택용 워싱턴 신학교 총장)

8 7, Church Clinic (대표.손기성목사) Washington Seminary School (총장 김택용) 손을 잡았다. 이번 처치 클리닉과 워싱턴 신학교의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다양한 사역의 형태들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워싱턴 신학교의 아카데믹한 부분과 처치 클리닉의 프랙티컬한 부분이 서로 만나 윈윈하는 상생의 관계를 형성하자는데 의의가 있다고 손기성 처치 클리닉 대표는 말했다.

작은 교회에 절실한 자원봉사 목회자를 워싱턴 신학교가 제공하고, 신학생은 작은 교회를 통해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적 흐름을 직접 현장에서 체험, 실습할 있는 기회를 갖게하는 것과 이에 작은교회가 연장 교육의 터전을 제공하게 되었고, 처치클리닉과 워싱턴 신학교가 함께 합심하여 한인 커뮤니티를 비롯한지역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할 기반을 다지게되었다.

손대표는옛날에는 교회에서 사역자가 필요해서 키웠어요. 공부 마치면 사역지가 준비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현실이 아니랍니다. 아무리 좋은 신학교를 나와도 사역지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차에 사역자가 필요한 교회와 사역자들이 만날 있도록 브릿지 역활을 있다면 서로에게 유익이되고 사역도 아름다운 열매가 많아지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다.

처치클리닉 대표 손기성 목사와 지도위원이신 김의원 총장(아태학원, 총신대학교 총장) 처치클리닉 연구위원 안성식 목사, 간사인 이철 목사와 방샘 간사가 참여했으며 워싱턴신학교 김택용 총장과 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Yoon Lee-Sang’s World of Music: View, Smell, and Sound of the Korean Peninsula Composed into Music – Thoughts

<Japan : Prof. Lee,Sunhoon>

윤이상 (尹伊桑, Isang Yun, 1917년 9월 17일 – 1995년 11월 3일) 은 일제 식민시대에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군 충무면에서 짧은 유년기를 보낸 후, 통영면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현대음악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기타리스트, 첼리스트로서 서독과 통일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본관은 칠원이며, 동백림사건 이후에는 서독에 귀화하여, 한국 땅을 밟지 못하였지만, 북한은 여러 번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살부터 3년간은 한학을 배우기 위해 서당에 다녔고, 8살에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3살에 바이올린을 배우고 직접 선율을 작곡하기도 했으며, 마을 영화관에서 자작의 선율이 연주되는 것을 들으며 작곡가가 되기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한 윤이상 작곡가의 아버지로 인해, 통영협성상업학교에 진학했지만, 2년후에 경성에서 군악대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화성법을 배웠으며, 도서관의 악보를 보고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상업학교에 진학하기는 했지만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워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1935년에 일본 오오사카시의 상업학교에 입학하는 한편, 오오사카음악학원에서 첼로, 작곡, 음악원리를 배웠습니다. 1937년에 통영으로 돌아와 화양학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최초의 동요집 ‘목동의 노래’를 썼습니다. 1939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동경의 이께우치 도모지로에게서 대위법과 작곡을 배웠고, 1941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한반도로 돌아와 있다가, 1944년에 항일독립운동으로 2개월간 투옥되었고, 결핵으로 쓰러져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중에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가 유치환, 김춘수, 정윤주 등 통영의 예술인들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고 윤이상 본인은 음악부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통영고등학교를 비롯한 거의 모든 학교의 교가를 작곡했으며, 고려대학교의 교가도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음악활동 이외에도, 일본에서 부산으로 몰려드는 전쟁고아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부산시립고아원의 소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1948년에 통영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다가 부산사범학교로 옮겨 음악을 가르치며 작곡을 했습니다. 이듬해 1950년 1월 30일에 같은 학교에 국어교사를 하고 있던 이수자와 결혼했고, 같은 해 8월에 첫딸 정이 태어났습니다. 6.25전쟁 중에는 부산의 전시작곡가협회에서 활동하고 부산고등학교에서 일하다가 1953년 휴전되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대학교 예술학부와 덕성여대 등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치고 작품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했습니다. 1954년 ‘전시작곡가협회’가 서울에서 ‘한국작곡가협회’로 새로 결성되며 사무국장으로 활동했습니다. 같은 해에 [악계구상의 제 문제]를 저술했고, 1956년 4월 [현악4중주1번]과 [피아노 트리오]로 ‘제5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당시 대한민국에서 습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20세기 작곡기법과 음악이론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1956년에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유학하던 중에, 20세기 전반으로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현대음악계를 견인했던 작곡가인 올리비에 메시앙 (Olivier-Eugène-Prosper-Charles Messiaen)을 만나게 되어, “프랑스는 현대음악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서독 쪽의 환경이 좋은 편이니, 다름슈타트 강습회에 참가하면 좋을 것이다” 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서독으로 옮겨 1957년에 베를린예술대학에 입학하였고 당시에 윤이상의 나이는 이미 40세에 달해 있었습니다.

서독에서 그의 스승으로는 라인하르트 슈바르츠쉴링, 보리스 블라허, 요세프 루퍼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음악학자인 요세프 루퍼로부터 십이음기법을 엄격히 전수받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작품목록으로부터 위에서 소개한 동요집과 같은 종류의 작품들을 모두 삭제하고, 대학입학 후의 작품만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윤이상의 유럽 데뷔작으로는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 ‘현악4중주곡 제3번’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은 프란시스 트래비스(Francis Travis)의 지휘로 레코드로서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프란시스 트래비스는 이후에도 윤이상의 음악활동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윤이상은 동아시아 음악의 요소를 서양 음악에 접목시킨 것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에는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 서베를린에 정착하였고, 1965년에 초연한 불교주제에 의한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 (1964)’와 1966년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초연한 관현악곡 ‘예약’은 그를 국제적인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4년 4월 처음으로 오랜 친우인 최상학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였고, 김일성과도 친교를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한 민족의 이상을 동물 형상으로 표현한 사신도를 통한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수차례 방북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윤이상의 방북행적을 포착하여 내사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동백림사건입니다.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중앙정보부를 이용하여 행해진 대표적인 간첩조작사건으로 발전되었습니다.

1967년 6월 17일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는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서울로 끌려와서, 당시의 유럽에 있던 유학생들과 함께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간첩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 후에 이골 스트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주도한 한국정부에 대한 윤이상의 청원운동에는 루이지 다라피코라, 한스 베르나 헨쩨, 하인쯔 호리가, 마우리시오 가겔, 요세프 카일베르트, 오토 크렌페라, 리게티 제르쥬, 아르네 메르네스, 페아 노아고, 칼하이즈 슈토크하우젠 등 약 200명의 예술가가 서명했습니다. 1967년 12월 13일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재심에서 감형되었고 1969년 2월 25일 대통령특사로 석방되었습니다.

구속기간 중이던 1969년 자살을 시도했었고, 이를 계기로 음악작업이 허용되어, 오페라 ‘나비의 꿈’을 썼으며, 완성된 작품은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난 부인을 통해서 서독에 전달되어 1969년 2월 23일 뉘른베르크에서 ‘나비의 미망인’ 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며 31회의 커튼콜을 받는 등의 커다란 호평을 받았습니다. 옥중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도 ‘율’과 ‘영상’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에 서독으로 추방되었으며, 한국국내에서는 윤이상의 음악은 연주가 금지되었습니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는 하노버음악대학에서 재직하였고, 1971년에 서독에 귀화했습니다. 이 후에, 조국통일범민주연합의 유럽본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다음 해인 1981년에 교향곡 ‘광주여 영원히!’를 발표했습니다. 작품활동을 계속하며, 틈틈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1982년부터는 매년 북한에서 윤이상음악제가 개최되었고, 1988년 일본에서 남북 합동 음악회를 열 것을 남북 정부에 건의하였고, 이것이 이루어져 1990년 10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대표 17명이 평양에 초청받아 범민족 통일음악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윤이상의 음악세계는 ‘’상처받은 용’ 등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의 민속음악에 기초하였고, 클러스터 기법 등 당대의 최첨단 작곡기법을 응용하여 서양 악기와 음악체계로 동양적인 음색과 미학을 표현할 수 있게 고안한 주요음 (Hauptton) 기법과 주요음향 (Hauptklang) 기법이라는 작곡기법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윤이상이 고안하여 도입한 주요음 기법과 주요음향 기법은 12개의 음의 어디엔가에 중력을 주어서, 하나의 선율선에 개성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윤이상의 음악은 1970년대에 전위예술이 정체기에 접어들며, 선율의 회복이 강렬하게 요구되면서, 당대의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예술대학교수로서 재직하였고, 작곡과 교수로서 호소까와 도시오 (細川俊夫), 시마쯔 타께히또 (嶋津武仁), 후루카와 키요시 (古河聖), 미와 마사히로 (三輪眞弘), 타데우유 뷔에레쯔키, 베른프리트 G 쁘레붸 등의 제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아시안인의 작곡교수로서 유럽에서 제자가 있었던 것은 독일전체에서는 윤이상이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인 제자로서는 강석희가 알려져 있습니다.
말년에는, 쁘폰짜임, 슈트트가르트, 브레멘 등에서 작곡강습회를 열었고, 제자들의 요청으로 제자들의 제자의 육성에도 열의를 다했습니다. 쁘폰짜임 강습회에서는 이규본이 참가했으며, 이규본은 수년후에 일본의 최고권위의 작곡상인 이리노 상 (入野賞)를 수상하기도 합니다.

1994년 동경에서 모든 정치적 활동의 중단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에 서울, 부산, 광주 등에서 윤이상음악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윤이상은 참가하려 하였으나 건강의 악화로 입원하게 되었고, 당시에 그의 소지품에는 안숙선의 남도민요 레코드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에는 최후의 오케스트라작품 ‘화염에 휩싸인 천사(1994)’가 동경에서 연주되었지만, 이미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연주회에는 참가하지 못했고, 1995년 11월 3일 4시 20분 독일 베를린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서거하였습니다.

출판작품은 모든 곡이 Bote & Bock로부터 발매되었고, 독일에 체류했던 기간의 모든 윤이상의 작품은 출판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에, Bote & Bock가 파산하여 Boosey & Hawkes에 흡수합병되었고, 이와 동시에 저작권사용료 등도 급등했다는 것이 음악계의 소식입니다. 일본에서는 생전에 비해서는 최근의 북한문제와 혐한분위기의 영향으로 2010년 이후에는 윤이상의 오케스트라 작품이 정기연주회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대폭 줄어든 실정입니다. 필자가 현재 살고 있는 나고야의 아이찌 에술문화센터에는, 윤이상의 출판악보의 상당수가 소장되어 있으며, 전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인도 열람은 가능한 상태입니다.

필자는 음악전문가도 아니며, 삶에 있어서도 위대하고도 처절했던 윤이상을 평가하거나 추론할 수 있는 자격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40세에 이르러 독일 땅을 밟고, 그 이후에 40여년을 이국땅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고국 땅에서 느꼈었던 모습, 냄새, 소리를 모두 음악에 담아 스스로를 찾고, 또 그것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려 했던 윤이상의 모든 일들은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인 동시에 소중한 자산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한국인들이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에서 만들어졌던 모든 사상적인 갈등을 초월하여 윤이상의 음악세계로 표현된 한반도의 도도한 기상과 아울러 어제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이를 기본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자부심과 희망을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