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강원대 윤금자 교수의 “노자의 무위 자연적 마음치유 연구”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3<강원대, 윤금자 교수>

(Total Solar Eclipse on Aug.21,2017: Photo from Google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V. 위도(爲道) : 허정(虛靜)한 마음 회복

I. 위도의 길 :무욕(無欲),무지(無知)

노자는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분별지의 문제를 무욕, 무지, 무위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노자의 수양론은  물질적인 탐욕과 감각적인 쾌락에 탐닉하여 본연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에게 참다운 삶을 찾게 해 주는 것이다. 참다운 삶을 위한 노자의 수양론은 ‘무위’의 실천으로 탐욕적, 쾌락적, 인위적으로 점철된 삶을 극복하고 인간의 내재적 ‘자연’ 본성을 회복하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道는 만물의 근원으로서 만물을 낳게 해주었지만 만물을 향해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간섭, 지배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수용하고 포용하면서 만물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고 보호해주는 ‘무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도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스스로 그러한’ 즉 자연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하였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노자25장)

도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본받아야 할 표준이다. 인간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궁극적 표준인 도가 항상 무위하다면, 인간이 행위규범도 무위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자”에서 ‘爲道’를 통해 무위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爲道’의 활동이란 곧 ‘욕불욕’, ‘학불학’, ‘위무위’ 를 말한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포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則無敗事.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노자 64장)

그러므로 무위는 무욕과 무지를 바탕으로 하여 도달하게 된다. 노자는 무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無知와 無欲을 제시하였다.

사람들에게 교활한 지식도 없게 하고 (無知) 탐욕도 없게 하여 (無欲), 교활하고 약삭 빠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헛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노자 3장 중에서)

여기서 ‘교활함과 약삭빠름’은 작위이다. ‘헛된 행위’는 인위, 작위적 행위를 뜻하며, 지식과 탐욕이 인간에게 작위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무지’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계략을 짜내는 것과 같은 행위, 즉 지모가 없는 ‘순수한 본연의 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본연의 맑은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지’하고 ‘무욕’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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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2<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당시에 강요되던 가혹한 예법의 역기능을 도가 상실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현상과 맞물린다고 지적했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정의 여러 예법 제도들이 복합적으로 관계를 맺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들이 아니라 강요되어진 왜곡된 것들이다. 순수한 예법제도가 아닌 통치자의 욕망에 부합되게 세분화된 것에 대해 노자는 다음의 비유를 들었다. “박이 흩어지면 형상이 있는 그릇이 되지만 , 성인이 그에따라 관장을 세운다. 그러므로 가장 잘 관리하는 사람은 분할하는 일이 없다.”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노자 28장)

성인은 박을 쪼개 그릇을 만들지만 박의 근본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욕망에 빠진 통치자는 박을 도외시하고 그릇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노자에 의하면 제후와 천자가 무명의 질박한 도를 지켜 무위정치를 한다면 사회와 인간의 마음을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해 줄 수 있다.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天地相合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천지상합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시제유명.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노자 32장)

노자는 사회에 만연한 인위와 조작 그리고 주례의 형식적인 허례의식을 부정하고 정치 현실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무위자연의 상도 ‘常道’ 를 제시했다. 모종삼은 “주나라 문화의 허위성에 비통함을 느껴 구제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라고 보았다. 당시의 군주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 시키기 위해 온갖 부조리와 전쟁을 일삼았으며, 빈번한 전쟁은 군주들의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강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노자는 당시의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사회 상황을 야기시킨  책임은 통치자에게 있다고 보았다. 노자가 당시의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그의 철학을 집약 시키고 전개시킨 이유는 통치자의 마음가짐과 행위에 따라 사람들과 사회상태의 안정성 여부가 결정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자 39장은 제후의 직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하고 있다. 즉 “제후와 천자는 ‘一’을 얻어서  천하의 수령이 된다. 

노자는 통치자의 직책을 ‘道’를 얻었다고 할 정도로 고귀한 것으로 보았다. 고귀한 직책을 청정하게 잘 수행하지 않으면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후는 귀한 직책을 맑고 겸손한 덕으로 지켜야 한다.  즉 제후는 내적인 수양을 통해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도와 덕의 겸손한 품성을 구현하여 마음을 조절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유위, 유사를 일삼는 후왕에게 도를 체득하여 무위유치(無爲而治)로 나아갈 수 있기를 권고했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녕, 신득일이령,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곡득일이영,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
其致之一也. 天無以淸, 將恐裂.
기치지일야. 천무이청, 장공렬.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곡무이영, 장공갈, 만물무이생, 장공멸.
侯王無以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是以後王, 自謂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시이후왕, 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사, 비호.
故致數譽無譽. 不欲록록如玉, 珞珞如石.
고치수예무예. 불욕록록여옥, 낙락여석. (노자 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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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1<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정치가 엄격하면 백성들이 교활해진다” 고 하여 엄격한 정치체제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예법의 금(禁)령(令)이나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금령이나 제도를 어기거나 교활하게 속여서 피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즉 지배 계층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교활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이용했고, 사람들은 지배계층의 수법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계책을 마련하였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노자 58장)

이와같이 지배계층이나 피지배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인위적인 조작’이 횡행하였다. 이러한 조작은 거짓을 낳고, 거짓은 사람들의 본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국가는 사람들의 교활한 방법을 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단속하기 위해 형벌과 명분을 내세워 상과 벌을 밝혀서 간사한 것과 거짓된 것을 검속하는데 세밀하고 자세하여 백성들의 마음속에 다투는 마음이 생기며 이러한 현상을 ‘백성들이 잗달다’라고 했다.

통치자의 임무는 도를 본받아 지배욕과 탐욕을 없애고 백성들을 보호하여,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노자34장)

그런데 통치자가 도를 본받지 않고 탐욕에 휩싸일 때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어 내게 된다. 사회제도가 인위적으로 세분화될 수록 도에서 멀어지고,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은 본연의 순박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부터 점점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부드럽고 유연한 본래의 마음이 가혹한 정치체제와 사회구조에 적응해 가면서 경직되어 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기적인 아집과 집착으로 채워지면서 경직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나 사태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없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나라 초기 예법의 본래 목적은 백성들의 행동을 규제하여 좋은 성품을 키우고, 법령을 정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본래의 바람직한 효용성에서 벗어난 예법은 자율적인 행위 원칙이 아니라 강요로 주어진 강압적인 구속력을 강조하여 오히려 정치가 불안정해지고, 백성들의 도덕성도 상실되어 갔다. 주나라 말기에 세분화된 예와 법은 겉보기에 공익을 위하는 듯 거창한 구호를 내세워 강행했지만 실상은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강화하는 폭정의 수단이었다. 부당한 예법으로 인해 사회의 총체적 위기 현상의 폐단에 대해 노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예(禮)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날로 엷어지는 (줄어드는 ) 것으로 혼란의 원인이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노자38장)

예(禮)는사람을 구속하는 인위적이고 번거로운 것으로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의 이용물이 되므로 허위로 가득 찬 사람들은 늘어나고, 충신은 점점 줄어들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노자는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통치자가 인위적(유위)이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 고 했다. 백성들에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인위적인 통치 방식은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통치에 효력이 없고, 어려움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인위를 지양하고 무위함으로서 백성들이 자생, 자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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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20<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3. 예법과 제도

노자에 의하면 사회의 예법이나 규범 그리고 통치자의 강압적 통솔 등 외적인 조건은 마음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춘추 전국시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여러 측면에서 큰 변혁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특히 농업 생산량의 증대와 토지 소유제의 변동은 경제와 사회구조 그리고 신분 계급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정전제가 붕괴되면서 제후들은 많은 사(私)전(田)을 소유하면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 시기에 제후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데 있어 기반이 되는 것은 토지와 그곳에 거주하는 백성들이었다. 제후들의 토지 쟁탈전과 국가 간의 전쟁 등으로 인해 사회현상은 극도로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부당한 수법을 저지르고 전쟁을 일삼았다. 백성들의 삶은 과도한 세금과 노역 그리고 병역으로 비참한 상황이었다. “노자” 에는 당시의 혼란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내용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대가 지나간 곳마다 가시넝쿨이 가득 자란다. 큰 전쟁을 치른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들것이다.”

大軍之後, 必有凶年(노자30장)

“천하에 도가 있으면 싸움터를 달리는 말을 물리쳐 농사를 짓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군마가 국경에서 태어난다. ”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노자 46장)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그의 윗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위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다스리기 때문이다. 백성이 죽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윗사람들이 더욱 넉넉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노자 75장)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떻게 죽음으로 두렵게 하겠는가?”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노자74장)
지도자들은 부당한 수법으로 부를 축적하여 화려한 생활을 하였고, 국가 간의 전쟁으로 소모된 경제력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가하였다. 과중한 세금과 노역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는 백성들은 삶을 포기하는 생명경시 현상까지 나타났다.
노자는 이러한 시대 상황을 자연 (도)의 현상과 대비되는 것으로 보았다.자연 (도)의 현상은 여유 있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균형과 조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는 권력이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약자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부를 더욱 축적한다.
그러므로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빈부는 대를 물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공자는 주나라 초기의 주(周)례(禮)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공자는 주례와 봉건제도의 회복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이루려고 했다. 반면에 노자는 자연에 역행하는 주나라 말기의 사회현상과 봉건제와 종법제 그리고 예법 제도에 대해 강렬히 비판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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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9<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 29장에서 사물은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노자는 말했다.

“將欲取天下,而爲之者(장욕취천하, 이위지자), 吾見其不得已(오견기불득기),
天下神器(천하신기), 不可爲也(불가위야), 爲者敗之(위자패지), 執者失之(집자실지),
凡物(범물),  或行或隨(혹행혹수), 或噓或吹(혹허혹취),
或强或羸(혹강혹리), 或挫或隳(혹좌혹휴),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거심,거사,거태)

세상을 장악하여 다스려 보려 하여도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은 신비로운 것이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다.
잘 해보려고 해도 실패하게 되고 잡으려고 하면 놓치게 되고, 스스로 앞서가는 것도 있고 뒤만 따라가는 것도 있다.
숨을 내쉬기도 하고 들이쉬기도 하며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으며 위에 얹히는 것도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있다.
그런고로, 성인은 지나친 것을 버리고 사치를 버리고 교만함과 태만함을 버린다.(노자 29장)
그러나 분별지는 사물의 대상화된 부분만을 보고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것을 보지 못한다. 즉 사람들과 사물에 인위적인 가치를 부여함으로 그것을 대상화, 등급화, 차별화시켜 고정된 대립물로 본다. 그러나 사물은 대립의 상황에서 순차적으로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이다. 사물은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하면서 자연스러운 변화 가운데 존재한다. 즉, “화는 복이 의지해 있다.”고 했듯이, 화와 복은 서로 의지하여 생겨나는 순환의 이치를 알아야 우리가 사물을 관찰할 때 겉과 속 전체를 투사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태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상황속에서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준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노자 58장)

노자에 의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도덕적 가치는 특수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분별지이며 상대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仁義禮智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대도폐,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노자 18장)

그런데 통치자들은 인의예지가 절대적인 도덕규범 인것처럼 현실정치에서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허위의식이 생겨나서 작위를 삼게되며 세상은 더욱 혼란스럽게 된다. 분별지 (智)와 욕심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이 智謀를 이용하여 재물이나 권력을 얻으려고 다투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聖智,仁義, 巧利는 모두 인위적인 꾸밈으로 인간에게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끊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차삼자 이위문불족. 고령유소속. 견소포박, 소사과욕.(노자 19장)

유학에서 중시하는 예악제도는 ‘文’에 속한다. ‘文’은 ‘꾸민다’는 뜻으로 허위, 인위를 내포하기에 노자가 말하는 ‘質’과 대비된다.  노자는 꾸미는 것은 인성의 자연스러움을 속박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聖智’ 의 ‘智’ 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꾀를 부려 상황에 대처하는 智謀, 巧智, 才智 를 뜻한다. 이러한 ‘智’ 는 외적사물을 차별하고 규정하여 한쪽으로 편향된 상대적인 분별지이다. 분별지는 감각기돤으로 받아들인 외부사물을 좋고 싫음으로 가치를 차별하고 규정하여 좋은 것에 집착하여 마음에 욕심을 품게한다. 분별지에 따른 욕심은 외물에 집착할 뿐만 아니라 智謀를 꾀하여 거짓과 모략으로 사람들을 속여 부당하게 재물을 빼앗으려는 욕망으로 점점 도와 덕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노자에 의하면 도와 덕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럽게 되어 근심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라고 하였다. 모종삼은 “노자” 제 19장의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와 제 20장의”絶學無憂”를 일컬어 “四絶”이라고 하며, 이것은 도가의 정신이라고 보았다.

노자에서 ‘성지’, ‘인의’, ‘교리’, ‘학’ 등은 인간을 구속하는 인위적인 것들이다. 인간은 이러한 인위적인 것으로 부터 벗어나야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하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노자는 수양을 통해 마음에 채워져있는 욕망을 씻어내고 마음을 맑게 한다면 도의 이치를 관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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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지(分別智) 란 무엇인가

노자에 의하면 사람들의 고통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상대적 가치로 평가하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직면해서 주관적인 분별지와 상대적 가치로 평가 기준을 삼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왜곡하여 부정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편견에 사로잡힌다. 극단적인 편견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로운 삶을 이루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 즉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극단에 치우쳐 집착하게 되고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노자에 의하면 ‘위학’은 외부 사물을 대상으로 자각하고 그것을 표상하는 인위적인 활동이다. 표상된 대상은 주관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인간의 의식속에 각인된다. 이러한 인위적인 인식활동은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 볼 수 없는 상대적인 분별지이다. ‘위학’은 다양한 분별지와 정보를 획득하여 증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분별지와 정보는 개인의 사고방식을 형성해가면서 주관적인 관점으로 고정된다. 고정된 지적 관념은 개인의 세계관 (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 문제, 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가치선택이라는 실천적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인생관으로서의 세계관은 단순히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객관적 인식으로 만족할 수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실존적 문제, 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가치 선택이라는 실천적 윤리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포한다. 지적문제와 실존적 문제, 인식적 문제와 윤리적 문제는 그 성격이 논리적으로 동일한 차원에 있지 않다. 세계관은 복합적인 내용을 갖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복잡한 내용이 ‘세계관’이라는 한 낱말 속에 함께 묶일 수 있는 이유는 서로 다른 뜻이지만 서로 뗄 수 없이 논리적 혹은 인과적 관계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우주 전체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는 것과 똑같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처방, 즉 실천적 문제는 우주 안에서의 인간 본질에 대한 견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세계관은 첫째, 우주관, 즉 더 추상적으로 말해서 존재 일반에 대한 총괄적 견해, 둘째, 인간관, 즉 우주안에서의 인간 존재의 특수성에 대한 관점, 셋째, 윤리관, 즉 인간이 택해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한 입장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박이문,”문명의 미래와 생태학적 세계관”] 인생관의 신념으로 굳혀진다. 이러한 독단적이고 고정된 개인의 세계관과 인생관은 사람들 상호 간에 시비를 따지게 되어 불화와 다툼을 낳고, 사회적으로 이념 갈등을 야기하여 불안을 초래한다.

학문을 하는 것은 날마다 더해가고 도를 추구하는 것은 날마다 덜어가니, 덜고 또 덜어서 무위에 이른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취천하, 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노자 48장)

여기서 위학 ‘爲學’은 외부사물들을 대상화하여 얻는 지식활동을 가리킨다. 즉 美醜,高下, 長短, 貴賤 등 시비를 따지면서 객관적. 경험적. 이론적 지식을 추구하여 마음속에 쌓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식은 각기 다양한 주장과 이론들을 바탕으로 여러 제도를 만들지만 사회의 문제를 더욱 가중시킨다. 

‘위도 爲道’ 는 마음속에 쌓인 분별적, 경험적 지식과 욕망을 덜어내어 마음을 비우고 모든 사태의 원리를 깨달아 진실하고 질박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學不學,欲不欲, 爲無爲의 수양을 통해 세속적 욕망을 벗어나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 어려움과 쉬움등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정한 기준치로 비교하여 가치 부여된 상대적인 가치이다. 만물의 근원적인 원리가 되는 道가 구현하는 세계에는 사물들 사이에 차별도 없고 대립도 없다.  즉 만물 그 자체의 본연의  모습에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 어려움과 쉬움 등의 상대적 가치 관념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長短相較 高下相傾 (장단상교 고하상경)
音聲相和 前後相隨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만물작언이불사)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 노자 2장>

상대적인 가치란 사람들이 사물들을 상호 비교 평가하여 ‘아름다움’이라고 규정한 것을 좋아하고 욕심을 내고, ‘추함’이라고 규정한 것을 싫어하고 무시하는 식의 한쪽으로 편향된 가치 기준을 말한다. 이러한 편향된 주관적 기준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만 진실한 것으로 믿고 옳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독단적 판단이 끊임없는 논쟁을 일으켜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낳는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대도폐,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노자 18장>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지위 그리고 재물등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생활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는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재물과 지위를 내세워 다른 사람을 낮게 평가하고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자아내어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분쟁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길들여진 사고방식과 경험을 시비분별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높은 가치기준을 내면의 인품에 두기 보다는 재물과 지위 등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에 둔다.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더 많은 물질을 원하고 더 좋은 지위와 명예를 원하기 때문에 만족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불행의 문제 즉 좌절과 실망, 갈등과 분쟁은 탐욕과 비교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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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7<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이기적인 욕구로 혈안이 된 사람은 조급하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다투고 경쟁하게 되는데, 이것에 대해 노자는 “대담하기에 용감하면 죽게될 것이다.” 고 하였다.

“勇於敢,則殺 용어감 즉살”(노자73장 중에서)

즉 인간이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경거망동하게 탐욕에 맹신하면 목숨을 잃고 자리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탐욕으로 불행한 자멸에 이르지않기 위해서는 자연의 순리를 본 받아야 한다고 했다. 노자는 자기만 살려는 이기적인 인간과 대비가 되는 천지를 성인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성인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소 자연 닮은 삶을 실천하기 때문에 자기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다. 성인은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뒤에 서서 이익이 될 만한 것을 남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의 권위를 내 세우지 않는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불자생, 고능장생,
是以聖人 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시이성인 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비이기무사사, 고능성기사. (노자 7장)

노자는 탐욕스러운 사람의 특징을 교활하고, 극단으로 치우쳐 경직되고, 교만하고, 경쟁을 좋아하고, 경솔한 것으로 보았다. 이와 반면 성인의 성품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며, 물과 같이 유연하고 겸손하며, 남들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여 다투지 않고, 내면의 덕을 쌓는데 가치를 둔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포之木, 生於毫末,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합포지목, 생어호말,
九層之臺, 起於累土, 天理之行, 始於足下.
구층지대, 기어누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 무위고무패.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則無敗事.
무집고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칙무패사.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시이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노자64장)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들의 본래의 모습을 찾도록 도움을 주지만 인위적인 압박과 제제를 가하지 않는다. 즉 왜곡된 삶의 문제해결을 자연의 섭리에 맡겨 자연적인 자생력으로 정화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인의 성품은 인간이 본받아야 할 인간 본연의 자연성이다.

유가는 인간의 도덕규범, 성(性)의 근원을 천(天)에 두었다. 그러나 노자는 도(자연)에 인간 품성과 사회질서 그리고 모든 법칙의 근원을 두었다. 사람이 위대한 것은 스스로 자연을 본받을 수 있는 품성이 본연의 자연성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몸과 마음을 잘 닦는다면, 그의 행위가 자연과 천지에서 단계적으로 품수 받은 덕에 부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도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지켜나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을 알고 자연의 법도를 따른다면 도를 체득하고 구현하는 성인이 될 수 있으며, 삶의 본질을 알기 때문에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외물을 쫒다보면 욕망과 망상에 사로잡혀 위험에 처하게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외적으로 치닫는 욕구를 자제하도록 강조했다. 도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삶을 왜곡되게 하는 감각적인 외물로 향했던 마음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본연의 삶을 성찰해야 한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노자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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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6<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는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육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육신이 없게 되면 나에게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라고 탄식했다.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노자 13장>

이러한 탄식은 노자가 육신을 경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정신과 육체를 지닌 인간은 생존을 위한 욕구, 감각적인 욕구, 권력을 소유하려는 욕구로부터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자는 육체와 정신은 사람을 구성하는 사람됨의 충분조건으로 보았다. 사람들이 명리(名利)에 욕심을 내고 자랑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각성시키고 있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노자 44장>

왕필도  “명예를 숭상하고 높이기를 좋아하면 자기 자신의 생명은 소홀해진다. ” 고 말했다.

“상명호고(尙名好高), 기신필소(其身必疏)”<왕필노자주>

노자를 비롯한 도가들은 인간이 바라는 욕망을 무조건 부정한 것은 아니다. 노자는 수양을 통해 과도한 욕망을 절제하여 외부로 향해 소모되는 육신의 에너지로 내면을 가꾸고 충족 시키는 데 활용하라는 것이다.

노자는 인간의 마음을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들고 있다. 상류계층의 추악한 모습은 감각적인 쾌락을 탐닉하여 방탕한 생활에 빠지거나 온갖 재물을 취하려고 악행을 저지르는 왜곡된 삶에서 볼 수 있다. 노자는 문화(문명) 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물질을 탐내고 감각적 쾌락을 탐닉하고 향락을 추구하다 보면 본성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노자 제 26장에는 인간의 처신에 따라 본성을 지킬 수도 있고, 본성을 해칠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重)은 경솔한 것의 근본이 되고 정(靜)은 조급히 움직이는 것의 군주이다. 이 때문에 군주는 종일 걸어 다녀도 치중(輜重)을 떠나지 않고, 비록 향락할 수 있는 곳이 있어도 즐길 수 있는 곳에서 초연하다. 어찌 만승(萬乘)의 주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천하 사람들 앞에서 가볍게 할 수 있을까? 경솔하면 자기의 근본인 생명을 잃고, 조급하게 경거망동하면 군주의 자리를 잃는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聖人 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노자 26장>

노자는 인간의 바람직한 처세에 대해 신중하고 믿음직스러운 ‘중(重)’과 고요하고 안정된 ‘정(靜)’의 태도를 제시하였고, 이것을 경솔하고 가벼운 ‘경(輕)’과 조급하게 움직이는 ‘조(躁)’ 의 태도와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다. 노자는 당시 통치자들이 향락과 탐욕에 어두워 경솔하고 천박하게 처신하는 것을 지적하여 비판한 것이다. 자연성의 이치를 아는 성인은 유혹이 될 만한 장소에서도 흔들림없이 신중하고 차분하게 행동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고결한 인품을 지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노자는 인간의 욕심이 이기적인 교만을 낳는다고 보았다. 즉, “부귀하면서도 교만하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긴다.”는 것이다. ‘욕심’은 물질과 지위를 내세워 자기 존재의 우월함과 잘났음을 돋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노자에 의하면 자기를 뽐내고 싶어하는 욕심은 기대와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발꿈치를 들고 선 사람은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보폭을 크게 내딛는 사람은 제대로 가지 못하며,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은 밝게 되지 못하고, 자기만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드러내지 못하고, 스스로 우쭐대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노자 24장>

위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잘났다고 스스로 드러내고 뽐내고 스스로 자만하는 사람은 도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지 못하여 그의 잘남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즉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세찬 바람과 폭우가 계속 지속될 수 없듯이, 인간이 재물이나 권력을 내세워 교만하고 무례한 짓을 하면 그가 소유한 재물과 권력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재물과 권력의 풍요와 쾌락을 느낀 사람은 더욱 많은 재물과 권력을 소유하기위한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자는 인간 본연의 맑고 깨끗한 자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탐욕과 권력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 노자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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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5<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실도(失道): 마음 고통

인간은 명예와 재물 그리고 권력 등 다양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다. 한정된 명예, 재물, 권력은 이것을 소유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일으킨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지모(智謀)와 사람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현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고 사회의 혼란과 불안감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우선 감각기돤으로부터 외물을 보고 탐하게 되는 탐욕으로부터 비롯된다. 탐욕은 집착으로 이어지고, 집착은 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분별지가 작용함으로 더욱 가중된다. 분별지는 좋은 것,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 자만심을 채울 수 있는 것 등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 지모, 작위를 작동시켜 실행에 옮긴다. 통치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온갖 예법을 만들어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이용한다. 그러므로 인간 마음의 고통을 유발하는 욕심, 분별지, 예법은 순환고리로 연결되어 상호 간에 영향을 주며 작용한다. 즉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지모(智謀)를 꾀하고 유의(有爲)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1.탐욕

노자는 인간의 탐욕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라고 보았다. 노자는 “죄는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허물은 욕심내어 얻으려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고 말하며 욕심의 위험성을 나타냈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罪莫厚乎甚欲,咎莫憯乎欲得

禍莫大乎不知足, 知足之爲足 此恒足矣. (노자 46장)

춘추 말기에 통치자들은 권력과 재물을 탐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백성들을 지배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노자는 당시의 문란한 사회상과 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욕망에 사로잡힌 통치자와 관리들의 도리에 어긋난 현상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과, 非道也哉. (노자 53장)


나에게 약간의 지혜가 있다면 무위의 큰길을 거닐며 오직 사도에 잘 못 빠질까 두려워 할 것이다.대도는 평탄한데 사람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조정은 깨끗한데 농촌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다.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리엔 날샌 칼을 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싫도록 먹고 재물은 남아돈다.이러한 것을 도둑의 사치라 한다. 어찌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노자는 마음에 탐욕으로 가득차 있으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행하게 되며, 오만하고 난폭한 강한 기운으로 삶을 해치게 하는 화근을 몰고 온다고 했다.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으로 마음이 담백해야 하는데, 욕심이 많아질수록 마음에는 더욱 많은 것을 가지려는 강한 의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강한 기운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과 다툼을 일삼아 도와 덕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망하거나 죽게 된다는 것이다.

노자는 인간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재물의 욕구를 억제하기  위한 방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자를 숭상하지 않아야 사람들에게 경쟁을 부추기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사람들이 도적질하지 않게 할 수 있으며, 욕심 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않아야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不尙賢 使民不爭,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實其腹 弱其志强其骨,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노자3장)

여기서 현(賢)이란 세속적인 것을 말하며, 질박함을 버리고 꾸밈을 숭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부추겨서 관직의 명예를 취하려고 경쟁하도록 유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명예와 재물에 욕심이 있다. 그런데 과도한 욕심은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을 상실하게 한다. 욕심이 커서 원하는 만큼 이룰 수 없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즉 욕심에 빠져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편법을 생각하는 과대망상증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물로 삼는 파렴치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탐욕을 일으킬 만한 명예와 재화등을 제시하는 것을 자제하고, 백성들이 무지, 무욕할 수있도록 무위정치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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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5<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에서 골짜기 곡(谷) 형상과 현(玄)덕(德) 그리고 적(赤)자(子)와 박(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赤子’는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갓난아이로서 인간이 회복해야 할 마음바탕이다. “노자”에서 갓난아이는 자연의 원기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순수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갓난아이와 같이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과 반대되는 강(强)강(剛)은 자연에 역행하며 생존에 유익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오래가지 못한다. 노자는 덕을 온전히 갖춘 사람은 樸과 영아와 같은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물 공생의 자연의 이치 즉, 상(常), 화(和), 명(明)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 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상(常)무(無)욕(欲), 이(以)관(觀)기(其)묘(妙) 로서 도의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복귀의 지향점은 만물에 적용해보면 허정, 영아, 무극, 박, 무명 등의 자연스런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도는 만물을 가리지 않고 안에 도가 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타고난 만물의 내재된 성품은 도(道)의 常,和,明, 柔弱 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만물은 본연의 상태를 벗어나면서 점차 탐욕과 지모로 强剛 해지면서 도의 성질과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인간의 자연성회복을 위해서 인간의 욕망과 분별지 그리고 인위성의 문제를 도의 특성을 나타내는 무욕, 무지, 무위, 무심등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인간은 명예와 재물, 그리고 권력 등 다양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다. 한정된 명예, 재물, 권력은 이것을 소유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일으킨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지(智)모(謀)와 사람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현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고 사회의 혼란과 불안감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우선 감각기관으로부터 외물을 보고 탐하게 되는 탐욕으로 부터 비롯된다. 탐욕은 집착으로 이어지고, 집착은 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분별지가 작용함으로 더욱 가중된다. 분별지는 좋은 것,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 자만심을 채울 수 있는 것 등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 지모, 작위를 작동시켜 실행에 옮긴다. 통치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온갖 예법을 만들어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이용한다. 그러므로 인간 마음의 고통을 유발하는 욕심, 분별지, 예법은 순환 고리로 연결되어 상호 간에 영향을 주며 작용한다. 즉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지모를 꾀하고 유(有)위(爲)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탐욕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라고 노자는 보았다. “죄는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며 허물은 욕심내어 얻으려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고 말하며 욕심의 위험성을 표현했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罪莫大於可欲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常足矣. (노자 46장)

춘추 말기에 통치자들은 권력과 재물을 탐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백성들을 지배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노자는 당시의 문란한 사회상과 道에서 완전히 벗어나 욕망에 사로잡힌 통치자와 관리들의 도리에 어긋난 현상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대도심이, 이민호경,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과, 非道也哉.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야재.
나에게 약간의 지혜가 있다면 무위의 큰길을 거닐며 오직 사도에 잘 못 빠질까 두려워 할 것이다.
대도는 평탄한데 사람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깨끗한데 농촌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리엔 날카로운 칼을 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싫도록 먹고 재물은 남아돈다.
이러한 것을 도둑의 사치라 한다. 어찌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노자 53장)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으로 마음이 담백해야 하는데, 욕심이 많아질수록 마음에는 더욱 많은 것을 가지려는 강한 의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강한 기운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과 다툼을 일삼아 도와 덕으로 부터 점점 멀어져 망하거나 죽게 된다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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