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Asia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6<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장자는 우리들의 마음에 고착된 주관적인 편견이나 독선을 비워내야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오직 다른 사람들과 소통의 길은 마음을 비워내는 데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장자는 마음을 비우고 氣로 사람들을 대하라고 했다. 氣란 주관적인 마음이 맑게 비워진 자연성의 상태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같은 것이다. 즉 순수한 마음의 느낌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곧 우리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으로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심재란 모든 삶의 보편적인 기준을 성심으로 삼아 평가하는 이기적인 자아의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성심은 누구에게나 의식 속에 내재되어있다. 그런데 그 성심을 마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만능으로 생각할 때 문제가 된다. 여기서 비움은 그 자체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의 生氣가 피어나는 공간으로써 작용한다.

『장자』「인간세」, “唯道集虛, 虛者.”

『장자』「인간세」,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장자』「인간세 12」, “瞻彼闋者,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적응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맞추려는 마음이다. 이 세상의 대다수의 존재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적응하기 위하여 우리자신에 가면을 씌우고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때가 있다. 우리를 내세우면 여러 가지로 부작용이 따르고 힘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우리의 존재를 진실하게 내보이면서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적응하는 것이 무조건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조화를 맞추면서 그들의 삶을 잘 성찰하면 다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우리의삶의 틀에 집어놓고 판단하여 선호도를 따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의 존재방식의 고유한 틀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방식으로 이끌려고 한다. 이렇게 강제로 이끈다고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자신의 고유한 자연성이 있듯이 상대도 고유한 자연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진솔하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폐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시이성인,
抱一爲天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포일위천하식, 불자견고명, 불자시고창, 불자벌고유공,
不自矜故長, 夫惟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불자긍고장,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고지소위곡즉전자, 기허언재. 성전이귀지. (노자 22장)

노자는 도를 잘 체득한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과 적응하기 위하여 신중하고 순진하며 소박한 모습으로 주변사람과 환경을 세심히 살핀다고 하였다. 자연 생태계가 도(자연)의 섭리에 의해 끊임없이 생명을 부여받고 조화를 이루듯이 우리 인간도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생기를 얻고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내팽개치거나 다른 존재에 의해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본연의 존재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평가하고 우리들의
삶의 방식으로 강제로 이끌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나름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강제성에 큰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古之善爲士者,微妙玄通 深不可識
고지선위사자,미묘현통 심불가식
夫唯不可識,故强爲之容
부유불가식,고강위지용
豫焉若冬涉川,猶兮若畏四隣
예언약동섭천,유혜약외사린
儼兮其若容,渙兮若氷之將釋
엄혜기약용,환혜약빙지장석
敦兮其若樸,曠兮其若谷
돈혜기약박,광혜기약곡
混兮其若濁,孰能濁以 靜之徐淸
혼혜기약탁,숙능탁이 정지서청
孰能安以久 動之徐生,保此道者 不欲盈
숙능안이구 동지서생,보차도자 불욕영
夫唯不盈 故能 蔽不新成
부유불영 고능 폐불신성 (노자 15장)

장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불일치가 가져오는 불행한 결과를 ‘새’를 통해서 설명하였다. 노나라 임금은 새의 고유한 특성을 살피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새에게 적용했기 때문에 새는 죽어버렸다. 자신의 방식으로 본다는 것은 사물을 대상으로 이분법화 시킨 것이다. 새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적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해의 적정선은 자연스럽게 다가가 이해하고 도움이 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이해의 한도를 벗어나 그들의 삶에 깊이 간섭할 정도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늘과 땅은 편애함이 없으며 만물의 자연스러운 생장에 맡긴다” 고 하여 모든 것에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생장을 자연의 도에 맡기고 따르듯이, 우리도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간섭해서는 안 되며,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나치게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하여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 그 자체가 힘겨운 일이며, 힘겨운 일에서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장자』「지락」, “且女獨不聞邪?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臠,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Drink a Cup of Poem~~얼레지/홍성재

(Photo from Google Images)

얼레지

서풍이 매섭단들 애증을 꺽을쏘냐
큰 바위 기대서서 오매불망 기다리네
춘풍아 어서 불어라 애간장이 다 녹는다

깊은 골 산 기슭에 눈밭이 녹아드니
옥 치마 받쳐입고 처연히 앉았더냐
지나는 나그네마다 갓끈 고쳐 매누나

참빗에 빗은 머리 옥비녀 쪽을 짖고
봄바람 타고 올라 사위로 나폴대네
뉘냐고 묻지 마시오 봄이 오고 있잖소

*얼레지 꽃말: 바람난 여인

미래로 가는 시인들의 나라” 첫 시집, 우리들의 언어, 그 영혼의 아름다움  중에서

*** 봄은 여자들이 바람이 난 다는 말이 있다. 꽃을 빚대어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얼레지를 보면서 허연 속살을 드러내며 길 가는 길 손들을 유혹하는 저 화냥기 짙은  꽃, 기생같은 꽃이라는 생각이든다.

봄이란 핑계로 엉덩이를 살짝살짝 휘두르며 걷는 폼이라니…바람때문에…바람때문에… 저 환장할  바람 때문에…그렇게 말하겠지.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Story of Dokdo from Japanese Mr. Akino, 3rd Gen Descendant of WWII

 

(사진: 뉴시스)

전후 3세대 일본인 아키노 씨를 통해 들은 독도 이야기

아키노(38)세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그는 태어나서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일본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조부는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고 말했다.

그의 독도 관련 증언을 들었다.

“2000년도 까지는 독도의 존재가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어요. 그것은 일본의 영토가 아닌 남의 나라, 한국의 땅이니까요

그러면 언제부터 독도가 일본 교과서에 실린 것이죠?

그것은 제가 졸업한 후, 최근 10여년 사이에 대두된 것 같은데요. 이유는 물론 정치적인 계산이 있어서 일 겁니다.”

정치적인 계산이요?

“Populism and Nationalism”

조선일보 2013 2 27일자를 참고하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27/2013022701875.html

러일전쟁 당시에 발간된일본역사지도일본의 중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죽도로 표기된 채조선 영토라고 분명히 쓰여져 있는 것이 보인다.

전쟁이 끝난지 반 세기가 넘었는데 아직도 그들은 한국이 그들의 식민지라고 믿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지 않지만 아베처럼 전범의 후손들은 특히 더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라는 것과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 내어 쓰는  카드로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3세대들의 의식은 독도의 영유권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는 잘라 말한다. “독도요? 그 땅은 일본이 가지고 싶은 영토인 한국땅에서 일본이 탐내는 아주 중요한 해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요.”

일본 정치인들은 그들이 필요할때마다 쓰는 카드로  “영토문제”를 이제는 일본 중등학교 교과서에 언급하고 일본인들에게 세뇌하고 있다. 그들의 소위 “정신을 지배하라!” 라는 식의 교육방침은 한시도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일본 땅, 하루에도 수 백번 지층과 지반이 움직이며 흔들거리는 그 땅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들에게 한반도는 가장 쉽게 건너갈 수 있는 육지라는 것도 간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5<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진실은 사람들을 다가오게 하는 힘이다. 우리는 주변에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고 삶의 질서를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려야 한다. 우리의 삶의 양상을 흔들림 없이 진실하게 밀고 나간다면 누구도 우리의 삶의 질서를 흔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를 수용하는 것이 마음건강을 위해 중요하다. 노자는 복귀, 즉 인간이 어느 계기가 되면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는 누군가로부터 진심어린 관심을 받을 때이다. 인간의 감정은 거의 유사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주고 포용해주면 마음을 진실하게 열게 되고 진실하게 열려진 마음에서 느껴지는 공감은 서로를 이어주며 보다 넓은 인간이해로 연결된다.

칼 로저스의 ‘인간의 경향성’은 노자의 ‘복귀 지향성성’과 유사한 이론이다. “나의 경험상,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경향성(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치료 과정에서 사람들과 깊이 접촉하면서, 심지어 고통이 가장 심하고, 행동이 가장 반사회적이고 감정 상태가 비정상적일지라도 그것이(경향성)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민감하게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을 올바른 사람으로서 수용해 줄 때,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내가 믿기에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은 ‘긍정적’, ‘건설적’, ‘자아실현을 위해 움직이는’, ‘성숙을 향해 성장하는’, ‘사회화를 향해 성장하는’ 등의 단어이다.” (칼 로저스 지음, 주은선 옮김,『진정한 사람되기』, 서울 : 학지사, 2014, 40쪽.)

공감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마음이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의 마음은 믿음과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 담을 수도, 품을 수도 없다. 또한 우리가 마음으로 품지 않은 사람의 마음 안에 우리의 마음은 담길 수 없고, 그의 마음자리 언저리에 겉돌 뿐이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과 깊이 느껴지는 공유할 마음자리가 있을 때 서로의 마음끼리는 자연스럽게 품고 담기며 평온하게 함께할 수 있다.

상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만물을 포용하고, 포용하면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다. 포용하면 공평해지고, 공평해야 두루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흡흡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 (노자 49장)

상도는 비어있는 마음(무심, 허심)을 비유한 것이다. 마음이 비어있어야 사물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포용하게 된다. 포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기 위해서는 이성적이며 지적인 것으로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른 의미이다. 노자에 의하면 지혜롭게 살기위해서는 우리가 지적으로 터득한 관념이나 개념들을 비울 때 더 넓고 깊게 사람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노자』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자연의 규율’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지혜롭다는 것’은 삶을 더 넓은 방식으로 이해하며 인간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진심은 마음을 통하게 한다. 노자는 “하늘의 道는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답하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온다”고 하듯이 사람들은 접촉하는 사람들의 마음끼리 잘 통하면 말하지 않아도 더욱 깊고 넓게 서로의 마음자리에 의미 있는 존재로 담겨진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관점의 경계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각을 많은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더욱 넓고 깊은 차원으로 다듬고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생각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을 주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노자』제49장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성인은 언제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어서 사람들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왜 그가 우리를 괴롭히는지 그의 마음을 살피다보면 그의 내면에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어렸을 때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심하게 받아 강박증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인간적인 안타까움으로 그를 동정하게 될 것이고 그를 향한 적개심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늘 마음을 비우고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도는 만물의 그윽함이니 선한 자의 보배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보존되는 것이다. 멋진 언사는 가치가 있고, 존귀한 행실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버려질 수 있겠는가?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도의 자비, 연민, 긍휼을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도의 자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겉보기에 거칠어 보이고 비정상적인 격한 감정을 내뿜는 사람(不善人)도 그의 밑바닥에 서려있는 아픈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이해해주고, 공감적으로 응답해주면, 그는 왜곡되고 잘못된 감정을 정제하고 승화시켜가면서, 자신의 자연성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도자, 만물지오,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美言可以市尊, 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미언가이시존, 행가이가인, 인지불선, 하기지유,
故立天下,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고립천하, 치삼공,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왈이구득, 유죄이면사, 고위천하귀.(노자 62장)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작품을 구성하는 인물의 성격, 사건, 갈등의 원인과 해결 등이 모두 무속신앙에 뿌리를 두고 우리 민족 고유의 사고체계인 무속신앙을 관념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전통 정서에 바탕을 둔 시각으로 전쟁의 비극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이리하여 두 삼촌으로 상징되어 표출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두 할머니 즉 두 여성의 화해를 통한 무속적 고유정서를 압도하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의 원혼을 무속을 통해서 위로함으로써 화해를 시도하려는 <태백산맥>에서 되풀이된다.

(Photo from Google Images)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다시 요약해 본다면, 멜로 영화의 경우, 한국 근대사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남성위주의 외형적 규범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주의와 배리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이것은 특히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동요하게 된 여성들을 전통적 자리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여성들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서 역사물 경우, 여성들을 중심으로 음모와 불만 그리고 고통의 표현에 집중함으로써 은폐된 차원에서의 여성의 한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공포영화 역시, 특정한 시기 여성들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사회적 질서나 이념을 반영하는 서사물이라는 점에서 역사물과 동일한 방식의 재현물로 볼 수 있고, 비록 비합리적인 방식이지만 여성에게 가해진 고통과 절망을 배출시키는 분출구로 무속이 기능했으며 이런 차원에서 무속영화는 한국 여성을 둘러싼 갈등과 모순을 종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AXBFl03saY

이처럼 한국에서의 여성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 지배적 권력담론들 속에서 생산되고 조정되어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담론들의 틈새로 여성의 한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이리하여 이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즉 근대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의 한은 어떤 언어로 형상화되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 혹은 대중문화에서 나타난 한이라는 고유한 정서를 우리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 삶의 체험에 근거한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개의 영화가 나름대로의 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 대중을 대하고 있고, 이를 감상하는 대중 역시 대중 매체로서의 영화가 의도적으로 혹은 잠재적으로 전달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수용 혹은 거부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감식안과 비판적 안목을 구비하려고 한다면 이때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는 것은 관객인 우리 자신의 눈으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고유하고도 주체적인 방법론인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4<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현실적인 치유 방법은 그들의 비호감적인 성품을 탓하지 말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인품, 시간, 정신을 지킬 수 있다. 이해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원함, 처해진 상황, 난제 등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나고 괴팍한 성품뿐만 아니라 우리자신의 성품도 둥글고 자연스러운 성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성인은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정성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 성인은 겉보기에 불량해 보이고 부족함이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분명 본연의 맑고 선한 자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품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그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연성과 좋은 재능을 잘 가꿀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선하지 못한 사람의 품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가를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으로 삼을 수 있게 한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 27장)

수용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우리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점차 이해하게 되면서 그 사람을 마음으로 수용하게 된다. 수용이란 형식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정성이 깃든 인간관계이다. 우리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던 사람은 생각 만해도 불쾌한 감정이 치솟아 견디기 힘들어 그를 마음에서 밀어내기에 급급한데, 어떻게 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정신(혼)과 육체(백)가 하나로 합해져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정기를 모아 유순해지는데, 어린아이의 상태처럼 될 수 있는가? 잡념을 깨끗이 씻어내고 깊이 관조하는데 흠이 없을 수 있는가?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위자연으로 할 수 있는가? 감각기관과 외부세계가 접촉하는데, 고요함을 지킬 수 있는가? 모든 방면에 통달하면서 계략을 쓰지 않을 수 있는가?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재영백포일  능무이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위호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지호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생지축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불재  시위현덕 (노자 10장)
이 문장은 개인의 수양과 인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포일’은 수양을 통해 나 자신의 혼과 백의 합일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분별하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합일하는데 장애가 되는 대립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자는 어린아이처럼 지모와 탐욕이 없고 깨끗한 현람의 상태에서 주변의 사람이나 생명체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 주위에 분명 호감이 가지 않고 볼수록 싫은 사람이 있다. 사람이 보기 싫을 때는 이유가 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의 특유의 단점이 있을 때 그를 마음으로 수용할 수 없다. 로저스의 말처럼 “수용은 이해와 관련되지 않으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싫어할 때는 그 사람의 특유한 단점만이 싫어하는 이유가 되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분명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 우리들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식이나 환경에서 익숙해진 습관 등은 우리들의 고집과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잣대로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 ,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노자 28장)
노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과 같이 대립적인 이분법으로 나누는 그릇됨을 지적했고, 있음(有)과 없음(無)이 서로 생겨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포함하고,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듯이 모든 것은 서로 상관적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이치, 자연의 이치는 대립이 아니라 상호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배타적으로 대할 때 나와 너는 모두 소외될 수밖에 없다.『노자』제4장의 ‘和光同塵’은 서로 상생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빛과 먼지, 즉 인품이 좋은 사람이나 인품이 천박한 사람이나 알고 보면 본연의 자연성은 다 같기 때문에 서로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포일’은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무속영화

한국 영화에서의 여성의 한은 무속영화라는 장르에 의해서 다시 독특하게 그려지고 있다. 대다수 한국인의 무의식적인 정신 구조에 녹아있는 문화적 침전물로서 무속은 단순히 표현방식으로서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제의적 양식이다. 따라서 한국영화에 자리잡고 있는 무속성을 드러내는 것은 전통 사회의 억압적 질서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과 혼란을 동반한 근대화로 인해서 한국 여성들 의식 내면에 잠재해있는 상처와 고통 등을 치유하고 포용하려는 화해적 양식이 무속은 한국 고유의 신앙으로 일반 민중의 현세적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탐구하여서 얻어진 각종의 선험적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하는 신앙체계이며 동시에 인간의 모든 경험 내용이 침전된 민족고유의 집단적 연행 형태를 띤 예술이기도 하다. 전통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무속은 상류층보다는 일반 대중, 특히 여성들을 위한 민간종교이다. 이리하여 과거 지배계층들은 무속을 미신시하고 배척했지만 민중들 특히 부녀자들 사이에서는 소멸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근원적 정신구조로 남아있었다. 무엇보다도 무속은 부계 중심의 사회제도로 인해 소외된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포용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속이 불교나 유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리 민족문화의 전통과 주체의식을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무속이 사회에 내재해 있는 갈등과 모순을 사회적 또는 종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메카니즘으로 기능한 것은 사실이다. 바로 이점이 공포영화, 역사물, 문예영화, 통속물 등 다양한 장르의 틀을 빌려 나타나고 있는 무속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며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동시에 한국 사회의 은폐된 존재로서의 여성을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서 여성을 억압하는 기존질서에 대해서 저항하고 해체하는 문화적 방식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유현목의 <장마>는 좋은 예로 제시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aG1U7IADQo&feature=youtu.be

그러나 친할머니는 길준의 죽음을 천수에 따를 운명으로 얘기하고 점장이에게 점을 보고 순철의 살아 있음을 믿는다. 이 과정에서 대립은 지속되지만 외할머니의 성스러운 의식은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키면서 나아가서 두 할머니의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전쟁이라는 극한적 상황으로 인해서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서로 갈등을 보여주지만 결국 무속신앙에 의해 혈연과 사상의 갈등이 전격적으로 해결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나아가서 외국에서 유입된 이데올로기가 초래한 갈등이 한국 고유의 신앙인 무속에 의해 해결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외할머니는 그 망자를 가족들과 상면시키고 저승으로 배웅하는 무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서술의 원인과 결과는 모두 무속신앙에서 비롯된다. 이리하여 무속적 요소는 사건과 인물들을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우선 영화는 자신의 꿈을 미래에 대한 예견으로 받아들이는 외할머니와 아들의 무사귀환을 맹목적으로 확신하는 친할머니를 대립시킨다. 이 과정에서 외할머니는 자신의 꿈을 미래를 예언하는 계시로 알고, 집에 들어온 구렁이를 순철의 환생으로 보고 주술적 의식을 베풀어준다. 무속에서 억울한 죽음은 천수를 다하지 못한 불행한 사건이다. 이리하여 육체는 죽지만 그 영혼은 떠돌거나 다시 환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구렁이는 저승에 가기 전의 순철의 원혼이며 죽음의 확인이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Drink a Cup of Poem~~내누이/한지원

 

내누이

내누이

세상에

하나뿐

내누이

그리움

처처에

놔두고

동구밖

재넘고

물건너

김씨네

안사람

되었네.

복사꽃

피고도

수십년

보고픔

못이겨

눈물만

<내일로 가는 시인들의 나라> 첫 번째 시집, “우리들의 언어, 그 영혼의 아름다움” 중에서,

*** 이 시를 읽으면 그리움을 꾹 참고 억누르는 화자의 아픔이 보인다.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꼭 세 글자로 이어 줄 것을 바랬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시인의 승복속에 깊이 여며진 감정의 절제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면벽한 그는 세상과 떠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속세에 살고있는 누이를 그리워하며 산다. 세상을 밟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 그는 애써 그가 보고싶은 누이를 마음으로만 그리워하며 산다.  속세의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꽃이 피고 질때마다 먼 산아래 어딘가에 살고 있을 누이를 생각한다. 수 십년동안 그리워하는 마음과 복사꽃이 핀 화사한 봄 날, 복사꽃의 꽃말처럼 꼭 언젠가는 한번은 만나게 되길 바라는 작은 “희망”을 표현한 시라고 생각한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월하의 공동묘지> 이 영화는 <장화 홍련전>을 통해 일찍부터 여귀의 모태로 여겨져 온 가정비극과 기생의 인생 유전을 담은 30년대 신파의 구조를 근간으로 하면서 이 시기에 새롭게 부각된 ‘모성의 담론’을 주제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런 차원에서 가족과 가족담론의 재조직화를 핵심으로 사회전반의 재구조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던 무렵에 제작되었던 <월하의 공동묘지>가 일제강점기 가족으로부터 그 서사를 출발시키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에서 여학생 명순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오빠와 애인의 뒷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되었다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편승하여 갑부가 된 한수의 아내가 된다. 그러나 명순은 부르주아 가정의 아내이자 가부장의 계승자인 아들의 어머니가 되고서도 과거의 훼손된 순수성으로 인해서 고통받는다. 한편, 수난당하는 민족을 상징하는 오빠 춘식은 명순 가족의 도덕적 정당성을 희생시키면서 부와 명예를 추구한 한수의 부르주아 가정을 위협하는 과거의 망령이다.

여기서 지하로 스며든 독립운동가 춘식의 역사적 정당성이 동생의 행복을 위한 오빠의 애정이라는 사적 감정으로 치환되는데 이것 역시 60년대 후반의 여러 멜로드라마가 부당한 사회적 권력의 압박을 재현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따라서 명순의 원귀는 해원(解怨)을 현실권력에 의존함으로써 기존 질서의 도덕적 정당성을 승인했던 장화홍련과는 달리, 스스로 원수를 갚음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위한 상상의 공간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명순을 원귀로 만든 불의의 세력에서 그녀는 분리는 되었지만 이것이 역사적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한 한수와 모든 명분을 잃어버린 채 떠돌이가 되어버린 춘식과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불온한 결말이 된다. 이처럼 전통적인 신파적 요소가 <월하의 공동묘지>에 이르러 괴기와 결합함으로써 한국 괴기영화의 불온한 상상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이후의 괴기영화의 한 전범이 되었다. 이처럼 <월하의 공동묘지>가 다른 공포(괴기)영화들과 공유하는 지점은 전통적인 여인의 한을 특정한 수용계층에 호소하는 그 양식적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2<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2) 심리적 불안증 치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과도한 업무와 직장 상사나 동료 간의 불화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심리적 불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기도 한다. 심리적 불안증의 치유목적은 마음의 평정을 구하는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구하기 위해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취미활동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안증은 해소되지 않고 마음의 평정도 구하지 못한다. 리처드 칼슨에 의하면 기분 좋은 감정은 우리 마음속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경험한다. 즉 뚜렷한 이유 없이 존재하는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평온이며, 이것이 곧 평정심이다. 누구나 삶의 불안증을 경험하지만 빨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평정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바로 우리 자신의 책임이며 고통을 해결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자신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가? 고통은 삶의 과정에서 늘 따르게 마련이고, 고통을 총체적으로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통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삶의 지혜이다.

노자사사로운 집착과 인간적인 갈등 속에서 늘 강박증에 시달려 자신의 본연의 마음바탕과는 다르게 분열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靜)하다”(歸根曰靜)고 권고했다. 뿌리는 우리의 본연의 마음바탕이다. 불안한 상태에서 표층으로 분열된 마음을 내면으로 모아 내적 고요함(靜)을 찾으라는 것이다. 불안은 자기의 내면을 살피는 계기가 된다. 불안과 관련하여 하이데거도 노자와 유사한 관점을 갖고 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노자 16장)

하이데거에 의하면 불안은 현존재를 일상성에서 벗어나 본질적으로 자신을 그의 가장 고유한 “세계-내-존재”로 개별화시킨다. 즉 불안의 근원적인 기분은 현존재를 세인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여 “유일한 자기다움”을 살필 수 있게 한다. 불안에 직면해서 마음을 안으로 모으고 내밀하게 자신을 반성하여 자신의 불안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통찰하는 과정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다. 불안의 원인은 외적인 요인보다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내적인 요인에 있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 52장)

우리는 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남들보다 우월하고 명예롭고 물질도 많은 존재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주위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즉 문제의 요인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여 대립시키는 데 있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