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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47<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설명: 미국 동 북부의 맨 끝, 캐나다 국경에서 가까운 메인 주, 포틀랜드 항구에서)

<Korea: Prof. Yoon, Geum Ja>

셋째, 마음의 병은 자신의 존재를 능력이나 물질적인 것으로 과시하려는 것에서 올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람을 인품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작업능률 성과에 따른 평가 그리고 외적으로 나타난 물질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풍조가 농후하다. 이러한 사회현상에서 인간이 인정받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요인으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사람들이 이루어낸 업적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일에 몰두하며, 인생의 모든 가치를 일을 통한 업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과도한 일로 지치고 심리적 정서는 불안증으로 시달린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 평가받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관과 부합하지 않는 직업이나 지위도 남들에게 우월하게 보일 수 있다면 악착같이 추구한다. 그러나 소수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직업이나 지위를 얻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높이 평가하여 경쟁률이 치열한 대기업에 입사하려는 시도가 실패했을 때 자신의 우월감에서 열등감으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한편 대기업에 들어간 소수의 사람들의 기쁨은 잠깐이며, 또 다른 극심한 업무에 시달린다. 그들은 주어진 일에 남들보다 탁월한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입사시험 통과 이상의 정신노동을 해야 한다. 이러한 직장에서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노자는 자신에게 부합하지 않는 지위를 얻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압박하여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말라고 했다. 즉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겨야하지만 자신을 과도하게 평가하고 높이지는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멋진 외모를 행복의 조건인 냥 성형이나 값비싼 물건으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높이려고 한다. 사람들은 홈쇼핑 중독 증상을 보일 정도로 소비에 열중하고 값비싼 물건을 구입하여 주위사람들에게 뽐내면서 행복을 느낄 만큼 사람들은 ‘물질적 안락’을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필수품이 아닌 값비싼 ‘뽐내기 위한 물건’들을 사들이고 소비한다. 물론 이러한 소비문화에는 자신의 존재를 대중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인간의 나약한 자존감이 깔려있다.

넷째, 마음의 병은 누군가가 우리의 삶의 짐을 떠맡아주기를 바라는 게으르고 불성실한 마음에서 올 수도 있고, 우리가 노력한 것보다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에서 올 수 있다.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서 편법을 이용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노자는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처럼 작은 것에서 생기며, 구층이나 되는 누대도 한 삼태기 흙에서 쌓여진다”고 말했다. 이것은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할 때 편법을 이용하지 말고 완성단계까지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떳떳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근거 없이 행동하면 흉해진다”고 했다. 이러한 마음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마음모양새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다가 자기 힘으로 부족할 때, 다른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노자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지모와 가식적인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을 끊어야하며, 교활하고 이득을 챙기는 것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섯째, 마음의 병은 다른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손해를 당했을 때 심각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서 올 수 있다. 무엇보다 소유하고 싶은 것 즉 물질, 명예 등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때 마음의 시름은 깊어지고, 고통스러워진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천하유도, 각주마이분, 천하무도, 융마생어교,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화막대어불지족, 구막대어욕득, 고지족지족, 상족의.(노자 46장)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향해 증오와 분노 등의 감정을 분출하고, 자신을 원망하는 자기비하, 자학, 자기상실, 자포자기 등 비정상적인 감정을 분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마음의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탐욕을 주의하며, 無欲, 知足, 知止할 것을 각성시켰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득여망숙병.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시고심애필대비, 다장필후망,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노자 44장)

인간의 과도한 욕망은 어느 정도 소유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또 다른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의 소유욕은 다른 사람들의 소유물과 자신의 소유물을 비교하여 추구하다보니 만족할 수가 없다. 소유욕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경쟁의식, 우월의식, 지배의식 등이 배후에 깔려있다. 이러한 강력한 의식은 다른 사람들과 다툼을 유발하게 되고, 불화와 갈등을 낳게 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자신의 마음도 노이로제(신경증)와 스트레스 등 각종 마음의 병(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노자는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을 동반하여 생명의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노자는 “강폭한 사람은 제명에 죽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人之所惡, 唯孤, 寡, 不穀, 而王公以爲稱.
인지소악, 유고, 과, 불곡, 이왕공이위칭.
故物, 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人之所敎, 我亦敎之.
고물, 혹손지이익, 혹익지이손. 인지소교, 아역교지.
强梁者, 不得其死, 吾將以爲敎父.
강량자, 불득기사, 오장이위교부.(노자 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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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46<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홍성재 시인

<Korea: Prof. Yoon, Geum Ja>

현실사회 속에서 무위 자연적 마음치유

1 마음의 병 : 고통과 불안증

현대적 의미에서 마음의 병은 “감정의 장애”라고 볼 수 있다. 이동식은「한국인 정신치료에 관한 연구」논문에서 ‘핵심감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핵심감정’은 불교에서 말하는 ‘애응지물(碍膺之物)’ 즉 ‘가슴에 거리끼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집착을 말한다.

마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쌓여있어 기분을 시시각각으로 움직인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 담겨있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처리’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고통으로 불안정할 때 불안한 감정의 요인을 자각하여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가 감정을 제어하느냐 혹은 감정에 사로잡히느냐에 따라 마음의 상태가 불편할 수도 있고, 편안할 수 있다. 사람들은 수시로 감정의 기복에 시달리며 그 감정에 사로잡혀 꼼짝 못할 때가 있다. 어떤 감정은 잠시 마음에 머물다가 쉽게 물러가는 것이 있는가하면 어떤 감정은 평생을 마음에 올무가 되어 괴롭히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불행한 감정의 지배를 평생 받고 있다. 이것은  마음속에 불행한 감정이 굳어진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상태가 마음의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노자』에는 이러한 마음의 병의 원인으로 분별지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생각들, 사랑과 미움, 사회적 지위 추구, 게으르고 불성실한 마음,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망 등이 제시되어 있다.

첫째, 마음의 병은 분별지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생각들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즉 마음의 병을 일으키는 감정은 생각으로부터 발현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늘 사건이나 사태에 직면하면서 끊임없이 생각에 휩싸인다. 지혜로운 생각,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무모한 생각 등 사건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에 따라 감정이 발현된다. 인간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생각과 감정이 수시로 변화한다. 생각이 바뀌면 바뀐 생각과 함께 병행하여 감정이 변화한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마음에서 좋지 않은 감정이 발현된다. 좋지 않은 감정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된다. 삶에 있어 감정의 힘은 이성보다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며, 마음의 병은 좋지 않은 감정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올 수 있다. 즉 사랑을 갈망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미움의 대상을 향한 원망감에서 올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일을 성취하려다가 이루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에서 올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적으로 돋보이기 위해 물질로 가꾸었지만 메워지지 않은 정신적 공허감에서 올 수 있다.

둘째, 마음의 병은 사랑과 미움의 감정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즉 감정으로 마음의 병이 난다. 

사람들의 마음의 병은 상대에게 관심을 쏟은 만큼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정신적으로 피해의식을 느끼면서 올 수 있다. 인간은 누군가로 부터 관심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사랑을 받지 못하면 마음의 감정은 미움, 안타까움, 섭섭함, 시기심, 분노 등으로 바뀌면서 마음에 고통이 생긴다. 인간의 사랑은 집착하고, 관심 받으려하고, 무언가를 기대하다가 그 바람들이 응답되지 않으면 섭섭해 하고 원망하다가 미움으로 종결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고대 중국사회에서 사랑의 집착이 얼마나 마음을 안타깝게 하며 마음을 불안정하게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시경』에는 여인들이 남편들의 진정한 사랑을 바랬지만 사랑을 얻지 못해 원망하는 詩들이 많다. 즉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기고 한탄하는 詩에서 사랑을 얻지 못해 애타는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방탕한 남편의 배신으로 괴로워하는 시 구절에서 여인의 애증을 느낄 수 있다.『시경』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한 詩들도 많다. 이러한 시에서 멀리 나가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가슴앓이 하는 애틋한 마음과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을 살필 수 있다. 이와 같이『시경』에서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 배신과 절망으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시와 사랑의 설렘과 그리움을 표현한 시를 통해 인간의 감정의 기복을 살필 수 있다.

『시경』「1편 邶風 바람(終風)」, “나를 돌아보고 비웃는 그이! 희롱하고 방종하여 이 마음만 쓰라려라”(“顧我則笑 謔浪笑敖 中心是悼 ”) 김찬호는『모멸감』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사랑 바로 곁에 미움이 자라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상대방의 태도가 바뀌면 심지어 복수심이 일기도 한다”고 말한다.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모멸감』, 서울 : 문학과 지성사, 2016, 26쪽.)

『시경』「召南 -草蟲 」, “당신을 뵙지 못해 이 마음 시름겨워라 당신을 만난다면 내 마음 놓이련만”(“未見君子 憂心忡忡 亦旣見止 亦旣覯止 我心則降.”)『시경』「1편 5 위풍, 여우(有狐)」, “마음속 근심은 그대 입을 옷이 없을까봐”(“心之憂矣 之子無服”)『시경』에 여우가 나오는 작품은 대개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시경』「2편 1 소아, 우둑 솟은 아가위나무(杕杜)」, “나랏일이 끝나지 않아 내 마음 서럽고 아파라 초목이 무성하여 여인의 마음 서러워라 떠나신 임 하마 돌아올 텐데.”(“王事靡盬 我心傷悲 卉木妻止 女心悲止 征夫歸止”)『시경』「1편 5 衛風, 임이여(伯兮)」, “ 임을 그리워하기에 내 마음 아프게 한다.”(“願言思伯 使我心痗”)

『노자』에서 사람들이 사랑을 받으면 기뻐서 놀라고, 모욕을 당하면 자존심이 상해 어찌할 바 모르는 감정을 살펴볼 수 있다.

총애를 받거나 욕을 당하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큰 환란을 중시하는 것을 마치 몸을 중시하는 것처럼 한다. 무엇을 가리켜서 총애를 받고 욕을 당하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고 하는가? 총애를 받는 것은 별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얻으면 기뻐서 놀라고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노자 13장)

노자는 사랑도 모욕도 상관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기뻐할 일도 아니고, 모욕을 당했다고 해서 크게 낙담할 일도 아니라고 하였다.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을 잃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걱정하게 되고, 모욕을 당하면 자존심이 상해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혀 중요한 삶의 본질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총애와 모욕은 삶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스쳐가는 감정의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기에 너무 그것에 집착해서 큰 환난을 입은 것처럼 당황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과 모욕으로 감정이 복받쳐 오를 때에는 오직 사랑과 모욕이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을 다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상 사랑과 모욕의 감정은 우리 존재의 본질 곁에 있을 뿐이다. 이러한 노자의 감정에 대한 생각은 리처드 칼슨의 생각과 유사하다. 리처드 칼슨에 의하면 부정적인 감정은 바람 부는 하늘에 떠도는 구름 같은 것에 불과하며, 그냥 내버려두면 곧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그러므로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 잠식할 때 우리는 감정과 상대하여 유리하고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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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44<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제17장에서 “百姓皆謂我自然”의 자연은 ‘自己如此’ 즉 외부의 작용이 없는 자발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통치자와 백성들 간의 관계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통치자가 백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백성들이 제멋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는 것은 아니다. 통치자의 작용이 직접적으로 백성들에게 부담을 느낄 만큼 강력하게 발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의한다. 통치자의 작용이 은근하고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삶에 스며들어 백성들이 현실생활에 안락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 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 我自然  (노자 17장)

제23장에서 “希言自然”의 문자적인 의미는 ‘말을 적게 한다’의 뜻으로 ‘不言’이나 ‘行不言之敎’(제2장)와 같은 뜻이다. 이러한 ‘희언’은 자연에 부합하는 것이며 ‘多言數窮’(재5장)과 대비된다. ‘다언’은 정책이나 법령이 많고 가혹함을 가리키며 자연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정치적 이상을 ‘희언’으로 제시하여 통치자의 관리방식이 자연에 따르는 무위정치가 될 수 있기를 호소했다.
제25장에서 도가 저절로 그러함을 본받는 “도법자연”은 도와 천지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도는 만물의 근거이고, 자연은 이러한 근거(도)가 나타내는 원칙이다. 도의 본성이 자연이다. 그러므로 도의 본성을 내재한 인간과 천지는 당연히 자연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희언자연, 고표풍불종조, 취우불종일.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失亦樂得之.信不足焉, 有不信焉.
실역락득지.신부족언, 유불신언.(노자 23장)

제51장에서 “莫之命而常自然”의 ‘自然’은 ‘본래여차’와 ‘통상여차’ 즉 자연은 원래의 상태가 평온하게 지속되며 갑작스럽게 변화하지 않는 ‘언제나 그러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도와 개별 사물의 밀접한 관련성을 살펴볼 수 있다. 즉 개별 사물의 생장과정에 자발적인 자연성을 따를 수 있는 형이상학적 근거(道)를 제시하고 있다. 만물이 도에서 생겨났고, 도를 내재한 만물은 각자의 본성에 따라 독특한 존재로 자신을 스스로 키운다. 노자는 도와 덕이 존귀한 이유를 각 사물이 스스로 존재를 형성(성장)하도록 간섭하지 않고 내맡기는 데 있다고 하였다. 도와 덕의 존귀함은 자신을 내세우고 능력을 과시함으로 다른 존재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와 덕의 존귀함은 바로 자연 무위한 태도로 인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存道而貴德.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 막부존도이귀덕.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고도생지, 덕축지, 장지육지, 정지독지, 양지복지.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원덕.(노자 51장)

제64장에서 “만물이 스스로 그러함을 돕는다.”(輔萬物之自然)의 ‘자연’은 ‘세당여차’ 즉 자연의 상태는 사물 내부의 발전 추세를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강제적인 간섭과 파괴가 없다면 사물은 대체로 원래의 추세에 따라 변화하므로 사물의 추세는 예상 가능하다. 성인은 ‘만물의 저절로 그러함’의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거울삼아 모든 일을 자연의 섭리에 맡길 줄 아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저절로 그러함’에 부합되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만물은 인위적인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포之木, 生於毫末,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합포지목, 생어호말,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구층지대, 기어누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 무위고무패.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則無敗事.
무집고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칙무패사.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시이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노자 64장)

위에서 살펴본 ‘자연’에서 ‘자기여차’는 사물의 내재적인 동력과 발전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본래여차’는 원초적인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통상여차’는 현재 상태의 지속을 강조한 것이며, ‘세당여차’는 미래의 추세를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자연은 자발성, 원초성, 연속성, 예측가능성의 의미를 포괄하고 이것은 동력의 내재성과 발전의 안정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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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41<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자애’는 폭력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부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사람은 서로 다투지 않기 위해서 우선 마음에 자애가 있어야 한다. 사람과 국가 사이에 자애가 없으면 무자비한 전쟁이나 폭력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용기는 자애에서 나올 수 있다. 자애가 결핍된 용기는 거친 만용으로 신중하지 않은 행동을 발산할 수 있다. 검소함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견실하게 해줄 ‘베풀 거리’를 마련하여 베풀어야 할 때 ‘베푸는 것’이다. 검소하지 않으면서 축적하는 것은 단지 소유의 욕심이다. 경망스럽게 사람들을 앞서려고 하지 않는 겸손함은 중후한 어른의 모습이다.

“唯後外其身, 爲物所歸, 然後乃能立成器爲天下利, 爲物之長也.”(왕필노자주 중에서)

셋째, ‘不有, 不恃, 不宰’의 덕은 무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노자는 만물과 함께 자애롭고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不有’(소유하지 않음)᛫ ‘不恃’(자랑하지 않음)᛫ ‘不宰’(주재하지 않음) 등 겸손의 덕을 강조했다.

만물을 낳고 만물을 번식하게 하고, 생기게 하면서도 소유하지 않고, 키워주면서도 그 보답을 바라지 않고, 이끌지만 주재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가장 심오한 덕이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재영백포일  능무이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위호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지호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생지축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불재  시위현덕(노자 10장)
가장 심오한 덕(玄德)은 도의 무위를 따르는 행위를 의미한다. 후왕의 현덕은 ‘불유’, ‘불시’, ‘불재’를 실행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덕이다. 후왕의 현덕은 백성들에게 도움을 베풀면서도 모든 은총을 자연으로 돌리는 무위를 행하는 덕이다. ‘불유’, ‘불시’, 불재’에서 모두 사물의 성장과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도의 창조능력과 현덕을 알 수 있게 한다. 도의 무위는 모든 사물에게 각 사물의 본성에 따라 독특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사물의 자발성에 내어맡기는 현덕이다. 노자는 ‘불유’, ‘불시’, ‘불재’의 겸손의 덕을 실행하려면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存道而貴德.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 막부존도이귀덕.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고도생지, 덕축지, 장지육지, 정지독지, 양지복지.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원덕. (노자 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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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40<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다툼에는 자신의 우월감을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러한 우월감은 다른 사람들과 대립하고 투쟁하게 한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갖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빈궁해진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과 대비된다.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有餘者損之,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인지도칙불연, 손부족이봉유여, 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노자 77장)

노자는 “남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자연(도)의 규칙을 말했다. 이러한 자연의 도를 사람들의 삶에 적용하면 사람들끼리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有와 無는 서로 생겨나게 하고,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은 서로 이루어지게 한다.”고 말하며, 모든 사물들은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서로 생성하고,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長短相較 高下相傾
장단상교 고하상경

音聲相和 前後相隨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만물작언이불사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노자 2장)

노자는 “천하를 신기”(天下神器)로 보고, 마음대로 소유하고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인생은 물질이나 권력으로 채워질 수 없는 귀한 것들이 있다. 즉 우리 안에 무한히 잠재되어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무한히 잠재되어 있는 것을 키워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명을 넓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치 있게 산다는 것은 주변의 생물체들과 생명(생기)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로 채우고, 생명으로 채우는 삶이다. 노자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모든 존재자들이 소중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 ‘현동’에 이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을 싫어한다. 강한 주장은 이기심의 발로이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노자는 사납고 포악한 사람은 제명에 죽지 못한다고 했으며 이러한 자연의 경계를 우리가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道의 겸손함을 체득하여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三寶’의 덕은 ‘자애’와 ‘검소’와 ‘겸손함’이며, 이 세 가지는 아주 귀한 덕이기 때문에 노자는 ‘삼보’라고 했다.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에 자애(慈)이 있어야 한다. 자애로움은 노자의 三寶 중에 하나이다.『노자』제67장에서 제시한 三寶의 내용은 무위를 나타낸다.

나에게 세 가지 보물이 있어 그것을 간직하고 보존하고 있다. 첫째는 자애이며, 둘째는 아낌(검소)이며, 셋째는 감히 천하 사람들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아끼기 때문에 크고 넓어질 수 있고, 천하 사람들보다 앞서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만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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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7<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노자 40장 중에서)

“천하의  온갖 사물과 사건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이것은 “이름 붙일 수없는 것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에서 볼 수 있듯이, 도는 잠재력을 갖춘 무형질(無刑質)에서 형질을 갖춘 만물로 구체화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노자 1장)

노자에 의하면 사물은 모두 상반 상성작용에 의해 형성된다. 사물의 움직임과 변화에는 反의 법칙이 있으며 움직임과 변화의 귀결점은 원래의 상태로 복귀하는 규칙성을 나타낸다. 만물의 규칙성은 무에 근거를 둔다. 만물의 규칙성을 이루는 무는 관통성을 지니고 있다. 왕필은 “움직임의 근본이 무에 있는 것을 알면 사물은 포용하면서 통할 수 있다. “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면'(無) 어느 누구도 길이 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有)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렵다. ” 고 하였다. 탐욕과 의도된 목적으로 허위와 인위가 난무한 세상에서 무지 무욕으로 마음을 비우면 도 (무)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이러한 무의 통성은 무의 ‘비어있음(虛性)’의 쓰임의 역할을 말해준다. 노자는 허성의 쓰임을  풀무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즉 “하늘과 땅 사이가 어찌 풀무와 같지 않은가? 텅 비어 있지만 다함이 없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치지 않는다.” 천지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모이지만 수레바퀴통 중간이 비어 있어야 수레로서 쓰임이 있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노자 5장)

수레는 바퀴통 중간에 수레의 축이 비어 있는 곳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무는 유를 움직이는 것을 함의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무성은 근원성, 규칙성, 관통성, 허성으로 만물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준다. 무성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무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자연의 균형을 이루게 해준다. 노자는 이러한 무의 움직임을 본 받아 인간이 자연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무가 바로’무의’의 속성이다. “노자”에서 무위는 정치 활동과 인간 행위의 실천 원칙이다. “노자에서 ‘무위’가 언급되는 열 개의 장 가운데 아홉 개의 장은 성인과 무위 정치와 관련되어 있고 사회의 이상적인 관리방식에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무위가 성인만을 위한 행위의 원칙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무위는 도를 체득하는 ‘爲道’ 의 길이다. ‘위학’은 세속적인 분별지와 사회제도 그리고 예악 등을 삶의 방편으로 쌓아가는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위학’은 지모와 기교에 얽혀 마음의 혼란을 가중시키므로 ‘위학’으로 부터 벗어나 본래의 자연성을 찾고 깨달을 수 있는 ‘위도’의 길로 나아가면 마음을 맑고 고요한 (虛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도의 무위는 형질이 없어 어느 곳이나 들어가서 적응할 뿐만아니라 유익한 작용을 한다. 강한 것을 부드럽게 해 주고 사회적인 충돌상태로 인한 갈등을 해소시켜준다.

무위의 목적은 자연의 질서를 사회에 적용시켜 갈등과 화해와 조화로 바꾸는 데 있다. 그러므로 삶에 있어 실패하거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을 미연에 예방하는 것도 무위의 지혜이다. 일이 시작될 때부터 성실과 진실로 일관하여 禍를 예방하고, 일의 과정마다 자연에 위배되는 인위적인 것이 있는지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다. 즉 무위는 그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무위를 실천하고, 요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을 하며, 청정 담백하고 맛이 없는 것으로 말을 삼는다. 큰 것은 작은 것에서 생겨나고, 많은 것은 적은 것에서 일어나며,(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노자 63장)

** 현 한국이나 미국등 세계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탐욕을 가지면 서른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맛물려 잘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됨을 보여준다. 즉 가운데가 그들의 탐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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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6<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무위(無爲)에 따르는 삶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위는 사람들에게 인위. 작위적 비 본연의 삶의 구속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뿐만아니라, 꾸밈없는 소박한 도를 닮아가는 진실한 행위로 삶을 형성하게 된다. 만물이 스스로 생성하여 각각의 고유한 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도의 ‘무불위’ 작용에 의해서이다. 즉 도는 무위자연의 방식으로 만물이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변화하게 한다.

“노자”에서 무위는 도의 속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직.간접으로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무위는 도의 운동방식이며,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움을 나타낸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무욕(無欲)’, ‘무쟁(無爭)’, ‘무사(無事)’,’불거공(不居功)’, ‘불특강(不特强)’, ‘불상무(不尙武)’, 불현요(不炫燿)’ 등 과 같이 일련의 반세속. 반관례적인 방법과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무위는 자연과의 조화를 의미한다면, 인위는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위해 상황에 맞추어 유리하게 꾸미는 것을 말한다. “노자”에서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태도를 통하여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인위를 살펴볼  수 있다. 노자는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통치자가 지모를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다. “고 말했다.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지다,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고이지치국, 국지적, 불이지치국, 국지복,
知此兩者亦稽式, 常知稽式, 是謂元德,
지차양자역계식, 상지계식, 시위원덕,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원덕심의원의, 여물반의, 연후내지대순 (노자 65장)

‘인위’는 다스리는 사람이 백성들에게 술수를 써서 착취하거나 억압하는 등 함부로 행하여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통치를 하는 것이다. 통치자의 다스림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노자는 “꾀(才智)를 써서 나라를 다스리는것은 나라의 재화라고 했다. 즉 통치자가 ‘꾀(인위)’로서 다스리면 백성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지다(智多)는 잔꾀와 속임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위의 두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인위는 또 다른 인위를 낳는다. 통치자의 인위는 백성들에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꾀를 강구하게 하여 본연의 순박성은 점점 세속화되면서 인성과 사회분위기는 도에서 멀어지게 된다. 통치자는 백성들의 잔꾀로 인해 더욱 강압적인 제도를 만들어 명령하고 백성들은 통치자를 불신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는 인간 소외현상이 나타난다. 인위는 곧 인간의 마음을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도는 “무위하지만 그에 의하여 되지 않는 것이 없다” 고 했듯이, 도의 무위는 도 본연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무위가 오묘한 작용과 무한한 힘을 갖는 것은 도의 근원성에 있다. 즉 “천하의 온갖 사물과 사건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반자, 도지동, 약자, 도지용.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노자 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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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5<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무위(無爲)에 따르는 삶

노자는 인간의 고통이 자연을 대상화시켜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는 탐욕과 이러한 탐욕을 보다 적중하게 추구하기 위해 지모(智謀)를 쓰는 지적인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탐욕과 지모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회를 질서지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는 오히려 사람들의 교활한 수법을 더욱 가중시켜놓았다고 보았다. 노자는 탐욕, 지모, 제도 등 인위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무위를 제시했다. 무위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인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천 원칙이다.

“노자”에서 무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위는 인위의 반대, 부정이다. 즉 인위가 없는 자연의 상태를 말한다. 무위의 반대되는 인위란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있는 것’을 ‘그 자체로 놔두지 않고’ ‘꾸미고 가미한 것’을 말한다. 자연적인 것을 부자연스럽게 해 놓은 것을 말한다. 무위가 자연스러운 행위인 반면, 인위는 부자유스러운 행위이다. 유가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이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유가는 인의예지의 행동 규범을 제정하여 인간에게 그것에 따르도록 요구한다. 노자는 이러한 제도적인 조건에 인간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으로서 무위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노자는 인간을 자연적 존재로 보았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무위자연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자연을 욕망을 채우기위한 수단으로 보고, 끊임없이 자연을 대상화 시킨다. 인간의 문화적 생활과 지식추구 그리고 사물의 대상화는 인위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보다 편리한 문화생활을 위하여 자연물을 인간의 편의에 알맞게 대상화시킨다. 인간의 의도적인 활동으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다. 인간의 의도적이며 인위적인 활동에는 필수적으로 지적인 활동이 따른다. 전문적인 지식은 자연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욱 세분화되어 간다.

노자는 도(자연)의 무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조작하는 인위를 경계시켰다.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으로 가장 단단한 것을 뚫고 드나들며, 무형의 힘은 틈이 없는 것을 뚫을 수 있으니, 나는 이 때문에 무위의 유익한 점을 안다.” 고 말했다.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無間.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 무유입무간.
吾是以知無爲之有益.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오시이지무위지유익. 불언지교, 무위지익, 천하희급지.(노자 43장)

물의 유연함은 도의 무위를 가리키고, 단단한 것은 인위를 가리킨다. 인위적인 일들은 대개 탐욕에 의해 시작된다. 노자는 사람들에게 물질이나 명예를 과도하게 추구하면, 이기적인 탐심이 극도에 달해 다른 사람들의 원망을 사게 되어 사람도 물질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持而盈之,不如其已,揣而銳之,不可長保,金玉滿堂,莫之能守,富貴而驕,自遺其咎,功成名,遂身退,天之道.(노자 9장)

**편집자 주: 세상에 태어나 공명을 얻으면 자신이 가진 지위나 권력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려는 마음과 자세가 곧 하늘의 도를 따르는 순리인 것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노자의 이런 철학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자족” 하는 마음을 갖고 탐심을 버려 조그만 것에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면 살아가는데 무리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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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4<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그리스 산토리니 오이아에서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예리한 것을 무디게 하고, 그의 얽힌 것을 풀어내며, 그의 빛을 함축하고, 그가 몸 담고 있는 속세와  어울리면 이를 현동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다면 친할 것(가까이 할 것)도 소원할 것(소외시킬 것)도 없고, 이롭게 할 것도 해롭게 할 것도 없으며, 귀할 것도 없고, 천할 것도 없으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하게 된다.

마음의 날카로움과 얽힘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을 유발하여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가 만물의 근원인 도를 체득하려면 우선 자기 마음의 날카로움과 얽힘의 원인을 자각하고 해결해야 한다. 도의 체득은 우선 개인의 수양을 통해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른 사람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범위로 확대될 수 있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자손이제사불철,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수지어신, 기덕내진, 수지어가, 기덕내여, 수지어향, 기덕내장,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수지어국, 기덕내풍,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오하이지천하연재, 이차.(노자 49장)

우리가 마음의 날카로움을 둥글게 다듬고, 얽힘(분쟁)을 차분하게 해결하여 편협한 인간관계의 제한을 뛰어넘을 때 현명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현명에 도달한 현덕을 갖춘 사람은 현동 즉 도의 최고 경지에 이르게 된다. 성인이 모든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해주는 후덕한 포용력은 ‘현동과 同其塵’ 관계의 의미를 잘 나타내준다. 현동은 모든 사람과 사물을 친함과 소원함, 이로움과 해로움, 귀한 것과 천한 것으로 구분하지 않고 현묘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 모든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수용하고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도를 지닌 사람(성인)이 만물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며, 사물을 사물답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27장)

 현덕을 갖춘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인품(빛)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그 光(눈부심)을 조화시킨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노자 58장)

그 光(눈부심)을 조화시킨다(和其光)’에서 알 수 있듯이 明은 光과는 다른 차원의 지혜이다. 明은 ‘지혜로울지라도 남에게 눈부시게 비추지 않는다,’ 즉 도를 깨우친 사람은 자신의 고결한 인품 (빛)을 사람과 사물에게 부드럽게 내비치면서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며 조화롭게 상생한다. 노자는 도를 지닌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하였다.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집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낙여이, 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노자 35장)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는 평온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안과 행복을 주는 것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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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2<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道家 에서는 내 마음이 외적인 것에 얽매여 ‘내 마음 안에 내 마음을’ 둘 곳이 없는 속박되어 있는 마음을 안정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인간의 문제를 해결 하려고 했다. 마음이 복잡하면 어떠한 것도 마음에 담을 수도 없고, 감흥도 없다. 눈 앞에 눈 덮인 히말라야의 멋진 광경도 그저 생명감이 없는 단순한 산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이 고요해야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마음에 우주가 담긴다.

虛靜은 노장과 순자의 수양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다. 장자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無有相害之心( 서로를 해치려는 마음 따위는 지니지 않고 있었다.),  機心, 日以心鬪,滑心 이라고 했다.  장자에 의하면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모습은 주관적인 판단으로 외적사물에 집착하게되고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다투는 과정속에서 마음은 근심으로 불안정하게 된다. “장자” 에서 본심, 허심, 무심, 성인지심 은 인간이 본받아야 할 道心이다.  장자는 마음 회복을 위해 心齋,坐忘 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장자는 心齋,坐忘의 수양을 통하여 도와 합일하는 경지에 이른다고 보았다.

모종삼은 “순자”虛壹而靜”은 도가에 근거해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의 인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늘 외물에 의해 쉽게 흔들리는 불안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외물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안전성을 확보해야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성인은 마음이 大淸明의 상태에 도달한 사람이다. 대청명이란 마음이 외물에 가로막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도의 체득을 위한 수양방법으로 허일이정을 강조했다. 인간은 마음에 가려진 것으로 부터 벗어나야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순자에 의하면 우리들의 마음에는 삶의 체험, 기억, 지식 등 여러가지가 쌓여있다.이러한 것들은 삶의 현장에서 문제에 봉착했을때 기존의 생각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새로운 사실이나 지식을 제대로 인식하고 수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순자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虛이다.

살아가면서 쌓이게 되는 성은 蔵 은 虛를 통해 조절된다. 순자는 마음에 담겨진 기존의 기억, 생각, 지식등을 간직하면서도 현재 생활 속에서 새롭게 받아들인 것을 마음에서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이것을 ‘壹’로 설명하고 있다.

순자에 의하면 마음이 다양하게 받아들인 인식을 구별하면서도 그것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효과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순자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인식을 壹로 묶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靜’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된 앎에 방해가 되는 망상이나 잡념을 비우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 ‘靜’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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