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이강화 교수의 철학 이야기

Movie Screen as Reflection of the Ego (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3. 대중매체이론에서 전통적인 ‘수용자 audience’ 개념은 ‘익명의 상호 격리된 대단위 집단’으로서 균질화, 균등화 그리고 수동성과 피동성으로 특징 지워진 채 지배 이데올르기의 재 생산 기능을 묵묵이 수행하는 소극적 존재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대중 mass’ 으로서의 수용자는 대중매체의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며, 이러한 상황에서의 송신자의 표적이 되는, 달리 말해서 송신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설득 가능하고 조종 가능한 수동적 존재를 의미했다.  이것은 전통적인 문화비평가들에 의해서 제기된 대중문화 수용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커뮤니케이션 학자들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적인 수용자 상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수용자와 매체 간의 힘의 관계 설정에 있어 매체에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고 있어 수용자는 상대적으로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둘째, 수용자와 매체의 관계 이해에 있어 기본 커뮤니케이션 모델은 전달적 모델에 토대를 두고 있다. 즉, 확정된 메시지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고, 중요한 것은 효과의 측면이라는 고정된 관점이다. 셋째, 수용자에 관한 논의가 매체의 이미지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라는 거시적 관점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전통적 수용자의 모습은 언제나 취향이 천박하고 지적으로 열등한 제 3자로서 그려진다.(문화연구이론, 정재철)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문화 수용자에 대한 새로운 논의는 다양한 실증적 연구와 논쟁을 통해서 전통적인 수용자상을 변화시켰다. 그 결과 현대 사회의 수용자는 선택성과 적극성에 입각한 이성적 존재로 이해되었고 매체성 자체도 수용자의 능동성을 전제로 하여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차원에서 영화에서의 수용자의 태도는 특히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영화는 초기 단계부터 심리적인 혹은 사회적인 영향력으로 인해서 다른 어떠한 매체보다도 위험한 매체로 백안시되거나, 역으로 그 영향력을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였다.이렇게 볼 때 탄생된 지 이제 겨우 한 세기를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다른 매체에 비해서 대중문화이론에서 집중적인 관찰의 대상이 된 중요한 이유가 바로 각 개인, 즉 관객에게 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매체 특유의 영향력에서 비롯되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직접효과이론’으로 불리우는 이러한 견해, 즉 영화 생산자의 의도에 대해서 수용자로서 관객은 단지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는 관점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이것은 오랫동안 영화 텍스트의 수용자로서의 관객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지연시켰다. 물론 영화를 각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하는 방식에는 그동안 많은 수정과 변화가 있어왔다. ‘직접효과’ 이론으로 부터 시작하여 각 개인이 영화가 지닌 메시지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관한 논의는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가는 심리가 사회적 맥락, 영화관의 유형, 그리고 영화가 지닌 내용의 유형과 같은 요소들의 다양성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들이다. 따라서 영화관람의 경험은 영화서사에 집중하도록 하는 테크닉을 기꺼이 무시하고자 하는 성향과 관련된다. 영화 산업에서는 영화관객의 심리학을 어떤 특정 영화의 효과를 측정하는데, 그리고 새로운 작품에 대한 흥미를 유발 시키는데에 이용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화를 수용함에 있어 대중은 여론 선도자(Opinion Leader)의 지도를 받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 잣대를 갖고 평가하고 난 후 특정 영화 현상에 대해 수용 혹은 저항의 태도를 취한다. 즉 자신이 처한 물질적 조건과 생활방식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수용하고 해독하게 되며, 그 결과 다양한 스펙트럼 상의 어느 한 지점에 해당하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 특유의 해독과 변용의 형태가 각 집단의 독특한 특성을 반영하는 하위문화를 구성하고, 지배 문화에 의식적, 무의식적 대응을 하게 된다.

이처럼 생산자의 특정한 의도에 대한 관객의 수용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그리고 일률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수용자간의 상호관계 혹은 상호의존성을 전제로 할 때만이 영화의 영향력에 대한 다양한 가설은 성립하며 이는 달리 말해서 영화의 다양한 영향력은 메시지의 수용에 있어서 관객의 능동적 해석과 자기화의 과정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해석학적 관점에서 수용자의 기대지평이라고 부른다면, 수용자의 사회계층, 사회적 규범에서부터 매체에 대한 기존의 경험에 이르는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이러한 기대지평은 관객에 의한 ‘선택적 수용’의 주요 원인이 된다. 물론 기대지평은 결코 고정되어 있거나 정적인 것은 아니며 역동적이며 변화가능하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Movie Screen as Reflection of the Ego (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영상 이미지와 자아의 동일성

2. 영화 제작자의 일차적인 목적은 스크린과 분리되어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거리감을 뛰어넘어 상상을 통해 화면의 세계로 들어가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경험하도록 설득하는 데 있다. 이러한 경험이 스크린 상의 사건에 대한 관객의 감정상 일차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경험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의 등장 인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차원에서 대리적 경험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리적 경험이 영화적 서사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결정적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영화 관람에서 심리적 양상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대리 경험은 대개 두 가지 기본요인들로 인하여 일어난다.

첫째는 주의력의 전이이다. 관객은 의식적으로 영화의 테크닉과 스타일을 무시하며 서사 속의 사건들이 그의 마음속에서 절정을 이루게 한다. 둘째는 이 과정에서 관객은 영화배우들과 인물, 이야기의 타입 그리고 상황과의 자신을 일치시킨다. 셋째, 이리하여 관객들은 서사의 사건들 속으로 ‘뛰어들려는’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관객들의 이러한 심리적 동기는 바로 그런 상황을 고무하도록 서사를 꾸민 제작자의 바람과 어우러진다.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영화제작자들이 서사의 형식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테크놀러지 역시 이러한 서사적 테크닉을 은폐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카메라의 테크놀러지는 카메라의 일련의 움직임들을 관객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특이의 편집기술을 사용하면서 스크린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이리하여 모든 영화는 서사에 관객의 주의를 집중하게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통해서 관객들은 영화 속의 등장인물과 그 인물이 처한 연속된 상황에 깊이 관여하게 되도록 유도된다. 이때 ‘선유경향’이 이러한 심리적 상황의 조건이라면, ‘동일시’는 이러한 집중적인 관람 경험에 의해 발생하는 심리적 결과이다.

선유경향 이란 영화에 대해서 관객들이 가지게되는 일련의 선지식, 선입견, 기대감등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앞으로의 관람과정을 통한 즐거움, 혹은 실망감, 또는 같은 시간에 집에서 텔레비젼을 못 보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보상 심리 등 그 범위가 매우 넓다.

동일시는 ‘관객 자신을 영화 속의 한 인물 또는 여러 인물들의 위치에 놓는 것’ 또는 영화 속의 인물과 ‘감정이입’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흔히 ‘감정적인 집착 또는 좋아함의 표시’에 의해 측정되어지며, 이러한 동일시는 두 가지 기본적인 형태를 지닌다. 하나는 관객이 자기 자신과 가장 비슷한 인물들과 동일시를 이루고, 둘째는 관객이 자기 자신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인물과 동일시가 이루어진다.

한편, 영화 관람은 일반적으로 다수와 함께 진행된다. 홀로 영화를 보러 간 경우에도 영화관 안에서는 본질적으로 집단적인 것이 된다. 그런데 영화관의 관객은 사회학적 용어로 이른바 ‘비구조적인 집단’이다. 그러나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이 집단은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작용에 의해 이질적인 개인들로부터 하나의 공감적 집단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이리하여 스크린 상의 메시지는 관객 개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상호간의 심리적 작용에 의해 해석․부연되고 과장․축소되면서 관객들 전부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 물론 이때 영화제작자의 의도와 영화관객들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거부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나머지 관객들의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반응한다. 이러한 집단적인 분위기는 영화 메시지의 전반적이고도 자발적인 수용에 공헌한다. 여기에서 개별적 차원에서의 ‘동일시’ 개념은 대중매체 이론에서의 중요한 개념인 집단 차원에서의 ‘수용자’ 개념으로 연결된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Time and Space are Inextricable- 7(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Shot 와 Angle 의 관계를 보면 쇼트와 앵글은 영화만의 독특한 영상언어가 문자언어와 어떻게 다른 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양식이다. 따라서 감독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내려고 한다. 가능한 한 카메라를 고정시킨 정적화면을 일관되게 주장할 수도 있고, 팬이나 틸트처럼 삼각대는 고정시키되 화면은 움직이게 하는 이동화면에서 부터 달리나 크레인처럼 카메라 자체가 이동하는 유동촬영에 이르기까지 움직임의 영역은 다양하다. 사실주의 감독들은 극단적인 앵글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장면들을 눈높이에서 촬영한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대상물에 대한 가장 명확한 시야를 확보하려고 한다. 반면에 표현주의 감독들은 대상물의 본질을 가장 잘 포착하는 영상에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각도에서 촬영된 사물들은 왜곡되어 보인다. 사실주의 감독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카메라의 존재를 잊게 만들려고 하는 반면에 표현주의 감독들은 카메라의 존재성을 관객들에게 환기 시킨다.

이처럼 스크린의 움직임은 지속적이며 정사진(靜寫眞)을 계속해서 보여줌으로써 얻어진다.물론이러한 움직임은 인공적이기 때문에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이미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를 들어 느린 동작, 빠른 동작으로 재현하면서 새로운 경험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시간적 차원에서 움직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공간예술에서 쉽게 확인되는데 그럴경우 시간은 영원성을 확보함으로써 독특한 부동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리하여 조각이나 회화, 그리고 사진은 그 내구성으로 인하여 무엇인가를 기념하고 그 영원성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From This Photo: Altamira-Ancient History Encyclopedia

그럼에도 움직임을 보여주면서도 영원히 보존할 수 있고 새롭게 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순간뿐 아니라 지속적인 기간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과거를 보존하는 데 공간 예술보다 앞서 있다고 주장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다. 사실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기록으로 보존하려고 할 때 그 움직임도 기록하려는 욕구가 인간에게 수백만 년 전부터 존재해 왔음은 최근의 여러 학술적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 들소나 다른 동물들이 그려진 동굴 벽화를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기록해 나가면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는데 그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동굴벽화를 겹쳐서 보면 그것이 계속적인 움직임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의 항아리를 보면 재주넘기를 하는 광대가 그려져 있는데 이 또한 같은 기법으로 보이고 있다. 이미 2천 년 전 에 움직이는 그림이 창출되었던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서도 이런 양식은 나타나는데 한 캔버스 위에 성자(聖者)의 일생에 관한 일련의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그려내기도 하고, 한낮의 사냥장면과 일련의 풍자화를 그리기도 했다. 현대회화에서도 영화의 영향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적 예술이 이렇게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상 성공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정적인 대상이 조용한 관조나 명상을 수행하는 종교적 차원에서 요구된다는 차원에서 동적 묘사라는 시도는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정적인 이미지는 나름대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스탑 모션등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화에서 시간의 공간화와 공간의 시간화는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영화가 이룩해 놓은 가장 위대한 업적은 시간과 공간에서 일상적이고 상징적인 특성을 제거한 후 그 세계에 사상과 관념이라는 비물질적인 질료를 부여하여 그들을 새로운 통일체, 즉 영화적인 시, 공간을 새롭게 결합하는 것이었다. 스크린이라는 공간을 차지하는 외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 존재이며, 따라서 영화가 진실로 하나의 예술이며 나아가서 예술 가운데 가장 풍요로운 양식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변환에 있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Time and Space are Inextricable- 5(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그러면 영화는 이러한 시.공간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는가? 영화는 시간적으로 조직화된 공간이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인식하는 공간은 움직이지도 않고 변화하지 않는 정적세계이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공간은 정적인 성질은 잃게되고 시간과 결합된 동적인 세계로 바뀌게 된다. 공간의 부분들은 시간적인 순서로 정리되며 시간적 리듬을 가진 시간적 구조의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서 클로즈업은 단순히 부분의 공간적 확대라 아니라, 극적 시간과 결합된다. 어떠한 요소(인물, 집단, 풍경 등)로 구성되어 있든, 서로 다른 공간은 시간적 순서로 배열되며, 특수한 경우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해서 다른 시간 배열을 선택하게 된다. 공간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의 하나는 바로 시간 차원이다.

영화에서 모든 장면은 현재라는 시제를 갖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화면 속의 사건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라는 사실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시간 의식이다. 시간 차원은 시간의 공간화 혹은 공간의 시간화라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법이 몽타쥬이다. 장면을 변화시키지 않고 순서를 바꿔 놓을 경우 시퀀스의 의미가 변화하는 가를 푸도프킨의 고전적 실험이 잘 보여준다.공간을 통해서 인식되는 세계에 관한 대부분의 지식 혹은 정보를 흔히 오감이라 불리우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 얻는것과는 달리 시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내적이며 심리적이다. 시간을 객관화 하려면 또는 그것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려면 시계, 태양, 별, 조류, 성장 등의 공간 언어로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영화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취하는 바, 다른 공간을 보여 줌으로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게 된다. 즉 영화는 시간의 경과라는 개념을 공간 차원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기 위해서 같은 공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면 무언가 움직이고 달라져 있을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공간적인 언어가 달라질 것이다.

이와 같이 영화에서 시간과 공간은 서로 혼합되고 교환되고 서로 영향을 준다. 시간이 공간화되고 공간이 시간화된다.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이란 영화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과 시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흔히 영화를 ‘시’ 공간 연속체(space-time cautinnum)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공간뿐이지만 이 공간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배열될 수 밖에 없고 시간이라는 형식으로 맞추어져야 한다. 이것이 영화를 현실 또는 다른 예술과 구별시켜주는 것이다. 90분 혹은 120분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강령한 체험의 시간이다. 같은 서사적 양식을 취하지만 연극에서는 연기력이, 문학에서는 언어의 기법이 본질적 기능이라면, 영화에서는 스크린의 이미지가 전달하는 공간과 시간의 변화가 본질적 기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 세계의 객관적 시간을 영화는 어떻게 변형시키는가? 다시 말해서 영화 특유의 극적이고 율동적인 지속속에서 시간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영화에서 시간은 보통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된다. 물리적 시간, 심리적 시간, 그리고 극적 시간이다. 물리적 시간이란 움직임이 촬영되는 시간, 즉 스크린에 영사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보통 러닝타임이라고 말한다. 심리적 시간이란 관객이 영화를 볼때 경험하는 시간에 대한 주관적이고 정서적 시간을 의미한다. 극적 시간이란 영화속에서의 어떤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을 말한다. 한 편의 영화는 같은 물리적 시간을 통해서 하루 동안의 사건을 그려낼 수도 있고, 수 십년 동안의 사건을 그려낼 수 있다. 물론 관객들은 이 세 가지 시간이 한 영화 속에서 동시에 나타나며 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영화는 물리적인 세계의 움직임을 시간을 통해서 스크린 위에 그려낸다. 이때 현실 세계에서의 움직임은 정확하게 동일한 시간으로 스크린에 전개된다. 그러나 두 현상의 전개 과정은 다르다. 스크린에서의 전개는 하나의 정사진 (still) 이 48분의 1 속도로 영사됨으로써 진행된다. 정상적인 속도는 1초에 24프레임이지만 하나의 정사진에서 다른 정사진으로 옮겨가는 동안에 잠시 어두워지므로 48분의 1초로 정사진이 바뀌게 되는 셈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사진 한 장 한 장은 고정된 형태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연속적으로 움직일때 운동력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시각은 잔이라는 불완전성 때문에 이렇게 미세하게 분화된 장면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먼저 본 그림의 인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음 그림을 겹쳐서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청각이 미세한 소리를 의식하지 못하듯이 시각도 미세한 움직임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속적인 그림들에 의해서 움직임이 시간적으로 재현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필름이라는 재료와 촬영기로서 이러한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조작된 그림에 의한 인위적인 시간에 의해서 영화는 재현적 움직임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 조작의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패스트모션, 슬로우 모션, 스탑모션,플래쉬백, 프래쉬프론트(포워드)등이  있다.

한편, 영화에서의 심리적 시간이란 하나의 정신적 현상으로서, 시간의 경과에 대한 우리들의 주관적 혹은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시간 경과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일차적으로는 외적인 감각에서 비롯된다. 시계바늘, 시계 소리, 심장의 고동, 맥박 등을 통해서 객관적이고도 규칙적인 시간을 의식한다.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의식은 주관적이며 시계가 가리키는 객관적 식케에 대해서 다영하다. 어떤 일에 몰두할 때 그 일이 즐겁거나 행복하면 시간은 빨리간다. 그러나 지루하거나 불행하면 시간은 느리게 간다. 만약 우리가 미래에 어떤 일을 염려나 조바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면 시간은 느리게 갈 것이다. 영화속의 사건이 극적으로 전개됨으로써 이 사건이 관객의 정서에 영향을 주게되고 이것은 다시 관객의 주관적인 시간의식을 형성한다. 이러한 시간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는 서스펜스와 리듬, 템포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의 극적 시간을 설명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모든 예술장르에서의 시간은 실제 시간보다 어느 정도 압축되어 표현되었다. 예를 들면 고대에 설정되었고 17.18세기 고전극작가들에게 까지 존중하였던 연극의 3요소에 의하면 3시간 내지 4시간으로 압축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4시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2,3 시간의 한 연극 작품에서 한 사람의 긴  생애나 여러 세대의 삶이 묘사될 수도 있고, 동시에 현실적 시간과 동일한 시간이 극 안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 영화도 이와 동일한데 예를 들어서 대부분의 역사물이나 서사적 작품에서는 한 영화속에서 여러 세대 혹은 긴 세월이 흐르는 반면, 영화 속의 극적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일치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극적 시간 역시 심리적 시간과 동일하게 패스트 모션, 슬로우 모션, 스탑 모션, 그리고 프래쉬 백 등을 이용해서 시간을 처리함으로서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생략할 것인가, 대사는 얼마나 빨리 진행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가가 서로 합리적인 논의를 거쳐서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Time and Space are Inextricable- 4(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베르그송은 이처럼 시간을 공간을 측정하듯이 양적으로 나누고 측정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총체로서의 시간을 직관( 지속 속에서 이루어지는) 을 통해 이해하려 했다. 사물은 공간 속에서 양적으로 측정될 수 있지만 다른 사물과는 다른 그 사물만의 본성을 알아 내려면 시간 속에서 그것이 존재하는 방식을 직관을 통해 인식해야 한다. 공간처럼 분해된 사물은 운동이 없는 단면들의 집합일 뿐이다. 이러한 사물이 존재하려면 바로 운동이 그 사물의 단면들을 관계 맺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을 통한 관계맺음을 통해 사물은 비로소 시간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지속속에서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만 그 본성이 파악될 수 있다.

시간이 연속적이라는 말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속적으로 연결된 형태로 시간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려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이며,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만이 존재하는 것이며 실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는 실재하는 것으로 지각되는 그 순간 이미 과거가 되기 때문에 시간은 항상 현재로서 지각되지만 현재는 항상 과거로서 지각된다. 즉 앞에서 제논을 통해서 확인했듯이 관념적이고 수학적으로는 시간을 단절된 파편들로 분해할 수 있지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의식의 차원에서는 시간의 양적 분리는 불가능하다. 시간은 그 자체로서 연속적이고 연속적이지 않은 것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제논의 화살이 날지 않으려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화살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심리적 상태는 즉각적 과거에 대한 지각이자 동시에 즉각적 미래애 대한 결정이어야 한다.” (Bergson, 1939: 153) 추억(souvemir)은 기억이 보관하고 있는 표상이나 생각을 지칭하며 기억(memoire)은 추억을 보관하거나 불러오는 기능이나 능력을 말한다.

4. 현실에서의 모든 운동은 이처럼 시.공간의 차원을 가진다. 그러나 앞에서도 확인 했듯이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이 두가지 차원 중 하나의 차원으로 운동이나 변화를 의식한다. 예를 들어서 식물이 자라는 것이 시.공간적 차원 모두에서 일어나지만 그 움직임이 공간적 차원에서는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로만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총을 쏘는 것은 공간의 이동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거의 미분적 시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다.(현실의 움직임은 계속적이지만 스크린의 움직임은 단속적이며 정사진(Still)을 계속해서 보여줌으로서 얻어진다. 이런 면에서 스크린의 움직임은 인공적이기 때문에 시.공간의 차원은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여러가지 방법(느린 동작, 혹은 빠른 동작)으로 조정되며 새로운 경험도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볼때 제논의 역설도 궁극적으로 이러한 시. 공간의 관념적 차원과 현실적 차원과의 차이에서 유래하였는데 따라서 이러한 의도적인 오류는 영화에서의 의도적인 시간의 연장인 슬로우 모션에 의해서 쉽게 극복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 공간의 문제는 영화가 발명되기 이전까지는 과학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과학 내부에서 시, 공간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었다. 고전 물리학적인 시, 공간 이론 -시간은 일직선으로 지속적으로 흐르며, 공간은 유클리드적인 구조로서 고정되어 있다- 은 상대적 이론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이제 현대과학에서는 시, 공간은 함께 결합되어 하나의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 안에서 움직이며 공간도 시간과 같이 흐르는 것이다. 더 이상 물리학의 단위는 시간과 공간의 단위가 아닌 시공단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시, 공간 이해를 예술적 형식으로 재현하는 것이 바로 영화인 것이다. 즉, 하우저가 말한대로 “현실과 문학과 연극에서의 시간은 명백히 발전 지향적인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화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공간 안에서 움직이듯이 시간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영화는 미래든 과거든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며 시, 공간적으로 분리된 사건을 함께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의도적으로 분리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 아놀드 하우저 저, 최성만, 이병진 역, <<예술의 사회학>>,(서울: 한길사, 1983)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Time and Space are Inextricable- 3(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3. 시간의 두 가지 속성에 대하여,

시간은 두 가지의 중요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움직임과 변화라는 형태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즉 시간은 연속된 흐름이다. 연속된 움직임이나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 즉 영원 불변한 것은 시간을 초월한 것이며 따라서 시간과는 무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즉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으며, 흐름 속에서 한번 지나간 것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이로 인해서 한번 체험된 것은 다시는 동일한 방식으로 체험되지 않는다. 이른바 ‘시간의 비가역성’ 이라는 시간의 이런 속성이 아쉬움이나 후회와 같은 감정 뿐만 아니라 타임 머신과 같은 환상적 욕망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시간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인지한다. 하나는 개념적이거나 물리적 도구를 사용해 측정되는 시간, 즉 오전, 오후, 어제, 오늘 1시간 2분 3초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적 개념이나 보편적 기준에 의해서 시계와 같은 측정 도구를 통해 인지되는 물리적 차원의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의 감정적 상태나 육체적 상태의 변화에 의해 경험으로 인지되는, 즉 생각의 전개라는 인간 활동 전반을 통해 느껴지는 심리적 차원의 시간이다. 이때 전자를 객관적 시간, 후자를 주관적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객관적 시간은 양적으로 측정되고 계산된 시간으로서 이러한 시간은 개인, 사회, 문화와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동질적이고 보편적이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각자 동일한 시간에 출근하고 기차를 타고 영화를 보며 약속에 늦지 않는다. 동일한 간격으로 나누어진 객관적 시간들을 공유하며 시간표를 짜고 약속을 조정하며 미래의 일을 계획한다. 시간 단위로 결정되는 자동차의 속도는 교통법규 위반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일을 한 시간의 합계는 봉급과 퇴직금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처럼 객관적인 시간은 현대사회에서 사업, 노동, 이동, 투자, 인간관계 등 모든 인간 활동을 조율하는 가장 근본적인 수단이 되었다. 시계는 긴간을 지배하는 인간의 힘을 상징한다. (현재 세계 공인의 가장 정밀한 시계는 세슘 원자에 마이크로파 빔을 쏘아서 시간을 측정하는 세슘 시계(또는 원자 시계) 이다. 이 시계는 초당 9,192,631, 770(약 92억억 ) 번 진동하는 세슘 133 원자의 특성을 사용한 것으로 1초를 약 92억 번 쪼개서 측정할 수 있는 정밀도가 있고, 3,000만년에 1초의 오차가 생긴다. 1967년에 세계적으로 공인된 이 세슘시계에 의하면 1초는 “세슘원자가 9,192631370번 진동하는 시간”이다. 이제 1초는 더 이상 지구의 자전 시간을 잘게 쪼갠 대략의 시간이 아니며, 절대적인 객관적 시간을 측정해주는 기계의 발명에 의해서 시간의 세계화는 이루어졌다.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 이유들 때문에 동일한 시간을 공유하고자 했던 세계인들의 욕망을 이 시간이 충족시켜  준것이다.)

이에 반해, 베르그송은 인간의 주관적 시간을 ‘지속(Duree)’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이 ‘지속(Duree)’을 의식의 연속적인 변화를 통해 경험되는 시간성으로 규정한다. 시간의 경험과 생각, 감각, 지각, 감정 등과 같은 내적 변화의 지각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변화들이 의식에 의해 ‘지속’으로 경험된다. 따라서 지곳은 지성에 의해 수학적으로 계산된 시간과는 달리, 주관적이고 질적인 시간이다. 그리고 베르그송은 이러한 지속 개념을 통해 현재를 수학적인 계산적 순간이 아니라, 즉각적 과거 (Passe Immediat) 와 즉각적 미래 (avenir Immedian)를 포괄하는 지속적 순간으로 규정한다. 존재가 시간을 느끼려면, 일정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의식을 갖는 행위 자체가 곧 현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재는 일정 정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에 의해 지각되는 현재는 내가 지각한 순간 이미 과거가 되는 시간과 아직 지각되지는 않지만 이미 내 의식이 향하고 있는 미래를 포함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내가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심리적 상태는 즉각적 과거에 대한 지각이자 동시에 즉각적 미래에 대한 결정이어야 한다. 베르그송 1939 :153) 따라서 지속이란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갖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삶의 풍부함이 축적되는 질적인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을 양적으로 특정한 척도를 이용해 나누거나 측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속속에서 형성되는 인간의 자의식은 지각된 과거를 바탕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 이것이 곧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근간이 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즉각적 과거는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에 감각과 행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두께가 있는 시간이다. 현재는 행동속에서 다시 현제화되는 추억(souvenir) 을 포함하는 지속적 순간이다. 현재가 추억의 재현 재화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기억 (memoire) 은 현재에서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의 전진이다. 인간의 의식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현재 속에서 재구성하면서 삶을 보다 풍부하고 보다 새로운 것으로 만든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