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강원대 윤금자 교수의 “노자의 무위 자연적 마음치유 연구”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7<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노자 40장 중에서)

“천하의  온갖 사물과 사건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이것은 “이름 붙일 수없는 것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에서 볼 수 있듯이, 도는 잠재력을 갖춘 무형질(無刑質)에서 형질을 갖춘 만물로 구체화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노자 1장)

노자에 의하면 사물은 모두 상반 상성작용에 의해 형성된다. 사물의 움직임과 변화에는 反의 법칙이 있으며 움직임과 변화의 귀결점은 원래의 상태로 복귀하는 규칙성을 나타낸다. 만물의 규칙성은 무에 근거를 둔다. 만물의 규칙성을 이루는 무는 관통성을 지니고 있다. 왕필은 “움직임의 근본이 무에 있는 것을 알면 사물은 포용하면서 통할 수 있다. “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면'(無) 어느 누구도 길이 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有)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렵다. ” 고 하였다. 탐욕과 의도된 목적으로 허위와 인위가 난무한 세상에서 무지 무욕으로 마음을 비우면 도 (무)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이러한 무의 통성은 무의 ‘비어있음(虛性)’의 쓰임의 역할을 말해준다. 노자는 허성의 쓰임을  풀무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즉 “하늘과 땅 사이가 어찌 풀무와 같지 않은가? 텅 비어 있지만 다함이 없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치지 않는다.” 천지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모이지만 수레바퀴통 중간이 비어 있어야 수레로서 쓰임이 있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노자 5장)

수레는 바퀴통 중간에 수레의 축이 비어 있는 곳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무는 유를 움직이는 것을 함의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무성은 근원성, 규칙성, 관통성, 허성으로 만물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준다. 무성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무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자연의 균형을 이루게 해준다. 노자는 이러한 무의 움직임을 본 받아 인간이 자연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무가 바로’무의’의 속성이다. “노자”에서 무위는 정치 활동과 인간 행위의 실천 원칙이다. “노자에서 ‘무위’가 언급되는 열 개의 장 가운데 아홉 개의 장은 성인과 무위 정치와 관련되어 있고 사회의 이상적인 관리방식에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무위가 성인만을 위한 행위의 원칙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무위는 도를 체득하는 ‘爲道’ 의 길이다. ‘위학’은 세속적인 분별지와 사회제도 그리고 예악 등을 삶의 방편으로 쌓아가는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위학’은 지모와 기교에 얽혀 마음의 혼란을 가중시키므로 ‘위학’으로 부터 벗어나 본래의 자연성을 찾고 깨달을 수 있는 ‘위도’의 길로 나아가면 마음을 맑고 고요한 (虛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도의 무위는 형질이 없어 어느 곳이나 들어가서 적응할 뿐만아니라 유익한 작용을 한다. 강한 것을 부드럽게 해 주고 사회적인 충돌상태로 인한 갈등을 해소시켜준다.

무위의 목적은 자연의 질서를 사회에 적용시켜 갈등과 화해와 조화로 바꾸는 데 있다. 그러므로 삶에 있어 실패하거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을 미연에 예방하는 것도 무위의 지혜이다. 일이 시작될 때부터 성실과 진실로 일관하여 禍를 예방하고, 일의 과정마다 자연에 위배되는 인위적인 것이 있는지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다. 즉 무위는 그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무위를 실천하고, 요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을 하며, 청정 담백하고 맛이 없는 것으로 말을 삼는다. 큰 것은 작은 것에서 생겨나고, 많은 것은 적은 것에서 일어나며,(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노자 63장)

** 현 한국이나 미국등 세계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탐욕을 가지면 서른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맛물려 잘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됨을 보여준다. 즉 가운데가 그들의 탐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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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6<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무위(無爲)에 따르는 삶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위는 사람들에게 인위. 작위적 비 본연의 삶의 구속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뿐만아니라, 꾸밈없는 소박한 도를 닮아가는 진실한 행위로 삶을 형성하게 된다. 만물이 스스로 생성하여 각각의 고유한 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도의 ‘무불위’ 작용에 의해서이다. 즉 도는 무위자연의 방식으로 만물이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변화하게 한다.

“노자”에서 무위는 도의 속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직.간접으로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무위는 도의 운동방식이며,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움을 나타낸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무욕(無欲)’, ‘무쟁(無爭)’, ‘무사(無事)’,’불거공(不居功)’, ‘불특강(不特强)’, ‘불상무(不尙武)’, 불현요(不炫燿)’ 등 과 같이 일련의 반세속. 반관례적인 방법과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무위는 자연과의 조화를 의미한다면, 인위는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위해 상황에 맞추어 유리하게 꾸미는 것을 말한다. “노자”에서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태도를 통하여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인위를 살펴볼  수 있다. 노자는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통치자가 지모를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다. “고 말했다.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지다,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고이지치국, 국지적, 불이지치국, 국지복,
知此兩者亦稽式, 常知稽式, 是謂元德,
지차양자역계식, 상지계식, 시위원덕,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원덕심의원의, 여물반의, 연후내지대순 (노자 65장)

‘인위’는 다스리는 사람이 백성들에게 술수를 써서 착취하거나 억압하는 등 함부로 행하여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통치를 하는 것이다. 통치자의 다스림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노자는 “꾀(才智)를 써서 나라를 다스리는것은 나라의 재화라고 했다. 즉 통치자가 ‘꾀(인위)’로서 다스리면 백성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지다(智多)는 잔꾀와 속임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위의 두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인위는 또 다른 인위를 낳는다. 통치자의 인위는 백성들에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꾀를 강구하게 하여 본연의 순박성은 점점 세속화되면서 인성과 사회분위기는 도에서 멀어지게 된다. 통치자는 백성들의 잔꾀로 인해 더욱 강압적인 제도를 만들어 명령하고 백성들은 통치자를 불신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는 인간 소외현상이 나타난다. 인위는 곧 인간의 마음을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도는 “무위하지만 그에 의하여 되지 않는 것이 없다” 고 했듯이, 도의 무위는 도 본연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무위가 오묘한 작용과 무한한 힘을 갖는 것은 도의 근원성에 있다. 즉 “천하의 온갖 사물과 사건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반자, 도지동, 약자, 도지용.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노자 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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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5<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무위(無爲)에 따르는 삶

노자는 인간의 고통이 자연을 대상화시켜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는 탐욕과 이러한 탐욕을 보다 적중하게 추구하기 위해 지모(智謀)를 쓰는 지적인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탐욕과 지모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회를 질서지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는 오히려 사람들의 교활한 수법을 더욱 가중시켜놓았다고 보았다. 노자는 탐욕, 지모, 제도 등 인위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무위를 제시했다. 무위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인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천 원칙이다.

“노자”에서 무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위는 인위의 반대, 부정이다. 즉 인위가 없는 자연의 상태를 말한다. 무위의 반대되는 인위란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있는 것’을 ‘그 자체로 놔두지 않고’ ‘꾸미고 가미한 것’을 말한다. 자연적인 것을 부자연스럽게 해 놓은 것을 말한다. 무위가 자연스러운 행위인 반면, 인위는 부자유스러운 행위이다. 유가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이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유가는 인의예지의 행동 규범을 제정하여 인간에게 그것에 따르도록 요구한다. 노자는 이러한 제도적인 조건에 인간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으로서 무위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노자는 인간을 자연적 존재로 보았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무위자연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자연을 욕망을 채우기위한 수단으로 보고, 끊임없이 자연을 대상화 시킨다. 인간의 문화적 생활과 지식추구 그리고 사물의 대상화는 인위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보다 편리한 문화생활을 위하여 자연물을 인간의 편의에 알맞게 대상화시킨다. 인간의 의도적인 활동으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다. 인간의 의도적이며 인위적인 활동에는 필수적으로 지적인 활동이 따른다. 전문적인 지식은 자연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욱 세분화되어 간다.

노자는 도(자연)의 무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조작하는 인위를 경계시켰다.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으로 가장 단단한 것을 뚫고 드나들며, 무형의 힘은 틈이 없는 것을 뚫을 수 있으니, 나는 이 때문에 무위의 유익한 점을 안다.” 고 말했다.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無間.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 무유입무간.
吾是以知無爲之有益.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오시이지무위지유익. 불언지교, 무위지익, 천하희급지.(노자 43장)

물의 유연함은 도의 무위를 가리키고, 단단한 것은 인위를 가리킨다. 인위적인 일들은 대개 탐욕에 의해 시작된다. 노자는 사람들에게 물질이나 명예를 과도하게 추구하면, 이기적인 탐심이 극도에 달해 다른 사람들의 원망을 사게 되어 사람도 물질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持而盈之,不如其已,揣而銳之,不可長保,金玉滿堂,莫之能守,富貴而驕,自遺其咎,功成名,遂身退,天之道.(노자 9장)

**편집자 주: 세상에 태어나 공명을 얻으면 자신이 가진 지위나 권력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려는 마음과 자세가 곧 하늘의 도를 따르는 순리인 것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노자의 이런 철학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자족” 하는 마음을 갖고 탐심을 버려 조그만 것에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면 살아가는데 무리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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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4<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그리스 산토리니 오이아에서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예리한 것을 무디게 하고, 그의 얽힌 것을 풀어내며, 그의 빛을 함축하고, 그가 몸 담고 있는 속세와  어울리면 이를 현동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다면 친할 것(가까이 할 것)도 소원할 것(소외시킬 것)도 없고, 이롭게 할 것도 해롭게 할 것도 없으며, 귀할 것도 없고, 천할 것도 없으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하게 된다.

마음의 날카로움과 얽힘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을 유발하여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가 만물의 근원인 도를 체득하려면 우선 자기 마음의 날카로움과 얽힘의 원인을 자각하고 해결해야 한다. 도의 체득은 우선 개인의 수양을 통해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른 사람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범위로 확대될 수 있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자손이제사불철,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수지어신, 기덕내진, 수지어가, 기덕내여, 수지어향, 기덕내장,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수지어국, 기덕내풍,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오하이지천하연재, 이차.(노자 49장)

우리가 마음의 날카로움을 둥글게 다듬고, 얽힘(분쟁)을 차분하게 해결하여 편협한 인간관계의 제한을 뛰어넘을 때 현명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현명에 도달한 현덕을 갖춘 사람은 현동 즉 도의 최고 경지에 이르게 된다. 성인이 모든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해주는 후덕한 포용력은 ‘현동과 同其塵’ 관계의 의미를 잘 나타내준다. 현동은 모든 사람과 사물을 친함과 소원함, 이로움과 해로움, 귀한 것과 천한 것으로 구분하지 않고 현묘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 모든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수용하고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도를 지닌 사람(성인)이 만물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며, 사물을 사물답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27장)

 현덕을 갖춘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인품(빛)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그 光(눈부심)을 조화시킨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노자 58장)

그 光(눈부심)을 조화시킨다(和其光)’에서 알 수 있듯이 明은 光과는 다른 차원의 지혜이다. 明은 ‘지혜로울지라도 남에게 눈부시게 비추지 않는다,’ 즉 도를 깨우친 사람은 자신의 고결한 인품 (빛)을 사람과 사물에게 부드럽게 내비치면서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며 조화롭게 상생한다. 노자는 도를 지닌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하였다.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집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낙여이, 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노자 35장)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는 평온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안과 행복을 주는 것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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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3<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치허, 수정은 노자 수양론의 핵심이다. 노자의 수양론은 허정의 인식론과 무위의 실전론이 중심역할을 한다. 무위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비중'(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치허극, 수정독’은 치허와 수정의 노력을 지극한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는 뜻이다. 마음을 비우고 고요한 경지에 이를 수 있기 위해서는 욕심으로 인한 마음의 동요를 제어하여 그것들이 나의 본심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치허극, 수정독의 경지에서 사물의 참된 형상을 인식할 수 있다. 노자는 이러한 직관능력을 “明)이라고 했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지인자지, 자지자명.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부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노자 33장)

인식활동에서 방해요소는 외적인 것의 집착이다. 외적인 정욕의 활동은 유혹을 받으면 더욱 빈번하게 되고, 외적인 것을 쫓다보면 밖에 것은 볼 수 있지만 우리 내면을 볼 수 없게 된다. 근원적인 것은 우리의 내면에 있다. 모든 존재는 무위의 자연스러움을 내재하고 있는데, 明으로 사물들의 저연적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 明이란 우리의 내면에 본래있는 밝은 지혜이다. “노자” 제 52장에서 “지혜의 빛을 운용하여 다시 밝은 그의 본성을 돌이킨다(비춘다) 라고 밝힌 明 은 개인적인 수양을 통해 내면세계를 성찰하여 자신의 내면에 본래있는 지혜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외적인 유혹을 물리치는 밝은 지혜이다. 외적인 유혹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면 외적으로 흩어졌던 정신이 내재된 지혜의 빛으로 본성을 돌이키게된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 (노자 52장)

사람들은 복잡한 현실 속에서 물밀 듯 다가오는 외적 사건과 사물에 얽메일 수 밖에 없는 마음을 어떻게 맑고 고요하게 할 수 있을까? 한가지 방법은 관조觀照(Contemplation) 를 통해서이다.

라하브 (Ran Lahav)는 觀照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적 태도로 보았다. 관조란 우리의 평상시 사유 양식과 반응 양식을 밀어내고, 우리 내면의 본래 자아와 마주하는 것이다. 관조는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나의 이해가 우리 안으로 들어와 맑고 고요한 빈터, 즉 노자의 자연성과 같은 것을 열 수 있게 한다. 이때 나의 모습 그대로의 느낌과 반응을 관조할 수 있다. (“A course on philosophical practice and  trans- sophia.” Lesson11 : Contemplative philo-sophy 참조)

사람들의 마음은 감각기관을 통해 발현되는 자극적인 욕구로 인해 외적인 것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노자는 상실된 자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물질적 욕심과 정신을 내팽개치는듯한 자극적이고 향략적인 유희 등 비 본질적인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구멍을 막고 그의 문을 막으면 종신토록 수고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구멍을 열고 그의 일거리를 늘어가게되면 종신토록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 고 했다.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여기서 ‘막고 닫는 것 (塞其兌, 閉其門)은 허정에 이르는 기초단계이다.  ‘구멍(兌)’ 은 감각기관으로부터 발현되는 자극적인 욕구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욕구를 인위적으로 채워가는 과정에서 자연성을 잃게된다. 그러므로 감각기관으로부터 자극하는 외적 유혹을 끊고, 지각활동을 거쳐 얻은 경험적 이식을 근절해야 한다. 감각적인 욕구와 경험적 지식을 제거하여 인위의 구속에서 풀려나는 일이 “새기태”폐기문’의 기본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지자불언, 언자부지, 색기태, 폐기문, 좌기예, 해기분,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疎,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고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불가득이리, 불가득이해,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불가득이귀, 불가득이천, 고위천하귀.(노자 56장)

예리한 것을 무디게 하고, 그의 얽힌 것을 풀어내며, 그의 빛을 함축하고, 그가 몸담고 있는 속세와 어울리면 이를 현동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다면 친할 것(가까이 할 것)도 소원할 것(소외시킬 것)도 없고, 이롭게 할 것도 해롭게 할 것도 없으며, 귀할 것도 없고, 천할 것도 없으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하게 된다.

수양의 기초단계인 ‘塞兌 閉門’ 을 걸쳐 깊이있게 도를 체득할 수 있는 ‘挫銳解紛’과 ‘和光同塵’ 의 단계에 이른다. 깊이있게 도를 체득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어 내면의 자연성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왕필은 이것에 대해 “질박함을 간직한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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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2<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道家 에서는 내 마음이 외적인 것에 얽매여 ‘내 마음 안에 내 마음을’ 둘 곳이 없는 속박되어 있는 마음을 안정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인간의 문제를 해결 하려고 했다. 마음이 복잡하면 어떠한 것도 마음에 담을 수도 없고, 감흥도 없다. 눈 앞에 눈 덮인 히말라야의 멋진 광경도 그저 생명감이 없는 단순한 산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이 고요해야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마음에 우주가 담긴다.

虛靜은 노장과 순자의 수양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다. 장자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無有相害之心( 서로를 해치려는 마음 따위는 지니지 않고 있었다.),  機心, 日以心鬪,滑心 이라고 했다.  장자에 의하면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모습은 주관적인 판단으로 외적사물에 집착하게되고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다투는 과정속에서 마음은 근심으로 불안정하게 된다. “장자” 에서 본심, 허심, 무심, 성인지심 은 인간이 본받아야 할 道心이다.  장자는 마음 회복을 위해 心齋,坐忘 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장자는 心齋,坐忘의 수양을 통하여 도와 합일하는 경지에 이른다고 보았다.

모종삼은 “순자”虛壹而靜”은 도가에 근거해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의 인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늘 외물에 의해 쉽게 흔들리는 불안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외물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안전성을 확보해야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성인은 마음이 大淸明의 상태에 도달한 사람이다. 대청명이란 마음이 외물에 가로막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도의 체득을 위한 수양방법으로 허일이정을 강조했다. 인간은 마음에 가려진 것으로 부터 벗어나야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순자에 의하면 우리들의 마음에는 삶의 체험, 기억, 지식 등 여러가지가 쌓여있다.이러한 것들은 삶의 현장에서 문제에 봉착했을때 기존의 생각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새로운 사실이나 지식을 제대로 인식하고 수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순자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虛이다.

살아가면서 쌓이게 되는 성은 蔵 은 虛를 통해 조절된다. 순자는 마음에 담겨진 기존의 기억, 생각, 지식등을 간직하면서도 현재 생활 속에서 새롭게 받아들인 것을 마음에서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이것을 ‘壹’로 설명하고 있다.

순자에 의하면 마음이 다양하게 받아들인 인식을 구별하면서도 그것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효과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순자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인식을 壹로 묶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靜’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된 앎에 방해가 되는 망상이나 잡념을 비우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 ‘靜’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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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1<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by Dr. Yoon, Geum Ja)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爲道’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허(虛)정(靜)을 제시했다. ‘爲道’는 마음을 비움으로 부터 시작된다. ‘虛’는  마음이 깨끗하게 비운 상태를 의미하고, ‘靜’은 마음이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를 의미한다. 허정은 도와 덕의 성품이다. 도와 덕을 품수 받은 인간의 마음은 본래 맑게 비어있고, 고요하여 안정된 상태였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감각으로부터 받아들인 외적인 명예, 재물 등의 과도한 욕심과 사회제도와 권력에 의한 간섭 그리고 분별지에 따른 주관적 판단과 집착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불안해졌다.

노자가 “대덕을 가진 사람의 동작은 오로지 도에 따른다” 고 말했듯이, 자연 (道)의 순리를 아는 덕을 지닌 사람은 도에 알맞고 부합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인간이 도에서 멀어질수록 소유하고 분별하는 과정에서 물질적인 풍요는 누릴 수 잇을 지 모르나 삶은 고단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 불안정한 인간의 마음은 허정으로 다듬을 수 있는데 허정이란 인간이 자연 (도)을 삶을 살기위해 회복해야 할 인간 본연의 마음 모습 (상태)이다.

虛란 ‘빔’, 깨끗하게 비어있는 상태이다. “노자”에서 허의 의미는 단순히 비어있어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맑고 깨끗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虛”란 맑고 깨끗하게 비어 있지만 무한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어 만물을 생성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녔다. 이러한 虛의 상태는 도와 덕을 닮은 모습이다. 노자는 ‘虛’의 오묘한 작용을 신묘한 골짜기에 비유해서 “谷神은 죽지않고 영원하다. 이를 ‘玄牝’ 이라 일컫는다” 고 했다. 여기에서 谷神 은 도체의 텅 빈 (虛)의 상태를 비유하며, 玄牝은 도의 오묘한 작용을 비유한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노자 6장)

노자는 골짜기를 통해 모든 것을 수용하는 포용력과 드러내지 않은 겸허함 그리고 무한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골짜기는 마치 무명, 무형의 도와 같이 만물의 근원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면서 그 작용은 무한하다. 즉 노자는 “도의 본체는 비어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작용하면 다함이 없으니, 깊고 깊음이여! 만물의 으뜸인 듯 하다” 고 표현했다.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도는 단순히 비어있는 것 같지만, 그 작용은 끊임없다. 마치 자연의 자정능력과 같이 은근히 작용하여 만물이 만물답게 드러나게 하는 깊고 깊은 만물의 근본이다. 하늘과 땅 사이는 텅 비어 있지만 그 작용은 자연의 순리에 알맞게 때마다 필요한 것을 산출하는 창조적인 작용이 이루어진다.  천지는 풀무와 피리처럼 속을 비우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긴다. 이와 반면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꽉 차있는 욕구를 비우지 못해 작위를 일삼는 것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노자는 마음이 고요하여 평온한 상태를 나타내는 정(靜)을 인생과 정치 방면에 적응하여 제시했다. 즉 노자는 靜을 무위의 정치에 비유했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오하이지기연재, 이차,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민다리기, 국가자혼,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인다기교, 기물자기, 법령자창, 도적다유,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노자 57장)

통치자가 무욕.무사.무위 할수록 백성은 안정감을 갖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다. 靜은 고요하고 차분하고 신중한 것을 함의한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군주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태를 초연하게 바라보면서 신중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내재된 힘은 바로 고요함 靜 에서 나온다. 군주가 고요한 평정심을 잃고 경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일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리도 유지할 수 없다. 통치자가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해 수시로 제도를 바꾸거나 백성들을 배려하지 않은 법을 제도화하여 명령하면 사회는 혼란스럽고 시끄럽고, 백성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노자는 심오한 정의 의미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누가 혼탁한 속에서 안정시켜 서서히 맑아지게 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혼탁함’이 ‘맑게’되는 것은 흙탕물이 맑은 물이 되는 이치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탁한 물이 가라앉아 맑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흙탕물을 성급하게 가라앉혀 맑게 하려고 인위적인 방법을 시도해야 헛수고일 뿐이다. 경솔하지 않은 신중함과 자연스런 방법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노자가 “누가 조용히 안정된 것을 서서히 움직여 생기가 돌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음을 제기했듯이  靜은 고요함 속에 정지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고요하고 안정된 정신 속에서 맑고 생기 넘치는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고, 그러한 생각이 고정된 구습에 새로운 동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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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0<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by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노자 16장)

노자 16장은 歸根과 復命 그리고 虛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귀근’은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것이고,  ‘복명’은  도의 자연스런 운행을 따르는 것이며, ‘허정’은 근원적인  본연의 자연성이 드러난 맑고 고요한 상태이다.

虛를 극에 이르게 하고 靜을 돈독히 지켜서 만물이 왕성하게 자라는데, 나는 순환하는 도리를 볼 수 있다. 온갖 사물과 사건이 많고 어지럽게 변화하지만, 결국 각각은 그들의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하고 (靜), 고요함 (靜)은 본원으로 돌아가 본성을 회복한 것이다.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항상됨(常)이라고 한다. 항상됨(常)을 아는 것을 밝다(明)이라고 한다. 항상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근거없이 행동하면 흉해진다.

만물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돌아가는 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바로 허정의 상태가 本無, 즉 근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歸根曰靜’ 이란 만물의 생성 변화는 끊임없이 순환 운동하다가 극에 다다르면 다시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곧 靜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復命’ 즉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도의 자연스러운 운행을 따르는 것이다. 노자는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常’ 이라고 하였는데, 항상성은 자연의 순환반복의 필연적인 이치이다. 순환반복은 곧 운동성을 뜻하기 때문에 ‘常’ 은 ‘變’을 내포한 ‘常’이다. 만물을 포용하고, 만물과 통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 항상성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영원성이며, 영원성은 변화를  내포한다. 노자는 변화속에 지속되는 항상성 (常)을 아는 것 즉 ‘항상됨을 밝게 알고 따르는 것(知常曰明)을 ‘習常’ 이라고 했다.

모든 만물이 도에서 나왔기 때문에 만물은 도와 덕으로 복귀해야 한다. 이러한 복귀는 어떤 외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고, 본래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道 法 自 法’ 을 의미한다. 만물이 ‘귀근복명’의 원리를 따를 때 본래의 고유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귀근복명’의 원리를 벗어날 때 인위적인 작위를 일삼게 된다. 복귀를 인간에게 한정하여 본다면 근원으로 복귀하는 길은 허정심에서 비롯된다. 즉 복귀란 허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이 근원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에 존재적 욕구나 집착으로 꽉 채워져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
(노자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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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9<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by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치허극 (致虛極) 수정독 (守靜篤)

사람들의 마음은 늘 불안정하고 복잡한 것들이 쌓여있다. 사람들은 감각적 대상에 얽메여 끊임없이 물질을 추구하려는 과도한 욕구는 충족될 수 없기에 불만족 속에서 불평하게 된다. 사람들은  인생의 충족감과 행복감을 다른 사람들 것과 비교를 통해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하려는 차별상에 사로잡혀 있어 온전한 행복감을 맛보지 못한다. 또한 그동안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다가도 남들이 더 많이 소유하거나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갈 때마다 그동안의 행복은 한순간 불행으로 바뀌기도 한다. 즉 마음은 불안, 초조, 우울, 좌절, 실망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불행감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불안정하고 복잡한 마음으로부터 허정심을 회복하려면 마음속에 쌓여있는 인위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여 마음을 비워야 한다. ‘비워감’은 과도한 욕망과 상대적.분열적 질곡에 빠져있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비워감’, ‘극기’의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위도’ 공부는 우리의 마음을 비워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허정은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노자는 ‘치허극’, ‘수정독’의 방법을 제시했다. 마음의 허상을 비우는 과정은 “치허극’, ‘수정독’의 상태에 이르는 과정이다. 허정의 근저에는 도(자연)가 있다. 외적 사물을 대상화하여 분별하고 계산하고 집착하면서 외적 세계에 매몰된 사람들의 자연성을 찾기위한 방법이 바로 ‘치허극’, ‘수정독’이다. 허정한 마음은 탐욕이나 편견이 없는 상태이며, 사물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마음이다. 즉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분별지로부터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세계를 하나로 신비롭게 결합할 수 잇는 직관의 세계,明의 세계에 이르게 해주는 마음이다.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외적 사물현상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이러한 자연을 대상화 하고 왜곡하지 않을때 천지의 도를 밝힐 수 있다.

허정과 복귀는 도의 뿌리 즉 마음의 본래상태인 맑은 근원으로 가는 길이다. 인간이 근원으로 돌아감으로 정신적인 새로운 생명을 전개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만물의 관점을 자연에 내어 맡김으로서 생명을 얻게 된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노자 33장)

허정심은 맑고 고요한 인간 본래의 자연성이다. 허정심은 수양을 통해 외적 사물이나 사건에 복잡하게 얽매여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마음으로 부터 벗어나 도의 근원에 되돌아가서 도와 합일한 상태의 마음이다. 이러한 본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근원적인 인식에 이르는 길은 “虛를 극치에 이르게 하고,靜(고요함)을 돈독히 지켜서, 만물이 왕성하게 자라는데, 나는 비로소 순환의 도리를 볼 수 있다 는 ‘치허극 수정독 (致虛極, 守靜篤)’ 이다. ‘치허극’, ‘수정독’은 수양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고착되어 있는 과도한 욕구의 집착과 분별지에 따른 선입견에서 벗어나 맑은 거울에 비유되는 허정심 (맑고 고요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상유욕’에서 ‘상무욕’의 상태로 향하는 위도(爲道)의 과정이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노자 16장)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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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8<강원대, 윤금자 교수>

(@ Athens, Greece. Photo by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滌除玄覽 (척제현람)이란 노자의 도덕경 10장에 나오는 말이다. “노자”에서 도를 체득하는 수양론은 타고난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현묘한 거울의 때를 깨끗이 닦아내어 흠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노자는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였고, 마음의 거울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칠 수 있도록 마음에 쌓인 혼탁한 것을 깨끗이 비우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滌除’란 씻어 내는 것이다. 즉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玄覽'(본래의 밝은 마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묘한 거울(현람)’은 자연 (도)의 원리를 비출 수 있는 거울처럼 맑고 깨끗함을 비유한 것이다. 척제현람은 세속적인 탐욕과 분별하는 마음을 다 비우고 맑고 고요한 허정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허정심은 안정된 마음으로 정감이나 욕망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물의 이치를 직관을 통해 통찰할 수 있는 경지이다. 노자는 마음에 숨겨진 밝은 지혜를 관조하는 내적인 직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是以聖人, 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시이성인, 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 (노자 47장)

인식활동에서 사사로운 편견으로 사물을 왜곡되게 보는 장애를 극복하고 직관을 통해 지혜의 빛으로 사물의 이치를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52장)

이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내부에 있는 본연의 자연성에 의해 만물의 ‘있는 그 자체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현람은 인간의 현묘한 직관능력이며, 현람의 극치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과 주관적인 분별지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람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마음속의 탐욕과 잡념을 깨끗이 씻어내는 ‘척제’가 필수적이다. 왕필은 ‘玄’을 아득히 구분없는 상태 즉 사물 때문에 밝은 지혜(明)를 가리거나 자신의 신령한 성품에 흠을 내지 않도록 지극한 통찰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마음의 밝음을 가리는 인위적인 외적 사물들로 부터 깨끗한 마음에 흠을 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이다. 노자의 인식론적인 이론만을 축적하는 과정이 아니라 곧 실천의 과정이다. ‘明’은 도를 체득할 수 있는 경지의 앎이다. 이러한 경지의 앎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분별 무차별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게되고 모든 것을 품고 하나가 될 수 있는 ‘玄同’에 이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척제현람이다. 우리의 마음 안에 앎이 농축되어 무르익을 때, 인식론적인 깨달음에서 머물지 않고 도의 작용을 몸소 닮으려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노자의 “빛을 누그러뜨리고 속세와 어울린다”는 말처럼, 수양을 통해 얻어진 허정심의 상태에서 고상하게 혼자만의 정신세계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사람들에게 맑고 고요한 정신을 드러내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은 외적인 대상에 얽메여 있어 분별지로 판단하고 평가하며 그것이 마치 진리인 냥 생각하게 되는데, 분별지는 상대적인 진리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적인 진리는 우리 본연의 자연성의 무분별적인 작용으로 이룰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참 진리, 절대적 진리를 깨우치는 것은 맑게 비워진 본연의 자연성, 즉 맑은 마음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가능해진다. ‘척제현람’이란 우리 내면에 본래 있는 밝은 도를 관조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수양하는 것인데, 이러한 수양이 바로 ‘致虛極 守靜篤'(치허극 수정독)’의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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