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rch 2017

Life of Park Cheong-Hee and the Incarceration of Park Geun-Hye <이선훈 박사가 본 한국 독재자의 길>

<Japan : Prof. Lee, Sunhoon>

박근혜의 구속과 아버지 군사독재자 박정희 인생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 김계원, 심수봉, 신재순의 6명은 서울 종로구 궁정동 청와대 부지 내에 있는 중앙정보부 소속의 한 안가에 모여 연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는 박정희가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여기에 참석한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고향 후배이자 육사 2기 동기이기도 하며, 당시 직책은 중앙정보부 부장이었고, 지금의 국가정보원 원장에 해당하지만, 군사독재자 박정희 정권에서는 권력 2인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차지철은 1974년 육영수의 사망 후부터 대통령 경호실장이었고, 박정희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이며 정권의 실세권력자로서 행세했습니다.

김계원은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지만 권력의 중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군인, 정치가, 외교관,기업가 출신입니다.

심수봉은 당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인기여가수입니다.

신재순은 모델이라고는 하나 이화여자대학에 재학 중으로 박정희의 접대부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진 10.26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10.26사태로 18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정권의 2인자로 알고 있던 중앙정부부장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는 사실에 놀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대통령이란 사람이 청와대 내에 중앙정보부가 관할하는 안가라는 장소가 있어 자신만이 유흥을 즐기는 시설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딸과 같은 연배의 여대생 접대부와 인기여가수의 접대를 받으며, 향락을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숨겨진 부도덕성에 놀라움을 감추지 하였습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시바스리갈이라는 양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국민도 적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부도덕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한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시절에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1968년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4학년때인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이 공표되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제목인 국민교육헌장으로부터 마지막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까지 암기할 것이 의무화 되었으며, 암기를 하지 못한 학생은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암기해야 했으며, 등교 시에도 암기를 확인 받곤 했습니다.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은 일본의 군국주의시대인 메이지왕이 만들어 공표한 ‘교육칙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습니다.

1969년 국민학교 5학년때에는 주변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과 고려대학교 대학생들의 데모가 격화 되어지며, 대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와 책상 사이에 엎드려 몸을 숨기곤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저희들에게 당황하지 말고 칠판과 자신의 얼굴만을 집중하라고 말했지만, 복도의 창가에는 몇 회에 걸쳐서 사람들이 교실 안을 들여다 보며 지나갔으며, 우리들은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담임선생님의 신변에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고 6학년때까지 지도를 받았다는 것은 저의 반의 학생들은 아무도 발설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1969년은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5.16군사쿠테타 당시의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2기의 대통령임기를 마치고, 3기에도 출마하기 위해 3선을 허용하는 헌법개정을 시도하던 시기로서 제가 다니던 동대문구 제기동의 종암국민학교 주변의 제기동과 안암동 주변은 온통 대학생의 데모로 골목골목에 전투경찰이 대기하고 있었고, 진압에 사용된 최루탄에 의해서 안방에 있던 사람들 마저도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무렵으로 기억합니다만, 시골에서 서울나들이 온 친척들과 일요일에 경복궁을 가던 중에, 광화문에서 사진촬영을 하다가 사진기를 빼앗기고 모두가 인근의 파출소에 가서 사진기를 돌려 받고 필름은 압수당했으며, 광화문일대에서는 함부로 촬영을해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주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국민학교 5학년때에 서울과 부산에서 중학교 입시제도가 폐지되고, 추첨입학제로 변경되었습니다. 당시의 이유로는 국민학교 때부터 혹독한 입시준비에 시달리는 것을 막고, 중학교의 실력을 평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부는 발표하였으나, 떠돌던 소문으로는 저와 같은 학년인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외동아들인 박지만이 공부를 못해서 중학교 입시제도를 철폐했으며, 아마도 고등학교 입시제도도 변경할 것이라고들 말했으나, 그 진위는 지금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1974년부터 또다시 고등학교 입시제도는 변경되어,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뉘어지고, 인문계는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을 공동학군과 일반학군으로 지망에 따라 나누어 추첨으로 진학하였고, 실업계는 학교별로 학생을 모집해, 당시 철도고등학교, 덕수상고 등의 학교들은 매우 높은 입학성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71년에 중학교에 입학하자, 중학교부터는 학생회장을 연대장으로, 규율부장(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우애부’라고 호칭했음)을 대대장으로 불렀고, 전교생이 모인 조회에서는 국기가 게양될 때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합창하였습니다. 연대장과 대대장은 완장과 양쪽어깨끈과 허리끈이 연결된 장구를 교복 위에 입고 조회에서 학생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974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중학교에는 없던 교련과목이 생겼고, 주로 하사관출신의 교련교관들이 교련선생님으로 불렸고, 교복, 체육복에 교련복이 추가되었으며, 일주일에 한시간씩 교련수업을 받았고, 수업내용은 주로 제식훈련이었습니다. 또한 1년에 한번씩 학교별로 교련검열이 있어서 어떤 직위인지는 확실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교련검열관의 방문에 대비해서 학교전체가 사열과 행군훈련을 받았고, 교련검열을 1주일 앞두고는 수업을 전폐하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소문으로는 대학입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기인 학년초기에 교련검열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교장과 교련교사가 열심히 실력자에게 선을 대고 있다는 말도 떠돌았습니다.

1974년 고등학교 1학년 말에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유신정권에 의한 언론탄압으로 동아일보 광고게재금지가 행해지며, 동아일보가 백지로 발행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저희 학급에서는 학급비의 일부를 동아일보에 기탁하기로 학급회의(당시에는 HR이라고 칭함)에서 결정하며 ‘XX고등학교 1학년 X반 일동’으로 조그만 광고를 실었으나, 그 결과로 학생은 특별한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담임선생님은 중학교로 좌천되는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간 시행되어오던 혼분식 장려운동이 강화되어 도시락에 30%이상의 잡곡이 의무화 되었으며,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도시락검사를 위해서 준비가 안 된 학생들은 쌀밥과 보리밥을 교환하는 진풍경도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필자는 1년 재수를 한 후, 1978년에 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자 월요일 1교시부터 4교시가 교련이었습니다. 교련수업은 2회 이상 불참하면, 즉각 강제로 군입대를 해야 한다고 말해졌고, 교련복, 학생모, 명찰, 군화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월요일은 학교가 온통 교련복투성이였습니다. 그리고 1학년 중에는 대학교별로 지정된 군 훈련소에 1주일간 머리를 빡빡 깎고 입소하여, 제식훈련, 각개전투, 유격훈련을 받았습니다. 필자는 11월 말경에 성남의 남한산성에 있는 문무대의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학교의 용원실에 사복경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띠였고, 특정수업시간에는 강의실의 맨 뒷줄에 낯 선 조금 나이를 먹은 듯한 사람이 앉아있곤 했습니다.

필자는 대학에서 지리학과를 다녔기에, 한 학기에 한 번씩 지방답사를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장발족이라고 해서 정부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미국에서 월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이 히피족을 중심으로 행해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만, 필자의 경우에는 이것으로 인해서 재미있는 일화를 경험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1학년 때에 강화도답사를 위해서 학생들은 신촌의 시외버스터미널에 모였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장발족이라고 불리 울 만큼 머리를 기르고 있었으나, 대구출신의 한 학생만이 군인처럼 짧게 머리를 깎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머리를 짧게 깎고 온 학생은 필자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에 대해서 “너희들은 검문소를 통과할 때 장발족으로 적발당해서 모두가 강제로 머리를 깎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후, 우리 모두는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지만, 버스탑승시간이 되어 버스에 탑승하였습니다. 머리를 짧게 깎은 학생은 버스의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버스는 얼마간 달리다가 드디어 강화대교 앞의 검문소에 도착하였고, 헌병과 경찰이 차에 올라 경례를 하며, 주민등록증을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 헌병과 경찰은 한 명씩 주민등록증과 얼굴을 대조하며, 장발단속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우리들의 사이를 통과해 갔습니다. 모두들 약간 안도는 했지만, 맨 뒷좌석까지 간 후에 돌아오면서 단속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뜨리고 머리를 짧게 깎고 온 학생의 앞에 선 헌병은 그에게 하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지만, 이유는 알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지도교수가 함께 하차하여 잠시 후에 돌아 올 수는 있었지만, 그의 설명에 의하면, 군인으로 의심을 받아 정밀검문을 받았다고 말하더군요.

이것이 1958년 한국에서 태어나서 1979년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여대생 접대부와 인기여가수를 거느리고 부도덕한 여흥을 즐기던 중에 자신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간의 취중간의 권력투쟁으로 발생한 말다툼에 참견하다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며,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시대가 종결된 암울하고도 이유가 불분명했던 시대의 한 단면입니다.

오늘 2017년 3월 31일 새벽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구속되었습니다. 박근혜는 국민들이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서 국민들이 이런 일들을 당하며 살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박근혜가 이런 사실들을 체험하고 주변의 고통을 함께 했다면, 국정역사교과서로 자신의 아버지를 미화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군사독재자에게 달콤한 말로 아부, 아첨하는 사람들의 말에만 귀 기울이고,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함구하게 하려는 것이 결국 수많은 비리와 사건 사고를 낳게 한 주범이 되었고, 결국 수인번호 0000가 찍힌 수의를 입고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것과 한편 법 위에 군림하던 제왕적 대통령의 말로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합헌적인 귀결로 이어지게 된 점에는 이견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권력의 최고 자리인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헌법을 무시하고 위배한 지도자는 혹독한 처벌을 받는다는 판례를 남겨주어 후임 대통령에게 교훈이라도 남겨준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일본에서 이선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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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ersecutors Issue Arrest Warrant on Park : The final Judgement Day for Park and her “Yes” Men

Photo from Google Images

3월 31일 (현지 시간) 31일 새벽 3시, 서울 중앙 검찰청, 강부영 판사는 ” 피의자는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 공범 최서원(최순실) 과 피의자의 사익 추구를 하려 했다.” 며 “국격을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음에도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관계까지 부인으로 일관하는등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 고 지적하며, “주요 혐의가 소멸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 고 영장 발부이유로 밝혔다.

법원은 “개인적으로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고 항변해온 피의자에 대해 “최씨와의 공모관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구속 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삼성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울구치소로 향해야 만 한다.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므로서 최순실과 같은 구치소에 수감될 것이지만 공범이기에, 결국 얼굴도 볼 수 없게 철저히 차단하게 될 것이라며 소식통들은 전했다.

SNS 에서의 박근혜 구속을 외치며, 국정수반으로서 304명의 어린 생명을 죽이고도 눈하나 깜짝이지 않은 무자비한 사람을 향해 검찰은 박근혜를 구속하고 이 일과 관련되어 아직 구속되지 않은 박근혜 주변인들도 죄과를 밝혀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박근혜의 경우에는, 피의자 박근혜의 인권도 중요한 것이지만, 삼성동에 몰려들어 법의 집행을 방해하고, 소란을 피워 주민의 생활을 방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도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소시오패스 박근혜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여러 증인에 의해서 상당부분 입증되고 있고, 증거의 인멸과 사건의 원천적인 은폐를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 왔으며, 그간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외면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하며, 국민의 감정을 심각하게 훼손하였으며, 전혀 반성의 의지가 없어서, 아직도 측근들과 증거인멸을 위한 모의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소시오패스 박근혜의 구속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이제 겨우 떠오른 세월호에 있을 미수습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도 소시오패스 박근혜의 구속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 라고 L씨는 말했다.

C씨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독재자와 공생하는 예스맨 모리배들이 국정을 함께 농단했다고 밝히며, “‘예스맨’들에게 둘러싸인 지도자는 자기가 알고 싶어하는 자료만을 표시해주는 계기판만 보며 맹목적으로 비행하는 조종사와 같은 존재다. 그러한 독재자는 독립심과 창조력이 있는 인재들을 축출하고 자기의 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모조리 봉쇄했기 때문에, 파국이 도래하는 날이면 누구도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나아가서 그를 대신하여 지휘를 맡을만한 지도자가 그 조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 사필 귀정” 이라고 K 씨도 자신의 페북에서 말했다.

결국 30일 친박파들은 박근혜를 마지막 배웅을 하게 된 셈이다. 그 들 ‘Yes’ 맨들은 이제 또 다른 Figure Head  를 찾던지 아니면 그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다. 애시당초에 그들에게 있어서 ‘의리’ 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숨을 버려 박근혜를 구하겠다’고 호언 장담한 사람들은 한 동안 이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음지에서 숨어 있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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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to head to prosecutor office to face investigation for official charges; March 31 set as date for determination <김광식 교수의 현장 르포>

 
<Seoul : Prof. Kim, Kwangsik>
3월 30일 (현지 시간) 박근혜는 오전 10:30분 서울중앙법원에 출두하여 영장실질 심사를 마친후, 서울 중앙 검찰청 대기실로 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삼성동 자택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여유있는 미소로 답해주던 때와는 달리 30일 오전 삼성동 집을 나서는 박근혜는 표정은 굳어 있었다.

대통령을 하다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을 당했고, 파면 끝에 삼성동 집으로 돌아왔고, 오늘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 내일 구속될 사람, 지금 박근혜의 운명이다.

 영장실질심사는 판사가 13개 검찰 수사 파일(12만 페이지 이상)을 정확하게 읽어보고, 구속을 주장하는 검사와 구속을 반대하는 변호사의 변론이 있으며, 결국 이 심사의 판결은 그후 피의자의 직접 변론을 듣고 최종적으로는 판사의 판결을 듣는 것으로 끝날 예정이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 전담 판사가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담당하며, 박근혜의 영장실질심사날의 이동경로는 대통령 경호실의 도움을 받아 경호된 검정색 승용차를 성모병원쪽으로가서 거기에서 좌회전을 거쳐 서울중앙지법으로 간다.

거기에서 박근혜는 중앙지검 1001호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며, 결국 박근혜는 중앙지법 321호실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박근혜가 권력에서 내려오니 세월호는 올라왔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 이야기는 박근혜와 그의 측근 해수부 장관 등이 현직에 근무할 때, 박근혜의 참모들이 박근혜 주위에 있을 때 세월호는 인양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파면된 후 며칠만에 세월호가 ‘인양’이 되었다.

세월호 조타수 고 오영식 씨의 세월호 참사 당시 양심고백 편지가 2년 4개월 만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승객 구조에 미흡했던 점을 유가족에게 사과한 뒤 세월호 2층 화물칸 일부가 철제로 된 게 아니라 천막으로 돼 있어 빠르게 침몰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침몰 원인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선체 구조를 그려 넣기도 했다. 이렇게 바다속 선체에서는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육지에서는 ‘7시간’ 동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박근혜의 대규모 현금 동원력은 얼마나 될까? 그 액수는 박정희와 최태민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박근혜와 최순실이 알고 있다.

그밖에도 박과 최의 인척들의 현금 분산상환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천문학적 액수라고  말한다. 스위스 은행에다 저금한 것,  박정희와 최태민만이 알고 있었던 이 수많은 액수의 회사주식과 건물과 땅과 저축액수 등 이것이 원조자금이 되어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강남구 삼성동 집도 사주고, 국회의원 선거운동 자금도 대주었다.  이 돈은 반드시 몰수해서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셋째, 박근혜의 구속 여부는 31일 새벽에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사안이 워낙 중대하고 검토할 서류만 12만여 쪽에 달한다. 법원이 보통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혐의를 제대로 소명했는가,구속의 필요성이 있는가, 구속 사유가 있는가 등이다.
구속 사유를 판단할 때는 주거가 정해졌는지,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는지, 도주의 우려가 있는지 등이다. 

혐의를 부인하면 보통 증거 인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로 영향력이 없을 수 없다. 특히 현재 청와대 비서관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 청와대에서의 영향력은 아직 있다고 봐야 한다. 관련 자료를 없앨 가능성이 큰 것이다. 혐의는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아직도 미흠한 점은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한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혐의 소명이다. 특검까지 수사에 참여해 방대한 조사를 한 것을 두고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드물 다. 구속의 필요성에 있어서는 최순실과 이재용 등이 모두 구속된 상태여서 뇌물을 받은 정점에 있는 박근혜가 구속되지 않는다면 법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가장 굵직한 혐의는 단연 뇌물수수 혐의이다. 특검팀은 박근혜와 최순실이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를 돕는 대가로 433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모든 상황과 범죄 사실로 박근혜가 구속되어야 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구속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박근혜는 현재 검찰청 10층에 위치한 임시 유치시설에서 본인의 구속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31일 구속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기 의왕시에 위치한 서울구치소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전례에 따라 경호는 청와대 경호실이 담당하지만 차량은 검찰 측 차량을 타고 이동한다. 구치소 수감 시 박 전 대통령은 신원확인, 신체검사 등 피의자와 동일한 입소절차를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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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9<조준희 기자>

 

인생의 조우 내 동생 (조우편)

 

제 낚시와 인생에서 아버지 외에 빠질 수 없는 한사람이 있는데 바로 동생이다. 제 페이스 북 친구 분들 중에서도 제 아우와 페친을 공유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어릴 적부터 인생 동선이 같아서 서로 친구들을 많이 공유했는데 온라인 세상까지 따라 붙을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이 친구에 대해 잠깐 소개하면, 제가 주로 하는 대낚시는 저보다 조금 약하다.
그 대신 미국서 시작한 루어 낚시는 그가 필자보다 강하다.

루어낚시란 배스, 가물치, 쏘가리등의 공격성 있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가짜 미끼인 루어를 달아 릴이 달린 낚시대로 걸어다니거나 배를 타고 하는 낚시 방법이다. 제가 꺽지를 잡은 사진이 루어 낚시다.

동생은 실제로 미국서 1미터 50센티 이상의 메기를 잡아서 LA타임즈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겁 많은 새 가슴의 소유자인데,  낚시에서는 대어를 낚는 조선이 되었다.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난 후, 필자는 동생의 낚시 실력을 인정하고 루어 낚시를 동생으로 부터 배웠다. 동생은 필자와  젊은 시절 사업을 함께 한 시절이 있는데 그때 인생에서 절대 절명의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기는 사건이 벌어진다. 어릴 적 비원사건은 사건도 아니다.

동생이 총각시절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필자가 갓 결혼하여 부모님과 함께 살 때라 저와 함께  주말 새벽이면 진천에 있는 초평저수지로 낚시를 떠났습니다. 원래 선수들끼리 조행을 떠나면 먹을 것도 요기만 할 정도로 가지고 간다. 만드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붕어 잡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는 가장 잘 맞는 낚시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그때 필자는 신혼인 27,8세 때인 질풍노도의 20대 때이니 모든 것이 공격적이며 적극적이었다.

목표가 정해지면 앞뒤 옆 안 가리고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인데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몰라서인지 사업이든 낚시든 같은 패턴이었다.

동생과는 주로 좌대(물위에 낚시할 수있게 고정시켜논 설치물)를 타고 낚시를 하는데 설치해 논 자리가 맘에 들지않으면 “야! 뽑자!” 하고 고정시켜 논 4개의 쇠 폴대의 나사를 풀어 뽑아서 긴 쇠 폴대를 삿대로 삼아 우리가 원하는 위치로 옮겨가서 고정을 시키는데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다.

매주 가는데도 좌대 주인은 갈 때마다 수면 한가운데로 좌대를 옮겨놔서 갈 때마다  다시 얕은 수초가로 옮겨다 놓는 중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혼자거나 다른 사람이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동행한 조우가 저의 영원한 부하, 동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좌대 주인의 불평도 마다하지 않고 매주 새벽에 충청도까지 달려가서 중노동을 감행했는지 이유가 궁금하죠? 그것은 타 조사들에 비해 조과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엔 지금처럼 월척이 흔치 않았다. 어부가 월척을 낚았다면 그 날은 온 동네가 떠들썩하고, 동네의 모든 낚시꾼들의 우상이 되고도 남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와 동생 조선은 매주 각각 월척 두세 마리씩은 꼭 잡아왔기 때문에 어부로 등극하신 아버지도 상당히 놀라셨다. 지금은 그 시절처럼 붕어를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큰 붕어가 많이 잡힐 때는 사업도 순탄하게 잘 돌아가고 흥행한다.
우리 형제는 사업도 상승세를 타며 회사도 우후죽순 커 나갔다. 최근 존경하는 형님 한 분이 필자에게  “준희야~인생은 운7 복3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경험을 통해 지난 삶을 회상해볼 때, 그 말이 참 맞다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필자의 사업 아이템은 아이들이 즐겨 먹던 지렁이 모양의 젤리인 꿈틀이였지요. 대한민국 최초로 판매를 시작하고 대기업들이 저희 제품을 모방하여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 상품이었다.

살아있는 지렁이로 월척 붕어를 낚고,젤리지렁이로 돈을 낚았으니,결국 낚시를 통해 세상을 낚는 법을 배운 셈이다.

그러나 제 인생의 오점을 남기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다음 편인 “마늘 밭의 추억” 편을 기대해 보시라

물요일엔 낚시대를 챙기세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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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Wall, Unity Door” The Global movement For the PyeongChang Winter Olympic 2018

권영중 “2018 평화의벽, 통합의 문” 건립위원장

“2018 평화의 벽, 통합의 문 ”  건립을 위한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한인 또는 한인의 후손인 모든 사람이들이 참여하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권영중 “2018 평화의 벽, 통합의 문” 건립위원장에 의하면, 동계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이 열리는 평창에, 개회식과 폐회식이 열리는 곳을 향해 가는 길목에 평화를 염원하는 벽인”평화의 벽, 70m 벽이 이어진 곳에 통합의 문”이 건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의 한을 넘어 평화통일을 꿈꾸는 염원을 담아 강원도민일보와 강원도가 함께 하는 이 운동에는 우리가 어디에서 살던지 관계없이 한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옛부터 힘든 일이나 경사가 있을 때 함께 힘을 모아 고난을  극복하고, 축하해주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함께 하는 이 운동은 우리의 작은 성의를 모아 고국에 힘을 보태는 마음의 표시이자 우리 한인 2.3세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모국에 대한 사랑을 갖게 하는 우리 한인 1세들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정신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동계 올림픽에서 세계인들이 평화의 벽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과 여러분의 염원이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고 기억되어지며 훗날 여러분의 자손들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이름과 함께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글 귀를 발견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기쁨과 감격, 인생에서 값진 교훈이며 의미일 것 같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또 세계인들이 오래동안 기억할 수 있는 한국의 태백산맥 아래에서 펼쳐질 스포츠 축제에 우리 모두 힘을 모았으면 싶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을 떠나 세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지만 우리의 본향은 모두 조국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내년 2월 열리는 동계 올림픽에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어 행사를 진행하는 모든 기관과 단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생각이 든다.

강원대학교 전 총장이며, 현 화학공학과 교수인 권영중”평화의 벽, 통합의 문” 건립위원장은 산천이 수려한 강원도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는 현재 “춘천 마임 축제”이사장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평창, 정선, 강릉에서는 열리는 동계 올림픽, 남한의 최 북단에 위치하고 북한의 최 남단에 위치한 강원도, 그리고 평창 올림픽이 열리는 분단도의 아픔은 이제 세계를 향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려주고 있다.

한 사람당 5만원의 기부금으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동판과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아 평화의 벽에 새겨 기록으로, 기념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후손들에게 남기는 정신적인 유산으로 줄 수 있다면 이미 여러분은 값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참을 원하시는 분은 누구나 직접 웹싸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기부를 할 수 있다. 여러분의 이름과 사랑하는 자식들의 이름으로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가 세계의 모든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귀한 한 방울의 생명수가 될 수있다면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인가 생각해 보라.

http://www.peacewall2018.or.kr/user/sub3/01.php

사진: 강원도민 일보

일반참여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대한민국 국민의 평화메시지를 세계에 펼쳐집니다.

The Peace Wall(평화의벽) 건립에 국민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1인 5만원으로 평화의벽 건립의 주인공이 됩니다.

문의

The Peace Wall(평화의벽) 건립위원회 033 – 260 – 9331 ~ 3

E-MAIL : [email protected]

후원계좌 안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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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ing And Questioning of Historical Consciousness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2<은우근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Gwangju : Prof. Woogeun Eun>

왜 부끄러움 인가?

얼마 전 한 작가는 말했다. 5.18은 세계사에서 만날 수 있는 권력이 저지른 수많은 잔혹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많은 사람이 그의 발언에 대해 성토했고, 그는 곧 사과했다. 이 작가의 인식을 비난하지만 우리도 똑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역사 인식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작가 류의 시각은 추상적  역사인식에서 비롯한다. 역사는 단순히 객관적 사실의 집적, 곧 데이터의 누적 내지 체계적 정리만은 아니다. 역사는 결코 숫자나 통계, 단편적인 사실들의 반복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런 역사적인 패러다임을 통해서는 역사 속에서 인식된다. 역사는 단순히 객관적 사실의 집적, 곧 데이터의 누적 내지 체계적 정리만은 아니다. 역사는 민중의 고통과 숨결을 느끼고, 고난을 통한 인간의 교양을 인식하기 어렵다. 행방 불명자, 암매장, 발포 책임에 대한 규명을 추구해야 하지만 가해-피해 관점의 데이터에 매몰되면 이 작가의 인식과 같은 형태의 오류를 범하는 것은 물론 5월 민중항쟁의 참다운 실상을 간과하게 된다.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5월 광주 민중항쟁, 5.18에 대한 이런 류의 추상적 인식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5월 민중항쟁의 현재적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5월 민중의 구체적 체험속에서 5.18을 인식하여 “왜 아직도 5.18인가?” , ‘ 왜 5.18 로 돌아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민중과 교회지도자들의 증언과 참회, 야수적 폭력에 대한 공포 체험, 그 공포를 물리치고 하나가 되었지만 끝까지 하나이지는 못한 부끄러움의 체험이다.물론 이 부끄러움의 정서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참여 등 어떤 계기를 통해 자부심과 긍지로 전화 하기도 했다. 공포, 부끄러움, 죄책감, 부채의식과 자부심, 긍지 등 서로 모순되면서도 연관된 심리와 정서가 5.18 민중항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정서적 체험안에 5월 민중항쟁의 또 다른 진실이 있다. 또 이런 정서적 체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추상적 역사 인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두환 집권 기간중 초래된 기록과 자료 말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겨져 한층 의미 있다고 보인다. 이런 연구가 계기가 되어 5.18 연구에서  새로운 방법론의 더욱 촉진될 수 있으리라 여긴다.

5월 민중항쟁과 그 이후 실천에서 교회와 민중의 가장 핵심적이며 공통된 도덕적 정서와 도덕적 실천의 열쇳말을 바로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있다. 부끄러움의 정서는 공간적으로 특정 종교적 신앙의 소지여부와 관계없이 또 교회 지도자나 평신도 등 지위나 직책에 상관없이, 5월 민중 누구에게나 해당되며, 또한 시간적으로는 5.18 이후 30년이 지난 오늘이나 앞으로의 역사에서도 의미를 가질 역사적 반성이자 깨달음으로서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신진욱(사회운동의 연대 형성과 프레이밍에서 도덕감정의 역할: 5.18 광주항쟁 팸플릿에 대한 내용분석 : 경제와 사회 73. 2007. pg. 227-228)은 5월 민중항쟁에서 부끄러움과 같은 “도덕감정이… 결정적인 의미” 를 지니고, 5월 민중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감정은…분노와 부끄러움, 희생과 성스러움의 감정” 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어분석적 방법을 도입한 신진욱의 연구는 본 연구를 위한 가설의 타당성을 강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

본고의 전개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역사철학적 측면의 연구, 그리고 5.18 민중의 정서적 체험과 관련한 연구와 같은 여러 선행연구와의 관련속에서  본 연구의 방법과 관련한 연구와 같은 여러 선행연구와의 관련속에서 본 연구의 방법과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5.18 당시 민중과 교회의 역사적 경험을 부끄러움, 죄책감, 부채 의식이라는 정서의 형성을 중심으로 재구성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5.18의 의미와 5.18공동체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할 것이다. 결론부에서는 하나의 역사의식으로서 부끄러움, 죄책감, 부채 의식의 현재적 의미를 검토하고 5월 민중과 교회의  과거 실천을 토대로 지역 시민 사회와 교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 곧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5월 민중항쟁의 진정한 의의는 단지 과거의 위대한 실천으로서만이 아닌 현재에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질문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글은 시론적 성격을 띤다.

연구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5.18의 ‘영성화’에 많은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영성화를 정의하는 것은 이 글의 몫이 아니고 그것을 주장하는 분들의 몫일 것이다. 다만, 상식적 견지에서 5.18의 영성화는 5월민중과 교회의 역사적 실천과 그 한계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오늘의 현실에서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연관되리라 본다. 본고가 5월 민중항쟁의 위대한 실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그것을 ‘영성화’하는 데 단초라도 제공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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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 <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Ja>

노자의 철학적  과제는 도가 실종된 혼란한 사회상과 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행동을 지적하고 비판하며 이를 해결하려는데 있다. 노자의 도와 덕은 본체론(존재론).인생론. 정치론에서 핵심 개념으로 작용하며, 현실정치와 인생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즉, 노자는 도와 덕의 기준으로 만물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의 철학적 목적을 다음과 같이 이루려고 했다.  첫째, 노자는 현실사회에서 본연의 자연성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이 도에서 벗어난 “失道”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둘째, 노자는 본연의 자연성으로 복귀하기 위한 방법으로 “為道”를 제시하여, 인간이 “為道”를 실천할 수 있게 되길 바랬다. 셋째, 노자 철학의 궁극의 목적은 형이상학적인 도에 근거하여 인간의 본연적인 삶 즉 도와 합일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노자는 “為道”의 모범이 되는 성인 “為道者” 을 제시하여 모두가 하나가 되는 “玄同” 사회를 이루기를 기대했다. 노자는 이러한 철학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위자연”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과 분별지 그리고 예법과 제도로 인해 도와 덕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의 왜곡된 마음과 사회현상을 무욕.무지.무위에 의해 도를 구현하여 본연의 바람직한 상태로 회복시키는데 있다.

“마음에 관하여” 의 제 1절 “마음의 의미” 에서 각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주는 마음이란 무엇이며, 마음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본다. 첫째, ‘서양철학의 마음’에서 인간의 본성과 마음 그리고 감정의 연관성을 논의하며, 인간의 내면 (마음) 과 외부 세계의 연관성에 관하여 논의한다. 자연과학적 심리학과 현상학적 심리학을 대비하여 논의하고 데카르트의 인간(마음, 자아)과 세계 (몸)를 하이데거의 인간과 세계를 대비하여 논의한다. ‘동양철학의 마음’에서 지식과 감정 그리고 의지가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본다. 인간이 지식과 감정 그리고 의지를 어떻게 다듬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탐욕적 인간 혹은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논의한다. 인간의 생각은 감정을 유발하고, 감정은 생각을 유발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며, 생각과 감정은 의지를 키워 행동을 분출하는 것을 살펴본다. 특히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감정에 대해 논의한다.

도는 모든 생명체의  원동력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생기 충만한 도가 내재해 있다는 것과 도와 만물 그리고 만물과 만물은 서로의 생명을 통해 유기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상호 관련성과 도는 만물밖에 있는 실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만물에 내재하여 만물을 만물답게 해 주는 근본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물과 만물은 서로의 생명을 통해 유기체적인 관계를 맺고있는 상호 관련성과  도는 만물 밖에 있는 실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만물에 내재하여 만물을 만물답게 해주는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道와 인간”에서 만물은 道의 작용과 효용으로 道의 모습을 닮은 자연성을 유지하다가 점차 道로 부터 멀어지면서 왜곡된 상으로 변모하게 되는 원인을 다룬다.

인간이 왜곡된 상에서 고정불변하게 굳혀지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비우고 도를 체득하여 다시 생성과 조화 그리고 통일을 이루는 도, 즉 근원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道 가 인간의 삶과 행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천적인 측면에서 논의하며, ‘인간의 본성’에서 인간은 어떻게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는 지 논의한다. 즉, 인간이 자신의 근원인 ‘도를 행위의 규범으로 삼아 도를 닮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는데, 인간 스스로 본연의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는 지, 그리고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失道’ 에서 ‘마음고통’에서 탐욕과 분별지 그리고 예법과 제도가 인간의 마음에 어떤 뭄제점과 고통을 주는지 살펴본다. 첫째 인간의 탐욕의 원인이 무엇이며, 탐욕이 자기 자신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사회를 혼란스럽게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 인간의 주관적인 분별지와 상대적인 가치가 인간의 마음과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토로하며, 셋째, 사회의 예법과 규범등 외부적인 간섭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為道, 에서는 為道에 이르기까지의 길, 無欲,無知를 논하고 인간의 소유욕, 과시욕, 지배욕 등 탐욕을 제거하여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논의한다. 즉 욕심과 인위조작의 근원이 되는 외부사물로 마음이 향하는 것을 차단하여 내면의 근본을 돌이켜 ‘위도’로 나아가며, 위도에서 ‘明’에 이르고, 또 인간의 고통과 근심은 “為學”의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위도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허 와 정을 논의한다. 허정은 맑고 고요한 인간 본래의 자연성이다.

為無為 (法自然)의 이치를 논의하며, 무위를 따르는 삶에서 탐욕, 지모, 제도등 인위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무위의 특성을 논의한다. 자연을 따르는 삶에서 노자에 제시된 자연과 인간이 인위적인것을 제거할 때 마음은 허심의 평온한 상태가 되며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무위의 결과 인간은 자연에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다 고 보여준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더 많이 가지려하는 우리는 어쩌면 가장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적인 무위의 길을 찾지 못하고 사회풍조에 따른 이상과 현실을 쫒느라 마음에 병이 생기기 때문이다. 무위 자연적인 도를 깨닫고 마음에 있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 오늘도 마음에 쌓이기 쉬운 “為” 를 내려놓는 하루를 생각해 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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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clear Waste Transfer from Japan to Korea and the Danger Behind Nuclear Plants <이선훈 박사: 일본, 한국을 말하다>

<Japan : Prof. Lee Sunhoon>

일본의 방사능피폭 쓰레기의 한국내 유입문제와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

지난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부 지역의 태평양연안에서 강도 9.0의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발생후, 그 원인으로 대형 해일이 발생하여 1만 8천명 이상이 사망하고 행방불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자연재해가 발생했습니다. 일본의 모든 방송을 통해 해일이 해안지역의 제방을 넘어 시가지와 주거지를 집어삼키고, 하천을 역류하여 내륙으로 급습하였으며, 피난길에 나선 차량을 덮치는가 하면, 주변의 생활터전을 모두 파괴하고 해일의 후퇴에 따라서 대부분의 건물과 선박들이 함께 휩쓸려가는 모습을 TV화면을 통해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란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필자는 당시에 나고야에 살고 있었으며, 매그니튜드 9.0을 초과하는 지진에 놀란 상황에서, NHK와 요미우리계열의 TV방송을 통해서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3월 11일 오후 4시경, TV화면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는 광경으로 전환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4기의 발전설비 중의 하나가 폭발하는 광경을 목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2호기의 폭발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원전의 폭발광경은 이후에 일본은 물론이고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정부가 이 광경을 보도 규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의 원인은 해일에 의해서 지상에 있던 송전선이 쓰러지며, 주전원이 차단되고, 예비전원인 자가발전설비가 수몰되어, 원자로와 주변의 사용이 끝난 연료봉의 냉각시설에서 냉각수의 순환이 멈추면서 발생한 것으로, 충만해진 수증기를 방사능과 함께 배출시켜서라도 폭발만은 방지하려 하였으나 이 또한 밸브의 고장과 관리자의 판단오류로 폭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에 의해서 방사능이 대량으로 유출되었으며, 소방차를 비롯한 급수장치를 동원하여 원자로가 본격적으로 냉각되기까지는 거의 3일이상이 경과했습니다. 원전의 폭발이 있던 시점을 전후로 원자로내에 있던 연료봉은 고열로 녹아 내리기 시작했고, 녹아 내린 핵물질은 원자로를 뚫고 지하로 유입되었습니다.

원자로의 외부 살수에 의해서 냉각이 시작되기까지 약3일간 대량의 방사능이 주변지역으로 유출되었고, 사태수습을 위해 투입되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심각한 방사능피폭을 입었으며, 주변지역의 주민들도 해일에 의한 도로 파괴로 피난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방사능피폭에 처해 있었습니다. 방사능 피폭 주변의 주민들은 동 일본대지진의 피해주민과 함께, 일본의 각 지역에 이주하여야만 했고, 동일본대지진의 피해주민과는 달리 생활기반을 거의 잃어버렸으며, 귀환의 희망 또한 거의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1년 6개월이 경과한 2012년 12월 제2기 아베내각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복구사업이 시작되었으며, 방사능피해지역의 일부에서는 방사능피폭에 대한 물청소작업이 진행되었고, 이와 더불어서 대량의 방사능피폭 폐기물들의 처리문제가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로 대량 반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이들 방사능피폭 폐기물의 한국 내 유입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2017년 봄부터, 방사능피폭지역에의 피난지시가 일부 해제되어, 본격적인 주민의 귀환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아베정권의 방사능피폭지역에 대한 물청소작업으로 시작된 부흥사업은, 소멸 또는 인체에 영향이 없는 농도에 이르기 까지 최소 30년이상이 경과된다는 방사능물질의 특성을 고려하면, 작업자는 물론이고 귀환자들에게도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의 아베정권은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방사능피폭지역에의 귀환을 서두르는 주요한 이유로는, 일본 전국에 산재해 있는 원자력발전소의 재 가동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고 추론되고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방사능피폭지역에의 귀환상황을 살펴보면, 귀환자의 대부분은 방사능피폭에 의한 영향이 자신의 세대에만 국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노인층이며, 어린 자녀를 가진 가정은 피난지에서 생활터전을 마련하여, 귀환을 포기하고 있어, 방사능피폭지역의 부흥사업을 본격화하려던 아베정권의 계획은 심각한 차질을 빗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부가해서, 올해 2017년 봄부터, 원자력발전소의 입지지역을 제외한 상대적으로 낮은 방사능피폭지역에의 귀환을 본격화하려 하고 있으나, 이 또한 계획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실정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방사능피폭지역에의 귀환과는 달리, 2017년 봄부터 귀환이 시작되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방사능피폭을 입은 지역이며, 귀환자의 대부분인 노인들은 귀환 후에, 자신들의 새로운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심각한 방사능피폭을 입은 가재도구와 물건들을 폐기물로 처리할 것이며, 이로 인해서 대량의 방사능피폭 폐기물, 즉, 쓰레기의 방출과 이동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방사능피폭 쓰레기에는 생활쓰레기뿐만 아니라 산업쓰레기를 포함해서 부품과 정밀기계 등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아베정권은 방사능피폭 쓰레기에 관한 명확한 원칙을 수립 하지않고 있으며, 방사능 피폭 쓰레기의 처리에 막대한 비용의 소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부 악덕업자들의 이해관계로 한국에 유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로 발생된 방사능피폭 쓰레기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방사능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고수준의 방사능피폭 쓰레기의 한국내 유입은 한국인의 건강에 대대손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한국인의 유전자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국내유입 시에는 발견이 되더라도, 처리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한국에 유입되는 모든 일본발 수입품에 대한 방사능검사만으로는 근본적인 차단이 불가능합니다.

방사능피폭 쓰레기의 한국내 유입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일본국내서 한국행 수출품에 대한 방사능검사를 수입허가조건에 의무화하고, 수입조건에 한국내에 도착한 물품에 대한 방사능검사에서 일정 수치를 초과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정부가 즉각 반환을 보증하는 조건을 부가하며, 수입품에 대한 방사능검사에서 일정 수치의 이상의 방사능농도를 가진 물품을 수입한 업자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만 할 것입니다. 여기에 부가해서, 일본 이외의 다른 국가를 우회하는 수입경로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은 주로 2017년 봄부터 본격화될 예정인 방사능피폭지역에의 귀환에 따른 방사능피폭 쓰레기의 한국내의 유입의 방지가 시급한 문제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점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아직도 대량의 방사능물질을 방출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는 현재, 원자로 내에 상당량의 핵 연료봉과 녹아 내린 핵물질이 존재하고 있으며, 원자로를 뚫고 나와 지하로 유입된 핵물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원자로를 일정한 온도로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냉각수는 모두 핵물질과 직접 접촉하게 되며, 방사능에 오염된 대량의 냉각수는 처리와 보관에 한계가 있어, 다시 원자로에 투입되어 사용되고 있어, 극히 높은 수준의 방사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수준의 냉각수의 일부는 파괴된 원자로로부터 누출되어 지하수와 혼합되며, 이미 지하에 유입된 핵연료봉이 녹아서 지하에 유입된 핵물질과 접촉한 지하수와 함께, 바다로 유입되고 있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해안은 아직도 심각한 방사능오염지역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해양은 쿠로시오난류에 의해서 바닷물에의해 희석이 빨리 진행되고 있지만, 해저층의 퇴적물질에는 상당량이 집적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일본산 해산물에 관해서도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원자로의 냉각에 사용된 냉각수는 농축하여 보관하거나 희석하여 해양에 유출시키는 방법 밖에 없으나, 원자로의 분해폐기에는 30년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냉각수의 사용기간이 30년이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은 일본의 방사능물질의 국내유입문제를 앞으로도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이며, 이에 관한 정확한 정보공개를 일본에게 요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문제를 보며,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할 것입니다. 원자력발전은 현재까지 인류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라는 이유로 한국도 많은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주장하는 정권이 있지만, 이러한 정권의 주장에는 상당한 허위와 거짓이 숨어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에는 입지선정과 주민대책을 위해서 사용되는 자금의 대부분이 정부의 예산에서 지출되고 있으며,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된 고수준의 핵폐기물의 처리에 관한 비용은  정부의 계산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10만년이상의 보관이 요구되는 핵폐기물 종말처리장의 장소조차도 선정되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자력발전은 그 어떤 에너지보다도 값비싼 것이며, 위험성은 비교할 수도 없이 막대한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막대한 위험성과 비용에도 원자력발전소의 증설을 주장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국민의 엄격한 감시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2017년 5월 9일에 선출될 대통령과 신정권은 일본에 대해서 위안부문제와 한일군사정보 공유협약문제를 포함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고, 일본의 방사능물질의 국내유입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조치를 시급히 결정하며, 막대한 위험성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원자력발전소의 처리문제를 장기적인 에너지정책과 병행하여 수립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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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ssas Mayor Hal Parrish to Try for Del. Jackson Miller’s Spot

3월 27일 (현지 시간) 현 매나사스 시의 시장인 Hal Parrish 가  버지니아 하원 의원(지역구 50) 보궐 선거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나탈리아 테일러, 매나사스 시의 선거등록 사무소 부 소장은 현 50지역구 하원의원인 Jackson Miller씨가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 순회법원 서기직에 출마하므로서 공석이 생겼으며, 이에 오는 30일까지 공납금을 제출하는 사람에 대해 4월 초에 출마자의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Parrish 시장은 매나사스 시장직에 연임되었으며, 지난 2015년 선거때 버지니아 상원의원(지역구 29)에 출마했으나 민주당의 McPike 의원에게 패했다.

현재 민주당에서 Lee Carter씨가 보궐 선거를 위해 뛰고 있는 유일한 후보이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Parrish 시장이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면 그는 그의 아버지 Del. Harry J. Parrish (공화당, 2006년 폐렴으로 사망)의 자리를 다시 되찾게 될 것으로 보이며 매나사스, 매나사스 팍,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 서부 지역에서 다시한번 Parrish 부자의 삶을 되 새기게 될 지도 모른다. 아버지 Parrish 의원은 한국전과 비엔남 전에 참전한 용사이기도 했다.

아버지 Parrish  하원의원도 매나사스 시의원에서, 시장, 그리고 주 하원의원의 길을 걸었으며, 아들인 Parrish 시장도 주 하원의원에 출마하므로서 지역구는 벌써부터 출렁이고 있다.

이번  경선은 6월13일에 있을 예정이며, 11월7일 보궐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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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7< 이강화 교수>

Movie : A Good Year

<Daegu, Prof. Lee, GangWha>

5. 영화에서 문학으로

1960년대 텔레비전 시대 작가들은 구텐베르크식의 활자 문화를 무력화시키는 영상매체의 막강한 위력 앞에서 소설의 위기와 죽음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책장을 넘기는 대신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켰고 허구를 읽는 대신 사실을 보는 편을 택했다. 일관성과 연속성, 그리고 인과성과 단성성에 의존해오던 활자문화는 이제 복합성과 불연속성, 그리고 찰나성과 다성성을 특징으로 하는 영상매체와 불안한 심정으로 경쟁해야만 했다. 마샬 맥루헌의 말처럼, 문어적인 활자문화는 이제 구어적이고 시각적이며 청각적인 영상문화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맥루언이 예언했던 것과는 달리, 활자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점에 나가보면, 사라지기는커녕 하루에도 백여 권의 신간서적들이 쏟아져 나와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런데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여전히 불황이고, 순수문학 작품들은 더더욱 팔리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책을 읽을 시간에 사람들은 이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한다. 그리고 예전에 소설을 읽으며 웃고 울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이제 스크린을 보며 웃고 운다. 영상매체는 마치 예전에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가상의 리얼리티를 창조해 제시하고, 시청자들은 그것을 실제 현실로 착각한다. 그러므로 소설은 이제 살아 남기 위해서 강력한 라이벌인 영상매체와 경쟁하거나 그것과 제휴해야만 하게끔 되었다. 영상시대에 문학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과감히 스크린과 제휴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했던 사람은 미국의 비평가 레슬리 피들러였다. 그는 이미 1960년대 초에, 문학이 영상매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답적이고 귀족적인 스스로의 패각에서 벗어나, 영상매체가 갖고 있는 대중 문화적 요소들을 적극 수용해야만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물론 영화의 상업주의적 속성과 대량복제로 인한 문제점들을 경계하지만, 동시에 소설 역시 대량복제에 의한 상업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소설은 원래 귀족들을 위한 장르였던 시나 희곡(비극)과는 달리 대중을 상대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들처럼 스스로를 귀족화, 고급화하는 것은 독자의 상실로 인한 소설 장르의 자멸을 초래하게 된다. 30여 년 후의 상황을 정확히 예시했던 피들러의 통찰력은 오늘날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과연 지금 소설은 날마다 엄청난 숫자의 독자들을 영상매체에 빼앗기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서점에 가는 대신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마치 책처럼 서가에 꽂혀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고르며 주말저녁에도 책을 펴는 대신 텔레비전 스위치를 켜고 <주말의 명화>를 본다. 출판인들 역시 영상세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요즘에는 시각디자인과 표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제 우리가 본격적인 <영상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리하여 시나리오와 아주 홉사한 소위 <영상소설>들도 출현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마이클 크라이튼의 <주라기 공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한 편의 영화대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특이한 소설이다. 특히 전체 구성과 장면 전환, 그리고 <카메라의 눈> 기법과 스케치식의 간결한 문체는 이 작품이 원래부터 영화제작을 염두에 두고 씌어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런데도, 그 소설이 영화화될 때, 크라이튼은 데이비드 코프와 더불어 <주라기 공원>의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물론 그 영화 대본은 원작보다 훨씬 더 못했으며, 영화 역시 정교하게 만들어진 공룡을 제외하고는 별로 괄목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한 가지 교훈, 즉 그 어떤 영상소설도 바로 영화대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말을 바꾸면, 제아무리 영화대본처럼 보이는 소설이라 할지라도 소설과 시나리오는 엄연히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라기 공원>은 영화를 의식하고 씌어졌다기보다는 영상매체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을 겨냥하고 씌어진 소설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들 가운데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할리우드식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뉴욕주립대의 마크 셰크너 교수는 요즘에는 영화화될 것을 미리 의식하고 쓴 소설, 또는 아예 영화용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튜디오 소설>도 산출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을 든다. 그는 그 소설의 “공허하고도 스케치적인 언어는 마치 그 공백을 영화제작자가 채워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셰크너 교수는 오늘날 영화와 문학의 관계는 상호보족척이며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만일 우리가 문학양식에 끼치는 시장의 힘을 면밀히 관찰한다면, 우리는 영화가 소설의 가장 강력한 시장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할리우드는 소설의 보물섬이다. 일반적으로 오해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는 소설의 파괴자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자이다. 더 나아가 나는 현대 미국소설의 건강은 전적으로 영화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소설은 적어도 부차적 판권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돈을 벌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충분한 소설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10년 동안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작가들을 나열하면 그야말로 문인사전이 될 것이다. – 윌리엄 스타이론, 앤 비티, 월리엄 케네디, 로버트 스톤, 아이작 베셰비스 싱거, 매헐린 로빈슨, 제이 맥키너니, 앤 타일러, 존 어빙 등 영화는 새로운 촉진제가 되었고, 작가들에게 금항아리가 되었으며, 그 매개체 사이의 공식적이고 상업적인 교류는 두 장르 모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렇다면 문학과 영화는 앞으로 더욱더 긴밀하고 활발한 관계를 갖게 되리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의 영화화나 작가들의 영화제작 관여는 194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예컨대 리처드 라이트(<미국의 아들>), 노먼 메일러(<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트루먼 캐포티(<냉혈>),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 버나드 밸러머드(<내추럴>), 필립 로스(<컬럼버스여 안녕>), 커트 보네것(<제5도살장>), 저지 코진스키(<정원사 챈스의 외출>), 존 바스(<여로의 끝>), 앨리스 워커(<칼라 퍼플>), E. L. 닥터로(<래그타임>) 등이 그 대표적 예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문학작품들 역시 끊임없이 영화로 만들어져 왔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 살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토머스 하디의 <테스> 같은 작품들은 벌써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으며, 최근에는 멜 깁슨과 글렌 클로스 주연의 <햄릿>(셰익스피어)과 제라르 드파르듀 주연의 <제르미날>(에밀 졸라), 마틴 쉰 주연의 <삼총사>(알렉상드르 뒤마), 대니얼 데이 루이스 주연의 <라스트 모히칸>(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또는 데미 무어 주연의 <주홍글자>(나사니엘 호손) 같은 문학작품들이 다시 만들어졌거나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원작의 격조를 망쳐놓은 실패한 영화들도 있다. 피들러는 그 대표적인 예로 허만 멜빌의 <모비 딕>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든다. 예를 들어 <모비 딕>은 주로 어떤 배우들, 예컨대 에이허브의 역을 맡고 싶어했던 존 베리모어와 그레고리 펙 같은 배우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자주 영화화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에이허브가 추구한 지적 동기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데다가 감독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에이허브를 그만 미친 사내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그레고리 펙의 경우에는 (그는 차라리 고래 역을 맡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고 당시의 평론가들은 빈정대었다) 미친 에이브러햄 링컨을 만들었으며, 베리모어의 경우에는 미친 베리모어를 만들었다. 사무엘 골드윈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가장 최근의 파괴자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이 작품에 진실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론에 입각해서인지 미시시피 강변 장면을 새크라멘토 강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섹스는 당혹스럽지만 로맨스는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톰 소여를 여자로 설정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왜냐하면 허크에게는 여자친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차라리 그랬더라면 재미라도 있었을 테니까.

영화가 원작을 왜곡하고 훼손한 경우는 포크너와 헤밍웨이의 경우에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포크너의 <성단>은 그 역을 맡은 이브 몽땅같은 유명배우의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악한을 다분히 풍자적이고 동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헤밍웨이가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일어나 나가버렸다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작품의 마지막에 죽어야만 되는 주인공이 버젓이 구출되어서 살아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원작보다 더 잘 만들어졌거나, 적어도 원작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들도 많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조지 스티븐스의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거칠고 직선적인 문체로 씌어진 시어도르 드라이저의 소설 <미국의 비극>을 원작보다 훨씬 더 감미롭고 세련된 작품으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경우에도 영화가 원작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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