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February 2017

The Value of Journalism in This Day and Age

광주 송정역, 캐리어 이동통로 개선, 민원 개선 의지 보여,

2월 28일(현지 시간) 지난 10월 기자가 광주 송정역에서 캐리어 이동통로를 이용해서 캐리어를 운반하던 중 미끄러져서 머리를 다친 일이 있었다. 그때 이 일을 송정역 담당자에게 시정,개선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이메일을 수차례 보냈으나 답장 메일이 없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다시 한국에 방문하여 시정이 되었는 지 확인하였다. 이번에 기자는 이동통로 폭도 넓어지고 경사가 더 완만해져 있음으로 눈으로 확인했다.

기자는 우리 사회에서 고쳐져야 할 문제들을 파헤쳐서 사회를 좀 더 살기좋게 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는 기자는 이 사회의 적이라고 말을 한 적이 있지만 독재자의 눈에는 항상 언론이 눈에 가시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참조

http://coreeilbo.com/korean-american-news/facade-of-convenience-dangerous-in-practice-말로만-안전/attachment/053walkwayatl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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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4 <이강화 교수>

Le Petit Prince is an example of literature adopted to movie.

<Daegu, Prof. Lee GangWha >

2. 문학에서 영화로

영화 혹은 영상은 이전의 예술들과는 달리 예술가의 영감과 충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적인 발명에 의해서 탄생하였다. 역동적인 공간의 창출과 시간을 공간화 할 수 있는 이 새로운 매체의 독특한 가능성은 기존의 매체들이 가진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 세기만에 주도적인 서사방식으로 자리잡으면서, 과거에 문학, 특히 소설이 가졌던 명성마저 빼앗아 버린 듯 하다. 그러나 ‘개방성’과 ‘하이퍼 텍스트성’이라는 특성에 근거한 새로운 매체의 위력이 이처럼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문학과 영상의 위상 내지 그 관련성은 쉽게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장르는 애초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모든 언어 활동의 근저에 이야기가 있었다. 구전되거나 문자의 형태로 정착한 설화, 민담, 전설, 고대 희랍인들의 희곡, 중세의 기사도이야기, 근대적 서사의 전형인 소설, 그리고 20세기의 주도적 서사 방식으로 자리잡은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의 진보에 따라 다양한 장르가 생성되었지만 ‘이야기하기’라는 본질적 기능은 불변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달되고 수용될 수 있어도 매체들이 실어나르는 본질로서의 이야기는 불변이다. 바로 여기에 문학과 영화의 상호의존 혹은 보완관계를 논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영화와 문학을 연관시키려는 시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른바 ‘고전’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던 초기 영화시대로부터 ‘문학영화’ 혹은 ‘카메라-펜(Camera-Stylo)’을 지향하는 60년대 영화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면에서 영화가 문학에 빚을 지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내용 즉 소재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형식 즉 기법 측면에서도 다양한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련성에 근거하여 우선 문학적 표현양식이 영화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자. 이리하여 그리피스는 그가 영화를 연출하는 초기부터 그의 몽타주 기법이 근대 문학적 서술의 전통, 특히 디킨스의 전통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지적하였다.

나는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크로스 커팅(cross-cutting)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도입했다…..그러나 그것은 절대 나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디킨스의 작품에서 발견하였다. 그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작가였으며 나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 스위칭 오프(switching-off) 기법의 효과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의 모든 다른 작품들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그는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도입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중단하고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고 마지막에서 그는 겉으로 보기에 얼핏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 결말들을 다시 합쳐 전체를 완성시킨다.

그리피스에게 l9세기 사실주의 소설에서 다양하게 시험되었던 이 구조는 그에게 많은 인물들, 상황들, 사건들, 세부적 사항들이 어지럽게 착종되어 있는 상황, 즉 20세기 초 인간의 현실 체험에 상응하는 그러한 상황을 서술하는데 매우 유용하였다. 이처럼 19세기 문학이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 특유의 서술 구조를 가지고 반응하였고, 영화 제작자들이 이러한 서술구조에서 영화의 표현기법을 차용했다는 것은 영화가 나오기 전에 문학이 그 서술방식에서 이미 영화적인 것을 선취했음을 의미하여 이러한 차원에서 산업화의 산물인 영화는 19세기 문학적 서술 전통의 정당한 상속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문학의 역사는 영화의 전사가 되는 것이다.

한편 <디킨스, 그리피스 그리고 오늘날의 영화>라는 글에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역시 디킨스를 중심으로 영국소설이 미국초기 영화제작자들에 미친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에이젠슈타인은 영화와 문학의 광범위한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영화가 자립적이고 자족적이며 완전히 독립적인 예술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매우 생각이 모자라고 주제넘은 사람들만이 영화의 동정녀 탄생과 같은 말도 안되는 전제로부터 시작하여 나아가 영화의 미학과 법칙까지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킨스와 그리스 시대, 세익스피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술의 조상들을 생각해 보면 그리피스와 오늘날의 영화의 근원이 에디슨과 다른 발명가들 뿐만 아니라, 거대한 문화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곁으로 보기에 전례가 없는 예술처럼 보이지만 사실 문학은 영화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여했으며. 문학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시각 예술이다

에이젠슈타인은 자신의 영화적 감각은 사실상 문학적 상상력의 확장된 버전이라고 주장하면서 디킨스의 소설이 초기 영화에 미친 중요성과 그의 작품이 그리피스의 혁신적 기술로 인해 영화에 구현되었다는 것을 여러 저서에서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전자가 그것을 시작했다”로 시작되는 디킨스의 <벽난로 위의 귀뚜라미> – 그리피스가 나중에 영화화했다 – 의 서두 부분을 자세히 읽는다면 클로즈업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에이젠슈타인은 괴상하고 주변적인 인물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디킨스의 재능과 “동정심이 가는 노인들, 고귀하지만 슬픔에 잠긴 일차원적 인물들, 연약한 처녀들, 그리고 시골 수다쟁이와 잡다한 등장 인물들을 묘사하는 그리피스 영화의 경향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하면서 ”디킨스가 이처럼 비범한 시각과 감각으로 영화에서 구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디킨스가 인물창조에 있어서 뛰어난 유연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며 이러한 디킨스의 캐릭터들은 오늘날의 영화 주인공들처럼 유연하면서도 과장되어 있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에이젠슈타인은 “그리피스가 디킨스로부터 차용해 온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크로스 커팅, 즉 동시 진행 액션의 기법으로서 이를 통해 그리피스가 몽타주에 도달할수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디킨스의 문학적 서술과 그리피스를 통한 이러한 서술 구조의 수용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이고 지시적인 공통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산업 사회의 자본주의적 구조를 반영하는 시민 소설에 근거한 미국의 영화를 특징짓는 것은 사회구조와 서사구조 사이의 상응적 관계이며 이 관계는 두 사회 계층의 평행성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문학적 또는 영화적 서술 구조에서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이건 그리피스의 <밀왕의 최후>이건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경우에 이러한 구조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며, 이 분리된 평행선은 화해와 정의의 관념 안에서 다시 결합된다. 이처럼 디킨스와 그리피스의 작품에서 그려진 문학적, 영화적 몽타주를 위한 공통의 토대로서의 자본주의 사회 형태를 강조하면서, 에이젠슈타인은 이것이 혁명 후 소비에트 사회와 그 사회의 영화 예술과의 근본적인 차이임을 주장한다.

물론 이야기를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옮길 수는 있지만 소설이 훌륭하다고 좋은 영화가 되지는 않는다. <워터프론트>는 훌륭한 영화이지만 나중에 소설로 나왔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위대한 소설이지만 영화로는 그저 그랬다. 이런 차원에서 문학연구는 소설, 서사시, 희곡 그리고 다른 장르들을 각각의 특질과 장점을 가진 그리고 각자의 요구와 통제를 가진 독립된 형태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훌륭한 희곡은 시로 다시 쓸 수 없고 훌륭한 시를 소설의 형태로 바꿀 수 는 없다. 마찬가지로 극영화를 다른 형태로 훌륭하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에이젠슈타인 자신도 19세기 사실주의 소설의 문학적 서술을 20세기 영화적 서술의 선구자나 전 형태로 이해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평행적 몽타주가 디킨스, 플로베르, 졸라 등의 소설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식으로 전제함으로써 파생할 수 있는 함정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유추와 유사를 너무 따지게 되면 설득력과 매력을 잃게 된다. 그럴 경우 조작이나 속임수의 느낌이 들게 된다. 디킨스와 그리피스의 유사성이 너무 많이 지적된 나머지 이것이 비슷한 표식찾기 같은 게임으로 전락하여 설득력을 잃게 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생각이 들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그의 글이 문학과 영화의 서술양식에 대한 비교적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으며, 이것은 영국의 문예이론가 허버트 리드에 의해서 다시 확인되고 있다.

시나리오와 문학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해서도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갈다. 그들은 문학을 점잖고 학문적인, 다른 말로 하자면 정확한 문법과 거창한 연설조의 말로 구성된 버림받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좋은 글의 특정을 내게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다. 시각적인 것. 문학을 기본적인 요소로 축소시키게 되면 결국 한 가지 목적, 즉 말로써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에 귀결된다. 단지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 마음으로 보게 하는 것, 뇌 속에 있는 스크린에 움직이는 사물과 사건을 투사하는 것 그것이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로부터 제임스 조이스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훌륭한 문학의 정의, 모든 위대한 시인의 업적이다. 이것은 또한 이상적인 영화의 정의이기도 하다.

따라서 리드는 “상상력의 영화 – 위대한 연극, 위대한 문학, 위대한 회화와 견줄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영화 – 는 시인이 스튜디오에 들어서기까지 도래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스탠리 카우프만도 베리만, 펠리니, 안토니오니 등이 “미국인을 포함한 다른 감독들과 함께 영화를 그 동안 소설과 형이상학파 시의 영역이었던 은밀한 내면, 혹은 심지어 무의식의 영역에까지 확장시켰다”고 지적한다. 아네스 바르다는 “소설을 쓰듯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으며, 알랭 레네도 <히로시마 내 사랑>에 대해서 “이미지가 텍스트의 대위법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시를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장 콕토는 마지막 원리를 적용하여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시인의 피>와 <오르페우스>는 주로 현대시와 연관된 기법에 널리 의존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1967년 <파리 리뷰>지와 인터뷰에서 “오늘날 문학인들은 서사시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고있는 반면, 이상하게도 서사시는 서부영화에 의해 그것도 다름 아닌 헐리우드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라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표현에서 다시 확인된다.

이처럼 영화는 19세기 후반의 소설과 시에 광범위한 뿌리를 두고 있다. 가령 현대 소설의 서사를 사용하는 영화 서사는 단순하고 단선적이며 시간적으로 일관된 서사 진행으로부터 탈피하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이러한 방식은 이미 플로베르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이외에도 문학과 영화의 기법상의 비교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작가 혹은 시인으로는 헨리 제임스, 토마스 하디, 조셉 콘래드 그리고 보들레르, 월터 휘트먼 등이 있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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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eme Rightists Threaten Death on Candlelight Protesters and the Constitutional Judges at the 17th Candlelit Protest < 김광식 교수의 현장 르포>

<Prof. Kim, Kwangsik’ s  Report >

‘분노한 자발적 시민 대중’과 시청앞의 ‘태극기’ 행진을 바라보는 기자의 눈에 오늘 광화문 앞의 ‘시민행동’ 본부 한쪽에서는 약간 화가 난듯한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촛불 프로그램은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국민 대다수를 화가나게 하고, 또 힘들게 한 이유는, 황교안 대행이 특검 연장을 해 주지 않았으며,지난  24일(금) 헌법재판소에서 김평우 변호사의 언어 폭행적인 발언과 불법 발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불법발언들은 다음과 같은 발언들이다. “탄핵 인용되면 우리도 ‘시가전 준비하자”, “아스팔트를 피로 물들이자”, “살인예고, 암살단모집 한다니까 종편과 헌법재판소가 벌벌 떨고 있다.”
이런 주장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과연 어떤 느낌을 가지시는가? 박근혜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꿈꾸는 세상은 바로 이런 세상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폭력으로 군중을 압제해서 그들만의 세상, 오직 갑만이 활보하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이런 폭력적인 대한민국은 북한 뺨치는 지옥의 드라마,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탄핵을 반대한답시고 내란을 선동하고 거짓에 근거한 악질적인 선동과 폭력을 사주하는 이 사람들을 민주주의와 법의 이름으로 서둘러 징계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박근혜 변호인단이 퍼트리는 이런 논리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이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이런 위험한 상거래 행위를 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돈 때문일 것이다. 돈 그위에 추가되어야 할 논리는 과거 자신의 행위들에 대한 ‘고백’을 예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행위야 말로 오늘날 오랜 독재를 거쳐 법치사회가 된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통용될 수 없는 ‘엄청난 위험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사람들은 그래도 법조인이라고 사회에서 존경을 받으면서 살아 왔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논리야 말로 그대로 놔두면 우리의 법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할 치명적인 법치세계의 암적인 존재들이다.
차이는 ‘치명성’과 ‘민주성’의 차이이다.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는 이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법적 규정을 잘 지키는 법조인과 아스팔트 위를 피로 적실 생각을 하는 자를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런 논리아닌 논리는 ‘친박집회’의 구체적행동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미 폭력문제는 현실화되었다.
친박집단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는 그런 상황에서 완전히 현장 범죄의 구현자가 되어 돌아왔다. 박사모 회원들과 자유청년연합 장기정 대표와 회원들이 박영수 특별검사의 자택 인근에 나타났다. 이들은 “특검을 해체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 현장에는 “죽여버려” 등의 욕설이 난무하는가 하면 알루미늄 방망이를 들고 연단에 오른 회원도 있었다. 이런 집앞 시위는 박사모 등 친박단체들이 지난 17일 JTBC 손석희 보도부분 사장의 평창 집 주변에서 일어났던 시위에 이어 두 번째다.
집회에 참가한 회원들은 태극기를 든 채 애국가를 완창했고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장기정 대표는 연설과 구호만 외쳐서는 안되며, “응징할때가 됐다”고 입을 뗐다. 이어 그는 “박영수가 집 앞에서 집회를 연다는 소식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면서 “뭐가 꿇리기 때문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겠나. 대한민국의 민심을 봤기 때문에 박영수가 죽지 않기 위해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한 것”이라며 폭언을 쏟아 냈다. 집회에 모인 친박단체 회원들은 “맞습니다” “특검해체” “죽여버려” 등을 외치며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주옥순 대표는 ‘태극기 엄마 특검 박영수 집 문을 따버리다’는 제목의 영상에서 “박영수 특검을 잡으려고 대한민국 애국태극기 물결들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다”며 “북한의 기쁨조 노릇 하는 특검을 해체하라고 팻말을 든 회원들이 많이 나와있다”고 말했다.
이런 폭력성과 살인 동원 등의 발언은 시청 앞 시위에도 그대로 이어진 모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자유에도 한계는 있고, 민주주의의 관용에도 한계는 있다”고 언급하면서, “살인과 테러를 주장하고 내란을 선동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서울시와 저는 이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17차 평화대행진에서 들어 본 바에 의하면, 자발적인 시위대중들을 화나게 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엄숙한 명령을 이행하던 특검이 2월 28일 임기가 다 끝나 해체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박영수 특검팀은 황교환 총리에게 임기를 더 연장시켜줄 것을 요청했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임기연장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박근혜를 기소유예로 검찰조직으로 떠 넘길 것으로 알려겼다. 특검은 많은 사람들을 구속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우병우 구속문제도, 박근혜의 체포와 구속, 신병처리 문제도 아직은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은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 즉 황교안 총리에게 모두 넘어가 있다. 황교안 총리는 검사출신이다. 그도 역시 한국의 공안검사 출신이디. 공안검사는 정국을 늘 공안검사의 잣대로만 보려고 하는 속성을 지녔다.  황교안은 지금도 박근혜와는 협조관계로 볼 수 있다. 지금 정국에서 박근헤를 섬기는 사람은 특별한 이름이 필요한데,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박근혜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파는 확실히 보수파가 아니다. 왜냐하면 박근혜파가 만약 보수파라고 한다면, 조직과 조직 사이에 또는 그 안의 인간관계에서 봉건적인 충성론과 혜택을 입은 자의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파’는 아버지와 자신의 사조직을 총동원하고, 경제계의 강력한 도움으로 사람들을 동원하는 데는 부분적으로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논리와 꿈이 없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너무나도 돈을 밝힌다. 돈의 잔치가 끝난다면 이들의 모임도 완전히 해체될 수 있다. 물론 이들 가운데 지도자급 인사들은 조직의 이름과 함께 남아 있을 가능성은 있다.
우리는 지금 대중운동의 현실과 미개함을 함께 본다.  저물어가는 해가 다 진다면, 그 속에서는 누구도 오래 남아 있지 못한다. 지금 살인과 테러를 주장하는 친박단체들이 잠시 길을 열었다.
중요한 것은 이 길을 통해서 박근혜가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정계에서는 박근혜가 하야하고, 탄핵을 흐지부리 처리하려고 한다는 적지 않는 괴담이 돌고 있기도하다.
지금 ‘박근혜파’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전혀 없다. 대신에 이들 단체를 설명하는데는 일방적인 선전술만이 동원된다. 이들은  탄핵만은 피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금 탄핵은 국민적인 합의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박근혜 대리인들은 파국으로 간다면 ‘완전한 파국’을 원한다. 그 파국이 왜 파국이며, 어떤 파국으로 갈 것인지 지금은 이런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런 문제를 손쉽게 풀어줄 고단수의 법치주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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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Professors Demand Education Reform in S.Korea

 

2월24일(현지 시간) 광주.전남교수 연구자 비상시국 회의 소속 은우근 교수(광주대)는 오는 3월 3일 오후 3시 광주 금남로 518기록관, 7층 강당 에서 “교육법 개정, 대학교육 대선 공약 어떻게 할까요?”란 제목의 토론회가 열린다고 밝혔다.

은우근 교수는 개최할 토론회는 “교육법 개정과 대선 공약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지역의 대학 교수들이 직접 지역 대학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최초로 공개적으로 언급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한 번의 논의에서 모든 문제를 깊이있게 다룰 수는 없지만 이번을 계기로 이런 논의가 지속적으로 다루어져서 대학이 단순히 직업을 갖기위한 도구나 통로 역활을 하는 것을 벗어나 진정한 배움의 터전으로, 지성, 인성, 개성, 덕성을 고루 갖춘 인재를 양성, 교육하는 전당이 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되었으며, 이런 정도의 논의 자리를 만드는데 상당히 힘든 과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지역 대학의 문제는 해당 대학(또는 사학재단)과 학생, 교수, 학부모들 사이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대학과 초중고를 포함한 교육은 단순한 사적 영역이 아니고 공공의 영역입니다. 교육은 공공재이고 그것은 지역민 전체의 문제이며 국가의 문제입니다. 과거 이 지역에서 87년 6월항쟁 이후 조선대학교 이사장이었던 박철웅의 전횡과 독재, 비리, 부패가 크게 문제가 되었을 때 지역민 전체가 관심을 갖고 함께 대응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지금 대학 문제의 양상은 과거와 많이 달라진 부분이 있지만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인 고용 체계와 대학 내 폐쇄적 의사 결정 구조가 만든 권력 관계에서 비롯합니다. 그 배후에는 교육부와 지역 사학재단, 정치세력의 유착이 있습니다. 교육법의 개정과 대선 공약을 궁리하고 지역 대학의 문제적 현실을 공유하고 개혁을 위한 과제를 논의하는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십시오. 모두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라며, 시민들의 많은 관심이 있어야 암담한 대학의 현실이 개혁되어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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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What is Democracy? Role of Journalism as Platform of Democracy <김광식 교수 칼럼>

<Seoul : Prof, Kim, Kwangsik>

언론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체제

민주주의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Ἀγορά” 아고라 로 불리우는 말에서 유래되며, 합법적인 일반 ‘시민’들이 ‘정치를 논하는 장소’로서의 광장 또는 언론도 가능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계로 장이 서는 곳, 즉 시장, “시민과 광장”을 의미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공정한 시장경제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더 튼튼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체제는 보통 일반 사람들을 의미하는 시민들에 의해서 발전되고 유지된다. 즉, ‘인간은 차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평등한 존재’라는 생각을 할 때, 민주주의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전파될 때, 민주주의의 쌍두 마차는 ‘평등과 공존을 위한 자유’ 라는  이름으로  힘차게 달릴 수 있다. 마치 지금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들이 모여 커다란 횃불이 되듯이 말이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는 많은 언론들이 모여든다. 그 가운데는 JTBC와 경향신문, CBS와 한겨레신문을 포함하여 일반 신문사들과 방송사들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물론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극우행동을 전파하는 극우 신문과 방송사등도 많이 몰려든다.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거기에는 시위대중과 비슷한 성격의 언론들이 많이 모여든다. 이 가운데 일제 강점기시대 때부터 살아남아, 지금도 보수신문으로 국민들의 가정교사 역할을 자임하는 그런 언론들도 있다. 오염언론의 역할은 정확한 사실 보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론)사업을 위해서 전력질주하고 있다.

소위 오염언론이라 칭할 수 있는 극우 언론의 사설과 논설, 칼럼 등을 읽어보면 그들은 한없이 대중을 가르치려고만 한다. 그들은 정부의 언론정책에 앞장 서서 나아간다. 왜 그런가 하면 정부와 협조를 할 때, 거기에는 엄청난 자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극우 보수언론은 그 ‘봉건성’이 정당과 정부와 궤도를 같이 한다. 보수언론이 앞에서 북을 쳐주고 한국의 인권을 무시하는데 앞장을 선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한국의 ‘관료적 권위주의 정부’와 함께 지금의 한국을 이끌어 온 것이다.

이때 재벌들은 성장해 왔지만, 그러나 민주주의는 장송곡을 울렸던 것이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가 봉건성을 띠는 이유는 확실하다. ‘봉건성’은 광범위한 토지 소유와 함께 신분제에 의한 강요된 인간관계가 되풀이 된다. 한국의 토지소유는 심각하게 불평등하다. 인간관계도 거의 신분제에 가까울만큼 기울어져 있다. 오죽하면 교육부 정책심의관이 ‘개 돼지만도 못한 일반 대중의 삶’을 비웃었을까?

언론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자세히 보자. (언론)회사는 언론사주라는 사람의 일가가 이끌어 간다. 언론사주들은 대부분 일반 사회 대기업의 주주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기자 한사람 한사람의 기사 논조까지 전부 알고 있다. 그 밑에 평 기자들 사이의 인간관계는 기묘하다. ‘선배’ 또는 ‘후배’라는 용어를 많이 쓰긴 하지만, 기자들의 역할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주필, 논설위원, 편집국장, 부장, 차장, 평 기자, 인턴 등 일반회사와 같은 서열 위주의 차별화가 되어 있다.

정부에는 언론관계 예산이 확보되어 있다. 이 예산과 언론소비자에 대한 판매자금, 그 밖에 많은 사업 등을 통해 언론사를 이끌어가는 기본자금은 그런대로 마련한다. 물론 언론사가 망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과당경쟁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화 한 통화를 하면, 언론사의 논조도 바로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유권자들이 많이 보는 언론사를 책정하는 그 순간부터 치열한 리얼리즘이 작동한다.

이때 그런 언론의 정당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업체의 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우선 제대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 촛불’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는, 하나는 국민이 부르는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적 언론이 국민들을 따라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 체제는 한 사건이 두 번 되풀이 된다고 보면 된다. 하나는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건을 서술한 언론을 통한 Reflection 을 통해서이다. 결국 언론보도가 공정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퇴보할 뿐이며, 오직 민주주의는 상상 속에서만 자랄 뿐이다. 즉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배양, 육성시킬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시절에 우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지금 한국, 미국,세계의 모든 비 민주적인 민주를 지향하는 정부아래서 사는 국민들은 말이다.

저널리즘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인 요즘, 최전선에서 진실과 허구가 판을 치는 전쟁터에서 진실의 끈 하나 놓치지않기 위해 열심히 싸우며, 뛰고 있는 진정한 언론들이 살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결코 허망하게 쓰러지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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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m Doris Batters UK, 94mph Wind Kills Woman

Photo from Independence

2월 23일 (현지 시간) 영국에 폭풍 도리스가 창륙했다. 시간당 94mph 의 강한 돌풍으로 나무가 뿌리채 뽑혀지거나, Wolverhampton 시의 중심지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의  밖에 내 놓은  테이블이 바람에 밀려 어디론가 날아가는 등, 이번 강풍으로 바람에 날리는 물건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쳐서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여인을 사망케하는등 스톰으로 인해 지금 영국에서는  수 십편의 항공편이 결항되었고, 기차는 지연되고 있다.

증인에 따르면, 사망한 여인은 20 대에서 30대 쯤으로 보이는 여성이라고 말하며 “이번 강풍을 동반한 폭풍으로 도시 이곳저곳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져있다”.고 인디펜던스 지는 전했다.

증인은 이번 사망한 여인이 커피숍 테이블이 날아가서 쳤는지, 또는 빌딩에서 떨어진 지붕이 쳤는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으며, 스타벅스는 경찰이 사망자의 사인을 밝히는데 당분간 스타벅스 가게를 닫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도리스 폭풍으로 인해 갑자기 온도가 지역별로  영상 7도, 3도로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있으며, 어느 지역에는 영하권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노스 웨일스 지역에서는 강한 바람과 폭우가 내렸으며, 중부지방, 동부, 북서부 지역, 런던을 포함한 지역에 폭풍 주의보가 내려졌다.

Cornwall 지역 374 도로에서  차속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남자도 있었으며, 런던 , 위간 지역에서는 이번 폭풍으로 하우스가 붕괴되기도 했다.

Liverpool 의 필 포트에서는 도리스가 100mph 속도의 강한 돌풍을 몰고 있다고 말하며, 시에서 운영하는 항구를 닫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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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 수요수필 4 <조준희 기자>

 

이제 낚시의 기본 단계를 설명해 드렸고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낚시 방법은 천차만별인데 제 글은 낚시교본이 아니기에 별도 구분없이 이야기 속에서 그때 그때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저의 낚시 역사에는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아버지와 동생입니다. 제 동생이 저보다 2년 이상 더 오래 산다면 저 보다 더 오래 낚시를 하게 될 인간일 겁니다. 낚시광이라는 말보다는  또 한 사람의 조선 이라는 뜻입니다.

내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이자 낚시 스승이었습니다. 낚시를 평생 다니시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치를 다 깨닫으셔서 아버지께 모르는 걸 여쭈면 그 당시는 이해가 안 되었어도 지나고 나면 전부 다 맞는 정답이었습니다. 사위인 자형은 아버지의 선견지명에 늘 감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형은 아버지께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즉, 이름하여 ‘마음은 늘 콩밭에 있다’ 라는 말이 있지요.

자형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가도 낚시에 집중 안 하고 술 마실 생각만 하는 어스레기라고 인정을 안 하셨습니다. 자식들이 약속을 안 지키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드시면 언제나 하시는 당신만의 트레이드 말씀이 있습니다. “그 따우 정신으로 뭘 하나?” 하고 핀잔을 주시는데 저의 자형께서 그 말을 제일 많이 들으셨죠.

아마 6살 때였던 것 같습니다. 첫 낚시의 기억은 남산 아래에 있던 미술학원으로 낚시를 가자고 아버지께서 데리러 오셔서 저와 동생이 따라 나섯던 것 같습니다. 제 동생과 저에게 짧은 밤색 컬러의 낚싯대를 한개씩 준비해 주셨는데 나중에 어른이 될때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물고기 잡은 기억은 없고 동생과 장난친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귀해졌지만 당시는 물가에 갈색 전투복을 입은 토종개구리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개구리 잡기가 만만치 않은 놀이였는데 낚시대를 이용하면 쉽게 잡는 법이 있습니다. 물속에 개구리가 머리만 내밀고 먹이 사냥을 하려고 눈을 꿈뻑거리고 떠 있을 때 낚시바늘에 떡밥미끼를 달아 개구리 눈앞에서 흔들어 줍니다. 마치 걸그룹들 ‘위아래’ 춤 추듯이 살짝살짝 “위아래, 위아래, 위위 아래, 위위 아래”하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남자들 대부분 TV 채널이 고정된 채 그곳으로 빠져드는 것과 똑같은 맥락입니다. 적중률 99.9% 영락없이 떡밥을 덮칩니다. 개구리한텐 미안하지만 개구리를 잡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뒷다리 구워먹으려고? 아니죠. 저의 가장 큰 즐거움의 놀이 대상인 5살짜리 동생을 기겁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였지요.

당시 동생은 개구리를 무서워해서 개구리를 잡고 개구리랑 논다는 것은 치를 떨고 상상도 하기 싫어했는데 잡힌 개구리를 동생의 낚시대에 끼워 두거나 모자 속에 넣어두면 기겁을하고 자지러지는 모습에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던 개구장이 시절이 떠오릅니다. 아마 동생은 지금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을것  같아요. 추억을 남겨 준 훌륭한 형님이지요.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동생과 저는 이렇게 아버지를 따라 낚시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 후 초등학교를 들어 간 이후에도 휴일이면 아버지와 함께 낚시회에서 운영하는 낚시 버스를 타고 수도권 일대에 있던 많은 낚시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돌이켜 보면 아버지와의 조행이 저의 어린 시절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리 배운 낚시기법과 기술은 초등학교 6학년 6월6일 현충일 때 우리반 아이들과 큰 사고를 치게 하는데 그 사고의 전말은 다음 5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물요일에는 조금은 더 스릴이 있을 것 같아요. 기대해 봅니다.

To be continued ~

서울 : 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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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of Mass Illegal Immigrant Deportation Continues to Spread

Photo from Google Images

2월 21일 (현지 시간) 전국 각처에서 이제까지 막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미국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정식 이민자들이 되기위해 살고 있는 적어도 일천 백만여명의 무서류 이민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Trump 행정부는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공포를 어느정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오늘 (화) 발표된 무서류 이민자 가이드 라인은 불법 이민자들을 더 강력하게 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추방하고 있어서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의 말을 국민들이 믿지 못하고 있으며, 무서류 이민자들은 이민국 직원들에게 잡히면 당장 추방당한 다는 공포로 불안에 떨고 있다.

연방정부 측은 John F. Kelly 국토 안보장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Secretary) 에 의해 승인이 떨어진 대책들에 의해 많은 부분들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국가 공권력이 더 많이 투입되어 이번 반 이민법에 대해 더 강력하게 단속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주의를 주었다.

이민 옹호 그룹들은 지금 현재 DHS 와 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ICE) 직원들이 서류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멕시칸들에게 무력을 행사하며 그들을 추방하는 것은 아닌지 최근 만연되고 있는 인권 유린 문제와 함께 심히 걱정을 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밝혔다.

백악관 대변인 스파이서씨는 켈리 장관의 메모들은 연방 이민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하원들에 의해 동의한 것으로 가능하면 대량 추방을 피한 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켈리장관의 메모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사인한 3개의 행정명령으로 국토안보부에서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고, 장벽 주위를 철저히 감시하며, 국내에서 살고 있는 무서류 이민자들에게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켈리장관은 무서류 이민자들을 색출, 추방하기 위해 새롭게 10,000여명의 이민국 직원들을 고용할 것이며, 5,000여명의 국경 수비대를 더 보강할 계획이라고 한다.

DHS 측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오바마 행정부때 비용적인 측면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이민정책들을 최대한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이것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역시 이 법을 적용하는데 드는 합법적인 연방법 등록을 위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도 트럼프 행정부는 고려하고 있으며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력한 무서류 이민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에 전국은 불안한 상태에서, LA 에서는 수 천 명의 라티노 이민단체들이 지난 9일부터 계속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이민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를 계속 벌이고 있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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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ous Actress Kim Ji-Young Passes Away at 79 on 2/19/17

2월 19일 (현지 시간) 지난 한 평생을 영화와 드라마, 연극의 발전에 전 일생을 쏟아부어 헌신하셨던, 우리에게 알려진 구수한 사투리의 대가, 이 시대의 가정의 버팀목으로, 이 시대에 서 경우 바른 말을 하신 많이 하신 어른으로,  지난 60여년 인생을 한국의 영화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김지영(79)여사가 지난 17일 급성폐렴으로 폐에 무리가 되어 19일 오전 6시 51분에 향년 79세로 소천하셨다. 김지영 선생은 지난 2년동안 폐암으로 투병중이었다.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으로 어렸을때 인천으로 이주하였으며, 21세때인 1958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1960년에 신성일, 엄앵란의 상속자에 영화로 처음 나온 뒤 지금까지 철저하게 영화인으로 살아온 그녀는 병든 남편과 4남매를 키우기 위해 결혼 후 중단한 연기를 다시 시작하였으며, 이제까지 오직 한 길을 걸어온 그녀는 2005년 KBS 에서 연기대상에서 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무슨 역이든 그녀가 맡은 역을 통해 작품의 흥행을 불러온 열의와 전국 8도 사투리의 대가가 되기까지의 피나는 노력은 이제 영화의 작품속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김지영선생의 TV 작품으로는, 1989년 MBC 월화드라마 《나비야 청산 가자》,1990년 MBC 청춘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0년 KBS1 일일드라마 《울밑에 선 봉선화》… 끝순 엄마 역,1992년 KBS1 특집드라마 《너의 이름은 효자》,1994년 KBS2 수목드라마 《무당》,1994년 SBS 월화드라마 《작별》,1994년 KBS2 수목드라마 《숨은 그림 찾기》,1995년 SBS 월화드라마 《서울 야상곡》,1995년 KBS2 일요아침드라마 《개성시대》… 할머니 역,1996년 MBC 아침드라마 《달콤한 인생》… 강씨 역,1996년 KBS2 월화드라마 《신고합니다》 … 군단장 할머니 역,1996년 KBS2 수목드라마 《머나먼 나라》,1997년 KBS2 주말연속극 《파랑새는 있다》… 앤디 김 모친 역,1998년 MBC 수목드라마 《대왕의 길》… 최상궁 역,1998년 KBS1 TV소설 《은아의 뜰》,1998년 MBC 수목드라마 《육남매》,1998년 MBC 수목드라마 《해바라기》… 재봉 모 역,1999년 SBS 드라마스페셜 《파도 위의 집》… 소란 모 역,1999년 KBS1 일일연속극 《사람의 집》,2001년 MBC 수목드라마 《네자매 이야기》… 평양댁 역,2001년 KBS2 월화드라마 《쿨》,2001년 SBS 청춘시트콤 《여고시절》,2002년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박순천 의원 역,2002년 SBS 일일드라마 《소문난 여자》… 만구 모 역,2002년 KBS1 TV소설 《인생화보》… 심씨 역,2002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모자사기단 운수 좋은 날》 … 호자 역,2003년 MBC 수목드라마 《눈사람》… 필승 모 역,2003년 MBC 수목드라마 《나는 달린다》,2004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안녕, 클레멘타인》 … 이성복 모 역,2004년 KBS2 수목드라마 《풀하우스》… 영재의 조모 역,2004년 MBC 수목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 능옥 역,2004년 SBS 주말극장 《토지》… 김 서방댁 역,2005년 SBS 특집드라마 《핑구어리》,2005년 KBS2 수목드라마 《열여덟 스물아홉》… 떡볶이집 할머니 역,2005년 SBS 금요드라마 《사랑한다 웬수야》… 장희분 역,2005년 KBS2 수목드라마 《장밋빛 인생》… 미스 봉 역,2006년 MBC 일일연속극 《얼마나 좋길래》… 선주 고모 역,2007년 SBS 주말극장 《황금신부》… 맹만덕 역,2007년 KBS2 단막극 《드라마시티 – 틈》 … 양순남 역,2007년 KBS1 전원드라마 《산 너머 남촌에는》… 양산댁 역,2008년 MBC 주말연속극 《내 인생의 황금기》… 황 조모 역,2008년 SBS 월화드라마 《타짜》… 영민 조모 역,2008년 KBS2 월화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윤영 모 역,2008년 SBS 드라마스페셜 《스타의 연인》… 김옥자 역,2010년 SBS 월화드라마 《별을 따다줘》… 최은말 역,2010년 SBS 월화드라마 《커피하우스》… 홍복례 역,2010년 SBS 드라마스페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삼신 할머니 역 (우정출연),2011년 SBS 월화드라마 《마이더스》… 우금지 역,2011년 MBC 주말연속극 《반짝반짝 빛나는》… 종로백곰(고은혜) 역,2011년 KBS2 수목드라마 《로맨스 타운》… 순금 조모 역,2011년 KBS2 특집드라마 《노리코, 서울에 가다》… 삼월 역,2011년 KBS2 TV소설 《복희 누나》… 최간난 역,2012년 MBC 일일연속극 《그대 없인 못살아》 … 강월아 역,2013년 JTBC 일일연속극 《가시꽃》 … 파주댁 역,2013년 MBC 주말연속극 《금 나와라, 뚝딱!》 … 몽희 외할머니 역,2013년 SBS 일일연속극 《잘 키운 딸 하나》 … 라공 외할머니(변종순) 역,2014년 MBC 월화드라마 《트라이앵글》 … 오정희의 할머니 역,2015년 KBS2 수목드라마 《고맙다, 아들아》 … 임 여사 역,2015 tvN 월화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2》 … 이점이 역,2015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 … 조강자의 시어머니 역,2015 MBC 주말연속극 《여자를 울려》 … 복례 역,2016년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 … 조동보 역 을 맡았다. <나무 위키 참조>

영화로는, 1965년 《마포사는 황부자》, 1967년 《가고파》, 1967년 《보은의 기적》, 1967년 《상감마마 미워요》, 1967년 《엘레지의 여왕》, 1968년 《삼현육각》, 1968년 《못다한 사랑》, 1968년 《자주댕기》, 1968년 《어머니는 강하다》, 1968년 《화산댁》, 1968년 《잘돼갑니다》, 1968년 《남》, 1968년 《유성의 검》, 1968년 《아리랑》, 1968년 《순애보》,1968년 《맨발의 영광》, 1969년 《미워도 다시 한 번》, 1969년 《지하실의 7인》, 1969년 《차라리 남이라면》, 1969년 《개구장이 도련님》, 1969년 《눈나리는 밤》, 1969년 《모르는 여인의 편지》, 1969년 《고원》, 1969년 《주차장》, 1969년 《내실》, 1969년 《봄봄》, 1969년 《이조 여인 잔혹사》, 1969년 《겨울 부인》, 1969년 《팔도 사나이》, 1969년 《서울야화》, 1970년 《복수의 마검》, 1970년 《5인의 왼손잡이》, 1970년 《유정검화》, 1970년 《수호지》, 1970년 《아무도 모르게》, 1971년 《항구의 왼손잽이》, 1971년 《비에 젖은 두 남매》, 1971년 《대감신랑》, 1971년 《괴짜신부》, 1971년 《다섯개의 단검》, 1971년 《아름다운 팔도강산》, 1971년 《여인도》, 1971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1971년 《처복》, 1971년 《지금은 남이지만》, 1972년 《아름다운 팔도강산》, 1972년 《잘 살아다오 내 딸들아》, 1972년 《정과 정 사이에》, 1972년 《화분》, 1972년 《무녀도》, 1972년 《섬개구리 만세》, 1973년 《비바리》, 1973년 《엄마결혼식》, 1973년 《방년 18세》, 1973년 《여대생 또순이》,1973년 《산녀》, 1973년 《별난청춘》, 1973년 《증언》, 1974년 《아들 3형제》, 1974년 《아내들의 행진》, 1974년 《연화》, 1974년 《명동에서 첫사랑을》, 1974년 《토지》, 1974년 《울지 않으리》, 1974년 《낙인》, 1975년 《망나니》, 1975년 《비녀》, 1975년 《마지막 포옹》, 1975년 《애종》, 1975년 《형사 배삼룡》, 1975년 《태양의 분노》, 1975년 《너 또한 별이 되어》, 1975년 《욕망》, 1976년 《청춘을 이야기 합시다》, 1976년 《보르네오에서 돌아온 덕팔이》, 1976년 《여자의 성》, 1976년 《어머니》, 1976년 《아내》, 1978년 《진짜 진짜 좋아해》, 1978년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1979년 《정조》, 1979년 《골목대장》, 1979년 《을화》, 1980년 《짝코》, 1980년 《병태와 영자 2》, 1980년 《월녀의 한》, 1980년 《팔불출》, 1980년 《짝코》, 1980년 《그 여자 사람잡네》, 1980년 《외인들》, 1980년 《복부인》, 1980년 《속 병태와 영자》, 1981년 《아빠 안녕》, 1981년 《집을 나온 여인》, 1981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1년 《오늘밤은 참으세요》, 1981년 《두 아들》, 1981년 《미워도 다시 한번 82 제2부》, 1981년 《초대받은 사람들》, 1981년 《어둠의 자식들》- 어머니 역, 1982년 《82 바보들의 청춘》, 1982년 《타인의 둥지》, 1982년 《내가 사랑했다》, 1982년 《화순이》, 1982년 《관 속의 드라큐라》, 1982년 《여자와 비》, 1982년 《무녀의 밤》, 1982년 《날마다 허물벗는 꽃뱀》, 1982년 《낮은데로 임하소서》- 장모 역,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 1982년 《버려진 청춘》, 1982년 《어둠의 딸들》, 1982년 《최인호의 야색》, 1982년 《오염된 자식들》, 1983년 《겨울 여자 2》, 1983년 《안개 마을》, 1983년 《외박》, 1983년 《땜장이 아내》, 1983년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 1983년 《여자가 더 좋아》, 1983년 《마계의 딸》, 1983년 《참새와 허수아비》, 1983년 《대학 들개》, 1983년 《속 사랑하는 사람아》, 1983년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1983년 《바보 선언》, 1983년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3년 《대학신입생 오달자의 봄》, 1984년 《장대를 잡은 여자》, 1984년 《그 여름의 마지막 날》, 1984년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 1984년 《밤마다 천국》, 1984년 《수렁에서 건진 내 딸》, 1984년 《잊혀진 계절》, 1984년 《야망과 도전》, 1984년 《젊은 시계탑》,  1984년 《지금 이대로가 좋아》, 1984년 《돌아오시는 날》, 1985년 《차라리 불덩이가 되리》, 1985년 《그것은 밤에 이뤄줬다》, 1985년 《여왕벌》, 1985년 《화녀촌》, 1985년 《이별없는 아침》, 1985년 《달빛타기》, 1985년 《고래 사냥 2》, 1985년 《방황하는 별들》- 유인자 역, 1985년 《여자의 대지에 비를 내려라》, 1985년 《부나비는 황혼이 슬프다》, 1985년 《물목》, 1986년 《길소뜸》- 석철 아내 역, 1986년 《심형래의 탐정 큐》, 1986년 《뛰는 자 나는 자》, 1986년 《황진이》, 1987년 《레테의 연가》, 1987년 《달래내 보슬이》, 1987년 《도화》, 1987년 《못다 부른 노래님》, 1987년 《감자》- 왕 서방 역,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년 《위기의 여자》, 1987년 《아다다》- 사모 역, 1988년 《둥지속의 철새》, 1988년 《사방지》- 사대부 마님 역, 1988년 《목밀녀》, 1988년 《산배암》, 1988년 《이장호의 외인구단 2》- 엄지 모 역, 1988년 《당신은 안개꽃》- 셋집 주인 역, 1988년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묘지기 역, 1988년 《가루지기》, 1989년 《달콤한 신부들》,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창수 부 역, 1989년 《잠자리에 들 시간》- 의상실 주인 역, 1989년 《추억의 이름으로》- 어머니 역, 1989년 《우담바라》, 1989년 《신사동 제비》- 장모 역, 1989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주인 여자 역, 1990년 《우묵배미의 사랑》- 오바로꾸 역, 1990년 《너는 나의 황홀한 지옥》- 부인 역, 1990년 《타악기의 계절》- 안씨 역, 1990년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진희 모 역, 1990년 《어느 모델의 사랑》, 1990년 《남부군》- 마을 아낙 역, 1991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3년 《비 오는 날의 수채화 2》- 노파 역, 1997년 《로켓트는 발사됐다》- 술집 여자 1 역, 1998년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지원 역, 1999년 《만날 때까지》- 박 부인 역, 2000년 《행복한 장의사》- 연이 할매 역, 2001년 《파이란》- 세탁소 아줌마 역, 2001년 《킬러들의 수다》- 의뢰 할머니 역, 2002년 《라이터를 켜라》- 봉구 모 역, 2003년 《…ing》- 아줌마 역, 2004년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할머니 역, 2004년 《달마야, 서울 가자》- 노 보살 역, 2004년 《아라한 장풍 대작전》- 반야가인 역, 2005년 《나의 결혼 원정기》- 만택 어머니 역, 2005년 《파랑주의보》- 민박집 주인 역 (특별출연), 2006년 《마파도 2》- 진안댁 역, 2006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박 할머니 역, 2007년 《아들》- 강식 모 역, 2007년 《열한번째 엄마》- 백중 모 역, 2007년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할머니 역 (특별출연), 2009년 《국가대표》- 봉구 할머니 역, 2009년 《해운대》- 금련 역, 2010년 《무적자》- 이모 역, 2011년 《도가니》- 인호 모 역, 2011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할머니 역, 2013년 《고령화가족》 – 상근댁 역 (특별출연), 2013년 《결혼전야》 – 대복 모 역 (특별출연) 등 지난 60여년 세월동안 우리의 안방극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감동, 때로는 사회에 대해 회초리를 든 어른의 모습으로 스크린에서 극을 보는데 있어서 감칠맛이 나게 하는 역활들을 감당해 왔다.

이제 배우 김지영선생은 비록 고인의 몸이 되었지만 그녀가 출연했던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은 우리 곁에서 그녀가 걸어온 지난 세월을 더듬으며, 오직 한 길만을 걸어온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족으로는 김지영 선생의 자녀 4남매와 배우자들이 있으며, 그중  김지영 선생의 사위로 전 서울시의원 허준혁씨와 딸과 손녀들이 있다. 허준혁 의원은 서초구청장 후보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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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3 <이강화 교수>

In the fall of 1959, a film called Ben-Hur, based on Lew Wallace’s novel, Ben-Hur: A Tale of the Christ, widely considered the most influential Christian …(photo from Google Images)

<Daegu, Prof. Lee GangWha >

새로운 문화 텍스트로서의 영화

1.영상 텍스트와 문학 텍스트
지금 우리들은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뉴 미디어 시대에 살고있다. 여기에서 ‘뉴 미디어’란 일차적으로 멀티미디어나 컴퓨터를 지칭하지만 영화, 비디오, 광고, 패션, 팝송, 신문, 잡지 등의 다양한 대중매체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중에서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영상매체의 영향은 가히 압도적이다. 스크린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배우는 이들에게 영상매체는 곧 삶의 텍스트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서 신세대는 두터운 순수문학 소설들을 읽는 대신 그 내용을 요약한 영화를 즐겨보고, 영상적 표현을 통해서 오히려 그 문학성을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조이스나 포크너 같은 난해한 작품이라면, 문학을 전공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더욱 읽히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영상매체가 오늘날 신세대들에게 가장 호소력있는 문화 텍스트로 부상하게 되었다면 이들에게 영상매체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내세우면서 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에게 영상매체를 읽는 법, 다시 말해서 영화가 어떻게 당대의 사회상과 문화를 반영하고 있고, 어떻게 당대의 지배이념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 어떻게 당대의 관습에 저항하고 있는지 등을 문학과 연관해서 가르쳐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문화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상 세대와 문자 세대는 공동의 관심사를 통해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서로의 시각과 인식의 지평도 훨씬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토니 베넷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동안 영화와 텔레비전 연구의 확산은 극적이었다. 독립된 영역의 연구로서든지 아니면 다른 분야 코스의 일부로든지 간에, 영화와 텔레비전은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 교과과정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모든 종류의 중, 고등학교와 전문학교에서도 점점 더 많이 교수되고 있다. 아마도 똑같이 중요한 것은, 영화와 텔레비전에 대한 연구가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서 그것을 더욱 확립된 분야 – 특히 문학 – 와 명백하게 접목시켜 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영화 혹은 영상매체는 오래 전부터 문학과를 중심으로 커리큘럼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왔다. 종합예술로서 한 나라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영화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언어로 다양한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언어공부 뿐만 아니라 문화공부의 중요한 텍스트로 활용되어왔다.  영화화된 문학작품의 경우, 장편소설을 극영화로 각색할 때 생기는 변화, 문학과 영화라는 두 매체의 미학의 차이, 감독의 작품해석의 문제 등이 영상매체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훨씬 구체적인 텍스트 이해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이것은 문학교육이 그 범위를 넓혀 문화교육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학과에서 영화 텍스트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가 문학과는 달리 작가의 절대적 권한을 초월하는 종합예술이라는 데에도 있다. 종래의 문학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저자의 상상력과 창조력이었다. 저자의 개별적인 창조행위를 통해서 작품은 이른바 벤야민 식의 ‘아우라’를 부여받을 수 있었고 따라서 모든 평가는 궁극적으로 저자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원작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배우, 촬영기사, 음향기사, 조명기사, 분장사, 세트기사, 스턴트맨들의 공동작업이기에 예술을 탈신비화 하게 된다. 더구나 영화라는 작품의 창조는 생산행위로 이어지며, 이 생산물은 판매되고 구매되는 상품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영화가 하나의 상품적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연구는 순수문학작품보다 영화에 더 직접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그 이유는 영화가 당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표출하는 텍스트로서 더 적실한 기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오늘날 문화연구는 영화를 하나의 사회적, 문화적 문헌으로 보고 그것을 해독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같은 미디어 시대에는 문학연구를 보다 더 광범위한 문화연구로 확대시켜서, 문학작품과 더불어 각종 미디어와 영상매체도 같이 연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프레드릭 제임슨, 더글러스 켈너, 로렌스 그로스버그같은 좌파비평가들이, 그리고 영국에서는 앤토니 이스트호프같은 문화연구가들과 버밍엄 학파 소속 비평가들이 이러한 문화연구의 차원에서 활발한 영화비평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들의 영화비평은 영화의 작품성이나 미학적 측면을 주로 고려하는 직업적인 영화평론가들과는 달리, 영화를 당대의 문화와 사회를 반영하는 역사적 기록으로 파악했으며,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영화는 문학 텍스트 이상으로 일종의 문화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문학작품의 영화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 원작을 읽고 싶어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문학의 보급과 확산에 기여하기도 한다.

문학의 독자적인 역사 또한 끝났고 이제 문학은 영화처럼 매체문화의 한 구성요소로 되어버렸다. 독일의 어떤 작가도 이제 자기의 문학생산을 시청각매체를 벗어나 순수한 문학시장에서 관철시킬 수는 없다. 작가가 문학가의 역할에 가치를 두려고 할 경우, 그 역할을 고수하게 해주는 것은 오히려 매체이다. 오늘날 ‘작가’의 상은 변하였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은 자신의 텍스트를 다중매체적으로 시장에 내놓아야만 한다……이리하여 소위 잊혀진 소설들이 영화예술의 기적적인 힘을 통해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고정된 문자의 가시 울타리에서 해방되고 새롭고 찬란한 삶으로 깨어난다는 사실이 입증될 수 있다. 더구나 관객이 영상에서 본 것을 통해서 원작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는 희망에서, 그리고 그 원작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관객 안에서 생기게 되리라는 희망에서, 그 소설들이 새롭고 찬란한 삶으로 깨어난다는 사실이 증명될 수 있다.

이처럼 요하임 패히는 현재 독일어권의 성공적인 작가들은 라디오, TV, 영화, 잡지, 서적들의 멀티미디어적 현실에서 작가로서 자기자신을 재생산해낼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자신들의 작품 안에서 다루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 대표적인 작가로 페터 한트케, 귄터 그라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보수적인 문학자들은 상업적인 영화가 감히 신성한 문학에까지 손을 뻗는 것이 싫고, 문학작품의 영화화가 원작을 훼손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회의적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들의 심리적 동기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들의 문제는 “영화관에서 과거의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화면을 통해서 이제까지 인쇄된 서적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더 이해하기 쉽게 무수한 사람들에게 매개시킬 수 는 기회를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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