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한 잔의 시를 마시며…

Drink a Cup of Poem~~너와 나/김호천

‘너’의 모음 ‘ㅓ’가 토라져
사랑의 징표를 밖으로 내밀면
슬픈 ‘나’가 된다.

‘너’와 ‘나’의 한 순간의 변모,
돌아서는 뜻은 알리 없지만
맑던 하늘은 어두운 구름 몰아오고
너에게 웃음으로 주던 파뿌리 사랑은
이내 미움과 아픔이 되어
골목은 외로운 울음이 된다.

‘너’가 돌아서기 어려웠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 유전자는
먼지 낀 고전 속에 누어 깰 줄 모르고,
족쇄 풀린 망아지들의 ‘ㅓ’는
쉽게 쉽게 돌아선다.

세상 무너지는 전령일까,
새로운 진화일까,
올 여름 ‘너’로 푸르던 낙엽이
바람도 없는데,
겨울이 두려워서 일까
이 가을, ‘나’로 돌아선다.

벤치에 앉은 나는
허공을 가르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이 시는 김호천 시인의 뜨끈뜨끈한 시집, “변산바람꽃” 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에 참 어울리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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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뭐하세요 /한웅구

 

뭐하세요

생의 숨결 넉넉하게 기억되는
낯익은 추억,

언덕에 드러누워

, 이제 잠들 있는
당신과 함께한
행복했던 절규일 게다

, 보낸 자와 떠나간
시공의 변이變異 속에 메아리 되어
처절히 교차하는데

뭐하세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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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길/최일우

(사진: 최일우)

가는길 갈길 지나온 길
뒤뚱뒤뚱 갈팡질팡
정신 있나 차렸나 없었나

이리가라 저리가라
들은얘기 흘린얘기
내가고 싶은대로 가면서
지는 제대로 갔는가 물었지

세상길은
옳고그름 없이
지나온 길 가는 길 가야할 길을
뒤돌아 보고 또 앞보며
그냥 가는 길
가야만 할것 같기에
그냥 가는 길
쉬다 멈추며 갈때까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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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사과 서리/강병원

(사진: 강병원 시인)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 말 따라
칠년 전 텃밭에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었다

상기 세찬 겨울바람 차가운 이른 봄
머슴 밥그릇처럼 퇴비 두둑히 덮어주고
꽃이 피어나길 굿에 간 어미 기다리듯 했다

이내 성공, 유혹, 결실, 명성의 꽃말 가진
색감 좋은 예쁜 사과꽃 흐뭇이 피어나
페친들에게 공유하여 반응 펄펄 뜨거웠다

꽃 떨어지고 살충제와 살균제 살포로
과심곰팡이병과 전염병 예방주사 맞히고
튼실한 열매 하나씩 남기고 열매솎기(摘果)했다

칠팔월 폭양에 몸 불리며 맛 들어갈 때
과향 맡고 날아든 배고픈 새떼들 극성에
모기장같은 그물 씌워 새떼들 원성 자자했다

열여섯 살 소녀의 홍조띤 수줍은 얼굴 주렁주렁
텃밭에 갈 때마다 풍경(風鈴)처럼 대롱대롱
방긋이 짓는 미소에 사춘기 소년처럼 설레었다

갈 곳 많은 가을, 갈꽃도 재천으로 많은 가을날에
옥천 문학기행과 제주도 힐링여행으로 비운 사이
梁上君子 찾아와 무자비하게 사과서리해갔다

무식한 인간, 철면피한 인간, 새만도 못한 인간,
욕설 퍼붓다가 섬김과 나눔의 생각이 스쳐가자
다 따가지 않음에 감사하며 주님 영접하라 용서한다

*서리 : 떼를 지어서 주인 몰래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먹는 장난.

본 시의 내용은 좋게 말해서 서리이고 총수확량의 절반을 훔쳐간 악랄한 도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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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쑥부쟁이/홍성재

사진: 이응원 작가

쑥부쟁이

愚靑

보랏빛
혼을 살라
향기를 드리우니

그린 임
아니 오고
벌 나비 수시 오네

달 아래
흘린 눈물만
윤슬 바다 이루네.

홍성재
***시조, 쑥부쟁이를 읽으며  외로움 가득 밀려오는 쑥부쟁이의 삶을 봅니다.
잊혀진 들판의 길 모퉁이에서 흔하게 만나는 보랏빛 쑥 부쟁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가냘픈 육신을 가끔 보며 참 안타까운 마음도 들곤 했어요. 항상 목을 쭉 빼고 길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이유가 있었군요. 그리던 임을 그리워하며 기다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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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어떤날은/ 김서경

어떤 날은,
 
어떤 날은 글쓰기 싫어요. 그냥 놀고 싶어요. 그냥 그림이나 그리다가, 음악이나 듣다가 그러다가 영화 한 편 보다가, 그러다가 그냥 그냥 시간을 삶아 먹고 싶어요. 맛있게 삶아서 살살 뜯어먹고 싶어요. 뜨거워서 호호 불어 가면서요. 시간의 껍질을 얇게 벗기면 뭐가 나오는 지 아세요? 옆에 있는 딸이 피카츄가 나온대요. 저는 시간의 껍질을 벗기면 추억의 살집이 보여요. 살집속에 스며든 순간들의 향기, 또는 아픔, 또는 증오, 또는 후회 등등이 두껍게 따닥따닥 붙어 있어요. 그것들을 떼다가 실수해서 피를 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에요. 결국,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 번 지나간 시간들은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 억지로 잡을 수도, 잡으려고 해서도 안된다는 것, 그러다가 때가 되어 딱정이가 되면 자연히 떨어지거든요. 조금 가렵기는 해요. 그때요.
살다보면 누구든 이런 딱정이가 쉽게는 10개, 100개, 1000개도 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이런 딱정이는 적을 수록 좋다고 말해요. 하지만 적다는 개념은 깊은 상처가 많았다는 뜻은 아닐까요? 아니면 가벼운 상처가 적게 생겼을 수도 있구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허구헌 날 지지고 볶는 삶, 결국 삶은 자신이 선택한, 또는 선택되어진 길을 가는 것이며,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떤 날, 영원한 안주를 하는 것, 상형문자, 사 ㄹ ㅁ 이 아닐까요?
 
김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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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가을비 내린 후/전상훈

가을비 내린 후

가을비 차가운 파도가
하늘 높은 곳에서
출렁이며 몰려온다.

그 차가움에 몸서리치는 것일까
동무들끼리 부벼대는 것일까
들판에 누런 물결 일렁인다.

밀짚모자 눌러쓴 늙은 아재
이른 아침 들판에 나와
오돌오돌 떠는 자식들을 쓰다듬는다.

어이 할멈, 이 비 그치고
가을볕이 사흘만 들면
이 놈들 모두 거두어야겠네.

가을의 속도마저 노련하게 고삐질하는
늙은 아재의 넉넉한 웃음에
허수아비 아재도 신명나게 날개짓한다.

***

전상훈 이지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촛불혁명때는 나팔부대장으로 나팔을 불며 마치 촛불 군대인 전군을 진두지휘한 장군의 위엄이 느껴졌는데, 가을이 깊이 배어드는 들판에서 시인이되어 가을비가 내린 후의 가을 서정을 노래했군요. 무엇보다도 가을하면 뺄 수 없는 것은 가을비, 들판, 밀짚모자, 허수아비인 늙은 아재가 아닐는지요. 추수를 앞둔 가을 들판은 하늘의 도우심으로 마지막 햇살이 필요하지요. 이 햇살은 더 진하고 깊은 맛을 드리우고, 금빛 물결 일렁이는 황금빛 바다같은 들판, 풍요를 기원하고 또 나라의 안녕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돌오돌 떠는 자식’을 쓰다듬습니다.’늙은 아재의 넉넉한 웃음’에 허수아비 아재도 신명나게 날갯짓을 하게 될 가을, 한국의 가을은 정겹습니다.

그의 저서 “촛불 시민혁명 승리의 기록”(책은 서점과 인터넷서점에서 판매중입니다. 15,000원. 깊은샘미디어 펴냄 )이 절찬리에 판매중이다. 많이 사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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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조율/홍성재

하나, 둘, 셋,
떠도는 영혼의 귀환을 위하여
조금씩 상념을 펼쳐내고자
달아나버린 음들을 찾아 묶는다
영원의 잠을 자던 고래는
죽어진 몸으로 호흡을 고른다

산새의 지저귐으로 물들인 초록 몸뚱이
미라로 남겨지지 못하고 베어져
살을 파내고 뼈를 발리고
두드려 깎이는 사이 지르지 못한 비명으로
슬픔과 한을 엮었다

하나, 둘, 셋,
수백 년의 슬픔
그 모든 염원이 응집하는 시간
수백 년의 환희
그 모두 숨으로 모아지는 순간
쏟아내기 위한 조율이다.

*** 조율… 영혼, 상념, 음, 잠, 고래, 호흡… 산새, 미라, 비명, 슬픔, 한, 염원, 환희 , 순간으로 이어지는 조율이다. 누구나 조율이 필요하다. 다만 때로는 그 순간을 놓치거나 때로는 무관심으로 방관하거나 때로는 너무 다급한 나머지 조율이 아닌 조절을 하려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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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투명인간/최일우

(Photo by David Ilwoo Choi)

투명인간

안개속 지나간다
빗속을 지나간다
연기속을 지나간다
물속을 통과한다
난 그대로 있고
안개,비, 연기,물은 흐트러진다.

갈대밭을 통과하려 했다
빽빽한 대나무 숲을 통과하려 했다
큰 아름 나무와 바위를 통과하려 했다
저쪽은 모두 그대로 있고
나만 많은 상처를 입었다.

강하다고 다 되는게 아니구나
작고 약해지기로 한다.

벽을 통과하였다
육체는 없어지고 실체만 남았다.

** 안개, 비, 연기, 물, 갈대밭, 대나무 숲, 바위, 벽, 육체… 그리고 “투명인간” 신선한 충격을 주는 제목처럼 위에 열거한 요소들이 갖고 있는 성격들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지우므로서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육체’가 제거되고 ‘실체’ 를 찾게 되는 “진아 ” 를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시를 통해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과 항상 스스로 그렇게 있는 자연과의 사이에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지, 또는 인간이 결코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 보다는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된다. 시는 읽는자의 몫이다. 누구는 이 시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는 이 시를 영성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그런 시라고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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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외출/김호천

 

김호천

정자에 앉아 점심을 삭이는데
여름 끝 몸부림하는 햇볕을 비집고
가을을 끌고 오는 여인
선선한 치맛바람.

화려했을 연꽃은 모두 지고
넓은 잎은 너울거려
가을 바람을 일으키는 한낮
윤기 흐르는 나무들은
이제 한창 청춘인가

오랜 시간 담을 쌓고 지내다
모처럼 경치 찾은 외출
지난날의 이야기 꽃 화려한데
무성한 푸른 나뭇잎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저 푸른 나뭇잎도 멀지 않아
몸을 사려 사라지겠지
누구는 책갈피에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더러는 허무를 가슴에 담고
팔 베개 하고 무등산을 본다.

*** 이 시의 제목, “외출” 은 여름이 어느덧 자취를 감추게 될것을 아쉬워하며, 인생의 가을과 자연의 가을을 대비시켜 볼 수 있을 것 같다. 끝 연, “누구는 책갈피에 그리움으로 간직하고/더러는 허무를 가슴에 담고” 을 읽으면서 지나간 화려했던 시절이 감을 못내 아쉬워하며 자연의 이치를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의 오고 감을 생각케 한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가을이 온 것 같다. 매 년 오는 가을이건만… 늘 앓게되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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