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국가가 책임져라!

Re-Open Sergeant Park’s Case! Solo picket protest at BH Spreads to the SNS

 

청와대앞에서 눈이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더워도 오직 진실 하나 만을 알기 위해 시작한 작은 몸짓이 SNS 상에 알려지면서 단 10분이라도 청와대 앞에서 진실을 향한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가장 오랜 시간 눈과 바람과 폭염과 싸우며 피켓을 들고 있던 일반 시민인 김희명씨를 만나보았다.

김희명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박중사 하나만을 위한 사건 재조사가 아닙니다. 이는 대한민국 모든 엄마, 모든 가족들의 사건일 수 있습니다. 국민의 의무인 군복무임무로 자식들을 정부조직인 군대에 맡기면서 안심하고 보낼 수 없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는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국가 기관이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국가를 믿고 자식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국민의 의무인 군복무라고 하지만요. 저도 아들을 둔 엄마로서 남의 일이 아니다 라는 생각에 동참하게 되었고, 지난 시간 매일 힘든 일과에도 불과하고 청와대앞에서 피켓팅을 하게 되었다. 군적폐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피케팅을 하는 두 시간 동안은 정말 도를 닦는 느낌으로 서 있습니다. 저는 출발할 때 피케팅 예정 시간을 먼저 올리고 출발을 하는데 그 이유는 누군가가 참여를 해 주실 바라는 마음 그리고 참여를 위해 청와대로 오셨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실까봐 입니다. 청와대는 위치상 산 아래라 평지보다 체감온도가 훨씬 찹니다. 손발이 시리고 광대뼈가 아릴 정도의 찬바람 속에서 두 시간을 서 있다는 건 정말 외로운 싸움이고 누군가 오셔서 잠시간이라도 들어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시간을 미리 올리고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길을 떠납니다. 간혹 찾아와 주시는 분들 너무 고맙고 그 먼 청와대를 일부러 시간내어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 힘이 날뛰도록 있지만 그래도 혼자 서 있는 날들이 더 많은 외로운 싸움입니다. 찬 겨울 무리해서 찾아와 주시 끼지는 바라지 않지만 시간이 되시는 분들이 찾아주셔서 박중사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외로운 싸움에 단 5분이라도 피켓을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댓글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코리일보는 수 차례에 걸쳐 “박 중사 사건 재 조사”에 대한 기사를 개제해 왔다.

진실을 향한 어머니의 절규, 군인으로 당당하게 군복무를 하던 미래가 촉망되었던 젊고 건장한 청년이 어느 날 두 다리가 잘린 채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그는 군인으로서 절대적으로 있어서는 안될 불명예인 ‘자살시도’라는 오명을 받은채 온 것이다. 그렇게 지난 십 수년을 살고 어느날 자신이 기억이 돌아왔을 떄 박중사는 자신이 분명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지난 시간들은 힘든 싸움을 계속해 왔다.

최근 박중사의 형인 박준호씨는 자신이 직업이 있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통보를 받았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동안 진실을 규명을 위해 온 가족이 지난 23년을 싸워오면서 이들 가족은 지금 너무 지쳐있다. 가족 모두 벼랑 끝에 아슬아슬 달려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SNS 에서 청와대 1인 시위에 너도 나도 힘을 보태고 있다.

기초 수급 대상에서 부모님이 제외된다면 이제까지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하듯 살아온 가족의 삶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면 관계 당국에 선처와 도움을 요청했다.

김희명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진실을 찾기 위한 몸부림에 동참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는 정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며 시간이 되면 꼭 청와대 1인 피켓 시위에 잠시라도 들러 잠깐 동안이나마 교대해 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 붙였다.

피켓팅에 참여해 주신 분들은 아래와 같다.

전한권, 유미자, 김수웅, 양미애, 김종필, 김재현, 위성일, 김미애, 강규수, 박관민, 배용호, 김혜정, 홍제현 등 이름을 밝히지 않은 많은 시민 참여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박준호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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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Open Sergeant Park’s Case! 8. 박중사 사건 재조사를 당장 시행하라!

지난 24년을 자신의 두 다리를 잃어버린 정확한  이유도 모르는 채 살아온 박군기 중사는 최근 춘천 경찰서에서 문서가 왔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24년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건장한 육군 중사는 정상적으로 퇴근후,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신후, 친구의 차를 운전하다 빙판에 차가 미끄러진 후, 응급 구조 신고를 한 후 춘천 한림대학교에 친구와 도착했고, 친구는 응급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중에 박중사는 경찰에 신고할 당시 군인이었던 관계로 헌병에 인수 인계되어 헌병에서 김화용 중사가 이 사건을 인수하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그 후, 멀쩡한 박중사는 의식을 잃고 춘천 한림대 병원에서 자실을 시도하여 추락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박중사가 의식을 회복하고 돌아온 기억속에서 그는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더더욱 추락사는 없었으며, 김화용 중사와의 언쟁이 있었고, 김화용 중사가 주차장이 있는 곳이 아닌 계단으로 박중사를 인도한 후, 가슴을 쳐서 계단에서 추락하자 그 후, 병원 수위장이 사건 현장에 온 후, 사건을 목격하고, 이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의논? 한 후, 의식을 잃은 박중사를 운반해 자동차로 밟아버린 기억을 되찾았다고 한다. 박중사는 억울한 자신의 사건을 다시 재 조사해 줄 것을 수 차례 요구했고, 그러는 사이 세월은 24년이나 흘렀다.

박중사 측은 춘천 경찰서에 대해 정보공개 요구서”1994년 12월 17일 강원 춘천시 잼버리 도로에서 친구 김창래로 부터 운전을 양도받아 운전중 우측 가드레일을 충돌하는 자차사고 관련 112 신고시 녹음된 내용 공개, 춘천 경찰서에서 교통사고 조사 내용과 군 2군단 헌병대와 신병 인수인계시 작성된 인수 서류 요청” 를 신청했다 고 한다. 그런데 10월 27일 박중사는 춘천 경찰서에서 내부 결재용으로 확인된 서류를 받게되었다.

정보공개 비공개 결정 통지서(정보 부존재)를 받았는데 사유는 다음과 같다.

정보라 함은 직무상 작성 또는 취득하여 관리하고 있는 문서, 도면등을 말하며 공개라 함은 정보를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 복제물을 교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청구인께서 청구하신 자료는 춘천 경찰서에서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해당하지 않아 정보의 부존재로 비공개 결정하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존재 사유>

  • 112 신고 기록 및 녹음 기록 : 112 종합상황실 운영 및 신고처리규칙 (경찰청 예규 제 490호, 2015.2.6) 제 6장 (자료의 취합 및 보안 등) 제 23조 (자료보존기간)에 의거 112신고 접수처리 입력자료는 1년, 음성녹음파일은 3개월 보존후 자동폐기 되어 기간 경과로 부존재
  • 교통사고 조사내용: 당시 사고차량 운전자가 군인신분으로 확인되어 군 헌병대에 전화통보하여 군 수사기관에서 사건처리 한 것으로 부 존재,  사고 현장 초동조치중 군 헌병대에 연계하여 신병인수증(명확한 처리지침은 없음)을 받지 않아 부존재

제 23조 2항에는 지방경찰청장 또는 경찰서장은 문서 및 녹음자료의 보존기간을 연장할 특별한 사항에도 불구하고 보존기간을 연장하여 특별 관리할 수 있다.

제 24조(신고내용의 유출금지) 누구든지 정당한 이유없이 112 신고및 상황처리와 관련하여 타인에게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바로 “신병인수증” 에 대한 명확한 처리지침이 없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혹시 누가 신병을 인수하는 가에 따라 지침이 달라지기 때문은 아닌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처리 지침이 없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상부에서 요구하거나 또는 상급 관리 관청에서 요구하면 언제든지 신병을 인수해주면서 인수증을 받지 않고 그동안 일을 처리해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군 헌병대에 인수인계하면서 신병인수증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경찰과 군 수사 기관과의 긴밀한 공조?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이것 또한 적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저런 사유로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는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사실에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가 단지 군대와 군인의 문제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23조 2항을 따라 경찰서장이 보존기간을 연장하여 특별관리하였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특별관리 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신병인수하면서 신병인수증을 주고 받지 않았다면 무엇인가 따로 보관하여 사건의 추이를 관망해야 하는 것은 경찰서장과 경찰서 직속 담당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24년전 춘천경찰서에서는 출동하여 신변 확보후, 헌병에 연락하고 바빠서 “현행범인 박중사 혼자 병원에 두고 자리를 떳다” 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의 부존재 사유 중에 “당시 사고차량 운전자가 군인신분으로 확인되어 군 헌병대에 전화통보하여 군 수사기관에서 사건처리 한 것으로 부 존재,  사고 현장 초동조치중 군 헌병대에 연계하여 신병인수증(명확한 처리지침은 없음)을 받지 않아 부존재” 라는 항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군 헌병대에 연계” 했다는 것은 “박중사 혼자 병원에 두고 자리를 떳다” 라는 말과 상반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군 수사기관이 즉 박중사 사건과 관련하여 밀접하게 연관된  김화용 중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시시비비를 가려내야 할 것이다.

박중사는 지난 24년을 두 다리를 잃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다. 이제 그에게 다시는 두 번의 아픔과 설움을 겪지 않게 군 수사 당국과 검찰은 이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내어 진상 규명과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피해 당사자가 이 사건을 다시 재 수사 요청하면 당국은 이에 부응하여 다시 수사해야 한다.

군인으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 두 다리가 잘린채 의족을 끼우며 매일매일 청와대 앞에서 진실규명을 외치는  박중사의 피 맺힌 절규를 외면하지 말고 인권변호사들은 이 일에 솔선 수범하여 사건의 해결과 진상 규명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성 있게 지난 24년동안 두 다리를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 많은 고개를 넘고 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인권 변호사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진정코 “박중사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 는 말이 이곳 미국 땅까지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고 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밝혀지게 될 것으로 믿는다.

돈이 없으면 변호사도 살 수 없는 사회, 국방부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변호사들이 꺼리는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 시대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인권 변호사 무료 변론 시스템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가 지원을 해야 그들 무료 변론 변호사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엔 거주 지역 주마다 무료 변론 프로그램이 있다.

Supreme Court Justice Ruth Bader Ginsburg remarked that “a lawyer will gain large satisfaction when he or she is not simply a fee-charging artisan, but a contributor to the public good.”(Ruth Bader Ginsburg, April 9, 2001 speech at the David A. Clarke School of Law, University of the District of Columbia. ) *이글은 하버즈 로스쿨에서 발행하는 프로보노 프로그램 안내에서 인용했음

대법원 판사 루스 배더 긴스버그씨(84)가 지난 2001년  데이비드 에이 클라크 로스쿨에서 연설한 말이다.  “변호사가 돈을 받지 않고 진정한 변호를 했을때와 공익을 위해 기여했을때 변호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대 만족을 갖는다” 라고 말을 했듯, 한국도 각 대학마다 있는 로스쿨에서 양성하는 변호사들에게 무료 변론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그들, 변호사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는 그들로 인해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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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Internment Camp: Brothers’ Welfare Center and the Silent Victims 2<형제 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

형제 복지원의 진상과 그들 2.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사건 중의 하나로 1975년 내무부 훈령으로 제정, 설립된 형제 복지원(대표 박인근, 1975-1987)은 한국이 치른 아시안 게임 (1986)과 하계 올림픽 (1988)을 앞두고,  대대적인 부랑아 단속이라는 명목으로 제정 설립되었다. 이 ‘부랑아 단속’이라는 형식적인 슬로건 안에는 엄청난 계략이 숨겨져 있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 발생한 시위는 장기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을 반공으로 묶고, 긴급조치란 이름으로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압력에 대해 반항하며, 국민의 권리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당시 극에 오른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반감은 이곳 저곳에서  시위로 일어나곤 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불안한 정국을 대외적으로 감추기위해, 치안과 정치가 불안한 대한민국이라는 이미지가 밖으로 내 보일까 염려하여, ‘부랑아 단속’이라는 명목으로 길 거리에서 정말 재수 없으면 경찰의 눈에 띄어 잡혀 들어가는 곳이 바로 형제 복지원이었다. 또 하나는 이들을 단속해서 일정한 장소에 수용하여 값싼, 또는 거의 무료의 노동력으로 누군가는 부를 챙기고 또 그 누군가는 그 부를 정치자금으로 헌납하므로서 힘 있는 자들의 계산속에서 힘 없는 자들은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수단으로 사용되어도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 영원한 음지인 형제 복지원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이용했다. 왜냐하면 그당시 언론도 마찬가지로 힘 있는 자들과 함께 공생해왔기 때문이었다.

형제 복지원 원생 중 생존자인  이향직씨는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들이 말하는 부랑인과는 아무상관 없는 아이들,직장인,학생,가정주부,등등 이었습니다.물론 극소수의(10%미만) 사람은 저들이 말하는 부랑인도 있긴 했습니다.물론 부랑인 이라도 강제로 잡아가서는 안되겠지만 부랑인을 보살펴준다는 핑계로 아무나 다 잡아 들였던 겁니다.” 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 숫자대로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원금으로 복지원장 박인근은 자신의 사리 사욕을 위해 시설에 감금된 복지원생 들에게 기본적인 영양공급 조차 시키지 않은 채 돈을 착복하고 원생들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돈을 갈취했다고 한다. 원생들은 박인근이라는 인간에게 철저히 인생이 저당잡힌 채 자유를 박탈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한 채 살아야만 했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형제 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면서 지옥을 경험한 이향직씨를 인터뷰 할 수 있는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 중학교 1학년때 그곳에 입소한 후, 3년 여 동안 (1984년~1987년 4월 23일) 지옥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4살,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어머니의 가출로 인해 7살된 어린 나이에 새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만 했다. 아버지의 구타는 폭행수준이었고, 이를 견디다 못한 어린 소년은 아버지에게 맞지않기 위해, 가급적이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는 그는  길거리에서 방황하거나 길거리를 배회하였다. 그러다 어느날 학교에 다녀오는 길에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어린 소년은 아버지에게 목덜미를 잡혀 부전시장, 부전역전파출소로 끌려갔다. 그의 아버지는 빵과 우유를 주고는  파출소를 떠난 후, 밤에 형제복지원 차가 와서 그는 지옥에 끌려가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그의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행은 어린 소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그는 말한다. 연탄집게로 맞았고, 가죽 혁대로 맞았으며,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었던 어린 소년, 그는 따뜻하게 보호받아야 할 집에서 버림을 받았고, 형제 복지원에 끌려 들어가 이유도 없이 노예의 삶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 말은 생모가 바람을 피워서 다른 남자와 달아났다고 했지만 나중에 어른이 된 후, 극적인 어머니와의 상봉으로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지기까지 했다. 안정되지 못한 가정, 불우한 가정이 자식을 사지에 보내고서도 반성은 커녕 다시 사회에 나와서 힘든 노역을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용돈을 부쳐주면 조금 밖에 안 부쳤다고 혼나기가 일쑤였다고 이향직씨는 그의 아픔을 숨김없이 말했다. 그 당시 형제 복지원에 끌려온 사람은 정말 어처구니 없이 부랑아가 아닌, 가족에게서 버림 받은 사람, 어쩌다 회사 퇴근 후, 거나하게 술 한 잔  마신후, 버스를 타려다 잠깐 졸음을 견디지 못해 버스 정류장에서 졸고 있는 남자들이 끌려가서 강제 노역을 했던 경우도 있다.

그들 중 이유없이 폭행 당한 채, 죽어간 사람들은 수천명이다. 물론 기록상은 551명이지만 죽여서 암매장당하기도 했다는 것을 위키피디는 밝히고 있다.

이향직씨는 외친다. “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저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30년전의 고통을 온몸으로 되새기려 30년전 그날의 그 지옥으로 돌아 가려 합니다.아무것도 가진것 없고 힘없는 저희[들에게] 지지와 응원 주시는 여러분들만을 믿고서,천리길 걸음걸음에 간절함으로 무장하고서,대한민국 구석구석을 향해 소리치려 합니다.
84ㅡ2934 , 84ㅡ3618 ,80ㅡ4894,…….가축처럼 새겨진 저희 기억속의 숫자들을
이젠 씻어 내고자 합니다.국민 여러분!! 그리고, 페친 여러분!!
저희들의 한걸음 한걸음에 함께 동참하여 주세요.

[ 2017년 9월6일 오전 11시 ]
형제복지원의 옛터 (현 한일유엔아이 아파트)에서
출정식과 기자회견 이후 청와대를 향해 걸어가며
온 국민께 소리 치려 합니다.

“우리도 사람이다! 형제복지원 사건 특별법을 제정하고,진상을 규명하라!” 라고 그의 페이스 북에 호소했다. 이제 형제 복지원 사건 진상이 밝혀져서,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잃어버린 인권을 다시 돌려줘야 할 때가 돌아왔다. 이제는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박정희정권에서 전두환정권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이 사회에 고발자가되어 고발한다.

과거와  화해 하지 않는 한 과거는 반복을 되풀이 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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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House : Military and Civil Investigation of Sergeant Park to Restart 2<청와대: 박중사 사건 재조사 하라!>

최근, 국민인수 위원회는 박중사 자살조작 살인미수 사건을 검찰에 이관, 검찰은 다시 국방부에 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위해 민관 합동 조사를 착수하겠다던 약속은 이제 어떻게 된 것일까?

 

코리일보는 이 사건의 재조사를 위한 과정중 얼마만큼 진전이 있는 것인지, 계속적으로 살피고 있다.
다음은 박준호(박준기 중사 형)씨와 일문 일답을 통해 이 사건이 해결되고 있는 지, 아니면 오리무중인지, 아니면 누군가 여전히 은폐를 위해 꼼수를 부리는 지 살펴보기로 했다.

 

지난 6월 말 박준호씨와의 대담 내용이다.

 

기자:
지금 박중사 사건 재조사가  어느정도 진전이 있습니까?
박준호씨:
6월 27일,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저에게 알려온 소식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귀하께서 제출해 주신 서류는 소관 기관에서 처리함이 타당할 것으로 보여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소관기관에서 답변을 드릴예정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는 제출하신 민원이 세심하고 철저하게 답변될 수 있도록 직접 관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자는 발신전용입니다.” 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 사건이 왜 국방부 감사실에서 검찰로 이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사건이 군인의 신분일때 발생한 사건인데 말이다. 문제는 국방부 감사실에서 재조사를 해야 하는게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사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겉으로는 일을 하는 것 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이 사건을 유야무야 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 박준호씨에게 물었다.
“국방부감사실에서 지금 민.군합동재조사를 해야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할수없는 곳에 이관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감사실에서 육본으로 이 사건을 이관했습니다. 그런데 육본에서는  “이사건 우리가 할일이 아니다”라고해서 감사실에 돌려보내니, 감사실은 이 사건을 또 검찰로 이관했습니다. 이는 지금 한민구가 민.군합동재조사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감사실에서 하는게 맞고 또 이전에도 권익위원회에서 재조사하라고 감사실로 보낸것인데 이를 회피하며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것같습니다.
인수위도 보건부.행자부와함께 한다고 약속하고는 한달이 다 되 가도록 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두번 울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해를 돕기위해 그동안 있었던 진성준 의원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의 일문 일답을 박준호씨의 도움으로 게재했다.
아래는 이 사건, 박중사 자살조작 살인미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국회 인권위원회 진성준 위원이 국방부장관 한민구에게 묻는 질의 응답이다.

진성준 위원

진성준 의원입니다.
저는 오늘 무려 21년 전 군 내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국방부장관께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사전에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제가 실무자를 통해서 장관께 보고드리도록 했는데 보고를 받아 보셨습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예, 제가 이것에 대해서 위원님 관심사항을 듣고 관련 보고도 다시 한 번 받고 그렇게 했습니다.

진성준 위원

박준기 중사인데요.
이 박준기 중사가 94년 12월 17일에 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람은 운전사고를 냈는데 운전사고 때문에 병원에 옮겨졌다가 나중에는 다리를 절단하는 일까지 벌어졌어야 했어요.
(자료를 들어 보이며) 이게 지난 토요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인데 지금 다리 무릎 아래 부분을 다 절단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군의 수사 결과는 이 사람이 교통사고를 범해서 죄책감을 못 이겨서 당시 이송되었던 춘천에 있는 성심병원 10층 성당으로 돼 있는 방에서 3층 높이의 옥상으로 자살하기 위해서 떨어졌다, 뛰어내렸다, 그래서 다리를 아주 심하게 다쳤고 그래서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는 게 군의 수사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처음에는 의식을 잃어서 기억을 상실했으나 나중에 기억을 회복해 가요.
그러면서 자신이 아주 경미한 사고였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죄책감을 느껴서 떨어져서 자살을 할 만큼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영상자료를 보며) 실제로 당시의 수사 기록을 제가 죽 살펴보니까 94년 12월 19일 군의 수사 기록은 이 문제의 박준기 중사가 뛰어내렸다고 하는 10층 높이의, 저 성당이라고 하는 맨 위의 방입니다.
이 방이 위의 상부 유리창은 폐쇄형으로 고정되어 있고 아래가 반쯤 열리는 창이었는데 그 반쯤 열리는 창을 열고 뛰어내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반쯤 열리는 이 창의 너비가 얼마나 열리는가? 21㎝ 열린다고 수사 기록에 돼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의 체격이 175㎝에 70㎏, 가슴둘레가 123㎝입니다.
실험을 해 보니까 머리가 안 빠져 나가요, 21㎝ 열리는 창 폭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 문제 제기를 하지만 군에서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러니까 2007년도에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소를 해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이것 다 조사를 합니다.
그래서 국방부에 권고를 해요.
다른 많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박준기 중사가 뛰어내렸다고 하는 이 창틀 21㎝로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가 없다, 다시 조사해라.
그러니까 국방부가 다시 조사를 해서 진술을 한 사람 받아내 가지고 당시에 약 30㎝ 열린다, 사고 당시에는 더 많이 열렸다고 그런다, 그러니까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다 이렇게 하고 조사를 끝내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보니까 조사 때마다 창문 폭이 달라요.

2002년도 8월 29일자 민원회신문, 1군사령부 헌병대의 조사 기록에 의하면 성심병원의 총무과장 최 아무개라고 하는 사람이 진술하기를 투신사고가 발생한 후에, 박준기가 뛰어내린 뒤에 사람이 드나들 수 없도록 재발방지 차원에서 병원의 창문 폭을 축소 조정했다, 열었을 때 24㎝였다가 14㎝로 조정했다 이렇게 답변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24㎝ 열렸다는 거예요.

그러면 2008년도에 국방부 검찰단이 재조사했을 때 30㎝ 열렸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 아닙니까? 진술이 일관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21㎝ 열린다, 나중에 2002년도 조사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24㎝ 열렸다, 그다음에 2008년도 조사에서는 30㎝로 그보다 더 많이 열렸다, 이렇게 자꾸 진술이 엇갈리는 겁니다, 동일인의 진술인데…
그러니까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도대체 군의 수사를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저 위의 10층 방에서부터 박준기 중사가 떨어져 내렸다고 하는 3층 옥상 사이의 높이가 얼마나 되느냐 하면 실측하면 22m입니다.

그런데 군 수사 기록에는 15m로 되어 있어요.
이 15m를 바꾸지를 않습니다.
실제로 재어 보면 22m 나오는 것을 15m라고 막 우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22m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그런 정도로 상해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의료 기록에 의하면 머리나 이런 데는 거의 다친 적이 없어요.
그냥 찰과상 정도만 입었다는 거예요.
22m에서 뛰어내리면 그런 정도 상처가 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죽었으면 죽었지.
이게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진술입니다.
그러니까 군의 수사 기록이 초동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를 가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하물며 이렇게 민원인이 문제를 제기하면, 이것도 수 년에 걸쳐서 문제를 제기하면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서 민원인을 설득하려면 납득할 수 있는 제3의 민간 전문가라든지 중립적인 누구라든지를 불러 가지고 함께 수사를 해서 믿을 수 있게 해 줘야 되는데 아주 형식적인 수사만을 하고 그냥 덮어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우리 군을 믿을 수 없다고 트위터며 저 다리 잘린 사진을 계속 실어 가지고 우리 군을 성토하고 있어요.
장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저도 그 신문기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읽었고 보고도 받았는데 여러 차례 조사를 해서 결과가 박준기 씨의 주장과는 다른 이쪽 우리 군의 주장은 지속되고 있는데 국민권익위에서도 해서 여러 가지, 또 국방부 검찰단에서도 확인을 한 바가 있고 해서…… 저 문제는 지금 벌써 20년 이상이 돼서 여러 가지 시효는 다 경과한 일인데 저 문제에 대해서 한번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군의 조사를 못 믿으면 다른 민간과 함께 다시 한 번 확인한다든지 하는 그런 작업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진성준 위원

사건 초기에 정확하게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지고 수사 기록이 개판입니다.
만약에 거기서 뛰어내렸다면 방충망이 달려 있었는데 이 방충망이 찢어져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뛰어내렸다라고 하는 그 위치에는 방충망이 찢어져 있지 않습니다.
수사 기록에 그렇게 돼 있어요.
찢어지지 않고 어떻게 바깥으로 뛰어내립니까?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대로 21㎝밖에 안 열리고 또 높이도 다르고 말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박준기가 짚었다고 하는 지문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지문을 실제로 채취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그것이 박준기가 짚은 지문인지 어떤지가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또 옥상 바닥에 남아 있다는 혈흔도 채취해서 DNA 검사 같은 것을 안 한 겁니다.
그래서 그 혈흔이 박준기의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몰라요.
군의 초동수사가 개판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재수사를 해야 진실이 드러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진실이 드러날 수 없다면 물론 민원인의 주장도 100%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진상불명으로라도 보상을 해야 되지요.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그런데 이 사람을 내버려 두고 있는 겁니다, 자살했다고 해 가지고.
이렇게 억울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군의 수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민원인의 주장을 탄핵할 수가 있겠지요.
이런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다, 당신의 주장이 무리하다, 과도하다.
그런데 지금은 진상을 밝힐 수가 없는 거예요, 군의 초동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가지고.
그렇다면 이것은 군의 책임이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국방부장관 한민구

그 문제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가 조사를 여러 차례 했는데도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이 확보가 안 된 상황이라고 저도 지금까지 이해를 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군이 어떤 식으로 지금 위원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조치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다시 한 번 저희들이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진성준 위원

사건의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저는 군에서 이것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임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방부장관 한민구

잘 확인하고 검토하겠습니다.

***

아래의 내용은 부산 동래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 박사의 감정 결과 입니다.
동래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 감정결과입니다.

 

다) 의료감정 결과 신청인이 위 진료기록에 대해 2007년 11월 13일 부산 소재 동래봉생병원(재활의학과 전문의 유여진)으로부터 받은 감정결과는 아래와 같다.

 

(1) 10층(22m 높이)에서 3층 콘크리트 옥상 바닥으로 추락 시 상해정도에 대해, “i)머리가 먼저 지면에 접촉 시 즉사,

 

ii)양측 하지로 지면에 착지 시 족관절, 슬관절 및 대퇴관절에 다발성골절 및 하지의 근육, 인대와 연골파열, 척추 및 골반 골절, 체간의 손상과 내부 장기의 치명적인 손상 혹은 사망,

 

iii)체간이 먼저 지면에 착지 시 죽사하거나 갈비뼈 골절을 동반한 치명적인 심폐질환 손상 및 간, 비장, 신장, 방관의 파열과 좌상 등과 다발성 골절 및 두부손상 등이 일어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2) 한편, 위 사고가 추락에 의한 상해인지 여부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22m 높이에서 추락 시 거의 사망하거나 신청인의 상해정도보다도 더 심각한 상해를 입을 것 같으나, 정확한 판단을 위해 이 부분의 전문의 소견이나 법의학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3) 신청인이 본 사건은 은폐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진술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우리 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신청인은 “현재 장애상태(전역이후 1997년 왼쪽무릎 밑 다리 절단수술 후 의족 사용, 지체장애 2급 등록)는 2.3m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입은 상해로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본인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후 의식을 잃기 전에, 본인이 사망하거나 기억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추정) 헌병수사관 김하용이 홍○일에게 자신의 폭행사실을 인정하면서, 사고수습을 위해 홍○일에게 원내에서 당직수위 근무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는 등 협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자, 홍○일이 과거 병원에서 환자들의 투신자살 사례를 언급하며 본인이 투신한 것으로 사고를 위장하기로 감화용과 담합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의식을 잃은 이후 본인에게 현 장애상태에 해당하는 별도의 추가 가해사실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한편, 신청인은 추가 상해경위에 대한 군 수사시록에 대해, “헌병수사관 김○용의 가해사실에 따른 책임과 수위 홍○일의 당직근무자로서 사고에 대한 책임 회피 등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술하였다. 라. 이 외에도, ‘인지보고서’에는 당직의사 정○석의 연령(30)이 실제연령(25)과 다르게 기재된 점, 병원 10층에서 3층 옥상까지의 높이(15m)가 춘천성심병원에서 측정된 높이(22m)와 다르게 기재된 점 등 객관적인 사실내용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기록들이 발견된다.
4. 판 단

 

가) ‘전공사상처리규정'[국방부훈령 제392호(1989년 9월 7일)] 제3조 제2항 및 같은 규정 별표1에 의하면, 공무수행 중 또는 공무와 관련된 사고 및 재해로 발생한 상이자의 경우 이는 ‘공상’에 해당하거나,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끊었거나 그로 인한 결과로 사망 또는 상이자는 ‘비전공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신청인이 추가 상해를 입게 된 이유가 자살을 목적으로 한 투신인 경우에는 비전공상에 해당하나, 헌병 수사관의 가해로 인해 발생한 상해인 경우에는 공상에 해당될 수 있다.

 

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결과, 신청인의 추가 상해에 대한 군 헌병대의 초동수사과정 및 수사기록에서 발견되는 수사 미진사항들은 아래와 같다.
1) 수사기록관련

 

가) 신청인이 투신한 장소로 추정된 성당 창문의 경우, 그 개장 폭(21cm)이 신청인의 신체(신장 175cm, 체중 70kg, 가슴둘레 132cm)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아니며(우리 위원회의 모의실험 결과, 머리의 통과가 불가능하였음), 반개방형 창문은 방충망이 훼손되지 않은 채 그 위쪽의 폐쇄창문의 방충망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점(개방된 창문을 통한 통과 자체가 불가능), 현장에서 발견된 손가락 자국과 혈흔에 대한 지문감식 및 혈액감정이 실시되지 않은 점 등을 통해 볼 때, 신청인이 투신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객관적인 정황증거 수집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홍○일 및 박준호가 신청인이 투신한 장소라고 추정한 현장에서 상태에 대해, “방충망이 훼손되지 않았다.”라고 일치하게 진술한 것은 ‘목격자 진술조서’와 이를 기초로 작성된 ‘인지보고서’가 조작되었을 개연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 신청인의 발견위치(후송위치)가 수사기록과는 다르게 ‘1층 현관 직상지점’이라는 후송의사 정○석의 진술과 ‘원내 급수펌프 지점’으로 확인하였다는 신청인 및 신수철의 진술이 상호 유사한 지점인 점, 수위가 신청인을 발견하고 응급실로 후송하는데 소요된시간이 7분이라고 하나 후송의사 정○석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한 점과 우리 위원회의 측정결과 최소 20분 이상 걸린 점 등을 볼 때, ‘인지보고서’의 후송시간 및 장소에 대한 기록이 부정확하거나 비현실적이라고 판단된다.
2) 상해 관련

 

가) “신청인의 상해정도는 10층(22m 높이)에서 떨어진 경우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상해정도(즉사 또는 더 심각한 상해)로 볼 수 없다.”라는 의료감정 결과 및 이와 유사한 소견을 제시한 정○석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신청인의 상해정도는 10층 성당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나) 특히, 진료기록에서 “무언가에 짓눌려서 해당부위의 연골, 근육 등 내부조직이 파열된 상해”인 ‘양측족부(발목) 압궤상’으로 진단된 점, 안면부에 대한 상해정도가 교통사고와 낙상에 의한 상해가 ‘경미하게 긁힌 정도’로 유사한 점은 위의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 한편, 최초 전화통화 시 정○석이 “후송된 그 환자가 아마도 사망하지 않았느냐?”며 되물은 사실과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홍○일이 신청인에게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서 올 줄은 몰랐다. 박 중사에게 도와주고 싶지만 못 도와줘 미안하다.”(신청인 및 신수철에 의하면, 홍○일은 1999년 9월경 병원 방문 시에도 동일한 취지로 말함)라고 하면서 경계하듯이 말한 것으로 보아, 당시 신청인은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신청인의 주장 관련

 

가) “현재의 장애상태로 보아 2.3m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입은 상해가 아니라, 김○용과 홍○일의 사고위장 담합에 의한 추가 가해로 인해 입게된 상해이다.”라는 신청인의 주장은 앞서 언급된 수사 미진사항 등을 고려할 때,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

 

나) 한편, 위와 같이 하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된 군 수사기록과 달리, 신빙성 있는 신청인의 진술이 발견되고 있음을 볼 때, “신청인의 진술내용이 신빙성이 없으므로 최초 헌병의 수사기록에는 하자가 없다.” 라는 취지로 답변한 기존 육군본부의 민원처리결과 회신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 요약컨대, 김○용 등 헌병수사관은 ‘신청인이 창문에서 투신하였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 자가 없는 상황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신청인을 최초 발견하였다는 홍○일의 추정적 진술에만 의존해 과학적이지 못한 수사를 진행한 결과, 객관적인 정황증거 없이 ‘죄책감으로 인한 자살시도’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고 판단된다.

 

계속되는 군대 내.외 문제,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며 하룻 밤도 편하게 잘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며칠전에는 DMZ 지역에서 중사 한 명이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새로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광화문 1번지에서 박준기 중사는 두 다리에 의족을 한 채 몇 시간동안 자신이 지나온 삶을 반추했다. 결단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 한민구 국방장관 입으로 분명히 군관민 합동 조사를 실시한다고 해 놓고선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불투명하다. 얼마만큼 조사가 진행되었는 지, 조사를 진행했으면, 왜 당사자인 박준기 중사에게 알려주지 않는지, 과연 조사는 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때는 군인이었던 그는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지휘권자인 국방부 장관의 말을 기억하고 있으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국방부 감사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성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진실에는 공소 시효가 없다!” 고 하는 박준기 중사의 말처럼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서 그와 그 가족의 억울한 지난 24년을 되 돌려 받게 되기를 바란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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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House : Does it Hear the Demands of its People? <청와대 앞에서 복직, 자유,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

지난 6월 30일,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정상 회담차 미국에 체류중이었다. 부재중인 대통령의 관저가 개방된 지 채 1주일이 되지 않은 상태의 청와대의 주변을 스케치 하고자 미국으로부터 날아갔다. 섭씨 35.6도가 넘는 날씨에 습도까지 높은 날씨는 길을 걷는 사람이나, 또는 광화문에 집결하여 비정규직 임금 최저 인상 10,000원을 외치는 시민들의 간절한 바램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당당하게 폭염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청와대 앞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이루어진 각종 폐단으로 그동안 피해와 고통을 받아왔던 국민들이플래카드를 온 몸으로 받들고 서서  국민의 권리, 정당하게 모든 시민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권리등을 외치며 더위도 아랑곳 하지않고 뜨거운 뙤약볕아래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2004년 11월)때 파면되어 지난 10년을 넘게 고통중에서 살아온 해직 공무원(2004년 기준 132명 해직)들을 대표하여 한 노조원이 그들의 복직을 외치고 있었다. 공무원 노조는 2,415일 복직을 위해 청와대 앞에서 줄기차게 그들의 복직을 위해 비가오나 눈이오나 피켓을 들고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부정한 행위나 금품을 받아서 해직이 된것도 아니고 단지 공무원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해직된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작년 박근혜정권에서 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불법 노조로 규정되었다고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동해 시지부 박영호씨는 자신은 200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로 해직을 당했다고 말했다. 노동 3권중에서 1.5권도 안되는 1.2권으로 노동조합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제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노무현정부때를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때는 공무원 노동 3권 제한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2008년12/31)을 내렸다.  그 후, 더 심하게 억압받는 공무원 노조는 수 많은 실직자를 낳고 생계를 위협받았으나, 140,000명 전국 노조원들이 서로 합심해서 십시일반으로 어렵고 힘든 노조원들을 보살펴왔다고 박씨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파면된 공무원들을 다 복직시켜 주기를 원한다며 민주정부가 수립이된 만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힘써 일한 노조원들이 다시 일터에서 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덧 붙였다.

여인 B 씨는 전국적으로 12개지파가 있으며,  200,000여명의 교인들이 확장되고 있다고 말하며, 신천지에 자신의 딸을 빼앗겼다고 말하며, 24살의 딸이 집을 가출하여 돌아오지 않는다며, 신천지의 이만희교주가 모든 신도들에게 영원히 죽지않는다고 말해서 자신의 딸이 이만희 교주에게 빠져 부모를 버리고 집을 떠나버렸다고  딸을 되찾게 해 달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여인 조 씨는 충주시에서 개발이란 명목으로 자신이 10년동안 재배한 산양삼 5년근을 한 뿌리당 90원으로 산정해서 지급했다고 말하며, 그동안 투자한 산양삼 씨값에도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으로 인해 온 가족이 빚에 허덕이고 있으며, 신용 불량자가 되었다고 “힘없는 농사꾼, 모든걸 잃고 절박함에 울부짖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말하며, 충주시청이 SK 사를 비롯한 시공사인 개발업체에 확인도 하지않고 인.허가를 내준 부당 행정이 개선되어 피해자의 동산인 산양삼이 다시 재 산정되어 비탄에 빠진 가족을 도와 줄 것을 부탁했다. 10억이 넘는 빚을 졌다고 말하며 잃어버린 세월 14년을 돌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숨쉬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탱크가 개미를 밟고 지나간 것에 대해 그들은 이 가족을 살릴 방법은 없는가? 라고 통곡했다.

충주 성심 맹아원에서 의문의 변을 당한 (사망당시 12살) 김주희 양의 어머니도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꼭 밝혀달라고 애끓는 호소를 하고 있었다.<기사 참조: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87043 

삼성전자서비스노조원들은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시절을 되 돌릴 수는 없으나 지난 시절 부당하게 해직또는 죽음, 또는 자식을 잃고, 자식을 빼앗긴 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언론은 이들의 아픔에 눈을 돌리지 말라! 언론이 가진자, 권력을 쥔자, 힘있는 자를 향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시간에도 빼앗긴 자, 어둠속에서 숨죽이며 하루를 연명하는 보통 시민을 꿈꾸는 자들은 여전히 위험에, 또는 더 곤란한 지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명심하길 부탁 드린다.

언론은 사명으로 하는 천직이다. 보고 들은 바를 하나도 꾸밈이 없이 보고 적는 것이 언론이다. 청와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들이 한국 언론에서 조명받지 못했다고 말하며 꼭 이 사실을 세계에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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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Open Sergeant Park’s Case! 6. 군인으로서 명예 회복과 잃어버린 삶을 찾아서<박준기 중사 사건 다시 재조사 하라!>

(사진은 박준호씨 페북에서 가져옴)

7월5일(현지 시간) 청와대는 박준기 중사 자살 조작 사건에 대해 민.군 합동 재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박준기씨 형인 박준호씨가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코리일보에 알려온 적이 있다. 바로 한 달 전이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재조사에 나설 것 같았던 정부는 현재 갈팡질팡하고 있다. 즉, 인수위원회에서 그들이 접수한 사건을 검찰에 이관하였다고 하고, 검찰은 다시 국방부에 이첩했다고 하며, 국방부는 소관사항이 아니어서 육본으로 넘겼다고 한다.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박준기중사의 형인 박준호씨에 따르면, “[Web발신]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귀하께서 제출해 주신 서류는 소관 기관에서 처리함이 타당할 것으로 보여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소관기관에서 답변을 드릴예정입니다. 국민인수위원회에서는 제출하신 민원이 세심하고 철저하게 답변될 수 있도록 직접 관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자는 발신전용입니다.” <인수 위원회에서 박준기중사 형인 박준호씨에게 보낸 답변 메일> 이라는 희망적인 답변을 받은 후, 다시 오리무중인 상태로 돌아간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덧 붙였다.

박준기 씨의 증언에 의하면, “국방부감사실에서 육본으로 이관하니 육본에서는 이사건 우리가 할일이 아니다라고해서 감사실에 돌려보내니 이를 또 검찰로 이관했습니다. 이는 지금 한민구 현 국방부 장관이  민.군합동재조사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감사실에서 하는게 맞고 또 이전에도 권익위원회에서 재조사하라고 감사실로 보낸것인데 이를 회피하고,…한 달이 되었습니다.

인수위도 처음에도 다해결해주겠다하고 소관기관에 이관했으니 할일없다는 말을하고 또 말을 바꾸어 사회혁신부 주관으로 한다고하고 관리감독하는 부서가 따로있다고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럼 사회혁신부 전화번호를 달라하니 모른다고 합니다. …이는 인수위가 사건 특성상 청와대 안보실로 넘겨야함에도 이를 강행한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광화문 1번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가?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공약에서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국민들과 눈 높이를 맞추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첫번째 시도로 광화문 1번가가 생겼고, 인수 위원회도 생긴 것으로 안다. 그러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나 조직이 국민의 원성을 듣고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국민과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지난 6월 6일자 코리일보를 인용하면, “청와대는 박중기 중사 자살 조작 사건에 대해 민.군합동 재조사를 실시 하겠다고 박준기씨 가족에게 연락이 왔다고 박준호씨가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밝혔다. 박준기 형인 박준호씨는 자신의 페북에  “여러분의 힘과 응원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를 표했다.

박준기 중사와 박준호 씨 형제는 지난 5월 19일부터  광화문 서명을 시작으로 박중사 고향인 군산에서 지난 6월 3일부터 계속적으로 서명(6월 6일 현재, 3,100명이 자필 서명, 온라인 800명이 서명에 동참)운동을 펼쳐왔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해 그 약속을 이행하라! 혹시, 한 장관은 다시 이 사건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여, 부하 직원들이 위에 알리지 않아 다시 그 사건이 어떻게 되어가는 지도 모르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 장관이 분명히 밝혔듯이,”민.군 합동 재조사를 하겠다.” 고 피해자 가족과 언론에 공식적으로 밝힌 사안이다. 이 일이 명백하게 밝혀져서 지난 24년동안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잃고, 두 다리를 잃은 채, 의족에 의지하여 하루하루 고통속에서 살고 있는 박준기 중사와 그의 가족이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박준기 중사는 절대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그 사실을 밝혀내서 다시 군인의 명예를 찾아 남은 인생을 지금 보다는 더 낫게 살아야 하지 않은가!

잘려진 두 다리에 그 비밀의 키워드가 있다. 잃어버린 시간속에 누군가 감추려고 한 진실의 실마리가 엉켜있다. 이제 그 키워드를 찾아 내어 한 올 한 올 그 진실의 실타래를 풀어 내어야 만 한다. 한 사람의 국민이 지난 24년동안 삶이 아닌 죽음보다 더한 고통속에서 살아온 것을 기억하여, 우리는 이제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줘야 한다.

인수 위원회와 국방부는 촛불 국민의 민심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다!” 라는 지엄한 구호가 단지 구호로만 그쳐서는 정말 안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와대는 국방부와 서로 협조하여 이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기 바란다. 군대에 보낸 자식이 두 다리를 잃고 돌아와, 평생동안 눈물 흘리며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늙은 어미의 찢어지는 가슴을 더는 외면하지 말라!

문재인 정부에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전 정부의 오래된 적폐 척결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서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아랫 사람들이 윗 사람을 받들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당장에 그 자리에서 물러서라!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일 자리를 양보해야 당연하지 않는가!

<코리일보 기사 참조>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1-%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2-%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department-of-defense-and-the-sadness-of-a-mother-whose-children-returned-disabled/

Blue House: Military and Civil Investigation of Sergeant Park to Restart

코리일보는 이 문제가 해결이 될때까지 계속적으로 박중사 사건을 다룰 것이다. 정말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지, 새 정부는 지난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지지율 80%가 넘는 정부로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지 눈과 귀가 되고, 입이 되어, 현 정부를 바라보며 채찍과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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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House: Military and Civil Investigation of Sergeant Park to Restart < 청와대 : 박중사 사건을 재 조사 하라! >

(광화문 1번가에서 연설하고 있는 박준기 중사)

6월 6일,  청와대는 박중기 중사 자살 조작 사건에 대해 민.군합동 재조사를 실시 하겠다고 박준기씨 가족에게 연락이 왔다고 박준호씨가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밝혔다. 박준기 형인 박준호씨는 자신의 페북에  “여러분의 힘과 응원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를 표했다.

박준기 중사와 박준호 씨 형제는 지난 5월 19일부터  광화문 서명  을 시작으로 박중사 고향인 군산에서 지난 6월 3일부터 계속적으로 서명(6월 6일 현재, 3,100명이 자필 서명, 온라인 800명이 서명에 동참)운동을 펼쳐왔다.

                                   

군산에서 김춘신 전북도당 위원장과 이재호 부위원장이 서명운동에 동참하며 서명자들을 격려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으며, 광화문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서명운동을 도왔다. 페이스 북 친구들은 마음으로 응원하며 직접 광화문으로, 구글 서명운동으로, 힘을 보탰다. 군산에서 창을 하고 있는 고금자선생도 피켓을 들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 광화문 시위에서 힘을 보탰다.

박준기 중사 자살 조작 사건 재조사를 위해 그동안 보이지 않은 곳에서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을 주신 모든 친구와 페북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박준호씨는 힘주어 말했다.

박준기 중사는 1994년 12월 17일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 대학 동기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친구 차를 운행중 눈길에서 미끄러지는 교통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대학동기를  춘천 성심병원 응급실에 입원시킨 후, 군 수사관 김모(2군단 헌병대)씨를 만난 후, 김모씨가 박준기 중사를 압송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고 멀쩡했던 사람이 의식 불명 상태로, 그리고 기억 상실증과 두 다리를 절단해야 만 하는 상황까지 이르른 사건을 군에서 박중사가 자살을 시도한 것처럼 조작한 사실이다. 그는 그 후,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기억을 되찾았으며, 자신이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결혼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두 다리를 절단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  지난 24년을 자신이 몸담았던 군대,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와 진실을 찾기 위해 박중사와 그 가족, 박준기씨 형인 박준호씨와 부모는 눈물의 세월을 살았다.

박준기 중사는 군 수사 과정에서 여러가지 의혹들을 제기하며 자신이 절대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왔으나 군 수사 당국은 이제까지 군 수사에 문제가 없었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힘겨운 싸움을 해 오는 동안 가족들은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없었다. 의족을 낀 두 다리는 퉁퉁 붓고 염증으로 통증으로 잠 못이루는 날들을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만 하는 어머니의 눈물은 하루도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제 청와대에서 박중사 사건을 민, 군 합동으로 재조사를 한다고 한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미래가 밝다.

문재인정부는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던 모든 적폐를 일소하고자 국민들과 눈 높이 조절을 하고 있다. 낮은 곳에서 국민들과  함께 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해외 750만 한인들도 온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코리일보는 4회에 걸쳐 박준기중사 사건을 재조명해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밝혀질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1-%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re-open-sergeant-parks-case-2-%ec%9e%83%ec%96%b4%eb%b2%84%eb%a6%b0-%ec%8b%9c%ea%b0%84%ec%9d%84-%ec%b0%be%ec%95%84%ec%84%9c/

Re-Open Sergeant Park’s Case! 3. 군인으로서 명예 회복과 잃어버린 삶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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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일보는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위한 미디어다. 언제든지 여러분의 억울한 일에 동참하며 입이되어 말을 하고, 손이되어 글을 쓴다.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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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PS Patient within S Korean Army Sent Bill for Services Not Provided by Hospital

(치료비 청구서: CRPS 환자 육진훤)

5월 30일 육진훤 환자의 어머니인 유선미 씨에 따르면, 아들 육진훤 군이 입원해 있는 국군 수도 병원에서 병원비를 청구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지난해 9월 부터 병실 침대 하나 쓰면서 지내고 있는 육진훤 군에게 국방부가 국군 병원에 손을 떼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후, 이제까지 별다른 치료ㅡ를 해 주지도 않았으며, 고열로 힘들때도 열을 재어주지도 않았으며, 어디 아픈지 진찰도 해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병원 치료비 내역서에 시술료, 수술료가 첨부 되어 나오고 있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진훤군은 면역력이 약한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와 처치를 받지 못해 CRPS 통증과 장염에 걸려 힘들어 하고 있다. 유미선씨는 2월부터 5월까지 치료비가 300만원이 넘었다고 말하며,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 온 몸에 고열과 통증으로 인해 두드러기가 나고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육진훤 군)

첫째 아들인 육진훤군은 지난 2015년 5월 10일 고양시에 있는 제 1군단 통신부대에서 5분 대기하다 무릎 골절 부상을 당했으나, 군 병원에서 타박상으로 오진하여 증상에 대해 신중을 기하지 않고 안일하게 대처한 이유로‘뇌에서 통증을 감지하는 회로가 망가져 생기는 희귀성 난치병인 CRPS’ 에 걸린 후, 병마와 가족들은 병원비를 대기위해 생활고에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둘째 아들 육진솔군도 2015년 3월 논산 훈련소에서 행군 훈련을 받던 중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코뼈가 골절되고 무릎 부상을 입었다. 진솔군도 제대로 된 종합적인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치료시기를 놓쳐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CRPS 진단을 받았다.

국방부에서 군에서 다친 두 형제의 치료비를 지원해 주지 않아 가족들이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군 병원에서 치료해주지 않았으면서도 수술비, 시술비를 부과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국방부는 치료비 전액을 책임진다고 해 놓고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국군 수도병원에서는 병실을 비워달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형제 모두 진통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희귀성 난치병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군 병원 측에서는 진통제 주사도 주지 않고 있다고 유씨는 말했다.

자식을 군에 보낼때 부모는 자식이 제대를 해서 돌아올 때까지 조국에 자식을 잠시 맡겨둔다. 그런데 맡길때는 늠름하고 자랑스러운 두 아들이 군에서 군 병원의 안일한 대응으로 두 아이들이 건강을 잃었다면 그것은 분명 국방부가, 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지금 구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 모두 혀 하나에 달려있다. 좋은 혀를 사용하여 세상이 편만해 질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쳐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을 가진 행동하는 시민이 되어 국가가 더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펜을 드는 자는 펜으로, 입으로 말하는 자는 입으로, 손으로 서명을 하는 자는 서명으로 함께 동참할 때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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