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강원대 윤금자 교수의 “노자의 무위 자연적 마음치유 연구”

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5<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에서 골짜기 곡(谷) 형상과 현(玄)덕(德) 그리고 적(赤)자(子)와 박(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赤子’는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갓난아이로서 인간이 회복해야 할 마음바탕이다. “노자”에서 갓난아이는 자연의 원기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순수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갓난아이와 같이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과 반대되는 강(强)강(剛)은 자연에 역행하며 생존에 유익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오래가지 못한다. 노자는 덕을 온전히 갖춘 사람은 樸과 영아와 같은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물 공생의 자연의 이치 즉, 상(常), 화(和), 명(明)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 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상(常)무(無)욕(欲), 이(以)관(觀)기(其)묘(妙) 로서 도의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복귀의 지향점은 만물에 적용해보면 허정, 영아, 무극, 박, 무명 등의 자연스런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도는 만물을 가리지 않고 안에 도가 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타고난 만물의 내재된 성품은 도(道)의 常,和,明, 柔弱 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만물은 본연의 상태를 벗어나면서 점차 탐욕과 지모로 强剛 해지면서 도의 성질과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인간의 자연성회복을 위해서 인간의 욕망과 분별지 그리고 인위성의 문제를 도의 특성을 나타내는 무욕, 무지, 무위, 무심등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인간은 명예와 재물, 그리고 권력 등 다양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다. 한정된 명예, 재물, 권력은 이것을 소유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일으킨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지(智)모(謀)와 사람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현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고 사회의 혼란과 불안감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우선 감각기관으로부터 외물을 보고 탐하게 되는 탐욕으로 부터 비롯된다. 탐욕은 집착으로 이어지고, 집착은 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분별지가 작용함으로 더욱 가중된다. 분별지는 좋은 것,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 자만심을 채울 수 있는 것 등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 지모, 작위를 작동시켜 실행에 옮긴다. 통치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온갖 예법을 만들어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이용한다. 그러므로 인간 마음의 고통을 유발하는 욕심, 분별지, 예법은 순환 고리로 연결되어 상호 간에 영향을 주며 작용한다. 즉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지모를 꾀하고 유(有)위(爲)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탐욕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라고 노자는 보았다. “죄는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며 허물은 욕심내어 얻으려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고 말하며 욕심의 위험성을 표현했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罪莫大於可欲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常足矣. (노자 46장)

춘추 말기에 통치자들은 권력과 재물을 탐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백성들을 지배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노자는 당시의 문란한 사회상과 道에서 완전히 벗어나 욕망에 사로잡힌 통치자와 관리들의 도리에 어긋난 현상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대도심이, 이민호경,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과, 非道也哉.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야재.
나에게 약간의 지혜가 있다면 무위의 큰길을 거닐며 오직 사도에 잘 못 빠질까 두려워 할 것이다.
대도는 평탄한데 사람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깨끗한데 농촌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리엔 날카로운 칼을 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싫도록 먹고 재물은 남아돈다.
이러한 것을 도둑의 사치라 한다. 어찌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노자 53장)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으로 마음이 담백해야 하는데, 욕심이 많아질수록 마음에는 더욱 많은 것을 가지려는 강한 의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강한 기운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과 다툼을 일삼아 도와 덕으로 부터 점점 멀어져 망하거나 죽게 된다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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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4<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의 ‘자연성 회복’은 자신의 근원적인 뿌리가 무엇인가를 찾고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밖으로 치달랐던 강팍하고 욕정에 사로잡힌 마음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소박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감돌 수 있는 화(和),상(常), 명(明),의 상태 즉 본연의 마음의 뿌리인 도(道)를 밝혀나가는 과정이다.

노자는 인간의 본래 성품을 회복하는 데 있어 순자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외적인 학습이나 예의 교육을 제시하지 않았다. 노자는 인간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로서 본래의 성품속에 내재한 맑고 질박한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는 인간을에 ‘존귀한 존재’로 보았고, 인간 질서의 근원을 자연, 즉 도(道)에 두었다. 인간이 존귀하다는 것은 자연을 본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노자는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는 통치자의 무위와 백성들이 자화, 자정, 자부, 자박할 수 있는 자연성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통치자가 ‘무욕’, ‘고요함’, ‘ 소박함’ 이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무위의 통치 분위기에서 사람들과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도의 운동이며, 유약한 것이 도의 작용이다.” 라고 했으며, 도(道) 작용이다고 했으며, 도의 순환운동과 관련하여 ‘복(復)’, ‘귀(歸)’, ‘반(反)’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노자 40장에는 ‘반(反)’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즉 ‘반대’, ‘대립’의 뜻과 ‘되돌아가다’의 뜻이 있다. ‘복귀(되돌아가다)’란 생성 변화하는 만물이 도에서 생겼다가 다시 도(道)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도의 끊임없는 순환반복의 활동은 도가 반대되는 방향으로 운동하는 ‘반(反)’과 도의 작용인 ‘유약’으로 진행된다. ‘유약’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계곡, 어린아이, 무극, 통나무와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가는 것을 뜻한다. 계곡, 어린아이, 통나무는 ‘유약’을 상징한다. 유약은 도의 작용에서 볼 수 있는 생명성을 상징한다. 인간이 탐욕과 분별지로부터 벗어나 순진하고 질박한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계곡, 어린 아이, 통나무와 같은 도의 정신을 길들여야 한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 ,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노자 28장)

 

수컷의 강함을 알면서 암컷의 부드러움을 지킨다면 천하를 지키고 따르는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영원한 덕이 떠나지 않아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된다.

천하의 본보기가 되면 영원한 덕이 어그러지지않아 다시 한업는 도의 세계의 근원이 된다.

그의 영화를 알면서도 그의 욕된 처지(어두움)을 지킨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떳떳한 덕이 충족되어 다시 손대지 않은 순수함, 통나무가 된다.

노자에서 계곡, 어린아이, 무극, 통나무 는 음양의 분화 이전의 자연성을 상징한다. 인간은 자연성으로부터 벗어난 인위적인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생긴 왜곡된 인간성이 그대로 고착되어 변화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노자에서의 인간은 자기 성찰을 통해 자연성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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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3<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3. 인간의 본성

노자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虛靜’, ‘嬰兒’,’樸’ 등으로 표현했다.

인간의 자연성이란 맑고 깨끗하며 순수하고 소박하다. 우리 안에는 세속의 욕망에 불들지 않은 본연의 맑고 깨끗한 영혼의 터전, 즉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삶의 흔적들이 쌓여가면서 본래의 맑고 깨끗하며 순수하고 소박한 터전이 가려졌다는 것이지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자연성의 자연이란 도의 본성이다. 도는 모든 존재자의 근본으로서 스스로 작용한다. 노자에 의하면, 우리는 이러한 도의 자연을 본 받아 스스로 고유한 자연성을 발휘해 나갈 수 있다. 우리 안에 고유한 자연성을 따라 살아갈 때 삶의 모습은 진솔하고 자유롭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자율성. 주체성을 지닌 존재이다. 노자는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하며 ‘순수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알게되어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자연성은 본래 우리 안에 간직되어 있어 우리가 내밀하게 다가가면 느낄 수 있는 존재의 뿌리이다. 인간의 자연성은 외적인 교육이나 사회적인 제도에 힘입어 찾게 되는 것은 아니다. 노자는 “옥을 품는다” 라고 하였듯이 사람의 바탕속에는 완전한 형태의 옥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노자는 외적인 교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밖으로 흩어졌던 마음을 안으로 모아 고요함의 내적 평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자연성은 회복된다.

유가는 도덕규범이나 예법으로 인간의 본성을 인간답게 다스려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순자는 타고난 악한 본성을 스승의 가르침과 법도를 통하여 교화시켜 바로잡아야 하고, 예의로서 행동을 규제해야 한다고 보았다. 순자는 사람을 선하게 하는 요소가 바로 학습의 결과 (작위) 라고 보기 때문에 “예의 “교육을 중요시 했다. 노자는 순자와는 달리 외적인 교육이나 제도는 오히려 인간에게 인위적인 분별지와 욕망등을 키운다고 보았다. 노자는 살아가면서 마음의 터전에 쌓인 세상적인 분별지와 욕망등으로 점차 본연의 자연성으로부터 멀어진 자기상실의 문제를 반성하며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즉 분별지와 욕망을 덜어내고 비우다 보면 심층의 마음 바탕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 바탕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주관적으로 모든 것을 나누어 구분하는 분별에서 벗어나 분별하지 않는 (무분별) 본연의 자연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노자는 이것을 허정심이라고 했고, 불교에서는 一心이라고 한다.

노자에서 ‘자연성 회복’은 현실사회에서 인위적인 삶을 형성하는 사람들에게 본래의 자연성을 찾게 해 주는 것이다. 인간 본래의 자연성은 자연(道) 그대로의 모습이다.

도는 영원히 이름이 없다. 박은 비록 작지만 천하에 그것을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이 없다. 제후나 천자가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장차 저절로 복종한다. 천지가 서로 합쳐서 단 이슬을 내릴 것이고, 백성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반듯해진다. 만물이 생겨나면 각종 명칭이 생겨나고, 각종 명칭이 이미 만들어지면 그칠 줄도 알아야 한다.

노자는 제 32장에서 질박한 도의 성품을 본받아야 한다는 후왕의 가르침이자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樸는 무명 (道) 의 비유이다. 무명이 지니는 질박함과 무위하고 자연스러운 특성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노자는 제왕이 무명의 질박한 도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자연에 귀의하듯 백성들도 자신의 온전한 삶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질박한 도를 지키지 않을 때 명분을 정하고 지위를 정하여 그것에 군림하기 때문에 사회는 어지럽게 된다는 것이다. 도가 만물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듯이, 제왕이 백성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다. 백성을 향한 제왕의 통치는 만물을 포용하는 자연의 도리와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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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2 <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 여러 곳에는 인간의 행위 규범으로  도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인위적인 삶에 젖어 있기 때문에 도를 일탈하여 자연성으로부터 벗어난다. 인간은 도의 규범을 따를 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노자철학의 기본 정신은 인간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 본연의 자연성의  근본이 바로 ‘도'(자연) 이다. 도는 모든 만물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만물은 자신 속에 도를 닮은 상을 내포하고 있다. (도는 자연의 복잡한 단일체로서 그냥 놓여있다. 그것은 신의 피조물로부터 뚝 떨어져 나와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만물이 나고 자라는 현실적이고 일반적인 근원에 좀 더 가깝다. 만물은 나름대로의 특성과 품성을 지닌다. 그러나 또한 다양한 전체로, 포괄적인 도(道)로수렴되기도한다. (Sam Crane 의 쓸모없는 것의 가치 중에서)

도는 만물을 품어주고 길러주는 포용력있는 존재이다. 도는 선하지 않는 사람을 쓸모가 없다고 버리지 않고 그를 선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즉 선하지 않은 사람도 본연의 맑은 자연성으로 회복 시킬수 있다.

노자는 도(자연)를 모든 존재자가 삶의 근원으로 삼아야 할 규범으로 간주했다. 모든 존재자가 도를 삶의 원리로 삼고, 도를 닮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자유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에서 도와 인간의 밀접한 관련성을 여러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도를 체득하고 보존한 사람은 신중하고, 중후하고, 고요하고, 순박한 성품을 지녔다고 했다. 이러한 도의 성품을 보존한 사람은 현실을 초월해서 고고하게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도(자연)의 이치를 지켜나가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불안한 세상사에 얽혀 탁류의 부유물처럼 근심 덩어리가 마음 구석구석을 어지럽힐 때 도를 체득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삶의 좋은 지침이 될 만한 정신적인 자양분을 부여한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사람들의 혼탁함을 자신과 분별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불안하게 해 주던 탁류와 같은 근심의 부유물을 가라앉혀 맑은 생기를 준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탐욕과 편협한 사심으로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守中)의 적당한 태도를 지킨다. ‘守中’의 태도는 모든 것을 수용할 뿐만아니라 모든 것에 안정과 생명을 준다.

노자의 도는 자연필연의 균형의 이치를 아는 ‘자연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대도를 따르게 된다. 이와 반면 사람들은 사욕을 따른다. 노자는 대도를 행하는 사람의 품성에 대해 “일부러 행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다.”고 했으며, “자기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다”고 했다. 인간 본연의 자연성에서 나온 행위는 ‘도’의 품성을 닮아 자연스럽다. 노자는 “도가 존중을 받고, 덕이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곧 그것이 간섭하지 않고, 자연에 따라 맡겨 두는 데 있다.” 고 했듯이 대도를 행한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무위자연’을 나타낸다. ‘爲道’ 즉 ‘도를 행하는 것’은 고상하고 우월한 색다른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본연의 자연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행동하는 것이다.

노자는 통치자와 백성들의 관계에서 진실하고 순박한 자연의 도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통치자와 백성들이 연대하여 딮은 공감으로 나라를 살리는 것은 마음을 청정하게 살리는 도(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천하는 모든 존재자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천하이며, 통치자에게만 특권이 주어진 천하가 아니다. 천하의 모든 존재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원리가 있는데, 통치자가 자기방식으로 사람들을 간섭하고 압박하면, 사람들은 가가자의 삶을 편안하게 살 수 없게 된다. 통치자가 위선과 허세로 백성들에게 부당한 행동을 하면, 백성들도 꾀를 부려 통치자에게 대응하게 된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愚人心”의 인품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와야 한다. ‘우인심’이란 진실하고 순박한 인격자의 마음가짐을 일 컫는다. 위선과 허세는 또 다른 조작을 꾸미게 하여 사람들의 순수한 자연성을 막아 모두가 힘겹게 된다는 것이다. 통치자와 보통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감정에 따라 대응하는 것도 유사하다. 그러나 爲道者(도를 잘 행하는 사람) 가 감정에 대응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보통 사람들과 성인이 감정에 대응하는 차이점은 도를 구현하는 실천의 문제와 관련된다. 인간의 자연성은 그 자체로 참되고 충만한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爲道者는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잘 영위할 뿐만아니라 자연성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자연성을 복원할 수 있는 복원력을 고무시켜준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아는 것 만큼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도와 함께 하는 자는 도 역시 즐겁게 그를 따른다” 라고 했다. 즉 도를 행하는 사람이 진실하고 충실한 태도를 보이면 도와 같아진다는 것을 함의한다.

“노자” 에는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통치자의 수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통치자는 수양을 통해 무위가 배어나올 수 있도록 마음을 지켜야 한다. 즉 ‘侯王若能守之’(노자 제 37장 중,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의 경지에서 그는 백성들을 자연스러움에 따르게 맡겨두어 간섭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백성들이 순박한 마음으로 순리를 따르게 되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와 같은 무(無) 와 허심(虛心)으로 생활하면 인간의 덕이 진실되고(眞), 여유롭고 (餘), 장구하며 (長), 풍성하고 (豊), 널리퍼져 (普) 그 은택이 천하에 미치게 된다. 집안과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은 바로 자신의 바른 마음가짐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노자는 도에 근거하여 인간이 실천해야 할 본연의 모습과 삶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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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1 <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무명은 천지의 시초요,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무욕으로써 그 미묘한 것을 보고 언제나 유욕으로써 천지만물의 최종 귀결을 본다.” (노자 1장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邀 ). 여기서 노자의 논의 핵심은 만물의 발생을 비롯하여 만물의 본연의 모습 (妙)과 본연에서 벗어난 유욕의 모습 (邀) 그리고 복귀와 관련된 것을 설명한다. “상(常)무(無)욕(欲) 이(以)관(觀)기(其)묘(妙)” 의 妙는, 만물이 조화로운 도의 품성으로 향해가는 본연의 현상을 말한다. 이와 반면 “상(常)유(有)욕(欲) 이(以)관(觀)기(其)요(邀) 의 요는 만물 가운데 인간이 도를 벗어나 불안정한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만물의 유욕과 인간의 욕심을 혼동해서는 안되다는 점이다. “상(常)무(無)욕(欲) 이(以)관(觀)기(其)묘(妙)” 와 상(常)유(有)욕(欲) 이(以)관(觀)기(其)요(邀)는 대립적인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상관론적 관계 (사유)로 작용한다. 만물은 도의 작용과 효용으로 도를 닮은 자연성을 유지하다가 점차 도(道)에서 부터 벗어나면서 자연성을 잃게되고, 왜곡된 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나 왜곡된 상은 고정불변한 채로 굳혀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탐욕을 비우고 도를 체득하는 한 다시 근원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衆)묘(妙)지(之)문(門)”은 “유(有)욕(欲)과 무(無)욕(欲)의 두 道가 서로 차이속에서 함께하는 오묘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常無欲 以觀其妙” 와 “常有欲 以觀其邀” 를 인간의 마음에 비유하면, “묘”는 인간이 이상적으로 추구해야 할 도를 닮은 자연성이며, “요”는 인간의 왜곡된 상이다.  ‘상유욕’ 하는 탐욕과 분별지에 의해 ‘요’를 바라보고(觀), ‘요’에 집착하고 탐닉하게 되면, 자연성은 점차 가려져서 볼 수 없게된다. 그러나 인간은 수양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 ‘묘’와 ‘요’의 대립해소를 지향하여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묘’는 현상계의 외부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안에 내재되어 있는 바람직한 우리 본연의 모습이다. ‘묘’를 향하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우리 본연의 자연성에 이르는 과정’이다.

도를 내제한 만물의 순전한 모습은 조화롭게 균형 잡혀있다. 즉 음양이 상호 화합하여 조화로운 상태 (和)를 이룬다. 도가 만물을 생성하는 과정을 묘사한 만물 생성론에서 만물의 본연상은 “충기로써 조화를 이룬다.”(노자 42장 :沖氣以爲和)에 잘 나타나 있다. 음양의 두 기운은 만물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바탕이다. 노자는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한다. 즉 극단적인 ‘요’에 치우치거나, 극단적인 ‘양’에 치우치는 것은 자연의 균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요’, 극단적인 ‘양’에 치우칠때, 도의 원리인 ‘유(柔)약(弱)’ 에서 벗어나 ‘강(剛)강(强)’으로 치닫게 되어 위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자연은 “남는 것을 덜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며”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생명을 생성시키는데 비해 인간은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자연에 역행하는 무모한 짓을 자행한다. 자연과 대비되는 권력자는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위해 약한 사람들의  재물과 노동력을 착취한다. 여기에서 인간세상의 약육강식의 잔혹함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본연의 자연성을 잃지 않고 유지한 사람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행동한다. 인간의 본연상은 겸허하며 자연의 도를 본받아 그에 상응하게 행동한다. 노자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난 외형적인 화려함을 과시하기를 좋아하지만 성인은 내적으로 충족된 상태를 중시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제후와 제왕이 도를 체득하여 겸손해야 하며, 내적으로 견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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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10 <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강원대 윤금자 교수님 작품)

 

<Korea, Prof. Yoon Geum Ja>

보편 생명으로서의 도는 만물의 근원적 존재임을 나타내준다. 도 (자연)는 인간질서의 근원적 존재, 스스로 존(自存), 자기 법칙성, 무한한 활동과 능력, 자기 복귀 등의 포괄적인 존재이다. 도(道)가 만물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의 근원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도와 만물과 만물은 서로의 생명을 통해 유기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보편생명, 즉 一(道)에서 나온 하늘, 땅, 신, 계곡, 만물, 왕은 서로 각기 다른 생명체이다. 도는 개별 생명체에게 끊임없이 운동변화하면서 각자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형성하면서 살아가도록 해주기 때문에 道(一)는 만물을 이루는 근원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석명은 그의 저서, “노자와 황로학” 에서, 도와 만물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자”의 道 는 비록 만물의 존재근거로 작용하는 것이기는 하나 또한 만물과 분리되는 개별적 실체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도는 만물과 구별되는 듯 하면서도 결코 구별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하늘이 一을 얻어 맑고 깨끗하며, 땅은 一을 얻어 편안하고 고요하다’는 것은 “그들 속에 본래적으로 갖추고 있는 도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라고 유병래는 자신의 동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에서 말했다.

2. 道 와 인간

“노자” 에서 道는 형이상학적인 본체론적 요소와 실천론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노자는 도가 만물, 특히 인간의 삶과 행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도의 오묘한 특성 (玄之又玄)을 통해 밝혔다. (왕방웅은 노자 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 철학사상은 유가든 도가든 결국은 유한한 존재자의 체험과 느낌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생명이 어째서 유한한 것인가를 되돌아보고, 정신수양과 도덕실천을 통해 유한에서 무한으로의 가능성을 열려고 한다. 그래서 중국철학의 주류는 마음(心)에 중점을 두었지,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탐구하는 우주론에 두지 않았다. 또한 유한, 무한의 문제 역시 신과 인간이라는 두 세계의 유비적 구분에 두지 않았다. 즉 천인(天人) 혹은 이기(理氣)의 본체론적 문제이든 간에 모두 인간의 생명 속으로 내재화하여 말한다. …노자의 형이상학적 지혜는 이성적 추구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수양 실천을 통해 깨닫고 체득한 것이다. ) 우리는 도의 기본적인 특성을 사람들이 체득하여 현실사회 속에서 실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도의 이중성, 무(無)와 유(有)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는 ‘玄之又玄’ 에서 도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알 수 있다. 무형, 무명의 도는 인간의 감각경험으로 보고, 듣고, 잡을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도는 실체로서 고립되어 만물 밖에 따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모든 만물 속에 내재해 있으며, 만물은 도에 의지하여 그의 존재를 형성한다. 무는 도 자체를 말하며, 유는 도가 만물을 생성기키는 작용을 말한다. 노자는 무와 유를 원만하게 통한 것을 玄이라고 했다. (왕방웅은  “만약 無라고만 말하면, 도는 내용이 없게된다. 즉 사물도 없이 허공에 떠 있는 도가 되어 버린다. 만약 有라고만 한다면, 만물은 그 근원을 잃게된다. 즉 죽은 도가 되어 뿌리없는 사물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玄은 사물의 시작이 되는 도의 오묘함과 사물의 끝에서 되돌아가는 원만한 완성작용이다.” 라고 말했다.)

도는 개별만물에게 고유한 형체를 부여하고, 도와 덕을 부여한다. “노자”에서 만물의 맑고 진실하고 온전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질박함을 지킨다. ,”진실로 순박한 상태를 회복한다.” , “갓난아이처럼 천진난만함을 회복한다.”, ” 천하는 자연히 안정될 것이다.” 등에서 도가 내재한 만물의 질박하고,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디에나 흘러넘치는 도는 질박하고 겸손하고 충만함으로 인간에게 내재한다. 이러한 도의 품성을 부여받은 인간은 덕을 갖추고 있어 위대하다. 그런데 인간사회에서 도가 재현되고 없어져 실도(失道)혼란이가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자는”樸(질박함) 이 흩어지면 형상이 있는 그릇이 된다” 고 했는데, 질박함이 흩어지면서 도가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인위적으로 기(器)들을 분별하고 집착하는 가운데 문제가 발생한다. 노자는 인간의 욕망과 분별지 그리고 인위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것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다. 즉 우리 마음속에 굳어진 인위적인 것들을 비워내고,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방법) 을 제시했다. 노자는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도의 특성, 즉 무욕, 무지, 무위, 무심등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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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9 <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III. 자연성 회복의 존재론 적 근거; 道

노자 철학에서 도는 존재의 근원이며 인생, 정치, 인식에 있어서 가치의 근원이다. 노자는 道를 우주론을 전개하고 그 원리를 인생, 정치, 인식 등에 다양하게 적용했다. 즉, 노자의 도는 포괄적인 개념이다.(형이상과 형이하, 전체와 개체, 실체와 공여, 생성과 소멸, 유와 무, 영원과 변화, 자연과 무위, 차별과 무차별 등 우주가 그 모습대로 존재하면서 모든 것을 구조짓고 변화 생성하여 균형과 조화를 잡아가는 모든 것이 남김없이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그러한 도는 어느 무엇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다. 김중열의 노자 철학 강의 중에서)

노자의 도는 크게 본체론, 인생론, 정치론으로 나눈다. 노자의 중심사상을 정치론과 인생론으로 보는 학자와 본체론으로 보는 학자가 있다. 정치,인생론을 노자의 중심사상으로 본 학자는 김충열과 서복관, 진고웅과 모종삼이다. 이들은 노자의 중심 사상이 우주론 건립에 있지 않았다고 보는 학자들이며, 인생론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서 본체론은 주가 아닌 종의 개념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체론자들은 호적과 풍우란으로 대표되며, 풍우란은” 노자에 와서야 도에 형이상학적인 의의를 부여하였다. 그는 천지 만물이 생겨난 것에는 반드시 그것을 생겨나게 한 원인으로서의 총 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총 원리를 지칭하여 도 (道)라고 하였다.”

노자 에서 道는 생명의 근원이다. 道가 우주만물 어디에나 존재하여 만물이 생명을 무한히 이어나가도록 창조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노자 제 34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用之不勤. 노자 제 6장)

왕방웅은 도의 생명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한의 저편으로부터 무한한 생명이 오고, 또 무한으로 부터 유한한 생명이 연속되어 나간다. 모든 생명은 커다란 변화의 흐름중에서 변천하고 발전하며, 쉬지 않고 낳고 또 낳으며 끊임없이 운행하고 있다. 끊임없는 창조적 진행의 과정이 바로 道이다. (방동미 지음 정인재 옮김 “중국인의 생철학’)

도는 모든 생명체의 원동력이다. 만물은 道로 부터 생명을 부여받고 자기의 본성을 고유하게 키워나간다. 그러므로 자연 만물에는 온갖 생명들의  생기로 충만하다. 온갖 생명들의 생기는 보편생명의 흐름 속에서 서로 교류하고 감응하고 융합하여 각자의 생명에 내재한 가치를 완수해 나간다. 자연과 인간의 생명체의 근원에는 생기 충만한 도가 있다. 생기 충만한 도가 만물을 낳는 다는 것이다. 즉,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노자 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이와 같이 만물을 낳은 도는 모든 생명에 내재하는 보편생명으로서의 도이다. 노자 39장에는, 하늘은 도를 얻어 맑고 깨끗하며, 땅은 일을 얻어 편안하다 고 했다.(昔之得一者.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 도가 낳은 다양한 개별 생명체는 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있다. 도와 만물, 그리고 만물과 만물은 서로의 생명을 통해 유기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도(자연)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생기를 발휘하는 존재이다. 즉 “하늘과 땅(음양의 기운)이 서로 화합하면, 단 이슬을 내린다.” (天地相合, 以降甘露)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은 각기 고유한 존재의 가치를 잘 보유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역할을 하면서 다른 생명체와 보편생명의 흐름속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만물은 고유한 성질과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를 통하고 있다. 즉 만물은 도를 통해서 하난가 되며, “하나를 안고서 천하의 모범이 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보편 생명의 흐름에 함께 참여하여 서로 교섭하며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체를 유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는 위대한 생명력을 발휘하면서도 겸손하며 공평무사하다. 자연의 질서는 균형과 조화의 원칙을 따른다. 도는 만물을 덮어주면서 보호해주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주면서 생명을 키워준다. 이러한 대도는 만물의 호오, 선악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부여해준다. 도는 선과 불선을 나누고 분리시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수용하여 품어 안는 자애로움, 무욕, 허심을 상징한다. 이러한 도는 만물을 생장시키고 길러주지만, 만물을 간섭하거나 주재하려고 하지 않는다. 노자의 생명관은 개별 생명체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즉 개별 생명체가 스스로 자발적인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변화한다는 자율성을 강조한다. 생명체란 ” 신령스러운 것” 천(天)하(下)신(神)기(器)  이기에 인위적으로 간섭하거나 다스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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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8 <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의지는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의지란 인간이 목적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한 생각과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사람들의 의지에는 대개 자신의 개인적인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적인  명예, 부, 권력 등 탐욕을 쫒다보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인간은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 달성했을 때 어느 일정 기간 만족하지만, 그 만족감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목적을 설정한다. 인간의 목적에 도달하려는 연속적인 부담감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욕구에 집착하게 되고,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위적으로 일을 조작하고 부당하게 이익을 챙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는다.

인간의 행위 동기에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욕심을 충족시키려는 의도적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심을 부추긴다. 노자에 의하면 성인의 다스림은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적 혼란과 사람들 사이의 충돌을 완화시키고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노자의 해결책은 우선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주고,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것이다. “의지(뜻)를 약하게 한다.”

욕심으로 가득찬 마음을 비워 무지무욕의 상태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럴려면 통치하는 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무욕의 삶을 살아야 한다. 보통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 이기적인 욕심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재물을 부당하게 빼앗고 다투게 된다.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불화하고 심신이 지치게 되어, 그들이 바라던 잘 살기 위한 삶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자멸하게 된다. 성인은 이러한 이치를 잘 헤아려 사적인 의욕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보다 뒤에 서고, 남에게 양보하고, 자기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의욕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자연히 모두의 총애와 신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마음이 인심(人心) 과 도심(道心) 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人心과 道心 은 서로 분리되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인심은 외물이 감각기관을 통해 마음에 나타나면, 知,情,意가 발휘되어 인간의 마음은 물질, 명예 , 권력, 향락등을 과도하게 욕구하게 된다. 노자는 재물이나 명예에 의해 쉽게 흔들리는 마음을 민심 (民心)이라  불렀으며, “뛰어난 인재와 남다른 재능을 치켜세우지 않아야 사람들이 공명을 다투지 않으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사람들이 도적이 되지 않으며, 욕심날만한 것을 보이지 않아야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을 것이다. ” 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감각적인 것에 민감하게 자극을 받는다. 사람들은 감각적인 요소가 강할 수록 그것에 끌리고 빠져나올 의지는 점점 약해지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색상과 유혹하는 소리 그리고 미각을 자극하는 맛 등 감각적인 요소에 쉽게 빠져든다. 또한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에 몰두하다보면 완전히 그것에 빠져 미쳐버리게 되고,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 도박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를 보면 중독 증세에서 건전한 생활로 회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도심(道心)은 도를 닮은 마음으로 허심(虛心), 부쟁심(不爭心), 心善淵(정심) 우인심(愚人心), 무상심(無常心,百姓心),천하심(天下心)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虛心은 세속적인 사사로운 욕심으로부터 벗어난 평온한 마음상태이다. 노자의 ‘爲道’ 방법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여 허심虛心(虛其心)을 갖는 것이다. 虛心은 마음이 도와 합일하여 정신적 자유를 얻는 경지에 이른 상태이다.  허심은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맑은 상태라 하였으며, 허심의 상태에 이르기위해서는 허황된 생각과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과도한 욕심이 머물지 못하도록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결국은 마음을 비우면, 외적인 욕망으로 자유롭게 되어 경쟁하고 다투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부쟁심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부쟁심은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말함이며, 싸움이 없는 욕심이 없는 상태를 표명하는 것으로, 싸움은 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물론 노자는 정복을 위한 공격 전쟁은 반대했지만,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부득이한 상황에서의 방어전은 인정했다. 노자는 싸움을 하지 않고 모든 것에 잘 순응하는 것으로 “물” 을 꼽고 있다. 물은 낮은 곳에 머무는 겸손함이 있으며, 겸손함에는 배려와 신중함이 있고,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수요하는 포용심이 있다.

心善淵(정심)은 깊고 고요한 물과 같은 마음 상태를 말하며, 노자는 선한 사람을 ‘상선약수’ (上善若水)로 지극히 선하고 너그럽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물의 유연성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가짐과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표현하였다. 노자는 ‘心善淵’ 처럼 맑고 고요하게 살기를 권고한다 깊고 잔잔한 마음, 즉 심선연의 도는 말없이 진실하게 베풀고 품어주어 누구든지 본연의 자연성을 되돌아보게 할 수 있는 은근한 힘을 발휘한다. ‘심선연’ 같은 마음은 낮은 자세로 말보다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마음모양새이다. 즉 ” 말을 아끼고 공을 이룸” 의 자세를 취하거나 “옥처럼 화려한 것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돌처럼 견실하고 소박함”(노자 제 39장) 의 자세를 취하여 다른 사람들의 원망을 사지 않게 하는 것이다.  노자는 다른 사람들의 재물과 지위를 부러워하지않고, 좀 어수룩해 보일지라고 묵묵히 올바르고 순박한 삶, 진실과 맞닿을 수 있는 질박한 삶을 우리들에게 권고했다.

무상심(無常心,百姓心)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노자에 의하면, 훌륭한 통치자는 백성들의 마음을 잘 살펴서 백성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통찰해야 한다. 통치자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백성들의 신뢰를 받는다. 도를 지닌 통치자는 자기중심적인 확고한 고집에 얽매여 있는 마음,즉 ‘늘 그러한 마음에서 벗어나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노자는 ‘늘 그러한 마음(常心)에서 벗어난 상태의 마음을 ‘무상한 마음 (無常心)’ 이라고 했다.

天下心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포용력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통치자가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백성들 각자의 어려움을 이해하게되고 백성들 각자의 왜곡된 성품도 이해하게 된다. 통치자는 비워진 마음, 무상한 마음 상태에서 사람들의 온갖것을 다 수용하여 살피게 된다. 통치자 (성인)는 선한 사람이나 선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하며,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모두 진실하게 믿는 마음으로 대면한다.  성인이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 무상심과 백성심은 곧 온천하와 함께 하는 성인의 포용심을 나타내는 “천하의 마음”(天下渾其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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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7 <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강원대학교,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마음, 그 흔들리는 정체, 어떻게 선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마음은 감각기관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들을 의식적으로 사려 분별 하면서 왜곡된 인지활동으로 인간을 비롯하여 다른 사물들을 분리 시킬 수 있고, 외적으로 받아들인 외물에 탐욕을 부릴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늘 고정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다. 노자는 지모와 욕망에 사로잡힌 감각적 , 표충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본연의 자연성의 마음을 키워 본연의 자연성의 마음을 키워 현동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수행할 것을 권고한다.

감정은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이성보다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생각은 감정을 유발하고, 감정은 생각을 유발하면서 상호 영향을 준다. 분노감, 열등감, 우울감, 모멸감 등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에서 일어날 때 그 감정을 마음먹은 대로 쉽게 가라앉히지 못한다. 결국 좋지 않은 생각이 끊임없이 우리를 지배할 때, 그 생각은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을 발산하여 행동으로 분출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에는 마음을 격하게 하는 부정적이고 좋지않은 감정을 비롯하여 기쁘고 좋은 감정,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감정, 사랑과 존경의 감정 등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마음 상태를 좌우한다.

유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4단 7정으로 표현한다.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는데, 각각 인·의·예·지의 실마리가 된다. 7정은 칠정은 〈예기 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 등 사람이 가진 7가지 감정을 말한다.

敬’ 을 중시했다. 마음은 감정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하며, 약간의 경계의 허술한 틈만 보여도 이기적인 사욕이 침범할 정도로 유혹에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키는데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것을 권고했다.

퇴계의  心統性情圖說에 따르면, 마음이 性과 情을 통섭한다心統性情는 것은 사람이 오행의 빼어난 기운을 받고 태어나며, 빼어난 기운에 의해 오성 (인,의, 예, 지, 신) 이 갖추어지고 오성이 움직여서 칠정이 나온다는 것이다. 무릇 성과 정을 통회하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성, 즉 마음의  본체이며, 마음이 느껴서 통하면 情 즉 마음의 작용이다 .  마음이 성과 정을 통섭한다는 장자의 말은 맞는 말이다. 마음이 성을 통섭하므로 인의예지를 성이라고 하고 또한 인의 의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이 정을 통섭하므로 측은, 수오, 사양, 시비를 정이라 하며, 또한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이 성을 통섭하지 못하면, 그 절도에 맞는 ‘미발의 중’을 이루는 일이없어 [중용을 취할 수 없어 ]성을 무시하기 쉽고, 마음이 정을 포함하지 않으면 ‘중절의 화’를 이룰 수 없어 [화합, 또는 조화를  취할 수없어] 정이 방탕해지기 쉽다.  배우는 사람이 이것을 알고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성을 기르고 정을 단속하면 학문의 방도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보편적 (太極) 가 내재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노자가 말하는 인간 본연의 자연성이 있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삶의 과정에서 체험하는 여러가지 느낌과 감정이 나타나게 된다. 즉 본성안에 있는 性이 情으로 나타나게 된다. 

4단은 인간의 보편적인 선한 본성, 곧 본연지성 (本然之性)이 나타난 보편적 감정이다. 그런데 7정은 기질 지성(氣稟之性)이 나타난 감정으로 상황에 따라 감정이 안정되어 고요할 수 있고, 때로는 감정이  불안정하여 격할 수 있다. 中庸 에는 희노애락 (喜怒哀樂) 을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中 이라하고, 나타나도 절제함이 있는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근본이고, 和는 천하에 두루 이르는 道라고 하여 감정을 무조건 억제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과도하게 喜怒哀樂의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극단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절하라는 의미가 있다. 

기쁠때 우리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행복감, 자신감, 흐뭇함, 희망, 감사함, 뿌듯함이다. 그러나 분노할 때는 적개심, 복수심, 박탈감, 모멸감, 두려움 등의 감정이 격한 상태가 된다.  사랑할때나 혹은 사랑을 떠올릴 때 우리의 마음의 정서는 따스함, 설렘, 평온함, 안정감, 황홀감 등이다. 즐거울 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희망, 안정감, 경이감, 감사함이 피어난다. 슬플때는 외로움, 소외감, 자기 연민등이 나타난다. 모멸감을 느낄때는 수치심, 자기비하, 열등의식, 실망감, 좌절감 등이 나타난다. 우울함의 정서는 짜증, 답답함, 무력감, 권태등이 나타난다. 이와같이 마음속에는 여러가지 감정이 담겨있다.

노자는 ‘마음을 비워라’고 했다. ‘마음을 비워라’는 것은 과도한 욕심과 분별지의 편견에서 벗어나 내면세계를 충실하게 채울 여지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노자에서  감정은 외적환경과 인간관계에 의해 생겨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노자는 격한 감정이나 상대방에게 상처와 실망을 줄 수 있는 감정을 제어하라고 말했다. 즉 지나치게 좋거나 혐오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하늘의 도리에 맞지 않으며, 이러한 감정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불건전한 감정을 초래하기 때문에 감정을 잘 조절하여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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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6 <강원대, 윤금자 교수>

(사진: 장인숙 화백의 동양화 )

<Korea, Prof. Yoon Geum Ja>

동양철학의 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자아(생명)는 육체와 정신, 즉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과 마음은 서로에게 반응하며 영향을 준다.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얼굴을 찡그리거나 무성의한 말과 행동이 격하게 나타난다. 또한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기분이 가라앉을 수 있다. 사람들의 얼굴 모양이 모두 다르듯이 마음 상태( 모습)도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마음은 우리 존재와 똑 닮은 인뭎이며 생명이다. 이러한 마음은 육체(몸)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개별 존재자의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 준다. 즉 마음은 ‘우리 자신’을 나타내는 ‘자아다움’의 핵심이다. 마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몸은 존재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어 시각적으로 살필 수있는 일체의 동작이나 표정, 그리고 감각작용의 기능등을 내포하고 있다. 몸은 욕망도  표출하고 재능도 표출하는 생명활동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몸은 마음의 여러가지 감정을 표현해주는 역할을 한다.

노자는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합해져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정기를 모아 유순해지는 데 갓난아이의 상태처럼 될 수 있는가?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라고 물음을 제기했다. 몸과 마음이 서로 껴 안는다는 ‘抱一’은 서로에게 밀접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노자는 마음과 몸이 떨어지지 않고 합치된 것 (抱一)을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 상태로 보고 있다. 몸은 마음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왕방웅은 인간의 생명, 즉 우리의 몸을 가리키는 形 에 내포된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육체의 가장 원초적인 생리작용. 감각능력, 욕구, 욕망을 가리킨다. 둘째, 인간의 성향, 감정을 가리킨다. 셋째, 생명력있는 열정으로 정의를 위해 의롭게 자신을 바치고 용감하게 인간의 사명을 짊어지는 정열적인 생명을 가리킨다. 즉 形 은 욕망도 표출하고, 재능도 표출하는 생명활동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形은 마음의 여러가지 감정을 표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마음은 생각과 감정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인간은 긍정적이고 선한 정서가 마음에 감돌때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부정적이고 좋지 않는 정서가 감돌 때 불안정하게 보내게 된다. 동양철학에서는 마음에 뿌리를 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를 수양을 통하여 좋은 방향으로 활성화하고, 부정적인 요소를 통제하려고 한다.

수양과 관련하여 마음 心 에 관한 내용은 “시경”, “맹자”, “관자” 등 여러 문헌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시경”에는 “두 마음 먹지말고 염려하지 마라. 상제께서 그대들 위해 임해 계신다.”고 하였다. 소심하여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안심을 주는 내용이다. 마음은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나 마음을 든든히 하여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나타냈다. 맹자에 의하면 마음이란 생각하는 기관이며, 생각을 통해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맹자는 마음을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 보았으며, 마음과 성性 하늘의 긴밀한 연관성을 말했다. 즉 “마음을 다하면 성을 알게 되고, 성을 알게되면 하늘을 알게 된다.” 는 것이다. 맹자는 특히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학문이란 단지 놓진 마음을 찾는 것에 다름아니다”고 하여 학문을 통해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말했다. 즉, 학문을 통해 마음을 잘 다듬어 선한 본성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의 본체와 작용에 대해 거울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불교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자선본용과 수연응용으로 보았다. 마음의 수연작용은 대상이 주어지면 그 대상에 따라 상을 그려내는 거울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마음의 본래적 자성작용은 수연응용과는 달리 대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마음 자체의 깨어있는 마음, 본연의 작용으로써 대상에 다라 변화하지 않고 늘 있는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본성을 자각하기 위해서 마음에 쌓여있는 대상을 비워야 한다. 마음을 비워야 고요함 속에서 혼침에  빠지지 않고 마음 본래의 밝음을 자각하게 된다 (공적영지)는 것이다. 공적영지란 유가와 장자가 말한 (허영불매: 마음에 외적대상이 쌓여있지 않고 깨끗이 비어있는 고요한 상태 ) 와 비슷하다. 이때 마음은 깨어있어 어둡지 않은 허심의 상태이다. 공적영지와 허영불매 그리고 노자의 척제현람은 모두 표충적인 의식 대상을 마음으로 부터 덜어내고 비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가 살아온 흔적이 다양하게 스며있다.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마음의 모양새를 형성한다. 마음에는 인간의 생각과 정서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행위는 마음에서 형성된 생각, 감정, 의지등에 의해 발현된 것이다. 사람들은 별 문제가 없을 때  마음의 별다른 동요가 일어나지 않아 평온한 마음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가득 차 있으면 부정적인 언어와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느끼지도 못한다. 생각에 따라 심적반응, 즉 정서가 유발된다.

사람의 행동기준은 마음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에 담겨있는 다양한 습성들과 생각들이 이기적. 독선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때 사람들은 신경증에 시달리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 개인적,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여러가지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제는 바로 마음 (心)에서 야기된다. 마음에서 야기된 문제는 또한 마음의 의지로 극복될 수 있다. 이와같이 마음은 인간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자,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의지이다. 이러한 인간의 예리하고 섬세한 마음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반응한다. 이에 대해 장자는,

“사람의 마음이란 억누르면 가라앉고 부추기면 우쭐해진다. 그렇게 오르내리면서 스스로를 얽어맨다. (감옥에 갇힌 것 같고, 죽을 것 같다.) 부드럽게 움직일 때는 강한 것도 부드럽게 하지만 각박할 때는 날카로움으로 파고 쪼며, 뜨거울 때는 타오르는 불길과 같고 차가울 때는 얼어붙은 얼음덩이와 같다. 마음의 빠르기는 잠깐 사이에 사해의 밖을 두 번이나 휘돌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연못처럼 고요하고 움직일 때는 훌쩍 하늘까지 치달린다. 마구 치달려서 붙들어 매어 놓을 수 없는 것, 그것이 오직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 라고 장자의 재유 편에서 말한다.

인간은 좋은 감정으로 인해 행복하고 좋지않은 감정으로 인해 불행하다. 마음 치유와 관련하여 인간의 다양한 감정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는 지 살펴보자.

마음의 활동은 “지각작용과 의지작용” 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각작용은 ‘욕심나는 대상을 향하고’, 의지작용은 ‘욕심나는 대상을 얻으려고 추구’ 하는 과정에서 마음은 자연스런 본심을 잃게 된다.

지식은 지각작용과 의지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즉, ‘아는대로 보고, 아는대로 행동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보고 느끼고 행동한다. 즉 인간의 사고 방식은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생긴 고정관념의 유형으로 나타난다. 고정관념으로 사람이나 외물을 판단하고 분별하게 된다. 이와같이 지식과 감정, 그리고 의지는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지식은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외부사물의 자료는 기존의 사유방식에 의해 종합되고 판단되어 하나의 고정관념 즉 지식이 형성된다. 맹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지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식은 도덕적 판단을 가늠해주는 실마리이며, 인간의 본유능력으로 보았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인지능력은 사려, 판단, 분별, 선택의 작용을 한다. 이러한 인지능력은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승과 법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화되어야 한다.

맹자와 순자와는 달리 노자는 “총명과 지모(智謀)를 버리면 백성들이 백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智謀는 거짓과 속임수를 유발하기에 백성들의 마음을 불안정하게 하며 근심에 싸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배우기를 끊으면 근심이 없다” 고 하였다.

사람들은 지식을 통해 외부사물을 자기방식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면서 마음에 주관적인 고정관념이 생기게된다. 주관적인 고정관념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그것은 아집과 편견으로 마음에 굳혀진다. 그러므로 사물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분별지는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확신하며 다른 사람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분별지는 소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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