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박준기 중사 사건을 재 조사 하라!

Re-Open Sergeant Park’s Case! Solo picket protest at BH Spreads to the SNS

 

청와대앞에서 눈이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더워도 오직 진실 하나 만을 알기 위해 시작한 작은 몸짓이 SNS 상에 알려지면서 단 10분이라도 청와대 앞에서 진실을 향한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가장 오랜 시간 눈과 바람과 폭염과 싸우며 피켓을 들고 있던 일반 시민인 김희명씨를 만나보았다.

김희명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박중사 하나만을 위한 사건 재조사가 아닙니다. 이는 대한민국 모든 엄마, 모든 가족들의 사건일 수 있습니다. 국민의 의무인 군복무임무로 자식들을 정부조직인 군대에 맡기면서 안심하고 보낼 수 없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는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국가 기관이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국가를 믿고 자식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국민의 의무인 군복무라고 하지만요. 저도 아들을 둔 엄마로서 남의 일이 아니다 라는 생각에 동참하게 되었고, 지난 시간 매일 힘든 일과에도 불과하고 청와대앞에서 피켓팅을 하게 되었다. 군적폐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피케팅을 하는 두 시간 동안은 정말 도를 닦는 느낌으로 서 있습니다. 저는 출발할 때 피케팅 예정 시간을 먼저 올리고 출발을 하는데 그 이유는 누군가가 참여를 해 주실 바라는 마음 그리고 참여를 위해 청와대로 오셨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실까봐 입니다. 청와대는 위치상 산 아래라 평지보다 체감온도가 훨씬 찹니다. 손발이 시리고 광대뼈가 아릴 정도의 찬바람 속에서 두 시간을 서 있다는 건 정말 외로운 싸움이고 누군가 오셔서 잠시간이라도 들어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시간을 미리 올리고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길을 떠납니다. 간혹 찾아와 주시는 분들 너무 고맙고 그 먼 청와대를 일부러 시간내어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 힘이 날뛰도록 있지만 그래도 혼자 서 있는 날들이 더 많은 외로운 싸움입니다. 찬 겨울 무리해서 찾아와 주시 끼지는 바라지 않지만 시간이 되시는 분들이 찾아주셔서 박중사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외로운 싸움에 단 5분이라도 피켓을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댓글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코리일보는 수 차례에 걸쳐 “박 중사 사건 재 조사”에 대한 기사를 개제해 왔다.

진실을 향한 어머니의 절규, 군인으로 당당하게 군복무를 하던 미래가 촉망되었던 젊고 건장한 청년이 어느 날 두 다리가 잘린 채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그는 군인으로서 절대적으로 있어서는 안될 불명예인 ‘자살시도’라는 오명을 받은채 온 것이다. 그렇게 지난 십 수년을 살고 어느날 자신이 기억이 돌아왔을 떄 박중사는 자신이 분명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지난 시간들은 힘든 싸움을 계속해 왔다.

최근 박중사의 형인 박준호씨는 자신이 직업이 있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통보를 받았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동안 진실을 규명을 위해 온 가족이 지난 23년을 싸워오면서 이들 가족은 지금 너무 지쳐있다. 가족 모두 벼랑 끝에 아슬아슬 달려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SNS 에서 청와대 1인 시위에 너도 나도 힘을 보태고 있다.

기초 수급 대상에서 부모님이 제외된다면 이제까지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하듯 살아온 가족의 삶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면 관계 당국에 선처와 도움을 요청했다.

김희명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진실을 찾기 위한 몸부림에 동참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는 정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며 시간이 되면 꼭 청와대 1인 피켓 시위에 잠시라도 들러 잠깐 동안이나마 교대해 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 붙였다.

피켓팅에 참여해 주신 분들은 아래와 같다.

전한권, 유미자, 김수웅, 양미애, 김종필, 김재현, 위성일, 김미애, 강규수, 박관민, 배용호, 김혜정, 홍제현 등 이름을 밝히지 않은 많은 시민 참여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박준호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Re-Open Sergeant Park’s Case! 8. 박중사 사건 재조사를 당장 시행하라!

지난 24년을 자신의 두 다리를 잃어버린 정확한  이유도 모르는 채 살아온 박군기 중사는 최근 춘천 경찰서에서 문서가 왔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24년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건장한 육군 중사는 정상적으로 퇴근후,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신후, 친구의 차를 운전하다 빙판에 차가 미끄러진 후, 응급 구조 신고를 한 후 춘천 한림대학교에 친구와 도착했고, 친구는 응급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중에 박중사는 경찰에 신고할 당시 군인이었던 관계로 헌병에 인수 인계되어 헌병에서 김화용 중사가 이 사건을 인수하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그 후, 멀쩡한 박중사는 의식을 잃고 춘천 한림대 병원에서 자실을 시도하여 추락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박중사가 의식을 회복하고 돌아온 기억속에서 그는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더더욱 추락사는 없었으며, 김화용 중사와의 언쟁이 있었고, 김화용 중사가 주차장이 있는 곳이 아닌 계단으로 박중사를 인도한 후, 가슴을 쳐서 계단에서 추락하자 그 후, 병원 수위장이 사건 현장에 온 후, 사건을 목격하고, 이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의논? 한 후, 의식을 잃은 박중사를 운반해 자동차로 밟아버린 기억을 되찾았다고 한다. 박중사는 억울한 자신의 사건을 다시 재 조사해 줄 것을 수 차례 요구했고, 그러는 사이 세월은 24년이나 흘렀다.

박중사 측은 춘천 경찰서에 대해 정보공개 요구서”1994년 12월 17일 강원 춘천시 잼버리 도로에서 친구 김창래로 부터 운전을 양도받아 운전중 우측 가드레일을 충돌하는 자차사고 관련 112 신고시 녹음된 내용 공개, 춘천 경찰서에서 교통사고 조사 내용과 군 2군단 헌병대와 신병 인수인계시 작성된 인수 서류 요청” 를 신청했다 고 한다. 그런데 10월 27일 박중사는 춘천 경찰서에서 내부 결재용으로 확인된 서류를 받게되었다.

정보공개 비공개 결정 통지서(정보 부존재)를 받았는데 사유는 다음과 같다.

정보라 함은 직무상 작성 또는 취득하여 관리하고 있는 문서, 도면등을 말하며 공개라 함은 정보를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 복제물을 교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청구인께서 청구하신 자료는 춘천 경찰서에서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해당하지 않아 정보의 부존재로 비공개 결정하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존재 사유>

  • 112 신고 기록 및 녹음 기록 : 112 종합상황실 운영 및 신고처리규칙 (경찰청 예규 제 490호, 2015.2.6) 제 6장 (자료의 취합 및 보안 등) 제 23조 (자료보존기간)에 의거 112신고 접수처리 입력자료는 1년, 음성녹음파일은 3개월 보존후 자동폐기 되어 기간 경과로 부존재
  • 교통사고 조사내용: 당시 사고차량 운전자가 군인신분으로 확인되어 군 헌병대에 전화통보하여 군 수사기관에서 사건처리 한 것으로 부 존재,  사고 현장 초동조치중 군 헌병대에 연계하여 신병인수증(명확한 처리지침은 없음)을 받지 않아 부존재

제 23조 2항에는 지방경찰청장 또는 경찰서장은 문서 및 녹음자료의 보존기간을 연장할 특별한 사항에도 불구하고 보존기간을 연장하여 특별 관리할 수 있다.

제 24조(신고내용의 유출금지) 누구든지 정당한 이유없이 112 신고및 상황처리와 관련하여 타인에게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바로 “신병인수증” 에 대한 명확한 처리지침이 없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혹시 누가 신병을 인수하는 가에 따라 지침이 달라지기 때문은 아닌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처리 지침이 없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상부에서 요구하거나 또는 상급 관리 관청에서 요구하면 언제든지 신병을 인수해주면서 인수증을 받지 않고 그동안 일을 처리해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군 헌병대에 인수인계하면서 신병인수증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경찰과 군 수사 기관과의 긴밀한 공조?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이것 또한 적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저런 사유로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는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사실에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가 단지 군대와 군인의 문제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23조 2항을 따라 경찰서장이 보존기간을 연장하여 특별관리하였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특별관리 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신병인수하면서 신병인수증을 주고 받지 않았다면 무엇인가 따로 보관하여 사건의 추이를 관망해야 하는 것은 경찰서장과 경찰서 직속 담당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24년전 춘천경찰서에서는 출동하여 신변 확보후, 헌병에 연락하고 바빠서 “현행범인 박중사 혼자 병원에 두고 자리를 떳다” 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의 부존재 사유 중에 “당시 사고차량 운전자가 군인신분으로 확인되어 군 헌병대에 전화통보하여 군 수사기관에서 사건처리 한 것으로 부 존재,  사고 현장 초동조치중 군 헌병대에 연계하여 신병인수증(명확한 처리지침은 없음)을 받지 않아 부존재” 라는 항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군 헌병대에 연계” 했다는 것은 “박중사 혼자 병원에 두고 자리를 떳다” 라는 말과 상반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군 수사기관이 즉 박중사 사건과 관련하여 밀접하게 연관된  김화용 중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시시비비를 가려내야 할 것이다.

박중사는 지난 24년을 두 다리를 잃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다. 이제 그에게 다시는 두 번의 아픔과 설움을 겪지 않게 군 수사 당국과 검찰은 이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내어 진상 규명과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피해 당사자가 이 사건을 다시 재 수사 요청하면 당국은 이에 부응하여 다시 수사해야 한다.

군인으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 두 다리가 잘린채 의족을 끼우며 매일매일 청와대 앞에서 진실규명을 외치는  박중사의 피 맺힌 절규를 외면하지 말고 인권변호사들은 이 일에 솔선 수범하여 사건의 해결과 진상 규명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성 있게 지난 24년동안 두 다리를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 많은 고개를 넘고 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인권 변호사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진정코 “박중사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 는 말이 이곳 미국 땅까지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고 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밝혀지게 될 것으로 믿는다.

돈이 없으면 변호사도 살 수 없는 사회, 국방부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변호사들이 꺼리는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 시대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인권 변호사 무료 변론 시스템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가 지원을 해야 그들 무료 변론 변호사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엔 거주 지역 주마다 무료 변론 프로그램이 있다.

Supreme Court Justice Ruth Bader Ginsburg remarked that “a lawyer will gain large satisfaction when he or she is not simply a fee-charging artisan, but a contributor to the public good.”(Ruth Bader Ginsburg, April 9, 2001 speech at the David A. Clarke School of Law, University of the District of Columbia. ) *이글은 하버즈 로스쿨에서 발행하는 프로보노 프로그램 안내에서 인용했음

대법원 판사 루스 배더 긴스버그씨(84)가 지난 2001년  데이비드 에이 클라크 로스쿨에서 연설한 말이다.  “변호사가 돈을 받지 않고 진정한 변호를 했을때와 공익을 위해 기여했을때 변호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대 만족을 갖는다” 라고 말을 했듯, 한국도 각 대학마다 있는 로스쿨에서 양성하는 변호사들에게 무료 변론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그들, 변호사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는 그들로 인해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Blue House : Military and Civil Investigation of Sergeant Park to Restart 2<청와대: 박중사 사건 재조사 하라!>

최근, 국민인수 위원회는 박중사 자살조작 살인미수 사건을 검찰에 이관, 검찰은 다시 국방부에 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위해 민관 합동 조사를 착수하겠다던 약속은 이제 어떻게 된 것일까?

 

코리일보는 이 사건의 재조사를 위한 과정중 얼마만큼 진전이 있는 것인지, 계속적으로 살피고 있다.
다음은 박준호(박준기 중사 형)씨와 일문 일답을 통해 이 사건이 해결되고 있는 지, 아니면 오리무중인지, 아니면 누군가 여전히 은폐를 위해 꼼수를 부리는 지 살펴보기로 했다.

 

지난 6월 말 박준호씨와의 대담 내용이다.

 

기자:
지금 박중사 사건 재조사가  어느정도 진전이 있습니까?
박준호씨:
6월 27일,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저에게 알려온 소식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귀하께서 제출해 주신 서류는 소관 기관에서 처리함이 타당할 것으로 보여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소관기관에서 답변을 드릴예정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는 제출하신 민원이 세심하고 철저하게 답변될 수 있도록 직접 관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자는 발신전용입니다.” 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 사건이 왜 국방부 감사실에서 검찰로 이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사건이 군인의 신분일때 발생한 사건인데 말이다. 문제는 국방부 감사실에서 재조사를 해야 하는게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사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겉으로는 일을 하는 것 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이 사건을 유야무야 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 박준호씨에게 물었다.
“국방부감사실에서 지금 민.군합동재조사를 해야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할수없는 곳에 이관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감사실에서 육본으로 이 사건을 이관했습니다. 그런데 육본에서는  “이사건 우리가 할일이 아니다”라고해서 감사실에 돌려보내니, 감사실은 이 사건을 또 검찰로 이관했습니다. 이는 지금 한민구가 민.군합동재조사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감사실에서 하는게 맞고 또 이전에도 권익위원회에서 재조사하라고 감사실로 보낸것인데 이를 회피하며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것같습니다.
인수위도 보건부.행자부와함께 한다고 약속하고는 한달이 다 되 가도록 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두번 울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해를 돕기위해 그동안 있었던 진성준 의원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의 일문 일답을 박준호씨의 도움으로 게재했다.
아래는 이 사건, 박중사 자살조작 살인미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국회 인권위원회 진성준 위원이 국방부장관 한민구에게 묻는 질의 응답이다.

진성준 위원

진성준 의원입니다.
저는 오늘 무려 21년 전 군 내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국방부장관께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사전에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제가 실무자를 통해서 장관께 보고드리도록 했는데 보고를 받아 보셨습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예, 제가 이것에 대해서 위원님 관심사항을 듣고 관련 보고도 다시 한 번 받고 그렇게 했습니다.

진성준 위원

박준기 중사인데요.
이 박준기 중사가 94년 12월 17일에 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람은 운전사고를 냈는데 운전사고 때문에 병원에 옮겨졌다가 나중에는 다리를 절단하는 일까지 벌어졌어야 했어요.
(자료를 들어 보이며) 이게 지난 토요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인데 지금 다리 무릎 아래 부분을 다 절단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군의 수사 결과는 이 사람이 교통사고를 범해서 죄책감을 못 이겨서 당시 이송되었던 춘천에 있는 성심병원 10층 성당으로 돼 있는 방에서 3층 높이의 옥상으로 자살하기 위해서 떨어졌다, 뛰어내렸다, 그래서 다리를 아주 심하게 다쳤고 그래서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는 게 군의 수사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처음에는 의식을 잃어서 기억을 상실했으나 나중에 기억을 회복해 가요.
그러면서 자신이 아주 경미한 사고였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죄책감을 느껴서 떨어져서 자살을 할 만큼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영상자료를 보며) 실제로 당시의 수사 기록을 제가 죽 살펴보니까 94년 12월 19일 군의 수사 기록은 이 문제의 박준기 중사가 뛰어내렸다고 하는 10층 높이의, 저 성당이라고 하는 맨 위의 방입니다.
이 방이 위의 상부 유리창은 폐쇄형으로 고정되어 있고 아래가 반쯤 열리는 창이었는데 그 반쯤 열리는 창을 열고 뛰어내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반쯤 열리는 이 창의 너비가 얼마나 열리는가? 21㎝ 열린다고 수사 기록에 돼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의 체격이 175㎝에 70㎏, 가슴둘레가 123㎝입니다.
실험을 해 보니까 머리가 안 빠져 나가요, 21㎝ 열리는 창 폭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 문제 제기를 하지만 군에서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러니까 2007년도에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소를 해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이것 다 조사를 합니다.
그래서 국방부에 권고를 해요.
다른 많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박준기 중사가 뛰어내렸다고 하는 이 창틀 21㎝로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가 없다, 다시 조사해라.
그러니까 국방부가 다시 조사를 해서 진술을 한 사람 받아내 가지고 당시에 약 30㎝ 열린다, 사고 당시에는 더 많이 열렸다고 그런다, 그러니까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다 이렇게 하고 조사를 끝내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보니까 조사 때마다 창문 폭이 달라요.

2002년도 8월 29일자 민원회신문, 1군사령부 헌병대의 조사 기록에 의하면 성심병원의 총무과장 최 아무개라고 하는 사람이 진술하기를 투신사고가 발생한 후에, 박준기가 뛰어내린 뒤에 사람이 드나들 수 없도록 재발방지 차원에서 병원의 창문 폭을 축소 조정했다, 열었을 때 24㎝였다가 14㎝로 조정했다 이렇게 답변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24㎝ 열렸다는 거예요.

그러면 2008년도에 국방부 검찰단이 재조사했을 때 30㎝ 열렸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 아닙니까? 진술이 일관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21㎝ 열린다, 나중에 2002년도 조사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24㎝ 열렸다, 그다음에 2008년도 조사에서는 30㎝로 그보다 더 많이 열렸다, 이렇게 자꾸 진술이 엇갈리는 겁니다, 동일인의 진술인데…
그러니까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도대체 군의 수사를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저 위의 10층 방에서부터 박준기 중사가 떨어져 내렸다고 하는 3층 옥상 사이의 높이가 얼마나 되느냐 하면 실측하면 22m입니다.

그런데 군 수사 기록에는 15m로 되어 있어요.
이 15m를 바꾸지를 않습니다.
실제로 재어 보면 22m 나오는 것을 15m라고 막 우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22m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그런 정도로 상해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의료 기록에 의하면 머리나 이런 데는 거의 다친 적이 없어요.
그냥 찰과상 정도만 입었다는 거예요.
22m에서 뛰어내리면 그런 정도 상처가 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죽었으면 죽었지.
이게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진술입니다.
그러니까 군의 수사 기록이 초동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를 가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하물며 이렇게 민원인이 문제를 제기하면, 이것도 수 년에 걸쳐서 문제를 제기하면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서 민원인을 설득하려면 납득할 수 있는 제3의 민간 전문가라든지 중립적인 누구라든지를 불러 가지고 함께 수사를 해서 믿을 수 있게 해 줘야 되는데 아주 형식적인 수사만을 하고 그냥 덮어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우리 군을 믿을 수 없다고 트위터며 저 다리 잘린 사진을 계속 실어 가지고 우리 군을 성토하고 있어요.
장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저도 그 신문기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읽었고 보고도 받았는데 여러 차례 조사를 해서 결과가 박준기 씨의 주장과는 다른 이쪽 우리 군의 주장은 지속되고 있는데 국민권익위에서도 해서 여러 가지, 또 국방부 검찰단에서도 확인을 한 바가 있고 해서…… 저 문제는 지금 벌써 20년 이상이 돼서 여러 가지 시효는 다 경과한 일인데 저 문제에 대해서 한번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군의 조사를 못 믿으면 다른 민간과 함께 다시 한 번 확인한다든지 하는 그런 작업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진성준 위원

사건 초기에 정확하게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지고 수사 기록이 개판입니다.
만약에 거기서 뛰어내렸다면 방충망이 달려 있었는데 이 방충망이 찢어져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뛰어내렸다라고 하는 그 위치에는 방충망이 찢어져 있지 않습니다.
수사 기록에 그렇게 돼 있어요.
찢어지지 않고 어떻게 바깥으로 뛰어내립니까?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대로 21㎝밖에 안 열리고 또 높이도 다르고 말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박준기가 짚었다고 하는 지문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지문을 실제로 채취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그것이 박준기가 짚은 지문인지 어떤지가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또 옥상 바닥에 남아 있다는 혈흔도 채취해서 DNA 검사 같은 것을 안 한 겁니다.
그래서 그 혈흔이 박준기의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몰라요.
군의 초동수사가 개판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재수사를 해야 진실이 드러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진실이 드러날 수 없다면 물론 민원인의 주장도 100%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진상불명으로라도 보상을 해야 되지요.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그런데 이 사람을 내버려 두고 있는 겁니다, 자살했다고 해 가지고.
이렇게 억울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군의 수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민원인의 주장을 탄핵할 수가 있겠지요.
이런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다, 당신의 주장이 무리하다, 과도하다.
그런데 지금은 진상을 밝힐 수가 없는 거예요, 군의 초동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가지고.
그렇다면 이것은 군의 책임이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그 문제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가 조사를 여러 차례 했는데도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이 확보가 안 된 상황이라고 저도 지금까지 이해를 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군이 어떤 식으로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조치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다시 한 번 저희들이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진성준 위원

사건의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저는 군에서 이것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임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방부장관 한민구

잘 확인하고 검토하겠습니다.

***

아래의 내용은 부산 동래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 박사의 감정 결과 입니다.
동래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 감정결과입니다.

 

다) 의료감정 결과 신청인이 위 진료기록에 대해 2007년 11월 13일 부산 소재 동래봉생병원(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으로부터 받은 감정결과는 아래와 같다.

 

(1) 10층(22m 높이)에서 3층 콘크리트 옥상 바닥으로 추락 시 상해정도에 대해, “i)머리가 먼저 지면에 접촉 시 즉사,

 

ii)양측 하지로 지면에 착지 시 족관절, 슬관절 및 대퇴관절에 다발성골절 및 하지의 근육, 인대와 연골파열, 척추 및 골반 골절, 체간의 손상과 내부 장기의 치명적인 손상 혹은 사망,

 

iii)체간이 먼저 지면에 착지 시 죽사하거나 갈비뼈 골절을 동반한 치명적인 심폐질환 손상 및 간, 비장, 신장, 방관의 파열과 좌상 등과 다발성 골절 및 두부손상 등이 일어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2) 한편, 위 사고가 추락에 의한 상해인지 여부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22m 높이에서 추락 시 거의 사망하거나 신청인의 상해정도보다도 더 심각한 상해를 입을 것 같으나, 정확한 판단을 위해 이 부분의 전문의 소견이나 법의학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3) 신청인이 본 사건은 은폐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진술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우리 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신청인은 “현재 장애상태(전역이후 1997년 왼쪽무릎 밑 다리 절단수술 후 의족 사용, 지체장애 2급 등록)는 2.3m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입은 상해로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본인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후 의식을 잃기 전에, 본인이 사망하거나 기억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추정) 헌병수사관 김하용이 홍○일에게 자신의 폭행사실을 인정하면서, 사고수습을 위해 홍○일에게 원내에서 당직수위 근무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는 등 협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자, 홍○일이 과거 병원에서 환자들의 투신자살 사례를 언급하며 본인이 투신한 것으로 사고를 위장하기로 감화용과 담합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의식을 잃은 이후 본인에게 현 장애상태에 해당하는 별도의 추가 가해사실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한편, 신청인은 추가 상해경위에 대한 군 수사시록에 대해, “헌병수사관 김○용의 가해사실에 따른 책임과 수위 홍○일의 당직근무자로서 사고에 대한 책임 회피 등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술하였다. 라. 이 외에도, ‘인지보고서’에는 당직의사 정○석의 연령(30)이 실제연령(25)과 다르게 기재된 점, 병원 10층에서 3층 옥상까지의 높이(15m)가 춘천성심병원에서 측정된 높이(22m)와 다르게 기재된 점 등 객관적인 사실내용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기록들이 발견된다.
4. 판 단

 

가) ‘전공사상처리규정'[국방부훈령 제392호(1989년 9월 7일)] 제3조 제2항 및 같은 규정 별표1에 의하면, 공무수행 중 또는 공무와 관련된 사고 및 재해로 발생한 상이자의 경우 이는 ‘공상’에 해당하거나,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끊었거나 그로 인한 결과로 사망 또는 상이자는 ‘비전공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신청인이 추가 상해를 입게 된 이유가 자살을 목적으로 한 투신인 경우에는 비전공상에 해당하나, 헌병 수사관의 가해로 인해 발생한 상해인 경우에는 공상에 해당될 수 있다.

 

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결과, 신청인의 추가 상해에 대한 군 헌병대의 초동수사과정 및 수사기록에서 발견되는 수사 미진사항들은 아래와 같다.
1) 수사기록관련

 

가) 신청인이 투신한 장소로 추정된 성당 창문의 경우, 그 개장 폭(21cm)이 신청인의 신체(신장 175cm, 체중 70kg, 가슴둘레 132cm)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아니며(우리 위원회의 모의실험 결과, 머리의 통과가 불가능하였음), 반개방형 창문은 방충망이 훼손되지 않은 채 그 위쪽의 폐쇄창문의 방충망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점(개방된 창문을 통한 통과 자체가 불가능), 현장에서 발견된 손가락 자국과 혈흔에 대한 지문감식 및 혈액감정이 실시되지 않은 점 등을 통해 볼 때, 신청인이 투신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객관적인 정황증거 수집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홍○일 및 박준호가 신청인이 투신한 장소라고 추정한 현장에서 상태에 대해, “방충망이 훼손되지 않았다.”라고 일치하게 진술한 것은 ‘목격자 진술조서’와 이를 기초로 작성된 ‘인지보고서’가 조작되었을 개연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 신청인의 발견위치(후송위치)가 수사기록과는 다르게 ‘1층 현관 직상지점’이라는 후송의사 정○석의 진술과 ‘원내 급수펌프 지점’으로 확인하였다는 신청인 및 신수철의 진술이 상호 유사한 지점인 점, 수위가 신청인을 발견하고 응급실로 후송하는데 소요된시간이 7분이라고 하나 후송의사 정○석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한 점과 우리 위원회의 측정결과 최소 20분 이상 걸린 점 등을 볼 때, ‘인지보고서’의 후송시간 및 장소에 대한 기록이 부정확하거나 비현실적이라고 판단된다.
2) 상해 관련

 

가) “신청인의 상해정도는 10층(22m 높이)에서 떨어진 경우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상해정도(즉사 또는 더 심각한 상해)로 볼 수 없다.”라는 의료감정 결과 및 이와 유사한 소견을 제시한 정○석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신청인의 상해정도는 10층 성당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나) 특히, 진료기록에서 “무언가에 짓눌려서 해당부위의 연골, 근육 등 내부조직이 파열된 상해”인 ‘양측족부(발목) 압궤상’으로 진단된 점, 안면부에 대한 상해정도가 교통사고와 낙상에 의한 상해가 ‘경미하게 긁힌 정도’로 유사한 점은 위의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 한편, 최초 전화통화 시 정○석이 “후송된 그 환자가 아마도 사망하지 않았느냐?”며 되물은 사실과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홍○일이 신청인에게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서 올 줄은 몰랐다. 박 중사에게 도와주고 싶지만 못 도와줘 미안하다.”(신청인 및 신수철에 의하면, 홍○일은 1999년 9월경 병원 방문 시에도 동일한 취지로 말함)라고 하면서 경계하듯이 말한 것으로 보아, 당시 신청인은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신청인의 주장 관련

 

가) “현재의 장애상태로 보아 2.3m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입은 상해가 아니라, 김○용과 홍○일의 사고위장 담합에 의한 추가 가해로 인해 입게된 상해이다.”라는 신청인의 주장은 앞서 언급된 수사 미진사항 등을 고려할 때,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

 

나) 한편, 위와 같이 하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된 군 수사기록과 달리, 신빙성 있는 신청인의 진술이 발견되고 있음을 볼 때, “신청인의 진술내용이 신빙성이 없으므로 최초 헌병의 수사기록에는 하자가 없다.” 라는 취지로 답변한 기존 육군본부의 민원처리결과 회신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 요약컨대, 김○용 등 헌병수사관은 ‘신청인이 창문에서 투신하였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 자가 없는 상황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신청인을 최초 발견하였다는 홍○일의 추정적 진술에만 의존해 과학적이지 못한 수사를 진행한 결과, 객관적인 정황증거 없이 ‘죄책감으로 인한 자살시도’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고 판단된다.

 

계속되는 군대 내.외 문제,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며 하룻 밤도 편하게 잘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며칠전에는 DMZ 지역에서 중사 한 명이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새로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광화문 1번지에서 박준기 중사는 두 다리에 의족을 한 채 몇 시간동안 자신이 지나온 삶을 반추했다. 결단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 한민구 국방장관 입으로 분명히 군관민 합동 조사를 실시한다고 해 놓고선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불투명하다. 얼마만큼 조사가 진행되었는 지, 조사를 진행했으면, 왜 당사자인 박준기 중사에게 알려주지 않는지, 과연 조사는 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때는 군인이었던 그는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지휘권자인 국방부 장관의 말을 기억하고 있으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국방부 감사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성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진실에는 공소 시효가 없다!” 고 하는 박준기 중사의 말처럼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서 그와 그 가족의 억울한 지난 24년을 되 돌려 받게 되기를 바란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Re-Open Sergeant Park’s Case! 6. 군인으로서 명예 회복과 잃어버린 삶을 찾아서<박준기 중사 사건 다시 재조사 하라!>

(사진은 박준호씨 페북에서 가져옴)

7월5일(현지 시간) 청와대는 박준기 중사 자살 조작 사건에 대해 민.군 합동 재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박준기씨 형인 박준호씨가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코리일보에 알려온 적이 있다. 바로 한 달 전이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재조사에 나설 것 같았던 정부는 현재 갈팡질팡하고 있다. 즉, 인수위원회에서 그들이 접수한 사건을 검찰에 이관하였다고 하고, 검찰은 다시 국방부에 이첩했다고 하며, 국방부는 소관사항이 아니어서 육본으로 넘겼다고 한다.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박준기중사의 형인 박준호씨에 따르면, “[Web발신]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귀하께서 제출해 주신 서류는 소관 기관에서 처리함이 타당할 것으로 보여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소관기관에서 답변을 드릴예정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는 제출하신 민원이 세심하고 철저하게 답변될 수 있도록 직접 관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자는 발신전용입니다.” <인수 위원회에서 박준기중사 형인 박준호씨에게 보낸 답변 메일> 이라는 희망적인 답변을 받은 후, 다시 오리무중인 상태로 돌아간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덧 붙였다.

박준기 씨의 증언에 의하면, “국방부감사실에서 육본으로 이관하니 육본에서는 이사건 우리가 할일이 아니다라고해서 감사실에 돌려보내니 이를 또 검찰로 이관했습니다. 이는 지금 한민구 현 국방부 장관이  민.군합동재조사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감사실에서 하는게 맞고 또 이전에도 권익위원회에서 재조사하라고 감사실로 보낸것인데 이를 회피하고,…한 달이 되었습니다.

인수위도 처음에도 다해결해주겠다하고 소관기관에 이관했으니 할일없다는 말을하고 또 말을 바꾸어 사회혁신부 주관으로 한다고하고 관리감독하는 부서가 따로있다고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럼 사회혁신부 전화번호를 달라하니 모른다고 합니다. …이는 인수위가 사건 특성상 청와대 안보실로 넘겨야함에도 이를 강행한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광화문 1번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가?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공약에서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국민들과 눈 높이를 맞추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첫번째 시도로 광화문 1번가가 생겼고, 인수 위원회도 생긴 것으로 안다. 그러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나 조직이 국민의 원성을 듣고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국민과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지난 6월 6일자 코리일보를 인용하면, “청와대는 박중기 중사 자살 조작 사건에 대해 민.군합동 재조사를 실시 하겠다고 박준기씨 가족에게 연락이 왔다고 박준호씨가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밝혔다. 박준기 형인 박준호씨는 자신의 페북에  “여러분의 힘과 응원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를 표했다.

박준기 중사와 박준호 씨 형제는 지난 5월 19일부터  광화문 서명을 시작으로 박중사 고향인 군산에서 지난 6월 3일부터 계속적으로 서명(6월 6일 현재, 3,100명이 자필 서명, 온라인 800명이 서명에 동참)운동을 펼쳐왔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해 그 약속을 이행하라! 혹시, 한 장관은 다시 이 사건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여, 부하 직원들이 위에 알리지 않아 다시 그 사건이 어떻게 되어가는 지도 모르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 장관이 분명히 밝혔듯이,”민.군 합동 재조사를 하겠다.” 고 피해자 가족과 언론에 공식적으로 밝힌 사안이다. 이 일이 명백하게 밝혀져서 지난 24년동안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잃고, 두 다리를 잃은 채, 의족에 의지하여 하루하루 고통속에서 살고 있는 박준기 중사와 그의 가족이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박준기 중사는 절대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그 사실을 밝혀내서 다시 군인의 명예를 찾아 남은 인생을 지금 보다는 더 낫게 살아야 하지 않은가!

잘려진 두 다리에 그 비밀의 키워드가 있다. 잃어버린 시간속에 누군가 감추려고 한 진실의 실마리가 엉켜있다. 이제 그 키워드를 찾아 내어 한 올 한 올 그 진실의 실타래를 풀어 내어야 만 한다. 한 사람의 국민이 지난 24년동안 삶이 아닌 죽음보다 더한 고통속에서 살아온 것을 기억하여, 우리는 이제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줘야 한다.

인수 위원회와 국방부는 촛불 국민의 민심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다!” 라는 지엄한 구호가 단지 구호로만 그쳐서는 정말 안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와대는 국방부와 서로 협조하여 이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기 바란다. 군대에 보낸 자식이 두 다리를 잃고 돌아와, 평생동안 눈물 흘리며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늙은 어미의 찢어지는 가슴을 더는 외면하지 말라!

문재인 정부에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전 정부의 오래된 적폐 척결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서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아랫 사람들이 윗 사람을 받들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당장에 그 자리에서 물러서라!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일 자리를 양보해야 당연하지 않는가!

<코리일보 기사 참조>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1-%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2-%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department-of-defense-and-the-sadness-of-a-mother-whose-children-returned-disabled/

Blue House: Military and Civil Investigation of Sergeant Park to Restart

코리일보는 이 문제가 해결이 될때까지 계속적으로 박중사 사건을 다룰 것이다. 정말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지, 새 정부는 지난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지지율 80%가 넘는 정부로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지 눈과 귀가 되고, 입이 되어, 현 정부를 바라보며 채찍과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Blue House: Military and Civil Investigation of Sergeant Park to Restart < 청와대 : 박중사 사건을 재 조사 하라! >

(광화문 1번가에서 연설하고 있는 박준기 중사)

6월 6일,  청와대는 박중기 중사 자살 조작 사건에 대해 민.군합동 재조사를 실시 하겠다고 박준기씨 가족에게 연락이 왔다고 박준호씨가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밝혔다. 박준기 형인 박준호씨는 자신의 페북에  “여러분의 힘과 응원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를 표했다.

박준기 중사와 박준호 씨 형제는 지난 5월 19일부터  광화문 서명  을 시작으로 박중사 고향인 군산에서 지난 6월 3일부터 계속적으로 서명(6월 6일 현재, 3,100명이 자필 서명, 온라인 800명이 서명에 동참)운동을 펼쳐왔다.

                                   

군산에서 김춘신 전북도당 위원장과 이재호 부위원장이 서명운동에 동참하며 서명자들을 격려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으며, 광화문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서명운동을 도왔다. 페이스 북 친구들은 마음으로 응원하며 직접 광화문으로, 구글 서명운동으로, 힘을 보탰다. 군산에서 창을 하고 있는 고금자선생도 피켓을 들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 광화문 시위에서 힘을 보탰다.

박준기 중사 자살 조작 사건 재조사를 위해 그동안 보이지 않은 곳에서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을 주신 모든 친구와 페북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박준호씨는 힘주어 말했다.

박준기 중사는 1994년 12월 17일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 대학 동기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친구 차를 운행중 눈길에서 미끄러지는 교통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대학동기를  춘천 성심병원 응급실에 입원시킨 후, 군 수사관 김모(2군단 헌병대)씨를 만난 후, 김모씨가 박준기 중사를 압송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고 멀쩡했던 사람이 의식 불명 상태로, 그리고 기억 상실증과 두 다리를 절단해야 만 하는 상황까지 이르른 사건을 군에서 박중사가 자살을 시도한 것처럼 조작한 사실이다. 그는 그 후,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기억을 되찾았으며, 자신이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결혼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두 다리를 절단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  지난 24년을 자신이 몸담았던 군대,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와 진실을 찾기 위해 박중사와 그 가족, 박준기씨 형인 박준호씨와 부모는 눈물의 세월을 살았다.

박준기 중사는 군 수사 과정에서 여러가지 의혹들을 제기하며 자신이 절대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왔으나 군 수사 당국은 이제까지 군 수사에 문제가 없었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힘겨운 싸움을 해 오는 동안 가족들은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없었다. 의족을 낀 두 다리는 퉁퉁 붓고 염증으로 통증으로 잠 못이루는 날들을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만 하는 어머니의 눈물은 하루도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제 청와대에서 박중사 사건을 민, 군 합동으로 재조사를 한다고 한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미래가 밝다.

문재인정부는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던 모든 적폐를 일소하고자 국민들과 눈 높이 조절을 하고 있다. 낮은 곳에서 국민들과  함께 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해외 750만 한인들도 온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코리일보는 4회에 걸쳐 박준기중사 사건을 재조명해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밝혀질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1-%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2-%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Re-Open Sergeant Park’s Case! 3. 군인으로서 명예 회복과 잃어버린 삶을 찾아서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department-of-defense-and-the-sadness-of-a-mother-whose-children-returned-disabled/

코리일보는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위한 미디어다. 언제든지 여러분의 억울한 일에 동참하며 입이되어 말을 하고, 손이되어 글을 쓴다.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을 약속드린다.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Department of Defense and the Sadness of A Mother Whose Children Returned Disabled

박중사의 어머니 (김근례씨)

5월 가족의 달, 밥상 머리에서 서로 바라보면서 가족간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달이기도 하다. 다소 들뜬 분위기에서도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년 돌아오는 가족의 달, 특히 어버이 날, 가슴이 메어지는 어머니들이 있다. 국민의 의무중의 하나인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자식들을 떠나 보냈던 어머니다.

건장한 청년을 군에 보낸 후, 두 다리를 잃고 돌아온 자식(박준기 중사)을 지난 24년동안 눈물로 바라보며 탄식하고 있는 어머니, 그 어머니(김근례씨)의 갈래갈래 찢어지고 응어리진 가슴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자식 둘(육진훤, 육진솔)을 군대에 보낸 후, 희귀성 난치병을 얻은 두 아들의 끝없는 고통과 그들의 병원비를 국방부에서 지원해 주지 않아서 피고름이 나오면서도 두 자식들의 병원비를 벌어대느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터로 향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유선미씨)의 가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지난 24년동안 가족은 행복의 울타리가 아닌 아들의 잃어버린 다리를 대신해 주는 고통의 다리였으며, 송두리째 앗아간 젊은 청년의 미래를 암울하게 바라봐야 하는 가족에겐 파아란 하늘도, 파안대소가 끊이지 않은 주변도 여전히 암울한  회색빛 세상이었다.

자식의 고통속에서 어미 자신을 내어 주더라도 아픈 아들의 두 다리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더는 밤에 잠을 자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다 다시 고꾸라지는 아들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노모는 지난 24년 동안 자신의 두 다리가 왜 사라졌는 지 알지 못하여 이렇게 긴 세월동안 밤에 쓰러지며 오열하는 자식과 화장실에 가기위해 의족을 끼우는 아들을  어둠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누가 그 건장한 아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새정부를 향한 믿음과 기대로 아픈 아들을 투표장으로 데리고 간 어머니 아들의 간절한 바램이 두 손에 기도로 담겨있다. (유선미씨 와 아들 육진훤)

바람만 불어도 고통스럽다는 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으로 두 아들을 통곡하며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어머니, 주 1회 통증 완화 시술을 받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뇌와 척추에서 신경세포로 보내는 통증의 신호 체계가 그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상처부위에 따라 피부 색깔이 변한다거나 또는 극심한 열이 나며 부어 오르기도 하며,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차라리 같이 죽자고 오열한다. 누가 이들을 이 상황으로 내 몰았는가?

박중사의 어머니와 육진훤.진솔 형제의 어머니는 국민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떠난 건강한 아들의 삶이 철저히 유린된 채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들을 기한도 알지 못한 채 바라봐야 만 한다. 누가 이들의 삶을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인가?

박중사 사건을  다시 조사해서 비록 두 다리는 잃었지만 군인으로서의 명예는 회복해줘야 한다.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는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낸 뒤 차의 주인인 대학 동기를 춘천 성심병원 응급실에 에 이송하여 친구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멀쩡하던 박중사는 며칠 후, 기억을 잃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병실에서 깨어났다. 그의 병원 기록에는 자살을 시도하려고 10층 성당 건물에서 추락했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지난 몇 회동안 코리일보는 박 중사 사건을 다루어 연재했다. 그는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박중사 사건은 누군가에 의해 날조된 것이며 조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아래 링크 참조: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3-%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육진훤. 진솔 두 형제의 희귀성 난치병은 군 보건 당국의 안일한 환자 치료와 대응에 있었다. 단순 타박상으로 알고 무릎뼈에 골절이 된 환자에게 “파스만 한 장” 주면서 마치 파스 한 장이면 모든 타박상도 모든 병도 다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의료진들에게, 국방부에게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관련 기사 참조: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are-case-of-crps-two-sons-and-the-south-korean-army/

전 세계에서 국방비 지출 10위의 국가인 한국($36.8 Bn) 로 GDP 기준 2.7%다. 이 자료는 스톡홀름 국제 평화연구소가 밝힌 통계로 아래 링크를 참조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military_expenditures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면서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군대에 간 청년들에게 필요하면 가져다 쓰는 물품이며, 병이나고 쓸모가 없으면 군인의 신분임에도 병원비도 지급하지 않고 홀대하는 정부는 과연 진정한 국민을 위한 정부였던가?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과감한 개혁정치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시작하자마자 세월호 유가족들과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역사적인 재고로 “님을 향한 행진곡”을 오는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37년 5.18 기념식에 공식적으로 부를 수 있게 승인하였다. 가슴 아픈 사람들을 먼저 보듬자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멀리서 바라보는 해외동포도 박수를 치고 있다.

문재인 새 정부에게 코리일보가 건의한다. 더는 국민이라는 이유때문에  가슴 아프게 통곡하지 않게 하길 바란다. 적어도 나라를 위해 싸우려고 군대에 간 군인들은 그 기간동안은 철저하게 군대에서, 국방부에서, 보호하고 대우해줘야 한다. 자긍심을 잃어버린 군인은 더는 나라의 안전을 위해 싸울 수 없다.

두 다리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잃어버린 박중사의 삶을 회복시켜주길 바라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박중사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사실과함께 그의  잃어버린 명예를 찾을 수 있게 박중사 사건을 재조사하여 진실 규명에 힘써야 한다.

두 아들이 군대에서 얻은  희귀성 난치병도 치료해주고, 병원비도 지급해주며, 이제까지 지급하지 않은 병원비에 대해서는 소급해서 처리해줘야 한다. 이것은 아주 많은 것을 하는것이 아닌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다.

더는 어미들의 가슴에서 피눈물이 나지 않게 했으면 한다. 이제까지 너무나 많은 어머니들의 눈물로 한국의 하늘은 항상 뿌옇다. 어미의 가슴에서 흐르는 눈물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박중사 사건 재 조사를 위해 탄원서를 내고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아고라 청원 서명운동에 동참하여 진실을 밝히는 일에 동참해주시길 바란다.

http://m.bbs3.agora.media.daum.net/…/…/mobile/petition/read…

 

코리일보/COREEDAILY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Re-Open Sergeant Park’s Case! 3. 군인으로서 명예 회복과 잃어버린 삶을 찾아서<박준기 중사 사건 다시 재조사 하라!>

지난 호에서 우린 세 가지 문제를 제기 했었다.

첫째,  군 수사 기록 주장대로 10층에서 (15 meter 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측량한 결과 22 meter: 국방부 장관도 인정한 문제) 인 지점에서 추락했다면 그리고 추락하기 위해  머리 사이즈만 겨우 맞는 창문, 그 창문을 통해 과연 박중사가 자신의 몸을 억지로 끼워 넣어서 추락해야만 할 정도로 교통사고가 그만큼 그에게 커다란 이슈가 되었는 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상해를 입힌 자가 추가 상해를 덮기 위한 하나의 위장술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약에 자살을 했다면, 그의 상해 부위가 달라져야 한다. 대부분 추락을 한 경우, 두개골이 파열되지 무릎아래 압괘상과 가슴과 장기 파열에는 좀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 생각이다.  또 실제로 머리가 더 무겁기 때문에 10층 성당에서 겨우 머리만 넣을 수 있는 창문을 통해 떨어졌을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답이 보인다. 즉 추락사인 경우,  머리 두개골이 파열되어 사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22미터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면 이 사건이 더 확실하게 보인다. 박 중사는  머리에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런데 추락장소에서 발견된 혈흔 촬영사진이 출혈이없는 머리 부분의 혈흔이 촬영되었다는 것은 이 이야기는 누군가 급하게 꾸며내면서 발생한 실수 인것 같다. 

둘째,  시간상의 문제다.  헌병 손00 씨는 박중사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겨레는 전한다.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박중사는 헌병 손 00씨를 만났고 대화를 나눴으며, 손 00하사가 헌병 조사관 김 중사보다 더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경찰로 부터 사고신고를 받고 출동한 헌병과 경찰의 인수인계과정에서 시간의 불 일치를 확인할 수 있다.  손 헌병이 쓴 군 조서에는 교통사고 발생이 22시 30분 경으로 되어 있으나, 2015년 4월 교통사고시 차주인 김00씨와 김00씨의 어머니로 부터 진술을 받은 시간은 20:00 시가 약간 넘었다고 확인했다. 여기에서 박 중사는 차주의 형이 병원에 도착하자 그에게 ATM (21:00 까지 가동) 을 이용 30만원 현금을 찾아서 병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고 있을 동기를 위해 주었다고 한다.  박 중사의 증언이 더 신빙성이 있는 이유는, 사고가 난 시점인  저녁 7시 (19:00시) 이후, 병원에 도착 8시(20:00시)경, 그리고 현금 지급기 사용 9시(21:00시)경이 된다. 그런데 사고 발생이 22시 30분이 되면 손 00헌병의 조서, ““12월 18일 0시 10분께 경찰의 교통사고 접수 연락을 받고 출동했고, 병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박중사가 투신한 이후였다.”고 진술한 조서를 기준으로 자살로 위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셋째, 왜 김 중사는 박 중사의 가족도 아니며, 보호자도 아닌 자가 박중사의 발목 절단을 강요했을까? 그것은 압괘상을  은폐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가? 그리고 한 가지 더, 발견지점에서 응급실로 후송한 의사 정00의 진술(2007 년 국가 권익 보호 위원회 대면시) 에서 박 중사를 발견한 지점은 3층 옥상 출입문 우측 바로 옆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처음 박 중사를 발견한 수위장 홍00은 창문 직하 지점이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1999년(사고 후 5년 경과) 홍 수위장은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 직하지점에서 14meter 이격된 장소를 지목했으며, 원내 급수펌프 바로 옆이라고 강조했다. 왜 이들의 진술과 증언은 이렇게 엇갈리는 가? 그리고  춘천 성심병원은 국군 수도 통합병원으로 박 중사를 이송 시킬때 자가 호흡도 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산소 호흡기를 싣지도 않았으며, 수행 의사도 동석 시키지 않았는 지에 대해 춘천 성심병원도 답을 해야 한다.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곳이다. 물론 그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도 이송이 완료될 때까지는 환자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은 있어야 한다고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사건이 다시 재 조사를 해야 할 이유는 수 없이 많다. 이 사건을 재조사 하여 한국 국방부가 젊은 청춘들의 삶을 때로는 빼앗아가는 국가 기관이라는 오명을 벗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동안 군 의문사등 수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를 보면서, 한국 국방부는 마치 공정한 판단과 수사를 할 수 없는 특별한 성역처럼 군림해 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적폐가 사라져야 한다. 군인이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힘든 훈련과 고행을 감수하는데 더는 국방부가 인권을 유린하는 온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김 일병”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박 중사 사건을 재 조사하여, 비록 두 다리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 했던 가슴아픈 지나간 세월들을 다 보상해 줄 수는 없을지라도 그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니며, 또 다른 힘의 논리로 포장이 된 이 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해주고 그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 시켜 줘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대한 민국의 군대, 내실을 기해야 할 때다.

<기사 참조>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7392.html#cb

http://m.wsnews.co.kr/a.html?uid=1180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Re-Open Sergeant Park’s Case!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박준기 중사 사건 다시 재조사 하라!>


박준기 중사 (1989년 2월 28일 하사관 입대- 1991년 중사 진급 후, 1994년 사고후, 1995년 11월 자상으로 전역) 는  지난 22년을 외롭고 고달픈 싸움을 해 오고 있다. 그의 잃어버린 다리의 진실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해 오고 있다. 두 다리를 잃은 지체 부자유자가 된 그는 자신의 기억의 퍼즐과 그때 당시의 군 수사자료사이에서 박중사의 삶을 송두리 째 앗아간 원인을 찾고 싶은 것이다.

사고 발생후, 11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왜 병원 침대위에 누워 있었는 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을 잃어버린 채 목숨의 줄기만 붙들고 있었다.

1995년 1월 20일, 사고 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서야 군에서 작성한 교통사고 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박 중사는 ” 병원 3층 옥상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병원 수위가 발견하였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그는 “전혀 기억 나지 않으나 어머니가 병원 10층에서 뛰어 내렸다고 하여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자신의 기억에 자신의 행동으로 뛰어내린 것이 아닌 ‘어머니가…” 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을 인지해야 할 것 같다. 본인은 그 사실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하는 일이며, 누군가에게서 들어서 안 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한다고 계획을 세우거나 또는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 몸의 일부인 뇌가 그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군을 믿었어요. 군은 어떤 거를 나쁜 쪽으로 하지 않고, 사실만을 말할 거라고요. 저는 비록 사고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틀리게 조사하지 않았을 거라 믿었어요.” 그렇게 군을 믿었다.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군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춘천 전문대학교도 군대에서 보내준 것이라고 그는 코리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렇게 십 수년을 살면서 그의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다리의 정확한 병명은 압괘상이었다. 무엇인가에 눌려서 생길 수 있는 상처란 뜻이라고 한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박중사의 몸 구석구석에서 골절부위가 발견되었고, 성한 곳은 한 곳도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된것이다.

그러던 그는 다리의 골수염으로 인해 지난 1997년 왼쪽 다리(무릎 아래) 를 절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오른 쪽 다리마저 절단해야 했다. 물론 그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여인도 눈물을 머금고 떠나 보내야 했으며, 그의 곁에는 오직 가족만이 그의 처절한 몸부림과  함께 자기 살이라도 내어줄수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는 어머니와 그의 형이 있었다.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 뿐만아니라 온 가족의 삶이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다리 수술을 한 후, 충격때문에 서서히 뇌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김중사 (현병 조사관) 과 함께 별관으로 이동했고, 그 장소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박중사 ( 춘천 전문대학교 출신, 춘천 전문대는 별관 옆에 있었다고 한다) 는 김중사가 ‘주차장으로 가기위해서’ 그곳으로 이동한다는 말에, 이곳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데 ‘왜 이곳으로 가느냐?’고 대꾸했다가 갑자기 2층 에서 김중사에게 명치를 맞고 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던 것과  그 후, 헌병 한 명과 병원 수위장 홍씨가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 라고 헌병 김중사에게 물었을 때, 김중사는 ‘발을 헛디뎌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말을 했다. 그때 홍씨는 병원의사 누구도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것이요! 라고 말했던 것과 그럼 어떻게 하느냐? 고 물었던 헌병 김중사의 말을 기억해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교통사고때문에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는 확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군 수사기록들을 요청해서 조사하던 중, 그는 점점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자신은 누군가에 의해 폭행을 당했고, 그 후, 또 다른 폭행을 당한 뒤 결국 두 다리를 절단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해 낼 수 있었다.

한겨례(4/19/2015)에 따르면, 박씨는 1999년 국방부에 수사자료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수사자료를 들고 그는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 수위장 홍씨를 찾았다. 별 소득은 없었으나, 그의 무의식중에 뱉은 한 마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위 홍씨가 저를 보더니 ‘어? 살아 있었네’ 라며 놀라더군요. 그에게 제가 발견된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상한 건, 수위가 그 위치를 매끄럽게 기억하지 못하고 한참을 헤맸어요.” 라고  박중사는 말했다.  박중사는 코리일보 인터뷰에서, 2002년께 모 방송사 프로그램의 의뢰로 최면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헌병 둘이 쓰러진 저를 끌고 나와 병원 밖에 만세 자세로 눕혀놓고 어떤 승용차를 가져와 밟고 넘어가더군요. ”

물론 최면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박씨도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그후, 2군단 사령부에 재조사를 요구했다. 물론 기각되었다. 2006년에도 재조사 를 요구했고 역시 또 기각되었다. 통지서엔, “군 복무시 즐거웠던 기억들만 추억으로 간직하시고, 새로운 삶을 힘차고 재미있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적혀진 글자대로 박중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었다.

박중사가 “사고당시 입고 있었다는 외투는 사라지고 헌병은 어디 있는 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 박중사 형은 덧 붙였다.

SBS 의 궁금한 이야기 Y에 따르면, ” 지난 2011년 기억을 되찾은 박씨는 군 헌병대 폭행후, 2 차 가해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쩌다 두 다리를 잃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 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SBS 에서 사고차량의 주인이자 박중사의 학교 동기인 김00 씨를 만났다.

허수경: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 씨가 사고 직전까지 함께했었던 이가 있습니다. 바로 대학 동기인데요..

[동기]:  삼겹살 뷔페 집에서 소주 2병, 맥주 3병 정도 를 서로 나눠 먹고, 휴게소 앞에 차를 세우고, 돌아보니까 내 운전 석에 중기 형이 앉아 있는 거예요

허수경:  술을 마시고 대학동기의 차를 운전한 박 씨는 운전 미숙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답니다.

[동기]:  제가 크게 다치고 병원 매트에 옮겨준 상태에서 (준기 형이) 어딘가 전화한다고 하고 나갔어요.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허수경:  그 뒤 나 씨가 응급수술을 받는 사이, 건물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병원 3층 옥상에 쓰러져 있는 박 씨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제작진:  선생님(박준기 중사 대학동기)은 뭐가 가장 궁금하세요?

 [동기]:  멀쩡하게 전화하러 가서 죽을 정도로 다쳐서 왔으니까..

 허수경:  멀쩡하게 걸어서 병원에 온 박 씨가 어쩌다 양쪽 다리를 모두 잃게 됐는지는 [동기]도 의문이라는데요..

여기까지만 봐도 이 사건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군 수사에서는 초동 수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멀쩡한 사람이 두 다리를 잃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2011년 잃어버린 기억을 완전히 다 찾게 되었다.  헌병중사가 발로 박중사의 명치를 찾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주 정확히 기억해 내었을 뿐 아니라 SBS 제작팀과 갔을 때 떨어진 장소까지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폭행가해자로 지목된 김00 헌병 중사는 전역 군인이며, 휴대전화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한겨레는 말한다. 그런데 같은 헌병으로 손 00씨는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엇갈린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는, 경찰에서, “12월 18일 0시 10분께 경찰의 교통사고 접수 연락을 받고 출동했고, 병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박중사가 투신한 이후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중사와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중사의 기억에서, 그는 분명히 김중사 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했고, “경찰과 대화중, “경찰이 신병인수인계서를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으니 경찰서에 연락해 서류를 가지고 오라고 할테니 자신은 순찰을 위해 당장 출발할 수 없겠냐고 하자, 헌병은 자신에게 행정권이 없고 잠시위에 행정권이 있는 계장님(김중사)이 도착하지 그분에게 말하라고 했다.” 라고 되어있다.

그러면 사고는 정확히 몇시 몇 분에 일어난 것일까? 교통사고가 난 후, 병원에 환자가 실려온 시간은 언제인가? 그리고 병원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는 계속 이 사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문제 제기:

1. 시간의 차이점 :  교통사고후 병원에 온 시간, 경찰 사고 접수후 헌병이 병원에서 경찰과 만난 시간, 군 수사기록 주장대로 박중사가 10층에서 3층 옥상으로 어깨도 들어가지 않는 좁은 틈으로 자신을 집어 넣으며 추락한 시간?

2: 왜 김중사는 보호자도 아닌데 박중사가 수술 중일때, 양측 발목절단을 6 차례나 강요했을까?

3: 창문의 크기에 대해 국방부의 번복된 주장 (13cm/24cm/30cm)과 함께 10층 창문의 사이즈는 바뀌지 않고 1983년 이래 똑같은 크기인 14cm 인것은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

<기사 참조>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7392.html#cb

http://m.wsnews.co.kr/a.html?uid=1180

***

우선 이 세 가지 문제를 가지고  한 주 동안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 보시길 부탁 드립니다. 누군가 억울한 문제를 당하면 우리는 한 사람의 머리보다는 여러 사람의 머리가 더 낫고 힘을 보태 결국 문제를 푼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 모두 박중사를 생각하며, 그의 가족을 생각하며, 그리고 수 많은 박중사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 그 어둠의 그림자를 하나씩 들어내 보도록 합시다.

To be continued~~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