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강원대 윤금자 교수의 “노자의 무위 자연적 마음치유 연구”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0<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by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노자 16장)

노자 16장은 歸根과 復命 그리고 虛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귀근’은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것이고,  ‘복명’은  도의 자연스런 운행을 따르는 것이며, ‘허정’은 근원적인  본연의 자연성이 드러난 맑고 고요한 상태이다.

虛를 극에 이르게 하고 靜을 돈독히 지켜서 만물이 왕성하게 자라는데, 나는 순환하는 도리를 볼 수 있다. 온갖 사물과 사건이 많고 어지럽게 변화하지만, 결국 각각은 그들의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하고 (靜), 고요함 (靜)은 본원으로 돌아가 본성을 회복한 것이다.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항상됨(常)이라고 한다. 항상됨(常)을 아는 것을 밝다(明)이라고 한다. 항상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근거없이 행동하면 흉해진다.

만물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돌아가는 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바로 허정의 상태가 本無, 즉 근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歸根曰靜’ 이란 만물의 생성 변화는 끊임없이 순환 운동하다가 극에 다다르면 다시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곧 靜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復命’ 즉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도의 자연스러운 운행을 따르는 것이다. 노자는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常’ 이라고 하였는데, 항상성은 자연의 순환반복의 필연적인 이치이다. 순환반복은 곧 운동성을 뜻하기 때문에 ‘常’ 은 ‘變’을 내포한 ‘常’이다. 만물을 포용하고, 만물과 통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 항상성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영원성이며, 영원성은 변화를  내포한다. 노자는 변화속에 지속되는 항상성 (常)을 아는 것 즉 ‘항상됨을 밝게 알고 따르는 것(知常曰明)을 ‘習常’ 이라고 했다.

모든 만물이 도에서 나왔기 때문에 만물은 도와 덕으로 복귀해야 한다. 이러한 복귀는 어떤 외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고, 본래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道 法 自 法’ 을 의미한다. 만물이 ‘귀근복명’의 원리를 따를 때 본래의 고유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귀근복명’의 원리를 벗어날 때 인위적인 작위를 일삼게 된다. 복귀를 인간에게 한정하여 본다면 근원으로 복귀하는 길은 허정심에서 비롯된다. 즉 복귀란 허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이 근원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에 존재적 욕구나 집착으로 꽉 채워져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
(노자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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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9<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by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치허극 (致虛極) 수정독 (守靜篤)

사람들의 마음은 늘 불안정하고 복잡한 것들이 쌓여있다. 사람들은 감각적 대상에 얽메여 끊임없이 물질을 추구하려는 과도한 욕구는 충족될 수 없기에 불만족 속에서 불평하게 된다. 사람들은  인생의 충족감과 행복감을 다른 사람들 것과 비교를 통해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하려는 차별상에 사로잡혀 있어 온전한 행복감을 맛보지 못한다. 또한 그동안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다가도 남들이 더 많이 소유하거나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갈 때마다 그동안의 행복은 한순간 불행으로 바뀌기도 한다. 즉 마음은 불안, 초조, 우울, 좌절, 실망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불행감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불안정하고 복잡한 마음으로부터 허정심을 회복하려면 마음속에 쌓여있는 인위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여 마음을 비워야 한다. ‘비워감’은 과도한 욕망과 상대적.분열적 질곡에 빠져있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비워감’, ‘극기’의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위도’ 공부는 우리의 마음을 비워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허정은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노자는 ‘치허극’, ‘수정독’의 방법을 제시했다. 마음의 허상을 비우는 과정은 “치허극’, ‘수정독’의 상태에 이르는 과정이다. 허정의 근저에는 도(자연)가 있다. 외적 사물을 대상화하여 분별하고 계산하고 집착하면서 외적 세계에 매몰된 사람들의 자연성을 찾기위한 방법이 바로 ‘치허극’, ‘수정독’이다. 허정한 마음은 탐욕이나 편견이 없는 상태이며, 사물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마음이다. 즉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분별지로부터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세계를 하나로 신비롭게 결합할 수 잇는 직관의 세계,明의 세계에 이르게 해주는 마음이다.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외적 사물현상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이러한 자연을 대상화 하고 왜곡하지 않을때 천지의 도를 밝힐 수 있다.

허정과 복귀는 도의 뿌리 즉 마음의 본래상태인 맑은 근원으로 가는 길이다. 인간이 근원으로 돌아감으로 정신적인 새로운 생명을 전개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만물의 관점을 자연에 내어 맡김으로서 생명을 얻게 된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노자 33장)

허정심은 맑고 고요한 인간 본래의 자연성이다. 허정심은 수양을 통해 외적 사물이나 사건에 복잡하게 얽매여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마음으로 부터 벗어나 도의 근원에 되돌아가서 도와 합일한 상태의 마음이다. 이러한 본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근원적인 인식에 이르는 길은 “虛를 극치에 이르게 하고,靜(고요함)을 돈독히 지켜서, 만물이 왕성하게 자라는데, 나는 비로소 순환의 도리를 볼 수 있다 는 ‘치허극 수정독 (致虛極, 守靜篤)’ 이다. ‘치허극’, ‘수정독’은 수양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고착되어 있는 과도한 욕구의 집착과 분별지에 따른 선입견에서 벗어나 맑은 거울에 비유되는 허정심 (맑고 고요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상유욕’에서 ‘상무욕’의 상태로 향하는 위도(爲道)의 과정이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노자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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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8<강원대, 윤금자 교수>

(@ Athens, Greece. Photo by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滌除玄覽 (척제현람)이란 노자의 도덕경 10장에 나오는 말이다. “노자”에서 도를 체득하는 수양론은 타고난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현묘한 거울의 때를 깨끗이 닦아내어 흠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노자는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였고, 마음의 거울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칠 수 있도록 마음에 쌓인 혼탁한 것을 깨끗이 비우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滌除’란 씻어 내는 것이다. 즉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玄覽'(본래의 밝은 마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묘한 거울(현람)’은 자연 (도)의 원리를 비출 수 있는 거울처럼 맑고 깨끗함을 비유한 것이다. 척제현람은 세속적인 탐욕과 분별하는 마음을 다 비우고 맑고 고요한 허정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허정심은 안정된 마음으로 정감이나 욕망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물의 이치를 직관을 통해 통찰할 수 있는 경지이다. 노자는 마음에 숨겨진 밝은 지혜를 관조하는 내적인 직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是以聖人, 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시이성인, 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 (노자 47장)

인식활동에서 사사로운 편견으로 사물을 왜곡되게 보는 장애를 극복하고 직관을 통해 지혜의 빛으로 사물의 이치를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52장)

이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내부에 있는 본연의 자연성에 의해 만물의 ‘있는 그 자체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현람은 인간의 현묘한 직관능력이며, 현람의 극치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과 주관적인 분별지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람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마음속의 탐욕과 잡념을 깨끗이 씻어내는 ‘척제’가 필수적이다. 왕필은 ‘玄’을 아득히 구분없는 상태 즉 사물 때문에 밝은 지혜(明)를 가리거나 자신의 신령한 성품에 흠을 내지 않도록 지극한 통찰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마음의 밝음을 가리는 인위적인 외적 사물들로 부터 깨끗한 마음에 흠을 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이다. 노자의 인식론적인 이론만을 축적하는 과정이 아니라 곧 실천의 과정이다. ‘明’은 도를 체득할 수 있는 경지의 앎이다. 이러한 경지의 앎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분별 무차별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게되고 모든 것을 품고 하나가 될 수 있는 ‘玄同’에 이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척제현람이다. 우리의 마음 안에 앎이 농축되어 무르익을 때, 인식론적인 깨달음에서 머물지 않고 도의 작용을 몸소 닮으려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노자의 “빛을 누그러뜨리고 속세와 어울린다”는 말처럼, 수양을 통해 얻어진 허정심의 상태에서 고상하게 혼자만의 정신세계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사람들에게 맑고 고요한 정신을 드러내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은 외적인 대상에 얽메여 있어 분별지로 판단하고 평가하며 그것이 마치 진리인 냥 생각하게 되는데, 분별지는 상대적인 진리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적인 진리는 우리 본연의 자연성의 무분별적인 작용으로 이룰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참 진리, 절대적 진리를 깨우치는 것은 맑게 비워진 본연의 자연성, 즉 맑은 마음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가능해진다. ‘척제현람’이란 우리 내면에 본래 있는 밝은 도를 관조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수양하는 것인데, 이러한 수양이 바로 ‘致虛極 守靜篤'(치허극 수정독)’의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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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6<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 에서 ‘無知’ 란 ‘明'(밝은 지혜)을 얻기 위해 ‘知不知’의 과정을 수행해야 얻을 수 있는 앎이다. 노자의 明은 인식론적 탐구와 함께 실천적 수양을 병행해야 얻을 수 있는 직관적 앎이다. ‘知不知’의 과정에서 분별지와 지모는 물론이고 탐욕을 제거하고 무위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明’, 즉 무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明’에 이르기 위해서는 ‘知不知’,’欲不欲’,’爲無爲’ 의 상호작용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명의 도는 인간이 개념화하여 이름을 붙여놓기 이전의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분별하는 우리의 지적능력을 초월한다. 노자의 인식과 진리는 차별을 거부하고 사물을 있는 그 자체로 깨닫는 것이다. “노자” 에서 존재의 인식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자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이 자연과 대립해서 자연에 인위적인 것을 부과하는 것을 철저히 반대한다.

노자의 인식론은 직관 (직관은 문자 그대로 의식이 그것의 대상과 직접 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직관은 추리적 앎과 대립된다. 직관적 앎은 의식과 그 의식의 인식 대상과의 사이에 아무런 매개없이 이루어지는 순간적으로 얻어지는 앎이다. 다시말해 지적인 작용이 없는 앎이다. 박이문의 노장사상 발췌) 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사물현상은 옳고 그름을 따져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직관이란 인식 주체와 대상 사이에 아무런 간격이 없는 상태에서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지적인 작용 없는 앎”(박이문, 노장사상) 이다.

노자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앎 즉 깨달음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다. 깨달음은 곧 의식 내부의 문제를 알고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깨달음에서 인간 관계나 복잡한 사건의 모든 현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된다.

깨달음이란 문제의 원인이 바로 우리 자신안에 있는 정신적 편견과 집착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편견과 집착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위를 주장했다. 무위란 인간이 도를 닮는 삶을 살기위해 따라야 할 행위의 원칙이다. 인간의 문제는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대상화 시켜 소유물로 보는 것에서 비롯된다. 대상화 작용에서 인간은 주체가 되고, 자연은 인간과 대립시켜 놓은 객체로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데카르트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표상하는 자아’라는 의미의 주체이다. 데카르트가 철학에서 도모한 것은 단지 사변적인 지식이 아니라 삶에 유용한 구체적인 지식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지식은 인간의 삶에 유용한 것이어야 하고, 삶의 유용한 지식은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다. 데카르트는 이런 지식을 개별적인 자연과학과 같은 실제적인 학문에서 발견한다. (데카르트, “방법 서설,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 이현복 옮김)

노자는 대상화된 사물을 도구로 보는 데에는 지적작용이 개입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지적 작용은 데카르트의 지식에서 볼 수 있듯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눈앞의 사물을 잘 알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이러한 의도된 목적을 위해 사물을 도구로 보는 태도를 철저히 반대했다. 노자는 인간의 근심과 고통은 ‘위학’의 과정에서 빚어진다고 보고 “배우기를 끊으면 근심이 없다”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何若. 人之所畏, 不可不畏.
절학무우. 유지여아, 상거기하. 선지여악, 상거하약. 인지소외, 불가불외.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亨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其未兆,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형태뢰, 여춘등대. 아독박혜기미조,
如孀兒之未孩. 내래兮若無所歸.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여상아지미해. 내래혜약무소귀.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아우인지심야재,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요兮若無止.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속인찰찰, 아독민민, 담혜기약해, 요혜약무지.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而貴食母.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이귀식모.(노자20장)

‘배우기를 끊어야 할 것(절학)’은 높임과 낮춤, 아름다움과 추악함 등과 같은 상대적인 가치판단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러한 가치판단은 사람들의 성향과 시대의 조류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것들로서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 노자는 상대적인 가치판단과 취향에 얽매여 감정이 좌우되거나 기교와 허세를 부려 사람의 이목을 끌려는 행동은 인간의 자연성을 해친다고 보았다. ‘위학’ 즉 분별지가 ‘근심거리’가 되는 이유는 외적 사물의 가치를 따져 집착하게 되고, 이것을 소유하기 위해 온갖 영악함과 현란한 말재주로 사람을 속이고 위선으로 신뢰를 가장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에 의하면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이나 사물을 소유 대상으로만 보게 되어 물욕에 가려진 내적인 인격성이 천박해진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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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5<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탐욕에는 분별지와 지모 그리고 작위가 내포되어 있고, 무욕에는 무위가 내포되어 있다. 도의 ‘질박함'(樸), ‘욕심내지 않음'(不欲), ‘고요함'(靜)은 자연 무위의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 통치자가 이기적인 탐욕으로 백성들을  수단으로  이용할 때 백성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교활한 꾀를 부리느라 통치자와 백성들은 상호 불신하게 되고 사회는 불안정하게 된다. 노자는 통치자가 이기적인 탐욕을 부리지 않고 순박하고 고요한 자연무위의 통치(無爲之治)를 행할 때 모두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보았다. 

道常無爲而無不爲.
도상무위이무불위.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무명지박, 부역장무욕,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노자 37장)

노자는 통치자의 無爲之治의 덕이 백성에게 온전히 혜택을 주기 때문에 통치자의 무욕, 무위의 중요성을 부각 시켰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오하이지기연재, 이차,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민다리기, 국가자혼,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인다기교, 기물자기, 법령자창, 도적다유,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노자 57장)

자연의 도를 인간이 깨달으면 인간 본연의 자연성은 스스로 자화할 수 있다. 자연의 도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인 제도와 예법 같은 외적인 강요와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연의 자연성이 내재한 내면의 세계를 돌이킬 때 가능하다.

노자는 통치자들이 탐욕을 줄이고 소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견소포박’을 제시했다.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차삼자 이위문불족. 고령유소속. 견소포박, 소사과욕. (노자 19장)

정치하는 사람이 총명재지와 말 재주를 버리면 백성의 행복과 이익은 백 배가 되고 정치하는 사람이 인과 의를 버리면 백성은 본래의 사랑과 효도로 돌아가게 된다. 정치하는 사람이 제도와 도구를 버리면 세상에 도둑과 범죄는 생기는 일이 없다. 위의 세 얘기로도 무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더 말을 붙이자면, 본 바탕을 나타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 사사로운 정을 억누르고 나를 위한 욕심을 적게하라.

노자는 聖智,仁義는 형식적인 文識일 뿐 실질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럴싸하게 꾸며진 문자화된 도덕규범이나 외적인 강제성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맑은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 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성 회복을 위하여 무욕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무욕의 방법으로 견소포박과 소사과욕의 소박한 생활태도를 습관화 해야 한다. 

견소포박(見素抱樸)이란 인위에 물들지 않은 소박하고 깨끗한 본연의 자연성으로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잘 다듬고 보유해야 할 마음의 모습이다. 탐욕은 마음에 근심과 불안으로 얼룩지게 하여 맑은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하는데 장애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소사과욕( 少私寡欲) 즉 외물에 대한 사사로운 욕심을 줄일때 ‘見素抱樸’ 즉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음이 사욕에 빠져있으면 마음 본 바탕은 탐욕의 그늘에 가려져서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낭비하고 사치하는 생활 습관은 끊임없이 욕심을 낳게 하여 순수한 자연성을 잃게 한다. 욕심은 검소한 생활 속에서 절제하면서 점차 줄어들게 된다. 탐욕의 끈질긴 사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맑은 본연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에 순응할 수 있다. 즉, 견소포박으로 본연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지켜 나갈 때 자연과 하나가 된 참된 마음의 회복, 즉 자연성을 회복하게 된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 ,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노자 28장)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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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3<강원대, 윤금자 교수>

(Total Solar Eclipse on Aug.21,2017: Photo from Google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V. 위도(爲道) : 허정(虛靜)한 마음 회복

I. 위도의 길 :무욕(無欲),무지(無知)

노자는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분별지의 문제를 무욕, 무지, 무위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노자의 수양론은  물질적인 탐욕과 감각적인 쾌락에 탐닉하여 본연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에게 참다운 삶을 찾게 해 주는 것이다. 참다운 삶을 위한 노자의 수양론은 ‘무위’의 실천으로 탐욕적, 쾌락적, 인위적으로 점철된 삶을 극복하고 인간의 내재적 ‘자연’ 본성을 회복하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道는 만물의 근원으로서 만물을 낳게 해주었지만 만물을 향해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간섭, 지배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수용하고 포용하면서 만물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고 보호해주는 ‘무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도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스스로 그러한’ 즉 자연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하였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노자25장)

도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본받아야 할 표준이다. 인간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궁극적 표준인 도가 항상 무위하다면, 인간이 행위규범도 무위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자”에서 ‘爲道’를 통해 무위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爲道’의 활동이란 곧 ‘욕불욕’, ‘학불학’, ‘위무위’ 를 말한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포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則無敗事.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노자 64장)

그러므로 무위는 무욕과 무지를 바탕으로 하여 도달하게 된다. 노자는 무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無知와 無欲을 제시하였다.

사람들에게 교활한 지식도 없게 하고 (無知) 탐욕도 없게 하여 (無欲), 교활하고 약삭 빠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헛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노자 3장 중에서)

여기서 ‘교활함과 약삭빠름’은 작위이다. ‘헛된 행위’는 인위, 작위적 행위를 뜻하며, 지식과 탐욕이 인간에게 작위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무지’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계략을 짜내는 것과 같은 행위, 즉 지모가 없는 ‘순수한 본연의 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본연의 맑은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지’하고 ‘무욕’할 것을 권고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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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2<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당시에 강요되던 가혹한 예법의 역기능을 도가 상실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현상과 맞물린다고 지적했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정의 여러 예법 제도들이 복합적으로 관계를 맺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들이 아니라 강요되어진 왜곡된 것들이다. 순수한 예법제도가 아닌 통치자의 욕망에 부합되게 세분화된 것에 대해 노자는 다음의 비유를 들었다. “박이 흩어지면 형상이 있는 그릇이 되지만 , 성인이 그에따라 관장을 세운다. 그러므로 가장 잘 관리하는 사람은 분할하는 일이 없다.”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노자 28장)

성인은 박을 쪼개 그릇을 만들지만 박의 근본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욕망에 빠진 통치자는 박을 도외시하고 그릇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노자에 의하면 제후와 천자가 무명의 질박한 도를 지켜 무위정치를 한다면 사회와 인간의 마음을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해 줄 수 있다.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天地相合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천지상합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시제유명.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노자 32장)

노자는 사회에 만연한 인위와 조작 그리고 주례의 형식적인 허례의식을 부정하고 정치 현실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무위자연의 상도 ‘常道’ 를 제시했다. 모종삼은 “주나라 문화의 허위성에 비통함을 느껴 구제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라고 보았다. 당시의 군주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 시키기 위해 온갖 부조리와 전쟁을 일삼았으며, 빈번한 전쟁은 군주들의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강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노자는 당시의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사회 상황을 야기시킨  책임은 통치자에게 있다고 보았다. 노자가 당시의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그의 철학을 집약 시키고 전개시킨 이유는 통치자의 마음가짐과 행위에 따라 사람들과 사회상태의 안정성 여부가 결정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자 39장은 제후의 직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하고 있다. 즉 “제후와 천자는 ‘一’을 얻어서  천하의 수령이 된다. 

노자는 통치자의 직책을 ‘道’를 얻었다고 할 정도로 고귀한 것으로 보았다. 고귀한 직책을 청정하게 잘 수행하지 않으면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후는 귀한 직책을 맑고 겸손한 덕으로 지켜야 한다.  즉 제후는 내적인 수양을 통해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도와 덕의 겸손한 품성을 구현하여 마음을 조절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유위, 유사를 일삼는 후왕에게 도를 체득하여 무위유치(無爲而治)로 나아갈 수 있기를 권고했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녕, 신득일이령,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곡득일이영,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
其致之一也. 天無以淸, 將恐裂.
기치지일야. 천무이청, 장공렬.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곡무이영, 장공갈, 만물무이생, 장공멸.
侯王無以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是以後王, 自謂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시이후왕, 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사, 비호.
故致數譽無譽. 不欲록록如玉, 珞珞如石.
고치수예무예. 불욕록록여옥, 낙락여석. (노자 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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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1<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정치가 엄격하면 백성들이 교활해진다” 고 하여 엄격한 정치체제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예법의 금(禁)령(令)이나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금령이나 제도를 어기거나 교활하게 속여서 피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즉 지배 계층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교활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이용했고, 사람들은 지배계층의 수법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계책을 마련하였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노자 58장)

이와같이 지배계층이나 피지배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인위적인 조작’이 횡행하였다. 이러한 조작은 거짓을 낳고, 거짓은 사람들의 본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국가는 사람들의 교활한 방법을 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단속하기 위해 형벌과 명분을 내세워 상과 벌을 밝혀서 간사한 것과 거짓된 것을 검속하는데 세밀하고 자세하여 백성들의 마음속에 다투는 마음이 생기며 이러한 현상을 ‘백성들이 잗달다’라고 했다.

통치자의 임무는 도를 본받아 지배욕과 탐욕을 없애고 백성들을 보호하여,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노자34장)

그런데 통치자가 도를 본받지 않고 탐욕에 휩싸일 때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어 내게 된다. 사회제도가 인위적으로 세분화될 수록 도에서 멀어지고,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은 본연의 순박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부터 점점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부드럽고 유연한 본래의 마음이 가혹한 정치체제와 사회구조에 적응해 가면서 경직되어 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기적인 아집과 집착으로 채워지면서 경직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나 사태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없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나라 초기 예법의 본래 목적은 백성들의 행동을 규제하여 좋은 성품을 키우고, 법령을 정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본래의 바람직한 효용성에서 벗어난 예법은 자율적인 행위 원칙이 아니라 강요로 주어진 강압적인 구속력을 강조하여 오히려 정치가 불안정해지고, 백성들의 도덕성도 상실되어 갔다. 주나라 말기에 세분화된 예와 법은 겉보기에 공익을 위하는 듯 거창한 구호를 내세워 강행했지만 실상은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강화하는 폭정의 수단이었다. 부당한 예법으로 인해 사회의 총체적 위기 현상의 폐단에 대해 노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예(禮)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날로 엷어지는 (줄어드는 ) 것으로 혼란의 원인이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노자38장)

예(禮)는사람을 구속하는 인위적이고 번거로운 것으로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의 이용물이 되므로 허위로 가득 찬 사람들은 늘어나고, 충신은 점점 줄어들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노자는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통치자가 인위적(유위)이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 고 했다. 백성들에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인위적인 통치 방식은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통치에 효력이 없고, 어려움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인위를 지양하고 무위함으로서 백성들이 자생, 자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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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0<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3. 예법과 제도

노자에 의하면 사회의 예법이나 규범 그리고 통치자의 강압적 통솔 등 외적인 조건은 마음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춘추 전국시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여러 측면에서 큰 변혁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특히 농업 생산량의 증대와 토지 소유제의 변동은 경제와 사회구조 그리고 신분 계급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정전제가 붕괴되면서 제후들은 많은 사(私)전(田)을 소유하면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 시기에 제후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데 있어 기반이 되는 것은 토지와 그곳에 거주하는 백성들이었다. 제후들의 토지 쟁탈전과 국가 간의 전쟁 등으로 인해 사회현상은 극도로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부당한 수법을 저지르고 전쟁을 일삼았다. 백성들의 삶은 과도한 세금과 노역 그리고 병역으로 비참한 상황이었다. “노자” 에는 당시의 혼란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내용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대가 지나간 곳마다 가시넝쿨이 가득 자란다. 큰 전쟁을 치른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들것이다.”

大軍之後, 必有凶年(노자30장)

“천하에 도가 있으면 싸움터를 달리는 말을 물리쳐 농사를 짓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군마가 국경에서 태어난다. ”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노자 46장)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그의 윗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위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다스리기 때문이다. 백성이 죽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윗사람들이 더욱 넉넉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노자 75장)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떻게 죽음으로 두렵게 하겠는가?”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노자74장)
지도자들은 부당한 수법으로 부를 축적하여 화려한 생활을 하였고, 국가 간의 전쟁으로 소모된 경제력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가하였다. 과중한 세금과 노역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는 백성들은 삶을 포기하는 생명경시 현상까지 나타났다.
노자는 이러한 시대 상황을 자연 (도)의 현상과 대비되는 것으로 보았다.자연 (도)의 현상은 여유 있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균형과 조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는 권력이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약자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부를 더욱 축적한다.
그러므로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빈부는 대를 물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공자는 주나라 초기의 주(周)례(禮)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공자는 주례와 봉건제도의 회복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이루려고 했다. 반면에 노자는 자연에 역행하는 주나라 말기의 사회현상과 봉건제와 종법제 그리고 예법 제도에 대해 강렬히 비판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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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9<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 29장에서 사물은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노자는 말했다.

“將欲取天下,而爲之者(장욕취천하, 이위지자), 吾見其不得已(오견기불득기),
天下神器(천하신기), 不可爲也(불가위야), 爲者敗之(위자패지), 執者失之(집자실지),
凡物(범물),  或行或隨(혹행혹수), 或噓或吹(혹허혹취),
或强或羸(혹강혹리), 或挫或隳(혹좌혹휴),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거심,거사,거태)

세상을 장악하여 다스려 보려 하여도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은 신비로운 것이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다.
잘 해보려고 해도 실패하게 되고 잡으려고 하면 놓치게 되고, 스스로 앞서가는 것도 있고 뒤만 따라가는 것도 있다.
숨을 내쉬기도 하고 들이쉬기도 하며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으며 위에 얹히는 것도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있다.
그런고로, 성인은 지나친 것을 버리고 사치를 버리고 교만함과 태만함을 버린다.(노자 29장)
그러나 분별지는 사물의 대상화된 부분만을 보고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것을 보지 못한다. 즉 사람들과 사물에 인위적인 가치를 부여함으로 그것을 대상화, 등급화, 차별화시켜 고정된 대립물로 본다. 그러나 사물은 대립의 상황에서 순차적으로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이다. 사물은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하면서 자연스러운 변화 가운데 존재한다. 즉, “화는 복이 의지해 있다.”고 했듯이, 화와 복은 서로 의지하여 생겨나는 순환의 이치를 알아야 우리가 사물을 관찰할 때 겉과 속 전체를 투사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태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상황속에서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준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노자 58장)

노자에 의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도덕적 가치는 특수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분별지이며 상대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仁義禮智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대도폐,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노자 18장)

그런데 통치자들은 인의예지가 절대적인 도덕규범 인것처럼 현실정치에서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허위의식이 생겨나서 작위를 삼게되며 세상은 더욱 혼란스럽게 된다. 분별지 (智)와 욕심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이 智謀를 이용하여 재물이나 권력을 얻으려고 다투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聖智,仁義, 巧利는 모두 인위적인 꾸밈으로 인간에게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끊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차삼자 이위문불족. 고령유소속. 견소포박, 소사과욕.(노자 19장)

유학에서 중시하는 예악제도는 ‘文’에 속한다. ‘文’은 ‘꾸민다’는 뜻으로 허위, 인위를 내포하기에 노자가 말하는 ‘質’과 대비된다.  노자는 꾸미는 것은 인성의 자연스러움을 속박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聖智’ 의 ‘智’ 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꾀를 부려 상황에 대처하는 智謀, 巧智, 才智 를 뜻한다. 이러한 ‘智’ 는 외적사물을 차별하고 규정하여 한쪽으로 편향된 상대적인 분별지이다. 분별지는 감각기돤으로 받아들인 외부사물을 좋고 싫음으로 가치를 차별하고 규정하여 좋은 것에 집착하여 마음에 욕심을 품게한다. 분별지에 따른 욕심은 외물에 집착할 뿐만 아니라 智謀를 꾀하여 거짓과 모략으로 사람들을 속여 부당하게 재물을 빼앗으려는 욕망으로 점점 도와 덕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노자에 의하면 도와 덕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럽게 되어 근심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라고 하였다. 모종삼은 “노자” 제 19장의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와 제 20장의”絶學無憂”를 일컬어 “四絶”이라고 하며, 이것은 도가의 정신이라고 보았다.

노자에서 ‘성지’, ‘인의’, ‘교리’, ‘학’ 등은 인간을 구속하는 인위적인 것들이다. 인간은 이러한 인위적인 것으로 부터 벗어나야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하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노자는 수양을 통해 마음에 채워져있는 욕망을 씻어내고 마음을 맑게 한다면 도의 이치를 관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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