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이강화 교수의 영화이야기

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멜로드라마 장르를 통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에게 그 과잉적인 감정적 동화는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많은 고난과 억눌림, 즉 한의 또 다른 표출이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멜로드라마의 신파성을 근대적인 서구 멜로 드라마에 비해 낙후된 전근대적인 정서로 폄하하는 것은 이 장르의 대중성의 본질과 미덕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다. 오히려 이처럼 한국 멜로 영화의 토대를 우리 고유의 정서인 한에 둠으로써 한국 멜로 드라마의 다시 읽어내 복원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결국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현실 문제를 지나친 개인 드라마로 풀어간 신파성에 대한 기존의 비판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렇게 볼 때 한국영화가 대중 관객들과 폭발적으로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19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과 1956년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이라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춘향전>은 유교적 질서 속에서 가치 평가된 여성 덕목인 정절을 재주장하고 재인가하는 작품으로서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와해된 여성들의 전통적 덕목에 대한 일종의 경고적 차원에서의 훈계로 읽을 수 있고, <자유부인> 역시, 표면적으로는 새롭게 시작하는 근대적 사회 내에서 한 주체로서 여성 즉 ‘자유부인’을 내세우지만 이들의 성적 욕망을 비난하고 처벌함으로써 내면적으로 전통적 덕목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한편,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쟁으로 인한 원초적 궁핍이 어느 정도 극복된 후 여성은 새로운 정체성을 요구받으면서 단순한 퇴폐의 기호가 아닌 좀더 자립적인 행위의 수행자로 등장한다. 압축적인 경제발전으로 인해서 매우 불균등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발전이 가능해졌고, 이 과정은 여성으로 하여금 새로운 주체적 존재로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이런 변화된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7Depp17waI

영화의 스토리는 젊은 여성과 유부남 사이의 은밀한 애정관계, 즉 불륜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젊은 여성은 아들을 낳아 미혼모가 된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아버지에게 보낸다. 그러나 아들을 몰래 지켜 보아야했던 그녀는 결국 아들을 스스로 부양하겠다고 결심한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도 과도하게 감상적이며 우연적이면서도 상투적인 서사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여성주의 비평가들의 주목을 끈 것은 물론 바로 이 정서적 과잉이고, 영화의 주체적 결말이다. 영화는 여성 주인공의 고통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과더불어, 남편의 외도를 인내해야 하면서 이 외도로부터 생긴 아이를 키워야 하는 본처의 고통까지도 함께 포착한다. 따라서 이른바 모성 멜로드라마로서 이 영화가 여성 관객을 사로잡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양가적 모성애에 있다.

모성이라는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구성물을 다루면서, 이 영화는 일단 제도적으로는 가족을 이탈한 모성을 가혹하게 비난하지만 다른 한편,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덕목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데, 이것은 한국문화가 모성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여성 관객들은 눈물, 절망, 그리고 분노를 통해서 자신들의 감정을 완전히 가동시키면서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자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이 가부장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에 대한 이해로 귀결될 수 는 없다. 이러한 인식이 과도한 정서적 반응과 한이라는 근원적인 감정의 분출과 연결됨으로써 매우 감정적인 일별로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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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둘째, 방법론에 있어서 여성주의(Feminism)적 관점은 한이라는 정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매우 유효하다.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가장 현대적인 매체인 영화가 오랫동안 다른 예술 문화 분야에 비해서 남성 우위적인 혹은 남성 독점적인 영역으로 남아있다면, 즉 영화의 표면적인 논리성 뒤의 특정 이데올로기가 남성들에 의해서 제공되어 왔다면, 영화 텍스트에서 여성의 소리와 입장은 배제되어 있을 것이고 여성 고유의 담화를 읽기란 한계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주의 영화이론의 출발선은 대중 영화 분석을 통해 여성의 이미지나 역할이 가부장적 시각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밝혀냄으로써 근본적으로 남성 중심적 시각과는 구별되는 방식에서 대중문화 특히 영화라는 텍스트를 재평가하고 재해석하려는 데 놓여있다. 그러므로 여성주의 비평은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시각과는 구별되는 방식에서 여성의 현존하는 관심에 입각해 한국영화라는 텍스트를 새롭게 해석하는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 후반 사회운동으로서 등장한 여성주의는 문학, 광고, 텔레비전, 영화 등과 같은 매체들에서 여성이 어떻게 묘사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으며, 그 결과 이러한 대중매체들이 한결같이 여성들을 남성위주의 관점에서 수동적 이미지로 혹은 남성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특유의 상업성으로 인해서 영상매체는 이러한 양상이 더욱 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헐리우드 영화를 중심으로 여성의 이미지나 역할이 이들 매체에서 어떻게 왜곡되게 재현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이를 위해서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과학적 방법을 차용했는데, 이중에서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통해서 화면과 관객 사이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미 생성이 영화 텍스트의 이해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규명하였다.

2. 고전적 멜로드라마

영화 탄생 초기부터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멜로 드라마는 주로 여성용 영화로 제작되고 여성을 위한 오락물로 소비된다는 인식으로 인해서 사회적 의미와 관련해서 진지한 연구의 논제로 대접받지 못해왔다.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리얼리즘이 거세되고 판타지만 강화된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시키는 위험한 장르로 공격당하였고,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정서적 쾌락을 제공하기 위해 성을 상품화하는 유해한 장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가 60, 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주의 이론가들에 의해서 새롭게 읽혀지게 되면서 멜로 드라마는 보다 공적인 영역에서 의미를 생산하는 장르로 인정되었다. 멜로 드라마의 장르적 관습과 이데올로기적 효과,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중층적 독해는 이 장르를 사회 관습의 질서와 규칙 그리고 모순을 드러내면서 개인 연애 담론을 내러티브 욕망으로 풀어 가는 성 정치 이데올로기의 공간으로 재 정립하게 하였다.

물론 한국에서도 멜로 영화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남녀간 혹은 가족간의 애정이라는 매우 사적이고 빈약한 주제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흥행 장르로서의 멜로 영화만을 추종함으로써 타 장르의 제작기회가 박탈되고 한국영화의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었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한국 전쟁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제작된 일련의 멜로 영화들이 특유의 신파성을 과도하게 노출시킴으로써 오랫동안 ‘싸구려 감상주의에 편승한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 ‘연애환상을 가진 주부들이 즐겨보는 드라마’, ‘여성용 장르’ 등으로 치부되었고 이것은 ’고무신 장르‘라는 비하적 표현이 잘 보여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에서도 영화사회학적 관점에서 관객론과 대중 영화론, 영화의 성 정치학에 관한 담론 등이 증폭되었고 이 과정에서 멜로 드라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졌다. 당대의 여성관객들이 이 장르를 통해서 자신들의 감정을 과장되게 표출하였다면 이것은 당시의 사회적 여건을 비롯한 여러 구성 요소가 이러한 상황들을 만들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관객들은 이 장르 특유의 정서에 집중하고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멜로 드라마는 여성의 한을 주제로 하는 여성 영화의 플롯과 양식 한가운데에 위치하게 된다. 이 장르에 대한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평가와 통념에도 불구하고, 멜로드라마는 여전히 대중영화, 특히 한국 영화와 관객 사이에 가장 영향력 있게 공유되는 영화적 관습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 하나의 장르는 멜로드라마의 하부 장르로서의 역사물이다. 전통적인 왕조 드라마에서부터 최근의 수정주의적 역사영화까지 상당한 스펙트럼을 통해서 심리적․사회적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는 여성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을 읽고 소비하는 관객들이 여기에서 제시된 여성의 한 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특정한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게 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역시 일제식민지와 해방을 거치면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게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나 활동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도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통해서 남성들의 사회적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이데올로기와 규범을 사회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특히 60년대 이후의 공업화 과정에서 권력주체는 영화를 비롯한 대중매체를 체제의 정당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통제하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왜곡되고 굴절된 재현은더욱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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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1980년대 이후 한국 영화에서 여성의 정체성 탐구에 관한 담론이 대폭 증가되었다. 근대성 문제와 관련된 이러한 논의는 영화라는 대중매체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적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을 어떻게 억압했으며 이러한 억압이 한국 여성의 정서와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했는가를 밝혀주고 있다.

특히 한국여성의 가장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정서인 한(恨)이 내면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여성의 삶의 에너지로 승화되었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이 한국 여성에게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이며 이른바 여성영화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임을 전제하면서 한이라는 정서가 스크린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밝혀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영화라는 텍스트를 한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려는 의도가 무엇이며, 둘째, 이를 위한 분석적 방법이 무엇인지, 셋째, 이러한 분석을 위한 가장 적절한 영화 장르가 무엇이며, 넷째, 이러한 장르들이 한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여성의 재현에 어떠한 차별성을 드러내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첫째, 어떠한 개인이나 민족도 나름대로 한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으며 이 한을 다양한 방식으로라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특히 오랫동안 봉건적인 질서와 외세의 침략을 경험한 한국인의 경우, 그 한의 정도는 유달리 깊거나 절실하며 주체를 형성하는 근원적인 존재구조로서 고정된 방식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의 해소 방법이 특이하다.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보여지는 분노와 원한에 대한 즉각적인 반격이나 보복이 아니라, 그 한을 내부에서 초극하는 다시 말해서 ‘삭이면서’ 살아간다는 점이 한국적 특징이며, 이러한 한을 삭이는 과정을 통해서 한국인은 좀더 성숙해지고 삶을 전체적으로 통찰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을 통해서 현저하게 보여지는 한국적 한의 이 독특한 정서는 그 동안 판소리를 비롯한 여러 전통적인 예술 양식(판소리에는 한을 삭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한국인의 미학적, 윤리적 가치 의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것은 판소리에서의 특이한 용어인 ‘시김새’와 ‘그늘’ 등이 잘 보여준다. 이들 용어는 판소리의 표현양식을 지칭하는 동시에 그 용어의 본래의 뜻이 말해주듯이 판소리 특유의 한적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수잔헤이워드, Pg102,103 참조) 에서 투사되고 표상화 되었고 근대적인 대중 매체이자 표현양식인 영화에서 또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대중영화들은 여성을 감정적이고 순종적인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남성의 종속적인 주체로 구성하며, 영화 속의 담론을 지배하는 남성의 시선이 영화 속에서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쾌락으로 이어짐으로써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의 우월감을 충족시키는 남근 대치의 기호물로 혹은 남성 권력에 대한 수동적인 비준자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재현 속에는 해체적인 잠재력 (일반 관객들은 스크린  이면에 숨겨진 이러한 해체적 잠재력을 파악하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이런 차원에서 이러한 재현들이 무의식적으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확대재생에 기여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변재란 편역,<페미니즘/영화/여성>, 서울: 여성사, 1993) 이 은폐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이 경계 이탈자로 묘사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남성들이 자신의 사회적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법과 규범을 여성들이 위협했기 때문일것이고, 여성의 성적 물신숭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면 이것도 남성들이 자신의 Narcism 적인 성 심리의 통합성에 균열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부해야 하는 위협적인 성적 힘을 여성들이 재현하기 때문이다.

** ‘여성영화’ 는 90년대 초반, 즉 비교적 근자에 대두된 범주이다. ‘여성영화’ 에서 ‘여성’ 혹은 ‘여자’로 모두 모두 영어 어원 “Woman” or “Women” 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여자’라는 단어는 다소 ‘비하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점에서 90년대 여성주의 담론이 여자, 여성, 여류 등의 개념 중에서 ‘여성’을 재 전유 한것은 성차이의 정치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김소영 저 <근대성의 유령들>,9서울: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2000), 152-153면 참조. 한편, 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여성감독의 작품들을 구별하여, ‘여성영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잔 헤이워드 저. 이영기 역, <영화 사전> , (서울: 한나래, 1997) 37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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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rector’s Role in the Creative Movie Artistry (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헐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을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특정한 플롯과 캐랙터 그리고 주제가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이러한 누적적 과정을 통한 특정한 표현방식에 대한 친숙화에 있다. 인간의 다른 체험들과 마찬가지로 장르체험도 특정한 지각과정에 따라 구성된다. 같은 유형의 체험을 반복해 감으로서 우리는 계속적인 보강에 의해서 규칙으로 굳어지게 마련인 기대감을 키우게 된다. 이와 유사한 경우를 운동게임에서 볼 수 있는데 운동게임이란 불변의 규칙과 시합의 성격을 결정짓는 구성요소들 간의 복합적인 체계이다. 한 운동게임에서 두 가지 규칙이 있을 수 없고 다른 것과 구별되는 그 운동 자체의 차별성이 존재하듯이, 특정한 장르 역시도 그 서술 구조 내에서의 규칙과 구성요소들의 차별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영화의 주제나 스토리의 정형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어떤 주제가 장르의 소재가 된다는 것은 일관되게 가치를 반영하는 네러티브 체계로서 지위를 인정받음을 의미한다. 관객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소재를 즐겨 찾기 마련이고 이러한 관습적 관람행위가 영화제작주체가 요구하는 안정된 수입과 직결됨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르영화가 관습적이고 타성화된 서술방식을 지향하는한 작가적 창의성이 장르의 경직성을 극복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관객과 영화를 정서적으로 일치시키는 탁월한 동화능력이다. 헐리우드 영화는 내러티브와 플롯을 철저하게 관객수용이라는 관점에서 적용한다. 내러티브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과정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내러티브는 다시 스토리와 플롯으로 나누어지고 스토리는 영화에서 명확히 제시되는 사건과 그 밖에 부연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플롯으로 바뀌어진다. 즉 스토리의 시공간적 순서나 흐름을 플롯에서는 몇 가지의 사실만을 보여줌으로써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장르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들에게 전체적인 원인과 결과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로서 제공된다. 영화 속의 사건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이 플롯을 통해서 제시된 사실들로 부터 다른 여러가지의 사실들을 유추해서 구체적인 원인 혹은 결과를 예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하게되고 동화되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특정한 영화작가의 플롯이나 주제를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핍진성(verisimilitude)이다. 핍진성이란 실제의 현실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의 사건들이 충분히 현실성있게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핍진성은 영화의 내러티브의 완결성과 스타일 상의 규칙들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내러티브의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맞아떨어질 때 관객들은 그 사건이 충분히 현실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심지어는 그 사건을 실제 현실의 사건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영화 속의 비현실성은 대중들로 하여금 한 순간이나마 실제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 일어날 수 없는 것, 그러나 경험하고 싶고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 SF장르가 대표적인데, 불가능과 구속의 세계인 실제 세계에서 탈출하여 가능과 자유의 세계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관객들은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또 이렇게 현실을 왜곡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현실로 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공통적으로 말해주듯이 장르영화가 궁극적으로 현실도피를 통한 미국이라는 사회구성체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데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포드나 혹스처럼 판에 박힌 플롯이나 스테레오타입화된 성격화를 두고 독창적인 예술성 운운한다는 것은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채, 헐리우드 영화에 지나치게 경도된 혹은 예술가라는 낭만적인 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유럽인들의 과잉의식의 결과라는 것이다.

작가주의자들은 이에 대해서 반박하기를 자신들도 헐리우드 장르의 관습들이 어떠한 것이며 그 한계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이러한 장르들이 새로운 의미들을 사전 봉쇄하기 보다는 오히려 감독들로 하여금 자신의 독특한 주제를 일관되게 다룰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새로운 의미의 생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어떠한 규칙의 체계라도 항상 위반의 가능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장르는 의미의 새로운 변주를 위한 장을 제공해주며, 따라서 장르는 감독을 가두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그에게 자유를 허락해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웨스턴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 장르는 오랫동안 미국 건국과정을 정당화하고, 미국의 건국신화를 유포시키는 장르로 기능했지만 70년대 이후의 웨스턴은 미국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어두운 면을 드러내어 고발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작가주의는 결국 장르주의와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그 존재의미를 확인 할 수 있다. 만약 장르 제작이 상업적인 흥행을 지향함으로써 작가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만 기능한다면 적어도 헐리우드에서는 작가주의는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장르영화가 그런 식으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한계가 창조적인 작가들에 의해서 극복되어서 장르의 관습성을 자신의 고유한 표현방식을 위한 기회로 사용한다면 작가주의는 적어도 장르주의의 한계를 능히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논쟁의 가장 커다란 공헌은 무엇보다도 이 시대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영화를 고급예술의 관점에서 진지한 논의의 대상에 까지 오르게 하였다는 점이다. 아울러 장면화에 대한 작가주의의 주목은 도덕적이거나 미학적 성격에 집중되었던 이전의 논의를 극복하고 영화적 특수성에 관한 분석을 위한 기초작업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되지 않는 가치평가와 이를 근거한 서열화는 비판적이고 이론적인 쟁점들이 구체적이고 사회적인 쟁점들과 맞물리는 보다 광범위하고 초 학문적인 논쟁으로 부터 벗어났음을 잘 보여주는데 이것은 작가주의가 보여준 몰 역사적인 사유를 잘 말해준다. 사실 특정한 감독들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개성적 스타일, 퍼스낼리티를 추적하는 수색자로서의 비평작업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정확한 분석틀의 결여와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주관적인 태도는 작가주의 비평을 비 정치적이고 낭만적인 주관성의 미학으로 변질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로빈 우드와 같은 평론가들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누가 미국영화의 최고작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서열화에 대해 어떻게 보면 영화예술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칭 감식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도락적인 언쟁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가주의’ 이론이 유럽과 헐리우드의 몇몇 장르감독들을 발견해내는 데는 커다란 기여를 했지만,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서의 영화제작과정에서 제한된 감독의 기능을 지나치게 무시함으로써 무분별한 ‘헐리우드 숭배’ 혹은 ‘작가숭배’로 빠지는 우를 범하였다는 비판은 끝내 모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성기에는 쉽게 확인될 수 없었던 이러한 작가주의의 한계는 68년 혁명 이후 대두된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그리고 형식주의와 논쟁에서 결정적으로 구체화되었음을 이후의 영화이론사가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이강화 교수님의 영화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계명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은 전 세계의 한국 독자, 또는 한국의 교육 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세계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면을 빌어 교수님의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편집자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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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rector’s Role in the Creative Movie Artistry (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작가주의가 미국영화에 도입되었을 때 그 개념은 더욱 통속화되었다. 사실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심미안’을 자랑하는 이 프랑스 젊은이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시 미국영화는 전세계적으로 과도한 상업성읠 추구라는 이유로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상업적 측면에서의 미국영화의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미국영화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고조되었는데 이유인즉 미국영화는 예술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모든 개인의 감정을 말살시키는 거대한 상업기계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헐리우드의 경직된 제작시스템 속에서도 몇몇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조적인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이론은 적어도 예술성에 있어서는 늘 유럽영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미국영화의 열등감을 씻어주기에 충분하였다. 미국의 평론가들은 프랑스 평론가들에 의해서 창조적 예술가의 전형으로 추앙되는 이들 감독들의 작품들을 새삼 극찬하면서 이전까지 자신들도 폄하하였던 자국영화의 우월성을 변호하는데 앞장섰다.

앤드류 사리스는 이러한 쇼비니즘적인 경향을 대표하는데, 그는 자신의 저서 <미국영화>에서 ‘작가정책’(politique des auteurs)을 ‘작가이론’(the auteur theory) 이라고 재명명하면서 대부분의 감독들은 스튜디오의 요구, 자신이 쓰거나 관여하지 않은 시나리오나 제작자가 고용한 배우, 카메라 맨 등의 간섭이나 제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반면, 그가 일차적으로 선택한 14명의 감독은 “개성있는 세계관으로 기술적인 문제들을 초월한”감독들로서 이른바 A급에 속하며, 이차적으로 선택한 20명의 감독은 “그들의 개인적 비전의 취약함 그리고 일관성없는 경력문제 때문에” B급에 속한다는 식으로 도식적으로 배열하였다.

( Winter Light 1961, by Ingmar Bergman)

작가주의가 이렇게 변질되어가자 자연히 평론가들 내부에서도 이 이론에 대해서 반발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작과정 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몇몇 감독들, 예를 들어서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혹은 페데리코 페리니 정도의 감독들에게는 그 이론의 적용이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스튜디오 시스템 내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다수의 헐리우드 감독들에게 과연 작가라는 타이틀의 적용이 가능하겠느냐하는 것이다. 또 히치콕, 포드, 혹스 등 소수의 감독들이 헐리우드의 전성기에 각기의 작품에 개인적인 특징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헐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이 다수의 기능자 집단이 만들어낸 집합적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독창성을 어느 정도나 구분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관습적인 장르제작이 보여주듯이 헐리우드 시스템의 구조가 터무니 없이 거대하기 때문에 아무리 감독의 개성이 강렬할지라도 대개의 경우 스튜디오(영화사)의 스타일, 배우의 스타일, 프로듀서의 다양한 요구, 시나리오작가의 특성 등 광대한 주문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견은 헐리우드 특유의 장르영화를 분석해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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