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작품을 구성하는 인물의 성격, 사건, 갈등의 원인과 해결 등이 모두 무속신앙에 뿌리를 두고 우리 민족 고유의 사고체계인 무속신앙을 관념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전통 정서에 바탕을 둔 시각으로 전쟁의 비극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이리하여 두 삼촌으로 상징되어 표출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두 할머니 즉 두 여성의 화해를 통한 무속적 고유정서를 압도하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의 원혼을 무속을 통해서 위로함으로써 화해를 시도하려는 <태백산맥>에서 되풀이된다.

(Photo from Google Images)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다시 요약해 본다면, 멜로 영화의 경우, 한국 근대사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남성위주의 외형적 규범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주의와 배리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이것은 특히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동요하게 된 여성들을 전통적 자리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여성들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서 역사물 경우, 여성들을 중심으로 음모와 불만 그리고 고통의 표현에 집중함으로써 은폐된 차원에서의 여성의 한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공포영화 역시, 특정한 시기 여성들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사회적 질서나 이념을 반영하는 서사물이라는 점에서 역사물과 동일한 방식의 재현물로 볼 수 있고, 비록 비합리적인 방식이지만 여성에게 가해진 고통과 절망을 배출시키는 분출구로 무속이 기능했으며 이런 차원에서 무속영화는 한국 여성을 둘러싼 갈등과 모순을 종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AXBFl03saY

이처럼 한국에서의 여성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 지배적 권력담론들 속에서 생산되고 조정되어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담론들의 틈새로 여성의 한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이리하여 이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즉 근대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의 한은 어떤 언어로 형상화되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 혹은 대중문화에서 나타난 한이라는 고유한 정서를 우리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 삶의 체험에 근거한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개의 영화가 나름대로의 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 대중을 대하고 있고, 이를 감상하는 대중 역시 대중 매체로서의 영화가 의도적으로 혹은 잠재적으로 전달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수용 혹은 거부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감식안과 비판적 안목을 구비하려고 한다면 이때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는 것은 관객인 우리 자신의 눈으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고유하고도 주체적인 방법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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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무속영화

한국 영화에서의 여성의 한은 무속영화라는 장르에 의해서 다시 독특하게 그려지고 있다. 대다수 한국인의 무의식적인 정신 구조에 녹아있는 문화적 침전물로서 무속은 단순히 표현방식으로서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제의적 양식이다. 따라서 한국영화에 자리잡고 있는 무속성을 드러내는 것은 전통 사회의 억압적 질서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과 혼란을 동반한 근대화로 인해서 한국 여성들 의식 내면에 잠재해있는 상처와 고통 등을 치유하고 포용하려는 화해적 양식이 무속은 한국 고유의 신앙으로 일반 민중의 현세적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탐구하여서 얻어진 각종의 선험적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하는 신앙체계이며 동시에 인간의 모든 경험 내용이 침전된 민족고유의 집단적 연행 형태를 띤 예술이기도 하다. 전통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무속은 상류층보다는 일반 대중, 특히 여성들을 위한 민간종교이다. 이리하여 과거 지배계층들은 무속을 미신시하고 배척했지만 민중들 특히 부녀자들 사이에서는 소멸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근원적 정신구조로 남아있었다. 무엇보다도 무속은 부계 중심의 사회제도로 인해 소외된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포용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속이 불교나 유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리 민족문화의 전통과 주체의식을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무속이 사회에 내재해 있는 갈등과 모순을 사회적 또는 종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메카니즘으로 기능한 것은 사실이다. 바로 이점이 공포영화, 역사물, 문예영화, 통속물 등 다양한 장르의 틀을 빌려 나타나고 있는 무속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며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동시에 한국 사회의 은폐된 존재로서의 여성을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서 여성을 억압하는 기존질서에 대해서 저항하고 해체하는 문화적 방식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유현목의 <장마>는 좋은 예로 제시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aG1U7IADQo&feature=youtu.be

그러나 친할머니는 길준의 죽음을 천수에 따를 운명으로 얘기하고 점장이에게 점을 보고 순철의 살아 있음을 믿는다. 이 과정에서 대립은 지속되지만 외할머니의 성스러운 의식은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키면서 나아가서 두 할머니의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전쟁이라는 극한적 상황으로 인해서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서로 갈등을 보여주지만 결국 무속신앙에 의해 혈연과 사상의 갈등이 전격적으로 해결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나아가서 외국에서 유입된 이데올로기가 초래한 갈등이 한국 고유의 신앙인 무속에 의해 해결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외할머니는 그 망자를 가족들과 상면시키고 저승으로 배웅하는 무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서술의 원인과 결과는 모두 무속신앙에서 비롯된다. 이리하여 무속적 요소는 사건과 인물들을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우선 영화는 자신의 꿈을 미래에 대한 예견으로 받아들이는 외할머니와 아들의 무사귀환을 맹목적으로 확신하는 친할머니를 대립시킨다. 이 과정에서 외할머니는 자신의 꿈을 미래를 예언하는 계시로 알고, 집에 들어온 구렁이를 순철의 환생으로 보고 주술적 의식을 베풀어준다. 무속에서 억울한 죽음은 천수를 다하지 못한 불행한 사건이다. 이리하여 육체는 죽지만 그 영혼은 떠돌거나 다시 환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구렁이는 저승에 가기 전의 순철의 원혼이며 죽음의 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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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월하의 공동묘지> 이 영화는 <장화 홍련전>을 통해 일찍부터 여귀의 모태로 여겨져 온 가정비극과 기생의 인생 유전을 담은 30년대 신파의 구조를 근간으로 하면서 이 시기에 새롭게 부각된 ‘모성의 담론’을 주제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런 차원에서 가족과 가족담론의 재조직화를 핵심으로 사회전반의 재구조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던 무렵에 제작되었던 <월하의 공동묘지>가 일제강점기 가족으로부터 그 서사를 출발시키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에서 여학생 명순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오빠와 애인의 뒷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되었다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편승하여 갑부가 된 한수의 아내가 된다. 그러나 명순은 부르주아 가정의 아내이자 가부장의 계승자인 아들의 어머니가 되고서도 과거의 훼손된 순수성으로 인해서 고통받는다. 한편, 수난당하는 민족을 상징하는 오빠 춘식은 명순 가족의 도덕적 정당성을 희생시키면서 부와 명예를 추구한 한수의 부르주아 가정을 위협하는 과거의 망령이다.

여기서 지하로 스며든 독립운동가 춘식의 역사적 정당성이 동생의 행복을 위한 오빠의 애정이라는 사적 감정으로 치환되는데 이것 역시 60년대 후반의 여러 멜로드라마가 부당한 사회적 권력의 압박을 재현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따라서 명순의 원귀는 해원(解怨)을 현실권력에 의존함으로써 기존 질서의 도덕적 정당성을 승인했던 장화홍련과는 달리, 스스로 원수를 갚음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위한 상상의 공간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명순을 원귀로 만든 불의의 세력에서 그녀는 분리는 되었지만 이것이 역사적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한 한수와 모든 명분을 잃어버린 채 떠돌이가 되어버린 춘식과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불온한 결말이 된다. 이처럼 전통적인 신파적 요소가 <월하의 공동묘지>에 이르러 괴기와 결합함으로써 한국 괴기영화의 불온한 상상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이후의 괴기영화의 한 전범이 되었다. 이처럼 <월하의 공동묘지>가 다른 공포(괴기)영화들과 공유하는 지점은 전통적인 여인의 한을 특정한 수용계층에 호소하는 그 양식적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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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공포영화

한편, 가장 최근에 새롭게 주목되는 장르가 호러물이라 불리우는 공포(혹은 괴기)영화이다. 이 장르에서 여성주의자들이 발견한 것은 공포영화 특유의 긴장과 공포 배후에 은폐되어 있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다. 공포영화의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들이고 이들이 한결같이 기존의 규범으로부터의 이탈자로 묘사되어있다는 점에서 이 장르는 전통적인 규범을 강조하는 매우 보수적인 관점에 근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성의 재현 방식에 있어서도 멜로 드라마 이상으로 억압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사 초기부터의 고전이나 설화 혹은 전설 따위를 소재로 한 이른바 괴기영화의 전통과, 최근 <여고괴담>시리즈, <소름>, <가위>, <폰> 등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공포영화는 오랫동안 여성주의 이론가들에게 여성성의 담론을 위한 장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우선 합리성을 추구하는 근대적 사유가 판타스틱한 방법에 의존하면서 비현실적인 스토리를 전개하는 이런 영화를 매우 퇴행적인 장르로 취급했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영화 분석을 위한 방법론의 제한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새로운 관점에서 공포영화를 분석한 이론가들은 공포영화가 공포라는 인간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심성에 호소하는 장르인 동시에 특정한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은폐되고 왜곡된 사회적 질서나 이념의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서 50년대 만들어진 ‘돌연변이(mutant)’공포영화는 2차대전 이후의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며, 80년대의 <에이리언>시리즈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비도덕성, 에이즈와 인간복제에 대한 공포 혹은 냉전 종식 이후 등장하는 새로운 외부세력에 대한 공포심 등을 상징한다.

물론 공포영화의 일차적 목적은 관객에게 긴장과 공포를 통해 새로운 종류의 쾌감을 제공하는데 있다. 그러나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실체는 흔히 ‘억압’과 ‘타자’라는 개념으로 나타나며, 여기에서 억압이란 일종의 과잉 억압(surplus repression)으로서 여성 특유의 억눌린 정서가 왜곡된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경우, 이러한 경향은 특히 현저하다.

타자라는 개념 역시, 기존의 주체(우리) 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 타자(타인)를 어떤 식으로 억압해왔는가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문화에서는 성적 욕구, 동성애, 여성의 성, 아동의 성 등이 과잉 억압을 받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부르주아지의 입장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백인의 입장에서는 흑인이,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어른의 입장에서는 어린이가 타자가 된다. 어쨌든 기존 체제는 타자로 규정된 것을 억압해왔는데, 바로 이러한 ‘억압된 것의 귀환’이 공포영화의 이론적 토대였던 것이다. 결국 호러 무비는 ‘억압된 것’의 귀환이며(정상성에의 도전 내지는 복수), 특정 구성원들의 집단적 악몽이다.

한국 영화에서 멜로드라마가 비교적 합리적인 방식을 통한 한의 표현이라면, 공포영화는 한에 대한 비합리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멜로드라마가 정서적 일치를 전제로 하면서 가부장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장르라면, 공포영화는 여성으로 하여금 정서적 일탈을 조성하면서 이를 통해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여성을 억압하였던 봉건적 가치관과 윤리의식 그리고 근대화과정에서 소외된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고립 등은 6, 70년대에는 주로 사극의 형식으로, 90년대에 청소년물로 구체적으로 재현되었다.

물론 공포영화의 일차적 목적은 관객에게 긴장과 공포를 통해 새로운 종류의 쾌감을 제공하는데 있다. 그러나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실체는 흔히 ‘억압’과 ‘타자’라는 개념으로 나타나며, 여기에서 억압이란 일종의 과잉 억압(surplus repression)으로서 여성 특유의 억눌린 정서가 왜곡된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경우, 이러한 경향은 특히 현저하다. 한국 영화에서 멜로드라마가 비교적 합리적인 방식을 통한 한의 표현이라면, 공포영화는 한에 대한 비합리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멜로드라마가 정서적 일치를 전제로 하면서 가부장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장르라면, 공포영화는 여성으로 하여금 정서적 일탈을 조성하면서 이를 통해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여성을 억압하였던 봉건적 가치관과 윤리의식 그리고 근대화과정에서 소외된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고립 등은 6, 70년대에는 주로 사극의 형식으로, 90년대에 청소년물로 구체적으로 재현되었다.

우선,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한 부분을 취한 <목단등기>의 처녀귀신, 고대 소설을 영화화한 〈장화홍련전>의 여귀, 중국설화를 각색한 <백사부인>의 인간으로 둔갑한 백사, <무덤에서 나온 신랑>의 달갈귀신과 여귀, <살인마>와 <목없는 미녀>의 여귀 등 주로 구전설화나 민담, 고전소설 등에 의존한 괴물형상으로서 대부분이 여성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1924년 <장화홍련전>을 필두로 한 한국 공포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 역시 속옷바람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귀신들이다. <월하의 공동묘지>, <미녀 공동묘지>, <원한의 공동묘지>, <여곡성>, <며느리의 한> 등 60년대의 일련의 공포영화들은 한결같이 양반집을 무대 원한을 품고 죽은 며느리가 등장하고, 원귀로 돌아온 며느리가 남편과 시어머니를 괴롭히는 내용이다. 이들은 주로 대를 잇지 못한다고 하여 억울하게 독살당하거나, 가문의 정통성에 흠집을 낼만한 불륜의 아기를 가졌다고 해서 살해당한 여성들의 원혼인 것이다. 이것은 결국 봉건적 질서에 의해 억압받은 여성들의 모습들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대부분 여자들 혹은 여자 귀신들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흔히 여인들의 원혼이 고양이로, 박쥐로, 그리고 나비 등으로 전이되었다가 다시 인간의 몸을 빌려 환생하거나, 반대로 동물이 여인의 몸에 들어왔다가 인간으로 살아남기도 하는 이러한 스토리는 동물과 유난히 가까웠던 전통적인 농경사회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이 아닌 동물의 몸을 통해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어야 하는 여성의 왜곡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60년대 대표작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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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애를 담론화 하는 방식은 식민주의/신식민주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특히 식민 시기의 역사가 한국영화에서는 가장 드물게 재현되는 이유 중의 하나라는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성을 매개로 하는 억압과 통제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여성주의자이자 독립영화감독인 변영주에 의해서 1991년 세 명의 위안부 출신 여성이 대중 앞에 등장하기 전까지 위안부 문제가 전혀 올바로 기억되지도 않았고 스크린에 재현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변영주의 두 편의 영화 <낮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 2>는 아직 화해되지 않은 식민의 역사로부터 나온 여성성의 탈 식민적 계보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 두 편의 영화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육체에 대한 현재의 개념이 마치 역사적 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의 위안부 문제와 깊이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변영주는 독립영화운동이 마침내 대중주의 민중운동과 결합하던 80년대 후반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화만들기 궤적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변영주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인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제주도에서 태국에 이르는 섹스관광을 추적한 작품이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제주도에서 일본 관광객을 상대하는 한 접대부는 자신의 어머니가 위안부였다고 감독에게 고백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접대부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발견이 계기가 되어 변영주는 위안부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낮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 2>를 만들었다. 김소영 저, <근대성의 유령>, 165 – 166 면 참조.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여성 관객에 소구해야 한다고 당당히 선언했으며 <낮은 목소리>에서 위안부들이 50년간의 침묵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 때, 여성 관객들은 그들의 슬픔을 공감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에 자신도 개입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에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재고는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분명히 나타난다. 여기에서 카메라는 위안소에서 풀려나온 뒤 강제로 중국에 남아있어야 했던 한 위안부의 벗은 몸을 비추는데, 이때 카메라는 그녀의 약하고 주름진 육체를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은 이 영화가 위안부를 민족주의적 수사라는 박제화된 영역으로 방치한 무기력한 민족주의 서사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를 보여준다.

‘화냥년’이라는 말의 유래가 중국에 공물로 바쳐졌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를 가리키듯이 ‘종군위안부’는 일본 식민지가 강제시킨 성노동을 ’양공주‘는 미주둔군 기지를 근거로 한 성산업을 상징한다.

무엇보다도 남한의 군사정부와 일본의 우익정권의 공모야말로 위안부 문제를 침묵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침묵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탈식민 시대 한국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육체의 개념은 위안부 여성과 결부된 수치심과 연접되어 민족주의적 서사를 구성하도록 만들었다. 훼손되고 강간당한 여성의 육체를 은유로 사용해 일본의 강점과 전후 미군 주둔의 이야기를 서술한 1970년대 한국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였다. 이러한 류의 문학적 상상력과 더불어 위안부의 역사는 성 착취 영화에 등장하는 윤간 환상의 배후나 TV 다큐멘터리의 민족주의적 구출 환상을 촉진시키는 지렛대로 전유되었다.김소영 저, <근대성의 유령>,  165면

<낮은 목소리>가 오래 묵은 슬픔을 끄집어내기 위해 영화 내내 고백적 발화에 의존한다면, <낮은 목소리 2>는 오랫동안 억압된 욕망과 욕구를 표현하기 위한 우회 수단으로 노래와 농담을 동원한다. <낮은 목소리>가 종군위안부의 증언을 통해, 즉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역사적 서사를 그들의 관점으로 재기술했다면, 후편은 그들의 일상에서의 농담과 가사를 바꾼 노래를 통해 그 서사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낮은 목소리 2>에서 할머니들은 ‘스스로 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리하여 반복적 농담과 노래의 양식을 통해 그들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희망 그리고 노년의 연애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서사와 시각적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하며 그들은 자신의 개인사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즉 역사적 폭력 때문에 경험할 수 없었던 부분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암 때문에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강덕경 할머니는 감독에게 그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이야기가 남도록 영화를 찍으라고 부탁한다. 김순덕 할머니는 자신이 소처럼 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찍어달라고 당부한다. 심미자 할머니의 경우 다른 아이들이 엄마 혹은 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가족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윤두리 할머니도 다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남편에게 사랑도 받고 싶다고 밝힌다. 그런가 하면 박두리 활머니는 성과 관련된 노래와 농담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적 구조는 사회적 구조 이상으로 역사의 구성물이며 이것은 주로 섹슈얼리티의 억압으로 일반화된다. 그러므로 과거 역사적 기록에서 차용된 수많은 인물들이 빚어내는 사건들은 공적 영역에서의 객관적 사실보다는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음모와 불만 그리고 화해 등의 사적 사실에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를 낳는 일, 그리고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 자신의 성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것은 매우 불온한 행위로서 반드시 규제와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주제를 재확인하는 데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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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영화 1.

영화의 탁월한 서사적 기능은 역사를 비교적 정확하게 재현하고, 다양하게 해석하고 사고하게 함으로써 과거의 흔적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역사물 역시 개인적 드라마와 역사적 드라마 사이를 동요하면서 대중들에게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덕목에 관한 술언 들을 새롭게 구성해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역사물은 왕실내부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음모와 갈등을 주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 여성의 한이라는 주제는 정통 왕조 드라마에서부터 최근의 수정주의적 역사영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루면서 재현된다. 신상옥의 <연산군>은 이런 주제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박종화의 대표적 역사소설인 <금삼의 피>를 1961년에 영화화한 <연산군>은 상업적 흥행으로 인해서 이듬해 임희재 극본의 <폭군 연산>으로 이어졌다. 연산군 일대기는 이후에도 영화, 연극 그리고 TV드라마의 형태로 여러 차례 만들어 졌는데 이것은 연산군과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를 둘러싼 독특한 서사성으로 인해서 인간적, 정치적 문제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산군>의 경우 같은 해에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의 통치권 행사 방식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들과의 연계 속에서 폭군 연산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현이 좀더 구체화되었거나 노골화되었다면 검열과정에서 영화의 많은 장면들이 삭제되거나, 아예 상영금지 처분이 내려졌을지도 모른다. 대신 이 영화는 상당 부분 그 시대가 요구하는 담론의 의미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권력자에게는 바람직한 서사물로 변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 감독은 연산군 집정기의 무오 사화와 갑자사화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당시의 정치권력이라는 공적인 맥락 대신 연산군 개인의 사적 맥락에서 다룬다. 동시에 연산의 폭정과 패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어머니에 대한 그의 ‘인간적’ 고뇌를 과장되게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을 인간 연산에 대한 동일화와 반 동일화 적 지점에 위치시킨다.

결국 영화에서 폭군 연산과 인간 연산을 구분하는 선은 연산이 어머니, 즉 폐비 윤씨와 맺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특히 연산군의 성격적 파탄의 원인을 왕권의 핵심과 그 주변 권력층들 사이의 역학적 관계에서 파악 하기보다는, 연산군 이라는 개인에게 귀결시키고 결과에 따른 책임 역시 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방식은 연산군의 부덕의 원인을 어머니와 연결 시킴으로써 부계로 계승되는 왕권의 정통성 에는 전혀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 연산군의 정치적 실패 혹은 연산군의 폭정의 주원인인 폐비 윤씨 사건의 주범도 여성인 인수 대비나 성종 주변의 후궁들 나아가서 피해자인 폐비 윤씨 본인으로 지목되고 선왕인 성종이나 주변의 남성 권력자들에게 전가되지 않는 것은 바로 남성 중심의 도덕적 기반을 흔들지 않으려는 서사구성인 것이다. 연산군의 성격적 이상 역시 정치적 상황에서 보다는 억울하게 죽은 윤씨의 한풀이와 이러한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사모에서 비롯된다.

윤씨의 억울한 죽음은 회상 형식으로 영화 중간 중간에 끼여들게 되고 이러한 과거사에 대한 연산군의 사적 감정은 윤씨가 죽으면서 흘린 피가 묻은 옷자락에서 극대화된다. 이렇게 볼 때 표면상으로는 폭군이라 불리우는 연산군의 비행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매우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산군>은 아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멜로 드라마의 일종이며, 윤씨의 한 많은 생애와 연산군의 일탈적 행위는 남성 중심의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가를 보여줄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60년대가 요구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를 재생산 하려는 것에 기여 하려는 것이다.

https://youtu.be/pfRpkNx2Q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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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현대적 멜로드라마

한편, 60,70년대 근대화가 진행되던 이 시대는 미혼 여성노동자들이 대거 서울로 이주하던 시기였다. 서울로 이주한 이들 농촌 여성들은 도시사회에서 가장 착취당하는 집단으러 전락하게 된다. 이른바 여공으로 값싼 노동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식모라는 호칭으로 가사보조로 일했다.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의 어머니 이상으로 공적 영역에서의 생산자 역할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는데, 이들 영화는 자본주의 장치와 맞물린 국가권력이 여성 노동력의 통제와 밀접한 관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별들의 고향>에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일상적인 공간들이 아니라, 술집과 카바레, 여관과 창녀촌 같은 퇴폐적이고 에로틱한 곳이다. 경아를 둘러싸고 있는 술과 과도한 욕망의 이러한 이미지는 압축적 근대화로 인한 도시의 혼돈과 여성화를 상징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여성화는 군사정권의 초남성적 전략 속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이 여성화되는 현상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초남성화된 국가 앞에서 복종과 규율을 내면화해야 하는 남성 주체들의 심리적 상황은 문호를 통해 잘 드러난다. 문호는 고등교육을 받은 화가지만, 그에게서 남성적 권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문호의 유아적이고 바보스러운 행동은 남성성이 유아화되거나 거세될 위협에 처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거리의 여자’ 경아는 국가 주도의 억압적 근대화에 의해 동요하는 남성 주체의 모순을 설명하는 일종의 알레고리이다. 그러나 그녀는 국가의 초남성적 전략에 의해 여성화된 남성 주체들의 내적 분열과 모순을 표현하는 기호로 그려질 뿐, 여성 주체로서의 갈등과 모순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질서에 필요한 지배력을 상실한 남성들의 무기력한 정체성은 여성의 주체성 증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리하여 서울이라는 도시는 여성들의 새로운 욕망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 되며,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여성의 성애적 이미지는 억압되었던 그들의 주체들이 재구성되는 통로가 됨으로써 전통적인 성별위계를 어지럽히고, 남성적 주체성을 위협하는 전복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처럼 경아가 보여주는 유동적 여성성, 확대하자면 서울이 가진 유동적인 여성성이 남성성을 파괴하는 위험한 것이 될 수 있기에 남성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남성적 권위라는 무기로 이것을 억압해야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남성의 권위는 경아의 현존 자체를 죄악시하고 처벌의 대상으로 만든다. 표면적인 원인은 그녀의 과잉된, 위험한 섹슈얼리티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남자들에게 버림받고, ‘타락한 여성’이라는 사회적 낙인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다. 물론 경아는 흰 눈 위에서의 죽음으로 자신의 ‘순결’을 회복하려 하지만 경아의 이러한 소망이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남성 위주의 사회적 질서가 여성의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 억압해 왔는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_pbS1FzSE

한편,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영자는 식모에서 공장노동자로, 다시 버스차장으로 마침내 창녀로 변해가는데 이 위치들은 모두 60,70년대 하층 여성의 사회적 위치다. 식모는 농어촌에서 갓 올라온 십대 소녀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곧 광범위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출 지향적인 제조업으로 흡수된다. 영자도 이 대열에 합류하지만 결국 팔 하나를 잃게 되고 더 이상 노동현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된 영자는 이제 생계를 위한 매춘으로 내몰리게 된다. 애초부터 영자가 소망한 것은 ‘기술을 익혀서 평생 혼자 살고자 하는’ 혹은 좀더 잘 되면 여성 택시 운전사 정도가 그녀가 가진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영자의 이런 꿈은 팔 하나를 잃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이것은 월남전에서 돌아온 창수가 ‘기술을 배워 양복점을 차리는’ 꿈을 실현하는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영자와 창수의 이러한 대비는 근대화 프로젝트라는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정체성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이것은 결국 여성이 민족주의적 근대화 프로젝트의 가장 큰 희생자이자 부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영자가 의수를 달고 중앙청 앞을 혼자서 걸어가는 장면은 근대화의 부산물인 상실된 여성 주체인 영자가 바로 그 근대화 전략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징후적으로 나마 드러낸다. 물론 영화는 영자라는 여성 주체가 가진 잠재적인 위협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그녀를 단란한 가족 구성원에 포함시킴으로써 이런 위험성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김씨 아저씨로 대변되는 남성 주체는 영자가 단란한 가족을 꾸리기에는 ‘순결하지’ 못한 창녀였음을 끊임없이 각인시킴으로써 그녀를 또 다시 도덕적으로 타락한 길로 내몰릴 뿐이다.

이상 이 세 작품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국 근대사에서 여성의 정체성이 남성위주의 외형적 규범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주의의 논리와 배반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말기와 한국전쟁 기간동안 여성들은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고 또한 사회적 노동도 그들의 몫이 된다. 그러나 여성들을 다시 전통적 자리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서 국가는 다양한 이데올로기 장치를 동원해 여성의 규범을 재정립하게된다. 이러한 과정을 그려내는 멜로 드라마는 다른 어떠한 장르보다도 한국적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텍스트로 가능하며, 이러한 주제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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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멜로드라마 장르를 통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에게 그 과잉적인 감정적 동화는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많은 고난과 억눌림, 즉 한의 또 다른 표출이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멜로드라마의 신파성을 근대적인 서구 멜로 드라마에 비해 낙후된 전근대적인 정서로 폄하하는 것은 이 장르의 대중성의 본질과 미덕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다. 오히려 이처럼 한국 멜로 영화의 토대를 우리 고유의 정서인 한에 둠으로써 한국 멜로 드라마의 다시 읽어내 복원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결국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현실 문제를 지나친 개인 드라마로 풀어간 신파성에 대한 기존의 비판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렇게 볼 때 한국영화가 대중 관객들과 폭발적으로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19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과 1956년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이라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춘향전>은 유교적 질서 속에서 가치 평가된 여성 덕목인 정절을 재주장하고 재인가하는 작품으로서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와해된 여성들의 전통적 덕목에 대한 일종의 경고적 차원에서의 훈계로 읽을 수 있고, <자유부인> 역시, 표면적으로는 새롭게 시작하는 근대적 사회 내에서 한 주체로서 여성 즉 ‘자유부인’을 내세우지만 이들의 성적 욕망을 비난하고 처벌함으로써 내면적으로 전통적 덕목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한편,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쟁으로 인한 원초적 궁핍이 어느 정도 극복된 후 여성은 새로운 정체성을 요구받으면서 단순한 퇴폐의 기호가 아닌 좀더 자립적인 행위의 수행자로 등장한다. 압축적인 경제발전으로 인해서 매우 불균등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발전이 가능해졌고, 이 과정은 여성으로 하여금 새로운 주체적 존재로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이런 변화된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7Depp17waI

영화의 스토리는 젊은 여성과 유부남 사이의 은밀한 애정관계, 즉 불륜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젊은 여성은 아들을 낳아 미혼모가 된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아버지에게 보낸다. 그러나 아들을 몰래 지켜 보아야했던 그녀는 결국 아들을 스스로 부양하겠다고 결심한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도 과도하게 감상적이며 우연적이면서도 상투적인 서사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여성주의 비평가들의 주목을 끈 것은 물론 바로 이 정서적 과잉이고, 영화의 주체적 결말이다. 영화는 여성 주인공의 고통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과더불어, 남편의 외도를 인내해야 하면서 이 외도로부터 생긴 아이를 키워야 하는 본처의 고통까지도 함께 포착한다. 따라서 이른바 모성 멜로드라마로서 이 영화가 여성 관객을 사로잡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양가적 모성애에 있다.

모성이라는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구성물을 다루면서, 이 영화는 일단 제도적으로는 가족을 이탈한 모성을 가혹하게 비난하지만 다른 한편,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덕목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데, 이것은 한국문화가 모성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여성 관객들은 눈물, 절망, 그리고 분노를 통해서 자신들의 감정을 완전히 가동시키면서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자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이 가부장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에 대한 이해로 귀결될 수 는 없다. 이러한 인식이 과도한 정서적 반응과 한이라는 근원적인 감정의 분출과 연결됨으로써 매우 감정적인 일별로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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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방법론에 있어서 여성주의(Feminism)적 관점은 한이라는 정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매우 유효하다.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가장 현대적인 매체인 영화가 오랫동안 다른 예술 문화 분야에 비해서 남성 우위적인 혹은 남성 독점적인 영역으로 남아있다면, 즉 영화의 표면적인 논리성 뒤의 특정 이데올로기가 남성들에 의해서 제공되어 왔다면, 영화 텍스트에서 여성의 소리와 입장은 배제되어 있을 것이고 여성 고유의 담화를 읽기란 한계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주의 영화이론의 출발선은 대중 영화 분석을 통해 여성의 이미지나 역할이 가부장적 시각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밝혀냄으로써 근본적으로 남성 중심적 시각과는 구별되는 방식에서 대중문화 특히 영화라는 텍스트를 재평가하고 재해석하려는 데 놓여있다. 그러므로 여성주의 비평은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시각과는 구별되는 방식에서 여성의 현존하는 관심에 입각해 한국영화라는 텍스트를 새롭게 해석하는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 후반 사회운동으로서 등장한 여성주의는 문학, 광고, 텔레비전, 영화 등과 같은 매체들에서 여성이 어떻게 묘사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으며, 그 결과 이러한 대중매체들이 한결같이 여성들을 남성위주의 관점에서 수동적 이미지로 혹은 남성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특유의 상업성으로 인해서 영상매체는 이러한 양상이 더욱 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헐리우드 영화를 중심으로 여성의 이미지나 역할이 이들 매체에서 어떻게 왜곡되게 재현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이를 위해서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과학적 방법을 차용했는데, 이중에서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통해서 화면과 관객 사이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미 생성이 영화 텍스트의 이해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규명하였다.

2. 고전적 멜로드라마

영화 탄생 초기부터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멜로 드라마는 주로 여성용 영화로 제작되고 여성을 위한 오락물로 소비된다는 인식으로 인해서 사회적 의미와 관련해서 진지한 연구의 논제로 대접받지 못해왔다.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리얼리즘이 거세되고 판타지만 강화된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시키는 위험한 장르로 공격당하였고,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정서적 쾌락을 제공하기 위해 성을 상품화하는 유해한 장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가 60, 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주의 이론가들에 의해서 새롭게 읽혀지게 되면서 멜로 드라마는 보다 공적인 영역에서 의미를 생산하는 장르로 인정되었다. 멜로 드라마의 장르적 관습과 이데올로기적 효과,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중층적 독해는 이 장르를 사회 관습의 질서와 규칙 그리고 모순을 드러내면서 개인 연애 담론을 내러티브 욕망으로 풀어 가는 성 정치 이데올로기의 공간으로 재 정립하게 하였다.

물론 한국에서도 멜로 영화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남녀간 혹은 가족간의 애정이라는 매우 사적이고 빈약한 주제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흥행 장르로서의 멜로 영화만을 추종함으로써 타 장르의 제작기회가 박탈되고 한국영화의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었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한국 전쟁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제작된 일련의 멜로 영화들이 특유의 신파성을 과도하게 노출시킴으로써 오랫동안 ‘싸구려 감상주의에 편승한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 ‘연애환상을 가진 주부들이 즐겨보는 드라마’, ‘여성용 장르’ 등으로 치부되었고 이것은 ’고무신 장르‘라는 비하적 표현이 잘 보여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에서도 영화사회학적 관점에서 관객론과 대중 영화론, 영화의 성 정치학에 관한 담론 등이 증폭되었고 이 과정에서 멜로 드라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졌다. 당대의 여성관객들이 이 장르를 통해서 자신들의 감정을 과장되게 표출하였다면 이것은 당시의 사회적 여건을 비롯한 여러 구성 요소가 이러한 상황들을 만들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관객들은 이 장르 특유의 정서에 집중하고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멜로 드라마는 여성의 한을 주제로 하는 여성 영화의 플롯과 양식 한가운데에 위치하게 된다. 이 장르에 대한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평가와 통념에도 불구하고, 멜로드라마는 여전히 대중영화, 특히 한국 영화와 관객 사이에 가장 영향력 있게 공유되는 영화적 관습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 하나의 장르는 멜로드라마의 하부 장르로서의 역사물이다. 전통적인 왕조 드라마에서부터 최근의 수정주의적 역사영화까지 상당한 스펙트럼을 통해서 심리적․사회적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는 여성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을 읽고 소비하는 관객들이 여기에서 제시된 여성의 한 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특정한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게 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역시 일제식민지와 해방을 거치면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게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나 활동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도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통해서 남성들의 사회적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이데올로기와 규범을 사회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특히 60년대 이후의 공업화 과정에서 권력주체는 영화를 비롯한 대중매체를 체제의 정당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통제하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왜곡되고 굴절된 재현은더욱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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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한국 영화에서 여성의 정체성 탐구에 관한 담론이 대폭 증가되었다. 근대성 문제와 관련된 이러한 논의는 영화라는 대중매체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적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을 어떻게 억압했으며 이러한 억압이 한국 여성의 정서와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했는가를 밝혀주고 있다.

특히 한국여성의 가장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정서인 한(恨)이 내면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여성의 삶의 에너지로 승화되었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이 한국 여성에게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이며 이른바 여성영화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임을 전제하면서 한이라는 정서가 스크린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밝혀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영화라는 텍스트를 한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려는 의도가 무엇이며, 둘째, 이를 위한 분석적 방법이 무엇인지, 셋째, 이러한 분석을 위한 가장 적절한 영화 장르가 무엇이며, 넷째, 이러한 장르들이 한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여성의 재현에 어떠한 차별성을 드러내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첫째, 어떠한 개인이나 민족도 나름대로 한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으며 이 한을 다양한 방식으로라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특히 오랫동안 봉건적인 질서와 외세의 침략을 경험한 한국인의 경우, 그 한의 정도는 유달리 깊거나 절실하며 주체를 형성하는 근원적인 존재구조로서 고정된 방식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의 해소 방법이 특이하다.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보여지는 분노와 원한에 대한 즉각적인 반격이나 보복이 아니라, 그 한을 내부에서 초극하는 다시 말해서 ‘삭이면서’ 살아간다는 점이 한국적 특징이며, 이러한 한을 삭이는 과정을 통해서 한국인은 좀더 성숙해지고 삶을 전체적으로 통찰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을 통해서 현저하게 보여지는 한국적 한의 이 독특한 정서는 그 동안 판소리를 비롯한 여러 전통적인 예술 양식(판소리에는 한을 삭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한국인의 미학적, 윤리적 가치 의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것은 판소리에서의 특이한 용어인 ‘시김새’와 ‘그늘’ 등이 잘 보여준다. 이들 용어는 판소리의 표현양식을 지칭하는 동시에 그 용어의 본래의 뜻이 말해주듯이 판소리 특유의 한적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수잔헤이워드, Pg102,103 참조) 에서 투사되고 표상화 되었고 근대적인 대중 매체이자 표현양식인 영화에서 또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대중영화들은 여성을 감정적이고 순종적인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남성의 종속적인 주체로 구성하며, 영화 속의 담론을 지배하는 남성의 시선이 영화 속에서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쾌락으로 이어짐으로써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의 우월감을 충족시키는 남근 대치의 기호물로 혹은 남성 권력에 대한 수동적인 비준자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재현 속에는 해체적인 잠재력 (일반 관객들은 스크린  이면에 숨겨진 이러한 해체적 잠재력을 파악하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이런 차원에서 이러한 재현들이 무의식적으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확대재생에 기여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변재란 편역,<페미니즘/영화/여성>, 서울: 여성사, 1993) 이 은폐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이 경계 이탈자로 묘사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남성들이 자신의 사회적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법과 규범을 여성들이 위협했기 때문일것이고, 여성의 성적 물신숭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면 이것도 남성들이 자신의 Narcism 적인 성 심리의 통합성에 균열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부해야 하는 위협적인 성적 힘을 여성들이 재현하기 때문이다.

** ‘여성영화’ 는 90년대 초반, 즉 비교적 근자에 대두된 범주이다. ‘여성영화’ 에서 ‘여성’ 혹은 ‘여자’로 모두 모두 영어 어원 “Woman” or “Women” 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여자’라는 단어는 다소 ‘비하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점에서 90년대 여성주의 담론이 여자, 여성, 여류 등의 개념 중에서 ‘여성’을 재 전유 한것은 성차이의 정치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김소영 저 <근대성의 유령들>,9서울: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2000), 152-153면 참조. 한편, 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여성감독의 작품들을 구별하여, ‘여성영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잔 헤이워드 저. 이영기 역, <영화 사전> , (서울: 한나래, 1997) 37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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