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ale Movie Attempting Consolation through Movie: “Woman’s Rage”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애를 담론화 하는 방식은 식민주의/신식민주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특히 식민 시기의 역사가 한국영화에서는 가장 드물게 재현되는 이유 중의 하나라는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성을 매개로 하는 억압과 통제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여성주의자이자 독립영화감독인 변영주에 의해서 1991년 세 명의 위안부 출신 여성이 대중 앞에 등장하기 전까지 위안부 문제가 전혀 올바로 기억되지도 않았고 스크린에 재현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변영주의 두 편의 영화 <낮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 2>는 아직 화해되지 않은 식민의 역사로부터 나온 여성성의 탈 식민적 계보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 두 편의 영화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육체에 대한 현재의 개념이 마치 역사적 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의 위안부 문제와 깊이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변영주는 독립영화운동이 마침내 대중주의 민중운동과 결합하던 80년대 후반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화만들기 궤적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변영주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인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제주도에서 태국에 이르는 섹스관광을 추적한 작품이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제주도에서 일본 관광객을 상대하는 한 접대부는 자신의 어머니가 위안부였다고 감독에게 고백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접대부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발견이 계기가 되어 변영주는 위안부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낮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 2>를 만들었다. 김소영 저, <근대성의 유령>, 165 – 166 면 참조.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여성 관객에 소구해야 한다고 당당히 선언했으며 <낮은 목소리>에서 위안부들이 50년간의 침묵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 때, 여성 관객들은 그들의 슬픔을 공감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에 자신도 개입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에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재고는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분명히 나타난다. 여기에서 카메라는 위안소에서 풀려나온 뒤 강제로 중국에 남아있어야 했던 한 위안부의 벗은 몸을 비추는데, 이때 카메라는 그녀의 약하고 주름진 육체를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은 이 영화가 위안부를 민족주의적 수사라는 박제화된 영역으로 방치한 무기력한 민족주의 서사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를 보여준다.

‘화냥년’이라는 말의 유래가 중국에 공물로 바쳐졌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를 가리키듯이 ‘종군위안부’는 일본 식민지가 강제시킨 성노동을 ’양공주‘는 미주둔군 기지를 근거로 한 성산업을 상징한다.

무엇보다도 남한의 군사정부와 일본의 우익정권의 공모야말로 위안부 문제를 침묵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침묵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탈식민 시대 한국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육체의 개념은 위안부 여성과 결부된 수치심과 연접되어 민족주의적 서사를 구성하도록 만들었다. 훼손되고 강간당한 여성의 육체를 은유로 사용해 일본의 강점과 전후 미군 주둔의 이야기를 서술한 1970년대 한국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였다. 이러한 류의 문학적 상상력과 더불어 위안부의 역사는 성 착취 영화에 등장하는 윤간 환상의 배후나 TV 다큐멘터리의 민족주의적 구출 환상을 촉진시키는 지렛대로 전유되었다.김소영 저, <근대성의 유령>,  165면

<낮은 목소리>가 오래 묵은 슬픔을 끄집어내기 위해 영화 내내 고백적 발화에 의존한다면, <낮은 목소리 2>는 오랫동안 억압된 욕망과 욕구를 표현하기 위한 우회 수단으로 노래와 농담을 동원한다. <낮은 목소리>가 종군위안부의 증언을 통해, 즉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역사적 서사를 그들의 관점으로 재기술했다면, 후편은 그들의 일상에서의 농담과 가사를 바꾼 노래를 통해 그 서사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낮은 목소리 2>에서 할머니들은 ‘스스로 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리하여 반복적 농담과 노래의 양식을 통해 그들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희망 그리고 노년의 연애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서사와 시각적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하며 그들은 자신의 개인사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즉 역사적 폭력 때문에 경험할 수 없었던 부분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암 때문에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강덕경 할머니는 감독에게 그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이야기가 남도록 영화를 찍으라고 부탁한다. 김순덕 할머니는 자신이 소처럼 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찍어달라고 당부한다. 심미자 할머니의 경우 다른 아이들이 엄마 혹은 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가족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윤두리 할머니도 다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남편에게 사랑도 받고 싶다고 밝힌다. 그런가 하면 박두리 활머니는 성과 관련된 노래와 농담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적 구조는 사회적 구조 이상으로 역사의 구성물이며 이것은 주로 섹슈얼리티의 억압으로 일반화된다. 그러므로 과거 역사적 기록에서 차용된 수많은 인물들이 빚어내는 사건들은 공적 영역에서의 객관적 사실보다는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음모와 불만 그리고 화해 등의 사적 사실에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를 낳는 일, 그리고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 자신의 성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것은 매우 불온한 행위로서 반드시 규제와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주제를 재확인하는 데 불과한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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