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강원대 윤금자 교수의 “노자의 무위 자연적 마음치유 연구”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6<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장자는 우리들의 마음에 고착된 주관적인 편견이나 독선을 비워내야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오직 다른 사람들과 소통의 길은 마음을 비워내는 데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장자는 마음을 비우고 氣로 사람들을 대하라고 했다. 氣란 주관적인 마음이 맑게 비워진 자연성의 상태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같은 것이다. 즉 순수한 마음의 느낌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곧 우리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으로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심재란 모든 삶의 보편적인 기준을 성심으로 삼아 평가하는 이기적인 자아의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성심은 누구에게나 의식 속에 내재되어있다. 그런데 그 성심을 마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만능으로 생각할 때 문제가 된다. 여기서 비움은 그 자체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의 生氣가 피어나는 공간으로써 작용한다.

『장자』「인간세」, “唯道集虛, 虛者.”

『장자』「인간세」,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장자』「인간세 12」, “瞻彼闋者,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적응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맞추려는 마음이다. 이 세상의 대다수의 존재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적응하기 위하여 우리자신에 가면을 씌우고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때가 있다. 우리를 내세우면 여러 가지로 부작용이 따르고 힘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우리의 존재를 진실하게 내보이면서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적응하는 것이 무조건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조화를 맞추면서 그들의 삶을 잘 성찰하면 다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우리의삶의 틀에 집어놓고 판단하여 선호도를 따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의 존재방식의 고유한 틀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방식으로 이끌려고 한다. 이렇게 강제로 이끈다고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자신의 고유한 자연성이 있듯이 상대도 고유한 자연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진솔하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폐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시이성인,
抱一爲天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포일위천하식, 불자견고명, 불자시고창, 불자벌고유공,
不自矜故長, 夫惟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불자긍고장,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고지소위곡즉전자, 기허언재. 성전이귀지. (노자 22장)

노자는 도를 잘 체득한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과 적응하기 위하여 신중하고 순진하며 소박한 모습으로 주변사람과 환경을 세심히 살핀다고 하였다. 자연 생태계가 도(자연)의 섭리에 의해 끊임없이 생명을 부여받고 조화를 이루듯이 우리 인간도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생기를 얻고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내팽개치거나 다른 존재에 의해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본연의 존재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평가하고 우리들의
삶의 방식으로 강제로 이끌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나름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강제성에 큰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古之善爲士者,微妙玄通 深不可識
고지선위사자,미묘현통 심불가식
夫唯不可識,故强爲之容
부유불가식,고강위지용
豫焉若冬涉川,猶兮若畏四隣
예언약동섭천,유혜약외사린
儼兮其若容,渙兮若氷之將釋
엄혜기약용,환혜약빙지장석
敦兮其若樸,曠兮其若谷
돈혜기약박,광혜기약곡
混兮其若濁,孰能濁以 靜之徐淸
혼혜기약탁,숙능탁이 정지서청
孰能安以久 動之徐生,保此道者 不欲盈
숙능안이구 동지서생,보차도자 불욕영
夫唯不盈 故能 蔽不新成
부유불영 고능 폐불신성 (노자 15장)

장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불일치가 가져오는 불행한 결과를 ‘새’를 통해서 설명하였다. 노나라 임금은 새의 고유한 특성을 살피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새에게 적용했기 때문에 새는 죽어버렸다. 자신의 방식으로 본다는 것은 사물을 대상으로 이분법화 시킨 것이다. 새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적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해의 적정선은 자연스럽게 다가가 이해하고 도움이 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이해의 한도를 벗어나 그들의 삶에 깊이 간섭할 정도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늘과 땅은 편애함이 없으며 만물의 자연스러운 생장에 맡긴다” 고 하여 모든 것에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생장을 자연의 도에 맡기고 따르듯이, 우리도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간섭해서는 안 되며,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나치게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하여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 그 자체가 힘겨운 일이며, 힘겨운 일에서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장자』「지락」, “且女獨不聞邪?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臠,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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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5<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진실은 사람들을 다가오게 하는 힘이다. 우리는 주변에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고 삶의 질서를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려야 한다. 우리의 삶의 양상을 흔들림 없이 진실하게 밀고 나간다면 누구도 우리의 삶의 질서를 흔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를 수용하는 것이 마음건강을 위해 중요하다. 노자는 복귀, 즉 인간이 어느 계기가 되면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는 누군가로부터 진심어린 관심을 받을 때이다. 인간의 감정은 거의 유사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주고 포용해주면 마음을 진실하게 열게 되고 진실하게 열려진 마음에서 느껴지는 공감은 서로를 이어주며 보다 넓은 인간이해로 연결된다.

칼 로저스의 ‘인간의 경향성’은 노자의 ‘복귀 지향성성’과 유사한 이론이다. “나의 경험상,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경향성(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치료 과정에서 사람들과 깊이 접촉하면서, 심지어 고통이 가장 심하고, 행동이 가장 반사회적이고 감정 상태가 비정상적일지라도 그것이(경향성)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민감하게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을 올바른 사람으로서 수용해 줄 때,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내가 믿기에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은 ‘긍정적’, ‘건설적’, ‘자아실현을 위해 움직이는’, ‘성숙을 향해 성장하는’, ‘사회화를 향해 성장하는’ 등의 단어이다.” (칼 로저스 지음, 주은선 옮김,『진정한 사람되기』, 서울 : 학지사, 2014, 40쪽.)

공감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마음이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의 마음은 믿음과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 담을 수도, 품을 수도 없다. 또한 우리가 마음으로 품지 않은 사람의 마음 안에 우리의 마음은 담길 수 없고, 그의 마음자리 언저리에 겉돌 뿐이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과 깊이 느껴지는 공유할 마음자리가 있을 때 서로의 마음끼리는 자연스럽게 품고 담기며 평온하게 함께할 수 있다.

상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만물을 포용하고, 포용하면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다. 포용하면 공평해지고, 공평해야 두루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흡흡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 (노자 49장)

상도는 비어있는 마음(무심, 허심)을 비유한 것이다. 마음이 비어있어야 사물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포용하게 된다. 포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기 위해서는 이성적이며 지적인 것으로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른 의미이다. 노자에 의하면 지혜롭게 살기위해서는 우리가 지적으로 터득한 관념이나 개념들을 비울 때 더 넓고 깊게 사람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노자』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자연의 규율’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지혜롭다는 것’은 삶을 더 넓은 방식으로 이해하며 인간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진심은 마음을 통하게 한다. 노자는 “하늘의 道는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답하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온다”고 하듯이 사람들은 접촉하는 사람들의 마음끼리 잘 통하면 말하지 않아도 더욱 깊고 넓게 서로의 마음자리에 의미 있는 존재로 담겨진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관점의 경계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각을 많은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더욱 넓고 깊은 차원으로 다듬고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생각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을 주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노자』제49장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성인은 언제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어서 사람들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왜 그가 우리를 괴롭히는지 그의 마음을 살피다보면 그의 내면에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어렸을 때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심하게 받아 강박증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인간적인 안타까움으로 그를 동정하게 될 것이고 그를 향한 적개심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늘 마음을 비우고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도는 만물의 그윽함이니 선한 자의 보배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보존되는 것이다. 멋진 언사는 가치가 있고, 존귀한 행실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버려질 수 있겠는가?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도의 자비, 연민, 긍휼을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도의 자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겉보기에 거칠어 보이고 비정상적인 격한 감정을 내뿜는 사람(不善人)도 그의 밑바닥에 서려있는 아픈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이해해주고, 공감적으로 응답해주면, 그는 왜곡되고 잘못된 감정을 정제하고 승화시켜가면서, 자신의 자연성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도자, 만물지오,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美言可以市尊, 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미언가이시존, 행가이가인, 인지불선, 하기지유,
故立天下,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고립천하, 치삼공,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왈이구득, 유죄이면사, 고위천하귀.(노자 6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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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4<강원대, 윤금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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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Prof. Yoon, Geum Ja>

현실적인 치유 방법은 그들의 비호감적인 성품을 탓하지 말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인품, 시간, 정신을 지킬 수 있다. 이해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원함, 처해진 상황, 난제 등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나고 괴팍한 성품뿐만 아니라 우리자신의 성품도 둥글고 자연스러운 성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성인은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정성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 성인은 겉보기에 불량해 보이고 부족함이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분명 본연의 맑고 선한 자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품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그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연성과 좋은 재능을 잘 가꿀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선하지 못한 사람의 품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가를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으로 삼을 수 있게 한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 27장)

수용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우리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점차 이해하게 되면서 그 사람을 마음으로 수용하게 된다. 수용이란 형식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정성이 깃든 인간관계이다. 우리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던 사람은 생각 만해도 불쾌한 감정이 치솟아 견디기 힘들어 그를 마음에서 밀어내기에 급급한데, 어떻게 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정신(혼)과 육체(백)가 하나로 합해져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정기를 모아 유순해지는데, 어린아이의 상태처럼 될 수 있는가? 잡념을 깨끗이 씻어내고 깊이 관조하는데 흠이 없을 수 있는가?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위자연으로 할 수 있는가? 감각기관과 외부세계가 접촉하는데, 고요함을 지킬 수 있는가? 모든 방면에 통달하면서 계략을 쓰지 않을 수 있는가?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재영백포일  능무이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위호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지호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생지축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불재  시위현덕 (노자 10장)
이 문장은 개인의 수양과 인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포일’은 수양을 통해 나 자신의 혼과 백의 합일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분별하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합일하는데 장애가 되는 대립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자는 어린아이처럼 지모와 탐욕이 없고 깨끗한 현람의 상태에서 주변의 사람이나 생명체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 주위에 분명 호감이 가지 않고 볼수록 싫은 사람이 있다. 사람이 보기 싫을 때는 이유가 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의 특유의 단점이 있을 때 그를 마음으로 수용할 수 없다. 로저스의 말처럼 “수용은 이해와 관련되지 않으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싫어할 때는 그 사람의 특유한 단점만이 싫어하는 이유가 되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분명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 우리들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식이나 환경에서 익숙해진 습관 등은 우리들의 고집과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잣대로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 ,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노자 28장)
노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과 같이 대립적인 이분법으로 나누는 그릇됨을 지적했고, 있음(有)과 없음(無)이 서로 생겨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포함하고,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듯이 모든 것은 서로 상관적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이치, 자연의 이치는 대립이 아니라 상호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배타적으로 대할 때 나와 너는 모두 소외될 수밖에 없다.『노자』제4장의 ‘和光同塵’은 서로 상생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빛과 먼지, 즉 인품이 좋은 사람이나 인품이 천박한 사람이나 알고 보면 본연의 자연성은 다 같기 때문에 서로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포일’은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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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3<강원대, 윤금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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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의 고요함(靜)은 그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고요함 그 상태가 아니다. 변화(動)속에서의 고요함이다. 고요함(정)은 마음을 비우고 본연의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일상의 비본질적인 잡다한 일에 욕심내어 시달리고 지치면 ‘자기다움’의 자연스러움이 이지러져 불안증에 시달리게 된다. 고요함속에서 마음은 불안증을 유발하는 사욕, 미움, 질투, 분별심 등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삶을 새롭게 살리는 生氣를 얻을 수 있다. 삶의 핵심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경험으로 내안의 가능성을 발휘하면서 견고한 의미로 채워가며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데 있다. 生意는 고요함 속에서 자기 성찰에 따른 새로운 삶의 희망으로 작용하여 더 이상 불안으로 동요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는 길목으로 향하게 된다.
본연의 자연성은 도를 품수 받은 마음의 뿌리이다. 노자는 지혜의 빛으로 맑은 본연의 자연성을 돌이키면 자연 닮은 삶을 살게 되어 자신에게 어두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즉 본연의 자연성을 따를 때 불안과 염려는 사라진다. 노자는 마음에 불안감이 전혀 없는 덕을 깊게 머금은 사람을 和氣 넘치는 嬰兒에 비유했다.

含德之厚, 比於赤子,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함덕지후, 비어적자, 봉채훼사불석, 맹수불거, 확조불박.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골약근유이악고. 미지빈모지합이전작, 정지지야.
終日號而不사,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 지화왈상, 지상왈명.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물장즉노. 위지부도. 부도조이(노자 55장)

노자는 우리의 자연성을 회복하여 화기 넘치는 삶을 살라고 했다. 화기 넘치는 삶이란 안정된 마음에서 비롯되며, 안정된 마음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온한 상태를 말해준다. 평온한 상태는 마음 본래 자연성을 회복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상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능히 일체를 포용하고, 포용하면 편안하게 공평해 질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면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은 모든 존재자가 근원에 있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비롯된다.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집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낙여이, 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노자 35장)

우리는 일생생활에서 끊임없이 압박하는 삶의 장애물로 수시로 불안증에 시달리지만, 그때마다 도의 품성이 내재된 본연의 자연성으로 회심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자연과 부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과 부합된 삶 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도와 같아진 사람은 도 역시 그를 즐거이 얻는다”고 했고, “대상을 지키면 천하 사람들이 그에게로 돌아온다”고 했으며, “귀신이 자연에 따르는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심리적인 불안증을 치유하여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모든 것을 이해, 수용, 공감, 적응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리적 불안증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해하는 마음’, ‘수용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적응하는 마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마음’을 살펴본다.

첫째, 이해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마음이다.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 깊이에 있는 무의식 상태까지도 세심하게 이해한다면 감정을 잘못 건드려 고통을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란 쉽지 않지만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처럼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열어 놓았을 때 가능하다. 마음을 ‘느끼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나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미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 때, 상대방이 기뻐하면 우리도 환희의 감정을 느끼고, 상대방이 슬퍼하면 우리도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삶을 형성해 나간다. 인간의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가정, 직장,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喜怒哀樂을 모두 경험한다. 인간관계속에서 체험하는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은 우리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들만 만난다면 좋겠지만 우리들의 성향과 너무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고, 그들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면 우리는 미연에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개인적인 고유한 성품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성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신뢰하며 그 생각대로 행동하며 살고 있다. 주관적인 생각과 행동은 가정환경이나 자신의 관심분야의 지식을 추구하면서 다져진 사고의 결집체에서 우러나온 것일 뿐이다. 그것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보편적인 척도 혹은 기준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념이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은근히 배타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옳고 상대방의 생각은 그르다고 보는 이분법적인 편협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다양한 삶의 형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삶의 형태에 맞추려고 하는 독단적 행태이다.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보듯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故物, 或行或隨, 或허或吹, 或强或羸, 或挫或휴,
고물, 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좌혹휴,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시이성인거심, 거사, 거태.(노자 29장)

노자에 의하면 현명한 통치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이해하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본연의 순박한 상태로 회심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반드시 상대방의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자신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성격적인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늘 만날 수밖에 없는 가족, 직장동료, 친구, 선후배들이 우리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없다. 우리가 그들 때문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갈 것이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흡흡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노자 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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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2<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2) 심리적 불안증 치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과도한 업무와 직장 상사나 동료 간의 불화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심리적 불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기도 한다. 심리적 불안증의 치유목적은 마음의 평정을 구하는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구하기 위해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취미활동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안증은 해소되지 않고 마음의 평정도 구하지 못한다. 리처드 칼슨에 의하면 기분 좋은 감정은 우리 마음속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경험한다. 즉 뚜렷한 이유 없이 존재하는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평온이며, 이것이 곧 평정심이다. 누구나 삶의 불안증을 경험하지만 빨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평정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바로 우리 자신의 책임이며 고통을 해결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자신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가? 고통은 삶의 과정에서 늘 따르게 마련이고, 고통을 총체적으로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통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삶의 지혜이다.

노자사사로운 집착과 인간적인 갈등 속에서 늘 강박증에 시달려 자신의 본연의 마음바탕과는 다르게 분열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靜)하다”(歸根曰靜)고 권고했다. 뿌리는 우리의 본연의 마음바탕이다. 불안한 상태에서 표층으로 분열된 마음을 내면으로 모아 내적 고요함(靜)을 찾으라는 것이다. 불안은 자기의 내면을 살피는 계기가 된다. 불안과 관련하여 하이데거도 노자와 유사한 관점을 갖고 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노자 16장)

하이데거에 의하면 불안은 현존재를 일상성에서 벗어나 본질적으로 자신을 그의 가장 고유한 “세계-내-존재”로 개별화시킨다. 즉 불안의 근원적인 기분은 현존재를 세인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여 “유일한 자기다움”을 살필 수 있게 한다. 불안에 직면해서 마음을 안으로 모으고 내밀하게 자신을 반성하여 자신의 불안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통찰하는 과정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다. 불안의 원인은 외적인 요인보다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내적인 요인에 있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 52장)

우리는 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남들보다 우월하고 명예롭고 물질도 많은 존재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주위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즉 문제의 요인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여 대립시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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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1<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김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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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강한 마음

인간의 삶에 있어서 고통은 마음의 불안정한 상태를 유발한다. 인간은 남들로부터 무시당했을 때, 낮선 환경 속에서 적응하기 어려울 때, 자신감을 잃었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과 관계맺음이 원활하지 않을 때, 소외감을 느낄 때 고통을 받는다. 고통은 견디기 힘겨운 것이지만, 사람들은 고통을 통해서 그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살피게 되고 구체적으로 절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고정 불변한 상태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삶은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혹은 나쁜 방향으로 바꾸어진다. 사람들은 마음의 병이 어려운 가정환경, 부당한 직장환경, 부조리한 사회 환경 등 외적인 요소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외적인 요소는 마음의 병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더욱 근원적인 마음의 병의 요인은 우리 자신의 내적인 마음에서 온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리처드 칼슨(Richard Carlson)은 스트레스를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한다. 그는 스트레스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똑같은 악조건적인 환경 속에서도 어려움을 잘 극복하며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환경을 탓하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듯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처하면 어려움도 삶의 지혜로 받아들일 수 있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에 불평하게 되고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그러므로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늘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노자』에서 도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켜 성인이라고 칭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음이 정화되어있어 인간이나 사물을 있는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즉 그들의 마음이 맑아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아 왜곡된 인지를 하지 않는 虛心, 無心의 상태에 있게 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자연의 도가 마음에 내재해 있다.『노자』에서 건강한 마음(정신)은 마음을 비워 無欲, 知足, 知止할 수 있는 허정심의 상태를 일컫는다. 탐욕이나 지모에 얽혀 있는 마음은 자연의 道로부터 벗어난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의 소유자는 자신의 고유한 삶을 자기답게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려고 한다.

노자는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총명(智)하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明)하다”고 했듯이, 건강한 마음은 자기존중, 자기수용, 자기이해 등으로 자기의 본성을 스스로 알아가는 마음이다.

“知人者智, 自知者明.”(노자 33장)

자신의 모습을 자각할수록 외적인 고통에 상처를 덜 받게 되고, 자신의 약점 때문에 열등의식으로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연민으로 받아들이면서 약점을 보완할 새로운 의욕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를 보고, 자신의 가치를 느끼며, 자신을 존중한다.

자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맑은 거울처럼 마음을 비출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내면에 욕망이나 지모에 얽힌 불안정한 흔적이 있는지 살펴 본연의 자연성을 가릴 수 있는 장애요소를 덜어내야 한다. 건강한 마음은 자연의 도와 일치하는 마음이다. 마음속에 탐욕이나 분별하는 왜곡된 주관의식 등이 얼룩으로 끼어있다면 제대로 마음을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건강한 마음은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는 무심, 허심의 맑은 경지의 상태이다. 분별하는 자의식 없는 마음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虛心᛫ 無心이다. 虛心᛫ 無心상태에서 마음의 고요와 맑음을 지켜나갈 수 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노자 16장)

노자는 본연의 고요하고 맑은 자연성으로 외적사물의 이치를 살필 수 있다고 했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是以聖人, 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시이성인, 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노자 47장)

노자가 “지혜의 빛을 적용하여 내재된 밝은 본성을 돌이키면 자신에게 재앙이 따르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비워있으면 세상과 본연의 자연성을 지혜의 빛으로 살필 수 있다. 노자는 건강한 마음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직관을 통해 자연성을 성찰하는 것을 중시했다. 자연성을 성찰하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세속의 욕망을 정화시키는 수양상태에서 가능하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 52장)

사람들은 대부분 늘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주객을 나누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 편중해서 행동하기 마련이다. 노자에 의하면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잘 닦아 자연의 이치에 따라 행동하면,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자신을 보듯이 볼 수 있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자손이제사불철,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수지어신, 기덕내진, 수지어가, 기덕내여, 수지어향, 기덕내장,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수지어국, 기덕내풍,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오하이지천하연재, 이차.(노자 54장)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을 보듯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하며 수용하고 포용하며 함께할 수 있다.그러므로 노자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성인)은 자신의 반듯하고 청렴하고 정직한 성품을 사람들과 구별하여 돋보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좋은 인품(빛)으로 주위사람들에게 은근하게 혜택을 준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노자 5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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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0<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인간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내적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인간관계에서 자존심의 손상은 누구나가 경험하는 것이다. 자존심의 손상으로부터 오는 모멸감, 열등감 등 부정적인 감정에 매여 있느냐 혹은 감정을 극복하느냐는 생각에 달려있다. 자존감의 손상으로 격한 감정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자존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자존감의 손상을 경험했을 때 자신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과 자각의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고통 속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다.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비우고 기분을 바꾸려고 애쓴다. 그러므로 노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천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고 했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何謂寵辱若驚 하위총욕약경
寵爲下 총위하
得之若驚 失之若驚 득지약경 실지약경
是謂寵辱若驚 시위총욕약경
何謂貴大患若身 하위귀대환약신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及吾無身 吾有何患 급오무신 오유하환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고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노자 13장)

몸과 마음을 잃으면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 우주의 신비함과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마음은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자 또는 친한 사람들의 위로만으로는 근본적으로 치유 받지 못한다. 우울감에 시달릴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은 어느 정도 기분을 호전시키는데 효과는 있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정신적 현상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으며,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스스로 치유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의 생각은 기분과 정서를 유발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사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에 따른 우리의 기분도 우울해진다. 우울한 상태에서 사물들을 왜곡하여 인지하고, 인지왜곡으로 형성된 왜곡된 ‘상’이 마음에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인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긍정적인 생각은 자기존중으로부터 나온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빚어진 우울감 속에 자신이 스스로 만든 ‘열등적인 자기’는 자신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비본래적인 존재라는 것을 빨리 깨우칠수록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울감이 우리의 존재를 무가치하거나 본연의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번즈 박사는 모든 기분은 인지 또는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정서적 혼란을 일으키는 부정적사고는 큰 왜곡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정신적 왜곡들을 정확히 가려내고 제거할 방법에 정통한다면 더  효과적으로 기분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인지요법’은 기분장애 치료이다. 즉 기분수정의 기술이다. ‘인지요법’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와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에게 고무적이다. 데이비드 번즈 지음, 박승룡 옮김, “우울한 현대인에게 주는 번즈 박사의 충고” 서울: 문예 출판사, 1998, 19~23쪽 참조)

노자는 인간의 고통은 과도한 탐욕과 자신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 분별지 그리고 사회의 제도와 문화적인 요인 등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점차 심층의 자연성으로부터 벗어나 표층 의식에 사로잡힌다. 노자는 표층의식에 사로잡힌 인간은 더욱 세속화되어 ‘마음이 발광하는’ 지경에 이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다가 실패하면 분노하면서 세상을 원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망각하여 좌절감, 열등감, 허탈감, 자기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세상의 물질, 명예, 권력 등을 쉽게 다 얻을 수 없는데도 자연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매달려 불안정하게 흔들리면서도 그 걸림돌의 유혹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세속적인 욕심에 휩싸여 흔들리는 마음을 노자는 ‘民心’이라고 했다.

不尙賢 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是以聖人之治 시이성인지치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 상사민 무지무욕
使夫知者不敢爲也 사부지자 불감위야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노자 3장)

노자는 저속한 물질적 욕망을 채우는데 몰두하면 물질은 쌓을 수 있겠지만, 그 물질로 인해 교만해지면 허물을 남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물질적인 욕구로 인해 육체의 힘을 소진하여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까지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노자는 무엇보다 생명과 장생을 중시했다. 탐냄, 다툼, 경쟁 등 강폭하고 파괴적인 요소들이 마음의 고요를 무너뜨리면 인간의 마음은 몸과 하나이기 때문에 생명이 약화되어 극한 상황에서는 죽음에 이른다고 했다. 이것에 대해 노자는 “사납고 포악한 사람은 제명에 죽지 못한다”고 말했다. 즉 사납고 포악함은 ‘道’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제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우리에게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 것을 권고했다.

노자는 우리의 삶에 불쑥불쑥 나타나 마치 잡초처럼 금방 온 마음에 번지는 불안 우울 절망 등 고통의 원인을 잘나가는 사람과 비교하거나 나의 능력보다 과도한 것을 구하다가 뜻대로 이루지 못했을 때 올 수 있는 좌절감과 그에 따른 좋지 않은 ‘병적감정’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노자는 이러한 감정을 마음에서 비워야 한다고 했다. ‘병적감정’을 마음에서 비워 불안이 치유된 마음은 도를 닮은 건강한 마음이다.

노자는 도를 닮은 마음으로, ” “不爭心”(제8장), “心善淵”(제8장), “愚人心”(제20장), “無常心”(제49장), “生氣心”(제 55장) 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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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49<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나날이 더해가고, 도를 추구하는 것은 날마다 덜어간다”고 했다. 마음치유란 무위의 실천을 통해 도의 품성을 닮은 마음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며, 나날이 자연성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노자는 인간 본래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치유방법으로 욕심과 인위조작의 근원이 되는 외부사물로 향하는 마음을 차단하여 내면의 근본을 돌이켜 반성할 것을 제시했다.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노자 16장)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존재로서 학력, 지위, 물질 등 외형적인 것에 의해 사람의 높낮이 등급을 매기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天下神器,” (노자 29장)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長短相較 高下相傾 장단상교 고하상경
音聲相和 前後相隨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만물작언이불사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노자 2장)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어려움과 평온함이 서로 스미고 교차하여 설령 평온함이 완전히 사라지고 극도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해도, 그 어려움을 인위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최선책이 아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얻음과 잃음은 자연의 섭리로 이해하는 수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노자의 견해는 평온함도 어려움도 모두 자연에 내맡기다 보면 어느 순간에 어려움과 평온함의 대립 상황을 초월하여 조화 속에 고차원적인 통일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노자는 자연의 신실함 즉 무위를 따를 때 믿음은 저절로 생기고,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면 불신이 생긴다고 보았다.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희언자연, 고표풍불종조, 취우불종일.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失亦樂得之.信不足焉, 有不信焉.  
실역락득지.신부족언, 유불신언.(노자 23장)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정신적, 물질적, 생활에 필수적인 제반요소의 능숙한 연마 등 여러 가지를 갖추어야 어느 정도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구조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학력, 지위, 물질 등 외형적인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과 우월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가꾸기 보다는 외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현상이 사람의 외적인 조건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치를 중시하는 풍조를 조성시켜 사람들에게 잠재력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노자는 인간 존재의 뿌리를 자연성에 두고 있다. 노자는 자연성으로부터 벗어나면 날수록 고통스러워진다고 했다. 노자에 의하면 사람들이 그토록 가치를 두고 쫓았던 지위와 물질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지위와 물질이 인간의 존재를 언제까지나 특별대우해줄 수 있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면이 잘 갖추어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의해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겉으로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자기 모습 그대로의 존재다움을 키워나갈 뿐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는 소위 ‘별 볼일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지만 노자는 이런 사람을 일컬어 “성인은 낡은 베옷을 입고 있지만 안으로는 보배와 같은 옥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오언심이지, 심이행, 천하막능지, 막능행,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언유종, 사유군,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지아자희, 측아자귀, 시이성인피갈회옥(노자 7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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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48<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Korea: Prof. Yoon, Geum Ja>

마음치유

오늘 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외적 조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자신의 것과 비교하게 되고,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과 자신의 위치에 따른 간극을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에 매이다보면 자신의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에 맞추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사회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할 때 자존심의 손상을 입으며 자신들이 감수해야할 고통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뿐만 아니라 그 사실에 겁먹고 있다. 자존감의 손상은 자기 존재의 모든 가치를 상실한 것 같은 크나큰 상처가 되기 쉽다. 자존감의 손상을 당한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고 무력감에 빠지거나 또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을 향해 폭력적인 행동으로 보복하거나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한번 잃은 자존심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학력, 지위, 물질 등을 구비하기 위해 힘겨운 경쟁에 뛰어들어 모든 것을 걸고 있다.

노자의 관점에서 마음치유란 탐욕과 분별지 그리고 이기심과 허세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맑고 평온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노자는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하며, 고요함은 본원으로 돌아가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歸根曰靜, 是謂復命,”(노자 16장)

즉 세속적인 헛된 것에 집착하면서 쌓아올린 이기심의 벽을 허물고 있는 그대로’의 본연의 자연성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도록 마음을 다듬는 것이다. 노자는 그 자체로 참되고 충만하고 선한 우리 내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은 바로 ‘人心發狂’과 ‘民心’이라고 했다. 노자는, 통치자가 이러한 마음의 쾌락과 욕망에 혈안이 되는 경박성과 천박성을 지적하고, 그 처방책으로 ‘신중함’과 ‘고요함’을 제시했다. 즉 통치자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물질의 욕심이나 쾌락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초연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道가 만물의 근간이 되듯이, 마음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뿌리가 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외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신중함과 고요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마음의 신중함과 고요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 덕을 쌓아야 하며, “덕을 쌓으면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이조복,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조복, 위지중적덕, 중적덕, 즉무불극,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무불극, 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저, 長生久視之道.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노자 59장)

의식적 측면에서 볼 때 마음치유는 느낌이나 감정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정화의 방법은 마음에 좋지 않은 감정을 비우는 과정이다. 이러한 마음치유는 우선 자기 마음을 올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노자도 “성인이 병들지 않는 것은 그가 병통(결점)을 병(결점)으로 여기기 때문에 병(결점)이 없다”고 하였듯이 자신의 마음을 보면서 깨닫고 잘못된 것을 비워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기대치를 낮추거나 혹은 높이는 것 모두 문제가 된다. 과거에 겪은 부정적 경험이나 사건에 자신의 존재감을 매어놓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열등한 존재로 스스로 낙인찍어 현재의 삶을 어둡게 하는 것은 문제이다. 이와 같이 자신을 무능하게 보는 것도 문제이고 자신을 너무 높이고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이루려는 것도 문제이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이든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루기 힘든 목표를 설정해놓고 꼭 이루겠다는 기대감으로 살 때 문제는 발생한다. 힘겹게 일은 했지만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때 좌절감과 실망감은 현실생활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자신의 일을 자신의 능력과 조화시키면서 꾸준하게 진행시킬 때 한 단계씩 새롭게 진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孰能濁以止? 靜之徐淸. 孰能安以久? 動之徐生. 保此道者不欲盈.

숙능탁이지? 정지서청,숙능안이구? 동지서생,보차도자 불욕영,

夫唯不盈, 故能 蔽不新成.”(노자 15장)

부유불영 고능 폐불신성

마음치유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무위’의 실천이다. 삶이란 고집스럽게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움켜쥐었던 건강, 물질, 명예 등이 점차 ‘내 것’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은억척스럽게 채워나갔던 것들을 결국에는 ‘비워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자는 물질과 명예 등 외적인 조건이 인간에게 스스로 자만심에 빠지게 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는 우월감으로 대립과 반목을 일삼게 된다고 보았다. 즉 인간의 자만심이 사물이나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인간의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너와 나’를 구별하는 주관적인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무분별의 자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도’의 품성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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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47<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설명: 미국 동 북부의 맨 끝, 캐나다 국경에서 가까운 메인 주, 포틀랜드 항구에서)

<Korea: Prof. Yoon, Geum Ja>

셋째, 마음의 병은 자신의 존재를 능력이나 물질적인 것으로 과시하려는 것에서 올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람을 인품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작업능률 성과에 따른 평가 그리고 외적으로 나타난 물질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풍조가 농후하다. 이러한 사회현상에서 인간이 인정받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요인으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사람들이 이루어낸 업적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일에 몰두하며, 인생의 모든 가치를 일을 통한 업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과도한 일로 지치고 심리적 정서는 불안증으로 시달린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 평가받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관과 부합하지 않는 직업이나 지위도 남들에게 우월하게 보일 수 있다면 악착같이 추구한다. 그러나 소수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직업이나 지위를 얻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높이 평가하여 경쟁률이 치열한 대기업에 입사하려는 시도가 실패했을 때 자신의 우월감에서 열등감으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한편 대기업에 들어간 소수의 사람들의 기쁨은 잠깐이며, 또 다른 극심한 업무에 시달린다. 그들은 주어진 일에 남들보다 탁월한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입사시험 통과 이상의 정신노동을 해야 한다. 이러한 직장에서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노자는 자신에게 부합하지 않는 지위를 얻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압박하여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말라고 했다. 즉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겨야하지만 자신을 과도하게 평가하고 높이지는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멋진 외모를 행복의 조건인 냥 성형이나 값비싼 물건으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높이려고 한다. 사람들은 홈쇼핑 중독 증상을 보일 정도로 소비에 열중하고 값비싼 물건을 구입하여 주위사람들에게 뽐내면서 행복을 느낄 만큼 사람들은 ‘물질적 안락’을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필수품이 아닌 값비싼 ‘뽐내기 위한 물건’들을 사들이고 소비한다. 물론 이러한 소비문화에는 자신의 존재를 대중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인간의 나약한 자존감이 깔려있다.

넷째, 마음의 병은 누군가가 우리의 삶의 짐을 떠맡아주기를 바라는 게으르고 불성실한 마음에서 올 수도 있고, 우리가 노력한 것보다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에서 올 수 있다.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서 편법을 이용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노자는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처럼 작은 것에서 생기며, 구층이나 되는 누대도 한 삼태기 흙에서 쌓여진다”고 말했다. 이것은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할 때 편법을 이용하지 말고 완성단계까지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떳떳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근거 없이 행동하면 흉해진다”고 했다. 이러한 마음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마음모양새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다가 자기 힘으로 부족할 때, 다른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노자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지모와 가식적인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을 끊어야하며, 교활하고 이득을 챙기는 것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섯째, 마음의 병은 다른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손해를 당했을 때 심각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서 올 수 있다. 무엇보다 소유하고 싶은 것 즉 물질, 명예 등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때 마음의 시름은 깊어지고, 고통스러워진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천하유도, 각주마이분, 천하무도, 융마생어교,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화막대어불지족, 구막대어욕득, 고지족지족, 상족의.(노자 46장)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향해 증오와 분노 등의 감정을 분출하고, 자신을 원망하는 자기비하, 자학, 자기상실, 자포자기 등 비정상적인 감정을 분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마음의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탐욕을 주의하며, 無欲, 知足, 知止할 것을 각성시켰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득여망숙병.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시고심애필대비, 다장필후망,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노자 44장)

인간의 과도한 욕망은 어느 정도 소유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또 다른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의 소유욕은 다른 사람들의 소유물과 자신의 소유물을 비교하여 추구하다보니 만족할 수가 없다. 소유욕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경쟁의식, 우월의식, 지배의식 등이 배후에 깔려있다. 이러한 강력한 의식은 다른 사람들과 다툼을 유발하게 되고, 불화와 갈등을 낳게 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자신의 마음도 노이로제(신경증)와 스트레스 등 각종 마음의 병(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노자는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을 동반하여 생명의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노자는 “강폭한 사람은 제명에 죽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人之所惡, 唯孤, 寡, 不穀, 而王公以爲稱.
인지소악, 유고, 과, 불곡, 이왕공이위칭.
故物, 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人之所敎, 我亦敎之.
고물, 혹손지이익, 혹익지이손. 인지소교, 아역교지.
强梁者, 不得其死, 吾將以爲敎父.
강량자, 불득기사, 오장이위교부.(노자 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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