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71<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쉐난도아 국립공원 등산로)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제1장의 “常無欲, 以觀其妙”와 “常有欲, 以觀其徼”를 인간의 마음에 비유하면, ‘妙’는 인간이 이상적으로 추구해야 할 도를 닮은 자연성이며, ‘徼’는 인간의 왜곡된 상이다. ‘상유욕’하는 인간은 탐욕과 분별지에 의해 ‘요’를 바라보면서(觀), ‘요’에 집착하고 탐닉하게 되면, 도가 자기를 나타내는 和‧常‧名‧柔弱의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은 탐욕으로 왜곡된 상에 잡혀 있을 때 고통이 따른다. 즉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마음치유는 근본적으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지키는 데 있다. 마음치유는 외면적인 삶에 몰두하면서 살아왔던 고착된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날 때 가능하게 된다. 인간이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늘 자기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남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명확히 안다고 할 수 없다. 나 자신의 성격, 취미, 재능, 능력 등 내면적인 것을 비롯하여 인간관계와 환경적응력 등을 면밀히 검토했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헤아리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 수양을 통해 ‘묘’와 ‘요’의 대립해소를 지향하여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묘’는 현상계의 외부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내재해 있는 바람직한 우리 본연의 모습이다. ‘묘’를 향하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우리 본연의 자연성에 이르는 과정’이다.

『노자』제1장에서 제81장에 이르기까지 존재론, 인생론, 정치론의 모든 내용은 인간의 삶의 의미와 연관된 것이다. 노자는 우리 자신의 왜곡된 생각과 인위적인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 무위의 삶을 살라고 권고한다. 인간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곧 마음(정신)이다. 인간의 마음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기 때문에, 마음을 잃으면 곧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다. 오늘날 왕따, 실업, 갑을관계, 가정폭력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의 아픈 과거사, 가족 간의 갈등, 직장 내의 상관과의 갈등과 동료 간의 문제 등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행복은 나 자신만 행복하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불안하면 그 여파가 우리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노자』에는 도를 체득한 사람들의 수양의 공효가 각 사람의 차원을 넘어 가정, 사회, 정치적인 차원으로 확대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노자는 도와 같은 무심, 허심으로 생활하면 인간의 덕이 진실하고, 여유롭고 풍성하고 널리 퍼져 그 은택이 공동체에 두루 미친다고 하였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낌과 관심받기를 원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의 불행한 삶, 불합리한 삶, 무시 받는 삶속에서 우리가 희망하는 행복한 삶, 바람직한 삶, 존경받는 삶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실의 삶과 앞으로 다가올 희망하는 삶의 엄청난 간극에서 거리를 좁히는 대립의 해소가 우리의 지향점이다. 어쩌면 우리가 희망하는 행복한 삶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한 삶,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삶은 끊임없이 완숙한 단계를 이루는 과정에 있다. 참다운 인생이란 결코 삶의 완숙된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에 있다고 생각한다. 본 논문「노자의 ‘無爲 自然的’ 마음치유 연구」가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미약하나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1년이 넘는 동안 윤금자 박사(강원대, 철학과 교수)님의 노자 강의를 코리일보에 연재를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윤박사님의 노자 강의에 열심으로 성원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또한 윤금자 박사님께서 흔쾌히 자신의 논문을 이 지면을 통해 실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 마음에 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1년 동안 즐거운 동행이었습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호흡하며 길을 같이 가는 좋은 길 동무였습니다. 그 옛날의 노자도 그랬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제자들과 함께 동행했던 그 길, 우리도 지난 1년동안 함께 걸어 왔습니다.

다시한번 윤박사님과 코리일보 애독자님들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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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70<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그리스에서)

<Korea: Prof. Yoon, Geum Ja>

오늘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과도한 업무와 직장 상사나 동료 간의 불화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마음과 몸이 편안한 날이 없을 정도로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고통을 해결하고,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 삶의 과정에서 불안, 근심, 고통으로 마음의 병은 늘 따르게 마련이고, 마음의 병은 총체적으로 완전히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의 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우리의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마음의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마음의 병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잘사는 사람의 기준을 재산, 명예, 권력, 미모, 능력 등 대부분 외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인격의 품위가 물질과 권력 같은 외적인 것으로 결정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보다 높게 평가받기 위해 물질과 권력 같은 외적인 조건에 매여 살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며 마음의 고통은 극에 달하고 있다. 물질이나 권력 등 외적인 조건이 인간의 행복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는 증거이다. 삶이 물질의 풍요와 과도한 소비 그리고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가운데 불안하고 허전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은 물질을 추구하면서 힘겨운 피로감과 물질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증 그리고 경쟁하면서 야기된 인간관계의 위기 등으로 가치관의 혼란과 정신적 위기에 봉착하면서 삶의 허무감과 회의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물질이나 권력 등을 어느 정도 충족했을지라도 자기다운 삶의 값진 의미를 채우지 못했을 때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내적 공허감에 휩싸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능력이 희박하다. 자율성의 결핍은 다른 사람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쉽게 물들고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존재의미와 삶의 의미를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내맡기는 사람들은 외부자극에 쉽게 흔들리게 된다. 즉 자신의 삶의 확고한 신념이 없기 때문에 존재감도 희박하다. 자살이나 마약중독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병약한 감정에서 기인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인 공허감과 우울증으로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간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사람의 외적인 조건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치를 중시하는 풍조를 조성시켜 사람들에게 근원적인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 노자는 우리에게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하다’고 권고했다. 고요함(靜)은 마음을 비우고 본연의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불안에 직면해서 마음을 안으로 모으고 세심하게 자신을 반성하여 자신의 불안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통찰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세상을 원망하고 탓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안의 원인은 외적인 요인보다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내적인 요인에 있다. 불안의 원인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여 대립시키는 데 있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의 불행은 본연의 자연성으로부터 벗어날 때 시작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감각작용에 의해 외부사물에 이끌리고 집착하게 되어 마음에는 온갖 탐욕으로 채워지게 되면서 본연의 자연성은 혼탁해진다. 혼탁해진 마음은 사물을 있는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왜곡된 상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왜곡된 생각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며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없게 한다.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재물과 명예를 소유하지 못해 불행하고 삶의 가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우울증과 좌절감 그리고 신경쇠약 등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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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9<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Thousand Islands in Canada)

<Korea: Prof. Yoon, Geum Ja>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노자 58장)

『노자』제58장에는 노자의 변증법의 일종인 ‘正反相依’를 살필 수 있다. “災禍여, 복이 그 안에 기대어 있으며, 복이여, 화가 그 속에 숨어있다. 누가 그 궁극을 알겠는가? 정해진 표준이 없는 것인가?” 세상의 이치는 한쪽으로만 지속되지 않는다. 불행한 일이 생기면 어느 시기가 되면 행복한 일이 생기는 것이 인생사이다. 그러므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행태에 화가 난다고 그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순간의 감정으로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 더욱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노자는 “정상적인 것이 다시(변하여) 기이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다시(변하여) 요사스러운 것이 된다. 사람의 미혹됨이 이미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正反互轉’이란 정과 반이 서로 바뀐다는 뜻으로, ‘정반상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시공간적 상황에 따라 어려운 시련이 안정된 삶의 지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당하는 수모와 고통을 원망과 불만으로만 여기지 말고, 인격을 단련하는 계기로 삼아 차분하게 본연의 자연성을 유지하여 자아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코헨은 자아의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자아 가치는 성공이나 실패, 또는 다른 사람의 승인이나 거부 등에 따라 변하는 요소가 아니라 조건 없이 귀하다.” (엘리엇 D.코헨 지음, 전행선 옮김,『지금 나는 고민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서울 : 비전비엔피‧애플북스, 2012, 148쪽.)

노자는 이상적인 인격자의 품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인은 반듯하되 사람을 자르지 않고, 예리하되,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고, 솔직하되 멋대로 하지 않으며, 빛이 나되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본연의 자연성을 잘 지켜나가면서 남의 잘못된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과 인품을 알아달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무위의 정신이다. ‘정반호전’은 무위자연의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한 노자 특유의 변증법이다. ‘정반호전’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차분히 바라보며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는 지혜를 주며, 도(자연)를 따르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 노자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물질이나 명예가 아니라 본연의 자연성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자연성이 갑질하는 사람들로 인해 상실된다면 곧 우리의 존재감이 상실되는 것이다. 우리가 초연하게 도(자연)를 따르면 갑질하는 사람으로 인해 우리의 자연성이 손상되지 않게 마음을 지킬 수 있다.

노자가 “굽히면 오히려 온전할 수 있고, 구부리면 오히려 펼 수 있다”고 말한 이 문장은 자연 섭리의 교훈을 살필 수 있으며, 갑과 을의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무위자연의 이치이다. ‘曲則全’은 구부러짐과 온전함이 함께 있다는 ‘抱一’의 의미, 즉 不一而不二하게 서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인생의 교훈으로 적용해 보면, 갑과 을의 관계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입장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의 입장은 그르다고 비판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갑과 을의 갈등은 다툼으로 이어지게 된다. 갑과 을의 관계가 서로 다툼으로 이어지면 양자모두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자는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 결과 모두 정신적, 물질적으로 큰 피해와 상처를 입는다. 그러므로 서로 자기의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상대의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면서 객관화하여 바라볼 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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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8<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괌의 해변가)

<Korea: Prof. Yoon, Geum Ja>

인간은 누구나 자존감이 있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인간은 자존감을 부당하게 손상시킨 사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시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갑질하는 사람들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는 물질이나 지위가 아니라 인간적인 인품을 보여주는 행동을 해야 한다.『노자』제66장에는 성인의 인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 고능위백곡왕,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시이욕상민, 필이언하지, 욕선민, 필이신후지,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시이성인처상이민부중, 처전이민불해,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시이천하낙추이불염, 이기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노자 66장)

성인이 백성의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언행을 일치하여 그들에게 겸허하게 낮추어야 하고, 백성의 좋은 본보기가 되려면, 자기 자신을 그들보다 뒤에 있게 한다. 그래서 성인은 윗자리에 있어도 백성들이 힘들어하지 않으며, 앞에 있어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그를 추대하며 싫어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오늘날 위세 부리는 갑질하는 사람들이 배우고 따라야 할 적절한 내용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이익을 부당하게 갈취한다면 모두 그를 싫어할 것이다. 인간에게 갑과 을의 관계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의 경우 집에서는 부모 또는 가장으로서 갑의 위치가 되고, 선거 때가 되면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에게 투표하는 일반사람들은 갑의 위치가 된다.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갑질하는 사람으로 인해 모욕감과 자존감 상실로 불만을 품고만 있으면 마음의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동료들과 함께 公憤을 터뜨릴 수 있지만, 가족의 경제생활을 영위해야 하기 때문에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갑질의 무자비한 혐오적인 태도나 언어의 폭력성에 대한 울분을 제어하고 마음치유하기 위해서는 노자의 무위로 마음을 가다듬고 본연의 자연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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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7<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하와이에서)

<Korea: Prof. Yoon, Geum Ja>

무위는 자애롭고 부드러운 도이다. 가정이나 기관에서 비행청소년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강압적으로 고치려고 체벌이나 훈계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아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우선 교사나 부모는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게 하여 그들의 마음에 문제점을 관찰하고, 그들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배려하여 공감적 응답으로 다가가야 한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차별하지 않는 자애로움이 있어야 한다. 차별하지 않는 자애로움이 곧 무위이다. 노자가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는가?”라고 물었듯이, 도의 자애로움은 사람들을 누구나 품어주고 아껴준다는 것을 함의한다.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도자, 만물지오,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美言可以市尊, 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미언가이시존, 행가이가인, 인지불선, 하기지유,
故立天下,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고립천하, 치삼공,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왈이구득, 유죄이면사, 고위천하귀.(노자 62장)

마음치유는 이론적‧ 분석적 일반학설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할 때 치유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즉 사람들마다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마음의 병을 일반화시켜서 치유할 수 없다. 마음치유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과정에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뚫고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은 도의 자애로움으로 폭력적인 사람의 마음에 감화를 주어, 그들이 자신의 자연성을 차츰 되찾을 수 있게 해주는 자애로움의 힘이다. 노자는 “도를 지닌 사람(성인)은 언제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어서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고 하였다. 無常心이란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마음이다. 청소년 문제는 너의 자식, 남의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식, 나의 자식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청소년들을 품어주고 공감해주는 정성어린 관계 속에서 감동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흡흡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노자 49장)

무위와 甲乙관계 치유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는 갑을관계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갑을관계의 말 속에서는 갑의 횡포와 부당한 처세 그리고 을의 고통과 설움이 함축되어 있다. 갑과 을의 상하관계는 인간을 인간 그 자체의 인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지위 그리고 권력 구조 속에서 인간을 평가하고 대우하는 물질만능주의, 권력 만능주의가 빚어낸 산물이다.

성인이 말했다. “내가 무위하면, 백성들은 자연이(저절로) 잘되며, 내가 고요한 것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자연이 바르게 되며, 내가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연히 풍족해지며, 내가 탐욕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순박해진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오하이지기연재, 이차,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민다리기, 국가자혼,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인다기교, 기물자기, 법령자창, 도적다유,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 (노자 57장)

위의 문장은 자기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甲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각성시킬 수 있는 무위자연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 내용이다. 甲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乙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교만과 허세를 부리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은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고 분노와 적개심을 품게 된다. 갑의 위치에서 소위 ‘갑질’하는 사람은 물질과 지위를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고 한다. 그에게 존재의 가치는 곧 물질과 지위이다. 물질과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은 갑의 위치에서 볼 때 존재의 가치조차 없기에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자의 무위사상으로 볼 때 이러한 갑질하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할 인품의 빈곤함만을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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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6<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의양만물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만물귀언이불위주, 가명위대. 이기종불자위대, 고능성기대.(노자 34장)

노자는 ‘자애로움으로 싸우면 이긴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공감적 응답, 즉 자애로움으로 대해주면 사람들은 그 자애로움에 감화를 받고 온전히 자애로움에 자신의 존재를 내어맡긴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자애롭지 않고 용감하다는 것은 냉혹한 폭력일 뿐이다. 자애롭다는 것은 분별심이 없는 무차별적인 사랑이다. 애증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 그 자체이다. 노자는 ‘아끼기 때문에 크고 넓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소유의 욕심을 버리고 절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늘날 재산이 많다고 고액의 물건을 사들이며 호화스럽게 사는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내용이 된다. 노자는 ‘천하 사람들 앞에 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겸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겸손한 사람은 “공이 이루어져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지 않고, 바로 그가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공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자는 ‘자애로움’, ‘검소(아낌)’, ‘앞서려고 하지 않음’을 바로 도와 덕의 성품으로써 우리 인간이 본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노자는 이 세 가지를 본받지 않으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했고, 자애로움이 우리를 참다운 삶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였다.

무위와 청소년 문제 치유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포之木, 生於毫末,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합포지목, 생어호말,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구층지대, 기어누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 무위고무패.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則無敗事.
무집고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칙무패사.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시이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노자 64장)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 우울증, 비행청소년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노자의 무위사상은 마음치유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위는 부드럽고 유연한 도이다. 무위의 덕으로 마음을 보듬어주면, 난폭하고 왜곡된 사람도 감화되어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들 마음에 굳혀진 부정적인 생각에 무위의 덕이 스며들어가면서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우리사회는 물질, 명예, 지식, 인맥 등과 같은 든든한 배경을 지닌 사람을 우대하는 풍조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풍조는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와 가정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노자가 도의 성품을 지닌 사람은 “만물의 자연스러운 성품을 돕지만 감히 작위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부모는 자식의 본연의 성품을 헤아려서 자식의 존재의 고유성을 잘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어떤 부모는 자신의 욕심으로 자식을 키운다. 즉 사회적으로 출세할 수 있도록 공부를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식을 내세워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무위로서 자연스럽게 자식을 키우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욕심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자식은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식은 자존감의 상실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감을 피어내지 못하고 억지로 부모에게 맞추려다 보니 자기다움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학교와 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비행청소년 문제는 심각하다. 그들 가운데는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이어서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불만과 폭력성을 치유해줄 문제가 시급한 사회적인 현안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비행청소년 문제는 그들의 심적 불만과 외적 폭력성의 원인을 세심하게 검토하여 다각도로 해결해야 한다. 노자는 “하늘이 누구를 구하려고 하면, 곧 자애로움으로 그를 보호한다”고 했다. 청소년 문제는 강한 체벌이나 격리 수용소에 가두어 놓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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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5<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천하개위아도대, 사불초, 부유대, 고사불초, 약초구의, 기세야부,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아유삼보, 지이보지,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 고능성기장,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금사자차용, 사검차광, 사후차선, 사의,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부자이전즉승, 이수즉고, 천장구지, 이자위지.(노자 67장)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지키고 보존하고 있다.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아낌이고, 셋째는 감히 천하에 다른 사람의 앞에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떳떳함)할 수 있고 아끼기 때문에 크고 넓어질 수 있고, 천하 사람들의 앞에 있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만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지금 자애로움을 버리고 용감함을 구하거나, 아낌을 버리고 넓어짐을 구하거나, 물러나 양보함을 버리고 앞서려고 하는 것은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다. 자애로움이란 그것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고, 그것으로 지키면 공고해질 수 있다. 하늘이 누구를 구하려고 하면, 곧 자애로움으로 그를 보호한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 27장)

인생의 행복은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이해와 공감은 곧 자애로움이다.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상공은 자애로움에 대해 “백성을 갓난아이처럼 아껴주는 것이다”고 말했듯이, 자애로움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느껴주는 것’이다. ‘느껴주는 것’은 상대방을 ‘아껴주며’,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이다. 노자는 “성인은 언제나 사람들을 잘 구원해주고,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자연(도)에 순응하여 모든 사람을 포용해주는 자애로움이다. 자연은 좋은 것, 좋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좋은 것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노자의 자연의 도는 곧 무위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리는 것이다. 자연의 특성은 좋지 않은 것을 품고 정화시키는 작용을 하듯이, 자애로움은 인간의 좋지 않은 품성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은근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늘 상대해야 할 가족이나 직장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정서적으로 맞지 않거나 성격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노자의 검소함은 ‘嗇’과 비슷한 의미이다. 물질이 많다고 자랑하고 사치스럽게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재산이 많다고 물질로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이다. 인품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많은 재물로 인해 정신적인 손상을 입지 않는다. 재물로 위세를 과시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재물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재물로 위세를 과시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노자는 도와 덕의 성품을 지닌 “가장 선한 사람은 마치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였다. 즉 겸손하게 남들을 돕지만 앞으로 나서서 자랑하지 않는 허심의 성품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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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4<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Korea: Prof. Yoon, Geum Ja>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이조복,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조복, 위지중적덕, 중적덕, 즉무불극,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무불극, 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저, 長生久視之道.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노자 59장)

노자는 몸과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정신과 기력을 아껴() 덕을 쌓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嗇’은 ‘아끼다’, ‘소중히 여기다’, ‘쌓다’, ‘거두다’, ‘적은 듯하다’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아낌)의 대상은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역량 모두 속한다. 특히 노자는 정신(마음)에 더욱 비중을 두었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 52장)

『노자』제52장에는 몸과 마음을 잘 보존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욕망의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면, 평생토록 수고롭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兌’은 밖에서 외적 사물에 대한 욕망의 유혹(흐름)이 들어오는 구멍이고, ‘門’은 내면의 자연성의 생명력이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의미한다. 우선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적인 유혹을 다스려야 한다. 노자는 “화려한 색깔은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난잡한 음조는 사람의 청각을 둔하게 한다”고 말했다. 외적인 강한 자극이 우리의 마음을 자꾸만 외적인 것으로 향하게 하여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정신이 분산되면 내적인 생명력도 허술하게 된다.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희언자연, 고표풍불종조, 취우불종일.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失亦樂得之.信不足焉, 有不信焉.
실역락득지.신부족언, 유불신언.(노자 23장)

이와 같이 노자의 嗇은 마음을 소중히 지켜 본성을 맑게 하여 본연의 자연성의 밝은 지혜를 보아야 하며 유연한 몸과 정신을 보존하여 튼실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强’은 ‘튼튼하다’는 뜻으로『노자』에서 ‘柔’(유연함)와 반대되는 ‘强’(강함)과는 다른 의미이다. 마음을 튼실하게 한다는 것은 외적인 것에 흔들림 없이 겸허하게 덕을 쌓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본연의 자연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정신과 기력을 세속적인 욕망으로 소진되는 것을 막고, 정신적인 역량을 배양하여 내면을 튼실하게 하는데 힘쓰는 것이다.

오늘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과 몸이 편안한 날이 없을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음에는 온갖 좋지 않은 감정들로 꽉 채워져 있을 때 노자의 嗇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면 마음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본연의 자연성에는 도와 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가 되면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선한 마음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애로움’을 느꼈을 때이다. 그때 사람들은 마음 깊이에서 고마움을 느끼며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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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3<강원대, 윤금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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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Prof. Yoon, Geum Ja>

겸손‧아낌(嗇)‧자애로움(慈)

노자는 겸손과 관련하여 여러 장에서 다루었다. 특히 노자는 물을 예로 들어 겸손과 유약의 미덕을 나타내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물이 낮은 곳으로 겸손히 흐르지만 모든 것에 스미듯이 진᛫선᛫미를 갖춘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인품(빛)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와 그 고결한 인품(빛)을 사람과 사물에게 부드럽게 내비친다. 겸손한 인품을 갖춘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지 않고 모든 사람과 조화롭게 상생한다는 것이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노자 8장)

노자는 강과 바다의 비유를 통해 사람들이 아래에 처할 줄 아는 겸손의 미덕을 깨닫기를 원했고, 또한 강과 바다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 갖기를 권고했다. 노자의 겸손의 의미에는 柔弱(부드럽고 유연함)이 내재되어 있다.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는 곧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抱一의 의미를 내포한다. 강과 바다는 흘러가는 길에 모든 강한 돌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을 조심스럽게 피해서 가는 양보심과 모든 생명체에게 생수를 공급해주는 자애심을 갖고 있다. 물의 이러한 양보심과 자애심 그리고 여유로움은 물의 있는 그대로의 본성일 뿐이다. 노자는 물의 본성을 통해 조작하고 왜곡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물과 같은 자연성을 회복할 것을 권고했다. 노자는 道를 물에 비유하고, 도를 지닌 선한 사람을 물에 비유하기도 했다. 물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남들이 기피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고요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는다.

물과 같은 겸손한 사람은 도(무위)의 마음을 지녔다. 자연의 도는 겸손한 사람의 마음과 동일하다. 그는 마음을 허정하게 비우고 무위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든다.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드는 이유는 그의 강한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부드럽고 유약함에 의한 것이다. 노자의 道가 사람들을 엄청난 무서운 힘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노자는 도를 소박(樸)하고, 작고(小), 욕심이 없고(無欲), 은밀하여 볼 수 없는 것(道隱無名)으로 묘사했다. 인간이 무위 자연한 도의 소박한 성질을 자연스럽게 따를 때 만물과 서로 교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 만물은 무위할 때 서로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외부의 자극에 예리하게 반응한다. 부드러움을 느끼면 존재는 활짝 드러내고, 날카롭고 거친 것을 느끼면 존재는 움츠려들면서도 날카로운 것들로부터 피하여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는 애씀은 존재를 견고하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들이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는 “날카로움을 꺾으며”(挫其銳) 겸손해야 한다. 노자는 “교만하면 허물을 남긴다”고 했는데, 교만은 자연의 도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持而盈之,不如其已,揣而銳之
지이영지,불여기이,췌이예지

金玉滿堂 莫之能守,富貴而驕,
금옥만당,막지능수,부귀이교,

自遺其咎,功成名,遂身退,天之道
자유기구,공성명,수신퇴,천지도 (노자 9장)

노자에 의하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무위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 통치자가 백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건드리지 않고 자연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겸손의 미덕이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 규범이 자연의 도리에 순응할 때 천하를 이상적으로 잘 다스리게 된다. 물이 자연본성에 순응하듯이 통치자도 백성도 모두 자기 본성에 충실할 때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우리도 낮은 자세로 살아갈 때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이득을 보고 득세를 하며, 그와 반면에 목소리 작고 자기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손해를 보는 추세이다. 그러나 강한 사람의 득세는 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사게 되고 사람들과 좋은 교류를 할 수 없게 되어 그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겸손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에 소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굳이 목소리를 높여 자기를 알아달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아봐주고 존중해준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 고능위백곡왕,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시이욕상민, 필이언하지, 욕선민, 필이신후지,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시이성인처상이민부중, 처전이민불해,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시이천하낙추이불염, 이기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노자 6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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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3<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A. Kim)

<Korea: Prof. Yoon, Geum Ja>

자연스러움은 안전함과 편안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통한다. 우리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진실하게 살다보면,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고 충만해지는 복원력이 자연스럽게 생기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억지로 채우려고 하면 넘치고 이지러질 수 있다. 억지로 새로워지려고 하면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우리들은 겉으로 보이는 온전한 것(全), 펴진 것(直), 채워진 것(盈), 새로운 것(新)에 연연해하면서, 굽은 것(曲), 구부러진 것(枉), 옴폭한 것(窪), 낡은 것(蔽)을 피하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겉모습은 외모뿐만 아니라 물질과 지위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외모가 예쁘고 잘생긴 것에 호감을 갖고, 잘 보이려고 하고, 외모가 추하고 볼품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람들은 물질과 지위가 높으면 곧 온전한 것, 펴진 것, 채워진 것, 새로워진 것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잘 사는 것’ 정도를 평가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으면 굽은 것, 구부러진 것, 옴폭한 것, 낡은 것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못 사는 것’ 정도를 평가한다. 잘살고 못사는 것을 물질과 지위로 평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물질적인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숭고한 것이 많다. 비록 눈앞에 외적으로 드러나는 실용성이나 생산성에 있어서는 낮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언정 질적으로 숭고한 인생의 가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노자는 도의 특성을 “도는 숨어있어서 이름이 없다”(道隱無名)고 말했다.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한 도의 겸손하고 소박하고 진실한 것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느끼면서 알게 된다. 도를 깨닫고 느끼면서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되고, 자기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노자에게 있어 밝음과 어두움, 평탄함과 울퉁불퉁함[등], [이]것처럼 이중적인 상관관계는 대립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보여주는 도의 포용성이다.

인간은 겉으로 밝고 좋은 면을 드러내어 자랑하려는 경박함이 있지만 도는 있는 모습 그대로 물처럼 그냥 주어진 곳에 적응하고 순환하면서 정직하게 중후함을 견지한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 나름의 참되고 충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생명체는 자신의 존재를 존재답게 키우기 위해 내면에 잠재된 모든 것을 다 활용한다. 부드러운 흙이 없으면 식물과 꽃이 자랄 수 없다. 흙은 그 자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생명을 키워낸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근본적으로 내실에 채워져 있는 진실한 것, 가능한 것, 충만한 것은 때가 되면 은근하게 배어나오게 마련이다. 각자의 내면의 진실한 것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자산이다. 인간의 가치는 타고난 자연성에 내재한 각자의 존재다움을 충만히 키워내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외적으로 잘 보이기 위해 꾸미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또한 외적으로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고 초연하게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상사문도, 근이행지, 중사문도, 약존약망, 하사문도,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대소지, 불소, 부족이위도, 고건언유지, 명도약매,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진도약퇴, 이도약뢰, 상덕약곡, 태백약욕, 광덕약부족,
建德若偸, 質眞若,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건덕약투, 질진약,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善貸且成.
대상무형, 도은무명, 부유도선대차성. (노자 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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