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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rector’s Role in the Creative Movie Artistry (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헐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을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특정한 플롯과 캐랙터 그리고 주제가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이러한 누적적 과정을 통한 특정한 표현방식에 대한 친숙화에 있다. 인간의 다른 체험들과 마찬가지로 장르체험도 특정한 지각과정에 따라 구성된다. 같은 유형의 체험을 반복해 감으로서 우리는 계속적인 보강에 의해서 규칙으로 굳어지게 마련인 기대감을 키우게 된다. 이와 유사한 경우를 운동게임에서 볼 수 있는데 운동게임이란 불변의 규칙과 시합의 성격을 결정짓는 구성요소들 간의 복합적인 체계이다. 한 운동게임에서 두 가지 규칙이 있을 수 없고 다른 것과 구별되는 그 운동 자체의 차별성이 존재하듯이, 특정한 장르 역시도 그 서술 구조 내에서의 규칙과 구성요소들의 차별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영화의 주제나 스토리의 정형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어떤 주제가 장르의 소재가 된다는 것은 일관되게 가치를 반영하는 네러티브 체계로서 지위를 인정받음을 의미한다. 관객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소재를 즐겨 찾기 마련이고 이러한 관습적 관람행위가 영화제작주체가 요구하는 안정된 수입과 직결됨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르영화가 관습적이고 타성화된 서술방식을 지향하는한 작가적 창의성이 장르의 경직성을 극복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관객과 영화를 정서적으로 일치시키는 탁월한 동화능력이다. 헐리우드 영화는 내러티브와 플롯을 철저하게 관객수용이라는 관점에서 적용한다. 내러티브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과정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내러티브는 다시 스토리와 플롯으로 나누어지고 스토리는 영화에서 명확히 제시되는 사건과 그 밖에 부연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플롯으로 바뀌어진다. 즉 스토리의 시공간적 순서나 흐름을 플롯에서는 몇 가지의 사실만을 보여줌으로써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장르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들에게 전체적인 원인과 결과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로서 제공된다. 영화 속의 사건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이 플롯을 통해서 제시된 사실들로 부터 다른 여러가지의 사실들을 유추해서 구체적인 원인 혹은 결과를 예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하게되고 동화되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특정한 영화작가의 플롯이나 주제를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핍진성(verisimilitude)이다. 핍진성이란 실제의 현실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의 사건들이 충분히 현실성있게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핍진성은 영화의 내러티브의 완결성과 스타일 상의 규칙들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내러티브의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맞아떨어질 때 관객들은 그 사건이 충분히 현실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심지어는 그 사건을 실제 현실의 사건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영화 속의 비현실성은 대중들로 하여금 한 순간이나마 실제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 일어날 수 없는 것, 그러나 경험하고 싶고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 SF장르가 대표적인데, 불가능과 구속의 세계인 실제 세계에서 탈출하여 가능과 자유의 세계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관객들은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또 이렇게 현실을 왜곡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현실로 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공통적으로 말해주듯이 장르영화가 궁극적으로 현실도피를 통한 미국이라는 사회구성체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데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포드나 혹스처럼 판에 박힌 플롯이나 스테레오타입화된 성격화를 두고 독창적인 예술성 운운한다는 것은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채, 헐리우드 영화에 지나치게 경도된 혹은 예술가라는 낭만적인 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유럽인들의 과잉의식의 결과라는 것이다.

작가주의자들은 이에 대해서 반박하기를 자신들도 헐리우드 장르의 관습들이 어떠한 것이며 그 한계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이러한 장르들이 새로운 의미들을 사전 봉쇄하기 보다는 오히려 감독들로 하여금 자신의 독특한 주제를 일관되게 다룰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새로운 의미의 생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어떠한 규칙의 체계라도 항상 위반의 가능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장르는 의미의 새로운 변주를 위한 장을 제공해주며, 따라서 장르는 감독을 가두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그에게 자유를 허락해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웨스턴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 장르는 오랫동안 미국 건국과정을 정당화하고, 미국의 건국신화를 유포시키는 장르로 기능했지만 70년대 이후의 웨스턴은 미국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어두운 면을 드러내어 고발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작가주의는 결국 장르주의와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그 존재의미를 확인 할 수 있다. 만약 장르 제작이 상업적인 흥행을 지향함으로써 작가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만 기능한다면 적어도 헐리우드에서는 작가주의는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장르영화가 그런 식으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한계가 창조적인 작가들에 의해서 극복되어서 장르의 관습성을 자신의 고유한 표현방식을 위한 기회로 사용한다면 작가주의는 적어도 장르주의의 한계를 능히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논쟁의 가장 커다란 공헌은 무엇보다도 이 시대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영화를 고급예술의 관점에서 진지한 논의의 대상에 까지 오르게 하였다는 점이다. 아울러 장면화에 대한 작가주의의 주목은 도덕적이거나 미학적 성격에 집중되었던 이전의 논의를 극복하고 영화적 특수성에 관한 분석을 위한 기초작업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되지 않는 가치평가와 이를 근거한 서열화는 비판적이고 이론적인 쟁점들이 구체적이고 사회적인 쟁점들과 맞물리는 보다 광범위하고 초 학문적인 논쟁으로 부터 벗어났음을 잘 보여주는데 이것은 작가주의가 보여준 몰 역사적인 사유를 잘 말해준다. 사실 특정한 감독들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개성적 스타일, 퍼스낼리티를 추적하는 수색자로서의 비평작업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정확한 분석틀의 결여와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주관적인 태도는 작가주의 비평을 비 정치적이고 낭만적인 주관성의 미학으로 변질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로빈 우드와 같은 평론가들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누가 미국영화의 최고작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서열화에 대해 어떻게 보면 영화예술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칭 감식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도락적인 언쟁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가주의’ 이론이 유럽과 헐리우드의 몇몇 장르감독들을 발견해내는 데는 커다란 기여를 했지만,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서의 영화제작과정에서 제한된 감독의 기능을 지나치게 무시함으로써 무분별한 ‘헐리우드 숭배’ 혹은 ‘작가숭배’로 빠지는 우를 범하였다는 비판은 끝내 모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성기에는 쉽게 확인될 수 없었던 이러한 작가주의의 한계는 68년 혁명 이후 대두된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그리고 형식주의와 논쟁에서 결정적으로 구체화되었음을 이후의 영화이론사가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이강화 교수님의 영화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계명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은 전 세계의 한국 독자, 또는 한국의 교육 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세계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면을 빌어 교수님의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편집자 배상.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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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rector’s Role in the Creative Movie Artistry (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작가주의가 미국영화에 도입되었을 때 그 개념은 더욱 통속화되었다. 사실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심미안’을 자랑하는 이 프랑스 젊은이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시 미국영화는 전세계적으로 과도한 상업성읠 추구라는 이유로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상업적 측면에서의 미국영화의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미국영화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고조되었는데 이유인즉 미국영화는 예술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모든 개인의 감정을 말살시키는 거대한 상업기계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헐리우드의 경직된 제작시스템 속에서도 몇몇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조적인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이론은 적어도 예술성에 있어서는 늘 유럽영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미국영화의 열등감을 씻어주기에 충분하였다. 미국의 평론가들은 프랑스 평론가들에 의해서 창조적 예술가의 전형으로 추앙되는 이들 감독들의 작품들을 새삼 극찬하면서 이전까지 자신들도 폄하하였던 자국영화의 우월성을 변호하는데 앞장섰다.

앤드류 사리스는 이러한 쇼비니즘적인 경향을 대표하는데, 그는 자신의 저서 <미국영화>에서 ‘작가정책’(politique des auteurs)을 ‘작가이론’(the auteur theory) 이라고 재명명하면서 대부분의 감독들은 스튜디오의 요구, 자신이 쓰거나 관여하지 않은 시나리오나 제작자가 고용한 배우, 카메라 맨 등의 간섭이나 제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반면, 그가 일차적으로 선택한 14명의 감독은 “개성있는 세계관으로 기술적인 문제들을 초월한”감독들로서 이른바 A급에 속하며, 이차적으로 선택한 20명의 감독은 “그들의 개인적 비전의 취약함 그리고 일관성없는 경력문제 때문에” B급에 속한다는 식으로 도식적으로 배열하였다.

( Winter Light 1961, by Ingmar Bergman)

작가주의가 이렇게 변질되어가자 자연히 평론가들 내부에서도 이 이론에 대해서 반발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작과정 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몇몇 감독들, 예를 들어서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혹은 페데리코 페리니 정도의 감독들에게는 그 이론의 적용이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스튜디오 시스템 내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다수의 헐리우드 감독들에게 과연 작가라는 타이틀의 적용이 가능하겠느냐하는 것이다. 또 히치콕, 포드, 혹스 등 소수의 감독들이 헐리우드의 전성기에 각기의 작품에 개인적인 특징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헐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이 다수의 기능자 집단이 만들어낸 집합적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독창성을 어느 정도나 구분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관습적인 장르제작이 보여주듯이 헐리우드 시스템의 구조가 터무니 없이 거대하기 때문에 아무리 감독의 개성이 강렬할지라도 대개의 경우 스튜디오(영화사)의 스타일, 배우의 스타일, 프로듀서의 다양한 요구, 시나리오작가의 특성 등 광대한 주문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견은 헐리우드 특유의 장르영화를 분석해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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