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일요일의 문화 산책

Time and Space are Inextricable- 5(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그러면 영화는 이러한 시.공간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는가? 영화는 시간적으로 조직화된 공간이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인식하는 공간은 움직이지도 않고 변화하지 않는 정적세계이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공간은 정적인 성질은 잃게되고 시간과 결합된 동적인 세계로 바뀌게 된다. 공간의 부분들은 시간적인 순서로 정리되며 시간적 리듬을 가진 시간적 구조의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서 클로즈업은 단순히 부분의 공간적 확대라 아니라, 극적 시간과 결합된다. 어떠한 요소(인물, 집단, 풍경 등)로 구성되어 있든, 서로 다른 공간은 시간적 순서로 배열되며, 특수한 경우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해서 다른 시간 배열을 선택하게 된다. 공간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의 하나는 바로 시간 차원이다.

영화에서 모든 장면은 현재라는 시제를 갖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화면 속의 사건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라는 사실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시간 의식이다. 시간 차원은 시간의 공간화 혹은 공간의 시간화라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법이 몽타쥬이다. 장면을 변화시키지 않고 순서를 바꿔 놓을 경우 시퀀스의 의미가 변화하는 가를 푸도프킨의 고전적 실험이 잘 보여준다.공간을 통해서 인식되는 세계에 관한 대부분의 지식 혹은 정보를 흔히 오감이라 불리우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 얻는것과는 달리 시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내적이며 심리적이다. 시간을 객관화 하려면 또는 그것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려면 시계, 태양, 별, 조류, 성장 등의 공간 언어로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영화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취하는 바, 다른 공간을 보여 줌으로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게 된다. 즉 영화는 시간의 경과라는 개념을 공간 차원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기 위해서 같은 공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면 무언가 움직이고 달라져 있을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공간적인 언어가 달라질 것이다.

이와 같이 영화에서 시간과 공간은 서로 혼합되고 교환되고 서로 영향을 준다. 시간이 공간화되고 공간이 시간화된다.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이란 영화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과 시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흔히 영화를 ‘시’ 공간 연속체(space-time cautinnum)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공간뿐이지만 이 공간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배열될 수 밖에 없고 시간이라는 형식으로 맞추어져야 한다. 이것이 영화를 현실 또는 다른 예술과 구별시켜주는 것이다. 90분 혹은 120분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강령한 체험의 시간이다. 같은 서사적 양식을 취하지만 연극에서는 연기력이, 문학에서는 언어의 기법이 본질적 기능이라면, 영화에서는 스크린의 이미지가 전달하는 공간과 시간의 변화가 본질적 기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 세계의 객관적 시간을 영화는 어떻게 변형시키는가? 다시 말해서 영화 특유의 극적이고 율동적인 지속속에서 시간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영화에서 시간은 보통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된다. 물리적 시간, 심리적 시간, 그리고 극적 시간이다. 물리적 시간이란 움직임이 촬영되는 시간, 즉 스크린에 영사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보통 러닝타임이라고 말한다. 심리적 시간이란 관객이 영화를 볼때 경험하는 시간에 대한 주관적이고 정서적 시간을 의미한다. 극적 시간이란 영화속에서의 어떤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을 말한다. 한 편의 영화는 같은 물리적 시간을 통해서 하루 동안의 사건을 그려낼 수도 있고, 수 십년 동안의 사건을 그려낼 수 있다. 물론 관객들은 이 세 가지 시간이 한 영화 속에서 동시에 나타나며 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영화는 물리적인 세계의 움직임을 시간을 통해서 스크린 위에 그려낸다. 이때 현실 세계에서의 움직임은 정확하게 동일한 시간으로 스크린에 전개된다. 그러나 두 현상의 전개 과정은 다르다. 스크린에서의 전개는 하나의 정사진 (still) 이 48분의 1 속도로 영사됨으로써 진행된다. 정상적인 속도는 1초에 24프레임이지만 하나의 정사진에서 다른 정사진으로 옮겨가는 동안에 잠시 어두워지므로 48분의 1초로 정사진이 바뀌게 되는 셈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사진 한 장 한 장은 고정된 형태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연속적으로 움직일때 운동력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시각은 잔이라는 불완전성 때문에 이렇게 미세하게 분화된 장면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먼저 본 그림의 인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음 그림을 겹쳐서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청각이 미세한 소리를 의식하지 못하듯이 시각도 미세한 움직임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속적인 그림들에 의해서 움직임이 시간적으로 재현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필름이라는 재료와 촬영기로서 이러한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조작된 그림에 의한 인위적인 시간에 의해서 영화는 재현적 움직임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 조작의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패스트모션, 슬로우 모션, 스탑모션,플래쉬백, 프래쉬프론트(포워드)등이  있다.

한편, 영화에서의 심리적 시간이란 하나의 정신적 현상으로서, 시간의 경과에 대한 우리들의 주관적 혹은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시간 경과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일차적으로는 외적인 감각에서 비롯된다. 시계바늘, 시계 소리, 심장의 고동, 맥박 등을 통해서 객관적이고도 규칙적인 시간을 의식한다.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의식은 주관적이며 시계가 가리키는 객관적 식케에 대해서 다영하다. 어떤 일에 몰두할 때 그 일이 즐겁거나 행복하면 시간은 빨리간다. 그러나 지루하거나 불행하면 시간은 느리게 간다. 만약 우리가 미래에 어떤 일을 염려나 조바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면 시간은 느리게 갈 것이다. 영화속의 사건이 극적으로 전개됨으로써 이 사건이 관객의 정서에 영향을 주게되고 이것은 다시 관객의 주관적인 시간의식을 형성한다. 이러한 시간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는 서스펜스와 리듬, 템포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의 극적 시간을 설명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모든 예술장르에서의 시간은 실제 시간보다 어느 정도 압축되어 표현되었다. 예를 들면 고대에 설정되었고 17.18세기 고전극작가들에게 까지 존중하였던 연극의 3요소에 의하면 3시간 내지 4시간으로 압축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4시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2,3 시간의 한 연극 작품에서 한 사람의 긴  생애나 여러 세대의 삶이 묘사될 수도 있고, 동시에 현실적 시간과 동일한 시간이 극 안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 영화도 이와 동일한데 예를 들어서 대부분의 역사물이나 서사적 작품에서는 한 영화속에서 여러 세대 혹은 긴 세월이 흐르는 반면, 영화 속의 극적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일치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극적 시간 역시 심리적 시간과 동일하게 패스트 모션, 슬로우 모션, 스탑 모션, 그리고 프래쉬 백 등을 이용해서 시간을 처리함으로서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생략할 것인가, 대사는 얼마나 빨리 진행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가가 서로 합리적인 논의를 거쳐서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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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and Space are Inextricable- 3(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3. 시간의 두 가지 속성에 대하여,

시간은 두 가지의 중요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움직임과 변화라는 형태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즉 시간은 연속된 흐름이다. 연속된 움직임이나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 즉 영원 불변한 것은 시간을 초월한 것이며 따라서 시간과는 무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즉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으며, 흐름 속에서 한번 지나간 것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이로 인해서 한번 체험된 것은 다시는 동일한 방식으로 체험되지 않는다. 이른바 ‘시간의 비가역성’ 이라는 시간의 이런 속성이 아쉬움이나 후회와 같은 감정 뿐만 아니라 타임 머신과 같은 환상적 욕망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시간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인지한다. 하나는 개념적이거나 물리적 도구를 사용해 측정되는 시간, 즉 오전, 오후, 어제, 오늘 1시간 2분 3초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적 개념이나 보편적 기준에 의해서 시계와 같은 측정 도구를 통해 인지되는 물리적 차원의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의 감정적 상태나 육체적 상태의 변화에 의해 경험으로 인지되는, 즉 생각의 전개라는 인간 활동 전반을 통해 느껴지는 심리적 차원의 시간이다. 이때 전자를 객관적 시간, 후자를 주관적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객관적 시간은 양적으로 측정되고 계산된 시간으로서 이러한 시간은 개인, 사회, 문화와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동질적이고 보편적이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각자 동일한 시간에 출근하고 기차를 타고 영화를 보며 약속에 늦지 않는다. 동일한 간격으로 나누어진 객관적 시간들을 공유하며 시간표를 짜고 약속을 조정하며 미래의 일을 계획한다. 시간 단위로 결정되는 자동차의 속도는 교통법규 위반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일을 한 시간의 합계는 봉급과 퇴직금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처럼 객관적인 시간은 현대사회에서 사업, 노동, 이동, 투자, 인간관계 등 모든 인간 활동을 조율하는 가장 근본적인 수단이 되었다. 시계는 긴간을 지배하는 인간의 힘을 상징한다. (현재 세계 공인의 가장 정밀한 시계는 세슘 원자에 마이크로파 빔을 쏘아서 시간을 측정하는 세슘 시계(또는 원자 시계) 이다. 이 시계는 초당 9,192,631, 770(약 92억억 ) 번 진동하는 세슘 133 원자의 특성을 사용한 것으로 1초를 약 92억 번 쪼개서 측정할 수 있는 정밀도가 있고, 3,000만년에 1초의 오차가 생긴다. 1967년에 세계적으로 공인된 이 세슘시계에 의하면 1초는 “세슘원자가 9,192631370번 진동하는 시간”이다. 이제 1초는 더 이상 지구의 자전 시간을 잘게 쪼갠 대략의 시간이 아니며, 절대적인 객관적 시간을 측정해주는 기계의 발명에 의해서 시간의 세계화는 이루어졌다.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 이유들 때문에 동일한 시간을 공유하고자 했던 세계인들의 욕망을 이 시간이 충족시켜  준것이다.)

이에 반해, 베르그송은 인간의 주관적 시간을 ‘지속(Duree)’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이 ‘지속(Duree)’을 의식의 연속적인 변화를 통해 경험되는 시간성으로 규정한다. 시간의 경험과 생각, 감각, 지각, 감정 등과 같은 내적 변화의 지각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변화들이 의식에 의해 ‘지속’으로 경험된다. 따라서 지곳은 지성에 의해 수학적으로 계산된 시간과는 달리, 주관적이고 질적인 시간이다. 그리고 베르그송은 이러한 지속 개념을 통해 현재를 수학적인 계산적 순간이 아니라, 즉각적 과거 (Passe Immediat) 와 즉각적 미래 (avenir Immedian)를 포괄하는 지속적 순간으로 규정한다. 존재가 시간을 느끼려면, 일정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의식을 갖는 행위 자체가 곧 현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재는 일정 정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에 의해 지각되는 현재는 내가 지각한 순간 이미 과거가 되는 시간과 아직 지각되지는 않지만 이미 내 의식이 향하고 있는 미래를 포함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내가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심리적 상태는 즉각적 과거에 대한 지각이자 동시에 즉각적 미래에 대한 결정이어야 한다. 베르그송 1939 :153) 따라서 지속이란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갖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삶의 풍부함이 축적되는 질적인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을 양적으로 특정한 척도를 이용해 나누거나 측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속속에서 형성되는 인간의 자의식은 지각된 과거를 바탕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 이것이 곧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근간이 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즉각적 과거는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에 감각과 행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두께가 있는 시간이다. 현재는 행동속에서 다시 현제화되는 추억(souvenir) 을 포함하는 지속적 순간이다. 현재가 추억의 재현 재화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기억 (memoire) 은 현재에서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의 전진이다. 인간의 의식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현재 속에서 재구성하면서 삶을 보다 풍부하고 보다 새로운 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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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and Space are Inextricable- 2(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2. 엘레아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로서 제논의 운동부정이론은 스승인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한 존재불변의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시한 것이다. 그의 역설적 주장은 다음 세 가지를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이른바 ‘이(二)분(分)의 역설’, ‘경주의 역설’ 그리고 ‘날으는 화살의 역설’ 이다. 이중에서 ‘날으는 화살’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분의 역설’을 보면 어떤 지점 A 에 도달하기 위해서 한 운동체는 우선 출발점에서 지점 A 까지 전체거리의 절반을 움직여야하고, 그 다음에는 나머지의 절반을, 다시 그 나머지의 절반을, 다시 그 나머지의 절반, 이런 식으로 무한히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전체 거리를 주파한다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운동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것이다.

둘째, ‘경주의 역설’도 비슷한 논리다. 빠른 발을 가진 아킬레우스는 느린 거북이와 경주를 시작한다. 이때 거북이의 속도는 아킬레우스보다 열배 정도 느리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출발은 아킬레우스는 A지점에서, 거북이는 이보다 앞선 T 지점에서 시작한다. 여기에서 제논은 아킬레우스가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아킬레우스가 T 지점에 도달하면 거북이는 아킬레우스가 달린 거리의 1/10 거리만큼 나아가기 때문에 거북이는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항상 아킬레우스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날으는 화살의 역설’에 의하면,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은 날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로의 매순간 화살은 공간의 일정한 지점에 위치하게 되는데, 공간의 일정한 지점에 위치한다는 것은 화살이 자기 자신과 동일한 공간을 순간적으로 점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것은 화살이 그 순간 정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살은 날아가지 않고 영원히 정지해 있는 것이다.

제논은 왜 이러한 학설을 주장했을까? 그리고 그 오류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베르그송은 제논의 오류는 운동체가 지나간 궤적을 구체 지속 속에서 체험된 운동 자체와 혼동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운동을 측정하는데 쓰이는 공간은 실상 무한히 분할될 수 있다. 그러나 운동 그 자체는 분할이 불가능하다. 운동에는 서로 구별되어야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운동체가 지나간 공간과 운동의 진행 자체, 다시 말해서 계기적인 위치들과 그 위치들의 종합인데 제논은 이 둘을 구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자가 등질적인 공간이라는 양의 집합이라면, 후자는 시간이라는 의식내부의 질의 차원인데도 평면위에서 좌표화 한것을 운동의 전부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좌표와 하는 것이 운동을 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고찰하는 데는 편리할 지 모르나 운동의 본질적 의미는 그런 방식으로는 밝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동은 그 본성상 연속적이지 분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운동이 보여주는 이러한 질적, 구체적 지속은 베르그송에 의해서 분석적이고 연역적인 오성의 지배를 벗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연역논리가 시간의 부정이라는 것도 쉽게 증명되는데 그 이유는 한 명제로부터 다른 명제를 연역해 낸다는 것은 두 명제가 동일한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현재로부터 미래를 연역해낸다는 것은 미래와 현재를 동일한 것으로 전제하는 것이다. 이처럼 연역논증에서의 논리적 동일성은 시간적 계기를 사상시키는 것이고, 이것은 결과를 원인에 환원시켜 동일시함으로써 시간적 비 가역성을 모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연역 논리가 실패한 이 문제에서 변증법적 논리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변증법은 동어 반복이 아니라 모순극복의 방법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물과 개념들을 운동과 상호작용,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변화와 생성, 그들의 발전과 쇠퇴 속에서 고려하는 이 변증법적 방법은 변화나 생성 그 자체를 법칙으로 파악하고자 노력한다. 상반되는 것들과의 대립 및 화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순과 상호대립은 비약에 의한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구체적이고도 본래적인 시간이해를 우리의 의식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음을 다른 어떠한 양식 보다도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영화에서의 심리적 시간이란 이러한 양적 시간에 대한 거부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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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sation and Freedom, Holistic View 5<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오랫동안 남성들의 시각과 보호에 길들여 있던 여성의 몸이 어느 날 자신의 존재성을 주장하면서 자유를 외치게 되고, 정숙하고도 얌전하였던 여성들이 갑자기 몸을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장하자 남성들은 자신들의 시선을 벗어난 이들을 보면서 갑작스러운 권위 상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몸이 해방되고 신체적 감각이 이른바 데카르트적인 코기토를 대신함으로써 남성이라는 사유적 존재가 유사 이래로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음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여성의 몸이라는 실재 대신 또 다른 추상적 존재를 통해서 실추된 권위를 회복한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음도 확실하다.

결국 패러다임의 변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과 타자의 몸에 대한 시선과 관점의 변화이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규정되거나 길들여지는 몸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사유 이상으로 몸 역시 공간과 시간을 통해서 존재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외모지상주의라는 또 다른 물신주의가 팽배한 작금의 상황에서 몸에 대한 진실된 시선이 무엇이며 몸의 주체적인 존재방식이 무엇인지를 숙고하는 것은 실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영혼의 감옥’이라는 오래된 폄하에도 불구하고 몸(육체)은 우리를 타자로부터 분리시키는 가장 구체적이면서 실재적인 표상이기에 자신의 몸을 결코 거부할 수 도 없고 동시에 타자의 시선 속에 영원히 방치할 수도 없는 것이다.

분리와 결합 그 무력함과 풍요함

우리는 일상에서 성(性)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첫째, 자연적으로 주어진 생물학적 구조와 그 기능을 의미한다. 이것은 남녀의 신체적, 성적 역할의 분리라는 차원에서의 설명이며 여기에서 섹스(sex)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섹스는 라틴어 sexus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어원은 ‘자른다’, ‘나눈다’ 등을 의미하는 동사 seco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성행위나 성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성적 욕망이나 성적 관심을 의미한다. 분리된 남녀가 성적으로 상대방을 서로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때는 주로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셋째, ‘남성다움’ 혹은 ‘여성다움’과 같이 특정 사회가 요구하는 정형화된 성적 타입을 의미한다. 자연적이라기보다 문화적,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 개념이 오랫동안 ‘성적 차이에 근거한 권력의 차별적 분배’를 정당화했음을 역사는 잘 보여준다. 이를 거부하면서 중립적 입장에서 성을 표기하기 위해서 차용된 용어가 젠더(gender)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종교적 교리와 문화적 삶을 강조하면서 인간에게 명확한 성적 정체성을 요구하였다. 1995년 필리핀의 여성 육상 선수 낸시 나발타는 국제 경기를 앞둔 신체검사에서 남성으로 판정 받은 후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스포츠에서 중성을 위한 경기가 없는 한 그(녀)는 두 가지 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연예인 하리수는 자신의 남성적 상징을 마지막으로 제거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을 온전히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 말, 특히 금세기에 접어들면서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대중들 사이에서 위에서 구분된 전통적 성 개념들로서 설명할 수 없는 양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의 시초는 지난 세기 초부터 페미니즘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다양한 성적 차별에 대한 투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서구를 중심으로 사회 각 영역에 만연한 성차별에 대한 투쟁은 고등교육, 직업분야, 참정권 등에서의 여성의 참여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이른바 ‘남녀역할 바꾸기’가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공적 영역에서의 이런 변화는 사적 영역에서의 성의식과 성관행의 변화 내지 해체로 나타나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작금의 젊은 세대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남녀 간에 점점 모호해지는 성 정체성이다. 짙은 화장을 하고 귀걸이, 목걸이에다가 여성의상과 다름없이 신체의 윤곽을 드러내는 밀착된 의복을 입는 예쁜 ‘꽃미남’ 옆으로 펑크 머리를 하고, 군복을 입고, 밀리터리 패션을 걸친 ‘터프 걸’들이 걸어가고 있다. 주로 대중문화의 아이돌 스타들에 의해서 주도되는, ‘유니섹스’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현상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표현에서 더 이상 전통적 성적 구분이나 정체성의 요구는 무의미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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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sation and Freedom, Holistic View 3<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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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몸 그리고 타자의 시선

남성의 벗은 몸이 사회적 차원에서 정당한 지위를 획득한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부터였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 전 720년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남성들의 경기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이중 육상 경기에 참가한 오르시포스가 경기에 열중한 나머지 그의 로인 클로스가 벗겨졌다. 오르시포스는 우승을 했고, 경기 성적을 좋게 하려면 알몸이 좋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그리스인들에게 좋은 것은 동시에 아름다운 것이기에 나체는 좋은 점수를 얻게 해 주니 좋고, 율동미 넘치는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니 좋다는 일석이조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후 경기장에서 남성들의 알몸경기를 일반화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움 그 자체 외에 다른 의도를 담지 않은 남성 누드는 사회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당당한 형상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에 여성의 경우 경기 참여 자체가 금지되었고, 입장도 제한적이었다. 기혼 여성의 경우 남성의 벗은 몸이 성적 연상을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관람이 거부되었고, 미혼 여성은 소수를 선발해서 경기장 가까운 곳에서의 관람을 허락하였다. 이들의 역할은 승리의 월계관을 쓴 남성들 주변을 둘러쌈으로서 승리자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시키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최초의 나체상은 여성의 몸이었다. 약 3만년에서 2만 5천년 사이에서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Venus von Wilendorf>는 엄청나게 큰 가슴과 지나치게 과장되어있는 음부로 유명한데, 이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생식능력에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런 요소들이 과도하게 강조되었기에 결코 미적 차원에서의 조형물은 아니었다. 여성이 몸이 아름다운 나체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여성에게 부여되었던 다산과 출산의 상징이 남성들에게 옮겨지면서부터였다. 농경문화는 여성의 생산성과 관련하여 여성의 몸에 씨를 뿌리는 남근(南根)이 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농경은 남성의 근육노동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의 벗은 몸을 드러낼 수 있었다. 더구나 벗은 몸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것이기에 고대 그리스에서 신은 흔히 남성의 모습을 닮았고 이들의 벗은 몸은 신적 존재임을 표현하는 하나의 특권적 기호였다. 이리하여 남근을 자랑스럽게 드러낸 조형물은 그리스 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반면, 여성들은 전혀 다른 이유로 자신의 벗은 몸을 드러내어야 했다. 선악과를 아담에게 권함으로서 인류의 죄를 유전시킨 하와나 한 공동체에서 집단적으로 멸시나 천대를 받는 창녀처럼 종교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부끄럽거나 뭔가 문제가 있을 때 여성은 벗은 몸으로 등장하였다. 물론 밀로의 비너스처럼 여신들도 벗은 몸으로 등장하지만 남성들은 이 모두를 싸잡아서 쾌락적 시선의 대상으로 위치시켰고, 대신 (에덴동산에서의 나뭇잎과 가죽옷처럼) 여성의 몸을 감싸는 옷은 남성에 의해서 주어지는 사회적 보호이자 자연적 존재인 여성에게 부여된 문화의 징표였던 것이다.

인간의 육체를 죄악시하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중세 기간 동안 이런 표현양식은 잠시 주춤했지만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인간의 몸은 다시 회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이 경우에도 신과 신화와 성서에서의 영웅은 남성적 미의 구현체이지만, 여성의 (벗은) 몸은 대부분이 남성 화가들에 의해서 시각적 즐거움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규정된 채 수동적인 모습으로 화폭에 담겨졌다. 남성의 시선에 의해서 인정되는 남성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좋음의 근거인데 반해서, 근원적으로 죄로 가득 찬 여성의 몸은 오로지 남성들의 쾌락적 시선에 의해서 그 존재성이 인정받은 것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정치적인 지위가 상대적으로 변화하였고 여성이 선거권을 쥐게 된 1920년대 이후 이러한 양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림 속 여성들 역시 좀 더 당당한 모습으로 그들의 벗은 몸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클림트의 그림 속 여성들이 대표적이다. 과감한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여성들에게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자신감마저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 사회 영역에서의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것을 남성들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고 이러한 불편한 심경은 회화와 사진, 영화 등에서 포르노그라피와 더불어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으로 외화 되었다. 그 대신 남성적 시선에 더 이상 규정되지 않는 자유롭고 당당한 여성은 여성 화가의 손에서 제작되었다.

한편 이 시대에는 다른 차원에서의 여성적 가치가 강조되었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서 남성들은 항상 지배와 착취의 구조와 전쟁과 파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왔고 20세기는 이러한 상황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반면, 여성들은 늘 생명을 재생산하고 가족 공동체를 돌봄으로써 평화와 생명과 돌봄의 가치를 오랫동안 내면화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여성들은 본질적으로 전쟁 대신 평화를, 경쟁 대신 연대를, 파괴 대신 보존을, 소멸 대신 생산을, 이성 대신 감성을, 수직적 질서 대신 수평적 관계를, 지배 대신 돌봄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가치실현은 바로 생명의 잉태와 출산으로 상징되는 여성의 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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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sation and Freedom, Holistic View 2<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허구적 진실, 그 충만함과 자유로움

학제적(學際的 interdisciplinary)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은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학문과 학문 사이의 경계가 와해되고, 여러 지적 영역 사이에서 유동적이고 상관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후 자연과학과 인문학, 문학과 역사, 철학과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상호간 적극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신과학자들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단절을 우려하였고, 신역사주의자들은 문학과 역사의 벽을 허물려고 노력하였고, 해체주의자들은 문학과 철학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를 거부하였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과 종교를 함께 아우르는 개념으로 ‘통섭’을 주장하였고, 역사학자 로렌스 스톤은 “역사학에서 실재하는 것은 문학에서의 상상과 마찬가지로 상상으로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데리다 역시 “철학도 궁극적으로 문학 장르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함을 강조하면서 문학과 철학의 전통적 구분을 일종의 ‘지적인 폭력’으로 여기는 로티와 의견을 같이 하였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많은 논쟁을 동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고대철학에서 문학, 혹은 예술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예술은 열등한 것을 모방해서 더 열등한 것을 낳는 행위이기에 화가는 실재가 아닌 가상을 모방하면서 그 모방 기술로써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이며, 시인 역시 언어라는 물감으로 자신의 시에 채색을 하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보다 시가 더 보편적이라는 차원에서 철학적임을 주장하였지만 플라톤의 견해가 이후 문학과 예술에 관한 관점을 형성하는데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문학작품을 멀리하라고 수차 경고하였는데 이것은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 극도로 불안감을 드러낸 개신교, 특히 청교도주의자들에 의해서 다시 반복된다. 데카르트 역시 뛰어난 수학자로서 인간의 합리성을 사유의 기초로 삼으려고 했기에 문학과 철학에 대한 플라톤적 구분은 당연히 귀결이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경향은 여전하였는데 특히 분석철학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들에 의하면 정의적이고 가치적인, 이른바 수행적 언어행위로서의 문학이 아닌, 실증적이고 인식적인, 이른바 기술적 언어행위에 포함되는 철학 혹은 과학이야말로 이상적인 언어로 분류되는 것이다.

플라톤을 비롯한 몇몇 철학자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학이 미토스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시인은 구체적인 영상을 정서적 언어를 통해서 그려내지만, 로고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철학이 논리적 언어를 통해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을 전개를 전개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실이다. 이런 차원에서 시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비합리적이고 심지어 무질서하게 보여질 수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호메로스와 관련된 전설이 잘 보여주듯이 시인들이 고대 이래로 ‘뮤즈에게서 영감을 받은 사람’ 혹은 ‘신들린 사람’, 좀 더 심하게 말해서 ‘미치광이’ 등으로 호칭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합리성에서 시인의 위대함이 비롯된다는 것이 문학의 역설이다. 다시 말해서 문학 혹은 예술의 근원적 상상력이 이러한 ‘광기’에 있으며, 무질서한 상상력을 통해서 문학가는 특유의 신비하고도 황홀한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다.

물론 시인도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대상에 눈을 던질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철학자가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영원한 존재라든가, 사고의 정확성 혹은 궁극적인 가치 등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문학이 언어를 통해서 생생하고, 감각적인 형상을 창조하는데 반해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표현 대신, 진리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에 전념한다는 점에서 철학은 오히려 과학과 흡사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의 고유성을 철학을 비롯한 다른 합리적인 사유방식과의 비교에서 확인할 수 없다. 즉 객관적인 사태나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의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시는 그 존재의미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시에 대한 하이데거적 설명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시인이란 은총의 천후(天候)에 순응하는 자들이다. 그들만이 생명을 예감하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대지에 버티고 있다. 신은 이 세계를 창조하였고 그 가운데 인간을 두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이기에 그 둘의 직접적 접촉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시인을 신과 인간과의 매개자로 하여 신이 인간에게 주려고 했던 ‘사랑’을 이들을 통해서 드러내게 한다. 이제 엄밀한 ‘간접성’에 속하는 시인은 신의 성스러운 ‘법칙’에 속하게 되고, ‘은총’아래 있기 때문에 모든 유한한 것을 앞질러 현존하는 ‘무한한 것’에 의지하고 또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의 원형인 ‘포도의 신’ 디오니소스가 등장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핀다로스의 시를 인용하면서 디오니소스의 광기와 시인의 광기를 이렇게 비교한다. “그리하여 이제 대지의 아들들은 위험을 모르고 하늘의 불을 마신다. 그러나 시인들이여!! 우리에게 온당한 것은 신의 풍우 가운데 맨머리에서서 그것을 마셔야 하리니…” 여기에서 ‘하늘의 불’은 바로 ‘시인들의 영혼 가운데 전화된 불, 즉 열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축제의 밤을 지낸 후 “어둠 속에서 노심초사 새벽을 기다리는 디오니소스처럼” 긴 기다림 끝에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어둠과 카오스로서의 이 세계를 빛과 로고스의 세계로 이행하고 대지는 마침내 밝은 태양 아래서 본래적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 모든 과정이 전문적 지식으로부터 빠져 나온 예술적 충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예술은 자유 그 자체인 것이다.

플라톤의 지적처럼 시인과 예술가가 거짓말쟁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잠시 우리를 현혹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대적 사유가 객관성을 위해서 우리에게 강요하였던 주객분리라는 이원론도 사라지고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여하한 믿음도 붕괴된 이 시점에, 환타지와 비합리성으로 재무장한 시와 예술이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생태학자들의 실증적인 연구물이나 국제정치학자들의 정치(精緻)한 논문들 대신, 시각적 환상의 극치인 <아바타>라는 시물레이션을 통해서 생태파괴에서 나타난 인간의 야만성과 패권적 대외정책이 초래할 특정국가의 비극적 결말을 확인하게 되는 이유를 숙고해야 한다.

시(poet)라는 단어가 그리스어 poiesis에서 유래하였고 그 의미가 ‘무에서 유의 창조’였다면 시인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세계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언어가 존재의 집”이며, “인간이 존재의 목동“이라고 말했을 때, 하이데거는 이른바 비은폐성(aletheia)으로서의 시적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으며, 들뢰즈가 “이 시대의 진정한 철학자는 바로 예술가”라고 표현했을 때 그는 이른바 ‘허구’를 들려주는 시와 예술이 철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진실’을 담보하는 사유적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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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4<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 Prof. Lee, Kangwha>

5) 기억과 트라우마

이제, 기억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논쟁적 주제와 관련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역사적 재현의 문제와 관련된 가장 첨예한 현안은 바로 ‘국정 교과서 문제’와 ‘위안부 문제‘이다. 이 중에서 한국사에 대한 관점과 관련된 공적 논쟁인 ’국정 교과서문제‘보다, 소수의 특수한 집단의 개인적 기억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위안부 문제‘가 ’기억을 둘러싼 담론‘의 쟁점적 특성을 훨씬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함축하고 있는 이 주제의 담론적 논쟁은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 할머니들의 기억이 왜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어야 하며,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과거가 왜 우리들 기억의 또 다른 원천이 되어야 하느냐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과 관련하여 20세기의 전쟁과 대량학살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할 수 있는 용어가 ’트라우마‘이다. 그리고 이때 특히 주요한 개념이 ‘내러티브 기억(narrative memory)’과 ‘트라우마 기억(traumatic memory)’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런 구분을 처음으로 시도한 프랑스 정신과 의사 자네(Janet)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습관적 기억, 내러티브 기억, 트라우마 기억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능력에 해당되는 것이 ‘내러티브 기억’으로 인간이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생성하는데 기여하는 정신활동이다.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이야기 체계에 능동적으로 편입시킴으로써 개인은 정상인의 심리를 유지하고 살 수 있다. 이와 달리 내러티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기억이 있는데 바로 트라우마 기억이다. 극도록 충격적인 체험인 트라우마 기억은 내러티브에서 이탈하여 무의식에 고착함으로써 의식의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철저히 고립된 사건으로 사회성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트라우마를 논의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홀로코스트(Holocaust)이다. 나치에 의해서 자행된 유대인과 여타 소수민들의 제노사이드(genocide)를 가르키는 홀로코스트는 오늘날 서구 세계의 자기 이해와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미국의 문화 이론가 호이센이 지적했듯이 전 세계 여타 제노사이드를 비추는 강력한 프리즘이 되었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는 특정민족이나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은 전 지구적 차원의 트라우마를 대변하게 되었다. 혹자는 홀로코스트 경험의 참혹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쟁으로 일관된 20세기 전체를 ‘포스트-트라우마 세기(post-trauma century)라고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다. 상황과 양상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 근대사의 경우에는 일본군 위안부와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그리고 5.18 민주화 운동 등이 유사한 경우일 것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된 생생하고도 충격적인 과거는 당사자가 이해하지 못한 불가항력의 광경들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기억들은 적절한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시간의 경과가 무색한 생생한 이미지가 되어서 끊임없이 현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서 삶을 잠식해버린다. 이것을 어떤 식으로 증언해야하지만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기에, 내러티브적 기억이 되지 못하고 무질서하게 반복되는 트라우마 기억으로서 강박관념을 드러낼 뿐이다. 이처럼 논리적 내러티브로는 온전하게 보여줄 수 없는 기억의 재현이기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과거나 현재라는 유기적 관계에 기초한 역사란 무의미하며, 진위판별이나 인과적 설명, 내러티브를 통한 합리적 재현 역시 트라우마를 상쇄할 수 없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트라우마를 포함하는 기억이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실존적 고통의 현존이며 이외의 모든 논리적 설명은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내러티브로 환원될 수 없는, 비체계적인 트라우마의 기억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뒤늦게 나타나 수시로 고통을 호소하면서 현재와 갈등을 빚는 무의미한 과거의 상처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혼돈을 통해서 역사적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표피적이고 편파적인가를 보여주면서 과거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열어주는 행위일까? 아니면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부조화를 통해서 과거의 의미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시도하는 것일까? 앞에서 지적했듯이 어떤 사건이 기억으로 사유되기 위해서는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며, 그것이 사적인 기억인 경우, 그 불명확함이 가중된다. 따라서 역사와 기억에는 망각이 뒤따르게 되고 과거의 사건들은 불투명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트라우마가 역사적 경험을 간접적으로 지시할 뿐 과거를 온전하게 재현할 수 없으며, 트라우마 기억의 당사자가 자신의 의식을 지배하는 생생한 이미지를 온전하게 풀어낼 수 없음도 인정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물화의 위험성, 즉 트라우마를 지닌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희생자 의식을 특권화 함으로써 한 사회 전체에 희생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배타적인 자기 정당화라는 오류를 보여줄 수 있음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기억의 전수이고 이때의 기억은 이른바 ‘사후적 기억(postmemory)’이기에 이것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의 격차가 개입되기 마련이며, 기억을 이루는 개개의 요소들도 충격의 정도에 따라 의미가 ‘전치’되고 그 모습도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트라우마 혹은 트라우마적 기억이 왜 한편으로는 전혀 기억할 수 없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원초적인 생생함을 유지하면서 순식간에 출몰하는지, 왜 외부로부터 가해진 충격이 온전히 체험되지 못한 채 내면적 상처로 억압 되어있다가 원래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뒤늦게 강력하게 체험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기억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앞세운 역사적 인식 이상의 호소력과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트라우마에서 흘러나오는 절규는 당사자가 상기하기에도 너무나 고통스럽고 또 그만큼 두렵고 생경하다는 의미에서 그 만큼 더 절실하고 진실한 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소리를 내는 자아에 의한 합리적 기억의 재현이 당연히 불가능한데도, 이른바 객관적 위치에 서서 기억의 불확실함과 증언의 불일치함, 발화자의 비합리성을 이유로 발언에 대한 신뢰성 운운하는 것은 트라우마의 깊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안이한 언설일 뿐인 것이다.

이처럼 기억은 한 개인의 패배와 비극 그리고 주관적 기억에 대해서 단순한 연대기적 이해에 끝나지 않고, 올바른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만 가장 절실하고도 진실된 역사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와 관련된 역사적 논쟁에서 필요한 것은 학문적 실증성과 객관적 입장을 앞세운 기억들의 의도적인 왜곡이나 소멸이 아니라, 이들 할머니들의 기억과 증언을 우리들의 기억과 증언으로 이전시킴으로서 함께 과거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상상하는 것이다. 즉, 일본 측의 금전적 보상에 대한 수령여부의 문제 이상으로, 과잉된 민족주의적 정서를 비난하면서 수정주의적 역사쓰기를 시도하는 일부 역사가들에 대한 비난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민족과 젠더의 권력구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보편적 질서를 불러낼 방법을 창출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때 할머니들의 기억이 이런 작업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역사적 화해 문제도 이와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다. 개인적이던, 집단적이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화해는 필요하다. 문제는 시점과 내용 그리고 방법이다. 화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과거사의 망각이 또 다른 폭력이나 트라우마의 중층적 과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과거와 기억이 합리성과 역사성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트라우마의 근원이라는 목격하기 불편한 본질적 실체에로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지속적인 증언과 이를 상징하는 표상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소녀상’이라는 조형물은 개인적 기억을 형상화한 것을 넘어서서 기억의 사회적, 국가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기억을 수행하는 개인의 고유한 의지와 이를 수렴하는 심성으로서의 집단 의지를 어떻게 구분하고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과제를 지속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공감과 애도에 근거한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이다. 그렇지 않고 흔히 제기되는 미래의 역사발전과 상호간의 전향적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피맺힌 과거를 잊고 화해를 시도한다면 이것은 “균질적이고 획일적인 시간에 자기를 맡기려는 시간축의 전제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일부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개념을 나치의 민족 말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란 원래 신에게 올리는 제사라는 의미도 담고 있어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치 학살자들이 제사장이라는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용어 대신 쇼와(Shoah)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말살과 파괴를 뜻하며 무엇보다도 타민족에 의한 유대인 말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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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3<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T.S. Eliot : Photo from Google Images)

<Korea : Prof. Lee, Kangwha>

4) 기억과 예술

예술 장르에서도 기억이라는 주제는 크게는 역사와 집단의 의미, 작게는 한 개인의 존재의미와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기법은 시간예술로 분류되는 문학과 영화에서 자주 차용되는데, 이 두 장르에서 기억과 망각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시간적 과정을 보여주는 유용한 기법이 된다 (대표적인 기법이 바로 ‘의식의 흐름’ stream of consciousness 이다. 1910-1920년대에 걸쳐 영국 문학에 있어서의 소설의 실험적 방법으로서 심리학에서는 윌리엄 제임스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사고의 흐름’stream of thought (1884)이라 하였고, 이후에는 (1892) ‘의식의 흐름’ stream of consciousness 이라고 하였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큰 영향을 받은 이 개념은 어느 한때 개인의 의식에 감각, 상념, 기억, 연상 등이 계속적으로 흐르는 것을 가리킨 말이며, 이것을 문학에 이용하여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이다. 그는 이어서 <율리시스> (1922)에서도 의식의 흐름을 철저하게 추구하였는데 1인칭에 가까워져서 주인공의 성격 전체를 보일 수 있도록 기분이나 감정이 리듬이나 패턴을 수반하여 표현되어 있다. 이런것을 ‘내면의 독백’ 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버지니아 울프, D. 파소스, 헤밍웨이, S 앤더슨, 포크너, T.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등도 이러한 방법을 활용하였고, 시인으로는 T.S. Eliot, G. 스타인, 윌리엄스, 연극에서는 E. G. 오닐, A. 밀러 등의 작품에서도 부분적으로 응용되었다.) 우선, 문학에서 기억은 역사적 기억의 정통성에서 벗어난 기억들의 정당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공식적이거나 정치적인 기억에서 배제된 것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배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개인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찬탈해 가며, 이러한 자료들을 가지고 만든 공식적 역사를 자신들을 기념비로 남긴다. 그러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서 작가들은 배제되거나 왜곡된 기억 다시 불러 올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재생된 기억에 새로운 시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선택되고 보존되는 기억은 현재의 기반으로서만 아니라 미래를 구축하는 기반으로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BqOSJD2if8

(James Joyce, Ulysses Part 1. Stream of Consciousness, audio book )

영화의 경우에는 기억과 망각은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기억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이라는 영화적 시간의 주제는 2차 대전 이후 60년대 유럽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에서 시간과 의식을 드러내는데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의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은 경제적 빈곤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지만, 68혁명과 같은 또 다른 정치적 격동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냉전체제의 허구성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두 강대국의 패권적 전략이 결국 전쟁 그 자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당시의 지식인들은 전쟁이 남기고 간 어두운 정신적 상흔들을 씻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히 예술가들에게는 사유의 가장 큰 축으로서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책무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의 많은 모더니스트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에서 역사의 상흔이 남아있는 현실을 그려내면서 그들이 결코 전쟁의 역사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리하여 영화 속의 역사와 기억은 현존의 이미지가 아니라 부재의 이미지로 재현되며, 따라서 상상이 필요하게 된다. 영화는 역사와 기억을 시간에의 사유, 관념, 꿈, 무의식 등을  통해서 담아내면서 현존과 부재, 현실과 상상을 공존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들뢰즈의 설명을 잠시 빌려보도록 하자.

영화를 근본적으로 시간성의 매체로 파악하는데, 시간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다.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 공간 속에서 행동이 일어나는 방식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왔으며, 플래시백(flashback)이 사용된다고 해도 시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동반됨으로써 영화에서 시간은 간접적인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영화에서 꿈을 꾸는 장면마저도 현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영화에서의 시간성 전달 방식은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시간성의 불확실함 자체가 영상을 통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전통적인 헐리우드적인 시간성을 대치하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는데 (헐리우드 고전 영화인 경우, 역사 혹은 시간은 인과론적 관점에서 서사가 발생하고 전개되는 동질적 배경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후 유럽에서 대두된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인해서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과거의 역사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인간의 기억 혹은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억이 현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80년대 이후의 일련의 헐리우드 SF 영화에서 좀 더 변형된 방식으로 재현된다.)

첫째, 영화는 이제 더 이상 종합적 상황이 아닌 개별화되고 특수화된 상황으로 나타난다.

둘째,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투성과 진부함이라는 인식에서 영화에서 일상성의 장면이 증가하고 이 과정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사건의 연속성이 끊어짐으로써 영화에는 빈 공간과 우연성이 나타나게된다. 프랑스의 누벨 바그가 이를 대표한다.

셋째, 액션과 리 액션이 이어지는 대신 영화의 인물들은 이리저리 소요하며 부유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마지막은 세계대전 직후의 필름- 누아르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구체적 양상은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에서 출발하는데 이들은 운동, 동작, 공간이 아닌 시간성 자체를 보여주는 시지각적, 음향적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운동 – 이미지에서 시각 – 이미지로의 이동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전까지 시간은 몽타주의 중계를 통해 운동에 의존해 왔으며, 운동에 종속된 형태로 몽타주로부터 흘러나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현재에 귀속된다면, 시간은 몽타주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는 것 이외에는 재현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재는 과거. 미래와 불가분하게 공존하고 있으며, 들뢰즈는 영화가 이미지를 통해 이처럼 현재와 공존하는 과거와 미래를 모두 포착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리하여 현대 영화에서 인물들은 순수한 시지각적, 음향적 상황에 사로잡혀 일상적인 것 자체에 내맡겨진다. 이리하여 이제까지 시간이 운동에 의존하던 관계는 완전히 전복되어, 일탈적 운동이 시간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인물이나 움직임이 부재하는 빈 공간- 정물과 풍경 등을 찍은 장면- 들은 순수한 관조와도 같은 절대성에 도달하면서,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주체와 대상, 세계와 자아의 일치를 촉발 시키는 것이다. (Gilles Deleuze, Cinema 2, Pg 180)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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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2<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 Prof. Lee, Kangwha>

2) 탈역사와 문화적 역사들

포스트모던적 시각에서 볼 때 역사적 사료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 서술은 실은 권력의지에 의해 구성된 담론일 뿐이기에 사료는 사실(fact)이라고 말 할 수 없다. 포스트모던적 역사관은 랑케 이래 역사학을 주도해온 실증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역사가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과거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밝혀야 했다. 역사에 대한 그들의 논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왜 기억되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모여진다.

예를 들어, 홉스봄은 우리가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대부분 근, 현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졌음을 강조한다. 나아가서 국경일, 의례, 영웅이나 상징물들에 의해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전통의 창조’는 역사적으로 허구이며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과거의 이미지 혹은 담론들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국민국가의 등장과 민족주의 담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창조된 전통들이 어떻게 이질적인 사회적 존재들의 공통분모를 만들어내고, 이른바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창안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무수한 기념물들은 이러한 불확실한 과거의 사건과 현재 우리의 기억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며, 우리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서만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역사적 시간이란 그 자체가 만들어진 것이며, 끊임없는 변화의 체험에 근거를 둔 근대적 ‘기억 문화’와 크게 다를바 없다.

이처럼 ‘탈(脫)역사(posthistoire)’라는 새로운 기억 문화에서 각 개인 및 특정 집단은 더 이상 역사라는 공식적 시간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게 되었고, 역사학은 시간 영역에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특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새로운 역사학이 근대성 자체에 회의를 표명하면서 진보로서의 역사를 비판하였고, 근대사회 형성에서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주제들 – 근대, 진보, 이성, 자유 등 – 을 신화 파괴적인 방법으로 거부하였고 그 결과, 역사해석 방법의 해체와 역사학의 정체성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일정 부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근대가 초래한 혼돈과 이로 인한 근대성에 대한 깊은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역사의식을 낳은 비판 이성이나 실천 이성을 대신하는 이른바 ‘냉소적 이성’의 발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반드시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위축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 이유는 기억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역사학은 보다 확대된 지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예가 보여주었듯이, 역사가들은 이제 기억을 통해서 그동안 이른바 ‘숭고한’ 역사에 짓눌려왔던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한 사회의 집단기억을 형성하는 데 자신의 학문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역사의 죽음은 결국 의미 있는 희생이었고, 역사가들은 역사의 폐기물 위에 다시금 기억의 새싹이 돋아남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억과 역사를 상반된 양극으로 보느냐 동일시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활성적 기억과 비활성적 기억의 관계를 회상적 기억의 두 가지 상보적 양태로 파악하는데 있다. 활성적 기억을 기능기억이라고도 하는데 이 기능기억의 중요한 특징은 집단 관련성, 선택, 관련 가치, 목적의식 등이다. 역사학은 그것에 비하면 이차적 질서의 기억, 즉 현재와의 활성적 관계를 상실한 것을 기록한 기억들의 기억이다. 이것은 가치 있는 지식이나 활성적인 경험이 훼손되고 상실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학이 그런 비활성적인 유물들과 주인 없는 유품들을 보존하고 있을 뿐임을 자각할 때 기능 기억과 역사학은 새롭게 연결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약화 추세는 기억의 부흥을 위한 바람직한 조건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공적인 성격을 띠어왔던 ‘보편사(History)’는 이제 다양한 미시적 영역의 ‘역사들(histories)’로 분할되었고 이제 남게 된 것은 개개인이나 개별집단의 주관적 체험들뿐이다. 즉, 역사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억압되거나 무시당했던 사적인 기억들이 새로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가들로 하여금 기억을 더 이상 역사의 이름으로 폄하하지 않고 양자의 본원적 관계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성찰하게 하였다. 기억은 근대성의 자기 확실성을 뒷받침해오던 역사적 진리와 주체적 일원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주체가 진리를 독점하는 권력이 아니라, 진리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파생적 존재임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억’은 새로운 ‘기억문화’ 속에서 확대된 지평을 확인하면서 역사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3) 기억과 공간

기억이 이처럼 현재 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현재의 토양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동시에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기억과 망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기억의 집에는 항상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망각이 없으면 기억은 불가능하다. 망각을 토대로 기억이 선택되는 것은 그것이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즉 기억할 만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이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집단이다. 집단은 기억을 통해 일체감을 확인하고 유대를 강화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집단 정체성에 의해 구조화되는 기억이 일정부분 당파성을 지니게 됨은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기억은 사회적 권력 관계에 종속되고 이익과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기억을 둘러싼 집단 간 경쟁과 갈등이 잘 보여 주는데, 기억의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프랑스에서의 ‘기억의 터(lieux de memoire)’ 연구이다.

“요즘 우리가 기억에 관해 그토록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바로, 기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기획하여 1984년부터 1992년까지 발간한 총 7권의 저작으로 구체화된 이 작업은 역사가들이 기억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주목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대한 작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 바로 192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한 아날학파였고, 이를 대표하는 학문적 개념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가 제시한 ‘집단기억(memoire collective)’이론이었다.

알박스에 의하면 기억이란 개인적이기보다는 집단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집단기억은 단순히 개인의 기억들이 집합적으로 모여서 형성되지 않는다. 집단 기억을 집합적 기억으로 번역하는 경우, 집단기억의 성격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단기억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역사적 기록과도 다르다. 집단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일에 관한 신념체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점에서 집단기억은 객관성을 추구하는 역사적 해석과도 다르기에 역사적 사실을 넘어설 수도 있으며 심지어 무관할 수도 있다. 동시에 집단기억은 집단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박스의 이론에 의지한 ‘기억의 터’ 연구는 한 민족의 집단기억이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사’ 이후의 대안적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여기에서 기억을 사회의 집단적 현상으로 보면 기억이 왜 과거보다는 오히려 현재 지향적인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기억은 언제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출발하며, 과거의 현상이 아니라 현재의 현상이다. 다시 말해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고정된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프랑스 역사학계의 이러한 연구는 독일 역사학계에 창조적으로 수용되었다. 독일에서는 프랑스에 비해 좀 더 안정적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기억의 형태에 주목했다. 이러한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가 바로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레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다. 이들이 제시한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에 따르면 한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 형식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상징(물), 도상, 묘비, 사원, 기념비 또는 제의와 축제 등이 있다.를 통해서 기억은 오래 전승되고 지속되는데, ‘기억문화’ 연구는 이러한 기억이 전승되는 형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의 집단 정체성 안에는 다양한 집단 기억이 교차할 수 있으며, 하나의 집단 정체성은 하나의 집단기억만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또 정체성이 집단적 기억으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집단은 집단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이지, 집단기억이 무조건 하나의 집단정체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체성의 형성에는 집단이 속해 있는 구조와 환경, 역사적 상황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기억을 놓고 벌이는 개인과 사회, 저항과 억압이라는 정치적 투쟁이 제기되며 이것을 조건 지우는 문화적 가치체계, 특수한 기억을 매개로 결속된 ‘기억공동체’ 그리고 기억의 형상화 및 이를 위한 매체 등이 중요한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분명해진 사실은 기억보다 우월해 보이던 역사가 실은 포괄적인 ‘기억문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개인의 기억에 비해서 별로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새로운 기억문화에서 특정 개인과 집단은 더 이상 역사라는 공식적 시간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게 되었고 역사학은 시간 영역에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특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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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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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Google : Credit to Salvador Dali)

<Korea : Prof. Lee, Kangwha>

< 역사에서 기억으로, 정치에서 문화로>

지난 호 까지 영화와 문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호부터는 역사와 기억, 정치와 문화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들어가는 글

일상에서 기억과 역사라는 말은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기억은 한 개인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나 느낌 등 심리적 현상과 관련되는 반면, 역사라는 말은 대체로 평범하지 않은 거대한 주체들, 즉 민족이나 국가, 계급 등 이전부터 존재해온 어떤 집단적이고도 숭고한 흐름과 관련된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실되거나 변질되기 마련이며 이에 대한 문자적 인식을 토대로 시작된 것이 역사이기에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기억의 수호자’로 보았다. 그럼에도 역사가 기억을 토대로 한다는 인식은 오래된 것이고 이러한 전통적 인식은 오늘날까지 일정부분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억과 역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차이는 시간에 대한 인식과 표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억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나 단절은 사라지고 과거가 곧바로 현재화된다. 반면 역사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된다. 역사는 과거의 종결을 전제로 한다. 역사는 과거를 되짚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변화와 차이점을 인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를 객관적 대상으로 인식하기를 원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과 과거에 대한 표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역사와 기억의 관계는 긴장과 갈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과거와 거리를 두고 그것을 지적,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와 현재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간과하고 양자를 정서적으로 동일시하는 기억에는 항시 오류와 오용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기억은 역사의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역사가들이 보기에 기억은 개별적이고 자의적이고 산만하며 너무 원초적 감정에 빠져 있어서 신뢰할 수 없기에, 보다 체계적인 논리적인 과거의 배열인 역사의 규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리하여 오래도록 기억은 역사의 견고한 질서에 편입된 채 오로지 역사 원료의 공급처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런데, 최근 학문적으로 가장 관심의 주제 중 하나가 기억이다. 연구재단들은 기억에 관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른바 구술사라는 방식을 통한 사적인 기억의 기록과 다양한 학술적 결과물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기억은 단순히 역사학에 국한된 주제가 아니다.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종교학 그리고 문학, 예술, 대중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보편적 주제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심리학적 전회는 이러한 추세를 가중시켰다. 이리하여 인문, 사회과학 여러 영역에서 ‘역사’라는 자리에 ‘기억’이 대신하였고 드디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기억은 역사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2. 본 글

1) 근대 역사학과 새로운 역사학

기억 혹은 회상이 역사를 대신하여 과거 사실에 대한 발언자로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역사학의 흐름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세기 말 독일의 역사학자, Leopold von Ranke 랑케 이후 근대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이라고 칭해지는 이러한 흐름들은 서구 각국의 학문풍토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된 관점과 방법을 공유하였다.

첫째, 이른바 ‘과학’으로서의 역사는 과거 사회의 전체상을 재구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실재의 이면에 은폐된 구조가 그 실재의 설명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구조결정론에 바탕을 두었다. 이러한 방법은 어떤 지식의 확실성이란 그것이 기초를 둔 중심개념을 통하여 드러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이것은 과학적 역사란 역사연구가 객관적 실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지향해야 한다는 랑케 이래 근대 역사학의 기본전제였다.

둘째, 역사가들은 사실과 허구, 역사서술과 문학의 이분법적 구분을 상식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역사가들도 역사연구가 객관적 실재에 곧바로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과거의 사실이 그것의 기록 및 그 기록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겪는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E. H. 카는 역사적 사실이 객관적 실재의 투명한 반영이 아니며 그것은 역사가가 현재의 문제의식에 의거하여 과거의 사실들에서 그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카의 상대주의도 객관적 실재로서의 과거를 전제로 하기에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 사이의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셋째, 과학적 역사는 무엇보다도 진보의 맥락에서 과거를 해석한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근대사회의 형성 및 그 구조에 관심을 기울였고, 근대성의 역사적 체현이야 말로 과학적 역사 혹은 역사학의 중심테마였다. 과학적 역사는 진보로서의 역사에 대한 모더니즘적 확신을 공통적으로 전제하였다. 이리하여 역사 연구는 과거 사실에 대한 자료의 수집이라는 일차적이고 실증적인 차원을 넘어서 역사에서의 진보라는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제기된 새로운 역사서술의 흐름은 이러한 특징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역사학은 전체에서 미시적인 주제로, 구조에서 개인의 능동적인 행위로, 그리고 정치에서 문화로 연구의 초점을 바꾸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친 참혹한 전쟁을 겪은 후 대두된 이른바 신문화사 또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은 이전의 과학적 역사학이 추구하는 방법론과 이념에서 탈피하려는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새로운 역사학은 전체사 서술을 내세우지 않는다. 즉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생각해왔던 구조나 중심개념을 해체함으로써 사회 환원론적 설명의 가능성을 봉쇄한다. 역사인식에서 전체의 준거가 될 수 있는 ‘중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전체사 혹은 구조사의 패러다임에서 미시적 개인의 일상생활과 문화로 연구대상을 옮기게 된다. 이제 역사학은 구조와 중심이 자리했던 곳에 일상의 문화와 상징이 대신한다. 여기에서 문화란 사람의 행위유형 또는 그 행위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규제하는 프로그램으로 이해된다. 문화의 사회사가 사회의 문화사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역사학은 문화라는 텍스트에 나타난 사회적 표현들의 의미를 해독하며, 이를 통하여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역사학은 객관적 실재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그 자체를 부정한다. 역사학에서 언어와 실재의 괴리에 대한 강조는 언어학 및 문예이론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근대적 사유에서 표상은 사람이 실재를 이해하는 인식의 전부로 간주된다. 그러나 소쉬르 이래 언어 이론은 언어가 실재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고. 이런 관점에서 역사인식 역시 과거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낯익고 친숙한 공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리하여 새로운 역사학은 과거와 그 인식 문제에 관하여 담론적 명제를 내세우게 된다. 과거의 사실은 저기에 있다. 그러나 그 사실(실재)은 항상 담론을 통해서 존재한다. 즉, 역사가는 그 실재를 그것에 대한 담론적 구성물 안에서만 인지하고 경험할 뿐이다. 이와 같은 명제 아래서 객관적 실재와 허구 사이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된다.

이제 역사와 문학, 사실과 허구의 구분은 불필요하며, 역사서술은 역사적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은유를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1980년대 이후 기억과 회상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지대해진 또 다른 이유에는 기록을 축적하기 위한 기술적, 자연적 저장 장치의 역할과 기능의 변화라는 시대적 상황도 있었다.

첫째, 과거의 기록 형식을 훨씬 능가하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전통적인 기억의 위상과 기능이 전환점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을 통해 무제한의 시·청각적 이미지들이 범람하게 되자 이러한 ‘가상현실’ 앞에서 역사는 ‘객관성’이라는 종래의 신성한 권위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기억의 기능을 수령하는데 있어 문자 매체나 아날로그 매체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대신, 컴퓨터가 중요한 정보 저장 수단으로 대두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기억 모델, 즉 저장과 작동이라는 컴퓨터의 기억 모델이 일반화되었다.

이리하여 저장 기술 매체에 매몰되는 것을 지양하면서 그 기술에서 새로운 형식의 선택과 자아 성찰 방식을 획득해야 하기에 역사기록에서의 기억에 대한 물음이 새롭게 도출되는 것이다.

둘째, 이처럼 다양한 기억 저장 장치들이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으로 인간의 기억과정은 저장과 작동이라는 기술 매체의 단순 체계와 다르다는 것이 부각되었다. 기억과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방식에 대한 관심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시작되었는데, 여기에서 인간의 기억은 창조적 과정이고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뇌의 기능 방식에 대한 신경 생물학적인 인식에서 볼 때는 잘못된 기억조차도 순수하게 심리적인 착각이나 억압이 아니라, 생리학적인 이유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점도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두뇌 연구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저장 모델의 보편화와 인간의 기억 행위의 복잡성 사이의 긴장이라 부를 수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기억이라는 주제가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의 대두라는 역사학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존의 역사라는 제국의 권력 하강을 불러왔다. 역사가 그간 누려온 권력의 비밀은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자산에 있었다. 역사는 오랫동안 이른바 ‘집단적 시간’이라는 논리적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인간 삶의 근거와 방향성을 나름대로 제시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이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세계화’ 물결은 기존의 집단 정체성을 크게 침식하였고, 민족, 국가, 계급 등과 같은 전통적 집단의 긴밀한 유대감은 급격히 사라져갔다. 이제 역사는 기껏해야 ‘문화재’의 형태로 전시화 되었고, 공공성으로서의 역사는 개인적인 향수, 또는 오락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이처럼 인식론적 차원에서 역사 인식의 합리성과 객관성이 근본적으로 불신 받게 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지식으로서의 역사학의 위상문제가 논의 되었고, 존재론적 차원에서 객관적 사건이나 구조의 전개가 아닌 과거를 재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narratives)로서 기억이 새삼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비로소 기억은 기존의 역사를 넘어서 과거의 다양한 사건과 사태를 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재현방식으로 그 역할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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