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3<강원대, 윤금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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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Prof. Yoon, Geum Ja>

노자의 고요함(靜)은 그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고요함 그 상태가 아니다. 변화(動)속에서의 고요함이다. 고요함(정)은 마음을 비우고 본연의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일상의 비본질적인 잡다한 일에 욕심내어 시달리고 지치면 ‘자기다움’의 자연스러움이 이지러져 불안증에 시달리게 된다. 고요함속에서 마음은 불안증을 유발하는 사욕, 미움, 질투, 분별심 등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삶을 새롭게 살리는 生氣를 얻을 수 있다. 삶의 핵심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경험으로 내안의 가능성을 발휘하면서 견고한 의미로 채워가며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데 있다. 生意는 고요함 속에서 자기 성찰에 따른 새로운 삶의 희망으로 작용하여 더 이상 불안으로 동요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는 길목으로 향하게 된다.
본연의 자연성은 도를 품수 받은 마음의 뿌리이다. 노자는 지혜의 빛으로 맑은 본연의 자연성을 돌이키면 자연 닮은 삶을 살게 되어 자신에게 어두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즉 본연의 자연성을 따를 때 불안과 염려는 사라진다. 노자는 마음에 불안감이 전혀 없는 덕을 깊게 머금은 사람을 和氣 넘치는 嬰兒에 비유했다.

含德之厚, 比於赤子,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함덕지후, 비어적자, 봉채훼사불석, 맹수불거, 확조불박.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골약근유이악고. 미지빈모지합이전작, 정지지야.
終日號而不사,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 지화왈상, 지상왈명.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물장즉노. 위지부도. 부도조이(노자 55장)

노자는 우리의 자연성을 회복하여 화기 넘치는 삶을 살라고 했다. 화기 넘치는 삶이란 안정된 마음에서 비롯되며, 안정된 마음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온한 상태를 말해준다. 평온한 상태는 마음 본래 자연성을 회복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상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능히 일체를 포용하고, 포용하면 편안하게 공평해 질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 본연의 자연성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면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은 모든 존재자가 근원에 있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비롯된다.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집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낙여이, 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노자 35장)

우리는 일생생활에서 끊임없이 압박하는 삶의 장애물로 수시로 불안증에 시달리지만, 그때마다 도의 품성이 내재된 본연의 자연성으로 회심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자연과 부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과 부합된 삶 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도와 같아진 사람은 도 역시 그를 즐거이 얻는다”고 했고, “대상을 지키면 천하 사람들이 그에게로 돌아온다”고 했으며, “귀신이 자연에 따르는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심리적인 불안증을 치유하여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모든 것을 이해, 수용, 공감, 적응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리적 불안증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해하는 마음’, ‘수용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적응하는 마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마음’을 살펴본다.

첫째, 이해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마음이다.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 깊이에 있는 무의식 상태까지도 세심하게 이해한다면 감정을 잘못 건드려 고통을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란 쉽지 않지만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처럼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열어 놓았을 때 가능하다. 마음을 ‘느끼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나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미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 때, 상대방이 기뻐하면 우리도 환희의 감정을 느끼고, 상대방이 슬퍼하면 우리도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삶을 형성해 나간다. 인간의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가정, 직장,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喜怒哀樂을 모두 경험한다. 인간관계속에서 체험하는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은 우리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들만 만난다면 좋겠지만 우리들의 성향과 너무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고, 그들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면 우리는 미연에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개인적인 고유한 성품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성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신뢰하며 그 생각대로 행동하며 살고 있다. 주관적인 생각과 행동은 가정환경이나 자신의 관심분야의 지식을 추구하면서 다져진 사고의 결집체에서 우러나온 것일 뿐이다. 그것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보편적인 척도 혹은 기준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념이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은근히 배타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옳고 상대방의 생각은 그르다고 보는 이분법적인 편협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다양한 삶의 형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삶의 형태에 맞추려고 하는 독단적 행태이다.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보듯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故物, 或行或隨, 或허或吹, 或强或羸, 或挫或휴,
고물, 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좌혹휴,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시이성인거심, 거사, 거태.(노자 29장)

노자에 의하면 현명한 통치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이해하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본연의 순박한 상태로 회심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반드시 상대방의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자신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성격적인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늘 만날 수밖에 없는 가족, 직장동료, 친구, 선후배들이 우리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없다. 우리가 그들 때문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갈 것이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흡흡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노자 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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