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usness of Pro-NK Movement in Japan and Need for Reform in Korean Mindset

<Japan: Prof. Lee, Sunhoon>

일본 조총련 문제를 통해서 본 한민족 정신의 복원방법에 대한 제언

 

일본에서 조총련의 뿌리는 매우 깊습니다. 반면에 한국국민은 조총련에 관해서 심각한 정도의 오해와 불인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소개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서 한민족 정신의 복원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후에, 전쟁비용 조달을 위한 국가재정의 파탄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은행예금을 동결시켜 세금을 부과하고 그 외의 재산에 대해서도 고수준의 세금을 부과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일본국민은 빈곤에 허덕이며 당시 일본에 점령군으로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도 공공연한 상황으로 인정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6.25 전쟁 휴전 후의 상황과 흡사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 속에서. 일본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동원되었던 한반도 출신의 한민족은 마치 6.25 전쟁 휴전 중에 북한에게 협력한 부역자인 것처럼 일본인에게 인식되었고, 심지어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에 이르게 된 원인의 하나로서 낙인을 찍으며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으며 심각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동원되었던 한반도 출신의 한민족은 한반도로 돌아올 수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패전으로 나라를 되찾기는 했지만, 당시 한반도는 극심한 빈곤과 함께, 이념대립을 이용한 정치적 혼란과 이승만 정권의 폭력정치, 그리고 북한 김일성의 공산체제 수립으로 인해, 귀국을 결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는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던 세력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붙이고, 일본국민을 세뇌하며 극심한 탄압을 해왔었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던 한반도 출신의 한반도인들도 이러한 세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군국주의 선전선동을 통한 세뇌에 부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수단으로 한 미국의 극단의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이 결합되며, 한국의 독재자들의 통치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 세뇌의 영향은 대한민국 국민의 뇌리 속에 깊숙이 자리잡아 통일은 물론이고, 남북교류에도 치명적인 방해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한 상황 속에서, 1945년에 ‘재일조선인연맹’이 결성되었으나 당시 일본점령군이던 미국에 의해서 폭력주의적 단체로서 지목되어 강제 해산되었고, ‘재일조선통일민족전선’ 으로의 변신을 경과하여 1995년에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즉, 조총련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조총련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일본에 의한 박해와 음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총련이 북한의 지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은 명확한 사실이며, 조총련이 표면적으로 내걸었던 ‘재일조선인의 지위보장과 안전’ 이외에도 북한의 당시의 ‘적화통일을 위한 북한의 하부조직’ 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

한편으로, 일본에 재류하던 한반도 출신의 한민족은 북한의 정책에 대한 동의와 관계 없이,일본의 극심한 차별상황 속에서, 생계유지 뿐만아니라 더 나아가서 생존을 위해서 조총련을 중심으로 결집되어 상호부조하게 되었고, 은행과 교육기관을 만들어졌습니다.

이에 반해서 한국은 군사독재자 박정희 정권에서 있었던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이 있기까지 조총련을 북한과 동일하게 적대시하였으며, 그 후에도 심지어는 조총련을 빙자한 수 차례의 간첩조작사건을 통해서 장기독재를 위한 유신독재정권을 만들어 내는데 한 수단으로 활용하였습니다.

한국정부는 거류민단으로 통칭되는 1946년 설립된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발판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9월 28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 이름을 바꾸며 정식적인 대한민국의 지원민간단체를 결성하였으나, 1994년 4월 20일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으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그 역할은 조총련에 비해서 극히 미미했다고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994년부터는 한국정부가 조총련과 거류민단의 소속여부과 관계 없이, 희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유로운 한국여행과 한국국적을 부여하게 되면서 거류민단은 일시에 조총련의 세력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거류민단의 역전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한 홍보효과와 북한과의 현격한 경제적인 격차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필자는 약 20년 전인 1998년 무렵에 일본 상공인들의 모임 중의 하나인 로터리클럽의 재일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지원파티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파티에서 한 사람이 저에게 자신은 재일교포이며 한국국적취득문제에 관해서 상의하고 싶다고 말을 걸어 왔습니다. 며칠이 경과한 후에, 우리의 예상을 초월한 그의 성대한 접대를 받으며 그와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첫마디는 혹시 ‘조총련이십니까? 혹시 저를 포섭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라는 말 이었습니다. 저의 질문에 대해서 자신은 조총련에 소속하고 있고, 조총련이 설립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북한에 가서 민속음악을 공부하였고, 지금은 일본의 지바시 (千葉市) 주변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8개의 빠징코를 경영하고 있노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질문을 해주어서 무척 고마웠노라고 덧붙이며, 몇몇 한국인을 접했지만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 의심의 눈초리만 갖고 있어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의 상담내용은 자신의 중학생 아들이 축구를 하고 있으며, 프로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인데, 한국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어하는데, 아들의 꿈을 위해서 자신이 한국국적을 취득해야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질문에 대해서 현재 일본국적을 소유하고 있느냐를 확인하고, 일본국적이라면 우선 아들의 한국유학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아들의 한국유학이 그가 소속되어 있는 조총련에 의해서 탈퇴 또는 제명을 요구 받게 되는 것이냐며 반문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조총련도 이제는 거류민단에 소속하더라도 선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며, 그 문제는 상관없으나, 한국의 군사독재시절과 같이 간첩조작사건을 포함한 한국의 안전기획부에 의한 사찰은 없겠는가 하는 것이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런 우려에 대해서 정부관계자가 아닌 신분으로서 장담할 수는 없으며, 과거의 군사독재 시절의 행위들을 고려하면 그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한국인들은 민주화의 실현에 높은 기대를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들을 한국에 유학시키고, 한국에 여행하는 것에는 과거와 같은 위험은 없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아들의 한국유학을 결정했고, 몇 회의 부부동반 한국여행을 하며 연락을 취해왔었습니다.

현재는 그와 연락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가 이런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필자의 의견은 매우 적은 참고사항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구를 만나서 그가 그런 질문을 했다면 누구든지 정상적인 한국인이었다면 필자와 동일한 답변을 그에게 해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아베의 대북강경책의 일환으로 조총련에 대해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는 조총련 건물에 대한 이용료지불을 요구하고, 조총련계열의 학교에 대해서는 일본정부의 지원을 차단했습니다. 은행도 폐지되었습니다.

조총련도 거류민단도 한반도 출신의 한민족입니다. 남북교류와 더불어 조총련과 거류민단 간의 교류도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조총련도 평화통일을 염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었던 재일교포에게 도움을 주었던 조총련의 존재를 인정하고 거류민단과 상호부조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열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에 기반해야 합니다. 통일도 한민족을 감동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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