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일요일의 문화 산책

Causation and Freedom, Holistic View 3<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아름다운 몸 그리고 타자의 시선

남성의 벗은 몸이 사회적 차원에서 정당한 지위를 획득한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부터였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 전 720년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남성들의 경기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이중 육상 경기에 참가한 오르시포스가 경기에 열중한 나머지 그의 로인 클로스가 벗겨졌다. 오르시포스는 우승을 했고, 경기 성적을 좋게 하려면 알몸이 좋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그리스인들에게 좋은 것은 동시에 아름다운 것이기에 나체는 좋은 점수를 얻게 해 주니 좋고, 율동미 넘치는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니 좋다는 일석이조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후 경기장에서 남성들의 알몸경기를 일반화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움 그 자체 외에 다른 의도를 담지 않은 남성 누드는 사회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당당한 형상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에 여성의 경우 경기 참여 자체가 금지되었고, 입장도 제한적이었다. 기혼 여성의 경우 남성의 벗은 몸이 성적 연상을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관람이 거부되었고, 미혼 여성은 소수를 선발해서 경기장 가까운 곳에서의 관람을 허락하였다. 이들의 역할은 승리의 월계관을 쓴 남성들 주변을 둘러쌈으로서 승리자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시키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최초의 나체상은 여성의 몸이었다. 약 3만년에서 2만 5천년 사이에서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Venus von Wilendorf>는 엄청나게 큰 가슴과 지나치게 과장되어있는 음부로 유명한데, 이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생식능력에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런 요소들이 과도하게 강조되었기에 결코 미적 차원에서의 조형물은 아니었다. 여성이 몸이 아름다운 나체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여성에게 부여되었던 다산과 출산의 상징이 남성들에게 옮겨지면서부터였다. 농경문화는 여성의 생산성과 관련하여 여성의 몸에 씨를 뿌리는 남근(南根)이 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농경은 남성의 근육노동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의 벗은 몸을 드러낼 수 있었다. 더구나 벗은 몸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것이기에 고대 그리스에서 신은 흔히 남성의 모습을 닮았고 이들의 벗은 몸은 신적 존재임을 표현하는 하나의 특권적 기호였다. 이리하여 남근을 자랑스럽게 드러낸 조형물은 그리스 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반면, 여성들은 전혀 다른 이유로 자신의 벗은 몸을 드러내어야 했다. 선악과를 아담에게 권함으로서 인류의 죄를 유전시킨 하와나 한 공동체에서 집단적으로 멸시나 천대를 받는 창녀처럼 종교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부끄럽거나 뭔가 문제가 있을 때 여성은 벗은 몸으로 등장하였다. 물론 밀로의 비너스처럼 여신들도 벗은 몸으로 등장하지만 남성들은 이 모두를 싸잡아서 쾌락적 시선의 대상으로 위치시켰고, 대신 (에덴동산에서의 나뭇잎과 가죽옷처럼) 여성의 몸을 감싸는 옷은 남성에 의해서 주어지는 사회적 보호이자 자연적 존재인 여성에게 부여된 문화의 징표였던 것이다.

인간의 육체를 죄악시하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중세 기간 동안 이런 표현양식은 잠시 주춤했지만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인간의 몸은 다시 회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이 경우에도 신과 신화와 성서에서의 영웅은 남성적 미의 구현체이지만, 여성의 (벗은) 몸은 대부분이 남성 화가들에 의해서 시각적 즐거움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규정된 채 수동적인 모습으로 화폭에 담겨졌다. 남성의 시선에 의해서 인정되는 남성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좋음의 근거인데 반해서, 근원적으로 죄로 가득 찬 여성의 몸은 오로지 남성들의 쾌락적 시선에 의해서 그 존재성이 인정받은 것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정치적인 지위가 상대적으로 변화하였고 여성이 선거권을 쥐게 된 1920년대 이후 이러한 양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림 속 여성들 역시 좀 더 당당한 모습으로 그들의 벗은 몸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클림트의 그림 속 여성들이 대표적이다. 과감한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여성들에게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자신감마저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 사회 영역에서의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것을 남성들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고 이러한 불편한 심경은 회화와 사진, 영화 등에서 포르노그라피와 더불어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으로 외화 되었다. 그 대신 남성적 시선에 더 이상 규정되지 않는 자유롭고 당당한 여성은 여성 화가의 손에서 제작되었다.

한편 이 시대에는 다른 차원에서의 여성적 가치가 강조되었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서 남성들은 항상 지배와 착취의 구조와 전쟁과 파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왔고 20세기는 이러한 상황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반면, 여성들은 늘 생명을 재생산하고 가족 공동체를 돌봄으로써 평화와 생명과 돌봄의 가치를 오랫동안 내면화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여성들은 본질적으로 전쟁 대신 평화를, 경쟁 대신 연대를, 파괴 대신 보존을, 소멸 대신 생산을, 이성 대신 감성을, 수직적 질서 대신 수평적 관계를, 지배 대신 돌봄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가치실현은 바로 생명의 잉태와 출산으로 상징되는 여성의 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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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sation and Freedom, Holistic View 2<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허구적 진실, 그 충만함과 자유로움

학제적(學際的 interdisciplinary)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은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학문과 학문 사이의 경계가 와해되고, 여러 지적 영역 사이에서 유동적이고 상관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후 자연과학과 인문학, 문학과 역사, 철학과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상호간 적극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신과학자들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단절을 우려하였고, 신역사주의자들은 문학과 역사의 벽을 허물려고 노력하였고, 해체주의자들은 문학과 철학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를 거부하였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과 종교를 함께 아우르는 개념으로 ‘통섭’을 주장하였고, 역사학자 로렌스 스톤은 “역사학에서 실재하는 것은 문학에서의 상상과 마찬가지로 상상으로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데리다 역시 “철학도 궁극적으로 문학 장르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함을 강조하면서 문학과 철학의 전통적 구분을 일종의 ‘지적인 폭력’으로 여기는 로티와 의견을 같이 하였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많은 논쟁을 동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고대철학에서 문학, 혹은 예술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예술은 열등한 것을 모방해서 더 열등한 것을 낳는 행위이기에 화가는 실재가 아닌 가상을 모방하면서 그 모방 기술로써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이며, 시인 역시 언어라는 물감으로 자신의 시에 채색을 하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보다 시가 더 보편적이라는 차원에서 철학적임을 주장하였지만 플라톤의 견해가 이후 문학과 예술에 관한 관점을 형성하는데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문학작품을 멀리하라고 수차 경고하였는데 이것은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 극도로 불안감을 드러낸 개신교, 특히 청교도주의자들에 의해서 다시 반복된다. 데카르트 역시 뛰어난 수학자로서 인간의 합리성을 사유의 기초로 삼으려고 했기에 문학과 철학에 대한 플라톤적 구분은 당연히 귀결이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경향은 여전하였는데 특히 분석철학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들에 의하면 정의적이고 가치적인, 이른바 수행적 언어행위로서의 문학이 아닌, 실증적이고 인식적인, 이른바 기술적 언어행위에 포함되는 철학 혹은 과학이야말로 이상적인 언어로 분류되는 것이다.

플라톤을 비롯한 몇몇 철학자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학이 미토스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시인은 구체적인 영상을 정서적 언어를 통해서 그려내지만, 로고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철학이 논리적 언어를 통해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을 전개를 전개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실이다. 이런 차원에서 시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비합리적이고 심지어 무질서하게 보여질 수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호메로스와 관련된 전설이 잘 보여주듯이 시인들이 고대 이래로 ‘뮤즈에게서 영감을 받은 사람’ 혹은 ‘신들린 사람’, 좀 더 심하게 말해서 ‘미치광이’ 등으로 호칭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합리성에서 시인의 위대함이 비롯된다는 것이 문학의 역설이다. 다시 말해서 문학 혹은 예술의 근원적 상상력이 이러한 ‘광기’에 있으며, 무질서한 상상력을 통해서 문학가는 특유의 신비하고도 황홀한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다.

물론 시인도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대상에 눈을 던질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철학자가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영원한 존재라든가, 사고의 정확성 혹은 궁극적인 가치 등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문학이 언어를 통해서 생생하고, 감각적인 형상을 창조하는데 반해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표현 대신, 진리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에 전념한다는 점에서 철학은 오히려 과학과 흡사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의 고유성을 철학을 비롯한 다른 합리적인 사유방식과의 비교에서 확인할 수 없다. 즉 객관적인 사태나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의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시는 그 존재의미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시에 대한 하이데거적 설명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시인이란 은총의 천후(天候)에 순응하는 자들이다. 그들만이 생명을 예감하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대지에 버티고 있다. 신은 이 세계를 창조하였고 그 가운데 인간을 두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이기에 그 둘의 직접적 접촉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시인을 신과 인간과의 매개자로 하여 신이 인간에게 주려고 했던 ‘사랑’을 이들을 통해서 드러내게 한다. 이제 엄밀한 ‘간접성’에 속하는 시인은 신의 성스러운 ‘법칙’에 속하게 되고, ‘은총’아래 있기 때문에 모든 유한한 것을 앞질러 현존하는 ‘무한한 것’에 의지하고 또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의 원형인 ‘포도의 신’ 디오니소스가 등장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핀다로스의 시를 인용하면서 디오니소스의 광기와 시인의 광기를 이렇게 비교한다. “그리하여 이제 대지의 아들들은 위험을 모르고 하늘의 불을 마신다. 그러나 시인들이여!! 우리에게 온당한 것은 신의 풍우 가운데 맨머리에서서 그것을 마셔야 하리니…” 여기에서 ‘하늘의 불’은 바로 ‘시인들의 영혼 가운데 전화된 불, 즉 열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축제의 밤을 지낸 후 “어둠 속에서 노심초사 새벽을 기다리는 디오니소스처럼” 긴 기다림 끝에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어둠과 카오스로서의 이 세계를 빛과 로고스의 세계로 이행하고 대지는 마침내 밝은 태양 아래서 본래적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 모든 과정이 전문적 지식으로부터 빠져 나온 예술적 충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예술은 자유 그 자체인 것이다.

플라톤의 지적처럼 시인과 예술가가 거짓말쟁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잠시 우리를 현혹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대적 사유가 객관성을 위해서 우리에게 강요하였던 주객분리라는 이원론도 사라지고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여하한 믿음도 붕괴된 이 시점에, 환타지와 비합리성으로 재무장한 시와 예술이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생태학자들의 실증적인 연구물이나 국제정치학자들의 정치(精緻)한 논문들 대신, 시각적 환상의 극치인 <아바타>라는 시물레이션을 통해서 생태파괴에서 나타난 인간의 야만성과 패권적 대외정책이 초래할 특정국가의 비극적 결말을 확인하게 되는 이유를 숙고해야 한다.

시(poet)라는 단어가 그리스어 poiesis에서 유래하였고 그 의미가 ‘무에서 유의 창조’였다면 시인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세계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언어가 존재의 집”이며, “인간이 존재의 목동“이라고 말했을 때, 하이데거는 이른바 비은폐성(aletheia)으로서의 시적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으며, 들뢰즈가 “이 시대의 진정한 철학자는 바로 예술가”라고 표현했을 때 그는 이른바 ‘허구’를 들려주는 시와 예술이 철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진실’을 담보하는 사유적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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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4<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 Prof. Lee, Kangwha>

5) 기억과 트라우마

이제, 기억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논쟁적 주제와 관련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역사적 재현의 문제와 관련된 가장 첨예한 현안은 바로 ‘국정 교과서 문제’와 ‘위안부 문제‘이다. 이 중에서 한국사에 대한 관점과 관련된 공적 논쟁인 ’국정 교과서문제‘보다, 소수의 특수한 집단의 개인적 기억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위안부 문제‘가 ’기억을 둘러싼 담론‘의 쟁점적 특성을 훨씬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함축하고 있는 이 주제의 담론적 논쟁은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 할머니들의 기억이 왜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어야 하며,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과거가 왜 우리들 기억의 또 다른 원천이 되어야 하느냐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과 관련하여 20세기의 전쟁과 대량학살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할 수 있는 용어가 ’트라우마‘이다. 그리고 이때 특히 주요한 개념이 ‘내러티브 기억(narrative memory)’과 ‘트라우마 기억(traumatic memory)’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런 구분을 처음으로 시도한 프랑스 정신과 의사 자네(Janet)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습관적 기억, 내러티브 기억, 트라우마 기억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능력에 해당되는 것이 ‘내러티브 기억’으로 인간이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생성하는데 기여하는 정신활동이다.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이야기 체계에 능동적으로 편입시킴으로써 개인은 정상인의 심리를 유지하고 살 수 있다. 이와 달리 내러티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기억이 있는데 바로 트라우마 기억이다. 극도록 충격적인 체험인 트라우마 기억은 내러티브에서 이탈하여 무의식에 고착함으로써 의식의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철저히 고립된 사건으로 사회성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트라우마를 논의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홀로코스트(Holocaust)이다. 나치에 의해서 자행된 유대인과 여타 소수민들의 제노사이드(genocide)를 가르키는 홀로코스트는 오늘날 서구 세계의 자기 이해와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미국의 문화 이론가 호이센이 지적했듯이 전 세계 여타 제노사이드를 비추는 강력한 프리즘이 되었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는 특정민족이나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은 전 지구적 차원의 트라우마를 대변하게 되었다. 혹자는 홀로코스트 경험의 참혹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쟁으로 일관된 20세기 전체를 ‘포스트-트라우마 세기(post-trauma century)라고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다. 상황과 양상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 근대사의 경우에는 일본군 위안부와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그리고 5.18 민주화 운동 등이 유사한 경우일 것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된 생생하고도 충격적인 과거는 당사자가 이해하지 못한 불가항력의 광경들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기억들은 적절한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시간의 경과가 무색한 생생한 이미지가 되어서 끊임없이 현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서 삶을 잠식해버린다. 이것을 어떤 식으로 증언해야하지만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기에, 내러티브적 기억이 되지 못하고 무질서하게 반복되는 트라우마 기억으로서 강박관념을 드러낼 뿐이다. 이처럼 논리적 내러티브로는 온전하게 보여줄 수 없는 기억의 재현이기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과거나 현재라는 유기적 관계에 기초한 역사란 무의미하며, 진위판별이나 인과적 설명, 내러티브를 통한 합리적 재현 역시 트라우마를 상쇄할 수 없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트라우마를 포함하는 기억이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실존적 고통의 현존이며 이외의 모든 논리적 설명은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내러티브로 환원될 수 없는, 비체계적인 트라우마의 기억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뒤늦게 나타나 수시로 고통을 호소하면서 현재와 갈등을 빚는 무의미한 과거의 상처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혼돈을 통해서 역사적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표피적이고 편파적인가를 보여주면서 과거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열어주는 행위일까? 아니면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부조화를 통해서 과거의 의미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시도하는 것일까? 앞에서 지적했듯이 어떤 사건이 기억으로 사유되기 위해서는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며, 그것이 사적인 기억인 경우, 그 불명확함이 가중된다. 따라서 역사와 기억에는 망각이 뒤따르게 되고 과거의 사건들은 불투명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트라우마가 역사적 경험을 간접적으로 지시할 뿐 과거를 온전하게 재현할 수 없으며, 트라우마 기억의 당사자가 자신의 의식을 지배하는 생생한 이미지를 온전하게 풀어낼 수 없음도 인정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물화의 위험성, 즉 트라우마를 지닌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희생자 의식을 특권화 함으로써 한 사회 전체에 희생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배타적인 자기 정당화라는 오류를 보여줄 수 있음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기억의 전수이고 이때의 기억은 이른바 ‘사후적 기억(postmemory)’이기에 이것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의 격차가 개입되기 마련이며, 기억을 이루는 개개의 요소들도 충격의 정도에 따라 의미가 ‘전치’되고 그 모습도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트라우마 혹은 트라우마적 기억이 왜 한편으로는 전혀 기억할 수 없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원초적인 생생함을 유지하면서 순식간에 출몰하는지, 왜 외부로부터 가해진 충격이 온전히 체험되지 못한 채 내면적 상처로 억압 되어있다가 원래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뒤늦게 강력하게 체험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기억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앞세운 역사적 인식 이상의 호소력과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트라우마에서 흘러나오는 절규는 당사자가 상기하기에도 너무나 고통스럽고 또 그만큼 두렵고 생경하다는 의미에서 그 만큼 더 절실하고 진실한 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소리를 내는 자아에 의한 합리적 기억의 재현이 당연히 불가능한데도, 이른바 객관적 위치에 서서 기억의 불확실함과 증언의 불일치함, 발화자의 비합리성을 이유로 발언에 대한 신뢰성 운운하는 것은 트라우마의 깊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안이한 언설일 뿐인 것이다.

이처럼 기억은 한 개인의 패배와 비극 그리고 주관적 기억에 대해서 단순한 연대기적 이해에 끝나지 않고, 올바른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만 가장 절실하고도 진실된 역사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와 관련된 역사적 논쟁에서 필요한 것은 학문적 실증성과 객관적 입장을 앞세운 기억들의 의도적인 왜곡이나 소멸이 아니라, 이들 할머니들의 기억과 증언을 우리들의 기억과 증언으로 이전시킴으로서 함께 과거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상상하는 것이다. 즉, 일본 측의 금전적 보상에 대한 수령여부의 문제 이상으로, 과잉된 민족주의적 정서를 비난하면서 수정주의적 역사쓰기를 시도하는 일부 역사가들에 대한 비난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민족과 젠더의 권력구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보편적 질서를 불러낼 방법을 창출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때 할머니들의 기억이 이런 작업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역사적 화해 문제도 이와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다. 개인적이던, 집단적이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화해는 필요하다. 문제는 시점과 내용 그리고 방법이다. 화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과거사의 망각이 또 다른 폭력이나 트라우마의 중층적 과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과거와 기억이 합리성과 역사성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트라우마의 근원이라는 목격하기 불편한 본질적 실체에로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지속적인 증언과 이를 상징하는 표상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소녀상’이라는 조형물은 개인적 기억을 형상화한 것을 넘어서서 기억의 사회적, 국가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기억을 수행하는 개인의 고유한 의지와 이를 수렴하는 심성으로서의 집단 의지를 어떻게 구분하고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과제를 지속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공감과 애도에 근거한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이다. 그렇지 않고 흔히 제기되는 미래의 역사발전과 상호간의 전향적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피맺힌 과거를 잊고 화해를 시도한다면 이것은 “균질적이고 획일적인 시간에 자기를 맡기려는 시간축의 전제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일부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개념을 나치의 민족 말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란 원래 신에게 올리는 제사라는 의미도 담고 있어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치 학살자들이 제사장이라는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용어 대신 쇼와(Shoah)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말살과 파괴를 뜻하며 무엇보다도 타민족에 의한 유대인 말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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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3<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T.S. Eliot : Photo from Google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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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억과 예술

예술 장르에서도 기억이라는 주제는 크게는 역사와 집단의 의미, 작게는 한 개인의 존재의미와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기법은 시간예술로 분류되는 문학과 영화에서 자주 차용되는데, 이 두 장르에서 기억과 망각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시간적 과정을 보여주는 유용한 기법이 된다 (대표적인 기법이 바로 ‘의식의 흐름’ stream of consciousness 이다. 1910-1920년대에 걸쳐 영국 문학에 있어서의 소설의 실험적 방법으로서 심리학에서는 윌리엄 제임스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사고의 흐름’stream of thought (1884)이라 하였고, 이후에는 (1892) ‘의식의 흐름’ stream of consciousness 이라고 하였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큰 영향을 받은 이 개념은 어느 한때 개인의 의식에 감각, 상념, 기억, 연상 등이 계속적으로 흐르는 것을 가리킨 말이며, 이것을 문학에 이용하여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이다. 그는 이어서 <율리시스> (1922)에서도 의식의 흐름을 철저하게 추구하였는데 1인칭에 가까워져서 주인공의 성격 전체를 보일 수 있도록 기분이나 감정이 리듬이나 패턴을 수반하여 표현되어 있다. 이런것을 ‘내면의 독백’ 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버지니아 울프, D. 파소스, 헤밍웨이, S 앤더슨, 포크너, T.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등도 이러한 방법을 활용하였고, 시인으로는 T.S. Eliot, G. 스타인, 윌리엄스, 연극에서는 E. G. 오닐, A. 밀러 등의 작품에서도 부분적으로 응용되었다.) 우선, 문학에서 기억은 역사적 기억의 정통성에서 벗어난 기억들의 정당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공식적이거나 정치적인 기억에서 배제된 것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배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개인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찬탈해 가며, 이러한 자료들을 가지고 만든 공식적 역사를 자신들을 기념비로 남긴다. 그러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서 작가들은 배제되거나 왜곡된 기억 다시 불러 올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재생된 기억에 새로운 시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선택되고 보존되는 기억은 현재의 기반으로서만 아니라 미래를 구축하는 기반으로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BqOSJD2if8

(James Joyce, Ulysses Part 1. Stream of Consciousness, audio book )

영화의 경우에는 기억과 망각은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기억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이라는 영화적 시간의 주제는 2차 대전 이후 60년대 유럽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에서 시간과 의식을 드러내는데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의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은 경제적 빈곤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지만, 68혁명과 같은 또 다른 정치적 격동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냉전체제의 허구성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두 강대국의 패권적 전략이 결국 전쟁 그 자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당시의 지식인들은 전쟁이 남기고 간 어두운 정신적 상흔들을 씻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히 예술가들에게는 사유의 가장 큰 축으로서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책무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의 많은 모더니스트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에서 역사의 상흔이 남아있는 현실을 그려내면서 그들이 결코 전쟁의 역사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리하여 영화 속의 역사와 기억은 현존의 이미지가 아니라 부재의 이미지로 재현되며, 따라서 상상이 필요하게 된다. 영화는 역사와 기억을 시간에의 사유, 관념, 꿈, 무의식 등을  통해서 담아내면서 현존과 부재, 현실과 상상을 공존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들뢰즈의 설명을 잠시 빌려보도록 하자.

영화를 근본적으로 시간성의 매체로 파악하는데, 시간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다.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 공간 속에서 행동이 일어나는 방식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왔으며, 플래시백(flashback)이 사용된다고 해도 시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동반됨으로써 영화에서 시간은 간접적인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영화에서 꿈을 꾸는 장면마저도 현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영화에서의 시간성 전달 방식은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시간성의 불확실함 자체가 영상을 통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전통적인 헐리우드적인 시간성을 대치하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는데 (헐리우드 고전 영화인 경우, 역사 혹은 시간은 인과론적 관점에서 서사가 발생하고 전개되는 동질적 배경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후 유럽에서 대두된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인해서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과거의 역사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인간의 기억 혹은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억이 현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80년대 이후의 일련의 헐리우드 SF 영화에서 좀 더 변형된 방식으로 재현된다.)

첫째, 영화는 이제 더 이상 종합적 상황이 아닌 개별화되고 특수화된 상황으로 나타난다.

둘째,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투성과 진부함이라는 인식에서 영화에서 일상성의 장면이 증가하고 이 과정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사건의 연속성이 끊어짐으로써 영화에는 빈 공간과 우연성이 나타나게된다. 프랑스의 누벨 바그가 이를 대표한다.

셋째, 액션과 리 액션이 이어지는 대신 영화의 인물들은 이리저리 소요하며 부유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마지막은 세계대전 직후의 필름- 누아르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구체적 양상은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에서 출발하는데 이들은 운동, 동작, 공간이 아닌 시간성 자체를 보여주는 시지각적, 음향적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운동 – 이미지에서 시각 – 이미지로의 이동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전까지 시간은 몽타주의 중계를 통해 운동에 의존해 왔으며, 운동에 종속된 형태로 몽타주로부터 흘러나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현재에 귀속된다면, 시간은 몽타주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는 것 이외에는 재현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재는 과거. 미래와 불가분하게 공존하고 있으며, 들뢰즈는 영화가 이미지를 통해 이처럼 현재와 공존하는 과거와 미래를 모두 포착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리하여 현대 영화에서 인물들은 순수한 시지각적, 음향적 상황에 사로잡혀 일상적인 것 자체에 내맡겨진다. 이리하여 이제까지 시간이 운동에 의존하던 관계는 완전히 전복되어, 일탈적 운동이 시간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인물이나 움직임이 부재하는 빈 공간- 정물과 풍경 등을 찍은 장면- 들은 순수한 관조와도 같은 절대성에 도달하면서,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주체와 대상, 세계와 자아의 일치를 촉발 시키는 것이다. (Gilles Deleuze, Cinema 2, Pg 180)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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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2<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 Prof. Lee, Kangwha>

2) 탈역사와 문화적 역사들

포스트모던적 시각에서 볼 때 역사적 사료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 서술은 실은 권력의지에 의해 구성된 담론일 뿐이기에 사료는 사실(fact)이라고 말 할 수 없다. 포스트모던적 역사관은 랑케 이래 역사학을 주도해온 실증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역사가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과거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밝혀야 했다. 역사에 대한 그들의 논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왜 기억되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모여진다.

예를 들어, 홉스봄은 우리가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대부분 근, 현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졌음을 강조한다. 나아가서 국경일, 의례, 영웅이나 상징물들에 의해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전통의 창조’는 역사적으로 허구이며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과거의 이미지 혹은 담론들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국민국가의 등장과 민족주의 담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창조된 전통들이 어떻게 이질적인 사회적 존재들의 공통분모를 만들어내고, 이른바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창안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무수한 기념물들은 이러한 불확실한 과거의 사건과 현재 우리의 기억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며, 우리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서만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역사적 시간이란 그 자체가 만들어진 것이며, 끊임없는 변화의 체험에 근거를 둔 근대적 ‘기억 문화’와 크게 다를바 없다.

이처럼 ‘탈(脫)역사(posthistoire)’라는 새로운 기억 문화에서 각 개인 및 특정 집단은 더 이상 역사라는 공식적 시간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게 되었고, 역사학은 시간 영역에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특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새로운 역사학이 근대성 자체에 회의를 표명하면서 진보로서의 역사를 비판하였고, 근대사회 형성에서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주제들 – 근대, 진보, 이성, 자유 등 – 을 신화 파괴적인 방법으로 거부하였고 그 결과, 역사해석 방법의 해체와 역사학의 정체성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일정 부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근대가 초래한 혼돈과 이로 인한 근대성에 대한 깊은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역사의식을 낳은 비판 이성이나 실천 이성을 대신하는 이른바 ‘냉소적 이성’의 발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반드시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위축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 이유는 기억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역사학은 보다 확대된 지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예가 보여주었듯이, 역사가들은 이제 기억을 통해서 그동안 이른바 ‘숭고한’ 역사에 짓눌려왔던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한 사회의 집단기억을 형성하는 데 자신의 학문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역사의 죽음은 결국 의미 있는 희생이었고, 역사가들은 역사의 폐기물 위에 다시금 기억의 새싹이 돋아남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억과 역사를 상반된 양극으로 보느냐 동일시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활성적 기억과 비활성적 기억의 관계를 회상적 기억의 두 가지 상보적 양태로 파악하는데 있다. 활성적 기억을 기능기억이라고도 하는데 이 기능기억의 중요한 특징은 집단 관련성, 선택, 관련 가치, 목적의식 등이다. 역사학은 그것에 비하면 이차적 질서의 기억, 즉 현재와의 활성적 관계를 상실한 것을 기록한 기억들의 기억이다. 이것은 가치 있는 지식이나 활성적인 경험이 훼손되고 상실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학이 그런 비활성적인 유물들과 주인 없는 유품들을 보존하고 있을 뿐임을 자각할 때 기능 기억과 역사학은 새롭게 연결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약화 추세는 기억의 부흥을 위한 바람직한 조건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공적인 성격을 띠어왔던 ‘보편사(History)’는 이제 다양한 미시적 영역의 ‘역사들(histories)’로 분할되었고 이제 남게 된 것은 개개인이나 개별집단의 주관적 체험들뿐이다. 즉, 역사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억압되거나 무시당했던 사적인 기억들이 새로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가들로 하여금 기억을 더 이상 역사의 이름으로 폄하하지 않고 양자의 본원적 관계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성찰하게 하였다. 기억은 근대성의 자기 확실성을 뒷받침해오던 역사적 진리와 주체적 일원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주체가 진리를 독점하는 권력이 아니라, 진리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파생적 존재임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억’은 새로운 ‘기억문화’ 속에서 확대된 지평을 확인하면서 역사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3) 기억과 공간

기억이 이처럼 현재 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현재의 토양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동시에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기억과 망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기억의 집에는 항상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망각이 없으면 기억은 불가능하다. 망각을 토대로 기억이 선택되는 것은 그것이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즉 기억할 만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이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집단이다. 집단은 기억을 통해 일체감을 확인하고 유대를 강화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집단 정체성에 의해 구조화되는 기억이 일정부분 당파성을 지니게 됨은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기억은 사회적 권력 관계에 종속되고 이익과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기억을 둘러싼 집단 간 경쟁과 갈등이 잘 보여 주는데, 기억의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프랑스에서의 ‘기억의 터(lieux de memoire)’ 연구이다.

“요즘 우리가 기억에 관해 그토록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바로, 기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기획하여 1984년부터 1992년까지 발간한 총 7권의 저작으로 구체화된 이 작업은 역사가들이 기억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주목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대한 작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 바로 192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한 아날학파였고, 이를 대표하는 학문적 개념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가 제시한 ‘집단기억(memoire collective)’이론이었다.

알박스에 의하면 기억이란 개인적이기보다는 집단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집단기억은 단순히 개인의 기억들이 집합적으로 모여서 형성되지 않는다. 집단 기억을 집합적 기억으로 번역하는 경우, 집단기억의 성격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단기억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역사적 기록과도 다르다. 집단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일에 관한 신념체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점에서 집단기억은 객관성을 추구하는 역사적 해석과도 다르기에 역사적 사실을 넘어설 수도 있으며 심지어 무관할 수도 있다. 동시에 집단기억은 집단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박스의 이론에 의지한 ‘기억의 터’ 연구는 한 민족의 집단기억이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사’ 이후의 대안적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여기에서 기억을 사회의 집단적 현상으로 보면 기억이 왜 과거보다는 오히려 현재 지향적인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기억은 언제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출발하며, 과거의 현상이 아니라 현재의 현상이다. 다시 말해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고정된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프랑스 역사학계의 이러한 연구는 독일 역사학계에 창조적으로 수용되었다. 독일에서는 프랑스에 비해 좀 더 안정적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기억의 형태에 주목했다. 이러한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가 바로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레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다. 이들이 제시한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에 따르면 한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 형식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상징(물), 도상, 묘비, 사원, 기념비 또는 제의와 축제 등이 있다.를 통해서 기억은 오래 전승되고 지속되는데, ‘기억문화’ 연구는 이러한 기억이 전승되는 형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의 집단 정체성 안에는 다양한 집단 기억이 교차할 수 있으며, 하나의 집단 정체성은 하나의 집단기억만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또 정체성이 집단적 기억으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집단은 집단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이지, 집단기억이 무조건 하나의 집단정체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체성의 형성에는 집단이 속해 있는 구조와 환경, 역사적 상황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기억을 놓고 벌이는 개인과 사회, 저항과 억압이라는 정치적 투쟁이 제기되며 이것을 조건 지우는 문화적 가치체계, 특수한 기억을 매개로 결속된 ‘기억공동체’ 그리고 기억의 형상화 및 이를 위한 매체 등이 중요한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분명해진 사실은 기억보다 우월해 보이던 역사가 실은 포괄적인 ‘기억문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개인의 기억에 비해서 별로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새로운 기억문화에서 특정 개인과 집단은 더 이상 역사라는 공식적 시간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게 되었고 역사학은 시간 영역에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특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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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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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Google : Credit to Salvador Dali)

<Korea : Prof. Lee, Kangwha>

< 역사에서 기억으로, 정치에서 문화로>

지난 호 까지 영화와 문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호부터는 역사와 기억, 정치와 문화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들어가는 글

일상에서 기억과 역사라는 말은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기억은 한 개인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나 느낌 등 심리적 현상과 관련되는 반면, 역사라는 말은 대체로 평범하지 않은 거대한 주체들, 즉 민족이나 국가, 계급 등 이전부터 존재해온 어떤 집단적이고도 숭고한 흐름과 관련된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실되거나 변질되기 마련이며 이에 대한 문자적 인식을 토대로 시작된 것이 역사이기에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기억의 수호자’로 보았다. 그럼에도 역사가 기억을 토대로 한다는 인식은 오래된 것이고 이러한 전통적 인식은 오늘날까지 일정부분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억과 역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차이는 시간에 대한 인식과 표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억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나 단절은 사라지고 과거가 곧바로 현재화된다. 반면 역사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된다. 역사는 과거의 종결을 전제로 한다. 역사는 과거를 되짚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변화와 차이점을 인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를 객관적 대상으로 인식하기를 원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과 과거에 대한 표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역사와 기억의 관계는 긴장과 갈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과거와 거리를 두고 그것을 지적,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와 현재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간과하고 양자를 정서적으로 동일시하는 기억에는 항시 오류와 오용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기억은 역사의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역사가들이 보기에 기억은 개별적이고 자의적이고 산만하며 너무 원초적 감정에 빠져 있어서 신뢰할 수 없기에, 보다 체계적인 논리적인 과거의 배열인 역사의 규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리하여 오래도록 기억은 역사의 견고한 질서에 편입된 채 오로지 역사 원료의 공급처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런데, 최근 학문적으로 가장 관심의 주제 중 하나가 기억이다. 연구재단들은 기억에 관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른바 구술사라는 방식을 통한 사적인 기억의 기록과 다양한 학술적 결과물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기억은 단순히 역사학에 국한된 주제가 아니다.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종교학 그리고 문학, 예술, 대중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보편적 주제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심리학적 전회는 이러한 추세를 가중시켰다. 이리하여 인문, 사회과학 여러 영역에서 ‘역사’라는 자리에 ‘기억’이 대신하였고 드디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기억은 역사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2. 본 글

1) 근대 역사학과 새로운 역사학

기억 혹은 회상이 역사를 대신하여 과거 사실에 대한 발언자로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역사학의 흐름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세기 말 독일의 역사학자, Leopold von Ranke 랑케 이후 근대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이라고 칭해지는 이러한 흐름들은 서구 각국의 학문풍토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된 관점과 방법을 공유하였다.

첫째, 이른바 ‘과학’으로서의 역사는 과거 사회의 전체상을 재구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실재의 이면에 은폐된 구조가 그 실재의 설명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구조결정론에 바탕을 두었다. 이러한 방법은 어떤 지식의 확실성이란 그것이 기초를 둔 중심개념을 통하여 드러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이것은 과학적 역사란 역사연구가 객관적 실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지향해야 한다는 랑케 이래 근대 역사학의 기본전제였다.

둘째, 역사가들은 사실과 허구, 역사서술과 문학의 이분법적 구분을 상식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역사가들도 역사연구가 객관적 실재에 곧바로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과거의 사실이 그것의 기록 및 그 기록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겪는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E. H. 카는 역사적 사실이 객관적 실재의 투명한 반영이 아니며 그것은 역사가가 현재의 문제의식에 의거하여 과거의 사실들에서 그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카의 상대주의도 객관적 실재로서의 과거를 전제로 하기에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 사이의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셋째, 과학적 역사는 무엇보다도 진보의 맥락에서 과거를 해석한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근대사회의 형성 및 그 구조에 관심을 기울였고, 근대성의 역사적 체현이야 말로 과학적 역사 혹은 역사학의 중심테마였다. 과학적 역사는 진보로서의 역사에 대한 모더니즘적 확신을 공통적으로 전제하였다. 이리하여 역사 연구는 과거 사실에 대한 자료의 수집이라는 일차적이고 실증적인 차원을 넘어서 역사에서의 진보라는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제기된 새로운 역사서술의 흐름은 이러한 특징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역사학은 전체에서 미시적인 주제로, 구조에서 개인의 능동적인 행위로, 그리고 정치에서 문화로 연구의 초점을 바꾸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친 참혹한 전쟁을 겪은 후 대두된 이른바 신문화사 또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은 이전의 과학적 역사학이 추구하는 방법론과 이념에서 탈피하려는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새로운 역사학은 전체사 서술을 내세우지 않는다. 즉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생각해왔던 구조나 중심개념을 해체함으로써 사회 환원론적 설명의 가능성을 봉쇄한다. 역사인식에서 전체의 준거가 될 수 있는 ‘중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전체사 혹은 구조사의 패러다임에서 미시적 개인의 일상생활과 문화로 연구대상을 옮기게 된다. 이제 역사학은 구조와 중심이 자리했던 곳에 일상의 문화와 상징이 대신한다. 여기에서 문화란 사람의 행위유형 또는 그 행위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규제하는 프로그램으로 이해된다. 문화의 사회사가 사회의 문화사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역사학은 문화라는 텍스트에 나타난 사회적 표현들의 의미를 해독하며, 이를 통하여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역사학은 객관적 실재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그 자체를 부정한다. 역사학에서 언어와 실재의 괴리에 대한 강조는 언어학 및 문예이론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근대적 사유에서 표상은 사람이 실재를 이해하는 인식의 전부로 간주된다. 그러나 소쉬르 이래 언어 이론은 언어가 실재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고. 이런 관점에서 역사인식 역시 과거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낯익고 친숙한 공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리하여 새로운 역사학은 과거와 그 인식 문제에 관하여 담론적 명제를 내세우게 된다. 과거의 사실은 저기에 있다. 그러나 그 사실(실재)은 항상 담론을 통해서 존재한다. 즉, 역사가는 그 실재를 그것에 대한 담론적 구성물 안에서만 인지하고 경험할 뿐이다. 이와 같은 명제 아래서 객관적 실재와 허구 사이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된다.

이제 역사와 문학, 사실과 허구의 구분은 불필요하며, 역사서술은 역사적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은유를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1980년대 이후 기억과 회상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지대해진 또 다른 이유에는 기록을 축적하기 위한 기술적, 자연적 저장 장치의 역할과 기능의 변화라는 시대적 상황도 있었다.

첫째, 과거의 기록 형식을 훨씬 능가하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전통적인 기억의 위상과 기능이 전환점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을 통해 무제한의 시·청각적 이미지들이 범람하게 되자 이러한 ‘가상현실’ 앞에서 역사는 ‘객관성’이라는 종래의 신성한 권위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기억의 기능을 수령하는데 있어 문자 매체나 아날로그 매체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대신, 컴퓨터가 중요한 정보 저장 수단으로 대두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기억 모델, 즉 저장과 작동이라는 컴퓨터의 기억 모델이 일반화되었다.

이리하여 저장 기술 매체에 매몰되는 것을 지양하면서 그 기술에서 새로운 형식의 선택과 자아 성찰 방식을 획득해야 하기에 역사기록에서의 기억에 대한 물음이 새롭게 도출되는 것이다.

둘째, 이처럼 다양한 기억 저장 장치들이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으로 인간의 기억과정은 저장과 작동이라는 기술 매체의 단순 체계와 다르다는 것이 부각되었다. 기억과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방식에 대한 관심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시작되었는데, 여기에서 인간의 기억은 창조적 과정이고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뇌의 기능 방식에 대한 신경 생물학적인 인식에서 볼 때는 잘못된 기억조차도 순수하게 심리적인 착각이나 억압이 아니라, 생리학적인 이유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점도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두뇌 연구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저장 모델의 보편화와 인간의 기억 행위의 복잡성 사이의 긴장이라 부를 수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기억이라는 주제가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의 대두라는 역사학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존의 역사라는 제국의 권력 하강을 불러왔다. 역사가 그간 누려온 권력의 비밀은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자산에 있었다. 역사는 오랫동안 이른바 ‘집단적 시간’이라는 논리적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인간 삶의 근거와 방향성을 나름대로 제시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이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세계화’ 물결은 기존의 집단 정체성을 크게 침식하였고, 민족, 국가, 계급 등과 같은 전통적 집단의 긴밀한 유대감은 급격히 사라져갔다. 이제 역사는 기껏해야 ‘문화재’의 형태로 전시화 되었고, 공공성으로서의 역사는 개인적인 향수, 또는 오락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이처럼 인식론적 차원에서 역사 인식의 합리성과 객관성이 근본적으로 불신 받게 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지식으로서의 역사학의 위상문제가 논의 되었고, 존재론적 차원에서 객관적 사건이나 구조의 전개가 아닌 과거를 재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narratives)로서 기억이 새삼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비로소 기억은 기존의 역사를 넘어서 과거의 다양한 사건과 사태를 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재현방식으로 그 역할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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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9< 이강화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 Hotel Rwanda (2004) 는 1994년 르완다에서 발생한 대 학살 사건을 토대로 한 역사 영화다. 주인공, 폴로세사바기나는 호텔 데스 밀레 콜린스 지배인으로 그 당시 소위 아프리칸 쉰들러 리스트라 불리는 난민들을 호텔에서 숨겨주므로서 수 천명의 생명을 구하는 휴먼 영화다.

<Daegu: Prof. Lee, Kangwha>

3.새로운 역사 텍스트로서의 영화

  1. 인문학으로서의 역사

오늘날 인문학은 전반적으로 매우 심각한 실존적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위기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분석 가능한 데, 우선, 학문조차도 사용가치 대신 교환가치에 의해 지배받는, 다시 말해서 실용성과 시장원리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신자유주의가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이른바 W.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문자적 기록과 관념적 사유 만을 고수하려는 인문학의 전통적 연구 방식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역사학의 경우, 사마천과 헤로도투스 이래로 오직 문자라는 기호를 통해 과거를 재현하고 서술하였다. 따라서 문자 역사만이 진정한 역사라는 고정관념은 지금까지도 뿌리깊게 각인돼 있다. 그러나 책을 지식정보의 가장 중요한 매체로 끌어 올렸던 ’구텐베르크 혁명‘은 마침내 종말을 고하게되었고, 이제 새로운 세대들은 책이 아닌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종이 위에 글을 쓰는 대신 화면을 보고, 펜 대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디지털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탈문자 시대‘는 문자의 존립을 위협하면서 역사학을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역사학(혹은 인문학 전체)은 문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표현방식을 모색해야 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역사학의 위기는 있어도 역사의 위기는 없다”라는 표현이 잘 말해주듯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선호되는 담화적 소재가 바로 역사 이야기이다.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민영방송까지 포함해서 가장 높은 시청율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역사드라마이며 근래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계속 갱신하는 것도 모두 지나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영화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위기에 처한 오늘의 역사학은 다른 어떠한 대중 매체보다도 영화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역사학이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면, 대중적인 역사는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대학의 역사학은 위기를 맞이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결코 극복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전통적인 문자적 방식을 고수하면서 대중을 위한 역사 대신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논문이나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따라서 영상물에 대한 이들의 평가 역시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다. 이와 같은 고정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역사가들이 아직도 ‘기술 복제 시대’ 이전에나 가능한 원본의 ‘아우라’에 의해서 유지되었던 역사학의 ‘예배적 가치’가 견지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이래 역사가들은 역사를 인간의 지성에 의거하는 합리적 설명양식으로 이해하였고 이것은 이전의 신화적이고 신학적인 세계관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주체적으로 세계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근대적 인식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인간의 다른 지적 영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탐구 역시 신의 섭리나 의도를 전제하지 않은 이성에 의한 객관적인 탐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역사학은 역사적 과거에 대한 ‘재현’을 금과옥조로 삼았다. 이때 재현이란 과거라는 원본과 역사라는 복제 사이의 닮음의 관계를 지칭한다.

비단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역사물에 대한 대중적 선호는 전 세계적이다. 근래 헐리우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대작 서사물의 제작은 일종의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가져온 집단적인 회고적 의식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그 이전 시대를 배경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시대극, 즉 역사극으로 보고 이후 시대를 현대극으로 보며,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대체로 구한말을 기점으로 이전의 역사극과 현대극을 구분하지만, 지나간 시대의 소재로 삼아 극적 내용을 진행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현재 이전의 모든 시대극은 역사극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왕의 남자> 뿐만 아니라,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친구>까지도 역사극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지적되었듯이 과거 사실의 재해석과 재구성의 결과물이라는 역사 텍스트의 한계성은 역사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과거 특정 사건을 정확하게 모방하거나 복제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여기에서 역사에서의 원본의 의미를 다시 고찰하게 한다. 과거 실재의 부정은 역사학의 존재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어떤 경우에서든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하였다. 즉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과거 사실의 실재는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사실상 역사가는 현재라는 시점에서 과거 자체는 어떤 방식으로도 알 수 없으며, 역사적 텍스트 그 자체도 과거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해석된 구성물에 불과하기에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실재적 과거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과거라는 원본은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는 점에서는 존재론적으로 실재하였음이 틀림없지만, 그것을 현재의 역사가는 인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식론적으로는 실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역사가가 과거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역사학은 인식론적인 차원에서는 과거의 부재를 전제하면서 이를 또 다시 역사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과거라는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모사라는 이분법에 기초해 있었던 역사학은 과거라는 원본이 경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들의 인식 너머에 있는 실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원본의 변형까지도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일차 사료와 이차 사료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이제 역사란 과거라는 원본이 없는 복제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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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8< 이강화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찰스 디킨스의 소설, 대이빗 코퍼필드)

<Daegu: Prof. Lee, Kangwha>

6, 영상시대에서 문학의 의미

그렇다면 이 영상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영화는 물론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과연 그 어느 소설이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측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보다 많이 팔리는 것은 오늘날 모든 작가들의 은밀한 꿈이다. 그러므로 유독 영화만을 통속적이고 상업적인 오락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단견일 것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고급문화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단순히 값싸고 저속한 여흥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영화와 문학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만 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영화를 문학텍스트의 이동이자 확장으로 보는 것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문학 연구는 시, 희곡, 소설에 한정되어 있었고, 대학에서 연극학과가 개설되면서 문학하는 사람들을 점점 더 시와 소설에만 한정시켰다. 물론 허버트 리드가 지적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문학의 영역에 영화를 비롯한 다른 서사매체를 끌어들이는 시도를 반대하며, 오늘날 문학적인 작업은 이러한 견해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이러한 편협한 장르 연구에 머무르는 것이 결코 문학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학 연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 시기에 문학 연구의 범위, 특히 현대 문학 연구의 범위는 확대되어야 한다. 이것은 시, 희곡, 소설 뿐만 아니라 신학, 철학, 교육, 과학, 역사, 전기, 저널리즘, 관습, 도덕, 항해에 대한 저작들을 문학의 대상에 포함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연구가 잘 말해준다.


   
더구나 자주 언급되는 문학의 위기 역시 매체학으로의 문학의 패러더임 전환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주변의 다양한 매체들을 문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을 이처럼 넓게 정의함으로써 특정 매체와 그 매체의 특정한 표현방식이 문학 작품, 혹은 문학의 장르와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혹은 문학교육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문학 서적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영화를 골라주고 영화 읽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물론 책은 계속 읽혀져야 하고 활자문학은 분명 소중히 보존되어야 하지만 영상매체의 확산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문학이 당면한 과제가 된다. 따라서 문학 담당교사에게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읽게 할 것인가’ 이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구체적 과제가 놓이게 된다. 확대된 문학 텍스트로서의 영상매체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 맥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 오랫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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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7< 이강화 교수>

Movie : A Good Year

<Daegu, Prof. Lee, GangWha>

5. 영화에서 문학으로

1960년대 텔레비전 시대 작가들은 구텐베르크식의 활자 문화를 무력화시키는 영상매체의 막강한 위력 앞에서 소설의 위기와 죽음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책장을 넘기는 대신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켰고 허구를 읽는 대신 사실을 보는 편을 택했다. 일관성과 연속성, 그리고 인과성과 단성성에 의존해오던 활자문화는 이제 복합성과 불연속성, 그리고 찰나성과 다성성을 특징으로 하는 영상매체와 불안한 심정으로 경쟁해야만 했다. 마샬 맥루헌의 말처럼, 문어적인 활자문화는 이제 구어적이고 시각적이며 청각적인 영상문화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맥루언이 예언했던 것과는 달리, 활자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점에 나가보면, 사라지기는커녕 하루에도 백여 권의 신간서적들이 쏟아져 나와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런데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여전히 불황이고, 순수문학 작품들은 더더욱 팔리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책을 읽을 시간에 사람들은 이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한다. 그리고 예전에 소설을 읽으며 웃고 울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이제 스크린을 보며 웃고 운다. 영상매체는 마치 예전에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가상의 리얼리티를 창조해 제시하고, 시청자들은 그것을 실제 현실로 착각한다. 그러므로 소설은 이제 살아 남기 위해서 강력한 라이벌인 영상매체와 경쟁하거나 그것과 제휴해야만 하게끔 되었다. 영상시대에 문학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과감히 스크린과 제휴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했던 사람은 미국의 비평가 레슬리 피들러였다. 그는 이미 1960년대 초에, 문학이 영상매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답적이고 귀족적인 스스로의 패각에서 벗어나, 영상매체가 갖고 있는 대중 문화적 요소들을 적극 수용해야만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물론 영화의 상업주의적 속성과 대량복제로 인한 문제점들을 경계하지만, 동시에 소설 역시 대량복제에 의한 상업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소설은 원래 귀족들을 위한 장르였던 시나 희곡(비극)과는 달리 대중을 상대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들처럼 스스로를 귀족화, 고급화하는 것은 독자의 상실로 인한 소설 장르의 자멸을 초래하게 된다. 30여 년 후의 상황을 정확히 예시했던 피들러의 통찰력은 오늘날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과연 지금 소설은 날마다 엄청난 숫자의 독자들을 영상매체에 빼앗기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서점에 가는 대신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마치 책처럼 서가에 꽂혀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고르며 주말저녁에도 책을 펴는 대신 텔레비전 스위치를 켜고 <주말의 명화>를 본다. 출판인들 역시 영상세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요즘에는 시각디자인과 표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제 우리가 본격적인 <영상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리하여 시나리오와 아주 홉사한 소위 <영상소설>들도 출현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마이클 크라이튼의 <주라기 공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한 편의 영화대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특이한 소설이다. 특히 전체 구성과 장면 전환, 그리고 <카메라의 눈> 기법과 스케치식의 간결한 문체는 이 작품이 원래부터 영화제작을 염두에 두고 씌어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런데도, 그 소설이 영화화될 때, 크라이튼은 데이비드 코프와 더불어 <주라기 공원>의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물론 그 영화 대본은 원작보다 훨씬 더 못했으며, 영화 역시 정교하게 만들어진 공룡을 제외하고는 별로 괄목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한 가지 교훈, 즉 그 어떤 영상소설도 바로 영화대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말을 바꾸면, 제아무리 영화대본처럼 보이는 소설이라 할지라도 소설과 시나리오는 엄연히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라기 공원>은 영화를 의식하고 씌어졌다기보다는 영상매체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을 겨냥하고 씌어진 소설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들 가운데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할리우드식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뉴욕주립대의 마크 셰크너 교수는 요즘에는 영화화될 것을 미리 의식하고 쓴 소설, 또는 아예 영화용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튜디오 소설>도 산출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을 든다. 그는 그 소설의 “공허하고도 스케치적인 언어는 마치 그 공백을 영화제작자가 채워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셰크너 교수는 오늘날 영화와 문학의 관계는 상호보족척이며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만일 우리가 문학양식에 끼치는 시장의 힘을 면밀히 관찰한다면, 우리는 영화가 소설의 가장 강력한 시장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할리우드는 소설의 보물섬이다. 일반적으로 오해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는 소설의 파괴자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자이다. 더 나아가 나는 현대 미국소설의 건강은 전적으로 영화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소설은 적어도 부차적 판권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돈을 벌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충분한 소설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10년 동안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작가들을 나열하면 그야말로 문인사전이 될 것이다. – 윌리엄 스타이론, 앤 비티, 월리엄 케네디, 로버트 스톤, 아이작 베셰비스 싱거, 매헐린 로빈슨, 제이 맥키너니, 앤 타일러, 존 어빙 등 영화는 새로운 촉진제가 되었고, 작가들에게 금항아리가 되었으며, 그 매개체 사이의 공식적이고 상업적인 교류는 두 장르 모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렇다면 문학과 영화는 앞으로 더욱더 긴밀하고 활발한 관계를 갖게 되리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의 영화화나 작가들의 영화제작 관여는 194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예컨대 리처드 라이트(<미국의 아들>), 노먼 메일러(<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트루먼 캐포티(<냉혈>),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 버나드 밸러머드(<내추럴>), 필립 로스(<컬럼버스여 안녕>), 커트 보네것(<제5도살장>), 저지 코진스키(<정원사 챈스의 외출>), 존 바스(<여로의 끝>), 앨리스 워커(<칼라 퍼플>), E. L. 닥터로(<래그타임>) 등이 그 대표적 예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문학작품들 역시 끊임없이 영화로 만들어져 왔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 살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토머스 하디의 <테스> 같은 작품들은 벌써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으며, 최근에는 멜 깁슨과 글렌 클로스 주연의 <햄릿>(셰익스피어)과 제라르 드파르듀 주연의 <제르미날>(에밀 졸라), 마틴 쉰 주연의 <삼총사>(알렉상드르 뒤마), 대니얼 데이 루이스 주연의 <라스트 모히칸>(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또는 데미 무어 주연의 <주홍글자>(나사니엘 호손) 같은 문학작품들이 다시 만들어졌거나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원작의 격조를 망쳐놓은 실패한 영화들도 있다. 피들러는 그 대표적인 예로 허만 멜빌의 <모비 딕>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든다. 예를 들어 <모비 딕>은 주로 어떤 배우들, 예컨대 에이허브의 역을 맡고 싶어했던 존 베리모어와 그레고리 펙 같은 배우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자주 영화화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에이허브가 추구한 지적 동기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데다가 감독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에이허브를 그만 미친 사내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그레고리 펙의 경우에는 (그는 차라리 고래 역을 맡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고 당시의 평론가들은 빈정대었다) 미친 에이브러햄 링컨을 만들었으며, 베리모어의 경우에는 미친 베리모어를 만들었다. 사무엘 골드윈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가장 최근의 파괴자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이 작품에 진실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론에 입각해서인지 미시시피 강변 장면을 새크라멘토 강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섹스는 당혹스럽지만 로맨스는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톰 소여를 여자로 설정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왜냐하면 허크에게는 여자친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차라리 그랬더라면 재미라도 있었을 테니까.

영화가 원작을 왜곡하고 훼손한 경우는 포크너와 헤밍웨이의 경우에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포크너의 <성단>은 그 역을 맡은 이브 몽땅같은 유명배우의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악한을 다분히 풍자적이고 동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헤밍웨이가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일어나 나가버렸다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작품의 마지막에 죽어야만 되는 주인공이 버젓이 구출되어서 살아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원작보다 더 잘 만들어졌거나, 적어도 원작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들도 많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조지 스티븐스의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거칠고 직선적인 문체로 씌어진 시어도르 드라이저의 소설 <미국의 비극>을 원작보다 훨씬 더 감미롭고 세련된 작품으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경우에도 영화가 원작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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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6 < 이강화 교수>

 

(위의 영화들은 모두 문학작품을 영화한 것들이다.)

<Daegu, Prof. Lee, GangWha>

4. 제 3의 문학으로서의 영상문학

이처럼 오늘날 영화는 문학 텍스트의 확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앞에서 이러한 차원에서 새로운 장르로서의 영상문학에 대한 탐구는 지극히 당연하다. 우선 영상문학의 개념을 푸는 실마리로서 시나리오를 보자. 시나리오는 우리말로 영화 각본으로 번역된다. 시나리오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 시나리오의 종류는 영화 제작만을 위해 쓰여지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기존의 작품, 즉 소설, 희곡, 신문기사 등을 시나리오화하는 각색으로 분류된다. 어떻게 분류되던 각색 혹은 시나리오는 서술을 위한 구조나 형태를 창조할 수 있도록 어떤 것을 변경하거나 적절하게 짜맞추는 가능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시나리오는 영상화를 위한 문학장르이니 당연히 영상문학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 동안 시나리오를 보고 영상문학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영화가 통속적이고 저급한 대중문화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고, 이러한 보수적 사고의 영향으로 문학이론가들은 영화에 관한 것을 문학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런 풍토에서 영상문학이란 말이 학술용어로 사용되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는 문학이 아닌 제7의 예술로 불리어졌다. 대신 영상소설, 영상시, 영상문학이라는 말은 출판계나 영화계에서 상업적 차원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한편, 서울대 김성곤 교수는 영화제작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 다시 말해 시나리오와 흡사한 소설을 영상소설로 보았다. 즉 스튜디오 소설의 우리말 번역이다.

그렇다면 시나리오나 영상소설이 영상문학에 속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대에 구비문학이 있듯이, 현대에 영상문학이 있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한 것이 구비문학이라면 그것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 활자문학이라면 그것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 영상문학이다. 제1의 문학이 구비문학이고 제2의 문학이 활자문학이라면, 제3의 문학이 영상문학이다. 이 3자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조신의 설화이다. 이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꿈에 대한 설화이다. 이 설화를 토대로 춘원은 중편 <꿈>을 썻고, 이 소설은 세 번이나 – 신상옥이 두 번, 배창호가 한 번 – 영화화되었다. 똑같은 이야기를 신라인들은 설화로, 현대인들은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다시 영화로 보고 들었다.

이처럼 영상문학은 영화를 문학 텍스트의 확장으로 보고, 이 양자의 상관관계를 탐색하는 학문이다. 즉 문학과 영화가 손을 잡아야 서로 발전한다는 전제 아래, 문학의 논리성과 영화의 구체성을 결합시키려는 학문이다. 영상문학은 문학이란 의미가 그러하듯이 작품을 뜻하는 의미와 그것을 연구한다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즉 소설이 영화화된 작품으로 영상화를 위한 문학(시나리오)이나 영상효과를 극대화한 문학을 뜻하며, 또 소설이 영화로 전환되는 과정과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영상문학 연구의 핵심은 소설과 영화의 상호 텍스트성 규명에 있다.영상문학은 문학적 성격과 영화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좁은 의미로 본다면 문학작품이 영화화된 것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문자모드가 영상모드로 바뀌는 과정과 그 결과물(영상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효과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제작 기술과 상업적 흥행성에 관한 언급을 배제하며, 순수 학문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영화평론과 영상문학는 구별된다. 영상문학은 영화의 문학적 성격을 추구하는 학문이며 문학이 영상매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학문이다.

영상매체는 문자매체보다 장점이 많다. 영상을 매개로 전달되기 때문에 신속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그만큼 전달력이 강하고 영향력이 크다. 물론 영상은 활자보다 장점이 많지만 단점도 있다. 문자보다 순간적이고, 비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영상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영상문학은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영상문학은 문학의 성격과 영화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 협의의 개념으로 본다면 영화의 하위장르요, 광의의 개념으로 본다면 영화의문학적 연구를 의미한다. 즉 활자문학이 첨단과학의 힘을 빌어 새롭게 태어난 문학이다.

동시에 영상문학은 열린 문학이며 사회 지향적이다. 영상문학은 관람을 위한 문학이다. 그만큼 관람의 성격을 잘 살려야 한다. 관람의 특성은 독서와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독서는 혼자하는 행위이고 관람은 여럿이 함께 하는 행위이다. 독서는 타인과 차단된 공간(방)에서 이루어지고 관람은 타인과 열린 공간(상영관)에서 이루어진다. 영상은 활자와 달리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광장의 문학이다. 이는 영상문학이 열린 문학이며 사회 지향적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이는 또 영상 문학이 문학 텍스트의 확장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시대적 의미가 얼마나 큰가를 잘 말해준다. 활자문학에 비해 영상문학은 그 만큼 사회 지향적인 열린 문학이다. 추상보다 구상을 ,관념보다 사실을, 논리보다 감각을, 설명보다 묘사를 고백보다 행동을, 밀실보다 광장을 중요시하는 문학이다.

소설의 영상화는 독자의 반응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 작품이 흥행에도 성공한다면 사회적 의미는 더욱 크다. 앞으로 소설의 가치는 영상화에 달렸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영상화되어 소비될 때 문학적 가치는 더욱 극대화되고 또 사회에 대한 영향도 커지며, 그 존재 의미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상문학은 한 작품의 문학적 가치와 영화적 가치를 동시에 확대시키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사람들은 문학작품을 영화한 것을 보고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영화화했을 때 장르상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두 작품은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소설이 영화로 각색될 경우 소설가의 뜻과 각색자의 뜻이 일치되지 않을 수 있다. 인생관이나 예술관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학작품이 영화화되기 위해서 거치는 시나리오과정 때문이라 할 것이다. 시나리오는 활자매체인 문학작품을 영상화하기 위한 준비단계다. 문학작품을 시나리오화하는 것을 흔히 각색이라 한다. 각색은 크게 문학작품에 충실한 것과 문학작품과 유사한 것 그리고 변형한 것이 있다. 문학작품은 각색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학성보다는 영상미를 부각시키는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이렇게 문학작품과 영화는 매체 자체의 특성에 따라 표현되는 양상이 대부분 다르다. 이러한 장르상의 차이 때문에 문학작품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된다. 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감독의 시각이 첨가되기도 한다. 여기에 감독의 존재는 더욱 중요하다. 영화는 전적으로 감독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텍스트가 소설에서 시나리오로 바뀌고 다시 영화로 제작되어 궁극적으로 대중에게 소비되는 과정을 추적하여 그 의미와 효과를 밝히는 것이 영상문학 연구의 핵심이다. 앞으로 소설의 영상적 수용양상을 연구하는 작업은 소설 연구의 중심과제가 되어야한다. 그것이 영상시대의 문학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은 영화화되면서 또 한번의 변화를 겪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영상매체인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특히, 소설을 각색할 때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그 특징에 따라 다르게 변화된다. 문학작품의 서사성을 대표하는 소설은 작품의 구조와 길이로 크게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로 나눌 수 있다. 단편소설은 하나의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에 시나리오 작가는 제2의 플롯을 도입하고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동기를 부여하거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다. 그들은 작품을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도록 변형시킨다.

동시에 소설가는 수많은 개인을 위해 글을 쓰는 반면 시나리오 작가는 대중적인 관객을 위해 글을 쓴다. 영화상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인물의 성격을 뚜렷하게 하거나 행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거나 플롯을 진전시켜야 한다. 소설상의 대화는 길고 산만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짧고 강렬한 것이어야 한다. 영화의 형태가 극적인 반면 소설의 형태는 대화적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은 소재의 세심한 선택과 기술적인 극적 배열을 필요로 한다. 단편소설을 각색할 때는 원래의 이야기를 확대해야 하고 장편소설은 압축하고 극화해야한다. 시나리오는 극의 재미를 위해 처음과 중간과 끝이 이어지면서 각 단락의 후반부에 중심되는 사건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미를 잃지 않게 된다. 단편소설의 각색인 경우는 없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장편소설은 작품의 긴 내용을 전부 영화화할 수는 없다.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재배열하거나 축소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문학작품은 또 다른 작품으로 재창조된다.

활자매체인 문학작품은 각색되면서 영상매체에 적합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인간의 내면심리를 다룬 소설은 그러한 내면을 표면화시킬 수 있는 사건을 만들어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여러 등장인물과 다양한 이야기가 어우러진 장편소설은 각색하는 방향에 따라 주요 인물에 초점을 맞추거나 사건을 축소한다. 문학작품은 이러한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다. 각색의 과정을 문학작품의 1차적 재창조라 한다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는 2 차적 재창조를 겪기도 한다. 관객에게 보여지는 것은 시나리오가 아니라 영화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상미률 살려 영화를 만든다. 이때 시나리오는 감독의 관점에 따라 다시 한번 변화된다. 감독은 작품에 시대적 상황을 부각시키기도 하고, 흥미를 가미하기 위해 극적인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나리오에는 없는 인물을 창조하기도 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인물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의 관점에 따라 인물이나 사건이 재배치된다.

동시에 문학작품은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로서 다양한 시각들과 생각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특성으로 문학작품을 각색할 경우, 작품을 이해하는 다양한 가능성들 중에 하나의 면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각색도 또 다른 창작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진행되지만 감독의 관점이 강조된다. 그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사회성, 오락성을 생각한다. 영화는 이런 점 때문에 사회성이 부각되기도 하고 흥미를 이끌기 위해 보다 극적인 사랑을 창출하기도 한다. 이것이 문학작품이 변모하는 또 한 번의 과정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문학작품과 영화를 인식할 때 그들 각각의 특성을 살필 수 있다. 영화는 문학작품에서 소재를 얻고, 문학작품은 영화를 통해서 또 다른 작품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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